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개화기 문학을 접하며2Ⅱ. 개화기 문학의 정의와 개념3Ⅲ. 개화기 문학의 시대 및 사상적 배경3〔1〕역사, 사회적 상황4〔2〕문학사적 배경7〔3〕문학사의 변모양상9Ⅳ. 개화사상의 전개과정10〔1〕형성기의 개화사상10〔2〕초기의 개화사상 11〔3〕후기의 개화사상 12Ⅴ. 개화기 문학의 특징과 의의13〔1〕사상사적 조류: 개화 VS 위정척사14Ⅵ. 개화의 개념과 개화기의 기점 문제15〔1〕근대의 개념과 근대문학의 기점 문제16Ⅶ. 개화기 문학의 시대적 구분과 장르의 구분17〔1〕시17(1) 가사 양식의 변화18(2) 동학 가사와 의병가사 19〔2〕소설23(1) 이광수24(2) 무정25〔3〕창극27〔4〕신파극27〔5〕비평27〔6〕장르별 작가와 작품28Ⅷ. 나오면서30Ⅰ. 개화기 문학을 접하며이번 개화기 문학의 리포트로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자료가 있었으며 그것은 아직도 많은 것들이 규정되지 않아 논란이 남아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그 시기구분에서부터 많은 견해가 충돌하고 있으며, 조사에 따르면 그 장르 구분에 있어서도 경계의 애매함은 물론, 장르를 구분하는 자체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문학 안에 담겨진 내용이나 사상, 문체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사실상 그 기준이 매우 애매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에 맞추자는 것은 아니나, 분명히 어떠한 양상의, 완전히 다른, 예를 들어 운문과 산문처럼 최소한의 차이가 보이는 시기가 있고, 그러한 첫 작품이 나온다면 바로 그때를 구분의 기준으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예전에 배운 문학론에 대한 내 견해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을 몇 장 안 되는 종이에 요약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작업이었다. 더욱이 개화기에 대한 개괄적 내용을 포괄해야 한다는 제약 아래에서는 더욱 모자라는 지면이다. 각 부분별 장르의 조사는 통시적으로 나온 책보다는 분야별로 따로 조사하여 이루어졌으며, 그 책 또한 각 작가의 개인적 견해가 들어있어, 어느 정도 필자의 기준에 편향된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가장 많이 조사8C에 두드러진 형태를 갖추어 나타났고, 기존 지배질서와 이념에 위협적인 존재로 부각되었다. 이 시기의 새로운 사회 변화는 특히 봉건적 신분질서의 동요와 화폐경제의 발달로 인한 상업자본의 축적 및 새로운 계층의 대두, 새로운 질서를 갈망하는 민중 기질의 고양 등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상들은 국가적 정책과 유교적 가치체계에 대한 전면적인 변혁을 실현하는 단계로는 발전하지도 확산되지도 못했다.한편 조선사회에 대한 이러한 일면적인 회의와 그에 따른 변혁에의 주장은 실학과 상이하지만 조선후기 사회에서 자행된 세도정치의 비리와 삼정 수취법의 문란으로 인해 기본적인 생존의 터전마저 유린당한 백성들에 의해 집단적으로 표명된 내용의 것이기도 하다. 이는 1862년 진주를 기점으로 하여 산발적으로 거듭되어 나타난 민란을 통해 드러났다. 조선 사회의 봉건적 질서와 가치체계에 대한 회의로부터 비롯되는 변혁에의 이러한 신념과 주장은 이같이 전국가적으로 널리 확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층적 이해를 넘어 하나의 집중된 힘으로 이의 실현을 효과적으로 성취시키지는 못했다. 그러면서 조선사회는 다시 밖에서 작용해 오는 비정한 제국주의의 표적이 되고 만다.