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목회와 영성」이 선 규「목 마른 사람이 샘을 판다」는 속담은 인간행동이 필요성의 산물이라는 명제를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기독교인들이 각종 영성 세미나에 모여들고 영성이란 용어가 유행어가 된 이유중의 하나도 영성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인데 이것은 기독교문화의 고도성장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겠다는 요구에 상응하는 것이었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서 영성에 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행했다고 생각하는 몇분의 미국인 학자들의 견해로 살펴보면서 영성에 대한 정의를 밝히고 서론으로 삼고자 한다첫째는, 샌더스(Oswald Sanders)의 견해로 “영성이란 그리스도다움(christlikeness)이다.”라고 하면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후한 대우를 받는 것 같이 자신도 남을 그렇게 대우하는 사람이 영성이 발달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영성발달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고 손해를 입히는 사역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교회성장이라는 미명하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목회자의 영성은 샌더스의 주장을 따른다면 미성숙한 영성일 수 밖에 없다. 샌더스의 「그리스도다움」이란 곧 타자중심(Other-centeredness)의 삶을 의미한다.둘째는, 핑크(Arthur Pink)의 견해로 “영적 성숙은 삶의 외적 차원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고 내적인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영적 성숙은 신앙의 연조, 기도시간의 길이, 봉사활동의 정도, 신비체험, 일시적 번영... 등의 외적으로 보이는 삶으로 측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물질과 육체와 현실에 집착하는 기복주의 신앙은 극복되어야 할 과제인데 핑크는 영적 성숙도에 따라 제일 아래단계가 어린아이같이 하나님의 진리를 분별못하고 자기중심적이고 충동에 의해 일을 처리하는 어린아이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청년단계로 사탄의 유혹에 대해 저항감을 느끼고 경건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려는 의지를 나타내는 단계이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대한 비유 역시 영적 사역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리챠드의 견해에 따르면 참된 영성은 영적인 것을 육신과 물질로부터 철저히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치있는 것을 위하여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였는가에 달려있다.넷째는 엘리슨(Craig Ellison)의 견해로 “인간의 영적 성장이나 영적 성숙은 인간의 어떤 한 부분만 볼 것이 아니고 전 인격을 통합한 전체적 조직체 속에서 설명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즉 참된 영성은 삶의 현장을 떠난 어떤 특수한 영적현상에만 중심을 둔 것이어서는 안되고 한 인간의 인격 전체가 인격자이신 하나님과 근본적인 관계를 맺고사는 삶 자체에 초점을 맞춘 것이므로 엘리슨은 영성을 하나의 과정으로 보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신앙체계가 닫혀져 있고 완고한 사람보다는 열려진 마음으로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가진 사람의 영성이 더욱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다.위 서너분의 주장에서 도출되는 영성의 정의는 “영성이란 하나님과 타인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삶의 총체적 과정.”이라고 볼 수 있고 동시에 영성 발달을 위한 요소로서 「성령역사」가 가장 중요한 요소이며 「관계성」이 중요한 개념임을 알게된다. 하나님과 아무리 수직적 관계가 잘되었다고 해도 사람과의 수평적 관계가 잘못되었다면 영성 발달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거니와 (눅 2:52)에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는 표현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1. 영성회복의 필요성영성회복이 매우 필요한 시대에 살고있거니와 이것은 이 시대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은데 그런 관점에서 영성회복의 필요성을 몇가지 거론한다면1) 물질에 대한 지나친 관심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급속히 진행된 산업화나 도시화는 물질을 우상으로 숭배하는 풍토를 낳게 되었으며 인간의 존엄성이나 도덕, 윤리 등은 상대적으로 그 위치를 잃어가게 되었는데 성공이나 출세의 개념을 물질의 많고 적음으로 계산하거나 환금성을 가치의 기준으로 내세우는 위기를 만났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고 찾아 볼때도 힘들지만 사회적 타락상은 눈을 감아도 보일 정도입니다. 도덕과 윤리의 타락은 그 도를 넘어서 원조교제는 고전적 형태이고 부부교환 성파티나 환각상태의 집단 성유희, PC방에서 벌어지는 화상채팅... 등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가증스러운 일들이 난무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여기에 우리 기독교인들의 자녀들도 아무 대책없이 노출되어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세상풍조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거룩하고 성결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영성회복이 필요한 것이다.3) 불건전한 신비주의교리적인 면에서 본다면 기독교는 신비적인면을 많이 지니고 있기에 신비주의 자체가 나쁘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문제삼고 있는 신비주의는 하나님과의 합일과 사랑의 완성을 추구하는 신비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이기적인 욕심과 개인성을 추구하는 신비주의로서 지극히 현실도피적이고 초월적이고 현재의 충실한 삶을 외면하기 때문에 사회에 심각한 폐해를 끼치는 불건전한 신비주의를 말한다. 기독교인은 모름지기 고난을 바로 이해하고 십자가를 바로 바라보아야 한다. 십자가를 무시하고 부활의 아침을 기대하는 것은 무지하기 보다는 불건전한 신앙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2. 영성회복의 접근1) 인간으로서의 목회자의 영성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고 예수보다는 6개월 앞서 등장하여 메시아의 길을 예비했던 세례요한은 자신은 메시아가 아니고 그의 앞에 보냄을 받은 자이며 신부를 취하는 신랑의 옆에 서서 갈채를 보내는 자로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22-30)고 하였다. 