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동안 책과 멀어져 있던 나는 오랜만에 독후감을 쓰기 위해 명단에서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 중에서도 일찌감치 제외했던 책 목록 중 하나였던 ‘허삼관 매혈기’. 책을 검색해봤을 때, 피를 판다는 이야기라는 말에 아주 무서운 공포 소설인줄 알았다. 또한 중국 소설이라 이해하기 어렵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는데 주변에서 절대 그렇지 않다고 적극 추천해줘서 의심을 품고 읽어보았다.이 작품은, 문화혁명기 중국을 배경으로 피를 팔아 살아가는 한 가족의 가장 ‘허삼관’의 이야기다. 문화혁명기는 1960년대 중국에서 ‘문화대혁명’이라는 극단적인 공산주의 정책으로 많은 소시민들이 곤궁하게 살아가는 시대였다고 한다. 단 몇 개의 작품으로 세계가 사랑하는 중국의 대표 작가가 되었다는 위화의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딱히 큰 사건이 있거나 교훈을 주는 스토리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같은 동양에 위치한 국가의 이야기라서 그런걸까? 옛날의 우리네 아버지들과 비슷한 모습을 보여준다. 가족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아버지의 모습, 가족에게 닥치는 고비들을 그때그때 큰 돈과 바꿀 수 있는 ‘피를 팖’으로써 버텨가는 가난한 아버지의 이야기. 이 책에 피를 팔기 위한 남자들, 아버지들은 피를 팔기 전에 조금이라도 팔 피의 양을 늘리기 위해 차가운 얼음물이라도 몇 대접씩 배가 터지도록 마신다. 피를 팔고나서야 겨우 돼지간과 따뜻한 황주 두냥을 먹을 자격을 스스로에게 주면서 서로를 위로한다. 지금의 헌혈의 개념이 아니라, 이 시대의 한 번의 매혈을 통해 번 돈은 허삼관이 반년 동안 쉬지 않고 일을 해서 모은 돈 보다 갑절은 많았기 때문에 피를 팔아야 인간답게 살 수 있었던 소시민들의 생계의 개념이였으며, 피를 팔 수 있는 자는 힘 있는 자라며 힘 있는 남성의 개념이기도 했다. 처음에 나는 허삼관이 이해가지 않았고, 오히려 허삼관과 결혼한 허옥란이 불쌍했다. 나에게 허삼관은 그저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이고, 제멋대로인 아버지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허삼관은 매력적이면서도 불쌍한 인물이였다. 허삼관은 거친 입으로 언제나 육두문자를 내뱉지만 언제나 그건 말에 그칠 뿐 마음은 더없이 여린 남자였고, 세 아들 중 자기 자식이 아니란게 밝혀진 장남을 위해서까지 목숨을 걸고 피를 파는 사람이였고, 가족끼리도 헐뜯으며 비판해야했던 그 시절, 어머니의 부정을 부끄러워하며 비판하는 자식들에게 자신의 부정을 스스로 드러냄으로써 아내를 보호하는 남편의 모습까지 보여줬다. 이 부정이란, 허삼관의 첫째 아들 일락이는 허옥란이 허삼관과 결혼하기 전 하소용과의 관계에서 생긴 아이라는 것과, 허삼관은 결혼 후에 옛 사랑 임분방과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이다. 이렇듯, 작가는 허삼관을 흠 하나 없이 존경할 만한, 어쩌면 현실에 존재하지 않을 비현실적인 아버지의 모습으로 그리지만은 않았다. 허삼관은 장남 일락이가 자기의 자식이 아님을 알고 피를 팔아 가족에게 국수를 먹이러 가는 길에 일락이만 버리기도 하고, 바람 피운걸 덮기 위해서도 피를 팔았고, 두 아들에게 자라서 장남 일락이의 친아버지네 두 딸을 강간해버리라는 말도 하는 등, 소위 찌질하기 그지 없는 모습도 가지고 있는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그렸다. 이러한 줄거리만 보면 참 갈등과 봉합을 거쳐가는 가족사의 ‘막장 드라마’라고 느껴지기도 하는데, 작가가 이 모든 사건을 해학적으로 풀어 놓았기 때문에 술술 넘어가는 것이지, 따져보면 콩가루 집안이 따로 없다. 매일매일 서로를 헐뜯고, 싸우고, 집안이 망했다가 다시 살아나고, 자식들 중 한 명은 친자식이 아닌데다가 그 자식이 바깥에서 동생을 지킨다는 명목하에 싸움이 나서 다른 집 아이의 머리통을 깨질 않나, 아내는 툭하면 문간에 앉아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소리를 지르며 운다. 하지만 이렇게 희극적으로 표현한 비극이야말로 가장 우리를 슬프게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읽어온 수많은 문학 작품에서, 영화에서, 오히려 웃음 뒤에 가려진 비극이 더 슬펐고 가슴에 와닿았다. 내가 읽기를 주저하게 만들었던 소재였던 ‘피’, 매혈은 나에게 가장 와닿는 소재가 되었다. 이후에 몸이 아픈 장남 일락이를 위해서, 한 번 피를 판 후에는 적어도 3개월의 휴식 기간이 필요하다는 규칙따윈 무시한 채 도시를 옮겨다니며 피를 파는 모습은 부모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제일 기억에 남는 마지막 장면에서, 허삼관은 60살이 되는 나이가 돼서야 드디어 ‘자신을 위해’ 피를 팔러 간다. 그 동안은 자식들을 위해, 생계를 위해 목숨을 잃을 위기여도 억지로 팔았던 피였는데, 마지막에 드디어 자신을 위해 피를 팔러 갔더니 자신의 피를 죽은 피라며 더 이상 필요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게 강인했던 허삼관이 이 소리를 듣고 길거리를 걸으면서 ‘집에 또 일이 생기면 어떡하냐?’