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리더는 태어나는 것인가, 아니면 상황이나 환경 또는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인가?사람에게 있어서 리더십은 선천적인 면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개인의 노력이나 환경 등에의해 길러진 부분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쪽이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그렇지만 후천적 요인 역시 그만큼 중요하다.비록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이 서로 다르긴 하지만 처음의 출발이야 어떻든 간에 누구나 그 능력을향상시키는 법을 배울 수 있다.물론 타고난다고 할만한 요소도 분명히 있다. 바로 “앞에 나서려는 마음가짐”이다.갑자기 과제가 떨어졌을 때 망설임 없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일단 발을 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경쟁자들끼리 모인 입사면접 대기장에서도 먼저 말문을 여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그렇게 ‘남들 앞에 앞장서고 싶어하는’ 정도의 성격은 타고나야 리더십을 개발할 동기도 쉽게 찾고또 효과적으로 발휘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것 역시 후천적인 노력으로도 습득할 수 있다.리더십이 누구라도 개발할 수 있고 발휘할 수 있는 ‘기술’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재주’만 갖고는사람을 이끌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소위 “뺀질뺀질한” 사람, “자기 이익만 챙기는” 스타일, “말을 자주 바꾸는” 인물, 또는 “소신없고 변덕스러운” 성격을 가진 이, “결정적일 때 책임을 지지 않는” 상사 등의 경우는 아무리 그럴듯하고 대의명분이 있는 목표를 내걸더라도 다른 이들의 ‘자발적인’ 동참을 이끌어내기 어렵다.그럴듯한 말재주와 분위기 조성으로 한 두번 남들을 현혹할 수는 있으나 금방 드러나게 돼있다.2. 당신의 리더쉽 스타일은 어떤가?아직 리더란 말이 어색하기만 한 나..나의 리더쉽 스타일보다는 어떤 리더가 되고 싶은지에대해서 생각해 보았다.첫째, 리더는 자신의 미션(mission)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리더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은 아니다. 먼저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소명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그래서 누구든지 새로운 직책에서 리더의 인재의 적재적소를 통한 최고의 성과 올리기, 이것이 리더의 의무이다. 이를 위해선 핵심 인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어야 하고, 이들의 특성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통해서 그들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몰락의 길로 들어서는 리더의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넷째, 리더는 솔선 수범할 수 있어야 한다.부하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것은 달변이 아니다. 몸소 자신이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사람들의 마음을 살 수 있다. 리더가 화려한 미사여구로 한 두 번 전체를 속일 수 있다. 하지만 오래 오래 그들 모두를 말만으로 속일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스스로 모범을 보이는 것이 몸에 완전히 붙어있어야 한다.다섯째, 리더는 언행의 일치를 보여야 한다.리더의 신뢰가 실추되는 많은 경우는 말과 행동이 다를 때 일어난다. 리더는 자리에 맞는 언행을 보여야 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어떤 파급효과가 있을까?’라는 질문을스로에게 던지는 것이 거의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생각나는 데로 말을 던지고, 그것을 번복하는 일이 반복되다 보면 귄위의 실추를 피할 수가 없다. 권위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여섯째, 리더는 불편 부당해야 한다.공과 사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자리가 올라가면 자신의 일거수 일투족이 거의 부하 직원들에게 알려진다고 보면 된다. 