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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1. 베트남 개관베트남의 정식 국명은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수도는 하노이이며, 우리나라에서 직선거리로 약 3,600㎞, 비행기로는 약 6시간이 걸린다.인도차이나 반도의 동쪽에 위치하고 가늘고 긴 S자 모양의 나라이며, 수도 하노이에서 호치민까지 거리는 1750㎞이다. 베트남의 최상단에서 하단에 이르기까지는 약 2000㎞이다. 북쪽으로 중국, 서북쪽에는 라오스, 남쪽으로는 캄보디아와 인접하고 있으며, 면적은 우리나라의 3배가 조금 넘는 약 33만㎢이다.지형적으로는 서북쪽에 쯔엉선 산맥이 자리 잡고 있고, 북부에는 중국과 인접하는 산악?고원지대, 홍하 하류에는 델타 지형이 펼쳐져 있다. 중부지방에는 해안을 중심으로 평야가 펼쳐져 있으며, 남부지방은 광대한 메콩델타가 펼쳐져 있다.베트남의 인구는 약 8,200만 명이며, 다민족 국가로 인구의 약 90%를 베트남인(낌족)이 차지하고 있으며, 그 외에 따이족, 타이족, 므엉족, 크메르족, 화교 등의 소수 민족이 살고 있다. 낌족은 평야지역에 거주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소수 민족은 국토의 3/4을 차지하는 산간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언어는 베트남어가 공용어이며 외국어로는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러시아어가 조금씩 통한다.베트남의 기후는 북부지바은 아열대 기후로 뚜렷하지 않지만 사계절의 변화가 있다. 남부지방은 열대 몬순기후로 우기와 건기로만 구분되며 연평균 기온이 25℃로 매우 덥다.남북으로 가늘고 길게 뻗어 있는 베트남은 기후의 차이를 비롯해 여러 가지 면에서 남북지방의 차이가 크다. 북부지방은 물줄기가 거센 홍하의 범람과 거듭된 내전 등의 영향으로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마을 사람들끼리 결속력이 강하며 매우 부지런하다. 한편 남부지방은 신개발지역으로 국제교류도 활발하고 식민지 지배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아 사람들이 낙천적이고 개방적이다.베트남은 인구의 70%이상이 농업에 종사한다. 최근에는 벼의 품종개량에 성공하여 세계 제2위의 쌀 수출국이 되었다. 그 밖에 해저 유전의 석유개발을 비롯하여 광물자원, 딘 디엠은 실각하였는데 이때부터 베트남의 정국은 쿠데타의 악순환에 휩쓸려 무려 10차례의 쿠데타를 겪은 후 1965년 6월에는 장군 구엔 반 티우의 정권이 들어섰다. 티우 정권은 1966년 새 헌법을 제정?공포하고 1967년에는 총선거를 실시하여 정?부통령과 상?하의원을 선출하였는데, 1969년 2월 공산군의 전면공격이 개시되었다.한편, 이보다 앞선 1965년 8월 ‘통킹만 사건’을 치른 미국은 베트콩의 활동은 곧 월맹의 침략행위라는 견해를 표명하고 북폭을 개시하였다. 베트콩의 기세가 꺾이지 않자 미군은 소탕전에 직접 뛰어들어 작전을 유리하게 이끌었고 민생안정?농촌건설에 주력하는 ‘평정계획’도 본격적으로 추진하였다. 특히 이 전쟁에는 동남아시에의 집단방위를 목적으로 하여 한국을 비롯하여 필리핀, 타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도 파병하였다. 1969년 2월 공산군이 베트남에 대하여 전면 공격을 개시하자 미국 대통령 닉슨은 ‘베트남전쟁의 베트남화 계획’을 발표하였다.1972년 1월 미국과 월맹간의 비밀회담이 계기가 되어 1973년 1월 파리에서 미국?베트남?베트콩?월맹 간에 휴전협정이 조인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공산군은 협정을 위반하고 맹렬한 공격을 재개하여 1975년 1월 푸옥빈 성도를 함락, 점차 베트남 전역을 휩쓸기 시작하자 4월에 대통령 티우가 사임하고, 트란 반 후옹을 거쳐 장군 두옹 반 민이 난국 수습의 중책을 맡았으나 대통령 민의 평화협상 제의를 베트콩은 거절했다. 1975년 4월 30일, 월맹군이 사이공을 점령하자 30년에 걸쳤던 베트남 전쟁을 막을 내렸다. 통일이후 남부에서는 구체제의 해체와 사회주의화가 추진되었다. 1976년 4월 남북 베트남의 통일 선거가 실시되어 6월에는 통일국회가 열렸고, 7월에는 남북이 통일되어 현재의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하게 되었다.1977년에는 UN에 가입하였고, 1992년 12월에는 우리나라와 수교를 하였으며, 1995년 7월에는 미국과도 수교를 하였다.3. 베트남의 정치베트남의 기본적인 권력구조도 활성화 등으로 다원화 요구를 수용하고 있다.4. 베트남의 사회?문화베트남에서는 음력 정월 초하루는 가장 큰 명절로서 초하루에는 일가친척, 선생님, 이웃들을 방문해 서로 덕담을 나누고 복을 기원하며, 어린이들에게는 세배 돈이 주어진다. 이날 가정에서는 꺼이 네우로 장식을 하는데, 이것은 크리스마스트리와 같이 나무에다가 흙이나 종이로 만든 잉어나 말, 여러 가지 형태의 물건을 달아 장식하는 것이다.그리고 설날의 첫 방문자는 그 해의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어 고위 인사나 돈 많은 사람을 초대하기도 하며, 첫 방문자는 조상신을 모신 제례상에 향불을 피우고 덕담을 하며 어린이에게는 세배돈을 나누어 준다.베트남의 국경일은 신정(1.1), 구정(12.30~1.3), 전승기념일(4.30), 노동절(5.1), 건국기념일(9.2) 등으로 연간 8일이며, 국경일이 휴일과 겹치며 다음날을 쉰다.베트남인들은 9를 으뜸이자 신성한 수로 여기며, 13은 액운의 상징으로 여긴다. 