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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비(劉備)의 부각과 미래의 주연
    유비(劉備)의 부각과 미래의 주연-목차-Ⅰ들어가며Ⅱ정통론(正統論)1.정통론의 개념2.청대 이전의 정통론3.청대의 정통론Ⅲ 한족(漢族)중심의 중화(中華)주의Ⅳ 누가 삼국지의 주인인가?Ⅴ 마치며Ⅰ. 들어가며『三國志』라는 책은 동양 사회의 베스트셀러이자 필독서이다. 그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읽었고, 읽는 책이다. 아마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 책장을 넘기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三國志』와 『三國志演義』를 구분하지 못 하고 있다. 『三國志』는 진수(陳壽)가 쓴 역사서이고, 『三國志演義』는 나관중(羅貫中)이 여기에 살을 보태어 만든 소설이다.『三國志』는 4세기에 저술되었고, 조조(曹操)의 위(魏)나라를 정통으로 보았는데 반하여 『三國志演義』는 14세기에 저술되었고, 유비(劉備)의 촉(蜀)나라을 주연으로 등장시키고 있다. 나는 역사와 문학이라 비교하기가 그렇지만 가장 큰 차이점은 주인공이 바뀌었다는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三國志』는 있었던 일을 기록하였지만 『三國志演義』는 사람들의 기대와 소망을 담고 있다. 과연 이 1000년이라는 시간 안에 어떠한 일로 삼국지의 주인공이 바뀌었을까?나는 그 중심에는 정통론(正統論)과 한족(漢族)중심주의라고 생각하고, 여기서 정통론과 한족중심주의 그리고 오늘날 주목받게 될 삼국의 나라에 관하여 알아보려고 한다.Ⅱ. 촉(蜀)과 위(魏)의 정통론(正統論)1. 정통론의 개념정통론은 이전 국가의 멸망과 새로운 국가의 창건을 통한 왕조나 정권의 교체가 있거나 한 국가 내의 혈연적·세력적 분열이 있는 경우, 기존의 국가가 가졌던 정당성을 어느 국가가 계승 또는 담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역사적·정치적·철학적 담론의 총체를 말한다.)정통을 주장하는 근거에는 혈연관계, 영토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정통론의 기원이 공자의 정명사상)과 추연(騶衍)의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이나『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정명사상은 대일통(大一統)사상으로 군주는 하늘로부터 명을 받아 천하의 민심을 통일해야 함을 이른다. 승자라고 할 수 있는 조조의 위는 정통이 아닌 유비의 촉나라가 정통으로 우세하였다. 진수가 삼국지를 저술하면서 위를 정통으로 보았는데, 후에 동진(東晉)시대에 습착치(習鑿齒)가 쓴『한진춘추(漢晉春秋)』에서부터 촉나라의 유비를 정통으로 서술하였다. 하지만 후에 북송시대에 구양수(歐陽脩), 소동파(蘇東坡) 등을 비롯하여 위한정통론의 관점에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사실 습착치가 위한정통론을 부정하고 촉한정통론을 주창한 것은 당대의 실력가인 환온(桓溫)이 동진의 제위를 넘보려 하자 한 광무제부터 서진 민제까지의 역사를 담은 『한진춘추』를 통해 촉한을 정통으로 삼고 위나라가 비록 한(漢)나라로부터 선양받았으나 이것을 찬탈이라고 규정함으로써 환온의 반역을 저지하려 했던 것이다. 북송 시대에 이르러서는 다시 위정통론이 힘을 얻게 된다. 구양수는 위나라가 정통을 이어받은 왕조라고 주장했고 소동파도 이에 힘을 보탠다.하지만 『자치통감』을 저술한 북송의 사마광은 정통론의 논쟁에서 좀 더 초연한 모습을 보인다. 그는 『자치통감』에서 여러 왕조가 있던 시기에도 기년의 연호로 시간을 나타내야 했기에 위나라의 연호를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는 말하길 “학식이 천박하여 정윤(正閏)의 구분을 알지 못한다.” 하였다. 그리고 자치통감에서 적기를이 모든 것(후대의 정통론)은 자신의 한쪽으로 치우친 논의이며 공정한 통론이 아니다. (중략) 어찌하여 일국만을 존중하여 정통으로 삼고, 그 나머지를 참위라 할 수 있겠는가. (중략) 위ㆍ송ㆍ제ㆍ양ㆍ진ㆍ후량ㆍ후당ㆍ후진ㆍ후한ㆍ후주의 연호로써 각각 나라들의 사실을 기록한 것이지, 귀함과 비천함을 구별하여 정윤(정통과 비정통)을 따로 구분한 것은 아니다. -『자치통감』권69 위기일 황초이년 -)또한 그는 촉한정통론에 대해서도 일평을 했는데,소열제의 한이 비록 중산정왕(한경제의 아들)의 후예라고 하지만 그 친족관계가 멀어서 그 세대의 수와 이름, 관직 등을 기록할 수 없으며, 유송의 고조가 초원왕의 후예라고 칭하는 것, 남당 열조가 오왕 각의 후예라고 칭하까지 이어졌고 이러한 시대적 사조 가운데 철저 하게 촉한정통론에 입각한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도 탄생한다. 그래서 삼국지연의를 주자 사상의 아류작이라고 하는 평도 있다. 당시 시대는 촉한정통론을 원하고 있었고『삼국지연의』는 이러한 염원을 담아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학은 현실이 반영된 허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대적 위기로 인해 유비는 더욱 더 높게 추앙받는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유비를 폄하하려는 의도는 없다. 난세의 시대에 천하를 두고, 한 고조의 후예라는 것 하나만으로 스스로 나라를 일으킨 것을 봤을 때 역시 위대한 영웅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조조와 손권도 이와 같은데 왜 유비가 이토록 큰 관심을 받을까? 유비는 유교적 가치관이 지배하던 시대로 인해 유비의 덕과 인심을 위한 행동들로 유비는 성군으로 표현되었다.유비가 말했다. “무릇 큰일을 이루는 데는 반드시 인심을 근본으로 해야 하오. 지금 백성들은 나에게 돌아왔는데, 내가 어떻게 차마 그들을 버리고 가겠소.”)최근에 들어서야 유비와 조조, 손권의 재평가가 차츰 나오고 있다 는 것은 시대적 가치가 유교적 가치가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3. 청대의 정통론 -양계초(梁啓超)를 중심으로-청나라에 들어서는 위한정통론과 촉한정통론의 분쟁보다는 정통론 자체의 문제에서 벗어난 논의들이 좀 더 주를 이룬다. 명말까지 우세하였던 촉한정통론을 비판하면서 정통론의 기저에는 각 사가들이 처한 시대적 상황이 깔려있다고 분석한다. 왕부지(王夫之)는 『독통감론』에서 “촉한이 정통이라고 하지만 정통은 진으로 넘어갔으며 진은 위를 찬탈하였는데 어찌하여 한의 황통이 계승되어 건국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이미 없어진 도를 이어지도록 계속 쓸데없이 말하니 무엇 때문인가.”라면서 습착치와 주자를 비판하였다. 장학성(章學誠)은 『문사통의(文史通義)』에서 “(사람들이)『삼국지』와 『자치통감』를 계속 비난하고 있는데, 진수는 서진의 사람이고, 사마광은 북송의 사람이니 조위(위나라)를 인정하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난 뒤 만약 과거의 기준으로 정통을 논한다면 역사라는 것은 결국 도박이요, 어린아이의 장난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라고 보았다.그리하여 그는 정통의 기준은 응당 나라(國)에 있어야하고, 나라를 버리고 군주개인을 기준으로 하거나 “國民”을 버리고 군주 一人에게서 정통의 귀속여부를 따지는 것은 천하의 해독만을 가져오는 어리석은 것이라 함. 때문에 진정한 정통은 영국, 일본, 독일과 같은 입헌군주국에서 헌법으로서 군주의 지위를 계승하는 룰을 만들고 그 위에 오를 때에도 헌법을 경건하게 지키겠다는 서약을 국민 대중에게 하고 그것을 국민이 공인함으로서 진정한 정통의 지위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 역설하였다.