특히 사적인 목적을 위한 사소한 금전 문제가 이미지와 권위를 실추시키는 경우가 자주 일어남을 명심해야 한다.4.부하직원들의 헌신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1. 부하직원을 동료로 인식한다=빌 게이츠는 스티브 발머를 직급과 나이를 떠나 훌륭한 동료로 여겼기에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을 위해 25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의 헌신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부하 직원을 아랫사람으로만 여기는 경우, 주로 상사의 지시와 확인 위주로 이루어져 부하는 수동적인 자세가 된다. 반면, 부하 직원을 동료, 협력자로 여기면 부하직원의 열정과 업무 몰입을 유도할 수 있다.2. 가과가 공정하게 평가되지 못하는 조직에 오래 머무르는 인재는 거의 없다.위의 방법들로 직원들을 대하면 되지 않을까요??8. 직원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것인가?동기부여 5단계 화법동기부여 1 단계는 잘하고 있는 점을 자세히 말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피드백의 기회를 찾고 적당한 시점에 솔직하게 피드백을 하면 됩니다. 잘하고 있는 점을 자세히 설명할수록 자신이 무얼 잘했는지 분명히 알게되고, 이 단계를 통해 리더가 자신에게 관심을 갖고 있는것을 알게 됩니다동기부여 2 단계는 그 일이 왜 중요한지 설명하는 것입니다. 회사 또는 팀에 기여하는 측면이나 리더인 나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설명해 주세요동기부여 3 단계는 당신의 기분을 말하는 것입니다.나는’으로 시작하는 문장으로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를 사용하면 사실과 감정을 모두 전달할 수 있습니다.기분을 이야기해서 상대방의 감정에 좋은 이미지를 그려 넣습니다.동기부여 4 단계는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현재의 일을 처리하는 능력 뿐 아니라 다른 일까지도 잘 할 수 있는 능력을 신뢰하고 있다고 말하면 됩니다.이를 바탕으로 다른 일에까지 의욕을 갖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게 될 것입니다.동기부여 5단계는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능력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감사의 표현을 통해 서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동기부여를 확실히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나아가 리더와 구성원 간의 진실된 관계로 발전하게 될 수 있습니다.9. 직원들의 아이디어와 제안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의견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리더유방은 항우에 비해 가문도, 지식도, 부도 부족했으나, 중국 최대 한제국의 황제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항우는 ‘역발산 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천하장사였지만 범증이라는 훌륭한 참모와 부하들의 조언을 무시하고 언로(言路)를 틀어 막은 독단적 리더였다. 반면 유방은 한신, 소하, 장량이라는 1급 참모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재능을 발휘할 수(Jim Collins)는 위대한 리더의 조건 중 하나로 커뮤니케이션을 지적한 바 있다. 부하 직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진실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리더는 ‘답이 아니라 질문으로 리드하고, 강제하지 말고 대화에 참여하여 토론하며, 부하의 의견을 비난하기보다는 해부하라’고 강조했다.구성원들이 소신껏 의견을 적극 개진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리더의 평소 말과 행동이 매우 중요하다. 그 중 하나가 건전한 실수에 대해서는 포용해 주는 것이다. ‘실수한 사람은 찍혀 나간다’는 인식이 구성원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형성되어 있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은,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새로운 일에는 도전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델(Dell)의 전 CEO인 마이클 델(Michael Dell)은 ‘혁신은 도전과 실패로부터의 학습이다. 