세례요한의 사명에 대한 인식은 자아에 대한 정체성을 바르게 확보한 사람의 모델이며 양을 치고 먹이며 인도하여 그리스도께로 돌려드리는 목회자의 본연의 사명에 충실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고전 15:9)이며 ‘죄인의 괴수’(딤전 1:15-16)라고 겸손히 말하면서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기를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다. 목회자는 신부를 취하거나, 양을 부리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되며 교회 위에서 명령하거나 일이 제 뜻대로 안된다고 포기해서도 안되며 자의로 방향을 설정해서도 안된다. 목회자는 교회라는 특수한 조직 속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성도라는 구별된 무리들을 돌보는 직책을 맡은 자들이다. 그러나 교회는 사회속에 있고 교인 역시 세상 사람들 속에 있는 존재이며 목회자 역시 그 속에 포함된 존재이다. 세상의 역사와 문화, 언어와 습관, 기후와 풍토, 정황과 여건, 정치와 경제, 교육과 삶의 방식.... 등 개인과 사회와 조직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이 다변화하는 추세속에서 교회와 목회자도 변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본질은 언제나 지켜져야 하고 반면에 변화에 적절히 반응하여야 한다.인간으로서의 목회자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주어진 사명을 어떻게 수행하며 삶의 현장 속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지속하고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두고 유지하는 가를 결정할 수 있는 목회자의 자아인식(Self - Awareness)에 대한 것이다.인간으로서의 목회자에 대한 바른 이해는 목회 영성적 측면에서 볼 때 평범 속에서 비범함을 찾는 과정의 출발인 셈이다. 인간으로서의 목회자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자아형성의 기초가 되고 동시에 자아발달과 인식의 측면에서 사회적이고 문화적이고 상황적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는데 인생 여정, 신분, 선택의 순서로 살피고자 한다.① 인생 여정자아는 출생으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체여정 속에서 발달되며 형성되는 점에서 역사이다. 이러한 자아의 발달은 영성발달과 관계가 깊다. 왜냐하면 “영성이란 하나의 자아가 하나님과의 관계 및 사람과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앞서 소개한 세례요한의 선구자로서의 영성은 그의 부모가 계시받고 그를 잉태하게 되었던 당시에로 소급해 볼 수 있다. 그의 출생의 비밀은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것으로 구체화되었고 예수의 출현으로 세례요한은 인생 여정을 마감하고 있다. 세례요한의 역사는 그 자체가 영성이고 그 인생 여정속에서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교회를 지도하는 원리는 경영이 아니라 봉사이지만 미숙한 상태에서는 모범을 보일 수 없으므로 숙련된 전문가로서의 소양이 요구된다. 학위를 요구하지는 않지만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자격을 갖추었다고 해서 목회를 성공적으로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존 맥아더(John MacArthur)는 자신이 목회자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몇 가지 이유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특권을 가진 것,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적인 사귐에 몰두할 수 있는 것, 회중들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할 때 칭찬받을 꺼리가 되며, 설교자의 한계를 넘어서서 백성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대표하며, 이생에서 받는 보상도 크고 평신도와는 다른 특별한 은혜를 기대할 수 있다.”그 사람의 지위와 신분은 그 사람의 자아를 표현하는 하나의 중요한 기능이다. 신분에 의해서 제한 받을 뿐만 아니라 강제 될 수도 있으며 신분의 상승으로 귀한 존재로 여김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목회자라는 신분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 타인과의 관계, 교인들과의 관계 뿐 아니라 타목회자와의 관계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그들의 지위와 신분의 상승과 하락에 있어서 공동책임이 있기 때문이다.목회자는 서로의 영성 발전을 위하여 교감을 가져야 하며 목회정보를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역사신학자인 제임스 스티칭거(James F. stizinger)는 강해 설교자인 마틴 로이드 존스(D. Martin Lioyd Jones)의 설교와 목양을 회고하는 글에서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가르치신 바를 목회자들에게 심어 주려고 노력함으로써 목회자들에 대한 목회자이기도 했다”고 적고 있다. 그런 점에서 목회자의 영성은 목회자 공동체의 영성 세계이기도 하다.③ 선택사람의 선택은 가치를 반영하는 것이며 그 선택이 중요하다면 그 선택은 적극적인 가치를 분명하게 반영하는 것이 된다. 상기한 지위와 신분의 문제도 하나의 지위를 자신의 자리로다.
한국 교회의 바람직한청소년 교육에 대한 고찰장로회대전신학교신 학 과이 선 규목 차Ⅰ. 서 론 4Ⅱ. 청소년의 정의 51. 청소년기의 정의와 연령별 구분 52. 청소년의 특징 71) 신체적 특징 72) 정서적 특징 83) 사회적 특징 104) 종교적 특징 113. 청소년 문제 14Ⅲ. 교회와 교육 151. 기독교 교육의 영역 152. 교회의 교육적 사명 17Ⅳ. 바람직한 청소년 교육을 위한 방향제시 181. 교회의 청소년 교육을 위한 역할 182. 가정과의 연대 교육 211) 가정의 교육적 의의 212) 기독교 가정교육의 문제와 과제 233) 가정에서의 교육방법 283. 기독교 학교와의 연대교육 29Ⅴ. 결 론 30참고문헌 32Ⅰ. 서 론우리의 청소년들은 사회속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자유롭고, 기쁘고, 보람있게 생활하며, 보다 나은 인격체로 성장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어른들의 비뚤어진 교육철학 때문에 자신들이 선택해 볼 여지도 없이 교육 현장 속으로 몰아 붙여져서, 자기 나이에 어울리는 인생을 누릴 수 있는 자유와 특권을 빼앗겨 버리고, 부모와 학교, 사회의 강요 앞에서 미래의 출세와 명예, 부, 쾌락 등을 위해 자동차 부속품처럼 생산되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그동안 교회는 사회를 이끄는 정신적, 도덕적인 모체의 역할을 하여왔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교회 교육이 등한시되고 있음이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현상은 교회에 청소년의 수가 줄어들고 있는 현상에서 그 이유를 알 수가 있다. 즉, 그 만큼 청소년들이 사회에서 갈 길을 못찾음으로 인해 탈선하는 청소년들이 증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교회 교육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이스라엘 민족이 국가 없이 수천년 동안 그들의 종교와 민족정신을 계승할 수 있었던 것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게을리 하지 않았던 교육 때문이었음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교회의 교육 현실은 어떠한가? 