그리하여 그는 진실로 정통을 논할 경우 주(周)와 진(秦)이후 어느 한 왕조도 정통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왕조는 없다고 하면서 자신의 정통론에 대한 기준을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기준을 제시하였다.즉 첫째, 이적(夷狄)(오랑캐)은 정통이 될 수 없다. 이러한 의도에는 그의 강력한 민족주의적 경향이 보이고 있다.둘째, 그는 찬탈한 경우 정통이 될 수 없다. 이러한 그의 의도에는 반전제적 사고방식이 작용하는데 선양이라는 미명 하에 전 왕조을 뒤엎은 경우는 절대 정통의 지위를 가져서는 안된다. 위진남조, 수?당, 송이 모두 다 이에 속한다고 하였다.셋째, 도적은 또 정통의 지위를 가질 수 없다고 하였는데 당말오대 가운데 후량과 명이 그에 해당하며 이와 같은 기준을 적용할 경우 과거 중국사에서 정통의 지위를 가질 수 있는 왕조가 단 하나도 있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여기서 첫 번째 기준인 오랑캐는 정통이 될 수 없다는 민족주의적 경향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통론의 문제에 있어서도 뒤에 언급하게 될 한족중심주의와 중화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Ⅲ. 한족(漢族)중심의 중화(中華)주의중화(中華)주의란 중화(中華) 말 그대로 한족이 품고 있는 자기민족중심적인 사상이다. 이민족을 천시여기는 관념이 있어서 화이(華夷)사상이라고 한다.중화사상의 뿌리는 자기중려진 중원과는 사뭇 다르고, 오히려 내몽골이나 만주·한반도와 유사하다. 중국이 서둘러 문명의 기원을 황하에서 요하로 옮기려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이처럼 아직까지 한족의 우월성, 모든 세계의 중심은 한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강한 중화주의 사상이 깊이 자리 잡고 있다.이 때문에 삼국지가 유명해지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동양이라는 거대한 집단이 중국이라는 커다란 구심점을 중심으로 그 문화를 형성해 나아갔고, 중국인들의 마음속에는 ‘한족’이라는 정신적 지주가 뿌리 깊게 자리 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시간동안 타민족들의 지배를 받았다. 요, 금, 원, 청,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중국을 지배하였고, 실제로 한족 출신의 왕족들이 중국을 지배했던 시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인들의 타민족에 대한 반발과 한족에 대한 향수 등이 유비의 촉을 추앙하였던 이유였다.중국인들이 한족만을 우대하고, 지나치게 한족임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들의 가슴 속에 아직까지 이민족들의 지배를 받으며 살아왔던 지난 시간에 대한 울분이 남아 있어 중화주의를 강조하며, 자신이 최고라고 믿어왔던 그들에게 있어서 미개인에 불과한 이민족들에 의한 지배의 역사는 단순한 수치심을 넘어 치욕의 역사로 남아있을 것이다. 로마제국이 우월한 문명인과 열등한 야만인으로 인간을 구분했듯이 세계의 중심인 중화(中華)와 변방의 오랑캐로 차별하여 생각한 중국인들의 사상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주희가 삼국지의 정통을 촉으로 본 것은 그의 성리학적 관점에 비추어 보았을 때 적합하였기도 하였지만 주희가 살았던 시기는 남송시대로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는 시기였다. 당시 송나라는 금(金)나라와 요(遼)나라에 줄곧 시달리고 있어 나라가 누란(累卵)의 위기에 처하게 된다. 민족 최대의 시련을 맞이하여 가장 중국적인 것, 가장 문화적인 전통과 역사를 지켜야 하는데 주희는 우선 정신적으로 중국인들이 일체성을 회복해야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하나의 방편으로 다.
    인문/어학| 2009.03.29| 4페이지| 2,500원| 조회(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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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관계 및 조화방안 평가A+최고예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관계 및 조화방안과목명담당교수제출일학번학과이름I.들어가며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상보적 관계이자 상충적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시장경제가 소비자의 선호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체제라면, 민주주의도 선거권자의 요구에 민감한 체제이므로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서로 동일한 작동원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시장경제가 창출하는 경제적 풍요가 시장과 민주주의 간의 친화력의 원천을 제공하며 경제적 풍요가 관용, 화해, 타협을 선호하는 민주적 정치문화의 형성에 비옥한 토양을 제공해준다. 이와 같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상보적 관계로 생각 할 수도 있지만, 최근 이 둘의 관계는 상보적 관계라기보다는 상충되는 경우가 더 많아 보인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평등이 담보 되어야 하는데, 시장경제는 빈부 격차를 심화시킬 수밖에 없으므로 시장경제 체제하에서 민주주의의 실질적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이 그것이다.이와 같은 상황에서 먼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서로 달리 보는 네 가지 관점을 살펴보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조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II.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보는 네 가지 관점1)“시장경제는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달(R. Dahl)이라는 학자의 관찰에 의하면 현재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는 예외 없이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갖고 있다고 한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가 자동적으로 민주적 정치체제를 가져다주지 않을지는 모르나 자본주의가 자유민주주의의 필요조건임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는 주장은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동일한 작동원리를 가지고 있다는 데에서 나온다. 