그리고 숫자 5는 베트남어로 위험의 뜻과 비슷하여 숫자의 합이 5가 되거나 15, 25 등 5로 끝나면 이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베트남의 전통가극으로 ‘핫 보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14세기 쩐왕조 시대에 나타난 전통 가극으로 핫 보 또는 북부에서는 뚜옹이라고도 불린다. 극중 내내 노래와 무용, 악기 연주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베트남의 전통 가무와 중국의 가극이 결합된 무대 예술로 현재 희극, 비극, 풍자극 등 약 600여 편이 전해지고 있다.핫 보이는 45년 혁명 이후 봉건주의 색채를 이유로 상연이 금지되었으나 75년 통일 이후 완화되어 중부 베트남 지역에서는 잘 보전되어 있다.베트남 여성들이 즐겨 입는 전통 의상인 아오 자이(아오는 옷 또는 저고리, 자이는 길다는 의미, 남부에서는 아오 야이로 발음)는 ‘긴 옷’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19세기부터 입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76년 사회주의 정부가 노동에 부적합하고 퇴폐적이라고 착용을 금지했다가 86년 도이모이 정책 추진 이후 완화되었으며,메르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있고, 50대 이상에서는 프랑스어를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 많고 청?장년층에서는 영어를 쓸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캄보디아의 종교는 국교로 국민 대다수 약 95%가 소승불교를 믿고 있으며, 기타 이슬람교나 힌두교, 기독교, 천주교 등이 있다.2. 캄보디아의 역사캄보디아의 역사는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가 6세기까지 인도문명의 영향 아래 부남왕국이 번영하였다. 부남은 해상무역을 통하여 6세기 후반까지 발전하였으며 이어서 북방에서 일어난 진랍이 부남을 병합하여, 인도차이나 반도의 대국으로 등장하였다. 그 후 8세기 초에는 수진랍과 육진랍으로 분열되었다가 9세기 초에 자야바르만 2세가 다시 통일하여, 앙코르 지방에 도읍을 정하고 앙코르 왕국을 건설하였다.앙코르 왕국은 진랍의 전성기로 12세기 말까지 번영하였으며, 그 사이 인도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앙코르 톰, 앙코르 와트 등 거대한 건축물이 조영되었다. 이 당시에 앙코르의 건축과 부조는 크메르 미술의 최고봉을 이루는 것으로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13세기에는 타이인의 압박이 시작되었으며, 14세기에 아유타야 왕조의 세력이 커지자 1434년에는 앙코르를 포기하고 남쪽의 프놈펜 지방으로 도읍을 옮겼다.한편, 베트남은 15세기 후반에 이르러 참파 왕국을 붕괴시키고 크메르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였다. 이후 크메르는 타이, 베트남 두 민족의 압박을 받아 쇠퇴해갔다. 코친차이나에 진출한 프랑스의 개입으로 1863년 타이를 물리쳤으나 프랑스의 보호국이 된 이래 90년 동인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일부가 되었으며, 왕제는 형식적으로 존속되었다. 1940년 일본군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점령하여, 노로돔 수라마리트 국왕 대신 19세의 노로돔 시아누크를 즉위시키고 한때 지배하였으나 1945년 3월 일본의 후원하여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이 독립을 선언하였다.그러나 프랑스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독립운동을 계속되었다. 일본 패전 후 프랑스가 지배권을 회복하였으나 1947년 5월 노로돔 시아누크는 캄보디아 다당제와 시장경제제도를 채택하였다.1991년 10월 파리에서 4개 정치세력이 평화협정에 서명함으로써 13년간에 걸친 내전이 종식되었다. UN 안전보장이사회는 파리평화협정에 따라 군병력을 포함한 2만 2000명의 요원을 파견해 과도행정기구(UNTAC)를 구성하였다.1993년 5월 총선을 앞두고 크메르루주는 최고민족평의회에서 탈퇴하고 선거 불참을 선언하였으나, 20개 정당 및 정파가 참가해 90%의 투표율을 기록함으로써 크메르루주의 입지가 약화되었다. 개표 결과 시아누크의 아들 노로돔 라나리드가 이끄는 푼신펙당이 집권 캄보디아 인민당을 누르고 승리하여 제1당이 되었다.제헌의회에서 입헌군주제 헌법을 채택하고 1993년 9월 24일 시아누크가 국왕에 취임하였다. 시아누크는 푼신펙당의 노로돔 라나리드와 캄보디아 인민당의 훈센을 공동총리로 임명함으로써 신정부가 두 세력의 연합에 기반하고 있음을 과시하였다. 두 당은 중앙 및 지방의 모든 권력을 분점하였고, 신정부 출범으로 키우삼판이 이끄는 크메르루주 세력은 급격히 약화되었다.훈센은 1997년 7월 5일 제1총리인 노로돔 라나리드를 공격하는 쿠데타를 일으켰고 1998년 7월 총선을 승리로 이끈 후 1998년 11월 노로돔 라나리드를 국회의장에 임명하고 자신은 단독 수상에 취임하는 신정부를 출범하였다. 2004년 10월 시하누크는 왕위를 노로돔 시아모니에게 양위하였다.현재 헌법상 국왕은 상징적 권한을 가지며, 의회는 국민의회 및 상원으로 이루어진 양원제로 국민회의는 임기 5년의 의원 122명으로 구성되고 상원은 임기 6년의 의원 61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의석을 가진 정당은 3개이고, 연립정부에는 2개 정당이 참여하고 있다.지방정부는 22개주, 2개 직할시로 구성되었고 주·시 아래 183개 군, 1609개 면, 1만 3406개 부락이 있다. 군병력은 1999년 전까지 약 20만 명으로 추정되었으나 감군계획에 따라 1999년 12월 현재 14만 696명으로 줄었으며, 2003년까지 약 10만 명, 2008년까지 약 6만 명으 있다.