라며 울게 된다. 더 이상 피를 팔 수 없다는 것,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항상 자신의 피를 팔고 가족을 지켰던 가장으로써 피를 팔 수 없게 됬다는 것은 허삼관에게 큰 충격이였을 것이다. 결국 가족들이 위로해주고, 같이 돼지 간과 황주 두 냥을 먹으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지만 말이다. 허삼관을 보면 참 우리나라 아버지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허삼관은 우리 아빠와도 닮아있다. 늘 가부장적인 모습으로 자식들에게 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부터 튀어나오는 우리 아빠, 내가 고등학생 때 아빠의 회사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으면서 많은 방황을 하셨다. 사춘기가 끝나지 않았던 나는 아빠가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괴로워하는게 너무 싫었었다. 하지만 지금와서 돌이켜보면 아빠는 가장으로써의 자리를 잃었다는 생각이 가슴 한 편을 짓누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너무나도 슬픈 것은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는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는 가정의 안정을 위해 돈을 버는 시간이 더 많아서 자녀들이 아버지와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아버지들은 그나마 연결고리가 될 수 있는 ‘용돈’으로라도 소통하려는 건데 그 연결고리마저 끊어졌으니 얼마나 비참한 기분이 들었을까, 일자리도, 자존심도 한 순간에 무너져내리지 않았을까 싶었다. 난 그 때 허삼관의 가족처럼 돼지 간과 황주 두 냥은 아니더라도 상냥한 딸이 되어 아빠를 위로했어야했는데 왜 이제야 깨달았는지 후회가 된다.
평소에 자기계발도서나 에세이같은 것을 좋아하는 편이기에 요번 도서 리스트에서 단연 눈에 띄었던 것은 정여울 작가의 책이였다. 10대 때 읽었던‘바보처럼 공부하고 천재처럼 꿈꿔라’,‘아프니까 청춘이다’와는 달리 이 책은 조금 특이했다. 책의 분류는 에세이였지만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와 에세이와는 달랐다. 어떻게 하면 성공할 것인가, 무엇이 성공하는 것에 가장 중요한가, 나는 이렇게 성공했다! 같은 성공하고 존경받을 만한 인물들이 우리에게 충고해주는 그런 형식이 아니라, 그냥 수다떨 수 있는 카페에 앉아 커피 한 잔 하면서‘나는 20대 때 그렇게 못해서 아쉬우니까, 너는 후회하지 말고 이런 것들을 해보는게 어때?’라고 말해주는 아는 언니같은 느낌의 책이였다. 서울대학교를 나와 문학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여울 작가는 우리들이 보기엔 충분히 성공한 사람이지만, 자신을 성공한 사람으로 지칭하지 않고 그저 우리의 고민을 들어주고 같이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는 작가로써 글을 써나가고 있었다. 책은 20대의 청춘 키워드 20가지를 선택하여 작가의 경험담과 함께 풀어나간다. 우정, 여행, 사랑, 재능, 멘토, 행복, 장소, 탐닉, 화폐, 직업, 방황, 소통, 타인, 배움, 정치, 가족, 젠더, 죽음, 예술, 질문.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한 번쯤은 고민해봤던 주제였지만 누구에게도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합법적으로 성인이 된 스무살에도 나는 여전히 고등학생같았고, 모든 일에 챙김을 받았던 10대와는 달리 타지에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나가야 하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 또한 환경이 변하니 생각하는 것도 달라졌고, 단순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부터 열까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인간관계, 연애, 내 꿈과 진로, 생활비, 가족, 스펙쌓기 등 나를 곤란하게 하는 건 너무나 많았고 그 때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고민을 이야기해보아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는 것은 아니였다. 결론은 나 자신과의 소통만이 꼬인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나 자신과의 소통을 도와줬고, 그래서 지금껏 무거웠던 마음이 편해졌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특히 기억에 남았던 키워드 중 하나는‘탐닉’이다. 작가는 스무살에 인간관계를 탐닉했다고 한다. 함께한다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고, 사랑과 우정처럼 꼭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라도, 사람과 사람사이에 일어나는 수많은 관계의 문제에 그녀는 호기심을 불태웠다고 한다. 