두 이데올로기 모두 개인의 선택의 자유가 사회적으로 소망스러운 결과를 낳는다는 공통원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생산자는 소비자가 가장 원하는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고 자유민주주의 하에서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정원 배분을 보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유 민주주의 하에서는 투표가 사회적 복지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최적의 정치권력 배분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슘페터(J. Schumpeter)라는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근대민주주의는 지본주의와 함께 발전했을 뿐만 아니라 근대민주주의는 자본주의 과정의 산물이다.” 이는 문화론적 입장에서 자본주의가 합리적인 사고양태를 확산시킴으로써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말로 즉,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합리적인 사고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촉진 시켰다는 것이다.다음으로 근대화 이론을 살펴보면, 이 이론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 지면 관용, 화해, 타협을 중시하는 민주적 정치문화의 형성에 비옥한 토양을 제공할 것이라는 가정 하에서 국민소득수준으로 측정되는 자본주의적 발전과 민주화 간의 상관간계를 제시하려 하였다. 즉, 경제적으로 풍요해지면, 사람들이 먹고 사는데서 문화, 정치 분야로 눈을 돌리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빈곤한 시기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독재를 인정하면서, 경제 발전에 치중했으나, 그 후 어느 정도 빈곤의 시기를 타파한 후, 민주화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근대화 이론은 60년대와 70년대에 군부 쿠데타가 자본주의적 발전에서 상대적으로 앞서가고 있던 제3세계 국가들에 확산되면서 거의 폐기된 것처럼 보였으나 70년대 중반이후의 민주화의 물결로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통계학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러한 점을 보아도 자본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자본주의가 자유민주주의 발전에 필요한 정치적 자유를 증대시킨다는 주장은 자본주의하에서 지배 계급이라 할 수 있는 부르주아지의 전략적 이해로 설명되기도 한다. 자본주의하에서 역사상 최초로 생산수단 뿐만 아니라 노동력도 사적으로 소유된다. 이제 노동자들은 봉건적 굴레, 속박, 관습, 의무가 아니라 형식적으로 평등한 노동시장에서 자신의 노동력을 임금과 교환해서 생계를 꾸려나가게 되었으며, 생산의 표출을 허용하거나 좀 더 적극적으로 피지배계급의 이해를 수용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자본주의에 의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조금이나마 발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2)“시장경제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한다.”“시장경제가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한다.”는 관점으로 가장 강력하게 내세우고 있는 주장은 다음과 같다. 먼저 자본주의는 1불 1표의 불평등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고, 자유민주주의는 1인 1표의 평등의 원리에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에 서로 상반된 견해를 나타내고 있는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서로 결합하여 발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경제적 불평등을 기초로 하고 있는 자본주의가 보통선거에 의한 평등을 기본 원리로 하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의 발전을 저해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국가”의 개념을 도입해 보면 이야기는 달라 질 수 있다. 시장 자본주의를 순수한 의미의 자본주의가 아닌 국가의 개입이 가미된 수정-혼합 자본주의라 생각해 보자. 국가가 부유한 사람들(부르주아)로부터 일정의 세금을 걷어 그 세금으로 가난한 사람들(프롤레타리아)의 복지 정책에 사용한다고 하면 시장 자본주의에 문제점인 경제적 불평등은 다소나마 해결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항상 수평선을 그으며 나아간다고 섣불리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의 큰 문제점이 제기되는데, 과연 “국가”의 개입을 어디까지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가 그것이다. 국가의 개입에 관해서는 복지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라는 두 가지의 커다란 이데올로기가 있는데, 이에 대한 논의는 뒤에서 자세히 하도록 하겠다.다음으로 시장에서의 형식적으로 평등한 사람들 간의 자유로운 교환은 계급적으로 불평등하게 작동하고 있으며, 시장적 경쟁은 사적인 악의 집합을 공적인 덕성으로 변모시켜주기는커녕 인간과 환경을 파괴시킴으로써 사회로 하여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자본주의적 자유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대안을 모색하게 하였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대해서도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국가”라는 개념을 도을 것이다.마지막으로 자본주의하에서 자본가들의 특권적 지위는 다른 모든 사람들의 자유로운 선택을 제약하는 구조적 힘을 갖게 되므로 투자의 사적 통제라는 구조적 제약이 시민들의 집단적 선택을 제약하고‘인민의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원리를 침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에 있어서 투표는 비밀 투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본가가 아무리 노동자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이끄는 쪽으로 나아가도록 한다 하여도, 인민으로 일컬어지는 노동자 계급이 투표를 통해 자신들의 영역을 지지하고 확보해 나 갈 수 있기 때문에 위의 견해는 논리적 모순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의 성공적인 결합까지는 이야기 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결합의 가능성이 있음은 배제하지 못한다는 것이다.3)“민주주의가 시장경제의 발전을 저해한다.”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이 자본주의를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은 사유재산제도의 정치적 결과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이라는 주장과 마찬가지로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간에는 긴장관계가 존재한다는 동일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으나 이 양자간의 긴장관계를 설명하는데 있어서는 정반대의 인과적 설명방식을 취하고 있다.