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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rio botta - Ligornetto house
    [작가연구]드로잉으로부터...과 목 : 현 대 건 축 사Marrio Botta”나는 드로잉을 할 때 연필이 내 작품 속에 숨어있는 아이디어와 느낌, 그리고 메시지를 적절하게 조사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진다. 이러한 작업을 발전시켜 나가는 과정을 통해 문제를 표현하는 가장 빠른 길을 발견하곤 한다... 건축적 아이디어에 대한 해석과 연구과정은 드로잉을 말로써 표현하려고 할 때보다 제도판위에서 연필의 움직임을 조사할 때 훨씬 쉽고 자연스럽다.“ - Mario Botta -건축과 예술그의 건축적 특성은 흔히 루이스 칸(Louis Kahn)이나 르 코르뷔제의 그것과 비교된다. 빛의 처리와 기하학의 추구라는 점에서도 그러하지만 보다 설득력이 있는 설명으로는 디자인과 그 디자인의 바탕을 이룬 이론적 해석의 일치가 아닐까 싶다. 그의 이 같은 일치화 과정은 대개 드로잉을 통해 구현된다. 그는 드로잉에 대해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자신의 직업을 사회에 대한 봉사로 여기는 사람인 Mario Botta는 인간 중심의 건축가이다. 각종 수상 작품을 비롯하여 강렬하고 때론 논쟁을 야기하는 그의 건축은 사회성에 기반을 두고 있다.Mario Botta의 작품은 아주 다양하여 도서관, 미술관, 교회, 주택 등의 프로젝트와 공모전 참가 작품, 실제 지어진 건축물이 있다. 이들은 그의 언어와 설계과정이 어떻게 발전하였는지를 잘 보여준다.Mario Botta는 현대건축에 대해서, 그것이 현재 삶의 실재성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투명하고 가식적이지 않고, 단호하고, 용기 있고, 아주 타당한 것이라고 분명히 말한다. 또한 그는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게 모든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삶이 바뀜에 따라 건축도 변화하는 그런 건축적 디자인 방법론을 제시하였다.Botta의 건축을 보면 직선이나 곡선, 절단선과 같은 기하학적 탐구, 그리고 그 건축의 이미지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이, 일상생활에서 비롯된 구조, 재료, 공간성의 자연성, 야생적인 힘이라는 사실과 관련된다.- 연혁1943년에 스위스의 멘드리시오(Mendrisio)에서 태어난 마리오 보타. 15살이 되던 해에는 학교를 그만두고 18살이 되던 해까지 후일 그의 건축 작업 대부분의 대상지가 되는 루가노(Lugano)에 있는 건축회사에서 제도사로 일했다.1961년부터 4년간 밀라노의 예술학교에 건축수업을 받기 위해 다니게 된다.1965년부터는 베니스에 있는 그 꼬르뷔지에 사무소에서 일하며 카를로 스까르파(Carlo Scarpa)와 지우제페 마짜리올(Mazzariol)등의 문하에서 건축의 수련도를 성숙하게 키우기도 하였다.1969년에 베니스에서 루이스 칸 전시회를 공동기획한 뒤 루가노로 가서 자신의 사무소를 개설하였다.1971년에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는 카데나쪼(Cadenazzo)의 단독주택을 설계한 뒤 1990년대 초기까지 주택 이외의 건축유형은 설계하지 않았다.Single-family housein Ligornetto, Ticino, Switzerland선정 동기이 집의 관련 자료 중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다. 이집의 주인은 Giuseppina and Danilo Bianchi 씨로 이 집에 25년 넘게 살고 있는데 이 집에 사는 내내 생활의 기쁨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25년 동안 기쁨을 주는 집을 지을 수 있는 걸까? 외관상으로 그저 단순한 사각박스 덩어리로 보였다. Mario Botta 씨는 어떻게 설계를 한걸까? 주변의 건물들과는 어울릴까? 외관이 너무 화려하진 않은가? 이런 생각들의 답을 찾고자 이 주택을 선택하게 되었다.개요이 집은 Ticino, Switzerland 에 위치해 있으며 대지 면적이 1'800 m²이며 건물의부피면적은 900 m³이다1975-1976년동안 지어졌으며. 외부는 벽돌로 이루어져 있고 내부는 노출콘크리트에 페인트를 칠해서 마감되어있다. 이 집은 1층부터 지상 3층으로 되어있다. 1975년에 공사해서 1976년에 완공되었다.건물 읽기집은 상당히 좁고 기다란 모양의 큰 요철이 없는 단순한 육면체이다. 