① 제국주의의 침탈과 문호 개방제국주의의 침탈정책은 우선 조선에 대한 통상요구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협에도 불구하고 당시 조선은 철저한 쇄국정책으로 일관했고 그것은 서양제국의 무력적 도발을 필연적으로 이끌었다. 병인양요(1866)와 신미양요(1871)가 그것이다. 그리고는 끝내 일찍 문호를 개방하여 부국강병책으로 서양의 신문명을 적극 수용한 일제에게 강제적으로 조선의 문호를 개방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불평등한 외교적 거래를 국가적으로 허용한 병자수호조약(1876)이다. 이 조약으로 일제는 조선의 정치, 군사, 경제적 이권 침탈의 거점을 확보하고 점차적으로 조선에 대한 강압정책을 실현시키는 반면, 조선은 자유경쟁의 원리에 의한 자본주의적 세계질서에 강제적으로 편의 성품이 곧 진리와 합치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기도 하다. 곧 문학이 교훈적 도구라는 유교적 문학관은 조선조 후기 김만중, 홍대용 등을 거치면서 변모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인식으로 인해 실제 창작에서도 유교적 이상을 표현하는 구소설의 특징을 벗어나 삶의 진실이나 삶의 질곡 모순을 직시하는 소설로 변모되어가고 있었다.개화기가 되면서 문학의 기능에 대한 인식에도 중요한 변화가 일어났다. 그 직전까지 소설이 달성했던 인간본성의 생동하는 표출은 시대의 격변속에서 그 정당성과 현실적 공리성이 의심받게 되었다. 모든 문학행위는 개인적인 창의적인 서술이나 사사로운 감정의 표현에 머무를 수가 없었다. 당시의 시대적 격변에 대해 문학은 어떤 형태로든 태도를 표명하게 되었고 이것은 문학이 그 자체의 목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하는 것이었다. 개화기에 있어 문학은 시대의 문제에 대한 지은이의 일정한 태도를 표명하는 도구로 인식되었다.개화기의 작품들은 서술방법과 표현기교의 면에서 구태를 벗지 못한 것도 있고, 근대소설적인 자질을 지닌 것도 있다. 개화기 문학을 대상으로한 지금까지의 연구 동향을 보면 개화기 문학의 형식상의 특질을 고전소설의 연장선상에 놓고 보는 견해와 반대로 근대소설적으로 이어보려는 견해로 양분되고 있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보아 한국의 근대화의 기점을 개화기로 잡는데는 무리가 없다. 그러나 개화기는 개화논리 속에서 신구세력간의 대립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던 시대였으므로 개화기 문학의 양식화 방법도 대체로 신구의 요소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상태로 보아야 한다. 개화기 문학은 주제의식의 면에서나 창작방법의 면에서나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 때로는 팽팽하게 대립하는 것이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를 억지로 단일한 주제나 서술태도의 경향으로 몰아가는 것은 작품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Ⅳ. 개화사상의 전개과정〔1〕형성기의 개화사상개화의 사상은 1853~60년대에 오경석?박규수?유대치등 선구자들에 의해띠게 되었다.② 작품 속의 문장이 과거의 문어체(文語體)에서 구어체(口語體)로 변화하면서 언문일치의 문장으로 바뀌어 갔다.(유길준 ?서유견문?: 국한문체, 독립신문 : 국문체-그러나 서양인편의 위주)③ 표현 형태가 과거의 설명 위주에서 점차 묘사 위주로 전환되어 갔다.④ 번역 및 번안 소설이 유행하였다.⑤ 비현실적 내용에서 탈피하여 실제 현실을 그리기 시작했으며, 자주 정신의 각성과 계몽 및 개화 사상등의 문학의 주요 내용을 이루었다.⑥ 개화기에 받아들인 서구문학은, 대부분이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이므로 일본 문화에 굴절되고 변형된 형태를 띠기도 한다.