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감상문 >침묵의 봄- 레이첼 카슨 -레이첼 카슨2년 전 쯤 TV에서 소개되어 구입했다가 읽게 된 책이다. 어릴 적 도시에 사는 또래들보다는 비교적 자연과 친숙하게 자란 덕인지 평소에도 환경보호에 조금 관심이 있었고 그래서 더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상세하고 전문적이게, 그러나 어렵지 않은 내용이었다. 책을 읽어 내려가며 감탄을 하면서도 동시에 편리함을 좇아 자연의 훼손과 오염에 외면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에 가감 없이 지적당하며 반성하기도 했다.내가 성인이 되면서 환경문제는 더욱 부각되었지만 산업의 발달 또한 급격히 이루어지며 산업발달과 환경문제라는 상반된 두 의견의 대립은 시간이 갈수록 팽팽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자연이상현상이 일어나면서 환경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의식화 되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모르겠지만 환경훼손에 대한 결과가 인간생활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작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올해 2020년 일어났는데, 전 세계가 단기간에 위협을 받은 코로나19사태였다. 영화에서나 보았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일들, 바이러스가 세계적으로 급속도로 퍼지면서 마스크착용이 일상이 된 후 지난날의 일상이었던 생활은 꿈꾸기가 어려워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난 곳이 있는데 바로 자연이었다. 지구상에 가장 늦게 나타났지만 그 전의 여느 생명체들과는 다르게 서로 상생하지 않고 독단적으로 지구를 지배하며 마음대로 써오던 인간들은 본인들이 만들어낸 것에 의해 결국 큰 피해를 입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인간들의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마구잡이로 누비며 다니다가 각자의 공간에서 활동범위를 최소화하며 살아가야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편한 생활을 할 때는 모든 생명체들이 자신의 자리를 잃고 위협받으며 살아갔는데 인간이 불편하고 위협을 받으니 동물, 식물 할 것 없이 스스로 회복하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과 같은 현상들이 지구 곳곳에서 일어난 것이다.물과 하늘은 맑아졌으며 정화된 환경 속에 다시금 동식물들이 생명의 숨결을 찾아 하나 둘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공간에 동물들이 침범했다고 하는 의견들도 종종 있었지만 인간에 의해 빼앗겼던 본인들의 자리를 찾아가는 것, 그게 더 맞는 의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긴 시간을 자연을 위협하며 살았는데 고작 1년도 안 되는 시간을 인간들이 숨죽여 지낸다고 회복의 기미가 보이다니 그동안 인간의 이기심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었는가를 반성할 필요가 있었다.이 책의 저자 레이첼 카슨은 몇 십 년 전부터 이러한 목소리를 냈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었다. 완벽에 가까운 자료나 증거에도 인간들은 편의와 이익을 위해, 한편으로는 무지함으로 살아왔고 이에 대해 레이첼 카슨이 우려하며 경고하던 일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쓰나미와 같은 갑작스런 자연재해 등으로 자연은 인간에게 경각심을 일으키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의 경고를 해왔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꿈쩍 않는 인간들에게 마침내 더 큰 경고이자 특단의 조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아주 오랜 기간 생기가 넘쳤고 ‘말’이 아닌 다양한 언어를 통해 의사소통해오던 자연은 자신만의 일방적인 언어로 일관하던 인간들에 의해 점점 침묵을 해왔고 올해의 큰 이슈로 인해 인간들이 침묵하자 다시 생기를 찾기 위한 준비를 하는 듯 했다.
< 독서 감상문 >서양 미술사THE STORY OF ART- E.H. 곰브리치 -E.H. 곰브리치우리는 학교에서 교과서로 배우는 것을 버거워한다. 하지만 게임이라든지 만화 등으로 접한다면 자연스럽게 술술 익힌다. 내가 어릴 적에 ‘꾸러기 수비대’라는 만화영화가 있었다. 12간지에 해당하는 캐릭터들이 나오는 만화영화였는데 내 나이 또래의 아이들 대부분은 어릴 적 그 만화 주제곡을 통해 자연스럽게 12간지 순서와 그에 해당하는 한자음까지 익혔을 것이다. 목표는 같지만 그 과정이 학습이나 지식습득이 주가 되는 것과 흥미가 주가 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한국어로 번역된 ‘서양미술사’는 원 제목인 ‘THE STORY OF ART’, 즉 ‘미술이야기’가 더 잘 어울리는 책이다. ‘미술사’하면 뭔가 공부를 해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지만 ‘미술이야기’라고 하면 조금 더 가볍고 흥미로울 것 같은 느낌인데, 전공서적 버금갈 만큼의 크고 두꺼운 겉모습에서 느껴지는 위압감과 달리 그 내용은 진짜 ‘이야기’에 가깝다. 