청소년 문제는 이제 위기의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고 한탄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학교는 이들스런 변화가 오고 이런 신체 변화는 방황하게 되고 불안해하게 되는 요인이 된다. 또한 성호르몬 분비의 증가로 청소년기의 정서는 성적인 색채를 띠게 된다.)이러한 상황 아래서 교회는 개인 상담을 통해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에게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2) 정서적 특징흔히들 청소년을 볼 때 내리는 평가 중 대표적인 것이 그들은 다분히 감정적이라는 것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에 따라 얼굴 표정이 변하며 신앙도 다분히 감정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중?고등부 신앙 활동의 중심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 찬양에 있어서도 감정적인 흥분을 성령 충만으로 착각하는 수도 많이 있다. 실제로 청소년은 감정적으로 안정되어 있지 못하며 감정에 상당히 좌우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시기에는 특히 불안 증세가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청소년기는 불확실성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밖에도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불안과 근심에 휩싸이게 된다. 이때 자아를 방어하기 위한 방어 기제가 작동되는데 예를 들면 불안한 감정을 억제하거나 다른 것에 몰두함으로써 이를 대체시키는 따위의 행동이 이에 해당된다. 그밖에도 욕구 좌절로 인한 자기 자신의 이상적인 자아와 비교 속에서 그에 미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분노를 느낀다. 또한 이들의 감정은 일관성이 없고 불안정하며 이성보다 감정이 우위를 차지하며 감정대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그리고 이 시기는 인지 발달 단계상 형식적 조작기) 에 접어들기 시작하므로 추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고 자아의식이 발달하며 자기를 분석하고 남과 비교하여 열등감?우월감에 빠지기 쉽다. 또한 상상력이 풍부하고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므로 이상적 자기와 현실의 자기 모습과의 괴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므로 인해 자기 자신에 대해 더욱 비관하기 쉽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로 현실을 떠나 상상의 세계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기도 하고 고독을 즐기기도 한다. 또 가족의 간섭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자유롭게 자기 세계를 가지고 싶어한다. 이 시기는 독립하고 싶어하는 반면 그 이면에서는 안정 그들에 맞게 개발시켜야 함을 알게 된다.종교는 청소년에게 불완전한 인간의 본질적인 면을 이해시켜 주도록 노력하고 또한 종교는 용서와 이해와 사랑이 그 중심임을 강조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청소년기는 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나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나 충분한 행동의 자유를 제공해주는 삶의 단계로 들어설 때에, 그들이 도덕적 선택을 해야 할 때에, 청소년을 움직이는 영향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청소년 사역자가 요청된다는 뜻이다.)청소년들의 도덕관의 특징은 관습적이라는 점이다. 어떻게 행동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가에 많은 관심을 가짐으로써 이런 의미로 청소년들은 동조주의자이다. 청소년기에 성취해야 할 과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을 확립하고 찾는 작업 즉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인생의 목표와 미래에 대한 방향감각을 찾으려는 청소년에게 종교는 이상적인 신념 체계와 실존의 방향을 제공해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종교는 청소년 지도의 내용과 방법에 있어서 귀중한 근거가 되어 줄 것이다.)3. 청소년 문제오늘날 청소년 범죄가 급격히 양적으로 늘어나고 질적으로 범행의 양상이 다양화?포악화?저연령화?집단화 되어 간다는 데 그 문제의 심각성이 나타나고 있다.) 오늘날 청소년 범죄가 급격히 늘어나는 원인은 과학의 발달, 물질문명, 산업의 고도 성장, 문명의 이기에서 오는 생활의 편리와 복잡화에 정신 문명이 병행하지 못함과, 풍요한 물질과 식생활의 개선, 신체적인 발달로 성에 조숙하나 정신 연령과 생활 연령이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사회관의 왜곡과 저속한 매스 미디어, 도시 집중화, 사회 가치관의 전도는 물론 지식 전달과 성적?진학 위주의 학교 교육에서 오는 불안과 초조감 등이다.) 그리고 청소년 문제의 가장 큰 원인은 부모의 자녀에 대한 방임이다. 과거에는 청소년 범죄하면 빈곤한 가정이나 결손 가정의 자녀들이 대부분이었으나 오늘날은 부유층 자녀와 양부모 가정 자녀들의 비을 얼마만큼 그 공동체의 삶에 깊이 의도적으로 참여시키느냐에 달려 있다는 논리로 귀착된다.Ⅳ. 바람직한 청소년 교육을 위한 방향 제시1. 교회의 청소년 교육을 위한 역할1) 교회가 청소년을 위한 창의적인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첫째, 교회는 청소년들의 참 만남의 장소가 되어 주어야 한다. 교회가 이런 만남의 장소가 되어 주지 않는다면 청소년들은 파괴적으로 흘러 갈 가능성이 많아진다. 교회는 두가지 면에서 청소년들에게 중요한 만남의 장소가 될 수 있는데, 먼저 동료와의 참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과의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교회는 청소년들에게 하나의 생명줄을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가 있어야 한다. 교회에서 청소년들을 방치할 경우, 정신 질환이나 이탈자 그룹에 속해 버릴 가능성이 그들에게 더 많아진다는 것을 학자들은 암시하고 있다.두 번째로 교회는 청소년들에게 일방적인 만남이나 교육의 장소가 아니라 쌍방적인 만남의 장소가 되어야 한다. 교회의 목회자와 지도자, 청소년과의 대화나 교육, 그리고 다른 어떤 프로그램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학교교육을 모방할 것이 아니라 인간대 인간의 위치에서 서로 주고 받아야 한다. 또한 어느 한 사람이 가르치고, 학생들이 배우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가 배우는 기회가 주어져야 된다고 본다. 교회에서의 서로의 만남은 서로가 학생이면서도 또한 서로가 선생인 깊은 인간의 모임이 이루어질 때 사회에서나 학교에서 파괴된 인간을 다소나마 재생시킬 수 있으리라고 본다.세 번째로, 교회는 청소년들에게 가능하면 경쟁적인 분위기의 만남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본다. 서로가 서로를 정복하는 만남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즉 그리스도를 줄기로 하는 공동체를 경험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할 것이다.네 번째로 교회는 지금 이 순간의 나를 발견하고 성장시켜 가는데 중점을 두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2) 교회가 청소년의 참다운 인격형성을 이루어 주는 교육을 담당해야 한다.) 