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nch National Library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 (BNF) 프랑스 국립 도서관_ Dominique Perrault 도미니크 페로1. 위치 및 규모ProjectPublic areas 59 070 m², 3 590 readers: public rooms for reading, 1556 places; rooms for research: 2034 places; reception and public services: 23 000 m²; lecture halls 3 000 m2; storage rooms: 71 000 m² including 26 000 m2 in towers (about 400 km of shelves, 20 Million books).Administration: 36 000 m² including 16 000 m2 in towers.Technical spaces: 35 000 m².Underground parking for 700 cars: 20 500 m².Garden and public base.Descriptionaward :Silver medal of urbanism, Paris 1990Mies Van der Rohe Pavilion Award, Barcelona 1997location : Quai Francois Mauriac, 75013 Pariscompetition : August 1989start of conceptual design : August 1989construction start : March 1992completion : April 1995site area : 65 300 m2built-up area : 365 178 m2landscape setting up : 10 782 m2 250 treesclient : French Ministry of Culture, Secretariat d’Etat aux Grands Travaux, Etablissement Public de la 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engineers :Perrault Associes, Paris : architectural engineeringSechaud & Bossuyt, Paris : structureHGM Guy Huguet SA, Lyon : centralized technical managementSyseca : safety security TelecomTechnip Seri Construction, Paris : fluidsPieffet-Corbin-Tomasina, Paris : economistsA.C.V., Paris : acousticsSauveterre : agronomicsEric Jacobsen, Paris : agronomic engineer2. 건축적 의도건물이 아닌 장소로서지금까지 완성되어 있는 프랑스 대통령에 의한의 대부분은 부지나 역사, 요컨대 유명한 장소에 밀접하게 관계하고 있다. 반면, 이은 파리의 동단, 세느 강 하안에 접한 세장한 공장 철거지에 건설되었다. 이것은 또한 파리 13구의 전 구획에 걸쳐 이루어진 재개발의 출발점임을 나타내고 있다.파리의 광장으로서 그리고 파리의 도서관으로서시작의 장소로서, 파리 동단의 참고가 되는 듯함 장소, 그리고 새느 강을 따라 아무것도 없는 공간적 시퀀스의 일부분이 되는 듯한 장소, 그것은 콩코드 광장이나 샴드 마르즈(Champ de mars), 앙발리드(Invalldes)와 같은 장소이다. 이와 같이 세느 강과 인접한 부지는 장소의 활성화라는 것과 함께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되고 있다.상징적인 장소로서4모서리에 세워진 4개의 타워는 펼쳐진 책이 서로 마주보고 있는 듯한 모습이지만 그것은 국립 도서관의 상징적인 장소를 명확히 하고 있다. 그것은 확실히 신화적인 장소이며 4모서리를 정확하게 배치하는 것으로 도시 스케일에 대해 그 존재감과 아이덴티라고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도시의 경계 표지는 “책”에 대한 생각을 벌전 시킨 것이다. 타워는 다목적으로 사용되는데 그 역할은 학습이나 지식의 집적이므로 결코 완성이라고 할 수 없고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축적되어 가는 것이다.그 밖에도 보완적인 은유가 생각난다. 그것은 세지 못할 정도의 선반을 지닌 책장, 또는 사일로, 거대한 선반 혹은 수직으로 늘어나 있는 미로이다.