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멘델스존은 19세기 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음악가중의 한 사람으로 이미 어린 시절에 많은 음악 작품들을 작곡하였고, 그의 일생을 통하여 신앙을 음악으로 승화하여 수많은 작품들을 창작해 냈다. 멘델스존은 여느 낭만주의 음악가와 다른 여러 가지 특색을 보여주고 있다. 멘델스존은 고전적인 이상을 존중하여 고전적 형식 구조에 낭만적 감정을 담아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미묘한 결합을 추구하였다. 즉 "고전적 수법의 계승"이라는 점에서 동시대의 다른 작곡가들과는 구별 되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곡이 바로 오라토리오 이다.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는 그의 다른 오라토리오 와 함께 19세기 오라토리오의 최고봉이 된다는 점에서 그 분야의 가장 중요한 작품인 헨델의 오라토리오 이후 발전된 오라토리와의 역사를 알 수 있으며, 또한 에 못지않은 연구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는 1845년에 작곡했다. 그가 이 오라토리오를 쓰게 된 것은 전 시대의 작곡가인 '바흐'나 '헨델'의 종교음악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멘델스존은 1829년 그의 스승인 첼터와 베를린 음악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750년 바흐 사후에는 연주되어진 일이 없던 을 처음으로 재연 지휘하여 19세기 바흐를 재편가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를 연구함에 있어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그가 이것을 통해 음악적 이상 뿐 아니라 자신의 신앙의 고백들을 표현하려고 애썼던 것이다. 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먼저 멘델스존의 삶의 모습과 과정을 알고 그의 음악에 접근해야 한다. 이러한 이해 없이는 그의 음악을 표현할 수 없다.DISCOURSE(1) 멘델스존의 삶과 음악 세계펠릭스 멘델스존(Jakob Ludwig Felix Mendelssohn Bartholdy)은 1809년 2월 3일 독일 함부르크의 부유한 유태계 은행가인 아브라함 멘델스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모제스 멘델스존은 유태계 민족들에 대한 사회적 제약과 가난 속에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였던 계몽기의 위대한 교사이며 사상가였다. 어가를 절감했다. 멘델스존뿐만 아니라 괴테도 고전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그 후 가족은 가정교사들과 함께 스위스 여행에 나서게 된다. (이것은 후에 그가 여행에 대한 열정을 불어 넣게 되어 다른 나라의 풍경뿐만 아니라 음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는 1822년 스위스를 여행하면서 그곳에서 현악 제1번 g단조(op.11)를 완성하였으며, 그해 바흐의 의 악보를 입수하여 연구를 시작한다. 14살 때에는 보스턴에서 온 아저씨라는 1막 짜리 오페라를 만들어 그의 스승인 첼터로부터 '이제는 작곡 연수생이 아닌 작곡가 대역에 들어서게 되었다.'라는 칭찬을 받게 된다. 멘델스존은 16살 때 현악 8중주 작품 20을 완성했는데 이 작품의 일부는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1826년 이 시기에는 중요한 작품인 세익스피어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을 작곡하였다. 1829년 3월 멘델스존은 그의 스승인 첼터와 베를린의 음악가들의 반대에서 불구하고 1750년 바흐의 처음으로 재연 지휘하였다. 그 이후 3년간의 유럽여행을 떠나는 멘델스존은 그의 음악에 있어 많은 영감과 교양의 폭을 넓히는 계기를 마련한다. 독일 각지를 비롯하여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등 광범위하게 각 지역을 순회하며 리스트, 베를리오즈 등 각지의 음악과 등과도 친분을 쌓는다. 이 기간에 교향곡 제 4번 교향곡 제 5번 등 작곡가로서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작품을 많이 쓰게 된다.유럽 여행 후 1833년에는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에서 지휘를 하여 호평을 박고 교향곡 를 초연한다. 이어 뒤셀도르프의 음악 감독으로 3년간 계약을 맺고, 오라토리오 를 작곡하였다.)1863년에는 아리프찌히 대학으로부터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은 후 그는 더욱 유명해져 슈만, 바그너 등과 교류를 하게 된다. 또한 그 해에 프랑스 개혁과 목사 딸인 세실 샤를로드 소피 장르노와 사귀어 이듬해 결혼하고 다섯 자녀를 두었다.그 후 1841년 한 해 동안 프로이센 왕의 예배당 악장이 되엇고 이듬해 베를린만 음악에 있어서는 슈베르트 또는 베토벤의 후기에서부터 19세기 말까지의 기간을 말한다.낭만주의 음악의 흐름을 양식적으로 구분하면 베버와 슈베르트를 "초기 낭만주의"에 해당시키고 멘델스존, 슈만, 쇼팽을 "중기 낭만파"에 넣으며, 여기에 베를리오즈, 리스트, 바그너를 "신낭만주의"라 한다.) 또한 낭만주의시대에 작곡가의 정신적 태도나 나아가서는 작품의 특색 및 악곡의 종류에 이르기까지 이를 구분해본다면 ① 서정적 내면성의 경향을 가진 슈베르트에서 브람스까지 이르는 계열 ② 극정 외향성을 가진 베버에서부터 바그너에 이르는 계열. 이둘로 나눌 수 있다. 멘델스존이 속한 후자의 낭만주의 음악의 성향을 살펴보면 형식적 음악구조보다는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앞세우는 서정적 소곡에서 이들의 본질을 찾을 수 있다.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의 가곡과 피아노 소품이 전형적으로 여기에 해당되며, 이들은 규모가 큰 오페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거나 뛰어난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은 이들의 음악적 성향과 관계가 있다. 브람스는 신고전주의자라고 불리워질 만큼 고전적 이상을 존중하였으며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의 경우도 고전적 형식 구조에 낭만적 감정을 담았다고 볼 수 있는 악곡이 많았다. 