탐닉은 재능과는 무관하다. 잘하는 것에만 탐닉해야한다는 편견을 버려야한다. 내가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좋아할 수 있는 것, 그것이 탐닉이며 탐닉이 있는 삶은 축복이라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미 중학생 때 아이돌 가수에 탐닉했었던 것 같다. 그 때가 정말로 순수한 열정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 또한 지금 인간관계를 탐닉중이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좋아하고, 새로운 만남이 좋고 심지어 그 어색한 분위기마저 즐겁다. 물론 낯가림이 심해서 사람들 앞에 나서서 분위기를 주도하거나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탐닉은 재능과는 무관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저 나는 사랑,우정과는 다른 이름 모를 설레는 감정을 계속해서 느껴보고 싶을 뿐이다.그리고 두 번째 인상 깊은 키워드는‘장소’이다. 작가는 나이 듦의 기쁨이란 추억의 장소가 늘어나는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공감되는 말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더 많은 추억의 노래를 갖게 되는 것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사람은 추억을 곱씹으며 살아간다. 항상 미래보다 과거에 더 의존하고, 머물러 있는 건 당연한 본능인 것 같다. 21살밖에 안 되었지만 추억의 장소가 늘어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나는 확실히 이해하고 있다. 어릴 적 내가 죽을 뻔했던 계곡,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했던 아파트 정원, 시험이 끝나면 어김없이 향했던 울산 시내 노래방, 짝사랑했던 오빠와 함께 있었던 카페… 21년동안 살면서도 머릿속에 넘칠만큼 한가득인데 앞으로 얼마나 많은 추억의 장소가 새겨질지 기대된다. 그 장소에 갈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 그 때로 돌아가서 그 시간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아련함이 너무나 좋다. 내가 말한 더 많은 추억의 노래를 갖게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요즈음 인기 있는‘응답하라 1994’라는 드라마만 보아도 그 당시 유행하던 노래들과 장소들이 리메이크되고 방영되면서 다시 한 번 주목받고 있다. 그 노래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때의 추억을 회상하고, 또 누군가는 그 노래에 새로운 추억을 새겨놓고 있을 것이다.그리고 마지막 기억에 남는 키워드는‘여행’이다.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당장 짐을 싸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책 사이사이에 끼어있는 이국적인 사진들, 여유로운 여행객들의 사진은 정말이지 매력적이었다. 베를린에서 1유로의 행복을 느꼈다는 그녀, 독어독문학과를 전공했음에도 입가에만 맴돌 뿐 쉽사리 나오지 않던 외국어를 그 1유로로 극복했다고 한다. 작은 기념품 가게에서 기념품을 샀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환하게 웃으면서 베를린은 마음에 드냐, 여행은 재밌냐같은 질문을 하면서 긴장이 풀리고, 타지에서 자신에게 먼저 그렇게 환하게 웃어주는 할아버지의 미소에 외국어 공포증도 극복했다고 한다. 여행객은 그 나라에서 멋진 외국어를 구사할 필요도 없고 도도하게 행동하지 않아도 된다. 여행객은 여행객답게 행동하면 된다. 서투른 외국어도, 이곳저곳 바쁘게 움직이거나 혹은 한 자리에서 가만히 서서 여유를 즐기는 것도 모두 가능하다. 우리나라였으면 눈치보일 행동도 그 곳에서는 모두 허용될 것이다. 그리고 여행을 떠나서 주위의 환경이 변하면 나를 리셋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한다. 복잡한 고민들도, 성격도 모두 한 순간에 포맷되고 재부팅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보지 못했던 나에게 이 책의 작가가 경험한 여행은 20대에 반드시 해보아야하는 그 자체였다. 수능을 보고 난 후에, 가까운 나라 일본이라도, 25살까지만 가능하게 한‘내일로’를 타서 국내여행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가지 못했다. 늘상 생각하면서도 여태껏 떠나지 못했던 것은 내게 떠날 용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내가 여행을 떠나게 되면 지불해야 할 기회비용이, 잃을 것들이 두려워서 괜히 주변의 환경만 탓하면서 떠나지 못했는데 오히려 여행을 가서 얻는 것이 훨씬 많을 거란 걸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또한 스스로를 정리할 수 있는 여행을 해봐야 내 20대가 후회되지 않을 것 같다. 그래, 지금 아니면 언제 해 볼 수 있을까!