그래서인지 내용이 방대한 것 치고는 술술 익힌다. 어떤 양식이 몇 년도에 생겨났으며 그에 해당하는 화가나 조각가가 누가 있는가의 나열이 아니라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거시적인 이야기 속에서 어떤 양식이 발생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며 자연스럽게 등장인물과 같이 예술가들을 등장시키면서 그에 대한 작품 등을 설명해줌으로써 해당 양식과 예술가와 그 예술가의 작품과 화풍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이해하게 되는 책이다. 마치 가계도와 같이 한국의 조선시대 왕들을 ‘태정태세문단세..’로 외우는 것보다 드라마를 통해 접한다면 누구의 아들은 누구이고 각각 그 성격들은 어떠했는지 등의 세세한 것들까지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듯이 말이다. 학창시절 그렇게 외워도 머릿속에서 조각처럼 따로 떠다니던 것들이 이 책 한 권을 통해 자연스럽게 미술의 역사가 머릿속에 정리되었다.우리가 흔히 거장이라고 부른다거나 명화라고 부르는 것들을 보면서 가끔은 왜 거장이고 왜 명화라고 불리는 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있었다. 이 책을 보면서 그 의문이 어느 정도 풀렸다. 마치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해주듯이 설명해놓았기 때문이다. 명화를 보면서도 그냥 잘 그렸다고만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던 것들을 그렇게 그리게 된 시대적인 배경과 예술가 개인의 배경, 그리고 최대한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한 저자의 의견을 들으면서 같은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기존에는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고 보는 시각 자체도 바뀜으로써 위대하다고 평가되는 이유에 대해 납득하게 되었다. 마치 마트에서 손쉽게 살 수 있기도 하고 매일 먹는 밥이기에 쉽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씨를 뿌리고 키우고 추수하는 농사의 수고와 그렇게 얻은 쌀을 밥으로 짓는 전 과정에 대해 자세히 듣는다면 앞에 놓인 밥의 형태는 변함이 없는데 밥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우리가 밥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듯이 말이다.시대에 따라 작품에 대한 평가는 계속 바뀐다. 그 시대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작품들이 훗날에 가치를 인정받는 경우가 많다. 미술이 시작된 이래로 아주 먼 훗날에 살고 있는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과정과 결과들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책에서도 말하고 있지만 그래서 인지 현대인들은 갈수록 이해하기 힘들고 난해한 작품들에 대해서도 과거의 비평가들만큼의 비평은 하지 않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작품 또한 훗날에는 위대한 작품이 될 지도 모르며 그렇다면 지금 비평하는 자신의 시각은 작품을 볼 줄 모르는 형편없는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더 개성이 강한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예술가들이 많아지고 다양성이 더 광범위해지고 있으며 그로인해 여러 작품에서 자극받는 속도 또한 빨라지고 이로 인해 또 더 다양한 작품이 탄생하는 등 과거에 시대의 특성으로 나누던 양식의 의미도 희미해져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예술가에게 주어지는 틀은 점점 사라져 예술가들은 표현에 있어서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 예술가의 경계 또한 희미해져갈지도 모른다. 직업이 화가나 조각가 등이 아니더라도 누구든지 훌륭한 예술작품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 독서 감상문 >부의 본능(슈퍼리치가 되는 9가지 방법)- 브라운 스톤 -브라운 스톤‘지피지기 백전불태’. 손자병법에 나오는 말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 한 구절에 이 책의 모든 내용이 다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지피지기 백전불패’라는 백번 싸워도 지지 않는 다는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한 단어의 차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그 내용에 담긴 의미에 집중할 필요가 있었다.어떻게 하면 내가가진 단지에 물을 가득 채울 수 있는 가가 아닌 어떻게 하면 물이 새지 않는 튼튼하고 견고한 단지를 만들 수 있는가 또는 고를 수 있는 가부터 알려주는 책이다. 물론 본인의 경험에 의한 투자방법도 소개되지만 이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것은 돈이 새지 않게 하는 법과 돈을 불리기 위한 종자돈을 모으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다. 