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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비답게 산다는 것 감상문
    선비란 학식이 높고 덕을 두루 갖춘 사람이라고 한다.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선비에 대한 이미지는 고지식하고, 학문밖에 모르는 세상 물정에는 어두운 사람이었다. 선비가 그들답게 산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산다는 것일까? 처음에는 분명히 하루 종일 공부만 하거나 간혹 풍류를 즐기면서 사는 인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선비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고 내가 그려왔던 것처럼 그들은 학문에만 매달리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이 학문을 깊이 배우고 실천하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공부만 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은 얄팍한 지식수준의 착각이었을 뿐이었다. 그들은 여유로움과 넉넉함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었고, 때로는 장난기 가득한 해학적인 말투로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생활에서 나오는 위트는 꾸밈없고 솔직한 옛 선비들의 글을 통해 알 수 있었다.그 당시에는 자신의 죽음을 애도하고 스스로 묘지명을 적는 自輓時와 自撰墓誌銘이 유행이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솔직하고 담백한 선비들의 글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과장하여 꾸미지 않았고 자조적이며 솔직하게 묘지명을 썼다. 自輓時와 自撰墓誌銘은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글을 쓸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나 역시 묘지명을 쓴다면 언제 태어나고, 어디에서 살았고, 가족, 업적 등과 같은 지루한 이야기는 빼고, 문장 한 줄을 쓰더라도 그 한 줄에서 내가 생전에 이러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는 힘이 있는 글을 써보고 싶다. 나도 책을 읽다가 나 자신을 위한 묘지명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많은 인생을 묘지명 하나로 나타내기에는 부족하겠지만 그러하기에 더욱 신중하게 생각해보고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서 멋진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싶다.思齋 金正國을 보면서 옛 선현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사실은 다른 게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자신의 호를 八餘라고 하여 자신이 넉넉하게 즐기는 8가지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는데 그가 말하는 여덟 가지 넉넉한 것은 굉장히 소박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이다. 그의 한 친구가 탐욕을 부린다고 듣게 된 김정국은 그 친구에게 편지 한 통을 보내는데 자신보다 몇 배는 부유하면서 더 큰 욕심을 부리지 말고, 꼭 필요한 물건만으로도 충분히 여유로울 수 있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이 내용을 보면서 요즘에도 흔히 말하는 자기만족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면서 컵에 물이 반 쯤 남아있을 때 한 사람은 ‘~남았구나’ 라고 생각을 하고 다른 사람은 ‘~밖에 없다’ 고 생각을 한다. 이것은 컵의 물이 남은 것을 보고 난 후 사람의 태도를 긍정적이고 부정적이라는 시선을 떠나서 자신이 어떻게 만족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배가 부르고 등만 따듯하면 더 좋을 것이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사소한 만족감이지만 이러한 태도를 통해서 우리는 더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자세를 배우게 될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욕심은 더욱 큰 욕심을 부르고 끝이 없다. 이러한 태도를 경계하는 思齋 金正國의 생활태도는 탐욕을 부리는 현대인에게도 좋은 귀감이 될 것이다.이 외에도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이야기들이 여러 개 있다. 그 중에서도 첫 번째로 선비들의 독서법을 꼽을 수 있는데 요즘 현대인들이 바빠서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하는 것은 일종의 핑계일 뿐이다. 한가할 때에도 바쁜 시간이 있고, 바쁜 시간에도 한가할 때가 있다고 하듯이 바쁜 시간에도 해야 하는 것이 독서라고 생각한다. 선비들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독서법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하나하나가 그들이 얼마나 독서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떻게 공부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歐陽脩는 전통적인 독서법을 강조해서 여러 번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암기하는 방식을 사용하였고, 洪大容은 전통적인 방식에 글을 음미하면서 읽는 독서법을 이용하였다. 이러하듯 선비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독서를 하였고 학문을 넓혀나갔다. 가끔 우리는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나면 그 책의 내용에 대해서 잃어버릴 때가 있다. 나 역시 그러한 경험을 하기도 했으며, 그럴 때마다 정신을 기울여 집중하지 않았던 책읽기에 대해서 반성하기도 한다. 