    인문/어학| 2009.03.31| 13페이지| 1,000원| 조회(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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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격규제의 유형과 방법
    가격규제의 유형과 방법< 목 차 >Ⅰ. 규제의 의의와 특성 1. 가격규제의 의의1. 규제의 의의 2. 가격규제의 유형2. 규제의 특성 3. 가격규제의 방법Ⅱ. 가격규제의 의의와 유형, 방법 Ⅲ. 가격규제의 적용상의 과제Ⅰ. 규제의 의의와 특성오늘날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가 운영을 위하여 기본이 되고 있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헌법에 반영시켜 입법부에 정책결정을, 집행부에 정책집행을 그리고 사법부에 사법적 판정의 기능을 수행할 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이들 권부(權府) 간에 조화와 견제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삼권분립의 원칙이 엄격히 준수되고 있는 국가는 거의 없으며, 집행부도 입법부의 승인과 위임의 범위 내에서 정책결정을 하고 이를 위한 입법행위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입니다.1. 규제의 의의미트닉은 “규제란 한 주체의 활동에 직접적으로 개입하기 않거나 직접 당사자가 아닌 개체가 한 주체의 활동의 선택을 의도적으로 제한하기 위한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뷸러(Warren buhler)는 “정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정부가 정부 밖에 속하는 개인 또는 기업이 택할 수 있는 행동방향을 지시하거나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위한 정부행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이들 정의는 민간부문과 공공부문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두 부문을 제도적으로 구분하여 공공부문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는 정부가 민간부문의 결정주체에 부과하고 있는 통제를 강조하고 있을 뿐 정부규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법적 근거에 대한 언급은 배제하고 있습니다.위와 같은 성격을 가진 정의에 ‘법에 의한 규제’의 요소를 추가시킨 또 다른 부류의 정의로서 미트닉은 “규제란 공익에 부합하도록 설정된 법규에 따라 개인의 경제적 활동을 조정하는 공공행정경찰작용(public administrative policing)”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퀀스(Peter Quence)는 규제란 “정부가 법령을 부과함으로써 민간부문의 개인이나 조직이 행사할 수 있는 재량권을 제의 목적은 의외로 분명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규제에 따라서는 이 두 가지 목적을 모두 갖고 있는 경우도 있고 이 두 가지 목적이 혼재되어 어느 것이 우선하는지 구분할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것은 경제적 규제가 오랜 역사를 두고 경제사회의 변화 또는 관련산업의 구조적 변화에 따라 변천하여 온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경제적 규제는 진입, 가격, 생산량, 품질, 거래방법 등 경제적 변수를 규제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원배분(resource allocation)이나 소득분배(income distribution)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경제적 규제를 둘러싸고 이익집단이 형성되기 마련이며 이에 따란 정치적 과정 면에서 특수한 양상을 보여주게 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규제기관이 경제적 규제를 다루어 나감에 있어서 이익집단의 상대적 영향력에 따란 독특한 행태와 성향을 보이기도 합니다.1. 가격규제의 의의가격은 시장의 수요공급원리에 의해 자유롭게 정해지는 것이 원칙입니다. 자본주의경제에서는 이렇게 정해지는 가격에 의해서 경제활동의 모든 질서가 유지됩니다. 즉, 자본주의경제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 생산할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경제문제가 자유경쟁하의 가격기능에 의해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가격은 자본주의경제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경제변수입니다.그런데 가격이 항상 그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해내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자유경쟁이 인위적으로 제한을 받거나 또는 자유경쟁이 이루어질 수 없는 자연적인 경제여건 아래에서는 가격결정이 왜곡되고 따라서 가격이 경제문제를 최선으로 해결해 줄 수 있는 순기능을 다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시장지배력을 가진 기업이나 개인의 일방적인 힘에 의해 가격이 결정될 때에는 가격기능에 의해 모든 경제문제가 가장 적절하게 해결되어 나간다고 볼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순수한 가격기능에 의해서만 유도되는 경제질서가 경제외적인 가치판단에 의해 최적이라고 규정되는 경제질서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닙니다.가격의 이러한 니다. 그러므로 가격규제를 실시하기 위해서는 그 상품에 대한 시장조건이 충분히 조사되어야 합니다.2. 가격규제의 유형1) 독과점산업의 가격규제독과점업체가 생산?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가격규제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방법은 서비스비용 가격결정 방법입니다. 독과점업체의 재화나 서비스 가격은 비교 가능한 경쟁시장가격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독과점 업체에 독점이윤이 과도하게 발생하지 않도록 하면서 독과점 서비스의 가격을 가능한 한 최저수준으로 유지함으로써 자원배분의 효율화와 사회후생의 극대화를 기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독과점업체가 생산?공급하는 재화나 서비스의 생산비를 산정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서비스비용 가격결정은 이러한 목적에서 사용되는 가장 기본적인 규제가격 산정방법입니다.서비스비용 가격결정은 다음과 같은 절차로 이루어집니다. 우선 기준년도를 정하고, 그 해의 해당사업의 운영비(operating costs), 감가상각비(depreciation), 조세(taxes)를 합산하여 총생산비용(total production costs)을 산출합니다. 여기에 기업의 정상이윤(normal profit)을 더하여 그 기업이 필요로 하는 총수입(total revenue requirement)을 산정합니다. 다음으로 그 재화나 서비스의 수요를 예상하여 이 만큼의 필요 총수입을 확보하기 위한 가격을 결정합니다. 