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만남 - 서애 유성룡을 읽고 200701516 김중규2010년 현재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경제규모 세계 15위, 군사력 세계 6위 등 전 세계에서 무시될 수 없는 강력한 나라이다. 식민지에서부터 전쟁까지 고난과 역경을 치루면서도 단기간에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만큼 강하고 대단한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지표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과거 우리 선조들의 노력에 결과이다. 약 400년 전으로 거슬려 올라가서 ‘조선’이라는 나라를 보고 현재와 비교해보면 대한민국은 하늘이 도왔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심에는 서애 유성룡이 있다.1542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태어난 서애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열세였던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큰 공을 새웠다. 그렇다면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의 활약에 대해 알아보자. 1392년 조선이 건국되고 정확히 200년 후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다. 국력이 약한 아니 국방이라는 것은 찾아볼 수 없는 조선은 당연히 왜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은 명나라에 구원을 요청을 한다. 이때부터는 조선은 명나라에 치이고 왜에 치이는, 나라도 아닌 수모를 겪게 된다. 유성룡의 징비록에 의하면 조선은 오직 하늘의 도움으로 운명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정말 가슴에 와닿는 말이다. 당시 상황에서 하늘이 돕지 않았다면 왜는 조선을 장악해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혹은 명과 왜의 뜻대로 조선을 분할해서 지금과는 전혀 다른 역사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하늘의 도움도 있겠지만 유성룡과 같이 조선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었던 임진왜란의 영웅들의 노력이 하늘을 감동시켰다고 생각한다. 임진왜란은 명나라, 조선과 왜 사이에 전쟁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주로 명과 왜의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과 왜의 전쟁을 유성룡이 명과 일본의 전쟁으로 바꿔 놓았다. 여기서 조선은 군량을 보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즉 임진왜란은 적국 군대와의 전쟁이 아니라, 그 이전에 우리 안에서 군량을 어떻게 확보하느냐의 7년 동안의 군량전쟁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임진왜란 동안 명군과 조선군에 군량을 공급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을까. 평상시에도 먹을 식량이 부족해서 배고픔에 굶주리는 백성들이 전쟁으로 인해 겪는 고통은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다. 이러한 가난한 상황에서도 유성룡이 군량을 모으기 위해 손발이 닳도록 노력했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다. 절대 빈곤의 상황에서도 쌀 한톨이 아까워 이리 저리 돌아다니며 노력한 모습이 책을 읽으면서도 눈 앞에 그려졌다. 유성룡이 선조에게 올린 상소문만 보더라도 임진왜란 동안 고난과 시련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임진왜란, 즉 군량전쟁 동안 유성룡은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군량을 모으고 또 모았다. 만약 유성룡이 없었다면 군량은 제대로 확보가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그리고 서애 유성룡은 조선시대 무를 천시하는 다른 학자와는 달리 군사분야에도 많은 관심과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은 국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빈약한 군사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책에서 알 수 있듯이 일반적인 구조와는 다른 역피라미드 편제라고 할 만큼 군사체계는 엉망진창이였다. 병졸은 없고 중대장은 있는데 소대장은 없으며, 소대장은 있는데 분대장은 없다. 말 그대로 십양구목이다. 그리고 장수는 병졸에 의존해서 생계를 마련하고 병졸은 무기가 없어 스스로 마련하고 장부에 군사수도 전혀 맞지 않았다고 한다. 과연 조선이 임진왜란 동안 왜에 점령당하지 않고 온전히 그 명맥을 유지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랍다. 이러한 원인은 바로 조선조정의 자위의식의 부족과 결핍 때문이다. 문이 중시되고 무가 경시되는 유교사상에 200년 이상 지배당했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역사는 자비롭지 않다. 그 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당연히 대비하지 않은 조선임금은 도망갈 수밖에 없다. 망전필위 라는 말이 있다.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태롭다.’라는 사자성어이다. 아무리 태평성대를 누려도, 그럴수록 국가보위를 튼튼히 하고 있어야한다. 