즉 돈을 잘 벌기 위해서는 튼튼한 기초가 중요하며 거기에 드는 시간과 노력을 감내한 후에 모든 투자가 시작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부자가 되기 위해서 ‘해야 할 것’보다 먼저 실행해야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이 책은 ‘돈을 버는 것’보다 ‘잃지 않는 법’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저자는 현재 본인이 꿈꾸던 삶을 살고 있다. 이 책이 신뢰가 가는 것도 복잡한 이론의 나열이 아니라 꿈꾸던 삶을 이룰 수 있었던 본인의 경험을 위주로 쓰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에는 본인이 실패를 통해 배운 경험이 간략히 소개되고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에 대한 설명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무리 짓는 본능의 오류, 영토 본능의 오류, 쾌락 본능의 오류, 근시안적 본능의 오류, 손실공포 본능의 오류, 과시 본능의 오류, 도사 환상의 오류, 마녀 환상의 오류, 인식체계의 오류. 이 9가지에 대한 장황한 설명 뒤 부의 본능을 깨우기 위한 8가지 도구 등이 다시 짧게 소개되고 실패 유형별 맞춤 솔루션이 소개되고 미래 상황에 대한 저자의 의견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이 중 나는 주된 내용보다 실패 유형에 대한 짤막한 소개에 더 관심이 갔다. 빚내서 소비한다거나 돈복 없다고 자포자기 하거나 가난을 남 탓으로 돌리고 월급이 적다고 한탄하며 한탕주의에 목을 매는 등 우리들의 일상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모든 원인을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먼저 찾으라는 것이다. 또한 지금 처해있는 자신의 ‘상황’이 아니라 자신이 주어진 상황에 대하고 있는 ‘자세’를 먼저 탓하고 돌아보라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대부분의 재테크 서적들과는 달리 그렇지 않아도 하지 말라는 것도 많은데 심지어 모든 원인을 본인에게서 찾으라니, 다소 듣기 거북할지 모르나 현실을 직시할 수 있게 냉철한 이야기만을 해주고 있었다. 독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말들이 아닌 독자들을 위하는 진짜 필요한 말들을 말이다. 그래서인지 책이 생각보다 두껍지도 않고 재테크 초보자나 재테크에 관심 없는 사람들도 쉽게 읽힐 만큼 어렵지 않은 내용이지만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배운 게 많다는 생각이 든다.대부분의 사람들은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고 살이 빠지기를 바라며 짧은 시간에 적은 돈으로 일확천금이 생기기를 바란다. 그래서 다이어트 약이 나오고 복권이 성행하며 쉽게 성공할 수 있을 법한 것들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의 결과는 성공보다는 실패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사람들은 거기서 또 실패했다는 좌절을 느끼고는 폭식을 하여 요요가 오고 소비를 하며 일탈을 하는 등 실패하기 좋은 행동들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아껴야하고 희생하며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지만 이러한 내용들은 흘려듣고 성공한 내용에만 집중하여 그것만을 따라하는 사람들이 생길 것 같은 불안에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 독서 감상문 >좋은지나쁜지누가아는가- 류시화 -류시화류시화 시인의 산문을 보다보면 마치 목욕탕에 가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든다. 내가 사회에서 지니고 있는 역할을 모두 벗어 내려놓고 온전한 나만 남기고서 그것을 깨끗하게 정화하고 상쾌한 기분이 되어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그런 목욕탕. 바쁘게 돌아가는 지친 삶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책이기도 하지만 그 방법이 전문적인 문장이라기보다는 시인이 경험하고 느끼고 생각한 그의 영혼 그 자체를 내보임으로써 우리 자신도 스스로 우리의 영혼을 돌아볼 수 있게 한다. 깨끗한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을 하고 머리를 단정하게 하라는 책들과는 달리 그 껍데기들 속의 내 몸이 깨끗한지 어떠한지를 보고 그 알맹이부터 깨끗하게 씻어내게 하는 그런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시인이라 그런지 산문도 늘 간결하다. 하나의 주제가 웬만하면 5페이지 전후를 맴돌아서 쉽게 읽힌다. 하지만 그 짧은 글 속에 자신의 수많은 경험과 지식을 녹여 깨달음과 공감을 자아낸다. 마치 산문으로 시를 쓰듯 함축적으로. 내가 류시화 시인의 산문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이 책은 그의 저서 중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과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를 섞어 놓은 듯한, 두 책의 중간쯤의 내용들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이 책에 적힌 글들은 게으른 나를 움직이게 하고 성장하게끔 한다. 