이러한 사조는 바흐를 비롯한 빈고전파)의 영향이 매우 컸다. 이러한 성향과 함께 낭만주의음악의 특성으로 19세기에는 작품의 스타일이나 테크닉에 있어서 주목할 만한 발전을 하였다.(3) 멘델스존 오라토리오의 특성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는 1863년에 작곡된 "사도바울과" 1845년의 "엘리야"가 있다. 이 두 작품은 19세기 오라토리오 분야에서 멘델스존이 성취한 업적 가운데서 역사적인 작품이며 이 시대의 최고 오라토리오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양식은 헨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것은 그가 뒤셀도르크의 음악감독으로서 교회음악이나 오페라 지휘를 위탁받았을 무렵 헨델의 오라토리오를 집중적으로 연구하는데 힘을 기울였으며 실제로 1833년부터 2년동안에 걸쳐 헨델의 오라토리오 하는 대부분의 작곡가들과 독일에서 멘델스존의 뒤를 잇는 대부분의 후계자들은 이러한 재능을 받지 못했고 혹 이러한 재능이 있었다 하더라도 멘델스존이 지닌 상상력과 좋은 취향 같은 것은 이어지지 못했다.)둘째,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 구성의 독특한 방법으로 루터 교회의 합창 선율을 자주 사용한다. 민중적인 종교음악과 합창의 말과 음악을 이와 같이 채용하자는 것은 오라토리오를 민중에게 친근하게 만드는데 큰 힘을 갖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바흐가 그의 수난곡과 칸타타에서 합창의 사용을 시도하여 성공한 것을 이 장대한 오라토리오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사용하여 성공한 셈이다.오라토리오에 있어서 합창의 기능이란 고백의 클라이막스에 의해 흐트러졌던 감정을 조영하게 정리하는 것으로 오라토리오에 기대되는 종교적 분위기에 기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합창 연주의 실제에 있어서 자주 문제가 되는 것은 합창의 가사가 끊어지는 데에 붙여진 페르마타이다. 이 페르마타는 늘임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일종의 마침표로서 다루어진다.)셋쩨, 멘델스존은 오라토리오의 내용에 있어 성서 가운데서 대표되어지는 신/구약시대의 사도와 선지자들의 행적을 다루었다. 즉 신약시대의 바울사도와 구약시대의 엘리야 선지자를 표본으로 하였으며 되도록 성경의 내용을 있는 그대로 인용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따라서 그 줄거리의 극적인 내용을 푸가형식이라는 음악적 리듬처리로 강렬하게 표현하였으며, 스릴 넘치는 동기는 멘델스존에게 영감을 불러 일으켜 가장 깊은 신앙심을 성공적으로 표현하는 훌륭한 오라토리오를 만들게 했다.이러한 멘델스존의 오라토리오의 양식적 특성을 종합해 보면, 고전시대의 바흐와 헨델의 종교음악에 바람직한 감화를 입었고 그들의 충실한 악곡 구성과 푸가 기법의 활용 등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보다 멘델스존은 더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멜로디와 색채감 넘치는 화성법과 관현악법을 조화롭게 이루었다.CONCLUSION(1) "엘리야" 작품 구성크게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으며 서창과 서곡, 42악장으로 되어 있다9. 주를 경외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합창)C. 엘리야가 이스라엘로 돌아온 뒤 바알 제사장들과의 대결10.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나는 섰노라 (엘리야, 아합의 서창과 합창)11. 바알 신이여 응답하소서 (합창)12. 더 크게 부르라 (엘리야의 서창과 바알 제사장들의 합창)13. 더욱 크게 부르짖으라 (엘리야의 서창과 바알 제사장들의 합창)14.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 (엘리야의 서창과 영창)15. 너의 짐을 주께 맡기라 (합창)16. 생명을 만드신 주여 (엘리야의 서창과 합창)17. 주의 말씀은 불같지 않더냐 (엘리야의 영창)18. 하나님 버리는 자는 고통을 받으리라 (알토영창, 천사)D. 비가 오기를 기도하는 엘리야, 비를 내려주심19.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백성을 도우소서 (오바댜, 엘리야, 소년의 서창과 합창)20. 하나님께 감사하라 (합창)-2부-E.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21. 들으라 이스라엘아 (소프라노 영창, 천사)22. 두려워 말라 (합창)F. 엘리야의 아합에 대한 예언과 이세벨이 이를 듣고 백성들을 선동함23. 하나님께서 너를 세우사 (엘리야, 이세벨의 서창과 합창)24. 죽이라 (백성들의 합창)G. 엘리야의 도주와 낙심함25. 하나님의 사람이여 (오바댜, 엘리야의 서창)26. 만족합니다 (엘리야의 서창)H. 주 안에서의 쉼과 하나님의 위로27. 보라 그가 자고 있다 (테너 서창)28. 네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라 (천사들의 여성 삼중창)29. 주께서 이스라엘을 지켜주시리라 (합창)30. 일어나라 엘리야 (천사, 엘리야의 서창)31. 주 안에서 쉬라 (천사 영창)32. 끝까지 잘 견디는 자 (합창)I. 하나님의 임재33. 주여 이제 밤이 되었습니다 (엘리야, 천사 서창)34. 하나님 지나가신다 (합창)35. 스랍들이 높은 곳에서 (천사의 서창, 4중창과 합창)J. 힘을 얻은 엘리야의 사역, 그리고 승천36. 이제 돌아가거라 (합창과 엘리야 영창)37. 높은 산이 평탄케 되고 (엘리야의 영창)38. 선지자 엘리야 불같이 솟아다.