부르주아 계급은 절대 왕정 시기 귀족과 왕족만이 정치를 할 수 있었던 권한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자신들도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되었다. 이러한 참정권은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과 같은 움직임을 통해서 부르주아 계급 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 계급까지 확대되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보통평등선거권이 확대되면 가난한 노동자들은 수의 힘을 빌려 정치적 권력을 장악하게 될 것이며, 정치권력을 장악한 노동자들은 권력을 이용하여 부유한 소수의 자본가들의 재산을 탈취하려할 것이고 자본가들은 이에 대응하여 다시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즉 자본가들이 재산의 위협을 받을 경우 영구적으로 조직화된 폭력을 보유하고 있는 집단인 군부에 권력을 이양하여 자신들의 재산을 보호하려할 것이라는 것이다.그리고 민주화는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그 동안 억눌려윤감소에 대응하여 투자를 축소함으로써 자본주의 경제의 성장은 정체할 것이다. 결국‘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권위주의 국가가 자본주의를 발전 유지시킨다.’는 결론이 도출 된다. 자본가 집단의 지지를 받는 군부세력들에 의해서 또는 노동 대중의 즉각적 소비욕구를 억제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권위주의적 독재자들에 의해서 자본주의의 발전이 이루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4)“민주주의는 시장경제를 유지 발전시킨다.”“민주주의는 시장경제를 유지 발전시킨다.”는 견해는 약탈국가이론과 복지국가이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약탈국가이론에서는 자본주의적 효율성 측면에서 민주주의가 독재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한다. 이상적인 민주주의 하에서 국가는 인민의 완벽한 대리인이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하에서 국가 권력을 장악하려는 정치인은 인민의 지지를 극대화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국가에서 국가경영자들은 인민들이 집단적으로 원하는 수준에서 국가 활동을 결정하고 이를 충실히 시행하여야 한다. 결국 민주주의 하에서는 사실상 인민들이 국가 활동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인민들은 국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려 할 것이다. 또한 인민들은 국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초과하는 세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효율성의 상실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약탈국가 이론에도 약점은 존재한다. 약탈국가이론의 약점은 두 가지 차원에서 효율성을 상실할 수 있다. 국가의 비용을 초과하는 세입을 취하는데서 나오는 자원의 낭비와 기업가들로 하여금 경쟁과 혁신을 통한 이윤극대화보다는 국가의 보호에 의해 발생되는 독점지대를 추구하게 함으로써 발생하는 효율성의 상실이다. 이러한 약점에 대한 보완책으로 복지국가 이론이 등장했다.복지국가이론은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구해내 주었다고 주장한다. 복지국가 이론에서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간에 해소할 수 없는 구조적 갈등과 긴장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
    인문/어학| 2009.03.29| 7페이지| 1,500원| 조회(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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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종희와 고염무, 왕부지의 사학
    황종희 와 고염무 및 왕부지의 史學Ⅰ.서론Ⅱ.본론1.황종희의 사학2.고염무의 사학3.왕부지의 사학Ⅲ.결론Ⅰ.서론명말청초의 시대적 상황을 보면 소수민족에 불과하던 만주족이 마침내 중원의 패자가 되어 주인이 됨으로 인해 정치적?사회적으로 불안한 시기였다. 명나라는 농민 반란이 자주 일어나더니 결국 이자성의 농민반란군에 의해 멸망당했고, 이자성의 농민반란군은 청나라 군대에 패배함으로 인해 청은 중국을 지배하게 되었다.청의 중국 전역 지배 과정에는 청에 항복한 옛 명나라 대신 및 장수들의 협조가 큰 역할을 하였는데, 이와 반해 청 왕조에 협조하지 않고 오히려 명 왕조의 회복을 꿈꾼 지식인들도 적지 않았다. 명말 청조 사상계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들은 이른바 명의 유노(遺老)라 불리는 학자들이었다. 그들은 민족의식이나 명 왕조에 대한 절의(節義)의 차원에서 청 왕조에 평생 동안 봉직하지 않았으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황종희(黃宗羲:1610-1695), 고염무(顧炎武:1613-1682), 왕부지(王夫之:1619-1692)가 있다. 그들은 걸출한 사상가이자 역사가였으며, 청대 이래 진보적 학자들은 그들을 청초 삼대유라고 일컬었다.여기서는 이 세 학자들에 관해 알아보도록 하겠다.Ⅱ.본론1. 황종희와 절동 사학청대 사학은 역사 고증학파와 절동 사학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역사고증학을 고염무가 열었다면 절동 사학파는 황종희로부터 시작되었다. 황종희(1610~1695)는 명조 멸망 후 항청운동을 전개하였고, 항청운동이 실패하자 붓대를 무기로 삼았으며, 문자의 옥과 금서령에 맞서 학술연구에 전념하면서 민족 부흥을 도모하였다. 그는 민족 기절이 풍부한 역사가이자 사상가의 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그가 역사를 읽는 자 없고, 이로 말미암아 인재가 날로 퇴보하였기 때문에, 우활한 유학자를 면하려면 반드시 역사를 겸하여 읽어야 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역사 학습은 명대 학술계가 책을 묶어 두고 보지 않으며 유람이나 담론을 일삼는 병폐를 교정하여 실용화하려는 것이었다. 황종희는 명대의 문농민들은 청에 반대하고 명을 회복하도록 인도하며, 그의 정치 주장을 위해 역사적 근거를 제공하는 데에 있었다.그의 저서에는 『명문해(明文海)』,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 『행조록(行朝錄)』, 『명사안(明史案)』, 『남뢰문집(南雷文集)』, 『명유학안(明儒學案)』, 『송원학안(宋元學案)』등이 있다. 이들 저서에 나타난 그의 사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첫째, 명사 연구와 편찬에 모든 힘을 경주하였다. 그는 부의 유언을 받들어 사학을 '경세지업(經世之業)'으로 여겼다. 