이 기업의 단일 제품 또는 서비스를 생산하거나 단일 수요집단에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서비스를 생산하거나 다수의 수요자 집단을 가지는 경우에는 이 각각에 대한 가격을 체계화하게 됩니다. 이 결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소위 가격구조 또는 요율구조(price structure or rate structure)입니다.이론적으로 볼 때 이와 같은 과정을 거쳐 결정된 독과점산업의 가격, 이윤, 생산량, 효율성 수준은 완전경쟁 시장 하에서 얻을 수 있는 효과에 근접할 수 있습니다.2) 일반적 가격규제정부가 보다 광범위한 산업분야에 걸쳐 차별의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3) 경제적 지대(불로소득)에 대한 규제가격규제의 특수한 형태로서 초과이윤(excess profits), 우연한 소득(windfall profits), 불로소득(unearned income)에 대한 규제가 있습니다. 이것은 학문적으로 경제적 지대(economic rents)라고 불립니다.경제적 지대란 공급이 제한되어 있는 또는 공급탄력성이 극히 낮은 생산요소(토지?노동?자본)에 발생하는 추가적 소득이다. 따라서 경제적 지대는 독과점기업이 제품의 생산과 공급을 조절하여 가격을 올림으로써 발생하는 독점이윤과는 다릅니다.예를 들면 유명한 야구선수 봉급의 대부분은 경제적 지대입니다. 이 때 경제적 지대는 그가 모든 야구팀에서 뛸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그가 만일 다른 이류팀에 소속되었을 때 연봉 6천만원을 받을 수 있을 뿐인데 현재의 소속팀에서 1억원을 받고 있다면 그 차액인 4천만원은 경제적 지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경제적 지대는 공급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또한 경제적 지대는 경쟁적 시장이냐 비경쟁적 시장이냐를 막론하고 아주 흔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생산기술을 발명하였다거나 아주 유능한 경영자를 고용하고 있다거나 아주 값싼 원료를 발견하였다거나 값이 아주 쌀 때 좋은 기계를 구입하였다거나 할 때 경제적 지대는 발생합니다. 이러한 경제적 지대의 추구활동을 위축시키는 것은 결국 효율성의 추구를 저해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그러나 경제적 지대가 개인이나 기업의 창의적 노력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행운으로 또는 경제적 여건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막대한 규모로 발생하는 경우, 그리고 경제적 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재화가 국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긴요한 것들인 경우에 경제적 지대를 규제해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이 경우의 경제적 지대는 흔히 우연한 이득 또는 불로소득이라고 불립니다. 부동산 임대차 가격의 급등, 갑작스런 국제원유가격의 인상에 따라 재고로 남아 있는 또는 비축되어 있는 석유 가치의 으로서 수지를 맞추거나 이윤을 확대하려는 유혹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물론 피규제기업이 교묘한 수법으로 서비스 질을 삭감하는 행위는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용인될 수 없는 일이고 이것이 불가피하다고 한다면 규제가격을 재조정한다든가 아니면 보다 근본적으로 가격규제를 철폐하고 진입제한을 완화하여 경쟁을 촉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하지 않은 경우에 규제기관은 보통 서비스 질에 대한 규제를 가격규제에 추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규제기관이 이런 방법을 추구하는 데는 첫째, 피규제기업이 많아지는 것보다는 진입규제를 통해 피규제기업의 숫자를 적게 할수록 그들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에 대한 검사가 용이하고 소비자를 보다 잘 보호할 수 있다고 판단합니다. 둘째, 독과점적인 공익사업은 하나의 특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그 특혜를 계속 누리기 위해 피규제기업들이 규제기관이 정한 서비스 기준을 준수하려고 하는 성향을 강하게 가지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공익사업의 허가를 갱신할 때 규제기관이 재허가를 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규제기관의 지시나 명령에 따를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허가에는 경제적 이득이 따르게 되므로 규제기관은 피규제기업에 대하여 다소 재정적 부담이 될 수 있는 추가적인 의무(소비자보호를 위한 의무)를 부과할 수 있습니다. 넷째, 시장경쟁 상태에서 보다도 진입이 규제된 상태 하에서 기업은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비자의 신뢰를 중요시 하게 됩니다.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규제기관 및 관료들의 관료적이고 행정편의적 발상 혹은 희망적인 기대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선 공익산업은 진입규제의 결과 독과점적 지위를 가지게 되고 따라서 생산성 향상이나 서비스 개선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속에서 서비스의 개선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있을 때 규제기관의 포획이라고 불리우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합니다.시장경쟁을 완벽하게 제한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시장경쟁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서 무수히 많은 형태와 모니다.
    사회과학| 2009.03.31| 16페이지| 1,000원| 조회(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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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과 한국의 국민성