이러한 명백한 이미지가 이러한 건축물의 강렬한 아이덴티티를 나타내고 있다.광장의 인스톨레이션은 귀중한 존재로 자유로운 가능성이 존재하는 공간이라는 개념을 지지한다. 또한 타워가 이러한 귀중한 광장이 문화적으로 자리 매김 되어 고유성을 띄게 되는 것을 조장하고 있다.공공의 장소는 직접적인 동시에 자연스럽게 신성한 기관과 대로를 걷는 인간과의 물리적인 접점을 만들어 낸다.이 프로젝트에 있어 선큰 가든은 온 도시의 떠들썩함이나 번거로움으로부터 떨어진 조용한 장소를 제공한다. 수도원의 복도와 같이 침착하고 정적인 공간에 의해 묵상하는 것 또는 지적인 노력의 경실을 맺게 할 수 있을 것이다.3. 건축 공간 분석책을 반쯤 펴서 세운 모양의 타워가 양 사각형의 네 사이드에 세워지고 그 사이에 정원이 이루어져 건물 안의 숲이라는 새로운 자연 친화적인 모더니티가 생겨났다. 숲을 중심으로 하여 사면으로 설계된 타워 하단 부분의 열람실은 유리로 구성되어 책을 읽고 학습을 하는 동안 자연의 휴식을 만끽하도록 설계하였다. 이는 도미니크 페로의 자연건축 철학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줄 수 있는 열쇠와도 같다. 층층이 내려가는 하단 부분의 열람실에서 책을 찾아 주문하면 고속 서치 머신이 네 개의 타워에 층층이 내려가는 하단 부분의 열람실에서 책을 찾아 주문하면 고속 서치 머신이 네 개의 타워 층층이 저장된 책들을 자동으로 빼 온다.책들은 오랜 보관을 위해 기계 안에서 빛이 차단된 책꽂이에 보관되며 온도와 빛의 양을 완벽하게 조절하기 위해 건물의 유리창에는 나무로 된 블라인드를 설치했다. 당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건축가를 택한 프랑소와 미테랑은 많은 이들의 우려를 샀으나 그 젊은이를 선택한 그의 모험적인 판단이 틀리지 않았었음을 오랜 시간에 걸쳐 사람들을 감동시킴으로써 증명했다.
300년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집한국의 명가 명택 _ 강릉 선교장(船橋莊)2004792001 고 아 라< 仙風이 깃든 한국 최고의 장원 >지정번호 중요민속자료 제5호지정연도 1967년 4월 18일소 장 이강륭소 재 지 강원 강릉시 운정동 431시 대 조선시대종 류 고가(古家)규 모 3만평. 건물 10동에 총 120여 칸.큰 사랑채인 열화당, 작은 사랑채, 행랑채, 연지당, 동별당, 안채, 안사랑채,활래정, 서별당, 정원과 연못 등주요특징 민간주택으로는 처음으로 국가지정 문화재로 선정된 고택. 한국의 선풍(仙風)과 풍수사상이 집안 곳곳에 깊숙이 밴 선교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장원.1) 선교장의 의미집의 명칭도 다른 집과는 달리 ‘장(莊)’자가 들어가 있다. 장은 장원(莊園)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선교장은 일반 주택이 아니라 장원임을 표방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서울에도 이화장, 혜화장, 경교장과 같은 장 자 이름을 가진 저택이 몇몇 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름뿐이었지 실질적인 규모에서 장원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장 자 이름에 걸맞은 집은 강릉의 선교장이라고 생각된다.2) 선교장의 기원선교장과 족제비 사건조선조 효령대군의 11세손인 가선대부 이내번(李乃蕃)은 충주에서 살다가 가세가 기울자 어머니(안동 권씨)와 함께 외가 근처인 강릉 경포대 쪽에 옮겨와 살았다. 어느 정도 재산이 불어나면서 좀 더 넓은 집터를 물색하던 중, 한 떼의 족제비가 나타나 일렬로 무리를 지어 서북쪽으로 이동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이내번이 그 족제비들을 따라가 보니 현재의 선교장 터 부근 숲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이를 계기로 이내번은 이곳에다 집터를 잡았으므로 선교장은 족제비와 인연이 있다.집터를 잡을 때 동물을 이용하는 경우는 다른 곳에서도 발견된다. 경북 영양 일월산 아래의 호은종택(조지훈 생가)은 매를 날려 잡은 터라고 전해지고 있으며, 오리를 날려 잡은 절터도 몇 군데 있다.노련한 풍수가는 동물들이 지닌 감각도 중요한 정보로 이용한다. 아마도 족제비 뒤를 따라간 이내번은 이러한 이치를 터득한 인물일 것으로 유추된다.선교장의 전체 지세를 살펴보자. 대관령에서 동해 쪽으로 내려온 산세(山勢)의 한 가닥이 오죽헌 자리를 만들고 거기서 다시 동북쪽으로 흘러가 시루봉(甑峰)으로 솟았다. 