독서라는 것은 읽는 것만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한번 읽을 때 최대한 정독해서 읽어야하고, 읽은 후에는 책에 대해서 나는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기록하는 것도 좋은 독서법이라고 생각한다. 시는 자꾸 암송하면서 외우는 것이 시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렇듯이 다른 문학도 다 외울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해서는 정독한 후 기록하면서 자신만이 가지는 책을 음미하는 방법을 키우는 것이 좋겠다.앞에서 선비들의 인생과 독서법에 대해서 이야기했다면 이제는 그들이 사랑했던 취미생활 중에 산을 유람하는 선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어렸을 적 아버지께서는 주말이 되면 어린 나를 이끌고 집 앞에 있던 산에 올라가곤 하셨다. 한걸음 걸을 때마다 숨이 차오르고, 힘들기만 해서 가기 싫어하는 나를 데리고 가는 아버지에게 어린 마음에 투정을 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사실 어렸을 때 이후 산을 좋아하지 않았다. 학창시절에는 아버지가 산에 가자는 말씀을 하시면 공부 핑계를 대며 피하기 일쑤였고, 성인이 되어서도 산에 대해서 크게 매력을 못 느꼈었다. 그런데 우연히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국토대장정을 하면서 금강산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게 되었다. 요즘은 금강산을 구경하는 것이 자유로워졌지만 불과 십년 전만 해도 갈 수 없는 꿈의 산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등반하면서 힘들 것 같다는 생각보다는 오히려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금강산은 내가 전에 가봤던 산과는 다른 곳이었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느낄 수 있었고 산의 절경은 아직도 생생할 만큼 아름다운 곳이었다. 금강산에 다녀온 후 나는 산에 대해서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다. 금강산을 등반하면서 힘들 때는 주위 풍경을 보면서 내가 이 산과 하나가 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힘들다는 이유로 산을 싫어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책을 읽으면서 나와 선비들이 다른 산을 보고 있었지만 나는 금강산을 가고, 그들은 백두산을 가면서 느낀 마음만은 같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금강산 등반을 생각하니 산을 등반하는 것은 독서와 같다는 魚有鳳 의 말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독서를 할 때 문장 하나, 단어 하나까지 깊이 생각하며 숙독을 하듯이, 산에서도 우리는 책장을 넘기듯 등반을 해야 한다. 최대한 자연과 하나가 되려 하고, 산을 통해서 우리는 맑은 정신을 깨우칠 수 있으며, 평온해 질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나 또한 백두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금강산을 우리가 구경할 수 있게 된 것처럼 곧 백두산 또한 갈 수 있게 되어 그 곳에서 선비들이 말한 백두산의 경치를 보면서 그들을 이해하고, 같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3장에서는 선비들의 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편지는 언제 들어도 따스함이 묻어나고, 인간미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과거의 척독은 현재는 짧은 말들이 오고 간 작은 쪽지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척독은 짧지만 긴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용이 닮기기도 하고, 사소한 이야깃거리의 수단으로써도 쓰이기도 한다. 土亭이 孤靑에게 보낸 짤막한 척독 한편은 나에게 작은 웃음과 큰 반성을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土亭이 孤靑에게 아들이 앓는데도 내일 제주에 함께 갈 것을 적은 짧은 편지에는 작가의 말처럼 대단한 사연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척독은 현대인의 약속개념이나 너무 어렵고 깊게 생각하는 태도를 꾸짖는 좋은 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들이 아프고, 내일 당장 멀리 떨어진 제주로 가자는 土亭이나 그것을 흔쾌히 받아들여 함께 떠난 孤靑의 결단력은 호탕하고 시원하기까지 하다. 나 역시 어렸을 적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와 쪽지들을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 그 때는 서로의 감정을 말로 하기보다는 편지로써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고, 편지지를 고른다고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쓰는 때가 많았다. 방학이면 가끔 우표를 붙여서 친구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답장이 올 때쯤이면 우편함을 서성이던 모습이 생각이 난다. 120원짜리 우표는 우리들의 마음을 따듯하게 해주기에는 충분했으며 편지라는 글을 통해 더욱 즐거웠던 어린 시절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편지보다는 이메일이 더 편해졌고, 전화를 통해서 간단하게 말로 하고 끝내는 경우가 훨씬 더 많아졌다. 빨리 빨리를 외치는 우리 현대사회에서 이제 이메일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들은 편지의 따뜻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선비들의 척독은 아름답고 정취 있는 문학으로 읽히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런 따듯한 문학이 익숙해지고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독후감/창작| 2008.06.24| 3페이지| 1,500원| 조회(6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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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네의 일기감상문 평가A+최고예요