그래서 그는 문헌, 전적을 대량으로 읽었으며 학술 연구에 매진하면서 또한 학술 연구는 반드시 '경세치용(經世致用)'해야 한다는 새로운 학풍을 제창하였다.둘째, 당대 즉 명대의 문헌 수집에 관심을 두었다. 황종희는 역사 지리의 연구에도 주의하였다. 그는 『수경주』를 학습하는 동안 그 잘못을 발견하고 강희 3년(1664) 이전에 나온 자료를 근거로 『금수경(今水經)』을 지었다. 그리고 이것은 뒷날『명사』「지리지」의 중요 근거가 되었다. 정사와 실록자료, 묘지명, 야사를 수집하고 본인이 직접 방문도 하였다. 그는 야사의 수집과 정리에 열중하였다. 반청복명이 실패하자 남명의 사적에 관하여 수집하고 『행조록』9종을 완성하였다.『남뢰문집』가운데도 명말 충열지사들의 행장을 크게 표창하였다.셋째, 학술사상사 연구에 새로운 체제를 열었다. 『명유학안』은 황종희 사학저작의 대표작이다. 모두 62권으로 명대 200여 년 동안 학술 사상의 발전 개황을 설명하였다. 학술을 강의한 학자의 문집, 어록을 수집하여 학술의 종파를 19개 학파로 나누고 역사 발전의 순서에 따라 각 학파의 특징을 구별하여 설명하였다.『명유학안』은 체제상 새로운 것이 많으며, 명대 사상가를 계통적으로 배열하여 사상가의 간단한 생애와 사생관계를 서술하였다. 즉 황종희는 학안의 체례를 창립하고 중국 전근대 학술사의 편저 방법을 확립하였다. 『송원학안』도 편찬하였으나 17권만 쓰고 사망하자, 그의 제자 전조망(全祖望)에 의해 완성되었다.넷째, 담량이 폐정을 비판하고 개혁의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의 정치?경제 사상을 대표하는 것은 『명이대방록』으로 봉건제도를 비판하고 봉건 제왕에 대하여 과감하게 비판하였다. 혼군(昏君)은 천하에 큰 해를 가져오는 자라고까지 하였으며 봉건 관리에 대하여도 무정하게 비판하였다. 뿐만 아니라 봉건적 법률 제도를 유지하려는 것은 일가일성(一家一姓)의 법이라 하면서 법을 다스린 다음에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고 하였다. 그의 주장은 근대 민주정치의 색채가 적지 않았다. 때문에 그를 가리켜 '중국의 루소'라고까지 평하고 있다.2. 고염무의 사학고염무(1613~1682)는 강남의 대가문 출신으로 청년 시기부터 정치에 대해 관심이 깊었고, 지식인의 정치 모임에 참여하여 개량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의 생모는 청병에게 오른팔을 잘리었고, 양모는 명 멸망 후 단식으로 순절하면서 그에게 다른 나라의 신하가 되지 말 것이며, 대를 이은 나라의 은혜를 저버리지 말고 선조가 남긴 훈계를 잊지 말로고 당부하였다. 그는 항청운동이 실패로 끝나자 천하를 유랑하였는데, 하루도 학문을 폐기한 적이 없었다. 그는 망국의 고통을 지고 명 멸망의 교훈을 총괄하고자 구세의 처방을 탐구하였다. 그의 학문연구의 목표는 경술(經術)을 밝히고 인심을 바로잡으며 난세를 다스림으로써 태평을 일으키는 데에 있었다. 이것은 그가 역사서의 저작은 과거에 비추어 지금을 훈계하는 수단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는 몸소 실행함에 부끄러움을 갖고, 글은 널리 학습할 것을 제창하고, 옛날을 끌어다가 지금을 계획하며, 세상을 다스리고 실용을 이루는 것을 자기의 기본적 도리로 삼았다.그는 27세 때부터(1639) 20여 년 동안 국계민생(國計民生)의 기록을 수집하여 전국 각지의 농전과 부역, 수리, 염법, 광산, 교통, 국방 등 사정을 연구하여 『천하군국이병서』120권을 지어 53책으로 묶었다. 『천하군국이병서』란 전문적으로 이익과 폐단, 득과 실을 연구한 것으로 명목상으로는 지리서이나 이에 국한하지 않고 명대의 사회?경제 전반을 포함하고 있다『일지록(日知錄)』이다. 이 책은 고염무의 독서 필기록으로 30세부터 독서하면서 얻은 내용을 조목조목 기록한 것이다. 그가 책의 이름을 『일지록』이라 한 것은 30여 년간 학문을 좋아해서 형성한 저작이며, 결코 쉽사리 써낸것이 아니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일지록』은 크게 3편으로 나누어 상편은 경술(經術), 중편은 치도(治道), 하편은 박문(博聞)으로 되어있다.『일지록』은 고거의 방법을 이용해 쓴 책으로 한 사실을 논하는 데에 반드시 증거를 들며 더욱이 단편적 증거로 자족하지 않고 반드시 증거를 들며 더욱이 단편적 증거로 자족하지 않고 반드시 아주 널리 채택하여 증거가 갖추어진 다음 스스로 그 소신을 표명하였다. 그의 고거는 실사구시(實事求是)였고, 경세치용(經世致用)과 옛날을 인용해 지금을 계획하는 일을 일종의 수단으로 삼았으며, 고거만을 위한 고거를 하지 않았다.청대 고거학의 선구자였던 고염무는 경세치용과 옛날을 인용해 지금을 계획하기 위한 학문을 주로 연구하였는데, 애석하게도 이런 진보적인 정신이 청대에 결코 계승 발휘될 수 없었다.고염무 사학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첫째, 현실 문제의 토론을 중시하였다. 특히 강조한 것이 경세치용의 학문이다. 그의 『천하군국이병서』나 『일지록』에 이에 관한 내용들이 모아져 있다.둘째, 실행을 중시하였다. 그는 사회생활 속으로 깊이 들어가 스스로 행하려고 하였다. 때문에 직접 돌아다니면서 민생의 질고를 주의해 보았으며, 국가치란의 근원은 백성에게 있고 백성이 잘 살도록 근본을 세워야 한다고 하였다.셋째, 실제 조사를 중시하였다. 고염무는 학문을 연구하면서 조사 연구를 중요시하여 책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였다.넷째, 사료의 근거를 중시하였다. 그는 고증학의 선구자로서 증거를 중시하여 사료를 절대 맹신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는 고증하기 위하여 문자, 음운, 훈고, 교감, 판본 등 각 방면의 지식을 이용하여 각종 사료를 감별하고 고증하였다. 그리고 그의 이와 같은 고증의 방법은 건가(건륭, 가경) 시대 고증학파의에서 사무의 조리를 연구, 고찰하였고, 학문 연구 방법을 개척하였으며, 학술의 부문을 개척하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고염무는 평생 경세치용의 학문에 유의하고, 학술의 깊고 순수함과 인격의 숭고함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청말에 이르러 그의 정신이 후인들에 의해 부활하게 되었다.3.왕부지의 사학호남성 형양 출신의 왕부지(1619~1692)는 청나라 군대가 호남 지방에 들어오자 군사를 일으켜 대항했다. 그러나 싸움에서 패하고 달아나 반청 운동의 기회를 계속 엿보았고, 이후 42세부터는 은둔하기로 결심하고 형양의 석선산(石船山) 자락에서 저술 활동에만 전념했다. 이에 따라 왕부지를 선산(船山) 선생이라 일컫기도 한다. 명나라 말기의 혼란과 뒤이은 만주족의 중국 지배를 겪어야 했던 왕부지는 특히 명 왕조에 대한 대의명분 의식이 남달랐다. 이민족인 만주족의 중국 지배를 몹시도 싫어했던 왕부지는 중국 민족과 오랑캐를 엄격하게 구별하고자 했다. 그는 심지어 오랑캐는 그 모양만 사람일뿐 금수나 다름없는 존재이며, 인의 도덕을 오랑캐들에게 적용할 수도 없다고까지 보았다. 그는 “중국이 오랑캐를 섬멸해도 불인이 되지 않고, 오랑캐를 속여도 불신이 되지 않으며, 그 땅을 개간하고 빼앗아도 불의가 되지 않는다. 그들을 섬멸하여 우리 백성을 보호하는 일이야말로 인이며, 그들을 속이고 그들이 나쁘다고 보는 것을 행함이 신(信)이고, 그들의 풍속을 중국의 문화로 바꾸고 그들의 땅과 자원을 빼앗아 우리 백성의 힘을 키우는 것이 의(義)이다." 라고 말함으로써 이민족인 만주족의 지배를 받는 현실에 대한 비분강개(悲憤慷慨)를 반영하는 셈이다. 왕부지는 중화 와 오랑캐를 구별하는 화이론(華夷論)의 입장을 무척이나 강조했다. 왕부지의 역사관은 『독통감론(讀通鑑論)』과 『송론(宋論)』에 나타나 있다. 왕부지의 역사관은 중국이 고대의 전설적인 임금 황제 시대 이전에는 오랑캐의 상태에, 복희 이전에는 금수의 상태에 있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한다. 요컨대 그런 상태에서 점차 고도로 발전한 상태로 변화하 한다.