이렇듯 단일한 모양인걸 보면 작가는 아마 이 집의 매스, 볼륨을 정해놓고 실을 안에서 짜 맞추어 완성시켰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모양을 잡게 되었을까?그가 이 집을 설계하면서 그린 것이다. 이 드로잉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림에서 전면으로는 많은 건물들이 늘어서있는 반면에 뒤쪽으로는 너른 들판이 펼쳐져있다. 그림의 3분의 2가 텅 비어 있는 이 그림은 전원과 도시 사이의 경계벽이라는 이 집의 주요 개념을 담은 스케치이다. 집 자체가 마치 경계벽처럼 좁고 길게 생겨서 도시의 경계를 형성하도록. 이 집의 뒤쪽으로는 집이 더 이상 지어지지 않기를 바란 게 아닐까 싶다.이러한 경관을 만드는 것을 원했던 것이다. 이 집 하나를 세움으로써 도시에서 경계벽이라는 개념을 실현시킨 것이다. 이러한 개념 때문에 길고 좁아진 집 구조를 가지게 되었는데도 비앙키씨는 기쁨을 선물 받았다고 하니 내부 구조는 어떻게 되어있을 지 궁금해졌다.1층 평면도17.차고 1.현관 2.현관홀 3.보일러실 4.창고 5.유류저장고1층 평면도를 보면 차고에 주차한 뒤 좁은 복도를 통과해 현관으로 오도록 동선계획이 되어있다. 이 복도는 현관으로 들어오기 위한 충분한 전실이 되어줄 것이다. 게다가 자그마한 창으로 어두운 복도를 통과해 앞뒤로 트인 현관으로 올 때 그 공간감은 저 복도가 없을 때 보다 더 극대화 될 것이다. 이 복도가 있음으로 인해 집 안으로 들어가는 동선은 상당히 길어졌지만 이 복도가 없어서 차고에서 바로 현관이 보이는 것 보다 훨씬 더 현관의 성격을 유지시켜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설계를 함에 있어서 동선을 길게 만든다는 것은 다른 전제조건을 빼고 볼때 일단은 비효율 적인 것이다. 이러한 것을 삽입함에 있어 다른 것의 성격을 더 살려주면서 좋은 공간감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에 역시 건축가가 설계한 집이구나 싶었다.1층은 현관과 보일러실, 창고 등의 집이 필요로 하는 설비에 관련된 실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것을 보아 1층, 차고가 있고 땅에 접해있어 상대적으로 접근이 쉬운 곳 보다 윗층에 실을 배치함으로써 위 아래로 용도가 명확히 구분된다.2층 평면도6.거실 7.식당 8.테라스 9.부엌 10.샤워실 11. 침실외부에서 보기에는 상당히 닫혀있는 집이었건만 2층 평면도를 보고 있노라면 참 많이 개방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테라스 창이 밖에서 보기에는 한 면만 보였지만 내부에서 ㄱ자 모양이라 내부에서는 상대적으로 많이 열려있는 것 같다. 외부에서는 감싸진 듯 보이면서 내부에서는 열려있는 것처럼 느끼게 한다. 참 절묘하다.온 가족들이 사용해 상대적으로 사용 빈도가 높은 거실과 식당이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합리적인 구성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아이들 방의 모양은 너무 길고 좁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실제 2.4m 폭밖에 되지 않는다. 이러한 방은 좀 지양해야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상식적인 생각이 든다. 하지만 건축가가 개념을 반영하여 집 전체의 매스를 잡고 나서 실을 짜 넣었기 때문에 이러한 실의 모양이 나오지 않았나 한다. 어쨌든 고시텔 정도밖에 안 되는 방이라 고개를 살짝 갸우뚱 하게 하였다. 다르게 생각해 보면 방이 좁기 때문에 방안에서는 정말 개인이 필요로 하는 행위만 하고 아닐 때에는 거실이나 식당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가족 간의 유대가 더 깊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도 같다. 거실이 그만큼 넓게 계획되어 있으니 말이다. 무튼 내가 살기엔 좀 좁은 방이다.이 거실은 빛으로 가득차 있는 공간이다. 벽난로에서, 끝쪽 천창에서, 가운데의 테라스에서.매우 운치 있어 보이고 그 나라의 풍경을 가장 잘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3층 평면도8.테라스 12.서재 13.Open 14. 욕실 15.주침실 16.의상실3층은 서재와 집주인의 침실이 있는 곳이다. 집안에서 가장 사적인 곳이라고 볼 수 있다. 1,2층에 위치한 것보다 3층에 위치하고 있고 가장 깊숙이 들어가서 위치한 곳이라 가장 위계가 높다고도 할 수 있다.