게으르면 성공하지 못한 자라는 등의 채찍질이 아니라 ‘나는 이렇게 하고 이 사람은 이렇게 했더니 이런 일을 경험했어.’ 라고 끊임없이 경험담들을 이야기하면서 내 스스로가 구미가 당겨 움직이게끔 말이다. 마치 엄마들이 ‘밥 먹어야 큰다.’, ‘밥 다 먹어야 이거할 수 있어.’라는 강압보다는 엄마 스스로가 밥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보고 있는 사람이 군침이 흘러서 밥이 먹고 싶게 하듯이 말이다.이 책을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제목에서 의미하는 바와 같이 ‘겉만 보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뻔한 이야기 같지만 뻔하지 않은 것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가 실천하며 살기가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갠지스 강의 ‘짜이’라는 생강차 종류를 팔던 노인의 이야기는 이것을 잘 나타내주었다. 작가는 지정석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갠지스 강이 보이는 계단 어귀에 자신만의 자리가 있다고 한다. 그리고 늘 짜이를 파는 노인에게서 맛이 기가 막힌 짜이를 한 잔 사서 그것을 마시며 계단에 앉아 해를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노인이 찻물로 더러운 갠지스강물을 쓰는 것을 알기 전 까지는. 친분이 쌓인 노인을 모른척할 수가 없어서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가는 것 자체를 포기했다가 몇 년 후 다시 그곳을 찾고 노인과의 정을 무시할 수 없어 더러운 것을 알면서도 차를 사마셨다고 한다. 여전히 맛이 좋은 것은 희한하다고 생각하면서. 그러고는 조심스레 노인에게 더러운 강물을 쓰는 것에 대해 언급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억울하다는 변명이었다. 거짓말까지 하는 노인이 안타까웠지만 쌓인 정이 있어 설득을 하던 차에 갠지스 강가에 깨끗하기로 손꼽히는 지하수가 나오는 수도가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 모습을 강물을 뜨는 것이라 착각한 것이다. 노인이 향하는 방향만 보고 스스로의 판단에 갇혀 남을 멋대로 정의했던 자신을 뉘우쳤고, 그 속에 담긴 진실을 볼 줄 몰랐던 자신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는 우리들과 결코 멀지 않은 이야기일 것이다.
< 독서 감상문 >나는 왜너가 아니고나인가- 시애틀 추장 외 -시애틀 추장 외물질적인 개발이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는지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내면과 의식 같은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들에 주목하고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내가 느낀 것은 결국 먼 길을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인간은 원래 그런 삶을 살던 존재였지만 그것과 멀어지며 잊고 살다가 다시 그런 삶을 찾아다니는 모습이 꼭 그랬다.미타쿠예 오야신.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뜻을 지닌 단어로 인디언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다. 동물, 식물, 곤충과 인간 등 생명가진 모든 것들은 어머니 대지로부터 나왔으며 우리 모두는 한 형제이자 친척, 가족이라는 것이다. 대지로부터 태어난 우리는 생을 다하면 다시 대지로 돌아가 거름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고 그렇게 세상은 순환된다. 과거의 풀잎이나 들소나 새였던 것들이 생을 마치고 대지로 돌아가 거름이 되어 또 다른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키면 그것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내가 너의 일부이고 네가 나의 일부이다. 또한 살아있는 동안에도 맑은 공기를 서로 공유하며 내가 마신 숨을 너도 마신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인디언들은 과거 조상들로부터 배워왔고 자녀들에게 가르쳐왔다. 인디언들에게 그것은 살아있는 나 자신이 살아 숨 쉬는 자연 속에서 여러 생명들과 직접 소통하면서도 깨달을 수 있는 진리였다.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발전이라는 말로 생명체 중 가장 늦게 나타난 인간이라는 종들은 자신들 외의 것들을 지배하고자 했다. 가장 마지막에 출현해 말을 하고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받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기존의 것들을 보호해야할 의무는 사라지고 특권으로만 남아 권력을 행사하며 모든 것들 중 가장 위에 서 있으려고 하기 시작했다. 원을 그리며 순환을 이어가야하는 생태계에서 그렇게 인간은 원에서 이탈을 하고 생태계의 순환의 고리는 예전만큼 원활하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인간은 마구잡이로 그 순환을 파괴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은 인디언들의 삶속에 녹아 있는 일상 지식이었지만 그들을 침략해온 이들은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는 그들을 미개하다고 판단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생태계의 연결고리들이 영혼의 눈이 닫힌 무지한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탓이었을 것이다.