혁신을 위해서는 실패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실험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핵심은 리더의 역할이라고 강조하였다. 즉, 리더는 구성원들이 Risk-Taking을 편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11. 팀 내 갈등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1) 역지사지(易地思之) - 모든 갈등은 상대방이 틀리다는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 같음. 틀리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다르다는 생각을 가지고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함. 전산 order나 퇴원대기를 입력하는 것이 의사나 간호사의 의무지만 많이 바쁘다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기다려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함(2) 적극성(Activity) - 누군가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한다는 생각이 필요. 병원의 시스템 상 모든 업무가 딱딱 나누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인 의존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어야 함. 하지만 다른 사람의 호의를 역으로 이용하여 당연시 생각하면 안 됨.(3) 원활한 의사소통 - 갈등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표면화 시키지 않아 발생하는 것. 개인 간의 갈등은 민감하게 시간을 갖고 Tea Time과 같은 사적음을 만든 것이다. 올바른 커뮤니케이션의 출발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의말을 잘 듣는 것이다. 듣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방법이며, 잘 들어야 결국 말을 잘할 수 있다.또한 최대한 밝은 미소와 여유로운 말이 훨씬 더 말 잘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것이다.17. 변화는 왜 필요한가?요즘을 변화와 경쟁의 시대라고 한다. 각 개인들은 명예퇴직과 감원, 능력없는 자의 도태를 매일 접하고 있고, 기업들은 거대기업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빈번하게 목격하고 있다. 개인과 기업을 막론하고 성장과 발전은 커녕 생존 그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에 너도 나도 경쟁력을 키우려고 안간 힘을 쓰고 있다. 분명한 것은 어느 누구도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미래의 의미 속에는 불확실성과 변화가 들어 있기 때문에 미래의 성공에 대해서 자신있는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이렇다 할 만하게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 처한 입장에서 보자면 미래는 불안과 염려와 두려움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있고 의욕과 정열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도전과 개척의 대상이 되는 것이 미래이다. 이 변화많은 세상에서 미래의 나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또 되고 싶은가? 미래의 우리 조직은 어떠한 조직이 되어 있을까? 미래라고 하는 것은 아무도 밟아보지 않는 전인미답의 길이기 때문에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는 새로운 마음각오와 자세가 필요하다.개인에게는 자기가 목표로 하는 꿈이 있을 것이고, 조직에 있어서는 미래의 어느 시점까지 달성해야 할 목표와 비전이 있다. 이 꿈과 비전을 향한 노력은 바로 개인과 조직의 주도적인 변화에서 출발한다. 조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서가 변화해야 하고 부서가 변화하기 위해서는 개인이 변화하여야한다. 조직 성공의 기본은 개인의 변화이다.22. 부서 직원들에게 포상제도를 실시할 예산이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나?즉. 예산이 없다는 것은 경영활동에서 있어 매출의 부진 또는 경영자의 의지가 부족하여포것이다.