< 목 차 >Ⅰ. 서론1. 연구의 목적 ---------------------- 32. 연구의 범위 ---------------------- 4Ⅱ. 본론1. 헤렘의 어원적 의미 ------------------- 52. 헤렘의 전쟁 ------------------- 7A. 헤렘의 근거 B. 전쟁의 사례Ⅲ. 결론1. 헤렘의 가르침 ---------------------- 11Ⅳ. 참고 문헌 ------------------------ 13Ⅰ. 서론1. 연구의 목적하나님은 구약에서 신앙의 성결 즉, 선별된 백성들의 거룩성을 요구하신다. 이 신앙의 성결을 다른 말로 하면 분리/구별의 의미가 있는데 히브리어로는 헤렘(herem)이라 한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면 '진멸하라'의 의미인데, 신학을 전공하는 사람들과, 일반 성도, 그리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하나님의 방법이다.현 시대는 그치지 않는 전쟁과 테러, 폭력의 기사가 우리들에게 충격과 슬픔을 가져다주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 직접적, 혹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모두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원하지만, 전쟁 이면에 있는 명분과 실리 속에 계속해서 위협 속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렇게 연일 전쟁과 테러가 그치지 않는 현시대의 특성상 진멸이라는 의미를 가진 헤렘에 관한 가르침은 참 민감한 사안이라 생각된다.더구나 신명기 20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진멸방법을 보자면, "남자는 칼로 다 죽이고, 숨쉬는 것은 하나도 살려두면 안 된다."라고 하신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들은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러한 말씀을 알고 있는 우리들은 살인과 폭력, 복수가 가득한 세상에 살면서 그것들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는 헤렘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는가? 그러나 하나님이 거룩성과 신앙의 성결에 위배 되는 것들을 제하시는 심판과 동시에 선택하신 백성에 대한 구원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었다.이것을 전제로 하여 헤렘에 대해 연구할 것이며, 예수님의 가르침에 나타난 헤렘을 통해상 예배는 부정하고, 그것을 제거하는 것에 의해서만, 주 여호와의 거룩하심이 보전될 것이기 때문이다.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은 우상 예배에 미혹되고 빠져, 주의 노하심을 초래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백성이기 위해서는, 이교의 백성들로 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었다.[헤-렘]의 원뜻은 [문밖에 쫓아낸다], [한 패에 끼지 못하도록 한다]로서, 동사로는, 신명기에6회(진멸, 신 2:34,3:6,6,7:2,13:15, 20:17),여호수아서에 14회(전멸, 수 2:10,바칠 물건,6:18, 다 멸함, 21, 진멸, 8:26, 10:1, 28, 35, 37, 39, 40, 11:11, 12, 20, 21) 기록된 것에 대해, 모세의 5경에서는 불과 출애굽기에 1회(멸할 것, 출 22:20), 레위기에 2회(바친물건,레 27:28,아주 바친 것, 29). 민수기에 2회(다 멸함, 민 21:2,3)가 기록되었을 뿐이다.또한 명사로는, 신명기에 3회(진멸, 신 7:26,26,13:17),여호수아서에 13회(바친 것, -물건, 물건-바침, 수 6:17,18,18,18,7:1,1,11, 12, 12, 13, 13, 15, 22:20) 씌어져 있는데 대해, 다른 5경에는, 레위기에 4회(바친성물, -물건, 레 27:21,28,28,29), 민수기에 1회(드린 것, 민18:14) 씌어져 있다.그러므로, 신명기와 여호수아에서는, [성전], [성절](개멸, 진멸)의 사상으로 긴밀하게 관련지어져 있다고 할 수가 있다. 성절(聖絶) 법규는, 신 20:10-18에 보이는 대로인데, 이스라엘 백성의 요단동편 진격의 기록인 신 2:34-35에는 그 수행기사가 다음과 같이 극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때에 우리가 그 모든 성읍을 취하고 그 각 성읍을 그 남녀와 유아와 함께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고 진멸하였고, 오직 그 육축과 성읍에서 탈취한 것은 우리의 소유로 삼았으며]라는 것이다. 다른 제 민족에 있어서도 그러했듯이,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싸움은 처음부터 끝까지 종교상의 행위. 그러나 하나님은 역사의 지배자로서, 그들을 그자신의 목적 위해 그릇으로 쓰시고, 또한 의로운 하나님으로서 그들을 그 죄로 인해 벌하시는 것이다. 한가지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침입도, 그들이 의롭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이를 얻게 하시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을 선택하셨으며 아브라함을 통해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기 위함이었다.이스라엘에 토지를 주는 것도 역시 믿음의 선조에게 하신 약속 때문이었다.2. 헤렘의 전쟁A. 헤렘의 근거전쟁은 과거에 '둘 이상의 서로 대립하는 국가 또는 이에 준하는 집단 간에, 군사력을 비롯한 각종 수단을 사영해서 상대의 의지를 강제하려고 하는 행위, 또는 그 상태'로 이해되었다. 그러나 종래에 와서는 무력행사를 수반하는 국가 간의 투쟁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화되었다.)전쟁은 무력으로든, 무력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든, 또는 굴복시키든지, 제거하든지, 어떠한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목적한 대상으로 하여금 주체가 되는 대상의 의지대로 되도록 만드는 것이다. 특별히 고대 근동의 전쟁은 특성상 민족저그 국가적 생존의 문제였으며 단순하고도 실제적인 문제였다. 따라서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언약적 성취와 더불어 그러한 고대 근동의 전쟁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다. 실제로 구약성경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들이 무려 130여회가 넘게 기록되어있다.)헤렘의 법적 근거는 세 가지의 내용으로 요약되는데 이것을 살펴보겠다.첫 번째는 가나안 땅의 족속들에 대한 헤렘의 명령이다. (출 23:23-25/ 신 7:1-26 / 신 9:1-6 / 신 11:23 / 12:29 / 19:1 / 20:16-18)두 번째 서원에 의한 헤렘의 명령이다. 서원에 의한 헤렘 명령은 전쟁에서 승리를 주실 때에 헤렘을 수행하겠다는 서원(민 21:28-29)에 대한 것이다.