시루봉에서 일차 뭉친 맥은 경포대 방향으로 올라가면서 여러 개의 자그마한 내청룡과 내백호를 분화(分化)해 놓고 있다.이 자그마한 내청룡과 내백호는 흡사 알파벳의 유(U)자 모양 같다. 유자 모양의 산세는 그 가운데에 들어서면 기운이 아늑해서 편안하게 느껴진다. 시루봉에서 삼국시대의 고찰 월인사(月印寺) 터까지 약 4km 구간에 걸쳐 이러한 유자 모양의 집터가 줄잡아 10여 개 이상 자리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산세도 200m 내외로 그리 높지 않아서 위압감을 주지 않고, 주변에 날카롭게 솟은 암산도 보이지 않아서 강렬한 살기도 눈에 띄지 않는다. 문사(文士)들이 선호할 만한 터임이 분명하다. 시루봉에서 약 2.5km 거리에 위치한 선교장 터도 바로 그러한 유(U)자 모양 집터 가운데 하나다. 선교장 터에 들어서면 곧바로 느껴지는 아늑함은 유자 모양, 즉 부드러운 청룡 백호가 활처럼 둥그렇게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여러 가지 이유로 쪽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이곳까지 왔고 뒤쪽에 그리 높지 않은 시루봉 줄기가 둘려 있고 앞으로는 얕은 내가 흐르는 명당자리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그래서 이곳에 새집을 짓고 이사했는데 그 뒤로 가세가 번창하여 여러 대를 거치면서 만석꾼이 부자가 되었으며 많은 집들이 지어져서 이와 같은 규모가 되었다.3) 선교장의 각 채의 특징■ 활래정행랑채 바깥 마당에 조성된 연못과 그 연못 속에 네 개의 돌기둥을 내리고 서있는 활래정(活來亭)이다. 주자의 시 위유원활수래(爲有源活水來)에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 활래정은 손님 접대를 위한 다실까지 갖춘 마루와 온돌방이 물위에 떠 있어서 시원한 정자의 멋을 한껏 뽐내고 있다.■ 행랑채일자형으로 길게 늘어선 행랑채는 23칸 방과 부엌, 곳간, 마굿간으로 이루어 졌는데 현재 각 방은 민속유물을 전시하는 전시방으로 활용되고 있다. 이 연못을 지나 본채쪽으로 들어가면 바깥 행랑이 길게 늘어서 있고 행랑채 중간에 솟을 대문이 있는데 이 대문에는 세로로 선교장(船橋莊)이라고 쓴 작은 현판과 가로로 선교유교(仙橋幽居)라고 쓴 큰 현판 두개가 걸려 있다.■ 열화당솟을 대문을 들어서면 동쪽으로 안채, 서쪽으로 사랑채가 있는데 사랑채에 걸인 열화당(悅話堂)이라는 현판이 또한 눈길을 끈다.이내번의 후손으로 안빈낙도(安貧樂道)를 신조로 삼았던 처사 이후가 순조 15년(1815)에 이 사랑채를 짓고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나오는 "세상 일은 잊어버리자, 어찌 다시 벼슬을 구하랴, 친척의 정겨운 이야기를 즐기며, 거문고와 책을 벗하여 온갖 시름을 잊어버리자." (世與我而相遺, 復駕言兮焉求, 悅親戚之情話, 樂琴書以消憂) 라는 시구처럼 형제, 친척들이 모여 즐겁게 담소하는 장소로 썼다고 한다.돌계단 위에 높직이 올라선 이 열화당은 보기에도 시원하고 처마가 높아서 별도의 차양을 달았는데 전통양식을 약간 벗어 난 듯 아마도 개화기의 새로운 멋을 도입한 듯하다.■ 안 채현재 이 집 주인이 살고 있는 안채는 행랑의 동쪽에 있는 평 대문으로 들어가는데 안방, 부엌, 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되었고 상당히 넓은 부엌이 대가족을 거느렸던 살임 규모를 보여 준다.■ 동별당원래 동별당과 서별당이 있었는데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 위치하여 서재와 서고로 쓰였다는 서별당은 현재 남아 있지 않고, 안채의 부엌과 'ㄱ'자형으로 연결되어 이 집 주인이 가족과 함께 생활했다는 동별당만 남아 있어서 대가족 제도 하에서 부부만의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던 다감한 모습을 살피게 한다.4) 선교장의 공간 분석? 주택의 일탈선교장은 기능적으로 분류했을 때 분명 주거 건축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전통 주거의 형태와 비교한다면 일탈에 가까운 예외적인 건축이다. 선교장의 대문간에 들어서면, 궁궐에서나 봤음직한 긴 행랑채가 제일 먼저 손님을 맞아준다.막상 집 안으로 들어가려 하면 길게 나열된 행랑채 사이로 난 솟을대문과 평대문이 찾아온 방문객으로 하여금 어느 문으로 들어가야 할지를 선택하게 한다. 일반적인 주택이 하나의 대문을 가진데 반해, 선교장에는 두 개의 문이 나 있다.