평면에서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8, 13으로 표기된 곳으로, 전체 평면에서 가운데 부분이 크게 오픈되어있다. 이곳이 열려있음으로 인해 집 뒷면 가운데에서 움푹 패여 들어와 거의 공중복도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고 서재의 책상에 앉아 경치를 바라볼 수 있는 창도 제공하며, 상대적으로 닫힌 침실에 비해 상당히 열려있는 공간으로 공간감이 대립되어 전이를 느끼게 한다. 닫을 곳과 열 곳을 적절하게 조정함으로써 건축가는 공간의 감동을 주는 집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공학/기술| 2009.03.22| 9페이지| 2,000원| 조회(1,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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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x4 house - Ando Tadao 평가A좋아요
    [작가연구]4x4,그 작은 공간 속 바다과 목 : 현 대 건 축 사작가에 대해서 - Ando Tadao안도 다다오의 건축사고를 살펴 보기 전에 그 배경을 살펴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그것은 독학과 여행이다. 고졸출신(게다가 기계과)인 그는 실제 학교에서 무엇을 배웠다고 볼 수 없다. 오로지 독학만이 그의 유일한 건축공부 방법이었다. 고졸이라는 학력 콤플렉스를 이겨내기 위해 책을 읽고 끊임없이 공부하고 또 걸어 다니면서 보고 스케치하며 여행하였다. 건축에 있어 가장 좋은 것 중 하나는 직접 건물을 보고 느끼고 공부하는 것이다. 그는 미켈란젤로, 아돌프 루스, 르 꼬르뷔제, 알바 알토 등의 작품과 수많은 고전건축 등을 보고 발로 공부하며 온 몸으로 느끼면서 독자적인 건축관을 형성하였다.그의 주요 건축적 사고로는 장소에 대한 생각을 들 수 있다.시작과 질서 오늘날 만들어지는 대부분의 환경이 그 장소로부터 자연히 표출되는 것 같은, 질서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느낀다. 이에 대해 안도는 그 건축이 서 있는 장소의 의미를 찾고자 노력한다. 이점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논한다.“건축대지는 자연이 지닌 고유의 논리로 판단되고 건축도 또한 고유의 논리를 지니고 있다고 나에게는 느껴진다. 건축대지는 늘 인간에게 끊임없이 부르짖고 있다. 자기에 가장 알맞는 건축 을 바라는 그 부르짖음은 그것을 들으려고 귀기울이는 자에게만 들리게 될 것이다. 이렇게 대지의 요구에 어떻게 호응할 것인가가 건축이라는 행위일 것이다."건축과 예술이는 지형 뿐만이 아니라 그 지역과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그 지역의 사람과 문화적 환경 등을 구체화하여 건축을 만들어 가는 것이 장소성에 대한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장소성을 읽어 내는 그의 시각은 탁월하며 대다수의 작품에 구체적으로 표출되어 있다. 때때로 그 것은 단지 자연스러운 조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하나의 대립과 갈등으로 시작하여 건축을 고유의 場(장)으로 만든다. 주변과 고유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하나의 닫혀진 영역으로의 성격을 갖게 하는 것이다.기하학-건축의 추상성 그는 건축의 형태로써 원이나 정방형의 순수한 기하학적 형태를 선택한다. 이는 기하학적 형태를 단순한 형태의 조작이 아닌 공간구축과 장소의 구현으로서의 본질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기하학적 형태를 벽돌과 중첩, 결합 그리고 삭제함으로써 기하학의 힘에 의해 지어진 건축의 상징성이 어떻게 주위를 자극하고 어떻게 존재의지를 표명하는가가 추구하는 것이다. 공간- 건축의 구상 건축이란 다른 아닌 구상성과 추상성을 동시에 포함하여 성립하는 것이다.전통-정신과 감성의 계승 안도의 건축을 보면 일본적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세계인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과 그 만의 개성과 지역성이 녹아서 작품화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의계승은 전통건축의 형태를 모더니즘이 가져온 현대적인 소재를 사용하여 표현한 형태상의 모방이 아닌 '정신과 감성' 을 계승하는 것이다.건축과 자연, 과학과의 관계그의 건축은 3가지의 특징적인 성격으로 뚜렷하게 구분된다.