지원서작성 > 자기소개자신이 가진 열정에 대하여 Byte(s) ( 400 Byte 이상 2000 Byte 이하 )학창시절에는 비만 체중 때문에 놀림을 받았고 건강상에 이유로 다이어트를 해야 했습니다. 축구와 농구를 하면서 규칙적인 운동을 하였고, 식이요법을 통해 18Kg이라는 체중 감량에 성공했습니다. 의지와 노력으로 이루어 낸 댓가가 크고 달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던 최초의 사건이었습니다. 재수라는 선택을 하면서 또래 친구들보다 1년 늦게 대학에 진학하면서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 커졌습니다. 대학 등록금과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노래방, 호프집, DVD대여점, 음식점, 과외, 학원 강사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그속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면서 타인과의 타협하고 융합하는 협업이라는 장점을 배웠습니다. 또한 취미인 축구와 테니스를 통해 구성원간의 협력을 다질 수 있었고, 뚜레쥬르에서 매니저로 근무하면서 고객을 응대하는 서비스 마인드가 무엇인지 배우고 여러가지 일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배울 수 있었습니다. 남들과는 차별되는 실무적인 능력을 기르기 위하여 홀로Photoshop CS를 통해 사진편집,포스터 편집을 하였고, 영상편집프로그램인 Premere Pro 2.0을 독학하였습니다. 취미로 시작한 단편영화 3편에서는 연출부, 조명, 촬영을 맡았고, 상업영화 1편에서는 미술팀으로 제작에 관한 경력을 쌓았습니다. 단편영화 '웅이 이야기'에서는 조연출을 담당하며 부산국제영화제 선재상을 수상하였고, 연출작 '인생무상'은 감독협회 상영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책임감과 협동심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본인이 이룬 가장 큰 성취에 대하여 Byte(s) ( 400 Byte 이상 2000 Byte 이하 )2005년도에 군 제대를 하면서 입대 전 친구와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중고 자전거를 구입했습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국도를 타고 대한민국을 종단하는 자전거 여행을 실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후에는 여행시 필요한 경비와 준비물을 마련하기 위하여 전단지, 호텔뷔페 아르바이트를 하였습니다. 최소의 경비인 30만원을 각자 모아 기존 여행자들의 경험을 토대로 여행루트를 계획하면서 철저한 준비를 하였습니다. 서울-대전-대구-부산으로 이어지는 루트로 큰도시를 중심으로 하여 여행시에 작은 마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숙소는 찜질방,여관,사찰,교회로 하였으며 식사 또한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국내의 많은 대학생들이 유럽배낭여행을 계획하고 있던 때였기에 주변 사람들은 배낭여행을 가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많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 나라를 먼저 알아야 더 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수많은 곳을 들르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한국인의 정이었습니다. 젊은이들의 패기를 인정해주시고 사람을 우선으로 여기시는 마을 주민들의 정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완주일정을 20일로 계획하였지만 15일 째에 친구의 발목 부상때문에 경상북도 경산에서 여행을 중단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긴 여행에 닳아버린 자전거는 노인 복지 회관에 드리고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왔습니다. 여행에서의 많은 경험들은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2012년에는 친구와 함께 또 다른 새로운 경험을 위해 제주도 무전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본인의 가장 큰 실패 경험에 대하여 Byte(s) ( 400 Byte 이상 2000 Byte 이하 )고교시절 대입에서 쓴맛을 보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대입준비를 철저히 하는 반면에, 한 과목도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었습니다. 기본은 물론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는지조차 결여된 백지장과 같았습니다. 