열화당의 전면에 덧붙여진 서구적인 차양 또한 이채롭다. 선교장에 다다르기 전 시선을 사로잡는 정자(활래정)까지 이 집 영역의 확장임을 알게 될 때에야 비로소 이 저택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주거건축이 집 주인의 성품과 그 집이 지어진 지역적인 성격까지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선교장의 자유롭고 파격에 가까운 공간구조에선 손님맞이를 즐겨하던 집 주인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하나의 공간, 두 개의 변주곡서남향 배치의 선교장은 처음 지어질 당시부터 현재의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다. 처음엔 대가족을 위한 주거로 건축돼졌지만, 후에 손님들을 위한 공간이 필요해짐에 따라 지금의 형태로 증축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선교장은 열화당을 포함한 사랑채 영역, 연지당과 서별당 영역, 안채와 동별당 영역 등 크게 3개 영역으로 나뉜다. 가족을 위한 공간과 이 집을 방문하는 방문객을 위한 공간이 중첩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이 때문인지 두 개의 서로 다른 기능을 하나의 공간 안에 담기 위한 독특한 건축적 장치들이 등장했다. 좀 더 은밀한 가족간의 교류를 위한 공간으로 안채의 동남쪽으로 동별당이 마련 되었고, 방문객의 접대를 위한 공간으로 사랑채인 열화당과 정자인 화래정이 마련되었다. 객을 위한 공간인 사랑채와 가족을 위한 안채와 동별당 사이에는 서별당 영역이 삽입되어 있다.서재와 아이들의 교육 장소 역할을 했던 서별당은 부속채인 연지당과 하나의 영역을 이루면서 가족공간과 손님을 위한 외부 공간 사이의 완충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단 차이를 둔 연지당(부속채)은 안채 영역과 사랑채 영역을 차단하는 방패막이가 되었고, 서별당은 마루를 통해서 안채 영역과 간접적인 매개 공간의 역할을 했다.각각의 독립된 영역들은 진입부에 위치한 줄행랑채에 의해 하나의 군으로 묶인다. 행랑채에는 방문객을 위한 사랑채 영역과 가족을 위한 안채 영역을 분리하기 위해 자연스레 독립된 두 개의 문이 생겨났다.? 독립 & 집합사랑채 영역의 열화당은 4칸×3칸의 크기로 일자형 평면을 이룬다. 단일 건물로, 대청, 사랑방, 침방, 누마루로 이루어져 있다. 열화당 전면 마당은 일반적인 주택의 ‘사랑마당’과는 사뭇 그 분위기가 다르다.별채에 따린 방문객들과 하인들의 북적거림을 수용할 만큼의 넉넉함을 자랑한다. 전면 튓마루 앞의 햇볕을 막기 위한 이국ㄱ적인 차양의 형태 또한 열화당의 형태를 독특하게 만들고 있다.
French National Library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 (BNF) 프랑스 국립 도서관_ Dominique Perrault 도미니크 페로1. BIOGRAPHY자연과의 끝없는 대화를 시도하는 건축가_ 도미니크 페로1953 Born in Clermont-Ferrand, France.1978 Diploma in architecture (Ecole Nationale Superieure des Beaux-Arts de Paris)1979 Higher diploma in town planning (Ecole superieure des Ponts et Chaussee, Paris)1980 Postgraduate degree in history (Ecole des Hautes Etudes en Sciences Sociales, Paris)1981 Opening of his office in Paris and first built work: factory Someloir in Chateaudun, France.1983 Winner of the Programme for New Architecture (PAN XII)1984 First notable project: ESIEE (academy for engineers of electronics and electrical engineering), Marne-la-Vallee, France.1989 Winner of the international competition for the French National Library in Paris.1990 Completion of the Hotel Industriel Jean-Baptiste Berlier in Paris. As its first tenant Dominique