⑦ 시가에서는 창가와 신체시, 산문에서는 신소설, 역사전기문학 등이 등장했다.⑧ 자주 독립과 애국을 부르짖던 구한말의 문학은, 국권 상실 후에는 국민 계몽의 성격을 띠다가 점차 근대 문학을 향하여 변모해 갔다.⑨ 당시 문예 담당자들은 얕고 넓은 지식을 지니는 소위 ‘백과사전적 지식인’ 이었고, 이 시기 문예란 대체로 요즈음의 문예 개념보다는 폭넓은 범위를 포괄하는 광의의 문예라고 할 수 있다. 광의의 문예에 대한 지식 뿐 아니라 문예를 둘러싼 많은 잡학에 관심이 있는 반면 문예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직업의식이 없었던 이들이 만들어 낸 초창기의 문학사는 박물학적일 수밖에 없다.⑩ 고대 문학과 근대 문학의 교량적 구실을 한 과도기적 문학이었다.⑪ 고대 문학과 근대 문학의 교량적 구실을 하는 과도기 또는 발전적 계승기라는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다.〔1〕사상사적 조류: 개화 VS 위정척사일반적으로 개화기라 불리는 시기는 개화사상이 전면적으로 한 시대를 이끌어 간 시기라는 의미보다는 개화사상의 출현기 또는 확산기라고 보는 것이 사실에 가깝다. 이 시기에는 개화를 주장하는 사조가 그것이 없던 시기에 비해 현저하기는 하였지만 그렇다고 하여 오래 지녀온 유교적 왕조 중심주의가 일거에 사라진 것은 아니였으며, 오히려 왕조보위적 사고가 더 강력해진 시기이기도 하다.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대한제국 시기에 이르기까지 조선 사회 여 정리를 하도록 하겠다. 시대 구분은 소설과 동일하며, 장르로는 대체적으로 공통된 견해인 창가, 개화기 가사, 신체시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개화기 시가의 특징시기적으로 작가들의 성향은 위의 개화기 소설과 비슷한 양상을 가진다. 더욱이 그 표현 형식이 운문이냐 산문이냐에 따라 다를 뿐, 그 사상이나 내용은 전체적으로 같은 모습을 지닌다. 과거의 형식을 타파하는 신소설이 나왔듯. 여기서도 그 형식이나 율격에서 많은 발전을 보였고, 반대로 소설이 아직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듯, 시가도 마찬가지로 완전한 탈피를 이루지 못하였다. 이들 시가는 찬송가와 번역시의 영향을 받아 시형이나 가형이 변한 것들이나 가사, 시조, 민요등의 전통 형식에 뿌리를 둔 변용양식등으로 구분되어질 수도 있다.㉡ 개화기 시가의 갈래개화기 시가의 갈래는 위에서 언급했듯, 다양하게 나눌 수 있으나 간단히 개화기 가사, 창가, 신체시 등으로 나누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것은 형식이라는 기준에 근거하여 나눈 것으로 가장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되어지는 시에 대한 구분이다. 위와 같은 분류는 창가에 앞서 새로 개화가사를 설정한 것으로 조지훈에서 비롯된 것이다. “1964년 '문학춘추' 6월호부터 연재되었던 '한국 현대 시문학사'에서 그가 주장한 것이다. 갑오경장을 전후하여 1890년대를 풍미한 근대화의 의욕은 사회, 문화의 각 분야에 걸쳐서 일어났다. 개화 가사란 이런 시대정신을 표현하기 위하여 민중 속에서 생겨난 시가 형식으로 전통적인 가사 형식에 새로운 개화사상을 담은 것이다. 조지훈은 개화 가사의 최초의 작품으로 '독닙신문'제 3호에 발표된 '셔울 슌쳥 골 최돈셩의 글'을 듣고, 개화 가사에서 관형구 '개화'의 제약적 의미와 그 변화 과정에 대하여, '가사의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그 가사는 진짜 가사가 되지 않고 새로운 가요인 창가로 변성되었던 것이다'라 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개화 가사는 전총가사의 형식을 답습했으면서도 '개화'라는 관형구의 제약적 의미 때문에 전통 가사도 아니론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