부모님은 완강한 반대 의지를 굽히지 않으셨고, 최후의 수단으로 이미 합격된 대학에 자퇴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서울이라는 큰 무대에 서야만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후 재수전문학원으로 들어가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기초를 다지기 위한 시간으로 사용했습니다. 중구난방식의 이해로는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생각에 묵언을 하며 그 시간을 버텨 나갔습니다. 친한 고교 동창생들과 이야기를 하지도 않고 사람이 많은 곳보다는 혼자서 집중이 잘 되는 조용한 곳에서 공부했습니다. 교제하던 여자친구와도 이별을 통보하고 오로지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투지를 가지고 시간을 버텨 냈습니다. 여름 방학기간에는 참고서 위주의 종합적 문제를 다루면서 판단 능력을 길렀습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풀지 않았던 문제를 풀려니 점수는 눈에 띄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헛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근성으로 여름을 버텨나갔습니다. 1년 전의 실패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11월 드디어 수능시험을 쳤고,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 얻었습니다. 그간의 피땀 흘린 노력의 대가가 정말 달다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 순간이었습니다. 기회는 항상 위기의 순간에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위기의 순간을 의지와 근성으로 기회를 다시 되찾아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전환점을 계기로 서울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었고,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본인의 역량에 관하여 (Global 감각/지원 분야 관련 전문지식) Byte(s) ( 400 Byte 이상 2000 Byte 이하 )대학에서 2006년 과내 축구 동아리에서 1년 동안 주장을 역임했습니다. 구성원들 사이의 공과 사가 엄격히 구분되어야 했고, 부족한 실력은 철저한 실력주의를 통해 극복을 해야만 했습니다. 히딩크 식 하드트레이닝을 롤 모델로 삼아 선후배간의 실력의 격차를 좁혔습니다. 각 포지션에는 2명 이상의 선수를 배치하여 주전간의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였습니다. 1년 준비 끝에 토너먼드에서 8강, 리그전에서 준우승을 거두었습니다. 2008년에는 6개월간 호주 브리즈번지역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경험했습니다. 해외로의 첫 연수였기 때문에 현지에서 차질이 없도록 준비를 했습니다. 브리즈번 어학원에서 2개월 정도 머물며 기초 회화를 배우고, 여행을 하면서 이력서를 제출하였습니다. 항구에서의 선적작업과 편의점 아르바이트, 레스토랑 접시 닦기를 하면서 회화의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하며 번 돈으로 골드코스트와 시드니 지역을 여행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문화차이보다 우정이라는 소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태국여행은 또 다른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관광산업의 메카로 자리잡은 태국의 영업마케팅을 여행을 통해 그들과 섞이면서 알게 되었고, 진정한 마케팅은 사람과의 마음, 즉 이심전심이었습니다. 여행 이후 한국에서 한글학교에서 어머니 또래의 분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활동을 하게 되었고, 돈 대신 음식, 자취용품들을 받으면서 비록 길진 않았지만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경험이었습니다.본인의 성격에 관하여 (본인의 약점/강점에 대하여) Byte(s) ( 400 Byte 이상 2000 Byte 이하 )빨강은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개최로 인해 소통과 단결의 이름으로 재탄생되었습니다. 진취적이고 개혁적인 성격도 강합니다. 실천력 또한 겸비하여 군 제대 후 친구와 자전거로 전국일주를 하면서 입대 전 약속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또한 빨강은 무지개의 처음 색깔인 것과 같이 남들을 이끌어가는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2007년에는 영화 동아리 '영화 울림'에서 회장을 맡으면서 선후배간의 관계조성과 홈커밍데이를 주선하며 리더의 자격의 어려움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빨강은 그만큼 독단적이고 지나친 열정에 일을 그르칠 수도 있습니다. 