Perrault is setting up his office to build the National Library. The building receives the “Equeron for the Velodrome and Olympic Swimming Pool in Berlin, Germany. Opening of an office in Berlin.1993 Great National Prize of Architecture, France.1995 Inauguration of the French National Library by Francois Mitterrand on March 23.1996 Winner of the international competition for the town hall of Innsbruck in Austria.1997 Mies van der Rohe Pavilion Award for the French National Library.First direct order: factory Aplix in Cellier-sur-Loire, France, which receives the “World Architecture Award” in Hong Kong, first prize for best industrial building in 2001.2000 Opening of an office in Luxembourg for the extension of the Court of Justice of the European Communities in Luxembourg.2002 Winner of the international competition for the New Olympic Tennis and Multisports Center, Madrid, Spain.Opening of the town hall of Innsbruck and Winner of the competition for the urban planning of Donau-City centre in Vienna in Austria.2003 Winner of the international competition for the New Building of thmpetition for the Ewha Womans University Campus Centre in Seoul in Korea.2006 Creation of DPA Spain.1953 -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태생.1978 - 파리에서 건축 학위를 받음.1979 - 국립 토목대학에서 도시계획을 수료.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역사학을 전공1980 - 박사 학위를 받은 바 있음. 이듬 해 그는 파리에 첫 번째 사무실을 열며 본격적인 활동.1989 - 프랑스 국립도서관 건축을 위한 국제 공모전에 당선.1992 - (이미 자신의 두 번째 사무소을 오픈한) 베를린에서 올림픽 자전거 경기장 및 수영 장의 국제 공모에서 우승. 이 두 개의 프로젝트는 그의 명성을 확고히 다지는 계기.1996 - 룩셈부르크에 있는 EC의 사법재판소 공모전에서 우승.2000 - 룩셈부르크에 세 번째 사무실을 오픈.2002 - 바르셀로나와 볼티모어에 사무실을 연달아 오픈하며 활동 무대를 넓힘.2003 - 6월, 러시아 상트페테스부르크에 소재한 마린스키 극장(Mariinsky Theatre)의 증 축 공모에 당선.2004 - 서울 이화여대 교정 센터를 위해 국제 경쟁의 우승자.2006 - DPA 스페인의 건설도미니크 페로의 작업은 굉장히 다양하여, 신축 건물은 물론 다수의 리노베이션 프로젝트까지도 포함한다. 그의 작업은 대규모의 문화, 스포츠 프로젝트에서, 소규모의 교외 지역 주택 혹은 고급 주택가의 개인 저택 등에 이른다. 강연 활동도 활발히 해오고 있는 그는 수많은 세미나에 참여해왔으며, 각종 시상의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했다. 