    인문/어학| 2008.11.01| 5페이지| 1,000원| 조회(4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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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윤리과 수업지도안
    《 도덕과 단원 수업 설계안 》단원Ⅱ. 가정?이웃?학교생활 예절대상중 1교과서 범위p.152-297총 시수34지도교사단원의개관1. 단원 설정 이유인간은 누구나 사회를 떠나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인간의 삶은 곧 다른 사람과의 무수한 관계 형성을 통해 영위되는 사회적 삶이다. 따라서 우리가 추구하는 사회의 질서와 안녕, 혹은 개인의 행복을 실현하는 문제도 결국 인간관계의 질서와 조화로움 속에서만 얻을 수 있다.그런데 우리는, 그러한 사회생활 속에서 지켜야 할 예절이 어떠한 것인가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늘날 현대사회가 도덕적 불일치를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하고 보편성을 가진 도덕적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아노미적 상황으로 변함에 따라,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공동체적 배경을 무시하고 개인의 관점에만 치중함으로써 사회적으로 부과된 윤리적 규범의 공동체적 성격을 경시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따라서 이에 대한 학교 교육의 적극적 대처가 요청되고 있는데, 도덕과 교육에서는 그러한 요구에 발맞춰 중학교 각 학년의 거의 모든 주제에서 예절교육과 도덕?윤리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현행 7차 교육과정에서도 중학교 1학년 도덕교육의 강조점을 ‘도덕 문제에 대한 중요성 인식 및 개념 파악과 도덕적 생활에 필요한 규범 및 예절의 습득과 생활화’에 두고 있다.개인의 기본적인 인격은 가족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내면화되고 확립되어간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관계와 생활영역을 확대시켜 2차 집단인 이웃과 학교생활을 경험하는데 여기서 보다 넒은 사회화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볼 때 가정과 이웃 ? 학교생활 영역을 고루 접할 수 있는 청소년시기에 도덕교육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청소년기가 도덕성이 타율적 단계에서 자율적 단계로 넘어가고,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세 가지 생활 영역에서 필요한 예절을 알고, 몸에 익혀 실천해 나가도록 해야만 한다.이 단원은 중학교 1학년에서 고등학교 1학년에 이르는 도덕과 내용에서 유일하게 가정?이웃?학교생활 교6도덕4.우리학교, 우리고장중1도덕Ⅱ.가정?이웃?학교 생활예절1. 행복한 가정2. 친척간의 예절※ 인물학습(이황?공자)3. 이웃 간의 예절4. 학교생활 예절※ 인물학습(신사임당?페스탈로치)중3도덕Ⅱ.가정?이웃?학교생활과 도덕 문제1.진학과 진로 탐색2.가정?친척?이웃생활과도덕문제3. 학교생활과 도덕문제※ 인물학습 (영조?루소)13.사랑하고 공경하며중1기술?가정1. 나와 가족의 이해2. 성과 이성교제3. 나와 가족관계중2사회Ⅵ.개인과 사회의 발전1. 인간의 사회적 성장중2기술?가정Ⅳ.컴퓨터와 생활3)정보검색과 통신예절4. 학생관좋은 도덕과 수업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업상황에서 학습자의 도덕성 발달 특성이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중학교 학생들의 도덕성 발달에 관한 연구 결과(연구책임자 김안중, 연구자 조난심, 신재철, 박천환, “한국의 아동의 도덕성 발달에 관한 연구”, 한국교육개발원, 1982), 콜버그(Kohlberg)의 도덕성 발달의 3수준 6단계에 비추어 볼 때 중학교 1학년 학생은 대부분 2 · 3단계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인습 이전 수준’과 ‘인단원의개관습 수준’의 중간에 있는 것으로, 인습이전수준은 개인적·이기적 단계를 지향하고, 인습수준은 우호적 대인관계를 지향한다. 즉 어떤 학생들은 여전히 자신의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친사회적으로 행동하지만, 일부 다른 학생들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 대한 참된 공감에 의해 동기화되기도 한다.이는 리코나(Lickona)의 도덕적 추리의 6단계 중 3단계인 “타인과의 일치기”(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협동적이고 타인에 주의를 기울이는 행동을 하기 위한 사고 능력을 가짐)와 유사한 단계이다.교사는 학생의 이런 특성을 고려해서 학생들을 인습수준으로 유도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곧 도덕적 민감성의 발달을 촉진하는 수업을 해야 함을 의미한다. 레스트(Rest)는 도덕적 민감성을 “특정 상황 속에 내포된 도덕적 이슈를 지각하고 상황을 , 인접성이 높은 소재를 활용하는 차원에서 도산서원에 다녀오게 하여 좀 더 흥미를 가지고 이황에 대해 탐구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특히 더 강조할 점은, 교사는 학생들의 역할모델로서 교수 과정에서 언행을 신중히 하고 자신부터 예절을 지킬 줄 아는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학교생활예절’의 경우 교사의 e-mail을 매 시간 알려 주어 학생들의 상담에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 또 중학생들은 컴퓨터를 통하여 광활한 사이버 공간에 들어가 무한한 정보와 세상을 만끽하고 있으므로 그들의 도덕의식을 자연스럽게 형성하도록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한 눈높이 교육으로 현대 사회에 맞는 예절 교육(ex. 네티켓, 휴대전화예절)을 실시한다.단원의목표내용 목표지적 목표정의적 목표1. 행복한 가정* 가정의 소중함과 건강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가족 간에 지켜야 할 예절을 설명할 수 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실천하는 자세를 기른다.2. 친척간의 예절* 예절의 의미와 근본, 예절의 변화에 따른 바람직한 자세를 이해하고, 현대사회에서 친척 간에 지켜야 할 바람직한 예절과 조상에 대한 올바른 도리를 설명할 수 있다.* 현대사회와 전통사회의 윤리를 조화롭게 실천하는 자세를 기른다.※ 인물학습* 이황과 공자의 사상과 인품을 알고, 그들의 삶이 주는 교훈의 의미를 열거할 수 있다.* 이황과 공자의 삶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실생활에서 실천하는 자세를 기른다.3. 이웃 간의 예절* 웃어른을 공경해야 하는 이유와 상부상조의 정신을 설명하고, 현대사회에서 이웃생활에 필요한 예절을 설명 할 수 있다.* 진정한 이웃사랑의 의미를 깨닫고, 이웃 간의 예절을 실천하는 자세를 기른다.4. 학교생활 예절* 선생님, 친구, 선후배간에 지켜야 할 예절과 도리, 그리고 올바른 학교 사랑의 방법을 설명 할 수 있다.* 구체적인 학교생활 장면에서 요구되는 제반 예절들을 바르게 실천하고, 학교에 대한 긍지를 지니도록 한다.※ 인물학습* 신사임당과 페스탈로치의 삶이 주는 교훈을 설명할 수 하기 다소 어려울 수 있으므로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한다.?예화자료1. ‘세뱃돈에 대한 고민 사례’ 를 읽히고 세뱃돈에 대한 의견을 발표시킨다.?건전한 친척문화 형성을 위해 '친척끼리 즐길 수 있는 놀이'에 관한 동영상을 보여준다.(출처: 사이버 도덕마당http://user.chollian.net/~kyg1303/frame.htm)?친척 간에 할 수 있는 놀이에 대해 모둠별로 토의해 보고 발표한다.(4)조상에 대한 예절13/34?