팝 페 라팝페라 란?팝과오페라의 합성어 팝페라(pop+opera)라는 용어자체가 함축하고 있는 것처럼 팝과 오페라를 믹스(mix)한 음악장르임 오페라를 팝처럼 부르거나 팝과 오페라를 넘나드는 음악 스타일 또는 대중화한 오페라 흔히 유명한 오페라에 대중적인 팝 스타일을 가미해 부름으로써 누구나 편안하게 들을 수 있는 노래들을 일컫음팝페라 란?1985년 키메라(Kimera:한국명 김홍희)가 발표한 앨범 〈더 로스트 오페라(The Lost Opera)〉 에 대해 프랑스 일간신문 《르몽드》에서 한국에서 온 팝페라의 여왕 이라고 소개하면서 처음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후 1997년 미국의 유력 일간신문 《워싱턴 포스트》 지에서 사용하면서 대중화됨 기존의 오페라를 자신의 음역에 맞추어 적절히 편곡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나, 요즘은 팝 스타일로 편곡하여 팝과 오페라의 중간 형태인 새로운 노래로 작곡해 부르기도 함 뉴에이지, 크로스오버, 팝페라 등은 1960년대에 새로운 문화사조로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에 근거하고 있음 1980년대부터 시작된 크로스오버 음악의 한 줄기라고 할 수 있으나, 최근에는 고유한 장르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유럽과 일본에서는 이미 일상적인 용어로 자리잡음팝페라의 대표 주자로는 사라 브라이트만, 엠마 샤플린, 필리파 지오르다노, 안드레아 보첼리, 이지 등이 있으며, 한국 성악가로는 조수미와 임형주등이 있음. 크로스오버라 불려지는 여러 문화 형태들 중 어쩌면 가장 극단의 길을걷던, 전혀 어룰리지 않을 것 같은 둘의 만남을 극적으로 이루어 내면서 사라 브라이트만, 이지, 안드레아 보첼리 등의 스타를 만들어 냈음 특히 사라 브라이트만과 안드레아 보첼리가 함께 부른 “Time to say goodbye” 가 선풍을 일으키면서 최근 크로스오버의 새로운 트랜드가 된 음악장르를 팝페라라 부름팝페라 란?팝페라 가수임형주 1986년 5월 7일생 - 예원학교 성악과 수석졸업과 동시에 미국 유학 - 미국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 성악과 심사의원 만장일치 합격(2001년)한 재원 - 2001년~2002년 예원학교 성악과 실시수석 / 음악공로상 수상 - 2003년 팝페라 앨범 샐리가든 출시, 클래식음반 판매차트 1위 - 2003년 제16대 노무현대통령 취임식 애국가 선창 그의 목소리는 가공된 이미지가 없는 맑고 순수 하며 투명한 천사의 음성, 바로 그것이다. 보첼리나 사피나의 중후한 테너가 아닌, 미성이면서도 깊이 있는 보컬은 어떤 웅장함도 소프트화 시키는 매력이 있다.팝페라 가수 - 임형주안드레아 보첼리 1958년 9월 22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Laiatico 에서 태어남 - 6살부터 피아노를 배우고 후 에는 플룻과 섹소폰을 배움 Pisa대학에서 법학전공/ 법학박사 학위취득 그는 시각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었고 열두 살 때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머리를 부딪쳐 뇌에 상처를 입은 후 시력을 잃음 - 음악활동 전까지 변호사로 활동 - 1992년에 록가수인 Zucchero Fornaciari 에게 발탁됨 - 1995년 12월 유럽투어 1999년 'Con te Partiro'의 싱글 버전은 3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림 * 그의 목소리는 단지 강렬함과 연약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감성과 감수성을 나타내는 도구라고 할 수 있다.팝페라 가수 – 안드레아 보첼리사라 브라이트만 - 1960년 8월 14일 영국 버크햄스테드 태생 6남매중 장녀 - 40살이 넘은 그녀는 그 나이가 믿겨지지 않는 목소리와 외모를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가수 - 1981년 런던에서 공연된 뮤지컬 캐츠의 오리지널 캐스팅 멤버 - 오페라의 크리스틴역을 맡으며 일약 스타 대열 - 1989년 첫앨범 발표 - 2003년 Harem발표팝페라 가수 – 사라 브라이트만Thank you{nameOfApplication=Show}