그렇다면 조선이 아닌 대한민국은 과연 튼튼한 국가보위를 가지고 있을까 궁금하다. 현재 대한민국은 휴전국가이다. 전쟁이 끝난 상황이 아닌 잠시 휴식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이 57년 동안 지속되고 흔히 하는 말로 ‘등 따듯하고 배부른’상황이 되니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결여된 것 같다. 우리나라는 북한의 장사포에 불과 40마일 떨어져있다. 생각해보면 위험하고 무서운 상황이다. 이러한 실전이나 다름없는 상황에서 국가, 국민의 안보의식결여의 상황은 임진왜란과 같은 다시는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될 상황이 다시 연출 될 수 있다. 최근 천안함 사건과 관련하여 군대 기강이 많이 헤이해졌다는 신문기사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제7차 지역발전위원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군 기강 확립과 국민안보의식 강화를 주문했다. 임진왜란때에 군국기무를 담당한 유성룡은 정병제를 제시하는 등 나라의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선조에게 올라가는 상소문에서 알 수 있듯이 나라의 국방이 취약하고 안보의식이 없어 꼭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성룡이 노력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국방의 강화와 안보의식의 향상을 위해 조금 더 힘을 쏟아야한다. 임진왜란은 힘의 균형이 깨어져 생긴 전쟁이다. 조선의 국방력이 약해서 왜가 침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군 기강이 헤이해지고 안보의식이 약해진다면 우리와 적대 관계에 있는 북한은 물론이고 지금은 우호관계를 지키며 잘 지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이웃나라들도 적이 될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 발생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현재 우리는 분단된 국가에서 살고 있다. 이러한 분단 상황은 한국전쟁 이후 휴전협정을 맺으면서 발생한 결과물이다. 분단 된지 약 60년이 흘렸지만 하마터면 이 60년이 400년으로 바뀔뻔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1592년 4월 13일에 발생한 임진왜란은 현재 역사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였다. 조선은 임진왜란동안 전쟁당사국 지위를 갖지 못하는 고통스럽고 굴욕적인 상태에 직면했다. 그것이 바로 명나라와 왜 사이에 강화추진이다. 조선은 완전히 제외된 채, 물밑으로 벌이는 그들만의, 나라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강화추친을 감행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명나라는 임진왜란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조선을 돕기 위해 구원병을 보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명나라는 조선을 위해 출병한 것, 종주국으로 의무를 수행하고 질서를 지키기 위해 출병한 것이 아니다. 바로 왜로부터 자신을 구하기 위해서 조선에 군대를 파견했다. 당시 조선은 명나라 요동의 울타리로서 역할을 했다. 명에게는 조선으로의 군대 파견이 자신의 입장에서는 자국을 방어하는 전략적으로 전술적으로 휠씬 유리했기 때문에 군대를 파견한 것이다. 이런 명나라가 조선을 정말 목숨을 바처서 지켜줄리 만무하다. 현재 우리나라와 조선을 비교해보면 비슷한 부분이 있다. 한국전쟁과 임진왜란을 비교하면 조선에 명나라가 군대를 파견했듯이 미국이 한국전쟁에 군대를 파견했다. 차이점이라면 임진왜란은 하늘의 도움으로 분단은 막았으나 한국전쟁은 분단상황 까지 가게 된 점이다. 분단 이후 대한민국은 주한 미군에 어느정도는 의존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조선은 명나라 군대에 의존했었다. 하지만 당시의 의존 상황과 지금 대한민국의 의존 상황은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약한 군사력으로 명나라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였다. 조선의 정부도 군사도 모두 명나라가 아니면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당연한 말이다. 국방력이라고는 찾기 힘든 조선에 강력한 왜가 처들어 왔으니 그들의 종주국인 명나라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은 어떤 점에서는 다르지만 또 다른 부분에서는 조선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말 할수 있다. 대한민국은 세계 국방력 6위에 이르는 당당한 나라이다. 세계 강대국들만 가지고 있는 이지스함을 보유 하고 있는 몇 안되는 나라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조선이 명나라에 의존했듯이 대한민국은 주한미군에 의존하고 있다. 자주 국방을 위해 주한 미군을 철수 하고 작전통제권을 가져와야 한다는 의견이 있지만 아직은 시기가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가 강력한 국방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성장이 더 필요한 상황이며 북한과의 휴전상황에서 힘의 균형을 잃어버렸다가는 임진왜란처럼 불행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이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 하기 위해 우리나라는 작통권 환수 전에 국방력을 조금 더 튼튼하게 강화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역사를 연구하는 목적은 역사를 교훈삼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다. 