조상의 의미?나와 조상의 관계?조상 섬김의 의의?조상에 대한 올바른 태도강의식문답식발표식IIEPPT동영상교과서?교과서 빈칸 채워놓기를 하여 나와 조상과의 관계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한다.?KBS ‘풍물기행 세계를 가다’에서 다른 나라의 조상 숭배의 방법을 보여주고 어느 민족이나 조상 섬김의 전통이 있음을 설명한다.(출처 : www.kbs.co.kr)?‘나의 뿌리찾기’(www.poori.net)사이트와 ‘한국인의 족보(www.koreafamily.com)’라는 사이트를 소개한다.14/34?제사(제례)의 정의?현대사회에서의 바람직한 제례?제사의 의의강의식자유연상발표식문답식NIEPPT복사물동영상?종교적인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 않는 가정의 학생들이 있음을 유의하여 지도한다.?제례가 미신과는 구별됨을 사진자료를 곁들여 설명한다.?전통적인 제례와 오늘날의 제례에 대해 비교해보고, 무엇이 있는지 발표하게 한다.?매일경제(2001년 1월 5일자)-이옥자씨의 ‘수필’자료를 나눠주어 현대의 바람직한 제례상을 제시한다.?영화 ‘학생부군신위’라는 영화를 5분 정도 편집하여 보여주고 느낀 점을 발표시킨다. -마치 잔칫집같이 떠들썩한 한국의 상갓집 풍경을반성할 수 있다.인물학습이황15/34?성장배경과 생애?인품?학문과 업적?교훈강의식문답식발표식모둠학습현장견학학습PPT동영상교과서학습지?KBS '초롱이의 인물한국사‘에서 퇴계 이황편을 편집하여 보여주어 흥미를 유발시킨다.(출처 : www.kbs.co.kr)?교과서 -각종 자료를 검색하고 수집해 오게 하여, 모둠w.kbs.co.kr)?모둠 별로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 내가 싫어하는 선생님, 선생님과 관련한 인상 깊은 사건 등을 노트 반쪽 이상 정도로 글을 써보도록 하고, 모둠 토의를 마친 후 잘 쓴 작품에 대해 모둠에서 한 사람을 선정하여 전체 학급에서 발표하게 한다.?‘은사찾기’(http://www.iloveschool.co.kr/)사이트를 소개한다.(1)선생님에 대한 올바른 마음가짐26/34?선생님에 대한 올바른마음가짐과 예절강의식문답식발표식역할극PPT동영상학습지?중앙일보(1999년 5월 17일자) ‘스승의 날의 유래’에 관한 기사를 소개한다.?특종비디오저널 ‘스승의 날 기획 - 우리 선생님을 말한다.’를 편집하여 보여준다.(출처 : www.kbs.co.kr)?선생님은 또 다른 부모임을 인식하게 한다.?역할극을 통해 학생이 교사의 역할을 체험해보게 하고 느낀 점을 발표 하게 한다.(2)친구 및 이성간의 예절27/34?친구의 의미와 중요성?친구간의 예절강의식문답식발표식자유연상토의식모둠학습NIEPPT동영상학습지?TV동화 행복한세상“두 친구”편을 보여주어 동기유발을 한다.?공자의 말과 명심보감의 글귀를 인용한다.?교칙과 우정이라는 플래시를 보여주어 친구 간에도 예절이 필요함을 설명한다.?집단따돌림에 관한 영상을 보여주고 학습지를 통해 그 해결방안을 토의하게 한 후, 발표시킨다.?교사의 E-mail(nanya_1004@daum.net)과 왕따닷컴사이트(http://www.wangtta.com/)를 알려 준다.?전시과제인 우정에 관한 예화를 발표시킨다.(출처 : 『국민일보』 2000년 6월 15일자.)28/34?이성 친구에 대한 이해?이성간에 할 예절강의식문답식토의식모둠학습역할극PPT동영상플래시카드복사물?KBS 성장 드라마 ‘반올림’을 보여주고, 이성친구에 대한 느낀점을 발표시킨다.?이성친구 교제 경험자의 공개청문회를 열어 이성친구의 좋은 점과 불편한 점을 모둠별로 토의하여 발표시킨다.?‘성 역할 갈등’에 대한 플래시 카드를 보여주고 을 모둠별로 토의하여 발표시킨다.?여학)
    교육학| 2008.11.01| 14페이지| 2,000원| 조회(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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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약물남용
    약물남용약물이란 질병을 예방·치료하는 데 사용되는 물질의 총칭이다. 즉 약물은 음식물이 아닌 것으로 신체기능을 변화시킬 수 있는 물질을 말하는데, 약물이란 용어는 오늘날 다음 두 가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하나는 긍정적인 측면으로 약물 본래의 의학적인 목적을 갖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인 측면으로 약물남용으로 인한 자기파괴나 사회파괴를 의미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사회문제로서 약물남용에 대한 정의와 정치경제학적 시각, 그리고 약물남용의 역사적 배경 등을 통하여 약물남용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우리나라에서의 약물남용의 유형과 실태에 대하여 알아보고, 아울러 현행 약물정책의 문제점과 한계는 무엇인지 살펴봄으로써 이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한다.1.약물남용의 정의약물오용이란 약을 제대로 혹은 의사의 지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하지만 약물남용의 경우 쉽게 정의될 수 있는 용어가 아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는데, “한번 사용하기 시작하면 자꾸 사용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의존성). 사용할 때마다 양을 늘리지 않으면 효과가 없으며(내성), 사용을 중지하면 온 몸에 견디기 힘든 이상을 일으키며(금단증상), 개인에게 한정되지 않고 사회에도 해를 끼치는 물질(사회적 피해)”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미국 정신의학회 진단기준인 DSM-IV에서는 다음 네 가지 중 한 가지 이상을 1년 이상 지속시켜 임상적으로 의미 있는 장애나 고통을 초래하는 경우를 남용이라고 하였다. 첫째, 약물 사용으로 인해 가정, 직장, 학교 내에서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할 경우, 둘째, 약물 사용 직후 운전 및 기계조작 등으로 인해 신체적으로 위험한 상황임을 알면서도 이를 사용하는 경우, 셋째, 체포나 구금 등 약물 사용과 관련된 법적 문제의 발생, 넷째, 가정불화, 분쟁 등 사회적 혹은 대인관계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약물을 사용하는 경우 등을 기준으로 하고 있다. 반면 캐나다에서는 “약물의 비의학적 사용”을 약물남용이라고 간단히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들 주목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한 사회에서 불법약물을 사용함으로써 야기된 해악들은 전적으로 약물의 약리학적인 영향이라기보다 오히려 잘못된 약물정책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약물정책의 본질적인 모순과 문제점들은 바로 약물 문제가 이미 개인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구조적 문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첫째, 사회제도와 법령들은 약물의 적법성 기준이 약물사용자의 건강에 미치는 위험성 정도에 따라 결정되는 게 아니다. 왜냐하면 사회의 힘 있는 사람들이 입법이나 로비활동을 통해 힘없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것이다. 에거(Yeager)에 의하면, 만약 특정 약물이 법으로 금지되었다면 그것은 사회 규범화되어 생활방식이나 가치관의 갈등이나 정치적 ·경제적 힘의 배분에 있어서 억압의 도구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둘째, 특정 약물의 사용에 대해 억압적인 정부 정책들은 불법화, 이윤추구, 그리고 범죄활동에 있어서 역기능적인 악순환 고리를 형성해 왔고, 일부 약물의 불법성은 거대한 지하경제를 창출해 왔다.셋째, 사람들이 약물을 사용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 내 불평등을 지적 할 수 있다. 미국의 예로, 미국 내 흑인들, 특히 흑인 청년들은 인종차별로 인해 야기된 빈곤과 질병, 그리고 그런 삶 속으로 자신들을 함몰시키는 타락에 대해 스스로 망각할 수 있는 무언가, 즉 ‘마약에 의한 도취감(환각)’을 갈망하게 되는 것이다.