세 번째의 명령은 다른 신을 섬기는 자에 대한 헤렘 명령(출 22:20 /신 13:1-19)이다.즉, 첫 번째와 세 번째의 헤렘 명령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시는 것 성취를 이루고 그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2) 서원 헤렘.전쟁에 대한 서원 헤렘(민21:1-3)은 남방의 가나안 아랏의 왕이 이스라엘을 치자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승리에 대한 서원기도를 드림으로 세워졌다. 약속대로 그 성읍을 진멸하였고, '완전히 살라 바침'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호르마라는 이름이 그 땅의 이름이 되었다. 아주 바친 물건이나 사람에 대한 서원헤렘(레 27:28-29)은 한나가 사무엘을 드리겠다 서원하고 바친 것처럼, 사사 입다가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가장 먼저 영접하는 자를 바치겠다고 서원하여 딸을 바친 것과 같은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한 개인이 하나님께 헤렘으로 바쳐진다는 것은 가장 거룩한 것이다.(3) 다른 신을 섬기는 자에 대한 경고로서의 헤렘.이스라엘을 '여호와만 섬기라'는 신앙에서 떠나게 하는 모든 것, 즉 이스라엘로 하여금 언약에 불성실하여 언약을 파기하도록 종용하는 모든 것들도 헤렘의 대상이 된다. 사람이나, 민족이나, 혹은 그러한 동기로 행동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까지도 멸절해야 한다. 다른 신을 섬기도록 꾀이는 선지자나 꿈꾸는 자나 누구든지 용서 없이 그를 죽이라고 명한다.여호와를 배반하게 할 목적으로 이간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이다.※ 헤렘의 규칙① 생존자를 남기지 않는다.(신2:34,3:3/수10:28/대하20:24/렘50:26왕상 9:21) 사로잡은 왕과 지도자들은 대부분 죽이다. 남자들은 완전히 제거하며(왕상11:15) 때로는 몸의 일부를 자르거나, 종으로 취하기도 하였다.(신20:11) 여자와아이들은 노획물이며, 가끔 임신한 여인은 배를 갈랐다.(왕하8:21,15:16 / 암1:13)② 많은 경우에는 육축과 노획물을 구체적으로 명시한다.③ 가끔 도시와 노획물들을 불태운다. (신7:5,25,13:17 /수 6:24,7:15)④ 헤렘의 규칙을 깨뜨리는 것은 신성모독이며 그 결과로 군사적인 패배를 겪고(수7장)자신을 주님께 바치게 된다. (이것은 아간의 경우에 가장 잘상관없는 하나님의 의지이다.(2) 아말렉 전투 (삼상 15:1-29)가나안 정복 전쟁에 집중적으로 나타났던 헤렘의 명령이 사사기 시대에 불분명하게 나타나다가 특히 성전의 성격이 다소 상실되었다고 하는 왕정시대에 나타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헤렘은 명백하게 하나님의 주권을 어떻게 대행하는가에 대한 이스라엘의 순정에 언제든지 그 귀추가 주목되어 있다. 특히 초대 왕으로 추대된 사울이 하나님을 후회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사울의 태도가 어떤 양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사울에 대해서 사무엘은 하나님이 사울을 어떻게 판단하셨는가를 설명해준다. 사울이 아말렉 족속을 치던 전쟁에서도 완전한 헤렘을 집행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울이 엄격하게 헤렘을 집행하지 않았다가 무서운 심판을 받았다. 사무엘은 사울 왕이 스스로 작게 여길 그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지파의 머리가 되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덧 사울은 스스로를 작게 여기고 있지 않았다. 즉 교만해진 것이다. 그는 왕이었고 그랬기 때문에 사무엘이 제사에 늦어질 때는 스스로 번제를 드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삼상 13:8-13) 하나님이 아말렉을 진멸할 것을 명령하셨지만, 사울왕은 스스로 그 명령을 임의로 해석하고 마땅히 진멸할 것들을 진멸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 그가 자신을 작게 여기지 않고 스스로 크게 여기게 된 이상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적으로 순종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제사장이요 선지자인 사무엘과 자신을 동등하게 여기고, 혹은 우월하다 생각했을 만큼 번제까지도 드릴 수 있다 생각했다.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신다.하나님이 단순히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대적함으로서 하나님 자신을 대적한 아말렉의 악함을 진멸의 원인으로 밝히셨다. )하나님의 싸움에는 명분이 없지 않다. 누구도 물릴 수 없고 핑계 삼거나 피할 수 없는 명백한 명분을 가지고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완벽하게 이루신다.요나를 통해 멸망을 선포 받았던 앗수르가 그 왕신다.
추천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기독교는 로마제국의 배경에서 태어났습니다.그래서 로마라는 나라가 어떻게 발흥하게 되었고 정치, 문화,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 대한 연구가 앞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로마제국에 많은 흥미와 관심은 있지만, 막상 시작해 보고 나니 만만하게 볼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 용어, 인명, 그리고 지역적인 충분한 지식이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책일 수 있습니다. 그나마 조명은 교수님의 책인 '서양문화사 요론'을 먼저 읽었던 것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책 중간 중간에 내용과 관계있는 인간관계에 대한 도식 표, 지도, 사진, 연대기를 적용하여 기록한다면 처음 읽는 독자들이에게 더 많은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1장을 읽으면서 관심 있던 부분은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에서 전 지중해상으로 세력을 뻗쳐나가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이 한판 승부를 펼쳐야 했던 카르타고와의 포에니 전쟁에 관한 부분입니다. 