신라 사회가 혼란에 빠지면서 지방에 대한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자 가 지방에서는 진골 중심의 사회에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지방세력이 나타나게 되었다.호족은 가장 큰 세력이면서 성주 또는 장군이라 불렀다지방에서 많은 사병과 큰 농장을 가지고 농민을 지배하면서 중앙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게 되면서 새로운 불교 종파인 선공과 결탁하면서 자신의 세력 기반을 강화하였다. 선종의 발전은 신라 말의 사상계의 큰 변화는 새로운 불교 종파인 선종의 등장으로부터 시작된다. 교리보다는 정신 수양을 통한 해탈을 강조한 선종은 호족의 후원을 받으면서 크게 발전하여 선종 9산이 성립되었다. 신라 말에는 선종 유교 풍수지리설이 설로 결합되어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신라 말의 사상계의 변화는 중앙의 6두품 세력과 지방의 호족 세력에 의해서 주도 되었다.선종은 인도인으로서 중국 남조의 양에 도래한 달마대사를 교조로 하여 성립한 종파로서 불립문자 직지인신 견성오도를 그 수도의 방법으로 삼는 것이다 선종은 삼국 통일 전후로 전래되었으나 선종파의 설립은 왕실의 정치적 권위가 실추되어 지방 호족이 대두하여 성장하던 9세기 중반에 이르러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하였다 즉 헌덕왕 13년 도의가 당으로부터 귀국하면서 그 뒤를 이어 입국한 홍촉 혜철 현욱 도윤 범일의 활약으로 신라의 변경지령에 9산파를 개창한 것이다 이들의 초기 활동은 대체로 교종 계통의 사원에 의탁하여 화엄사상을 습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왕실과 호응하는 입장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9세기 중반을 지나면서 선종은 교종의 기성 사상 체제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사색하여 진리를 깨닫는 것을 중시하고 개인적인 정신 세계를 찾는 독자적 세력으로 발전하였다 선종 승려들은 말기에 이르러 교종의 전통과 권위에 뒤집고 왕실의 권위를 부정하면서 지방 호족들의 세력확장에 정신적인 지원 등 하대사회의 새로운 정신적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당으로부터 귀국한 6두품 출신들이 새로운 유교적 이념을 모색하던 사상적 경향과 상통하는 양상으로 당의 혼란과 이로 인해 야기되는 국가 체제의 동요 등 혼란한 시대의 요청에 부응한 것으로 볼 수 있다선종은 지방 호족들로부터 환영을 받아 신라 하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선종은 삼국통일을 전후해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나 교종에 눌려 널리 퍼지지 못하다가 신라 말기에 교종의 전통과 권위에 대항하면서 크게 유행하다. 선종은 불경과 교리를 중요시하는 교종과 달리 스스로 사색하여 진리를 깨닫는 것을 중시했으므로 개인적인 성격이 강했지요 선종은 형식과 기존의 권위를 부정하였으므로 골품제도의 기존 권위에 눌려 지방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키우던 호족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고 새로운 시대의 정신적인 기반이 되다.신라사회의 지방인은 중앙인에 비하여 골품제 아래 차별 받았고 왕권이 전제화되어가던 신라 사회도 나름대로 모순에 봉착하였다 골품제 아래서 진골과 6두품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귀족들이 지방민에 대한 수취를 강화하면서 지방민은 경제적인 어려움에 봉착하였다 특히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왕실 내부의 대립도 일어났다 전제왕권이 무너지고 진골 귀족들 사이에 왕위 쟁탈전이 이루어지면서 중앙귀족의 분열은 골이 깊어졌다 혜공왕 (765-779) 대 이후 귀족들의 대립이 깊어지고 왕권은 약화되기 시작하였다. 왕위가 정상적으로 계승되지 못하고 이해관계에 의해 결집된 정치세력에 의해 중앙의 정치가 좌우되었다 군사력과 측근세력을 동원한 귀족들의 왕위를 둘러싸고 서로 싸우기도 하였다 진골 귀족들의 갈등을 해소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일부 6두품 출신들이 노력하기도 하였지만 정치권은 더욱 혼란에 빠져들게 되었다.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건의하여 정치개혁을 이루고자 하였던 6두품출신의 최치원은 결국 좌절하여 중앙에서 떠나버렸다 이렇게 정치적인 변화를 원하였던 6두품 가운데는 그들의 의지가 반영되니 못하자 반 신라적인 입장으로 돌아서는 경우도 있었다 중앙 집권층의 갈등으로 통치체제에 이완이 생기면서 지방에 거주하는 백성들이나 지반 세력 층에게도 그 영향이 미쳤다 귀족들은 정치권이 혼란한 틈에도 토지에 대하여력을 키워나가자 정상적인 방법에 의한 토지 소유확대도 있었지만 불법적인 방법으로 토지를 넓혀나가기도 하였다 이 과정에서 백성들이 경작하고 있던 토지를 빼앗거나 백성들에게 많은 세금이 부과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곤경에 빠지게 되었다 지방경제의 파탄에 무시할 수 없는 영향을 미친 것으로 사원경제의 확대를 들 수 있다 사원은 토지와 노비를 많이 소유하고 있어 귀족들이 사원에 재산을 기증함으로써 더욱 경제력은 탄탄해나갔다 특히 국가로부터 세금을 면제받기도 하여 사원의 경제적 기반이 확대되기도 하였다. 