    1. 국민성의 개념국민성이란 한 국가의 성원에게 공통되는 인성 및 행동양식을 의미한다. 한 사회의 성원은 어느 정도 비슷한 공통적인 경험을 하면서 자란다. 따라서 사회 성원의 성격, 즉 인성에는 상당한 정도의 규칙성이 나타나게 되는데 그 사회의 단위를 국가로 잡았을 때 성원들의 인성 구조를 ‘국민성’이라고 한다.한편 국민성과 비슷한 개념으로 ‘민족성’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언어·인종·문화 등과 같은 기준에 기초하여 다른 집단과 뚜렷이 구분되는 ‘민족’을 단위로 한다는 점에서 국민성과 대별된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와 같이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경우에는 민족성과 국민성이 동의어로 사용될 수 있다.비록 한 사회의 구성원은 각자의 고유한 자신만의 인성을 가지기도 하지만, 그 사회에서 생활한 결과로 인하여 공통의 인성을 형성하게 된다. 즉, 정치·경제·군사·교육제도 등과 같은 전국적으로 적용되는 제도는 비록 사회적 지위와 참여정도에 따라서 다르게 나타나기는 하지만, 각각의 성원의 정신적·심리적인 구조에 구현되어 국민성의 형성의 기초가 된다.2. 영국인의 국민성영국은 정식 국명인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에서 알 수 있듯이 단일국가가 아닌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그리고 북아일랜드 이렇게 4개의 지역으로 구성된 연합국가이다. 이 네 지역의 주민들은 모두 영국인이지만 자신의 지방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잉글랜드인, 웨일즈인, 스코틀랜드인, 북아일랜드인으로 부르며 각각의 고유한 국민성과 전통을 가지고 있다.영국의 국민성 중 하나는 ‘타협주의’이다. 영국은 입헌군주국으로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국가원수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총리를 행정부의 수반으로 내각의 관료들이 나라 전반을 운영해 나간다. 주요 입법기관인 의회를 통과한 모든 법안은 법률로 제정되기 전에 국왕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국왕이 법안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나 18세기 초부터 거부권이 행사된 적은 없다. 이러한 복잡한 이해관계의 절충과 고도의 정치 감각이 요구되는 내각책임제에서 영국의 타협주의를 엿볼 수 있다.그리고 영국인은 이상이나 이론보다는 구체적인 현실감각으로써 삶의 문제를 직시하려는 실제주의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다. 영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실생활에서의 응용과 동떨어진 순수 이론과학이나 순수 예술 방면에서 비교적 뛰어난 업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또한 영국의 정치행태는 성문화된 헌법 대신에 수많은 관습법에 의존하고 있다. 그리고 베이컨, 흄, 스펜서, 밀, 다윈 등 영국의 저명한 사상가와 문필가들이 실제 사회와 유리된 탁상공론보다는 정규적인 직업생활에서 겪는 구체적인 경험의 활용을 통하여 대가의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는 사실 또한 그들의 국민성과 관련하여 우리의 주목을 끈다. 또한 영문학 사상 주요 문인들의 작품들에는 그들이 겪었던 직업 생활을 통한 경험이 잘 묻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통해서도 영국인들의 실제주의적인 특성을 살필 수 있다.물론 영국인들의 실제주의적인 특성은 구체적인 현실감각에 맞아 떨어지는 측면으로 인해현실 세계에 좀 더 관심을 가짐으로써 실제 삶의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영국인의 다른 국민성은 개인주의다. 흔히 성채에 비유될 정도로 타인의 틈입이 용인되지 않는 영국인의 가정생활은 그들의 습성화된 개인주의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국가나 통치이념이 다분히 추상적인 관념의 소산임을 감안한다면 영국인들이 안정된 삶의 보루이자 가족애가 응집된 가정을 중시한다는 것은 그들의 실제주의적인 특성과 표리관계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각 개인의 개성과 사생활을 존중하는 영국의 국민성에는 개인적인 자유의 가치를 존중하는 생활의식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지만 그들이 공동생활에 무관심하다는 것은 아니다.넷째로 영국인의 특성은 보수주의이다. 17세기 창당된 토리당의 후신인 영국 보수당이 19세기 초에 등장한 이래 가장 지속적으로 국민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사실은 영국인들의 보수적인 기질을 잘 말해주고 있다. 영국인들은 변화와 발전에 잘 매료되지 않고 그것을 원용하여 전통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이와 같이 영국인의 보수주의라는 것은 과거에만 얽매이는 것이 아닌 전통과 변화·발전을 함께 생각하는 보수주의이다.영국인의 국민성 다섯 번째는 온건주의이다. 정치사회적인 변란에 처했을 때 극단적인 충돌을 피하고 균형 감각을 잃지 않은 온건한 중용의 도를 취했다는 점에서 프랑스의 경우와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다.영국의 온건주의는 기후와 지형 등의 자연적인 환경에 기인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영국의 기후는 일반적으로 온화한 해양성 기후로 같은 위도에 위치한 스칸디나비아 국가와 비교할 때 상당히 온난한 편이고 멕시코 난류의 영향으로 일년 중 기후의 변화가 완만하고 심한 추위나 더위가 없다. 그리고 지형이 섬나라이면서도 대부분의 국토가 넓은 대륙의 지형처럼 광활한 평지와 낮은 구릉으로 되어있어 영국의 환경과 마찬가지로 영국민들 역시 느긋하고 여유있는 태도를 보인다.여섯 번째로 영국인들은 냉정하게 보일 정도로 감정을 자제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영국인들이 타국민에 비해서 정서적으로 풍부하지 않다거나 감정을 경시한다고 볼 수는 없다.다만 실용성을 중시하고 온건주의 노선을 따른다는 기질적인 특성으로 인해서 격렬한 감정에 휩쓸리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국인이 볼 때에는 영국인들이 쌀쌀맞고 냉정한 듯 보이이지만 영국인들은 감정이 빈약하다고 보기 보다는 감정의 표출이 느리다고 보아야 옳다.일곱 번째 영국의 국민성은 겸양과 유머이다. 영국인들은 적어도 외면상으로는 겸양의 태도를 보이고 자기과시적인 말이나 행동은 무교양의 소치로 간주하므로 영국인들은 자기비하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그리고 외국인들이 영국인의 유머감각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영국적인 유머가 함축하고 있는 자기겸양의 복선 때문이다. 전형적인 영국식 유머는 자신의 결점이나 실수를 흔쾌히 인정하고 상대방의 우월성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탁월한 위치나 고매한 이상까지도 일소에 붙이는 넉넉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다.영국인들은 자신의 실상을 남들에게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고 마치 연극무대에서 그렇게 하듯이 약간 축소 또는 확대시켜서 보여주며 이렇게 변형된 삶은 사실적인 삶과는 한 걸음 비켜선 자리에 위치한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일상생활 속에서부터 연극연습을 하고 있다는 설명을 하는 학자도 있다.마지막으로 영국인의 속물근성 혹은 귀족숭배주의이다. 영국은 아직도 세습귀족들이 있는데 현재 1200여명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현실과 유리된 관념이나 이상을 싫어하는 기존질서의 급격한 변혁을 불신하는 영국인들의 현실주의와 보수주의는 당연히 세속적인 권세와 사회적인 지위를 숭상하는 속물근성과 상통된다 할 것이다.그러나 영국인들의 귀족숭배주의를 생각함에 있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이 생각하는 귀족은 경제적인 소득자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금전적인 고소득에 무관심한 것을 오히려 명예로 생각하는 전통적인 영국 귀족들은 경제적인 실리추구와 근검절약의 생활습관이라는 영국적인 실제주의와 묘하게도 모순되는 현상을 빚고 있는 셈이다.