대부분의 그의 건축 작품을 보면 거의 누구나가 거의 완벽에 가까운 기하학을 그가 구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같은 그의 건축관은 유럽에서 치열하게 탐구했던 근대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제(Le Corbusier)의 작품에서 보이는 것과 유사하고, 그래서 그는 전통적인 근대건축의 어휘를 오늘날에도 이어가는 건축가로 회자되는 것이다.두 번째의 작품경향은 건축을 자연과 혼화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의 건축 작품에는 늘 물, 바람, 나무, 그리고 하늘의 공허함 등이 어떤 모습으로든 건축과 결합하고 있다. 이 같은 그의 건축관은 건축물의 명칭에도 자주 등장하고 있어 물의 교회, 물위의 박물관 등으로 묘사되곤 한다.세 번째의 특징적인 성격은 진솔한 건축 재료라 불리는 콘크리트와 유리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정신이라 할 수 있다. 1992년 세빌리아(Seville) 박람회의 4층짜리 목조건축물인 일본관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작품이 노출 콘크리트와 유리의 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그는 1995년 4월 오사카에서 GA(Global Architecture)소속 전문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세 가지로 요약되는 그의 건축적인 치열함을 설명한 바 있다. 즉, 전통적인 일본건축의 이면에 담긴 철학이 그러하기 때문이며, 특히 목조건축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아 현재의 건축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 기자의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었다. 그런 까닭에 그의 건축은 가장 일본적인 동시에 유럽에서 발원한 전통적인 근대건축의 이념을 가장 충실하게 소화한 현대건축을 구사하는 동양의 건축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삶에 위엄을 주기 위해서는 질서를 필요로 한다.' 는 그의 건축적 언어는 동양의 사상과 서양의 가치를 적절히 담아내는 그의 건축 전체를 표현한 함축어로 흔히 인용되는 구절이다.선정 동기어느 작품을 할까 선정하는 과정 중에 이 집을 보게 되었다. 이 건물은 해변가에 위치한 집으로 그 모양이 매우 단순하다. 전체 형태가 바다로의 방향성을 가지며 적극적으로 도입하려는 시도가 읽어졌다. 1, 2층이 폐쇄적인데 반해 3, 4층은 전창의 사용 등으로 매우 개방적이다. 단독 주택임을 이미 1학년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과연 저 곳이 과연 사람 사는 집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저 안에서는 어떤 형태의 주거가 이루어지고 있는지 분석해 보고 싶었다. 몇 명이나 살 수 있을까? 3층과 4층의 큰 유리창은 안 열리는 것 같은데 행여 답답하지는 않을까? 4층의 사각박스는 왜 바다로 내밀었을까? 형태가 너무 단순하지는 않은가? 너무 단순해서 집이라는 생각을 쉽게 할 수 없게 하는데 주거로서 적합할까? 등등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면서 이 작품으로 선정하게 되었다.간략개요이 집은 Tarumi-ku, Kobe, Hyogo Prefecture 에 위치해 있으며 대지 면적이 20평도 채 되지 않는 65.42㎡ 이며 이 중 건물이 차지하는 면적은 22.56㎡이다. 철근콘크리트조로 지어진 이 집은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으로 되어있다. 연면적은 총 117.79㎡이며 앞서 말한 것처럼 용도는 단독주거이다. 2003년 3월에 완공되었으며 일본의 건축상을 수상하였고 Architectural Record에서 우수주택으로 선정되었다.4x4 House 분석이 주택은 4층이 바다로 1M 내밀어져 있다. 그리고 4층 전면이 유리 전창으로 되어있어 바다로의 강력한 방향성을 가진다. 내부에서 생각하자면 바다가 적극적으로 도입되어 있는 형태이다. 이 대지에서 끌어낼 수 있는 경관자원을 최대로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집의 평면은 매우 단순하다. 한 층에 하나의 실을 배치하여 총 4층으로 이루어져 있다.1층에 입구 공간 및 목욕탕이 있고, 2층에 침실, 3층에 공부방, 4층에는 거실 및 부엌이 있다. 1층 입구는 앞뒤로 열려있어 접근이 용이하다 왼쪽의 계단은 전 층으로 이어져 있으며 각 층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공학/기술| 2009.03.22| 6페이지| 2,000원| 조회(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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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과 주거문화]산업혁명과 주택