전통적인 교회가 이룩해왔듯이 교회는 청소년들 놓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산업화가 이룩되기 이전의 가정은 여러 세대들이 하나의 삶의 공동체를 이루고, 이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생산적, 경제적, 오락적, 교육적, 종교적인 기능들을 수행하는, 자급자족의 완전한 단위 공동체였다. 그러나 산업의 분업화와 전문화, 그리고 도시화가 이루어지면서 가정은 과거의 가정이 지녔던 가정 본래의 기능을 더 이상 수행하기 어렵게 되었다. 결국 가정 자체가 분열되는 가정 부재의 현상에 직면하게 되었다.현대사회의 가정 부재 현상은 가정을 인격적인 만남의 장소에서 비인격적 집단으로 변하게 하고, 가정으로 하여금 교육을 포기하고 교육을 전문 기관에 맡겨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였다.) 가정교육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원래 교육적인 관계요 사랑의 관계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부모는 부모로서의 권위를 상실하고 자녀 교육의 목표를 뚜렷이 정하지 못하고, 자녀를 어떻게 기르고 가르쳐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고 자녀와의 대화가 단절되는 가운데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로서의 확신이나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었다.)가정은 개인의 인격교육의 온상이다. 가정은 인격 형성의 보다 심층적인 부분을 담당하여 교육기관을 통한 교육에서 부족된 측면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의 가정은 가정 본래의 교육적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가족 구조의 변화는 가정의 교육적 기능 수행에 큰 변화를 초래하였다. 대가족 구조와 핵가족 구조 중 어느편이 교육적으로 이로운가를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우나, 일반적으로 대가족이 핵가족보다는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이다. 가족은 기초적으로 자녀들의 사회화와 성인들의 정서적인 안정화의 기능을 가진다. 가족의 이런 기능은 어떤 다른 제도가 대행할 수 없는 기능이다.)과거의 대가족에서는 인적 자원이 풍부하여서 어린이의 사회화에 필요한 다양한 인간관계의 양식을 제공하고 자녀들의 정서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핵가족에서는.)
치유 목회에 있어서의치유 사역에 관한 연구장로회 대전 신학 대학교신 학 과목 차Ⅰ. 서 론A. 연구 목적B. 연구 범위Ⅱ. 질병의 개념과 정의A. 질병의 일반적 개념B. 질병의 성서적 개념과 원인Ⅲ. 치유 목회와 목회자A. 치유 목회란?B. 성서에 나타난 치유 사역1. 구약에 나타난 치유 사역2. 신약에 나타난 치유 사역1)예수의 치유 사역들2)그 이외의 치유 사역들C. 치유 목회의 유래와 기능D. 치유의 의미E. 목회자와 치유Ⅳ. 치유의 실제A. 목회 상담을 통한 영적 치유B. 내적 치유와 심리학의 만남C. 치유의 여러 가지 방법들1. 기도를 통한 내적 치유2. 안수를 통한 치유3. 사도들의 치유 -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4. 성령을 통한 치유5. 그 이외의 방법들Ⅴ. 끝맺는 말※ 참고 문헌Ⅰ. 서 론A. 연구의 목적계몽기 이후 합리주의가 발달되고 과학이 발달되면서 의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게 되었고, 그러한 학문적 연구를 바탕으로 의술을 시행하는 사람들이 인간에 대한 치유를 전적으로 담당하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런데 요즘 의학계에서도 좀더 깊이 있게 자신들의 전문성을 성찰하는 성숙한 의학인들이 공통적으로 얘기하는 것이 있는데 ‘신체적인 병고침’만으로는 진정한 치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 자체가 ‘정신’ -신체적인것이기에 ‘치유’ 자체를 ‘정신 - 신체적으로’ 해야 된다고 생각을 한 것이고 이런 이해가 근래 의학계의 발달된 이론으로) 여겨지게 되었는데, 최근에는 ‘생명 공학’ (life technology)에 대한 관심이 더 넓어지면서 그러한 ‘정신 - 신체적인 질병’ 이해보다도 더 넓은 차원에서 병은 인간이 살아가고 있는 ‘생태계’ 전체와 맞물려서 인간에게 다가오며, 따라서 그에 대한 ‘치유’도 생태계 전체와 맞물려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치유를 좁은 의미로 단순히 치료 행위로서의 병고침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삶을 내다보면서 ‘치유’를 생각해야 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는데, 소위 포스트 모더니즘이나 정보화 시대에 우리는 이제 넓게 열린 지평 의 스스로 지은 죄의 값으로 (왕하5;27, 대하21:12-19) 사단의 시험에 의해 (욥2:7 , 눅 13:16),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로서 (요9:1 - 3, 11:4, 고후 12:7 - 10), 부모의 죄로 인한 병 (삼하12:15),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얻은 병 (단8;27, 10:15 - 19), 헌신의 과로로 인한 병 (빌2:25, 26), 술로 인한 병 (호7:5), 나이많아 생긴 병 (창48:1, 10), 떨어지거나 넘어져서 얻은 병(왕하1;2), 소망을 이루지 못함으로 얻은 병 (잠13;12), 사랑함으로서 얻는 상사병 등이 (아2:5), 그 원인임을 알 수 있다.Ⅲ. 치유 목회와 목회자A. 치유 목회란?인간은 치유되어야 할 존재이다. 타락된 인간 본성 속에 있는 인간의 몸과 정신과 마음은 고쳐져야 하고 본질적인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한마디로 치유 목회의 의미는 전통적인 목회 사역과 그 맥락을 같이하며 인간을 위하여 행하는 모든 목회 행위가 치유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치료 또는 요법 (Therapy)의 어근이 되는 헬라어 의 현대적의미로는 “봉사”(Service)의 뜻이 있다. 그런데 이 말은 개인적이며 친밀한 방법으로 주의 깊게 보살펴 주는 봉사이며 사려깊고 양심적인 보살핌을 의미한다.) 즉, 진정한 치유란 단지 질병의 회복 단계에 끝나는 것이 아니고 질병이후 계속적인 삶의 자세까지 연결시켜 하나님 앞에서 헌신자의 삶을 사는 것을 말한다.B. 성서에 나타난 치유 사역1. 구약에 나타난 치유 사역구약에서 치유의 뜻을 가진 대표적인 단어는 “ ??”(rapha-라파,치유하다, 건강하게 하다) 이다. 이 단어는 구약에서 60회 이상 언급되고 있다. 이 단어는 창세기 20장 17절에서 하나님이 아비멜렉을 치료해주는 기사가 나오는데 처음 언급되고 있다.) 어근은 치료한 인간, 즉 “인간”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창50:2) 또한, 열방들의 치유와 용서를 가리키는 용어로도 사용되었다.(사19:22, 57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마11:2 - 5)고 자신이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예언 성취의 주인공임을 말씀하셨다.마9:12에 보면 세리 마태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면서 바리새인들로부터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잡수시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고 말씀하셨다.(3) 예수님은 치료자로 많은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으셨다.