넷째, 사회구조, 특히 정치·경제적 현실은 많은 약물문제를 야기해 왔고, 궁극적으로 약물문제의 해결은 그 문제의 원초적 원인 제공자인 사회의 재조정, 즉 그 사회의 구조적 변화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약물남용 문제는 형사관계 및 우리 사회의 기득권을 통제하고 있는 조직들에 의해 발생되며 또 그들을 위해 통제되는 정치·경제적 문제인 것이다.3.약물남용의 역사적 배경인간이 향정신성 약물을 사용한 역사적 근거는 기원전 4,000년 경 수메르 사람들에 의해 아편이 사용되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그러나 현대적 의미의 약물남용 현대적 의미의 약물남익힌 한국인들을 포섭하여, 필로폰을 제조하여 일본으로 밀수출하였다. 1980년대까지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필로폰 제조국이라는 오명을 쓴 것은 이런 역사 때문이다. 1980년대 후반 정부의 밀조·밀수출 단속이 강화되어, 국내 재고량이 급증하였고, 유흥업소, 및 조직폭력배 등을 중심으로 일반인들에게 마약류가 퍼지게 되었다.우리나라 약물남용의 역사를 개관해 보면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첫째, 항상 특정 약물남용 문제가 발생한 이후에 그것을 규제하기 위한 법률이 제정, 또는 보완됨으로써 약물남용에 대한 법적 통제가 예방보다는 사후통제에 있었다. 둘째, 다양한 약물 및 대용마약들을 통해 대체효과를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 우리나라의 약물남용 문제는 이제 국제적인 약물 유통구조 속에서 고찰하지 않으면 그 내막을 알 수 없을 만큼, 국제적 차원의 복합적인 시각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약물 사용자층이 과거 소수 중독자집단에서 거의 전 국민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4. 남용 약물의 종류와 폐해남용 약물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것에 따라 다음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하나는 뇌 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중추신경 흥분제(각성제)이고, 다른 하나는 뇌 기능을 억제하는 중추신경 억제제이다. 중추신경 흥분제에 속하는 약물은 카페인(커피), 니코틴(담배), 암페타민(필로폰 등), 코카인 등이 있고, 중추신경 억제제에는 아편, 몰핀, 헤로인, 코데인 등과 합법적 마약인 술, 수면제, 진정제, 신경안정제, 흡입제 등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일련의 약물들은 중추신경계를 흥분시키기도 억제시키기도 하며, 때로는 흥분과 억제작용을 동시에 일으키는 변칙적인 작용을 하는데, 이런 약물들을 환각제라고 부르고, 여기에는 LSD, 메스칼린, 대마초, 실로사이빈등이 있다. 그리고 약물의 합법적·비합법적으로 분류하면 합법적 약물로는 본드, 가스 등의 흡입제와 진해제, 각성제 등의 일반의약품이 대부분이고, 불법 약물로는 필로폰, 헤로인, 코카인, 생아편, 대마초, LSD등이 있다. 현재 우리나는 사회적인 덫이다.의학적 문제로는 각각의 약물이 가지고 있는 독성 및 부작용, 불결한 주사 바늘에 의한 합병증과 에이즈 감염, 과량 사용으로 의한 사망을 유발하게 된다. 그리고 여성에게는 태아 약물증후군을 일으켜, 약물 중독아나 정신박약아, 또는 신체 기형아 등을 낳게 된다. 사회적인 문제로 약물남용자는 약물에 의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각종 범죄행위를 일으킨다.결국 약물남용자는 인격의 파탄과 신체·정신적 황폐화 현상을 초래하여 개인, 가정, 국가발전을 저해하는데 , 약물중독자의 치료 성공률이 20% 미만이라는 사실이나 또는 재범률이 50~80%에 이른다는 사실 등은 이런 문제의 해결이 쉽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5. 약물남용의 유형과 실태1) 마약류사범 현황2003년 이후 7000명선이 유지되던 마약류 사범이 2007년 1만명을 넘어섰다. 2007년 적발된 마약류 사범은 1만649명으로 전년도 7711명에 비해 38.1% 증가했다. 특히, 폐해가 가장 큰 필로폰 등 향정사범이 8521명으로 전년(6007명) 대비 41.9% 늘었다.대마사범과 양귀비사범은 1170명과 958명으로 전년도에 비해 각각 40.1%, 10.2% 증가했으며, 향정사범(필로폰 에페드린 LSD 등)과 대마사범(대마초 해쉬쉬)의 구성비는 증가하고 마약사범(헤로인 생아편 코카인) 감소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성별로는 남성이 85.1%, 여성이 14.9%로 나타났고 직업별로는 무직(37.4%), 회사원(8.0%), 노동(4.2%), 농업(4.1%), 서비스업(4.0%), 도소매업(4.0%) 순으로 조사됐다. 사회활동이 가장 활발한 30~40대가 전체 마약류사범의 69.5%를 차지, 장년층 마약류 범죄가 가장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교류가 빈번해지면서 외국인 마약류사범도 급증했다. 적발된 외국인 사범은 28개국 299명으로 전년(19개국 116명) 대비 157.8%나 늘었다.한편 우리나라의 연도별 마약류 사범의 증감현황은 99년 1만589명이 적발, 최대를 기록한 뒤 2002년까지 4년1.8흡연22819.667241.558643.931421.790032.3자료: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2000대부분의 학생들은 약물이 건강에 해롭다고 느끼고 있었으나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면 사용할 수 있다”, “약물을 이용해 이성 친구에게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성적 충동을 느낀다.”는 등의 응답이 많은 것으로 조사돼, 청소년들의 약물인식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한편 청소년 약물남용은 청소년비행과도 연결되는데, 청소년비행은 약물남용 경험이 많을 수록 빈도가 높아진다.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약물은 술, 다음이 진통제였다. 담배도 청소년들이 많이 사용하는 약물 중 하나로, 술은 사용경험은 높지만 습관적 사용도는 낮은데 반해 담배는 술보다는 사용경험은 낮지만 습관적 사용경험이 매우 높은 약물이다. 그 외 각성제, 수면제, 본드, 부탄가스, 신나 등 약물들의 사용경험은 5~10% 내외였다.청소년 약물남용의 주요 특성들로는, 첫째 약물남용의 다양성, 지역적 무분포성, 저 연령화 현상을 들 수 있고, 마약을 제외한 전 약물에서 약물남용 청소년의 숫자가 증가추세에 있다. 둘째, 약물의 최초사용시기도 10세전후로, 커피, 콜라, 드링크제 등 흔히 구할 수 있는 약물을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약물경험도가 높을수록 비행 정도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넷째, 청소년 약물남용의 경로는 비행친구와의 접촉과 부모의 음주 및 흡연태도, 관심도 등이 약물남용과 관련성이 높게 나타나 자녀에 대한 부모의 각별한 관심이 요청되고 있다.3) 알코올 중독알코올은 흔히 가장 잘못 인식되고 있는 약물이다. 알코올은 중추신경 억제제이다. 중추 신경계 억제제제는 이성적인 판단과 공간적인 지각판단, 신체의 이동과 같은 뇌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화학물질이다. 따라서 알코올은 사람의 감정 상태를 강화시키고, 억제력을 떨어뜨리고,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알코올 중독이나 알코올 중독자에 관한 어떤 공식적인 정의는 없다. 그러나 가장 정평 있는 정의는 다음의 세 가 된다.
    사회과학| 2008.05.04| 7페이지| 1,500원| 조회(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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