조선의 임진왜란 상황을 보고 현재 대한민국의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떡 사업 시장 마케팅떡은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으로 예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우리 선조들은 축제, 이사, 경조사 등 기쁠 때나 슬플 때 항상 떡과 함께였다. 그러나 서구화 되어 지는 식생활과 우리 전통의 퇴색으로 인해 그 관심이 점점 사라지는 추세이다. 서양에서 굴러온 빵과 도넛, 과자 등 다양한 종류의 먹을거리가 우리 전통의 자리를 밀어내고 일상생활에 꽉 박혔다. 이로 인해 떡이 훌륭한 우리 전통 임에도 불구하고 점점 그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우리나라 고유 음식인 떡의 발전 방향을 찾아보자.시장세분화시장 세분화의 수준 - 세분화 마케팅(Segment Marketing)- 떡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음식이다. 하지만 음식의 급격한 서구화 열풍 속에서 10대~30대 세대에는 떡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단지 전통음식으로만 남아있다. 대신 떡의 빈자리를 서양음식인 빵과 도넛 등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40대 이상의 old세대와 10대~30대 young세대 사이에는 떡에 대한 생각과 욕구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떡의 마케팅은 10~30대 young세대와 40대 이상의 old세대로 세분화 시켜 구분해야한다.시장세분화 기준의 선정 - 인구통계적 및 생활양식(lifestyle) 세분화- 인구통계적 변수 가운데 연령이 널리 활용되는 방법이다. 떡 시장 역시 old세대와 young세대를 연령으로 세분화 하여야한다. 성별이나 학력 등 다른 변수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여자라 해서 떡을 더 좋아하는 것도 아니며 고학력이라고 떡을 자주 먹지 않을 것이다.- 생활양식(Lifestyle)old세대의 경우 떡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인지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young세대는 떡에 대해 적은 인지도를 보인다. 그래서 직접 떡을 구매하는 경우는 드물고 부모님 세대에서 구매한 떡을 먹는 정도 이다. 하지만 호기심이 강해 신제품에 관심이 높다.세분시장에 대한 평가- old세대 시장고객(customer) : 현재 우리나라 인구구성에서 가장 비중이 큰 연령대는 40대이다. 2008년 40대의 인구수는 840만명 이다. 그리고 실버계층도 계속 증가 추세이다. 이들은 빵과 도넛 등과 같은 서구화된 음식보다는 전통음식인 떡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세대이다. 건강에 관심이 높기 때문에 기름진 간식 보다는 건강에 좋은 떡에 대한 소비가 높은 편이다.경쟁자(competitor) : 떡 시장에 공급자는 많다. 그리고 빵과 도넛 아이스크림과 같은 다른 분야의 경쟁자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떡 가게는 예전의 방식대로 주문판매를 하고 있어 점차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고 빵과 도넛과 같은 다른 분야의 경쟁자들도 old세대의 시장 보다는 젊은 층을 겨냥하고 있다.- young세대 시장고객(customer) : 젊은 층의 고객들은 아직 떡에 대한 인지도가 낮다. 하지만 낮은 인지도를 그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촉진 시킬 수만 있다면 수요 증가 가능성은 충분하다.경쟁자(competitor) : young세대 시장의 경쟁자는 기존의 떡 사업체 보다는 맥도날드, 던킨도넛과 같은 사업체이다. 이들은 young세대에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존 떡 사업체는 young세대에 거의 영향력이 적다.표적시장선정다수 표적시장전략(multiple target market strategy)- old세대 시장과 young세대 두 개 시장으로 표적을 삼는 전략이다.건강과 맛을 중시해서 old세대 시장을 공략하고 호기심과 맛을 통해서 young세대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다. 비록 규모가 큰 사업은 아니지만 각 표적시장 간에 제품의 차이가 크지 않으므로 제품생산에 드는 비용을 줄이고 경쟁력을 확보 할 수 있다. 그리고 각 세분시장에 적합한 브랜드로 자사 브랜드 간에 출혈 경쟁을 피할 수 있다.포지셔닝전략- 떡에 대한 소비자 욕구는 연령에 따라 구별된다.old세대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다. 통계청 발표자료(2002)에 의하면 ‘중요한 생활 관심사’에서 40대 이상의 약 60% 이상이 건강을 가장 중요시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의 건강욕구를 채워주는 간식은 그다지 많지 않고 주변에서 쉽게 구하기도 힘들다. 기존 시장의 빵과 도넛 햄버거와 같은 음식은 기름에 튀기거나 설탕이 많이 첨가 되는 등 건강과는 거리감이 있다. 그리고 현재 떡 시장은 떡이 건강식이라는 것은 알지만 건강에 대한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을 거의 하고 있지 않다.young세대는 건강에 대한 관심이 있지만 맛에 대한 욕구가 더 강하다. 