    인간과 주거문화REPORT산업혁명과 주택홍 원 화 교수님이름 :학번 :들어가는 말?그림 1? 도시 - 글래스고산업혁명을 대표하는 도시철과 석탄이 풍부했다.현대들어 굴뚝과 매케한 연기들은 사라졌다.나는 이번 인간과 주거문화 레포트에 ?산업혁명과 주택?라는 주제를 맡았다. 산업혁명과 주택을 관련시켜 이야기 하자면 먼저 산업혁명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야 한다. 그래서 산업혁명에 대하여 먼저 간략히 짚어보고 나서 이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한다. 산업혁명은 여러나라에 걸쳐 일어난 것이지만 가장 중심이 된 영국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그림 2? 가내 수공업우선 산업혁명의 원인을 살펴보자. 영국은 절대왕정제에 대한 반발로 시끄러웠던 프랑스라던가 독립한다고 시끄러웠던 미국과 달리 일찍이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을 통해 정치가 안정되어 있었다. 명예혁명은 제임스 2세의 전제권 강화가 영국민으로 하여금 의회 양파에 대한 불만이 높아지게 만들었고 결국 tory당과 wing당이 내란을 막기 위해 타협을 하여 메리와 윌리엄을 공동왕으로 추대하게 되었다. 윌리엄은 즉위와 동시에 의회가 제출한 권리선언을 승인하고 권리장전으로 법률화 하였다 이것이 명예혁명을 간추린 것인데 이 혁명의 다른 이름은 Revolution of 1688, Bloodless Revolution 으로 피를 흘리지 않고 이룬 혁명이라 하여 명예혁명이라 부른다.집안이 조용하면 먹고사는 문제에 눈을 돌리듯이 정치가 안정되어 있으면 경제에 눈을 돌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영국은 일찍부터 경제 발전에 주력할 수 있었고 상공업이 발달해 있었으며, 해외 무역으로 많은 자본을 축적하였다. 토지를 잃어버린 농민들이 도시로 우르르 몰려들어서 노동력도 쉽게 얻을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당시의 연료로서 가장 중요했던 석탄과 철이 풍부했다. 이처럼 산업 발달에 필요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영국은, 18세기 후반 국내외 시장에서 늘어나는 상품 수요에 맞추어 기계를 발명하고 동력을 개발(증기기관, 와트)하면서 생산 방법을 혁신적으로 바꾸게 된다. 면직물 공업 부문에서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은 인도와의무역으로 크게 발전하게 되고 기계와 동력을 이용한 공업이 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가내 수공업은 무너지기 시작하고 공장제 기계공업이 급속히 발달한다.?그림 3? 방적기?그림 4? 기관차이때 발명된 것들로는 유선전신(모스)와 전화(벨), 무선전신(마르코니), 기관차(스티븐슨), 증기선(풀턴) 등이 있다.18세기 후반영국19세기 전반프랑스, 벨기에, 미국...19세기 후반독일(국가 주도 공업화)19세기 말러시아, 일본?표 ? 산업화된 나라 순서산업 혁명의 결과를 살펴보면 우선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농업 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꿔놓았고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여 사람들의 생활이 풍부해졌으며 자본주의가 확립되고 근대적인 시민정신이 확산된 것 등의 장점을 살펴볼 수 있다.?그림 5? 사라진 풍차예전에는 700여 넘게 있었지만 지금은 관광용으로 몇 개있을 뿐이다.도시 - 잔세스칸스?그림 6? 하층계급이들은 하루 20시간 이상 노동을 착취당하고 성인 남성의 반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았다.단점으로는 산업 자본가가 성장한 만큼 프롤레타리아(자신의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아서 생활하는 노동자)도 생겨 빈부격차가 상당했다. 