① 온 수리아 사람들로부터 (마4:24)② 백부장으로부터 (마5:5)③ 가나안 여인으로부터 (막5:27)④ 혈루병을 앓은 여인으로부터 (막5:27)⑤ 귀먹고 어눌한 자로부터 (막7:31)⑥ 소경으로부터 (막8:22, 10:47, 요9:11, 17)⑦ 귀신들린 자로부터 (눅8:28)⑧ 문둥병자로부터 (눅17:13)⑨ 18년된 병자로부터 (요5:11, 15)예수님을 치료자로 인정하는 자는 많이 있었다.(4) 예수님은 치료 사역을 하셨다.① 제1차 갈릴리 사역신하의 아들을 고침 (요4:46-54), 38년된 병자를 고침 (요 5:1-9), 귀신을 쫓아냄 (막1:23-28, 눅 4:31-36), 베드로의 장모를 고침(마8;14, 15 , 막 1:29-31, 눅 4:38,39), 문둥병자를 고침 (마8:2-4, 막1:40-25, 눅5:12-16), 중풍병자를 고침 (마9:2-8, 막2:3-12, 눅 5:18-26), 손 마른 자를 고침 (마12:9-13, 막3:1-5, 눅 6:6-10)② 제2차 갈릴리 사역백부장의 종을 고침 (마8:5-13, 눅7:1-10), 과부의 아들을 살림 (눅7:11-15), 귀신들린 자를 고침 (마12:22, 눅11:14) 거라사 광인을 고침 (마8:28-34, 막5:1-20, 눅8:26-39), 혈루증 여인을 고침 (마9:20-22, 막5:25-34, 눅8:43-48), 야이로의 딸을 살림 (마9:18, 19, 23-26, 막5:22-24, 35-43, 눅8:41,42, 49-56) 두 소경을 고침 (마9:27-3헌신자의 삶을 사는 것을 완전한 치유라 할 수 있다.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을 타락된 모습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회복시키는 것을 그 목표로 해야 한다.참된 치유는 인간을 구원으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다.E. 목회자와 치유켈시는 신약 성경의 약 1/5가량이 예수님의 치유 사역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현대를 사는 우리 신앙 생활 가운데서는 “치유”의 모습이 생생하게 살아 있지 못한 것 같다고 주장한다.이유는 첫째,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인간의 질병은 의학적인 (과학적인) 수단에 의해서만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종교적으로 주는 도움은 피상적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예로 성경에서 소경이 치유를 받았다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신경증적으로) 눈이 멀었던 사람이었으며, 문둥병은 단순한 피부 알레르기 환자, 또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당시 기절했던 사람이 꺠어났다고 보는 생각이 요즈음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성경의 많은 부분은 예수님 사후에 사도들이 추가한 것이므로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는 것이다. 때로는 상징적이라고도 보는데, 예를 들면 소경이 치유를 받았다는 것은 “영적인” 소경이 “영적인” 치유함을 받았다고 보는 견해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치유”에 관한 성경 속의 사실을 직시하지 못한다.두 번째로, 질병을 하나님의 훈계로 보기 때문이다. 즉, 질병은 다른 역경과 마찬가지로 교훈이나 훈계로 잘 받아들여야 한다는 견해이다. 질병을 치유하는 성경의 장면들이 생생하게 와 닿지 못하고 질병의 원인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셋째는, 성경의 여러 치유 사역에 관하여, 그것들을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특별한 시기에만 허락된 은사라고 보는 견해이다. 즉, 특별한 목적이란 오직 복음 전파를 위한 것이고 특별한 시기란 예수님과 사도들이 생존했던 시기를 말하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시기에만 펼친 “경륜론”이라 부른다.)그 시대 이후에 그런 치유의 사역은 끊어졌기 때문에 현 세대에는 행함으로써 평안함도 주고 내적 자유도 주지만 치유의 근본적인 목적은 종국에 가서는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데 있다. 목회자는 씨뿌리는 자의 역할까지 해야 하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행함처럼 먼저 행해야 한다. 결론은 치유의 목표는 전인 건강이요, 전인 건강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구원이다.)B. 내적 치유와 심리학의 만남내적 치유의 방법론을 특징지워 한마디로 “기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적 치유를 ‘기도 상담 (Prayer Coinseling)이라고 부른다.) 내적 치유가 필요한 문제의 원인을 분석하는 것에 대해서는 D.A.seamands와 John & Paula Sandford가 아주 상세히 다른 학자들이다.)이 원인 분석의 측면이 초기 내적 치유 사역자들에 부족했던 점이었는데, 이들에 의해 상당한 보완이 이뤄진 것이다. 내적 치유 방법에서는 문제 원인 분석 과정도 하나의 기도 과정이다.기도를 통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성령께서만이 주실 수 있는 이해와 통찰을 주십사고 끊임없이 간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어떤 때는 성령께서 배를 댈 적절한 장소를 보여주실 때까지 그저 노를 젓고 기도하고, 기도하고 노를 젓는 일을 계속해야만 한다는 표현대로 이 분석 과정 자체가 성령께 의지하는 진지한 기도의 과정인 것이다. 구체적인 내적 치유 방법인 기도를 치유의 여러 가지 방법들 중 기도를 통한 치유 편에 자세히 서술키로 하고 내적 치유에서 필요한 심리학과의 만남으로 목회자의 도움을 돕고자 한다. 과거 교회가 전통적으로 다루어 왔던 영역이 있었는데 심리학이 발전함으로 말미암아 그러한 영역들이 교회에서 심리학으로 많이 이행되고 있다.) (여기서 심리학이라는 것은 정신분석 학자들과 정신 치료자까지도 다 포함한다.)점차 사회는 심리학에 대한 기대를 많이 갖게 되었는데 인간 존재의 어떤 문제들, 즉 사회 우주에 대한 문제들에 있어서까지도 교회보다는 세속적 심리학에서 해답을 찾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심리학이 성경의 권위 또는 초자연적인 세계의 실재, 그리고 본다.
깔뱅의 인간론장로회 대전 신학교신 학 과이 선 규깔뱅의 인간론장로회 대전 신학교신 학 과이 선 규목 차Ⅰ 서 론 6A. 문제 제기 6B. 연구 목적 및 방법 8Ⅱ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자기 인식 9A.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 10B. 인간의 자기 인식 14Ⅲ 하나님의 말씀 16A. 율법과 복음 161. 율법 162. 복음 173. 율법과 복음의 조화 18Ⅳ 창조된 인간 19A. 창조의 목적 19B. 영혼과 육체로 창조된 인간 21C. 하나님의 형상 23Ⅴ 타락한 인간 25A. 죄의 본질 25B. 원죄와 죄의 연관성 27C. 자유 의지 29Ⅵ 새로운 인간 32A.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 32B. 칭의와 성화 34Ⅶ 결 론 36참고문헌 39Ⅰ.서론A.문제제기인간이란 무엇인가? 우리들은 누구인가? 나 자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 물음들은 자기 자신을 의식하게 되는 인간 자신 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인간만이 그렇게 묻고, 또한 분명히 자기 자신과 자신의 본질에 관하여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바로 그의 의문이다. 이처럼 인간 자신을 인식하게 하는 이 질문은 인간 자신 만큼이나 오래된 질문이지만, 쉽사리 해답을 발견하지 못한 채 인간은 인간에게 가장 큰 비밀이 되어 왔다.)