인디언들은 매일 해가 뜨기 전 강물에 몸을 깨끗이 씻고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기도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했고 동물들과 교감하고 식물들과 무언의 의사소통을 하며 영적인 차원이 높은 단계로 가는 삶을 살았다. 인디언들을 관찰하는 입장인 제3자에 의해 쓰인 책이 아닌 인디언들 본인들이 직접 한 말들로 기록되어있는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시대에서 수많은 세월동안 명상을 하고 그로인해 성찰하고 깨달음에 이른 현자가 하는 말 같은 연설을 그들은 하고 있었다. 그들이 오랜 세월 동안 고행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그들의 일상이 영적인 차원과 늘 교감하는 삶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삶을 살던 인디언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볼 줄 모르던 무지한 침략자들에 의해 높은 차원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점점 잃어갔다.책 속 대부분의 연설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가슴을 열고 말하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 책에 기록된 그들의 연설을 읽다보면 알 수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렵지 않고 단순한 말이지만 깊은 울림과 깨달음이 문장마다 단어마다 느껴지는 것은 가슴을 열고 깊숙하게 숨어있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한 영혼으로 진실의 말만 하는 이유이기 때문일 것이다.인디언들을 침략했던 이들은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좇다가 태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며 신과 가장 가까이서 가장 순수한 방법으로 소통하던 그들에게서 더 이상 영적으로 세상의 무한한 에너지와 소통하여 지혜를 얻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게 만들어버렸다. 지금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마야의 마추픽추나 이집트의 피라미드 같은 것들 또한 고대 인디언들의 유산이지만 그런 위대한 유산을 만들 수 있었던 지혜를 얻는 방법을 아는 인디언들과 그들의 사상과 문화를 침략자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파괴해버렸다. 그러고서 이제야 영적인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더 높은 차원에 도달 해보려한다. 하지만 서로 소통하며 지혜를 확장시키는 방법을 알고 있는 우리보다 먼저 태어난 인간 이외의 생명가진 모든 지혜로운 종들을 보호하기는커녕 멸종시키고 괴롭히고 있다. 그러면서 영적인 차원에 도달하려고 한들 인간의 힘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인디언들이 그들의 땅을 빼앗기고 그들의 부족이 학살되면서도 본인들이 처한 상황보다 자연에 대한 경고를 먼저 할 만큼이었지만 듣지 않았고 오히려 인디언들을 학살함으로써 이제 그런 경고조차 해줄 사람도 거의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생명 없는 것들을 개발하고 만들어내며 그것들에 둘러싸인 우리는 생명에서 생명으로 의사소통하며 에너지를 확산하던 과거와는 반대로 스스로 지닌 에너지조차 소멸시켜가고 있다. 인간의 욕심으로 자연의 순환을 거스르고 파괴하며 서로 연결된 우리의 친척인 동식물 등을 죽이는 것을 이제라도 멈춰야한다고 인디언들은 경고해왔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인간은 스스로 지닌 에너지를 소생시켜줄 것 하나 남지 않은 세상에 홀로 남겨져 소멸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대지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라 여기며 마음대로 써대는 우리와는 달리 후손들에게 잠시 빌린 것이라 잘 쓰고 돌려주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았던 인디언들의 생각이 이렇게 책으로나마 남아있다는 사실이 참 다행일 뿐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이렇게 다른 마음으로 바라본 결과는 지금 우리들이 몸 소 겪고 있다. 인디언들이 오랜 세월 잘 보존해온 대지를 마구잡이로 사용한 결과로 그들이 경고하던 세상이 우리에게 닥쳐왔음에도 우리는 자각하지 못하는 듯 앞만 보며 달리고 있다. 당장 나만 생각하면서 오늘만 보며 사는 현대의 우리들은 7대까지 물려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연을 보살피며 살았던 인디언들의 마음을 이제라도 되찾고 배울 수 있도록 일단 그들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고 앞만 보고 달리던 걸음부터 멈추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