    정신분열증 환자는 어떤 사람일까? 그들은 완치될 수 있는 걸까?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런 생각을 했었다. 예전에 교양수업을 들을 때 정신분열증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배웠던 적은 있었는데 사실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생각을 해서 그랬는지 흥미가 가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 책으로 인해 정신분열증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르네의 일기는 르네라는 정신분열증 환자가 병을 극복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쓴 일기 형식의 책이다. 르네는 자신의 담당 의사 세셰이예박사를 엄마로 생각한다. 사실 르네는 어렸을 때 엄마의 젖을 잘 먹지 못하고 컸던 환경과 아버지의 가출로 인한 심리적 불안,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그녀를 두렵게 만들었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들 때문에 정신분열증을 일으킨 것이다.처음 정신분열증을 일으켰을 때는 정도가 심하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르네의 병은 더 악화되었고 책에서는 르네의 증상을 보여주면서 그녀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언어를 예로 들어 감정을 설명한다. 르네는 젖을 제대로 먹지 못한 결과, 음식을 먹는 것을 거부하였으며, 아버지와 할머니의 부재에 대한 기억 때문에 치료사가 휴가를 간 사이 자신을 떠난 것이라고 생각하고 치료사에게 강한 애착을 보였다. 또한 원근감을 잃었으며, 자신의 신체를 타인의 신체인 것 처럼 받아들여 3인칭으로 말하였다.르네의 병을 많은 의사들은 포기했지만 세셰이예박사는 포기하지 않고 그녀에게 다가갔고 르네의 병의 원인을 찾아낸다. 그리하여 사과를 이용해 르네의 욕구불만을 치료하게 된다. 르네의 병은 인형 아스겔과 함께 하면서 본격적으로 회복된다. 엄마(세셰이예박사)가 아스겔을 씻겨주고 치장해주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가 르네에게 똑같이 해주는 것을 받아들였고 조금씩 음식도 먹기 시작했다. 아스겔을 통해 르네는 자신이 어렸을 적 만족하지 못했던 욕구들을 풀었고 그로 인해 르네는 다시 회복된 것이다.르네의 정신분열증을 고친 것은 많은 사람들의 보살핌, 사과치료가 아니다. 바로 세셰이예박사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이었다. 박사는 자신을 엄마라고 받아들이는 르네를 진짜 자식처럼 돌보았고 그녀를 치료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치료가 가능했던 것이다.정신분열자의 생각은 참 독특했다. 짚더미 속에 바늘이나 섬광의 나라, 태양빛 아래 하얗게 된 길 등 자신의 비현실적 감정을 나타내는 표현은 그녀만이 말할 수 있는 고유한 것이었다. 르네를 처음 보는 사람이 그런 말을 들었다면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그래서 책에도 주석이 달려있어야 하는 그런 표현들이었다. 르네가 왜 그런 언어를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언어는 뭔가 의미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정신분열자의 증상 또한 참 특이했다. 함께 줄넘기 놀이를 하고 있던 친구가 갑자기 크게 보이고, 환청이 들리며 우리들이 생각하기에는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말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정신분열증이 치료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평소에도 정신분열증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긴 했지만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들은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어둠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또 어쩌면 그들은 진짜 아픈 게 아니라 연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다. 나쁜 생각이지만 나와는 너무 달라서, 어떻게 저런 행동을 하지? 라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했고 정신병은 내 자신만 생각을 달리 한다면 쉽게 고쳐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무지한 착각이었다.대학교 1학년 때 봉사활동을 간 적이 있었는데 버려진 아이들과 갈 곳 없는 노인들이 함께 사는 집이었다. 그 곳에서 어떤 여자 아이를 본 적이 있었는데 그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숨이 넘어갈듯이 소리를 지르면서 초코파이를 달라고 했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서 당황하고 있을 때 다른 선생님이 아이를 달래면서 진정시켰었다. 그 아이는 목욕을 하는 중에도 계속 소리를 질렀고 나를 할퀴면서 목욕탕을 나가려고 했었다. 그때 나는 그 아이가 평생 어떻게 이렇게 살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 이 아이가 다시 정상인처럼 생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책을 읽고 나니 어쩌면 그 아이도 르네처럼 정상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독후감/창작| 2008.06.24| 3페이지| 1,000원| 조회(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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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잃어버린 내 어린날의 미소 감상문