당시 서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있던 카르타고는 이탈리아반도에서 급격히 성장하는 로마와 지중해의 무역 및 경제 제해권을 놓고 충돌하게 됩니다. 이것이 3차까지 가는 포에니 전쟁으로 전개 됩니다. 사실 포에니 전쟁이나, 트로이의 목마 사건 등은 이미 영화화되어 로마 제국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많은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물론 픽션이 가미되어 역사적 사실과 조금 엇나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요. 아무튼 이렇게 생각해보면 10번 책을 읽는 것 보다 잘 만들어진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더 도움이 많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즉, 이것을 한편, 한편 이해하기 쉽도록, 각 사건에 따라 재미있는 일화나 연결되는 영화를 소개해주며 쉬어가는 페이지가 있어도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아무튼 팍스 로마의 시대는 무대 뒤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제 1장 세계의 제국 로마'의 마지막에 '역사의 뒤안길로'에서 보다 더 영적인 관점으로 사건들을 바라 볼 수 있도록 정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이 책을 읽을 때 단순히 역사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그런데 왜, 우리가 기독교 역사를 반드시 알아야 할까요?기독교 역사를 알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어떻게 일하셨는지, 어떤 사람을 들어 쓰셨는지 분명히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 역사를 통해 나의 신앙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의 좌표를 새롭게 설정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내가 믿는 기독교의 역사를 바로 이해하는 것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는 신앙의 진보를 이룰 수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습니다.사도들이 활동할 때에도, 사도시대 이후에도 성령께서 하나님의 교회에 동일하게 간섭하고 역사하셨습니다. 물론 새 시대가 열리면서 초대 교회 신도들에게 혹독한 시련이 다가오고 있었지만, 그들은 그 시련 역시도 하나님께 쓰임 받고 있다는 기쁨을 안겨줄 뿐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디아스포라'라는 이름은 듣기만 하여도 두근두근한 감동을 가져다줍니다. 그래서 '제 2장 기도교의 시작과 발전' 부분에서도 마찬가지로 제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모든 크리스천들이 꼭 알아야 할 핵심적인 사건·인물·용어 총정리가 각장의 끝나는 부분에 들어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을 공부하는 신학생 외에도 교회의 역사에 흥미와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이야기체로 기술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 생각되어집니다.기독교와 로마의 갈등은 이들의 종교적, 사회/경제적, 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동방과 서방교회는 줄곧 불화를 거듭했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서열이 존재했지만 동방교회는 황제가 사라진 서방에서 고집스레 수위권을 주장하는 교황의 권리를 인정하려고 들지 않았습니다. 로마교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비잔티움의 황제를 등에 업고서 거들먹거리는 동방교회는 지상의 진정한 교회를 자처하는 로마교회에는 눈엣가시였을 뿐입니다. 때문에 교황들은 비잔티움의 황제와 결별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황제와 동방교회를 분리시키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비잔티움 귀족들의 반대와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동서 교회가 주고받은 세 차례의 공방으로 완전히 분열되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그들의 생각의 차원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지요. 사도들 이후에는 성령께서 폴리갑, 이그나티오스 등 속 사도들을 통해 순교의 횃불로 로마 제국의 어둠을 밝히셨습니다. 속 사도들 이후 이단이 준동하고 사도적 신앙이 위기에 처할 때는 아타나시우스 같은 교부들을 통해 믿음의 순정 성을 파수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다른 서양문화사 책들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를 공인한 유명한 로마의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거침없이 빠져드는 기독교 역사-유재덕) 헬레나 황후와 여행길에서 만나게 된 사람과의 토론을 보면서 현재도 이루어지는 성별에 관한 입장, 종교적 입장을 고수한 채 벌어지는 여러 현상들이 떠올랐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우리나라 사회 속에서도 일어나는 종교인들의 대립, 남녀의 성 가치관 차이에 따른 다툼들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분쟁들은 아마도 거의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숙제일 것 같습니다.