    인문/어학| 2009.03.31| 3페이지| 1,000원| 조회(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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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국과 한국의 복지정책
    1. 서론사회복지의 변화와 발전의 양상은 그 시대의 사회구조나 사상적 흐름과 맞물린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구조에 따라 특수한 형태나 방법으로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사회복지의 전개과정을 살펴보면 고대사회의 상부상조 활동, 중세사회의 자선사업, 박애활동으로 시작하여 인도주의적 사상의 성장에 따라 발전하였음을 알 수 있다.그 후 빈민에 대한 빈곤의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기보다는 사회에 돌리는 사회연대성의 인식으로 발전하였으며, 다시 자선조직협회의 사회사업 이후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인간은 누구나 천부의 권리를 가진 이상 다 같이 생존할 권리가 있다고 하는 생존권 사상의 발전에 힘입어 더욱 발전해 왔다고 할 수 있다.즉, 오늘날의 사회복지는 인간의 자유와 개인의 자립 속에 건강하고 문화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회정책의 개념으로 발전해 온 것으로 볼 수 있다.영국은 사회복지가 가장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 중의 하나이다. 영국의 사회복지는 수혜대상을 국민 중의 일부계층에 국한하지 않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주의의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영국의 사회복지를 말할 때 요람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사회복지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여기서는 영국의 복지정책과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2. 영국의 복지정책1945년 노동당의 집권과 함께 영국은 복지국가의 개념을 현실정치에 적용시킨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1942년 발표된 베버리지 보고서에 기초한 영국의 복지국가모델은 이후 서유럽을 비롯한 전세계의 많은 국가로 전파되어 갔고, 영국에서는 정당간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까지 대체로 그 기조가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1979년 마가렛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의 출범과 이후 계속된 보수당의 장기 집권을 거치면서 영국의 복지국가모델은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케인즈주의에 기초한 국가개입과 수요중심의 경제모델을 대신하여 보수당 지배하에서는 시장질서를 중시하는 공급중심의 신자유주의가 위세를 떨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영국의 복지국가모델은 신자유주의라는 우파 이데올로기에 의해 급격히 재편되는 과정을 겪어 왔으며 사회복지의 형태 역시 크게 변화하였다.대처정부 이후에도 그동안의 개혁이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평가하여 개혁을 계속해 나가는 방향이었다. 특히 NHS(국가보건서비스)에서 지역의료기관들에 기업경영방식을 도입하여 입원대기시간 단축 등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1998년 5월 출범한 블레어 정부도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사회에 대하여 일정한 몫을 갖고 있는 한편, 의무도 있다’는 개혁입장을 견지하였다. 일방적 시혜중심의 복지가 아니라 개인에게 일할 능력을 갖추도록 하고 일할 기회를 주는 ‘일하는 복지’정책을 추진 중이다. 다만, 보수당 정책이 복지혜택을 받아야 할 계층을 일방적으로 포기해버리는 자유방임정책이었다면, 블레어 정부는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직접 교육을 시켜 일할 기회를 주는 적극적 복지정책을 수행하였다.블레어 정부의 세부개혁 내용은 저소득 근로자의 일할 의욕을 제고하기 위해 시간당 최저임금 인상을 내용으로 하는 ‘최저임금법’을 1998년 개정하였다. 그리고 대처정부 때부터 추진하였던 여성의 노령연금 지급시기는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65세까지 연장하였다. 또한 기타 사회보장 조직 및 전달체계 개선, 사회보장 관리운영비 절감 등을 위한 세부계획을 추진하였다.3. 우리나라의 복지정책지난 30여 년 동안 ‘개발의 신화’에 기초하여 진행된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제일주의 전략은 자원배분의 우선순위를 경제부문의 투자에 두었기 때문에 사회복지부문의 개발은 주변적 차원에서 머문 것이 사실이다. 이와 같이 경제편향적 산업주의의 확산 결과 복지정책은 별로 발전하지 못했다.우리나라 사회복지정책의 등장배경을 살펴보면 신정권의 등장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60년대 초 군사쿠데타 이후 군사정권에 의한 대량의 사회복지정책관련 입법, 80년대 초 신군부정권에 의한 대량 입법, 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등장한 제6공화국에서 실시된 국민연금제도, 전 국민의료보험제도, 최저임금제 등이 그것이다. 이는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을 확보하여 정치적 안정 및 국민적 지지를 도출하기 위한 것으로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형성배경으로 인하여 한국 사회복지정책의 질적 구성이 복지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하고 형식적 외형만을 유지하는 현재의 상태를 초래하였으며, 국민의 참여를 통한 민주성, 제도형태와 내용의 적실성이 견지되지 못하고 독점자본의 계급적 이해와 정치적 음모가 관철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러던 것이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며 복지의 개념이 바뀌었는데 김대중 정부에서 실시된 복지정책들은 경제위기에 대응하기위한 측면이 강했다. ‘생산적 복지’라는 복지이념을 내세운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은 ‘시민권으로서의 복지’라기 보다는 경제위기로 인하여 발생하는 실업과 빈곤에 대처하기 위한 ‘위기관리 정책’의 한 형태였다. 