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인간이해의 가장 특징적인 선언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졌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던 인간이 죄라는 사슬로 인하여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쫓겨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야만 하는 인간의 속성 안에는 엄청난 의문이 제기되었고,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의문에 대한 정의와 판단을 내렸지만 아직도 인간에게 만족할 만한 해답이 되지못하였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받는 자이기 때문에 그에게 주어지는 모든 대답들은 결국 인간에게는 불충분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끝임 없이 자기 성찰적 물음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갖는다.오늘날처럼 인간성 존중에 위기감을 느끼는 시기도 없었을 것이다. 그 첫째는 자연을 통한 하나님 인식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 말씀을 통한 하나님 인식이다.) 이러한 하나님 인식 방법을 논하기에 앞서 그는 하나님을 안다는 것을 “단순히 객관적 지식 내지 지적인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예배를 내포하는 실존적 이해”) 라고 보고 있다. 하나님은 절대로 추상적인 지식으로는 알지 못한다. 깔뱅은 실천적 성격을 주장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감사, 경배, 찬미, 찬양, 영광 돌림, 영화롭게 함이 있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만이 신앙생활로는 하나님의 참 앎이 아니다.하나님 인식에 대한 제방법으로써 깔뱅은 먼저 자연을 통한 방법을 언급한다. 이 자연을 통한 자연적 신인식은 인간 내면의 주관적인 면과 자연 형상 및 우주, 인류역사를 통해 인식하는 객관적인 면이 있다.) 그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자연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종교의 씨를 주셨음을 인정한다. “인간의 정신 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직관이 있다.” 이는 자연적 본능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하나님에 대한 직관”은 종교의 씨앗이다.) 그는 또한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내적 계시를 감수하는 기능으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신에 대한 두려움과 양심을 주셨다고 본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양심을 주시므로 옳고 그름, 좋고 나쁨, 선과악, 귀하고 천한것 등의 분별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깔뱅에게 있어서 종교란 창작물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심겨져 있는 하나님 인식의 보편적 증거이다.)다음으로 깔뱅은 하나님께서 자연계시를 통해 객관적으로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속에 종교의 씨를 심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의 구조를 통하여 그의 완전함을 나타내 주셨고 우리에게 이를 밝혀 보여 줌으로써 눈만 뜨면 그를 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게 해 주셨다.) 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은 전 세계 구조 안에서 모든 자연 현상 안에서 인간에게 나타난다.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 안에 그의 영광더욱 없어 진다는 것을 간단히 알아 두어야 한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깔뱅은 말한다. 이 점을 지지하는 명백한 증언들이 성경에는 얼마든지 있다. “죄를 범치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아주 없느니라”고 솔로몬이 말한다. (전 7:20) “주의 목전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라고 다윗이 말한다. (시 143;2)율법은 거울과 같다.) 우리는 이 거울을 들여다 봄으로써 우리의 연약함을 명상하고 이러는 동안에 우리의 죄가 들어나고 급기야 저주에 임한다. 또한 하나님의 의를 수용할 수 없다는 압박감에 사로 잡히게 된다. 그래서 율법을 통하여 우리의 범죄가 크게 들어나면 날수록 우리에게 부과된 하나님의 심판은 더욱더 막중해진다. 율법은 인간들의 비참한 상태를 깨우쳐 주어서 저들을 겸허하게 한다.위의 내용을 정리한 바 율법은 3가지 용법이 있다. 첫째는 율법의 정치적인 기능인 데 이것은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원천이다. 악을 방지하며 평화를 유지하게 하는 법적 기능을 한다. 둘째는 영적인 기능이다. 회개에 이르게 하는 것으로써 하나님의 거룩하신 심판을 경험하게 한다. 즉 고발적인 역활을 하는 것이다. 세째는 교육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신자들의 삶의 지침으로써의 율법이다.2. 복 음그리스도의 신비를 분명히 나타내는 것이 복음이라고 깔뱅은 생각한다. 바울이 복음을 “믿음의 교훈”이라고 부르므로(딤전4:6) 율법에서 하나님이 죄를 거져 용서하심으로서 사람들과 화해하시겠다고 자주 약속하시는 것을 모두 복음의 일부분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깔뱅은 인정한다. “복음”이라는 말을 넓은 의미로 해석할 때에는 하나님이 옛날 족장들에게 베푸신 자비와 아버지 같은 후의에 대한 증언들도 복음에 포함된다. 그러나 더 높은 의미에서는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된 은총을 선포하는 것이 복음이다.)복음은 다른 구원 방법을 제시할 만큼 율법 전체를 폐지한 것이 아니다. 도리어 율법이 약속한 것을 모두 확인하고 실천했으며 그림자에 실체를 주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죄를 범하여 인명에 의해서 불멸인 바, 그 생명은 하나님 안에만 있는 것이다.) 이렇게 깔뱅은 인간의 영혼은 불멸하여 신적인 영원성과는 구별되야 된다고 보며 영혼 역시도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해 있다고 말한다. 이 부분을 니젤은 주석하면서 “육체적 사후에도 그의 날을 기다리게 하는 신의 은혜”)라고 말을 한다. 그는 신앙과 영혼의 관계를 말함으로써 영혼 불멸과 영원성을 구별한다.결론적으로 깔뱅은 인간이 영혼과 육체로 창조되었으며 인간의 영혼은 불멸의 본질을 지니고 있고 인간의 영혼은 선악을 분별하는 지성과 의존하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인간 영혼의 기능은 부패되었고 자유의지는 박탈당했다. 여기서 칼빈은 인간의 영혼도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해 있으며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산다고 분명히 한다.C. 하나님의 형상깔뱅은 인간을 하나님과의 상관성 속에서 보면서 다른 피조물과의 구별성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간이 지음 받았다.’라는 사실에서 찾는다. 