사원재정의 확대는 농민의 토지를 잠식하는 결과와 국가재정의 감소로 인한 농민 부담의 증가를 가져왔다 중앙정치권이 혼란스럽고 지방인들의 부담이 증가하는 상황 아래에서 중앙의 지방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기 시작하자 이틈을 타지방에는 중앙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려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들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하고 일정한 지역을 스스로 다스려나가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호족이라고 불리우는 지방세력이 등장하였던 것이다. 호족에 대한 개념은 규정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사병을 거느리고 일정한 영역을 자신이 통제하고 있었던 지방의 실력자였다고 할 수 있다 호족들이라고 불리워진 지방세력층은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그들의 세력기반과 출신에 따라 나누어 볼 수 있다. 먼저 중앙귀족 출신 가운데 지방 호족으로 성장한 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주로 중앙의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렸다가 지방으로 낙향하여 세력을 형성한 귀족들이다 이들 가운데는 진골 귀족이나 6두품 출신들이 많으며 서경이 있었던 지역에 주로 거주하였다 원성왕과의 왕위개승을 둘러싼 대립에서 패배한 이후 명주에 낙향하여 세력을 형성한 김중원의 후손 김순식이 명주호족으로 이름을 떨쳤던 것이 그 한 예이다 다음으로 전형적인 호족의 예라고 할 수 있는 지방세력가로 있다가 자립하여 반 독자적인 활동을 하였던 호족들이 있었다 이들은 지방의 리였거나 촌주의 후예들로 자신의 가계가 터전을 잡고 있던 위에 부를 축적하여 호족으로 등장한 경우다 이들은 대 호족으로 성장한 경우도 있지만 중소호족으로 자리잡아 자기의 근거지에서 성주나 장군을 칭하면서 경제적인 수취권과 군사력을 가지고 반독립세력으로 활동하였다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호족의 유형은 해상세력으로 출발한 경우다 대외무역과 연해안 무역을 통하여 재력을 형성하였던 이들이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된 틈을 타서 호족으로 성장하였다 특히 신라는 중국 당과의 교역이 활발하였기 때문에 서남해안에서 해상활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가운데 교역을 통하여 재물을 쌓은 인물들이 자신의 근거지에서 독자적으로 세력을 형성하여 그 지역에 대한 통제권 뿐만 아니라 해상에서의 통제권까지 장악하게 되었다. 고려를 세운 왕건의 경우 대표적인 해상세력 출신 호족이라고 할 수 있으며 청해진에서 활동한 장보고도 이 유형에 포함시킬 수 있다.이런 지방에서 호족으로 활동하였던 인물들에게 사상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은 불교였다 하지만 지방 호족에게 영향을 끼친 불교는 종래의 중앙귀족의 중심의 불교라기보다는 새로운 인물과 실천 강령을 내세운 불교였다. 무주 호족들에게 받아들여진 불교는 대체로 화엄과 선종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의상에서 비롯된 화엄종은 신라 볼교를 주도하는 종파였으면 사회에 끼친 영향도 컸다 의상의 화엄종은 실천적 신앙이 강함으로 해서 그 세력을 전국적으로 확산해 갔다.한편 신라말기~ 고려 초에는 지방의 실질적 지배자로 등장한 호족세력의 선승들을 후원하여 지방 각처에 독자적인 선종산문을 개창하도록 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초기 선종 산문이 지방세력의 도움만으로 개창된 것은 아니면 중앙 왕실과 귀족들의 도움이 컸다는 점도 기억해야 한다 다만 선종 산문들이 중앙보다는 지방세력과의 유대관계가 깊어졌으며 이것이 결국 지방사회에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지방과의 관련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군사력에 기반을 두고 있어 무인의 성격이 강한 호족세력의 현학적인 교리를 내세우는 교종보다는 직관 위주의 실천 철학을 내세우는 선종에 을 느끼게 되었다 중앙 귀족들과 연결된 교종과는 반대로 참선을 통해 각자의 마음만 잘 닦으면 곧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선종의 주장은 신라의 기존 지배체제에 불만을 가진 지방의 호족세력이나 일반 대중들에게 대단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호족은 교종의 권위에 도전한 선종의 등장에 주된 역할을 하였는가 하면, 풍수 지리설의 수용에도 적극적이었다. 