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끝나지 않은 찬란한 흐름보건관리학과 20050784 김지혜우리는 소설을 접할 때 종종 난관에 봉착한다. 이는 누구나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는 소설이 있는가 하면 몇 번을 다시 읽고 다시 보아야 이해가 가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설을 읽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느끼기에 어지럽고 무질서한 문학들이 어느 한 시기에 유행처럼 번져나갔다. 예술사조는 변하고 또 변한다. 그 시기의 사회적인 배경에 따라 변화한다고 볼 수 있다. 고대, 중세, 근대의 예술사조가 각각 정반대의 특성을 지니기도 하는 것을 보면 시기별 굵직굵직한 흐름에 따라 예술사조는 변화한다. 이러한 흐름에 의해 탄생한 것이 바로 모더니즘이다. 요즘 우리들의 입에 자주 오르고 내리지만 어렵기만 한 모더니즘에 대해 모더니즘 문학작품을 예로 들어 쉽게 설명하고자 한다. 굳이 문학작품을 예로 설명하고자 함은 뒤에서 설명하겠다. 모더니즘이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그 개념을 정의 내려지지만 이 만큼 정의 내려지기 힘든 용어는 없다. 더욱이 모더니즘 이라는 용어는 쓰는 나라마다 다른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그만큼 뿌리를 정확히 찾아내고 뚜렷한 시기를 찾아내기가 힘들다는 뜻이다. 모더니즘의 시기는 이론가들의 연대 규정이 정확히 일치되지 않는다. 그들의 이론을 토대로 범위를 잡자면 모더니즘은 19세기 말엽에 처음 시작되어 제 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전성기를 맞이하고,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쇠퇴하였다고 보는 편이 좋다. 위에서 언급한 굵직굵직한 흐름을 찾아본다면 바로 산업혁명이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배운 바에 의하면 산업혁명 시기는 기계적이고 합리적이고 기존의 틀을 벗어난, 도시적인 분위기가 풍기는 시기이다. 교회, 신중심이였던 중세를 벗어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대화의 바람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모더니즘 이라 할 수 있겠다. 모더니즘이 처음 시작된 곳은 프랑스였으며 이를 중심으로 영국이나 독일과 같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로 전파되었고 미국과 그 을 재현하지 않는다거나 색 질료를 강조한다거나 기하학적 형상을 중시하는 데서 그 특성이 발견된다. 이 밖에도 연극과 무용, 그리고 건축 등 다른 영역에서도 엿볼 수 있다. 모더니즘의 개념과 본질을 정확히 규명하려면 위에서 언급한 영역들을 모두 논의의 대상으로 삼아야겠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문학 분야에서 나타나는 특성과 건축 분야에서 나타나는 특성이 큰 차이를 보이는 것과 달리 모더니즘은 문학에서 가정 첨예하게 나타났을 뿐 아니라 시인이나 소설가가 그 시대를 풍미하는 정신은 문학 예술가들의 정확하고 민감한 표현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을 통해 설명하고자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모더니즘 범주에 속하는 작품들을 살펴보면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다. 그 특징을 살펴보고자 한다. 첫 번째 로는 반(反)전통의 전통, 또는 전통의 비전통을 들 수 있다. 기성 전통과 인습에서 벗어나 이탈한다. 최근 들어와 몇몇 페미니즘 이론가들이 모더니즘에 부쩍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러한 특징 때문이다. 과거의 전통이나 지배문화에 대해 이탈하고자 하는 입장은 모더니즘이나 페미니즘의 기본 입장과 비슷하기 때문이다.두 번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주관성과 개인주의적 비전 이다. 모더니즘은 개인주의, 주관성에 초점을 맞춘다. 객체가 아닌 주체, 집단보다는 개인을 우위에 두는 것이다. 모더니즘 작가들은 모든 것은 ‘나’한테서 출발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모더니즘 작가들은 그 시기 사회현실 보단 ‘나’라는 내면세계에 주목한다. 우리가 모더니즘 작가들을 작품을 읽을 때 난해함을 느끼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세 번째 특징으로는 예술의 심미성과 자기 목적성이다. 이 점은 다른 문예사조나 전통과 큰 차이를 보여준다. 그대로 모방하거나 재현하는 것을 심미적 원칙으로 삼는 리얼리즘의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뚜렷한 목적성을 지닌 리얼리즘과 다르다. 엘리어트의 주장을 따르면 “우리가 시를 간주할 때는 무엇보다도 시로서 간주해야 하지, 시 이 의미를 형상화한다. 다음은 개인과 사회 사이에 생겨나는 갈등과 긴장을 즐겨 다룬다. 개인과 사회의 갈등을 개인 쪽의 동정으로 이끈다. 다음은 자유 의지와 선택의 문제이다. 이 전 리얼리즘 작가들은 인간에게 아무런 자유의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더니즘 작품에 이르러서는 인물들이 대부분 자신의 운명을 자신이 직접 결정해 나간다. 다음은 자유의지와 관련지어 등장하게 되는 것이 바로 소외와 고립이다. 이건 개인의 자유의지를 구사하기 위한 대가나 지불 정도라 할 수 있겠다. 마지막 실존적 인생관은 신과 인간사이의 문제이다. 예를 들어 헤밍웨이는 대부분의 작품에 신의 부재나 죽음을 다루고 있고 포크너도 신은 존재하나 너무 늙어 인간에게 아무 힘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다른 여러 작가들도 이 문제를 중요한 주체로 취급하고 있다.이제 다시 모더니즘 작품의 공통된 특징 다섯 번째를 알아보자. 모더니즘은 형식상의 혁명이라 할 만큼 형식주의는 중요한 모더니즘의 특징이다. 그렇다면 모더니즘이 지향하는 형식이란 무엇인가. 바로 ‘무형식의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모더니즘 작품에서 전통적인 통일성이나 일관성을 찾는다는 것은 모더니즘의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된다. 외적은 통일성보다 내적인 통일성을 찾기 때문이다. 우선 모더니즘은 플롯과 구성에서부터 다르다. 