제 3장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 제 요인부터 신앙 공동체 카타콤, 로마의 사회 신분제도의 주제를 읽을 때까지 초기 기독교 교회는 평범한 인간들의 기준에서 볼 때에 쉽사리 성공할 것 같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끊임없는 박해와 고통과 함께 자신의 지위와 권리를 포기하면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하지만 터툴리안(Tertullian)이 말한 것처럼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가 되어 박해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는 꾸준하게 성장하였습니다. 핍박이라는 기독교 장애물이 오히려 기독교를 성장시키는 수단이 되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이는 오직 신앙의 눈으로 볼 때에 인간들의 뒤에서 역사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로마제국에서 박해를 받던 기독교가 후기 로마제국의 지배적인 종교로 등장하게 된 일은 313년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으로 말미암는 기독교 공인에서 비롯됩니다. 콘스탄틴의 등장은 교회사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만큼 교회 역사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때문에 혹자는 콘스탄틴을 전후하여 교회의 역사를 콘스탄틴 전 시대와 콘스탄틴 후 시대로 양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세속화의 대명사로 후자를 언급하기도 합니다. 기독교 공인은 기독교가 세속 권력과 밀접히 관련을 맺는 역할을 하고, 나아가 교회의 본질이 훼손되는 시발점이 됩니다.
북한 체제의 형성 배경그리고 김일성과 기독교해방을 맞이하자 서울에서는 여운형을 비롯한 좌우익 지도자들이 한민족에 의한 독립국가 건설의 열망 속에 건국준비위원회를 설립하였다.평양에서는 민족주의자 조만식이 1945년 8월 17일 평안남도 건국준비 위원회(평남건준)를 발족시켰다. 평남 건준은 북한지역 내 다른 도, 시, 군 지역에 건준 또는 자치 위원회, 인민위원회의 설립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조만식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건준을 결성할 때에 남한지역의 건준과 분리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이것을 발전시켜 한반도내 하나의 독립국가로 발전시키겠다는 의도를 지니고 있었다.그러나 소련의 진주로 이 같은 조만식의 구상은 무너지고 말았다. 8월 24일 평양에 진주한 소련 25군은 북조선 주둔 소련군사령부를 성치하는 동시에 38도선을 봉쇄하고 청도 및 전화를 통제함으로써 사실상 분단을 위한 조치를 취해 나갔다. 또한 북한지역 내 대표적 자치조직인 평남 건준이 민족주의자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한 조지를 취했다. 우선 소련군은 평남건준을 평남 인민정치 위원회로 개칭하고 여기에 국내 공산계 인사를 참여시킴으로써 북한 지역 내 핵심자치 조직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약화시키고자했다.또한 소련은 친소적 인물을 물색하여 정치적 대리인으로 내세우고 뒤에서 정치적 후견역할을 하는 계획을 추진하였다. 그해 9월 초순 소련 극동군 총사령부는 소련의 의도대로 북한을 움직일 수 있는 인물로 극동군 산하 88특별여단 소속의 김일성을 선정하여 스탈린과의 면담을 주선하였다. 이후 소련군은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김일성의 입북과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한 후견역할을 수행하였다. 김일성은 9월 19일 빨치산 동료인 안길, 이동화, 오진우, 최현, 박성철, 김책, 김일, 유성철 등과 함께 소련함정을 타고 원산항을 통해 입국함으로써 북한지역의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한편 소련군은 북한 전체를 관할하는 중앙행정기구를 세우기로 결정하고 1945년 10월 8일 북한 국가조직의 모태가 된 북조선 5도 임시인민위원회를 설립하였다. 이것은 10월 28일 북조선 5도 행정국으로 개편되었다.그 후 김일성은 군, 정, 당을 장악하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군, 정, 당 모두에 대해 동일한 영향력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김일성은 빨치산 동료들과 소련군의 지원에 힘입어 군부에서부터 시작해 그 다음 행정기구, 당의 순서로 권력을 확대해 갔다.이후 유엔총회에서 입법기관으로 설립된 북조선 인민회의는 조선임시헌법제정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48년 9월 9일 북조선인민위원회로부터 정권을 이양 받고 김일성을 수상으로 하는 이 수립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내각을 비롯한 정권기관이 구성되었다.한편, 1907년 하리 장로교회가 중심이 되어 세운 5년제 학교인 창덕학교는 김일성의 외할아버지인 강돈욱이 교장으로 학교를 운영하였다. 강돈욹은 중농으로서 평양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강돈욱의 큰 아들 강진석은 3.1 운동을 주도하였고, 민족해방운동에 헌신하다가 1924년 옥사하였다. 당시 김일성은 11살이었고 아버지를 따라 1918년 만주로 건너가 장백현에서 소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후에 부친의 뜻을 따라 1923년부터 1925년 초까지 외가에서 머물며 창덕학교를 다녔다. 그래서 현재에도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창덕학교로의 유학을 "배움의 천릿길" 이라 하여 해마다 기념하고 있다.그의 아버지 김형직은 기독교계의 민족운동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김일성이 회고하기를 "아버지는 무신론자였으나, 숭실학교 출신이었기 때문에 주위에 기독교인들이 많았다." 라고 했지만, 김형직이 장로의 딸과 혼인하고 기독교계통의 숭실학교를 다녔으며, 기독교계 민족 운동가들과 함께 조선국민회 활동을 했고 기독교인들이 세운 명신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을 무신론자라고 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 강반석에 대해서는 "교회에 다니지만 예수를 믿지 않고 고된 일에 시달리다가 단지 너무 피곤해서 쉬러갔다." 라고 전했다. 그러나 모태신앙을 지니고 태어난 강반석(베드로를 뜻함)이 신앙이 없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렇게 김일성은 애써 부인하지만,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부모가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음이 분명하다.