    주인공 셸리는 11살 때 가족여행을 떠나는데 그 날 그녀의 아빠 보비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성추행을 시작한다. 나는 정말 책을 읽으면서 너무 충격을 받았다. 아무리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하지만 어떻게 어린 딸을 성폭행할 수 있으며 그것도 몇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것이 너무 무서웠다. 보비는 정말 셸리를 자신의 애인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셸리가 학교에서 활발한 활동을 못하게 막았고, 남자친구들과도 절대 사귀지 못하게 할 정도로 그녀에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의 집착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져갔고 후에는 무조건 셸리를 자신의 복종 아래 두어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그는 더욱 악랄해져갔다.책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이 셸리의 엄마 린다였다. 분명히 린다는 보비가 셸리에게 하고 있는 행동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몇 년을 함께 지냈고, 셸리 또한 그녀에게 직접적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 얘기를 했었다. 실제상황이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지만 만약에 내가 린다였다면 난 훨씬 전에 눈치를 챌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보통 딸을 가진 엄마들 같은 경우에는 딸에게 많은 관심을 가진다. 왜냐하면 딸 또한 자신이 어렸을 적 사춘기나 방황했던 시간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럴 때 일수록 많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하지만 린다는 그런 다정한 엄마가 아니었다. 허울만 엄마일 뿐 사실은 린다는 보비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침묵이라는 말이 있다. 린다는 이 생각하기도 무섭고 끔찍한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일부러 모른 척 한 것이다. 하지만 린다의 행동은 너무 부적절한 행위였다. 자신의 딸을 성폭행 한 사람이 바로 자신의 남편인데 그렇게 묵묵히 침묵을 할 수 있는지 난 정말 의심이 간다.셀리는 용감한 소녀이다.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 왜 셸리는 아무에게도 자신의 긴급한 상황을 알리지 못하는 걸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을 했었다. 만약에 내가 셀리의 입장이라면 당장이라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자신이 쳐 해봐야 알 수 있는 것처럼 만약에 나 또한 셀리와 같은 입장이었다면 그런 얘기를 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어렸을 적 성폭행을 당한 사람은 그 기억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괴로워한다. 수치심에도 힘들어하고 그 상황이 기억나면서 생각나는 공포감에 휩싸여 인생을 살 게 된다. 성폭행은 그런 것이다. 남자에게는 자신의 욕구를 위해 한 번 하는 행동이겠지만 여성에게는 그것이 평생 안고 가야할 마음 아프고 쓰라린 정신적 고통이 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죽기 전까지 기억이 되어서 계속 영향을 주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성폭행은 한 여성의 존재감까지 위협하는 것이다.셸리는 불쌍했지만 용감한 소녀로써 마지막에 그녀가 보비에 대항해서 민사소송을 하는 장면에서 나는 쾌재를 불렀다. 얼마나 보비가 악랄하고 계산적인 사람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던 재판 장면에서는 정말 눈물이 났었다. 그녀의 용기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자신의 아픔을 남들과 함께 나눈다는 것이, 그리고 그 아픔을 이야기했을 때 자신이 더 불리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셸리는 소송을 시작했고 결과는 역시 셸리의 승이었다.책을 보면서 계속 보비의 무섭고 추악한 모습에 진저리가 났었다. 보비는 어렸을 적부터 성도착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동생 베티도 어렸을 적에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었다. 어떻게 사람으로서 저런 행동을 할 수 있나, 그리고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하고도 겉으로는 자선 사업가이고, 딸을 극진히 사랑하는 아버지인양 행세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들었다.보비는 셀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것을 두려워해서 그녀를 협박하고 더욱 가두었다. 그는 마을에 기부도 많이 하고 평판도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셀리 말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셸리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셸리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동생과 엄마가 밖에 나가기만 하면 찾아오는 보비의 행동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또한 보비는 린다가 집에 있을 경우에도 셀리를 찾았으며 그의 셀리에 대한 집착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만 갔다. 후에 셸리가 자신의 성폭행당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보비는 자살기도까지 했었다. 하지만 이 또한 보비의 연기였으며 계산된 행동이었다.