그는 단번에 지음받은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간의 영혼에는 불멸의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 “우주 세계에 있는 모든 피조물은 각 부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비추고 있다.” ) 육체의 어느 부분도 하나님의 영광의 섬광이 비추어지지 않는 곳이 없다.) “다른 모든 생물들이 땅을 내려다 보고 있는 데 반해, 인간의 머리는 위로 향해 있어 하늘을 바라보며 그의 얼굴은 별들을 올려다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깔뱅은 하나님의 형상을 인간에게 부여된 자연적 은사들과 기능들 속에서 파악할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이 외형적인 인간에서도 드러나긴 하나, 그 형상의 퇴적의 자리는 영혼으로 본다. 이 영혼에 새겨진 하나님의 형상이 영혼의 두가지 구성 요소인 지성과 의지가 하나님께 복종함에 따른 내적 질서에 적당히 상응하여 인간의 외형적 육체에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또 다른 의미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그 형상을 인간안에 두시고 그것을 지켜 보시는 하나님 자신이다 말할 때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과의 전 인격적 관계에서 성립되는 것이며 그의 존재 전체에 관여한다. 그러므로 이 원상태의 타락도 사람의 전체에 관여한다. 인간 전체를 장악한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상실하게 되었다. 둘째로, 원죄는 아담 한 사람의 죄가 아니라 전 인류에게 미치는 우리의 죄이다. 아담의 죄가 어떻게 우리의 죄가 될 수 있을까? 아담의 죄가 우리의 죄가 되는 것은 우리가 아담의 죄에 물들어 있으며, 계속해서 죄를 발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깔뱅은 원죄를 상태(state)와 행위(act)에서 오기 때문에 원죄에 대한 자연주의적 해석과 인격주의적 해석을 배격한다.깔뱅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하는 생물학적 유전설을 따르지 않는다. 죄의 유전성은 인정하지만 출생으로 인한 죄의 유전은 깔뱅은 거부하는 것이다. 죄의 보편성과 더불어 죄의 유전설이 의미하고자 하는 바도 인간의 실존적 삶 속에서 저지르는 죄의 실제성을 분명히 드러내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아담이 단지 한 개인으로서 존재하고 행동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그의 안에 포함되도록 하나님께서 예정하셨다. 그러므로 그의 행동은 우리의 행동이요, 그의 범죄는 우리의 범죄다.) 또한 깔뱅은 원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려는 마니교의 주장에 반대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육신의 일이라 부르는 죄를 계속해서 발생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멸망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아담에게서 온 것이고 우리의 육체의 허물로부터 온 것이다.)C. 자유의지타락한 인간에게 있어서 인간이 부여받은 자유의지는 어떻게 되었는가? 창조된 인간에게 있어서는 인간 영혼에 자유의지가 있어서 원하기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에 선악을 구별하는 정신과 선택하여 따르거나 피할 것을 구별하는 이성을 주었고 여기에 선택을 조절할 의지를 주셨다.”)여기서 자유의지란 인간 영혼의 두 기능을 말한다. 깔뱅에게 있어서 자유의지란 두가지 측면을 가지고 있다. 즉 “의지란
매춘문제, 그 모순과 해결 방안장로회대전신학교이 선 규목 차Ⅰ. 서 론 51.연구 목적 52.연구 방법 5Ⅱ. 매춘의 역사적 배경 61.일제 식민지 치하 62.분단이후 미국군대의 주둔 산하 73.196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8- 전통형 매춘에서 산업형 매춘으로 전환기 -Ⅲ. 매춘의 원인 101.근본적 원인 101) 문화.제도적 모순 102) 여성 노동력에 대한 차별 112.현상적 원인 121) 믈질 만능주의로 인한 향락 산업 증가 122) 매춘 여성의 의식 구조 153) 성의 구매자 15Ⅳ. 매춘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161.각 분야에서의 연구들과 한계점 161) ‘여성학’ 분야에서의 매춘 연구 162) ‘사회학 사회복지학’ 분야에서의 매춘 연구 173) ‘공중 보건학’ 분야에서의 매춘 연구 182. 국가적 대안 193. 교회적 대안 221) 교회론적 접근 222) 선교론적 접근 253) 목회론적 접근 27Ⅴ. 결론 31참고문헌 33부 록 - 1.윤락행위등 방지법 372.윤락행위등 방지법 시행령 41Ⅰ.서 론1. 연구 목적본 고는 매춘문제가 사회구조와 국가정책의 모순에서 더 악화 되었음을 지각하고,특히,이 문제를 각 분야에서의 연구진행 방법을 통해 학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인식하였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좀 더 나아가 국가적인 대안은 없는것인지,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 가능한지 모색하여 교회적 차원에서의 그 대안은 어떤 것이 있는지 접근 하고자 한다.1980년대 이후 사회의 다각적인 변화에 따라 매춘의 현실도 급변하고 있는 까닭에 교회는 더욱 매춘현상을 왜곡하지 말고 직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매춘여성에게 접근하며 시대적 노력과 더불어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대책이 마련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논고의 의미가 있다고 본다.2. 연구방법문제의 발굴을 위해 그 동안 연구되어진 자료를 이용하여 매춘의 현실을 똑바로 인식하고 국가적인 문제점과 국민의 잘못된 시각을 지적하고자 한다. 또한 각분야의 연구와 대안의 한계점으로 인하여 교회 분석해 보면 결국 발견 되는 것이 여성에 대한 대상화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와 같이 성차별적인 사회에서는 일방적인 성관계에서 조차 여성은 대상화 된다.위와 같이 유교 성차별의 문화는 서구의 성 이론에 합세하였고 이에 발맞춰 온갖 대중매체를 통해 여성을 상품화 시키기에 이르렀다.둘째, 제도적인 모순을 들 수 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윤락 행위등 방지법’을 보면 사회적 약자인 매춘 여성에 대한 인권 보장과 사회 복지를 위하여 확실한 조치가 취하여지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성을 파는자와 이에 대한 주변을 법 조치하는 과정에서 모순점이 드러나고 있다. 그것은 성을 사는 자에 대한 묵인을 하면서 법으로 통제하고 있다는 아이러니이다.또한 성을 구하는 자에게는 가벼운 조치만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제도의 모순은 가부장적인 사회의 법에 기인한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여성 개발원에서는 주장하여 왔다.2) 여성 노동력에 대한 차별한 사회의 여성 차별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그 사회의 공적인 경재생활을 주도하는 산업 자본주의 구조와 사적인 가정생활을 지배하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경제 개발에 따른 모순 속에서 저임금 여성 노동력은 착취되어 왔고 여성은 결국 성 유린의 대상이 되었다. “성 차별 의식이 강하고 여권 신장 운동이 저급한 수준에 있는 제3 세계 일반의 상태를 이용하여 기업의 윤리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기업들이 여성의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빈곤한 여성들은 보다 높은 수입의 원천을 찾아 매춘여성이 되었던 것이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는 성차별과 함께 여성 노동력을 차별하게 되었고, 노동력의 차별은 매춘 시장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2.