또, 호족은 광대한 토지와 백성을 지배하였는데, 지방의 징세권과 군사권을 장악함으로써 지방 분권적인 현상이 나타났다.특히, 호족은 새로운 관료제를 만들어 백성들을 통치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을 공고히 하였다. 아울러 지방에 학교를 설치하여 학문을 지방에 확산시켰으며, 신라 말의 혼란한 사회를 극복하고 고려 왕조의 건설에 주동적인 역할을 하였다선종은 석가가 영산(靈山) 설법에서 말없이 꽃을 들자, 제자인 가섭(迦葉)만이 그 뜻을 알았다는 데서 기원하며,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기 때문에 불심종(佛心宗)이라고도 한다. 자체의 논리 체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아 일반적으로 승인되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논리체계를 사상이라고 규정한다면, 선종에는 사상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억지로 틀을 잡으려 할 경우, 주관적인 무논리의 논리를 선사상이라고 굳이 규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그렇다고 하여 나름대로의 방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4구표방이다. 4구는 불입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견성성불은 중생이 본래 지니고 있는 불성에 눈뜨는 사고방식을 논한 것이고, 이것을 구체화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보라는 직지인심이다. 불립문자란 낭혜무염의 '전할 수 없는 것으로써 전하므로, 전하되 전하지 않는 것이 된다(以無傳爲傳 故傳而不傳也)'라는 짧은 구절에 잘 나타나는데 제행무상을 인식하여 유위법으로의 끊임없는 집착을 끊어 본래의 면목을 되찾는 제법무아적인 자기 초월적 세계를 지향해야 한다는 뜻을 내포한다. 교외별전은 이 불립문자가 강화된 것으.
샌디 스코글런드■ 작가소개■ 작가소개▣1946년 : 미국 메사츄세츠 퀸시에서 탄생 ▣1964-1968년 :스미스대학(순수미술과 미술사 공부), 2학년 때는 파리에서 프랑스미술사 공부 ▣1969년 : 아이오이 대학원 입학(영화만들기와 판화공부) ▣1972~76년 :뉴욕에서 미니멀 양식 작업(반복,개념미술), 하트포드대학에서 강의 ▣1976-1978 :작업중단, 남편과 캠핑카 생활. 컬러사진 기법에 관심. FOOD STILL LIFE 시리즈 시작.■ 작가소개▣1979년 :카스텔리 그래픽 겔러리 그룹전에 선발되어 전시, 대표작인 Installation 시작 ▣1981년 :카스텔리 겔러리에 초대받아 개인전, 금붕어의 복수 주목 ▣1983년 :카스텔리 화랑 개인전 MAYBE BABIES ▣1986-1991년 : TRUE FICTION 시리즈, SOCK SITUATION 작품에 마네킹 등장 , FOX GAMES ▣1992-1995년 :Installation 작업에 음식 오브제 사용, SPIRITUALITY IN FLESH , THE WEDDING ▣1996-2003 :작품들의 이동(실내- 실외), 이미지 사이즈의 확대 BABIES AT PARADISE POND■ 연도별 작품특성샌디 스코글런드 작품의 성향은 크게 True fiction과 Installation으로 분류된다. 그녀의 대표작인 Installation은 보통 우리가 사용하거나, 주변에서 보이는 오브제를 이용한다. 반면에 True fiction은 Installation이 아닌 사진만으로 이루어진 작업이다.■ 연도별 작품특성1978본격적으로 컬러사진을 시작한다. 오브제와 모양이 같은 종이 접시나 바탕 위에 놓아 패턴 형식을 이용해 입체적 공간이 평면처럼 보이는 Food still life series를 시작한다1979 ~ 1984그녀의 대표작인 Installation을 시작한다. 1980년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그녀는 제한된 4종류의 색 사용하여 색채 대비 효과 내는 작업을 하게 된다.■ 연도별 작품특성1986 ~ 19911986년에 25장의 사진으로 이루어진 rue fiction을 작업한다. Installation에서는 계속해서 색의 대비 효과와 반복 기법을 사용한다. 이 작업에서 사진 속의 오브제의 색과 배경의 색이 전시장의 설치작품에서는 반전되기도 한다1992 ~ 1995배경을 단조로운 색으로 채색하고 오브제를 눈에 잘 띄는 색으로 채색하는 기존 방식에서 더 나아가 음식재료로 물감을 대신하는 독특한 방식을 병행한다.■ 연도별 작품특성1996 ~ 2003최근까지의 Installation 작업이다. Installation 작품들이 실내에서 실외로 점차 옮겨졌고 이미지 사이즈는 더욱 커진다. 전 작업에 쓰였던 오브제를 재사용하기도 한다.20041986년에 이어 20장의 True fiction을 다시 작업한다. 