    독후감/창작| 2008.06.24| 3페이지| 1,500원| 조회(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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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레이야기감상문
    벌레이야기책을 보면서 주인공 ‘아내’는 꼭 나 자신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 역시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었다. 언제나 신은 존재하지 않으며, 있다면 내 눈에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힘든 일이 생기거나 난처한 일이 생길 때는 항상 독실한 기독교인처럼 기도를 하는 모순적인 행동을 하곤 했었다. 사람은 자신이 힘들 때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가끔은 속이 후련해지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때가 있다. 그래서 나는 가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을 일이 생기면 곧장 하나님을 찾았었다. 기도를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기도를 끝마칠 때에는 내 얘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해야하나, 이런 고민들도 해봤을 정도로 교회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문외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교회에 간 이후에 내 삶은 바뀌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교회를 다니는 것이 즐거워졌으며, 그리하여 더 많이 기도하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다. 사실 나는 독실한 기독교인은 아니다. 밖에서 기독교인이라고 나 스스로 말하기 창피할 정도로 교회에도 잘 나가지 않고 성경 말씀도 잘 모르는 말만 좋은 기독교인이다. 하지만 나는 자기 전에 는 항상 기도를 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밥 먹기 전에 기도를 하고, 자기 전에도 기도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될 수 도 있겠지만 나에게 있어 기도를 한 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나는 사람을 잘 믿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을 믿기 까지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교회에 간다고 해서 무조건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다. 처음에 교회를 갔을 때는 교회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다닌 것이고, 교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함께 노는 것이 좋아서 계속 다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기도를 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보았다. 시험을 보기 직전이나 자기 전에 기도를 하고 자는 내 모습은 전에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잠을 자기 전에 기도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하고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졌다. 그만큼 자기 전에 하는 기도는 나에게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하루 중 가장 평온한 시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 이야기함으로써 하나님은 귀 기울여 들으셔서 이루어주시던, 행여 이루어지지 못한다고 해서 그것을 섭섭해 하거나 억울해하지 않는 관대함도 배웠다. 과거에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모든 소원은 들어주셔야 하고, 만약에 들어주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은 언제나 내 곁에 계시며, 내가 올바른 길로 나갈 수 있게 도와주시는 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언제나 결정은 내가 하고 책임은 항상 하나님께 돌렸던 적이 많았었다.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셔서 상황이 안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나는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을 만난 이후, 삶 자체도 많이 바뀌었다. 생각하는 것도 긍정적이 되었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다. 소설에서 나오는 아내는 자신의 아들을 살리려고 처음으로 교회에 가게 되자만, 후에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처음에 교회에 갔을 때는 아들을 찾고, 아들을 찾은 후에는 아들이 이 세상에 없어도 건강하고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기도를 하는 등 온통 아들에 대한 이야기뿐 이었다. 하지만 후에 아내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살인범도 용서하는 방법을 배웠고 그를 용서하려고 노력까지 하는 등 그녀는 많이 바뀌어갔다.아들은 내성적이고 주산을 좋아하는 4학년밖에 되지 않은 초등학생이었다. 아들의 유괴는 그들의 가족에게 미리 파멸을 알려주는 듯했고, 후에는 아내의 죽음까지 몰고 가게 한다. 아들을 죽인 살인범은 후에 하나님을 통해서 구원받고 용서받는데 이는 아내가 범인을 용서할 수 없게 만드는 더 큰 요인이 된다. 아내는 범인을 용서하러 직접 구치소까지 찾아간다. 아내가 상상했던 범인은 자신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한번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가 만난 범인은 아내보다 먼저 하나님을 만나서 이미 구원받은 상태였다. 기도를 통해, 말씀을 통해서 그는 이미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으며, 이미 죽음에 대해서 관대해진 사람이었다. 이런 범인을 아내는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까.