더불어 바르셀로나, 브뤼셀, 취리히의 대학에서 강의를 맡기도 했다.2. AWARDS2006 "New Alpine Architecture" Award 2006, for the M-Preis supermarket in Zirl.2006 Dedalo - Minosse International Prize, special award for the town hall in Innsbnpreis, Austria (architect/client) for the M-Preis supermarket in Wattens II.2003 BTV Bauherrenpreis, Austria (architect/client) for the town hall in Innsbruck.2002 "World Architecture Award", first prize for best public building, for the Media Library in Venissieux.2001 "World Architecture Award", first prize for best industrial building, for the APLIX factory.1999 Deutscher Preis fur Architektur, 2nd prize, for the Velodrome and Olympic Swimming Pool in Berlin.1997 Mies van der Rohe Award for the French National Library.1993 Great National Prize of Architecture.1992 Constructa Preis' 92 : European prize for the Hotel Industriel Berlier.1990 “Equerre d’argent” of the Moniteur magazine and First prize AMO (architect/client) for the Hotel Industriel Berlier.1990 Silver medal for town planning for the French National Library.1984 First prize AMO (architect/client), for the tool plant Someloir.1983 Winner of the 'Album of Young Architecture' and of the 'Programme for New Architecture' (PA 프랑스 건축 아카데미 회원, 독일 건축가 협회의 명예회원이자 영국 왕립 건축가 회의의 특별 명예 회원이며, 1998년 11월부터 2001년 2월까지는 프랑스 건축가 회의의 회장을 맡기도 했다. 도미니크 페로는 현재 바르셀로나 시의 건축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3. 도미니크 페로의 건축적 사고? 주변의 환경과 건축 공간의 조화- 건축은 자연과 같이 반응하고 계절에 따라 변화하며 그 자체를 상황에 맞게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개방감과 폐쇄감을 활용하여 내 ,외부공간의 극적으로 구성. 자연과 인공간의 간극을 최소화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재료자체가 지닌 본질과 잠재성을 활용하여 주변의 맥락과 연관지어 단순성, 반복성, 순수성, 폐쇄성 등의 기본원리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완성한다.? 형태가 기능을 따르기도 하고 기능이 형태를 따르기도 한다. 프로세스과정에서 형태와 기능의 관계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한다. 그리고 건축과 사람과의 관계를 사람과의 관계 중요시한다.? 근대건축의 한계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혼돈의 흐름 속에서 건축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추구한다.“나는 언제나 건축이 그 자체를 물리적인 힘, 지형적인 배치와 요소들간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긴장 속으로 몰아넣는 선언적인 상태를 모색해 왔다. 나는 위반의 행위가 건축을 위한 특질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건축 속에서 활동적이고 과격한 성격을 발견하곤 한다. 이것이 요소들이 보여주는 최초의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명시적 선언인 것이다. 공개적으로 복잡성을 주장하는 것은 역설적인 것 같다.그리고 그것은 곧 단순성에 대한 긍정이기도 하다. 건축을 통해서 우리는 건축의 실제 작업을 지배하게 될 그 어떤 권위의 원칙으로부터 거부될 지라도 떳떳이 주장할 수 있는 또 다른 체제를 얻게 되는 것이다. 세계는 예전의 그 어느 때보다도 훨씬 더 구체적인 영역이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 어떤 것도 미리 잘 짜인 상태의 이야기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그 스스로를 실현하고 스스로를 효과적인 것으로 생기 있게 만들어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