목 차1. 저자 약력 및 소개 ------------------------- 22. 내용 요약 --------------------------------- 43. 서평 ------------------------------------- 61. 저자에 대해 알기소개이름장동수 (張東洙)생년월일1957년 03월 01일출생지역충청남도 보령전 공신약성서 사본학연락처042-828-3140 / 042-828-3315이메일dschang@kbtus.ac.kr학력1980서강대 물리학과 B. S.1992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M. Div.1997New Orleans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Ph. D.경력1990 - 1992한우리침례교회 창립 및 담임목회1993 - 1997베이톤루즈 한인중앙교회 담임목사1997 - 2005. 12새누리침례교회 협동목사2006.01 - 현재생명수 침례 교회 협동 목사1997.01 - 현재침례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1997 - 현재한국 복음주의신학회 회원 /한국 기독교학회 회원 /한국 신약학회 회원2000.12 - 2001.11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 학과장2001.12 - 2002.07침례신학대학교 학생실천처장2002.08 - 2004.06침례신학대학교 교무처장2005.11 - 2006.11침례신학대학교 신학 연구소 소장2005.12 - 2006.11침례신학대학교 기획실장2006.11 - 2007.11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원장2007.12 - 현재침례신학대학교 학생실천처장연구 실적박사논문 (1997)"An Investigation to the Textual Relationships of Selected Manuscripts of the Na Group in john" -New Orleans Baptist Theological Seminary단행본1999신약성서 헬라어 문법 : 어형론과 문장론(요단)2002신약성서 개론: 한국인을 위한 최신연구(대한기독교서회 13인 공저)논문논문1998신약성서 본문비평: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복음과 실천)2000신약성경의 본문과 비평과 해석과의 상호연관성 (신약신학저널)2000신적 수동태 구절 소고 (성경원문 연구)2000히브리서의 본문 (복음과 실천)2001로마서의 목적 (신약신학 저널)2001에베소서의 교회론 (복음과 실천)2002지상 최대 명령 연구 (복음과 실천)2003신약성서의 신적 dei 연구 (복음과 실천)그 외 번역서1989로버트 뱅크스 『1세기 교회의 예배모습』 여수룬1990브루스 올슨 『밀림 속의 십자가』 두란노1991로버트 뱅크스 『바울의 공동체 사상』 여수룬1991론 투르딩거 『가정 소그룹 모임』 기독교문서선교회1998고든 디 피 『신약성서 석의방법』 은성1999로버트 뱅크스 『교회 또 하나의 가족』 IVP1999워렌 트랜차드 『신약성서 헬라어 어휘사전』 은성2002바나바 린다스 『히브리서 신학』 한들2003고든 디 피 『신약성경 해석방법론』 (3판) 크리스찬 출판사논평, 기사, 기고2000"크리스마스의 성서적 의미" 2000"설교를 위한 성서연구(신약): 평강의 하나님(빌 4:1-9)" 2001"신적 수동태: 힘빼! 신학" 2001"피영민 교수의 침례교회 종말론에 대한 논평" 침례교신학연구소2001"여성 지도자와 말씀 묵상의 중요성" 2001"깨어있어라(막 13:31-37)" 2002"그리스도는 분명히 다시 오십니다(벧후 1:16-21)" 2002"예수를 바라봅시다. 믿음의 창시자이며 완성자이신 예수(히 12:1-3)"2002"임진수 교수의 '복음서들의 사마리아 이해와 선교'에 대한 논평"2003"예수의 운명과 예루살렘의 운명(눅13:31-35)" 기타 저작1999『생수의 강』 설교집 새누리침례교회2000『축복하는 공동체』 설교집 새누리침례교회2001『새 천년의 교회의 사명: 에베소서 강해를 중심으로』설교집 새누리침례교회2. 본문 요약Ⅰ 히브리서 설교의 서론 "말씀하시는 하나님" < 1:1 - 2:4 >히브리서는 서신의 형태로 보기엔 형식이 잘 맞지 않는다. 따라서 서신보다는 설교 집으로 볼 수 있다. 히브리서 1:1~2:4 까지를 설교의 서론으로 본다. 여기에서는 구약에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과 신약에 그의 아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으로 나뉜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하나님의 상속자이며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럼으로 말씀자체이신 예수그리스도를 가벼이 여기지 않도록 경고 하고 있다.Ⅱ 제 1강해 "구원의 창시자 예수" < 2:5 - 18 >본격적으로 설교가 들어가는데 구약성경을 인용하여 적극적으로 해석하였다. 서론에서 예수님이 천사보다 뛰어난다 전했지만, 첫 번째 강해에서는 장차 예수님을 통해 올 미래의 나라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다. 구속의 완성이시며, 창시자, 구원자라고 해석되는 예수님이 스스로 낮아지시고 겸손해진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또 그가 성육신 하시므로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예수님의 구속사역의 연관성을 설명하고 있다.Ⅲ 제 2강해 "안식에 들어가자" < 3:1 - 4:16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구약성경과 연관 지어 설교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시편을 적용한다. 서론에서 첫 번째 경고에 이어 모세와 여호수아보다 뛰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역하지 말아야한다고 두 번째로 경고한다. 그리고 광야를 통해 약속의 땅을 기대했던 것과 같이 인간이 기대하는 참된 안식은 그리스도에게 있다는 참된 의미를 전달한다.