    독후감/창작| 2008.06.24| 3페이지| 1,000원| 조회(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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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돌려다오 감상문
    나를 돌려다오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이용휴의 를 꺼내 들었다. 흔들리는 지하철 속에서 책에 집중한다는 것, 사실 내게는 불가능 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용휴의 산문선 을 읽고서는 난 책에서 눈을 땔 수가 없었다. 문장이 간결하고, 미사여구를 동원하지 않아서 더욱 읽기 편한 책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조선시대에 쓰여진 책이라 하니 지금으로부터 200년도 지났는데 사회에 대한 글쓴이의 태도가 21세기에 보아도 신기하게도 와 닿는다는 것이다.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더 공감되고 우리 현대인에게 충고를 하는 듯하였다. 18세기에 살았던 지은이가 21세기에 살고 있는 후손들에게 생길 일을 미리 알고 있어 쓴 것도 아닐 텐데 어떻게 200년이 지난 후에 읽어도 그 내용이 고리타분하거나 지루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래서 이 책이 현재에도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 같다.책에 가장 먼저 수록되어있는 에서는 눈에는 외부를 보는 눈, 내부를 보는 눈, 두 개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서로 하는 일은 명백히 다르고 외부를 보는 눈이 일을 소홀히 하면 내부를 보는 눈이 해를 입을 수 있다고 한다. 눈이 훤히 잘 보여 세상의 만물을 볼 수 있다면 우리는 세월이 흘러도 변한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장님이 된다면 눈이 안보임으로써 마음으로 사물을 볼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럼으로써 이치를 깨닫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보다 마음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TV를 보면서 시각장애인들이 나오면 나도 앞이 보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답답할까 생각을 한 적이 있다. 하루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집에 오는 길에 눈을 감고 잠시 골목길을 걸어본 적이 있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무서운 마음에 눈을 떴고 시각장애인들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무섭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에 생각해보니 그들은 우리보다 눈이 발달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내부를 보는 눈이 발달한 것이었다. 우리가 먼저 눈으로 사물을 보고 느끼기 전에 그들은 마음으로 사물을 먼저 보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평소에 사람의 겉모습이나 물건의 외형만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해버리는 실수를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내면을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더라면 그런 섣부른 판단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면을 볼 수 있는 눈은 그 어떤 편견으로부터도 해방시켜 줄 수 있고 그로인해 세상을 더 알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에서는 이치를 따라 가라 즉 마음이 시키는 그 곳으로 따라가라고 말한다. 세상에 휩쓸리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바람이 東으로 불면 東으로 가고 西로 불면 西로 가는 줏대 없는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맹목적으로 세상을 따라가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책에서는 양심에 맞게 자신의 마음이 세상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명확히 자신의 마음을 따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예전에 광고에서 모두가 ‘예’라고 할 때 ‘아니오 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라는 카피문구가 유행 한 적이 있었다. 100명 중에 99명이 ‘예’를 하는데 나 혼자만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이 확고하고 이치에 맞는 것이라면 소신 있게 자신의 마음을 따르라는 내용이 이 책의 내용과 부합한다. 나 역시 나 자신의 소신 있는 의견보다 남의 의견을 더욱 따르고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후에 어디를 가서도 나의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고, 더 나아가면 자신의 정체성에도 위협을 받을 것이다. 자신의 의견이 확고한 의지가 밑바탕이 되고 이치에 맞다고 생각이 든다면 주저 없이 ‘아니오’를 외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싶다.‘하루가 쌓여 열흘이 된다’에서는 당일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살다 보면 하루가 너무 짧다고 느낄 때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시간이 안 간다며 오늘 하루는 너무 길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것은 자신만이 느끼는 당일에 대한 생각인 것이다. 하루가 짧았다면 그만큼 정신없이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몰두 했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유난히도 길었던 당일은 지루하고 의미 없이 하루를 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매일 매일을 살면서 당연히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는 숙제를 하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자연스럽게‘내일 해야지’라는 생각을 한다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다. 우리가 매 순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우리의 하루는 그렇게 덧없고 지루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루는 매우 소중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잘 모르고 살고 있으며 그로인해 시간을 낭비했던 경우가 많다. 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이가 모이고 모여 1년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또 정말 내일 자신이 죽을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살아야 한다. 내일로 미루고 싶은 일도 오늘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해야 한다.
    독후감/창작| 2008.06.24| 2페이지| 1,000원| 조회(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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