Report음악사 - 복음성가의 역사200520413민인홍복음성가 - 가스펠이라는 용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우리나라 용어를 말한다.'찬송'은 하나님께 '찬양'한다는 의미가 있는데 비해, 복음성가는 '복음'에 관한 성스러운 노래라는 더 넓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한때는 찬송가 이외의 곡을 모은 악보집을 '복음성가곡집'이라고 불렀다.그러나 요즘에는 ‘ '찬양 곡' 이라는 용어 = '기독교 음악'을 말하는 용어‘ 라는 의식의 확산으로 인해 '찬양'의 의미가 확장됨에 따라서 복음성가라는 용어의 쓰임이 줄어들었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미 외국에서 가스펠이라고 불렸던 것을 우리나라로 가져와 '찬송가'라고 지칭해 놓고는 다시 '복음성가'라는 용어를 찬송가 외의 곡들을 지칭하는 말로 썼다는 것이다.) '복음성가곡집'과 같은 모음집들은 최근에 들어와 다시 '찬양 곡집'이라 부르고 있다.우리나라에서 CCM 과 복음성가는 거의 일치하다고 보여진다. 그 이유는 처음부터 CCM이라고 불려지지 않았기 때문인데 우리나라에서...1950년대에는 기독교 음악이 모든 음악의 전부였다. 6.25이후 우리나라는 미국의 구호 물자에 의존하면서 기독교적 문화관을 받아들이면서 대중문화는 기독교라는 공식이 완성되었었다.그러다가 1976년 중앙대학교 기독학생회가 창단되면서 미국의 경배와 찬양 스타일이 활성화 되었다고 한다.1980년대에는 사명이나 신앙양심에 의해 만든 찬송이나 찬양들이 대부분이어서 신 군부정권이 한국교회의 축복속에서 탄생했고 대중은 민주주의 좌절이라는 쓰라린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다. 한국교회는 사회정의를 배제한체 수적 부흥에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고 대중과 교회의 관계는 소원해지게 되었다. 그러면서 문화적 편견이 더해지고 대중음악은 사탄의 음악이라는 편견이 생기게 되었다.1981년에 창작 복음성가대회가 열리고 1986년 한국복음성가협회 창립 주찬양 선교단이 그이름을 내놓는다. 1987년에 옹기장이 선교단, 그 이후 손영진, 박종호, 송정미 등... 많은 복음성가 사역자들이 데뷔했다90년대 대중음악이 서태지와 아이들에의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결국 10대를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가 생기구여.. 이 당시에 기독교에서는 Rock과 뉴에이지를 배척하면서 대중계와 멀어지고.92년 결국 사이비 종교화 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