사진은 일상적 소재를 사용하고 독특한 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진속의 내용은 제목은 서로 연관성이 없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내고 있다.■ 작품소개1978, PEAS ON A PLATE샌디 스코글랜드는 본격적으로 컬러사진을 시작한다. 오브제와 모양이 같은 종이 접시나 바탕위에 놓아 패턴 형식을 이용해 입체적 공간이 평면처럼 보이게 하는 Food still life 시리즈를 시작하게 된다. 1979년 카스텔리 그래픽 갤러리 그룹 전에 이 사진이 선발되어 처음으로 전시를 하게 된다. 이 전시는 칼라사진을 전시하였는데 1970년대 미술계와 사진계 등 어떤 예술에서도 컬러사진은 배척을 받던 시대였다 . 그래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작가의 사진이 각인되었다1980, RADIOACTIVE CATS무채색과 명도가 높은 색을 이용하여 초현실적 분위기내고 있다. 작가는 서로를 소외시키고 자신의 것에만 관심을 보이며 같은 공간에 마치 다른 시간에 존재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듯이 보임으로 사회적 무관심을 말한다고 하였다. 방사선 고양이 무대는 노부부가 살고 있는 현실 공간이다 그렇지만 고양이의 방사능 오염은 노부부가 젊었을 때 발생한 것으로 가정하고 있으며 방사능에 오염된 고양이들이 적개심은 미래에 대한 경고의 상징으로 해석한다 좀더 부연하면 무대위의 문명의 흔적들은 모두 고양이들에 의해서 점령된 상태를 보여준다(과거) 따라서 문명을 상징하는 냉장고의 문을 연 여주인의 행위(현재)는 고양이들의 공격대상이자 이것은 곧 닥쳐올 공포(미래)를 암시하는 것이다.1981, REVENGE OF THE GOLDFISH방사선 고양이에 뒤이어 발표한 작품으로 역시 환경의 문제, 생태학적 문제를 다룬 작품으로 , 이작품도 금붕어 때들이 인간들을 공격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오염된 물을 마시고 죽은 물고기 떼들이 광폭한 금붕어로 부활하여 인간을 공격하다는 내용은 작품의 화려함 때문에 쉽게 읽혀지지 않지만 매우 무거운 분위기를 담고 있다.1982, PATIENTS AND NURSES환자와 간호원은 대표적인 침묵 의 본보기다. 인간이 가진 죽음에 대한 공포 ,바꿔말하면 인간의 삶에 대한 욕구를 교모히 악용하는 현대 의학의 비정성을 상징하고 있다 피빛으로 문즌 무대 (dead center)전면에 위압적인 두명의 간호원과 맞은편에 상대적으로 왜소한 두명의 환자가 입과 귀가 막힌 채 침묵을 강요받고 있다, 한편 공포에 질린 환자의 전면에는 생명을 상징하는 한그루의 녹색식물이 자리 잡고 있는데 이것은 환자의 행동여하에 따라 생명 또는 죽음이 결정될 수있다는 상징물이다.1983, Maybe Babies어두운 방안에 분홍색이나 파란색으로 칠해진 아기들이 온갖 모습을 한채 여기저기 있고 십자가처럼 나뉘어진 창문 바깥쪽에는 붉은 빛에 반사된 한 명의 남자가 서 있는 사진이다 아이들은 중력과 상관없는 자유로운 공간인 것에 반해 어른들의 공간은 현실 공간이다. 작가는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표정들과 과거를 잊어버린 어른을 표현하였다고 한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낙태를 말하기도 하며 아이의 피부가 파란 것은 죽음을 의미하고 분홍색 피부는 생명을 의미한다는 삶과 죽음의 대비로 보기도 한다.1986, SOCK SITUATION검정양복의 마네킹이 등장하고 초록색과 빨강에 의해 녹색 마네킹처럼 보여 보색대비효과를 내고 있다. 턱시도를 입고 청소하는 모습은 제한된 공간에서 수감자에게 노동을 부과하는 것을 상징하는데 이러한 규칙적 노동은 환상을 억제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권력에 의해 효율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내면화 과정을 은유하고 있다.1989, FOX GAMES사진 작업의 오브제와 배경의 색을 전시때는 뒤바꾼다. 사진작업에서는 회색의 배경과 빨간색의 여우였는데 전시때는 회색 여우와 빨간색의 배경으로 색을 바꾸어 전시한다. 이 작품은 함께 공존하지만 이질적인 관계를 가지는 자연과 도시 사회로 해석 하기도 하고 무분별한 기술 복제로 해석 하기도 한다.1994 The Wedding1994, THE WEDDING오브제와 배경이 딸기잼과 오렌지 마멀레이드로 만들어졌다. 신부가 신랑에게 가려고 하지만 접착성 있는 마멀레이드 때문에 가지 못하고 있다 샌디스코그런드의 작품이 일상속으로 들어온 최신 작품이다. 지금까지의 환경에서 문화적 삶으로 , 상상적 이야기에서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로 다가선 것을 보여준다. 결혼이라는 것이 화려함과 달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성스러움 대신 얼마나 형식적이고 인공적인지 보여주는 작품이다.감 사 합 니 다~!{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