Ⅳ 제 3강해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 < 5:1 - 7:28 >아들, 멜기세덱, 제사장, 영원히 등의 단어로 연관되는 장이다. 마찬가지로 시편의 말씀이 적용되었으며 멜기세덱을 설명하기 위해 창세기도 인용되었다. 대제사장직의 자격은 동정할 수 있는 능력과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가르치는데 여기에 부합하는 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라고 말한다. 그리고 세 번째 경고가 나오는데 할 일많은 성도들의 영적 미성숙을 경고하였고, 저자와 모든 성도들이 완전한데로 나아가자 권면하고 격려한다. 그리고 대제사장의 완전함과 우월성을 나타내며 그에 부합한 예수그리스도를 절대적으로 높이며 마무리한다.Ⅴ 제 4강해 "새 언약" < 8:1 - 10:25 >히브리서 설교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네 번째 강해는 예레미야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아래에서 성도가 마땅히 해야 할 직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새 언약과 옛 언약의 대조되는 것을 설명하면서, 새 언약의 중보 되신 그리스도를 나타낸다. 성도들이 이전까지 해왔던 제사들과 희생제물이 되어 새 언약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새 언약의 적합성을 증명한다.Ⅵ 제 5강해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 10:26 - 11:40 >새 언약을 설명하며 회심의 절정을 지나오며 이번에는 성도들의 배도와 관계하여 심판의 무서움을 알린다. 그리고 이어 위로의 메시지와 권면을 담고 있는데, 하박국 성경의 말씀이 인용되었다. 우리가 믿음장이라고 불리는 히브리서 11장에는 이러한 권면을 더욱 굳세게 하기위해 기록하였다. 주를 향한 신뢰와 굳센 믿음, 그리고 희생이 믿는 이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축복으로 인도한다고 한다.Ⅶ 제 6강해 "경주와 훈련" < 12:1 - 13 >권면과 강해를 반복적으로 기록하였는데, 잠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설명하였다. 인내로써 완전한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설명하고 죄와 싸우며, 배도를 죽음에 이르기 까지 투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수그리스도의 본을 받아 역경 가운데에서도 충성스럽도록 권면하고 있다. 그리고 이 고난과 역경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주는 유익한 고난임을 알아야 하며 충성스럽게 경주하도록 권면한다.Ⅷ 제 7강해 "시내 산 VS 시온 산" < 12:14 - 29 >일곱 번째 설교에서는 서신서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인 권면과 강해로 이루어져있다. 또한 성도들이 지켜야 할 거룩함과 충성심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다. 시내산은 옛 언약의 발원지이다. 그리고 시온산은 흔들리지 않는 나라, 즉 우리가 바라봐야할 새 언약이다. 그러므로 새 언약을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유의하고 성도로서 믿음을 지켜나가도록 경고하고 있다.Ⅸ 설교의 결론 "영문 밖으로 나아가자" < 13:1 - 23 >히브리서 설교의 마무리 부분에 있는 이번 장은 앞에서 반복해서 나왔던 강해와 권면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목회 현장에서의 주의해야할 것에 대해 설명하는데 경고가 아닌 조언의 의미로 해석된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목회의 권면은 '사랑'이라는 주제로 일맥상통한다.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결코 성도들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한다. 또한 목회적 권면과 함께 교회 공동체로서 조심해야 할 거짓 가르침에 대한 경고도 드러나 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억하며 우리도 매일 영적인 희생제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과, 교회지도자들에게 순종하며 섬기고 기도할 것을 당부한다. 끝으로 평강이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며 은혜를 축원함으로 긴 설교를 마무리 한다.3. 서평히브리서는 그 저자와 수신자를 명확히 알 수 없고, 지금도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있습니다. 다만 내용으로 보아 복음을 듣고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로 하여금 어려운 박해의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복음을 변호하고 박해를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기록된 설교라는 사실만은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가 기록된 주후 60년경에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이 널리 확산되자 유대인들은 심한 위기감을 느꼈고 로마 당국과 결탁하여 이방인들을 몰아내고, 모진 박해를 가해왔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믿는 자들을 향한 히브리서 설교는 구약의 말씀을 곳곳에 인용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신약과의 연관성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기독교에 대한 변증과 고난을 이기고 믿음의 숨결을 지키도록 격려하고 권면하는 책입니다. 중심주제는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고 믿음. 이렇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믿음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구속사역을 신뢰하는 것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