대표적으로 고용보험제도의 확대 적용과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은 경제위기와 그 해결책으로 도입된 신자유주의적 노동시장 정책의 결과로 나타나는 대량실업과 빈곤층 확대에 대한 대응이었다. 경제위기가 사회위기로 전환되는 경우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 원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에 김대중 정부에 복지 확대를 촉구 하였다.반면에 노무현 정부에서는 ‘참여복지’라는 복지이념이 제시되었다.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는 정부의 일방적인 복지급여라는 틀에서 벗어나 복지를 통하여 시민들의 삶을 활성화 시키고 복지수혜자들을 생활의 주체로서 재정립하려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이념은 구체적인 내용으로 현재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복지이념과 그에 걸 맞는 복지정책이 결합될 때에 실질적인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의 ‘참여복지’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선언적인 정책이념이라고 볼 수 있다.4. 결론많은 사람들이 사회복지의 확대가 경제성장을 방해한다고 생각한다. 평등 추구를 목표로 하는 사회복지 정책이나 제도는 근로동기의 약화나 정부의 과도한 개입 등으로 인해 경제적 효율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과도한 경제개발로 노동?환경?분배문제 등의 사회문제들을 야기하였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이러한 사회복지와 경제개발에 대한 대립적인 개념 설정을 상호 보완적이고 상승적인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즉, 가난한 사람을 빈곤에서 벗어나 자립하도록 지원하는 사회복지제도와 프로그램은 사회적 소비가 아니라 개인의 자립과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사회적 투자라는 마인드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인문/어학| 2009.03.31| 3페이지| 1,000원| 조회(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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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로이 전쟁의 그리스 영웅
    아킬레우스아킬레우스는 트로이 전쟁의 발단이 된 결혼의 장본인인 펠레우스와 테티스 여신 사이에서 태어났다. 테티스는 바다의 여신인 네레이스들 중 한명으로 제우스가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그녀와 그 사이에 태어날 아이가 자신의 지위를 찬탈할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그녀를 취하지 못했다. 테티스는 인간인 펠레우스와 결혼하게 되었고 그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한 불화의 여신 ‘에리스’가 황금사과를 던져놓고 간 것이 트로이 전쟁의 불씨가 되었다.테티스는 아킬레우스가 태어나가 그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서 저승의 강 스튁스에 담갔다. 이때 테티스가 발뒤꿈치를 손으로 붙들고 있었기 때문에 물어 젖지 않아 강물의 세례를 받지 못하고, 치명적인 급소로 남고 말았다.자라면서 아킬레우스는 켄타우로스 족의 현자인 케이론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케이론은 아킬레우스에게 빨리 달리는 법과 전쟁의 기술이나 음악, 의술도 가르쳤다.그 후 이킬레우스는 프티아로 돌아가 펠레우스의 궁전에 도망와있던 파트로클로스와 친구가 되고 포에닉스로부터 정치과 외교에 대한 것을 배우게 된다.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기 전 칼카스가 아킬레우스 없이는 트로이가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했는데 전쟁이 발발하자 아들의 운명을 걱정한 테티스는 아킬레우스를 트로이 원정군에 가담하지 못하도록 스퀴로스섬의 뤼코메데스 왕의 딸들 틈에 숨겼는데 원정을 성공시키기 위해서 그의 존재를 필요로 하고 있던 아가멤논이 스퀴로스섬에 오뒤세우스를 보냈다. 방물장수로 변장한 오뒤세우스는 장식품을 늘어놓고, 그 사이에 무기를 섞어 놓았는데 위기를 알리는 나팔소리로 인해 무기를 든 아킬레우스는 테티스의 뜻을 무시하고 원정대에 가담하게 된다.트로이는 성문을 굳게 닫고 싸움에 응하지 않았는데 이렇게 10년째가 되는 어느 날 아폴론 신전의 사제인 크뤼세스가 아가멤논에게 자신의 딸을 돌려달라고 간청했는데 거절당하자 아폴론에게 기도를 올려 아폴론이 그리스군에 화살과 역병으로 공격하였다. 아킬레우스가 아가멤논에게 사제의 딸을 돌려주라고 하자 화가 난 아가멤논은 사위기에 놓이고,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빌려 전투에 나가지만 트로이의 헥토르에게 죽고 무구도 빼앗긴다. 친구의 죽음에 분노한 아킬레우스는 아가멤논과 화해하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새로운 무구를 입고 전투에 나간다. 아킬레우스를 피하기 위해 트로이 병사들은 도망가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헥토르는 도망치지 않고 있다가 막상 그를 보자 도망치다 아테나의 도움을 받은 아킬레우스가 헥토르를 죽인다. 헥토르의 시체를 능욕하며 친구의 넋을 위로하다 트로이의 왕의 통곡의 부탁으로 시체를 인도해 준다.헥토르의 장례식이 끝나고 전투는 10년 전의 소강상태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아마조네스군이 도착하여 여왕인 펜테실에이아를 죽이고 그로부터 얼마 후에는 이디오피아의 멤논왕과 안틸로코스의 시체를 사이에 두고 싸움에서 멤논왕을 죽인다.아킬레우스는 멤논왕을 죽인 후 트로이군을 쫓아서 트로이 성문 가까이에 왔다가 아폴론의 인도를 받은 파리스가 쏜 화살에 발뒤꿈치를 맞고 숨을 거둔다.오뒤세우스오뒤세우스는 헬레네에게 청혼한 사람들 중 한사람으로 헬레네의 아버지인 튄다레오스가 사위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모반을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하자 그는 구혼자들로 하여금 헬레네가 선택한 사람의 권리를 끝까지 지켜주겠다고 맹세하게 하라고 튄다레오스에게 조언하였다. 헬레네가 메넬라오스를 선택하자 튄다레오스는 오뒤세우스에게 조카인 페넬로페를 주었다.트로이 전쟁이 일어나게 되자 헬레네에게 청혼했었던 오뒤세우스는 참전할 마음이 없어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여 출정을 기피하였다. 아가멤논은 팔라메데스와 메넬라오스를 이타케에 보내고 오뒤세우스의 행동을 눈치 챈 팔라메데스에 의해 전쟁에 참가하게 된다.