이 세대는 단순함 보다는 자극적인 것에 민감하며 호기심이 강해 신제품, 새로운 것 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들에게 전통적인 떡에 대한 생각을 진부적이고 고전적인 것으로 인식되어 거리감이 있다.이러한 이미지와 맛의 문제로 기존 떡 시장은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Das Experiment를 보고사람은 어떤 상황이나 장소에서도 조직이라는 틀에 포함되어 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학교라는 조직의 일원으로 점차 성장함에 따라 군대, 직장 등등 다양한 조직을 경험한다. 또한 한 개인이 동시에 여러 가지 조직에 포함됨으로서 다양한 사회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수많은 조직은 우리의 생활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Das Experiment에서도 조직이라는 개념은 간과 할 수 없는 중요한 감상 포인트이다. 범위를 넓게 생각해 보면 이 영화에서는 크게 5개의 조직이 등장한다. 첫 번째 실험자와 피실험자를 합한 조직, 두 번째 실험자 조직, 세 번째 피실험자 조직, 네 번째 간수 조직, 다섯 번째 죄수 조직이다. 우선 첫째 실험자와 피실험자를 합한 조직을 살펴보면 이 조직은 처음에는 공식적 조직의 관계를 떠나서 어떤 의식적 공동 목표가 없는 비공식조직(informal organization)이였다. 하지만 실험자 조직은 4000마르크라는 물질적 보상으로 피실험자 조직을 고용하고 이들 두 조직은 조직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 관계를 형성한 공식조직(formal organization)으로 성격이 변하게 된다. 둘째로 실험자 조직은 Dr. 톤을 리더로 한 규범조직(normative organization)이라 할 수 있다. 이 조직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 인간은 극한 환경을 선한 의지로 이겨낼 수 있는 존재인가'라는 인간 본성에 관한 의문을 과학적으로 탐구 하려는 공통적인 목표로 삼고 있는 조직이다. 이 조직에서 리더인 Dr. 톤은 연구에 대한 전문적 권력(expert power)으로 부하직원에 영향력을 행사 한다. 그런데 실험이 진행되는 중에 실험자 조직 내 갈등(conflict)이 발생한다. 실험이 목표 위협수위에 다다르자 리더인 Dr. 톤과 부담당인 그림교수 사이에 실험의 진행여부에 관한 실질적 쟁점의 불일치 원인에 의해 개인간 갈등(interpersonal conflict)이 빚어진다. 이 갈등에서 Dr. 톤은 자신의 공식적인 지위를 이용해 실험진행을 계속 하겠다는 주장으로 갈등이 해소 된다. 하지만 Dr. 톤의 잘못된 리더십 판단으로 실험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다. 셋째로 피실험자 조직이다. 이 조직은 다양한 직업군으로 이루어진 비공식적 조직(infomal organization)에서 물질적 보상이 주요 통제 수단이 되는 실용조직(utilitarian organization)으로 변화한다. 4000마르크라는 보상이 그들의 중요한 공동목표가 된 셈이다. 넷째와 다섯 번째로 간수조직과 죄수조직을 살펴보자. 이 조직은 피실험자 조직 내의 조직으로 처음에는 단지 물질적 보상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였으나 실험이 진행되면서 죄수들을 관리해야 한다는 강제력과 감옥 안에 15일 동안 있어야 한다는 강제적 권력으로 지배 되는, 강제력이 조직구성원을 통제하는 주요 수단이 되는 조직인 강제조직(coercive organization)으로 변하게 된다. 이 두 조직에는 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두 명의 리더가 존재한다. 바로 간수조직의 실질적 리더인 베루스와 죄수조직의 타렉이다. 두 리더는 각각의 조직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처음 간수조직은 죄수 조직에 비해 단합심도 약하고 죄수에 대해 큰 영향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간수집단을 상대로 갈등을 야기하는 타렉의 영향으로 간수집단은 간수 개개인이 달성할 수 없는 목표를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 좀 더 강력한 집단을 형성하게 된다. 이렇게 형성된 간수 집단은 죄수집단에 이전과는 다른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처음에는 이들은 단순히 4000마르크의 성취욕구(need for achievement: nAch)를 충족시키기 위했지만 간수역할의 우월함과 권력에 심취한 나머지 처음목표와는 달리 권력욕구(need for affiliation: nAff)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점점 잔인한 방법을 택하게 된다. 특히 베루스의 카리스마적 리더쉽(charismatic leadership)에 입각한 4000마르크에 얽매이지 않는 비범한 행동이 간수, 죄수집단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주요한 원인이다. 죄수집단을 보면 그들의 환경과 분위기가 서로를 잘 화합하게 만들어 주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간수조직에 비해 쉽게 화합할 수 있었다. 죄수집단에도 중요한 리더를 찾을 수 있다. 바로 타렉이다. 타렉은 죄수들을 선동하고 간수를 조롱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결국 타렉의 행위가 간수조직에 계속적인 영향을 끼치자 두 집단사이에 갈등을 야기하고 이 갈등은 최악의 상황까지 치닫게 되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5일만에 막을 내린 이 실험은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최악으로 기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