현상적 원인1) 물질 만능주의로 인한 향락 산업 증가매춘 시장 주변부에 기생 서식하는 제3의 시장지대는 철저한 상업주의가 난무하는 장소로 소비지향적 매춘문화를 생산하고 있으며 이에문제로 보는 한계성을 낳게 된다.2)‘시회학 사회복지학’ 분야에서의 매춘 연구사회학적에서의 접근방법은 주로 실태조사를 중심으로, 매춘여성들에게 질문지나 면접등을 통해 매춘여성의 성격, 가족관계, 윤락가정, 생활구조와 조직관계 등을 조사하였다. 또한 ‘사회복지학’ 분야에서는 부녀 복지시설의 확충과 복지사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부녀 직업 시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보건사회부 『부녀복지 시설현황』 1991.시?도시설수수용정원 (명)수용현원(명)운영주체(개소)비 고공 립법 인사?도립시?도립사회복지재단계221,6531,17222126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대전경기강원***************************************95*************1422211141위의 도표에서 볼 수 있듯이 부녀직업 보도 시설의 확중과 여성 복지법 제정의 필요성, 복지사의 필요성 및 부녀상담소 독립 기념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이처럼 여성복지에 관심을 갖은 사회학 분야에서의 연구는 여성 복지법이 제정 되지 않은 까닭으로 매춘 여성들에게는 현실성이 없다는 약점을 가지고 있다.3) ‘ 공중 보건학’ 분야에서의 매춘연구이 부분에서의 매춘 연구는 주로 성병 확산에 대한 경계심리와 그 심각성에 유념하여 이 문제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의학 통계의 인식을 심는데 주력해 왔다. 그러나 이 분야에서의 연구 역시 매춘을 기정 사실화 하기 때문에 병리 현상으로 나타나는 근본적인 대책을 세울 수 없다는 한계성이 드러난다.2. 국가적 대안매춘 문제에 관심을 갖다 보면 현실적으로 걸림돌이 많음을 발견하게 된다.즉 ‘ 윤락행위 등 방지법’ 으로 매춘 여성 개인에게 막중한 책임을 돌리고 있다는 사실과 정부의 이기적인 경제 정책으로 인하여 노동력을 보상 받을 수 없는 힘이 없었던 여성들이 들어선 매춘의 길에 또 다른 계급들의 착취등은 기본적인 문제를 왜곡하는 정부의 무관심과도 연결 된다.이제는 매춘문제가 한 개인의 타락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 라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이에 대한 교회에서 멀어지게 하였다. “그러므로 교회는 끊임없이 사죄를 필요로 한다.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할 교회’이며 ‘항상 개혁되어온 교회’”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매춘여성을 죄인으로 취급하여 교회로 부터 멀어지게 하였던 잘못을 깨닫고 그들을 이제라도 받아들여야 한다.(2) 교회의 사명교회는 세상과 인류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 교회임과 사명을 갖는 것은 분리되는 두개의 것이 아니다. 교회는 교회이기 위하여 자신이 세상으로 파송되었다는 것을 연속적으로 인식하고 나타냄으로로써 사도들을 좇아야 한다.교회가 개인의 영혼 구원에만 열을 올린다고 해서 교회의 사명을 다 하는 것은 아니다. 교회는 개인의 영혼 구원뿐 아니라 세상을 향해 봉사에 손길도 펴야된다는 것이다.신구약 성서는 단순히 영적인 말씀을 선포하는 것만을 교회의 사명으로 보지 않았다. 즉, 인간의 삶과 삶의 조건을 개선하기 위하여 복음을 선포하고 교육시키며 벙자를 치료하고 약자를 구제하고 보호하는 것을 교회의 사명으로 삼았고 또한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으로 보았다.참된 교회는 봉사와 말씀을 사역으로 행하셨던 예수의 목회를 본받는 전인적인 교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예수의 제자들과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예수처럼 전인적인 목회를 하였다. 이와같이 오늘의 교회도 예수와 제자들의 사역을 본받아 봉사와 말씀의 사역을 병행하여야 한다. 그러기 때문에 사회 봉사에 무관심하던 교회들이 눈을 떠서 사회에 큰 문제인 매춘의 문제를 다시 인식해야 한다. 그리하여 매춘 여성에게 관심을 갖고 이에 대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2) 선교론적 접근(1) 선교란 무엇인가?선교는 문화의 경계를 넘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 사람들을 권하여 예수를 주와 구주로 영접하게 하며, 그의 교회의 책임적 표현이 되어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전도와 정의의 일을 하여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도록 하는 것이다.선교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땅에 이루는 일이라면 교회는 모든 백성을 포용 부족한 점이 많다고 한다. 이제는 각 개교회 뿐만 아니라 교단을 통해, 더 나아가 초교단 활동을 통해 자금을 조달받고, 협력활동을 통해 실태를 파악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한 목회자의 사례 -- 계영수 목사님과의 인터뷰에서 1994.11.21.매춘여성의 선교를 위해 17년을 노력하신 계영수 목사님께서는 현재까지 매춘여성 13가정을 그리스도를 영접케 하였고, 자립하도록 물심양면으로 힘쓰셨다고 한다. 이 목회자는 이들을 위해 1일 택시를 하시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계목사님과 인터뷰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질문 : 매춘여성에 대해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대답 : 17년전 입니다.질문 : 매춘여성을 어떻게 만날 수 있었습니까?대답 : 다른 남자들 처럼 돈 주고 들어갔었습니다.질문 : 어떻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습니까?대답 : 진실된 마음을 털어놓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죄하지 않으려 하니까 입을 열게 되었습니다.질문 : 매춘여성이 된 동기는 무엇이었습니까?대답 : 동생을 가르치기 위해 돈을 벌겠다는 생각에서 였답니다.질문 : 매춘여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까?대답 : 물론입니다. 인간들이 가진 것을 서로 나누지 못하고 이기심을 채우려고 하기 때문에 이 사회가 그들을 만든 것입니다. 환경을 만든 사회의 책임이 큽니다.질문 : 매춘여성도 평범한 인간처럼 사회에 적응 할 수 있을까요?대답 : 물론이지요, 제가 만난 여성중에 한 여성은 자신의 행위를 동생이 알게되면 동생의 앞길에 지장이 있다고 숨기면서까지 동생의 학비를 보태고 있었어요. 또한, 지금 교화된 여성 13가정이 아직까지 잘 살고 있으니, 주위에서 어떻게 대하느냐가 문제겠지요.질문 : 매춘문제에 교회의 책임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대답 : 예, 대부분의 매춘여성들이 교회에 나가 본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춘여성이 되어서 교회에 가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런 사실로 볼 때 교회는 분명히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질문 : 그런데 왜 매춘문제에 교회가 관심을 갖지 않을까요?대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