작가는 마음에 떠오르는 순서대로 기록하고 일관성이 없어 보이더라도 시각이나 사건이 의식에 기록하는 패턴을 추적하고자 한다. 시작도 끝도 찾아보기 힘들다. 조이스의「율리시스」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와 「앱설럼, 앱설럼!」에서 그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또한 주인공 이름조차도 애매 모호하게 사용된다. 예를 들어 포크너는 제이슨가의 백치 아들 벤지의 아명 모리가 캐롤라인 동생과 같은 점, 제이슨 3세의 아들 퀜틴이 캔데이스의 사생아와 같은 이름인 점, 또한 캔데이스의 애칭 캐디는 골프에서 쓰는 말 캐디와 발음이 같다는 점이다. 이는 독자를 혼란에 빠지게 한다.플롯이나 구성 외에도 또 다른 형식의 차이는 관점의 사용에서이다.이다. 이러다 보니 개인의 의식에 의해 흐르는 시간이 작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된다. 예를 들어 포크너는 「음향과 분노」「앱설럼, 앱설럼!」에서 시간의 문제를 매우 중요한 주제로 다룬다. 앞의 작품에서 작가는 몰락하는 한 미국 남부 귀족 집안의 가족사를 통하여 인간은 누구나 다 시간에 얽매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점을 설득력 있게 그려낸다. 이 소설의 주인공 퀜틴은 인간이 시간 안에 갇힌 존재라는 사실을 거부함으로써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시간을 다루는 새로운 기법 가운데서도 의식의 흐름이나 내면 독백은 가장 유명하다. 위 소설의 예를 계속 들자면 ‘퀜틴의 장’에서 내면 독백 수법을 비교적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시간의 유동성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소설이 갖는 공간적인 제약을 극복하고자 한다. 역시「음향과 분노」에서도 장마다 하루 동안에 일어난 사건을 중심으로 다룬다.모더니즘이 가지는 기법상의 특징은 신화를 사용하는 데서도 잘 드러난다. 많은 모더니즘 작가들은 그들의 작품에 신화나 신화적인 원형을 사용함으로써 산만한 구성이나 통일성을 보안한다. 신화를 끌어들여 체계적이고 응집성 있게 조직하는 것이다.지금 까지 모더니즘의 대해 문학작품을 통해 알아보았다. 모더니즘이 여러 사조에 걸쳐있으므로 수박의 겉 핡기 식으로 살펴본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앞에서도 이야기 하였듯이 문화는 변하고 또 변화한다. 모더니즘이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면 이다음 시대를 풍미하는 문화 현상이 등장 할 것이다. 모더니즘은 1930년대 이후부터는 서서히 비판을 받기 시작한다. 내 개인 적인 생각으로는 그 시대 마다의 문화현상을 비판하는 것은 옳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비판을 함과 동시에 여러 발전이 이루어진다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 시대를 풍미한 모더니즘의 대한 연구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하고 왜곡되거나 과장된 것은 바로 잡아가야 생각한다.포스트모더니즘, 두 얼굴의 진실보건관리학과 20050784 김지혜모더니즘의 다음으로 문화현상의 흐름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 바로 포스터모더한 저항, 반동, 이에 부합하는 말은 탈근대주의 라고 할 수 있겠다. 첫 번째 견해에 따르면 개인적인 삶을 통해 사회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점에서 모더니즘의 미학을 이어받고 있는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리얼리즘이 개인과 사회의 상호작용은 그리는 반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런 주객 상호작용을 역동적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그리하여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이 동일선상으로도 보여지기도 한다는 것이다.두 번째 견해에 초점이 맞춰지는 가운데 포스트모더니즘을 간단히 말하자면 자본의 논리가 주체를 지배할 때 그와 같은 후기자본주의에 대응하는 문화형식이 바로 포스트모더니즘이다. 탈근대, 또 다른 근대의 해체를 지향한다는 뜻이다.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과 어떠한 관련성을 맺고 있으며 그것을 어떻게 규정짓느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견해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프랭크 커모우드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서 파악하고 자하는 이론가 이다. 그는 아예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 자체의 사용을 거부한다. 커모우드의 관점에서 보면 이 두 전통이나 이론 사이에는 일종의 연속성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의 저서의 제목이 「연속성」인 것이 명시적으로 가리키고 있는 듯하다. 커모우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로 흔히 일컬어지는 무관심과 무책임의 문제는 모더니즘의 몰개성과 객관성이 변형된 형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런가 하면 형식의 존재 자체를 거부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입장 또한 모더니즘이 시도하는 형식상의 난해성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한편 다른 이론가들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과의 관계를 비판적 반작용으로 이야기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그리고 리얼리즘과 모더니즘의 뒤이어 나타난 급진적으로 새로운 예술 전통이나 이론 또는 사조에 해당한다. 다우브 W. 포크마는 이런 관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낭만주의와 리얼리즘 그리고 모더니즘과 같은 그 이전의 전통이나 이론들과 대등한 위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