오뒤세우스는 자신을 참전시킨 팔라메데스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가 트로이에 도착했을 때 계략을 써서 죽이게 된다. 그리고 스퀴로스섬에 있던 아킬레우스를 트로이 전쟁에 참전하게 한다.전쟁 중에 아킬레우스가 파리스의 화살에 죽고 장례경기가 끝났을 때 테티스가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상품으로 놓고 떠났다. 그러자 후 오뒤세우스는 거대한 목마를 만들어 그 안에 그리스 군을 숨기고, 트로이 성에 보내 트로이를 함락시킨다.전쟁이 끝난 후 돌아가면서 키코네스인들과 전투를 벌인 후 아폴론의 사제인 마론에게 물을 타지 않은 포도주를 얻는다. 그 후 폭풍을 만나 표류하다가 퀴클롭스들이 사는 시실리 섬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폴뤼페모스의 동굴에 갇히게 된다. 폴뤼페모스가 오뒤세우스의 부하 2명씩 식사로 먹자 오뒤세우스는 포도주를 주면서 자신의 이름을 아무도안이라고 하였다. 폴뤼페모스가 잠이 들자 뾰족하게 깎아놓은 나무로 눈을 찔렀다. 그가 비명을 지르며 퀴클롭스들에게 눈을 찌를 자가 아무도안이라고 하자 제우스가 보낸 병이라며 아버지인 포세이돈에게 기도나 하라고 한다.폴뤼페모스는 동굴입구를 바위로 막아 놓았는데 오뒤세우스는 폴뤼페모스가 기르는 양을 이용해 탈출해 양을 배에 싣고 떠났다.바람의 왕 아이올로스가 사는 아이올리아에서 바람을 넣은 주머니를 받아 고향에 거의 도착했으나 부하들이 주머니를 풀어보아 다시 아이올리아로 가게 되었으나 이번엔 쫓겨났다.그러다가 키르케의 섬에서 헤르메스의 도움으로 짐승이 되지 않고 1년간 같이 살았으며 키르케의 도움으로 저승입구에 가서 테이레시아스의 영혼의 조언을 받고 키르케에게서 난관극복방법을 얻고 세이렌의 유혹과 스퀼라의 공격을 피할 수 있었다.그 후 트리나키아 섬에서 헬리오스의 소들을 먹지말라고 하였는데 배고픔에 지친 부하들이 먹어 버렸다. 다시 출항하자 헬리오스의 부탁으로 제우스가 폭풍을 보내어 표류하여 오귀기아 섬에 도착하여 칼륍소와 7년을 살았는데 애처롭게 생각한 신들이 회의를 열어 뗏목에 태워 떠나보내도록 한다. 폴뤼페모스의 일로 포세이돈이 폭풍을 몰아쳐 뗏목을 부숴버리자 이노가 변해 신이 된 레우코테아의 도움으로 파이아케스인들이 사는 섬에 상륙하여 그들의 도움을 받아 고향에 돌아가 아내 페넬로페와 아버지, 아들과 감동의 해후를 하였다.메넬라오스메넬라오스는 아트레우스의 아들이며 뮈케네의 왕 아가멤논의 동생으로 많은 구혼자들 중에서 튄다레오스가 걱에 참가하기 위해 크레타로 떠나자 파리스는 메넬라오스의 보물과 헬레네와 함께 트로이로 간다.돌아온 메넬라오스는 트로이로 가서 헬레네와 보물의 반환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하자 아가멤논과 함께 트로이 원정군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헬레네의 구혼자들에게 맹세를 상기시키고 군대를 파견할 것을 요청하였다.트로이 군과의 싸움에서 파리스가 선두에 나와 누구든지 일대일로 결투를 하자고 도전하자 메넬라오스가 반기면서 나섰다. 그를 본 파리스는 겁을 먹고 트로이 군의 무리 속으로 들어가자 헥토르의 꾸짖음으로 싸움의 의사를 밝히고 헬레네와 보물을 건다고 하였다. 이 결투에서 메넬라오스는 파리스를 죽이려고 하였으나 아프로디테가 파리스를 가로채어 그의 집에 데려다 놓았다.그 후 아킬레우스, 아이아스가 죽은 뒤 그리스 군이 절망에 빠져있을 무렵 오뒤세우스가 거대한 목마를 만들기로 제안하자 목마의 뱃속에 들어갈 사람들로 오뒤세우스와 메넬라오스를 비롯해 50명의 군인을 선발하였다.목마를 들여 놓은 후 트로이 사람들은 온종일 잔치를 벌이고 저녁이 되자 모두 술에 취해서 골아 떨어졌다. 시논이 목마에 신호를 보내자 목마의 배에서 그리스 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리하여 트로이는 함락되었다.네스토르와 디오메데스와 함께 귀환하던 메넬라오스가 아테네의 수니온곶 부근까지 왔을 때 아폴론이 메넬아오스의 배의 키잡이 프론티스를 활로 쏘아 죽여 그를 장사지내고 말레아곶 부근에 이르자 이번에 제우스가 폭풍을 일으켜 함대는 뿔뿔이 흩어지고 메넬라오스는 이집트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메넬라오스는 진짜 헬레네를 만났다. 파리스가 데려간 헬레네는 헤라가 대기로 만든 가짜고 진짜 헬레네는 제우스의 지시로 헤르메스가 이집트로 데려다 놓은 것이다.진짜 헬레네를 만난 메넬라오스는 이집트에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7년 동안 많은 재산을 모으고 파로스 섬에 살고 있는 프로테우스를 붙잡아 집에 돌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고 그의 조언에 따라 제물을 바친 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로도스 섬에 들들은 그녀를 죽이고 공격을 중지하였다.메넬라오스가 스파르타로 가는 도중 뮈케네에 들렀을 때는 아가멤논의 아들 오레스테스가 아이기스토스와 클뤼타이메스트라를 죽인 직후였다. 메넬라오스는 그들의 장례식에 참석하였다. 그 때 오레스테스와 엘렉트라가 그에게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도움을 주기를 거절하였다. 그리고 스파르타에 귀환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딸인 헤르메오네를 네오프톨레모스와 결혼 시켰다.아이아스아이아스는 살라미스의 왕 텔라몬의 아들로 텔라몬의 친구이기도 했던 헤라클레스가 ‘독수리(아이에토스)’에서 따온 아이아스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아이아스는 거대한 바위를 조약돌처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만큼 힘이 세고 몸집이 컸다. 그의 창은 돛대로 만들어졌으며 8자형 방패는 웬만한 탑 정도의 크기였다고 한다. 흉갑도 대지 않고 긴 다리로 전장을 누비고 다니는 아이아스의 용맹스러운 모습은 군신 아레스로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고 한다. 헬레네에게 청혼했던 사람들 중 한 명으로 트로이 전쟁에 참전한다.트로이와의 싸움 중 날이 저물자 아테나와 아폴론이 그날의 전투를 종결시킬 생각을 하고 헥토르로 하여금 그리스인들 중의 한 사람에게 결투를 신청하도록 만들었다. 그러자 메넬라오스가 나섰으나 메넬라오스가 불리하다고 생각한 아가멤논이 만류하고 제비뽑기로 아이아스를 선출했다.아이아스와 헥토르의 일대일 대결이 한참 격렬히 이어졌으나 양 진영에서 싸움을 중지시켰다. 그 둘은 서로에게 경의를 표하며 선물을 주고 받았는데 헥토르는 은못을 박은 자기의 칼을 칼집과 함께 건네주었고 아이아스는 자줏빛 찬란한 혁대를 주었다.파트로클로스가 헥토르와의 싸움에서 죽자 트로이인들이 그 시체를 끍고 가자 그리스인들 중에서 아킬레우스 다음으로 풍채가 뛰어난 아이아스가 트로이인들의 대열 속으로 뛰어들어 그들을 쉽게 쫓아 버렸다.그리고 트로이가 우세하게 되자 아이아스는 안틸로코스를 시켜 아킬레우스에게 파트로클로스의 죽음을 알리도록 했다.아킬레우스가 아폴론이 인도한 파리스의 화살로 인해 죽자 그반했다.
    인문/어학| 2007.10.15| 5페이지| 1,000원| 조회(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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