그리고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립으로 러다이트운동(기계 때려 부수기 운동)을 하다가 노동조합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은 지금의 빈민촌보다도 못했다. 따라서 실업, 임금, 도시 환경문제 등이 발생하게 된다.[그림 7] 산업혁명기의 주택산업혁명으로 인해 사회는 크게 변화했다. 공장제 수공업이었던 생산방식은 공장제 기계공업으로 바뀌었다. 사회는 농업사회에서 점점 산업사회가 되어갔고 따라서 경제구조도 1차 산업이 중심이 되던 것에서 2차, 3차 산업이 중심이 되어갔다. 농촌은 무너져 갔고 사람들은 대형공장이 있는 도시로 몰려갔다. 이촌향도 현상이 심해지면서 도심지에는 심각한 주택부족 현상이 발생했다.농업과 목축이 산업의 기반이었던 영국에서는 1801년까지만 해도 인구 10만을 넘는 대도시는 런던뿐이었으나, 산업 혁명이 일어난 직후인 1850년에는 리버풀(인구 39만 명), 맨체스터(33만 명), 버밍엄(26만 명) 등의 신흥 공업 도시가 대거 등장하면서 심각한 주택난을 겪게 된다.인류 역사상 일찍이 유래가 없었던 지하 셋방이 이때 처음으로 등장하고, 열악하고 불결한 환경 탓에 수많은 사람들이 전염병으로 죽어 나갔다 서너 명의 아이가 딸린 한 가족이 거주했던 지하의 단칸 셋방에는 화장실과 부엌이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한구석에 마련된 화로에 냄비를 걸어놓는 것이 고작이었으며, 화장실은 길가에 마련된 공동 화장실을 이용하였는데, 기다리는 사람이 너무 많아 대부분 노상에서 처리했다. 더구나 신흥 공업 도시를 찾아오던 이들은 주로 아일랜드 출신의 빈농들로 돼지를 기르는 습관이 있었다. 샐러리맨이 봉급을 타면 일정액을 저축하듯 그들은 돈만 생기면 돼지를 사다 길렀고, 지하의 단칸 셋방에서 일가족과 돼지가 뒤섞여 사는 속에 1830년대는 콜레라와 페스트가 창궐하여 가난한 목숨을 앗아갔다.이러한 최악의 주거환경은 서서히 근대적 아파트의 태동을 부르고 있었다. 열악하고 불결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이 싹튼 것이다. 이때 성행한 것이 백투백(Back-to-Back) 주택으로, 이는 말 그대로 여러 채의 주택이 서로 후면을 등진 채 맞붙어 있는 형식이다. 보통 지하1층에 지상 3층 정도로 지어져 지하는 창고로 사용하고한 층에 한 가족이 거주하였다. 면적은 가로와 세로가 3.8미터?3.3미터의 원룸 형식으로 일가족이 거주하기에는 불편했지만, 마당 한가운데 공동 화장실과 펌프가 있고 무엇보다 지상 주거여서 창문으로 햇빛이 들었기 때문에 주거 수준이 많이 향상되었다. 집 안에 햇빛이 든다는 것은 19세기 영국에서 건강과 직결된 문제였다. 세균은 햇빛을 받으면 죽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그림 8] 백투백 건물 중정[그림 9] 백투백 배치상황이후 영국에서는 건축 조례를 통해 모든 세대에서 일광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했는데, 이 전통은 지금까지 남아 아파트에서의 일조권은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요즘은 단지 전망이나 조망권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아파트의 탄생 초기에 그것은 생명과도 맞바꿀 정도로 절실한 것이었다. 또한 아파트에서는 애완견을 키우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개 짖는 소리가 시끄러워 이웃 세대에게 불편을 주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본디 아일랜드의 빈농들이 집 안에서 돼지를 키우는 것을 금지하여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으로 이때부터 아파트에서는 일체의 가축 사육이 금지되었다.[그림 10] 서민용 타운하우스이후 19세기 말이 되면서 백투백 주택은 점차 타운 하우스(town house)로 발전한다. 이는 많은 단위 주택들이 서로 벽을 공유하면서 빽빽하게 밀집한 형태이다. 층수는 2층, 각 주택의 후면에는 조그만 마당을 마련하여 이곳에 화장실을 둘 수 있었고, 난방과 부엌 설비가 향상되었으며 면적도 백투백 주택보다 두 배 가까이 넓어졌다. 또한 종래의 원룸 형식에서 점차 부엌과 침실이 분리되는 등 서
    독후감/창작| 2006.12.22| 8페이지| 2,000원| 조회(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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