불같은 성질이 때로는 정의가 되지만 영업마케팅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단점입니다. 주변 사람을 둘러보지 못하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스마트폰과 다이어리를 이용하여 스케쥴을 관리하고, 사람만의 특징을 파악하면서 관계형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취미인 축구와 테니스를 통해 구성원간의 협력을 다지며 독단적인 성격보다는 화합과 협업에 중점을 두어 단점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저의 생활신조는 소포클레스의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라는 격언입니다. 좌절하거나 어둡고 암울한 미래가 아닌 항상 긍정적인 마음으로 지금 처한 상황을 즐기고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현재도 이러한 신조를 지키기 위해 금융 자격증 준비를 하고 있으며, 인턴직과 학원강사 파트타임을 통해 하루하루를 소중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MAXIM에 지원한 이유와 자신이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 (900자 이내)[도전은 성장의 어머니]저의 도전은 항상 성장의 발판이 되어 왔습니다. 2008년, 호주로 무작정 배낭하나를 메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습니다. 영어는 책상에서 하는 공부보다 직접 부딪히고 실패해보면서 얻는 것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력서 한장 들고 30번이 넘는 면접을 보면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을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만년 꼴찌 축구동아리 ‘ROKA’에서 주장을 맡으면서 회원 수가 적고 저조한 성적을 기록해 폐부위기에 있던 팀을 대회 준우승에 올린 것도 '도전'이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팀원들과 함께 위기를 인식하고 탈출의 방안을 마련하였고, 팀워크를 향상시키는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 결과를 이루어내었습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때에는 비를 맞으면서 아이스티를 판매하였습니다. 영업은 실전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맨몸으로 고객과 부딪히며 현장에서 영업의 어려움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1년이라는 짧은 사회생활을 한 뒤 이직 준비를 하면서 가장 크게 든 생각은 미래지향적으로 제 자신을 보는 관점을 가져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0년 뒤를 보았을 때 가장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창의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곳인 동시에, 한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아이템들을 다룰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사물에 대한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배우로 출연하였으며, 마카오원정대에 선발되어 마카오홍보영상을 제작하였습니다. 졸업 후에는 친구와 함께 MMCC라는 승무원양성업체를 창업하여 승무원 취업준비생들의 길잡이가 된 경험이 있습니다. 저의 호기심을 가장 잘 충족시켜주고 이끌어 낼 수 있는 곳은 MAXIM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의 '격언'이 될 수 있도록 호기심을 비틀어 새로움을 만드는 마케터로 성장하겠습니다.MAXIM에 들어와서 활용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강점, 능력, 경험 등을 지원직군과 관련해 기술하고, MAXIM이 나를 뽑아야 하는 이유를 쓰시오. (900자 이내)[점박이와 이룬 103만의 관객신화]영화사업부에서 , , , , 마케팅을 담당하였습니다. 그 중에서 신입사원으로서 목소리를 내어 성공적인 마케팅을 한 사례를 말씀 드리겠습니다.극영화가 아닌 애니메이션인 '점박이:한반도의 공룡3D'를 마케팅하여 103만명의 역대 애니메이션 관객수 2위를 기록하였습니다. 과장님과 2인 1조가 되어 진행한 '점박이:한반도의 공룡3D'는 처음에는 주목받지 못하는 3D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의 공룡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3D영화라는 강점은 시장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학부모와 미취학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호응도가 컸고, 미취학아동을 중심으로 한 '가족관객 몰이'를 전략적 중심에 두었습니다. 저는 신입사원으로서 언론 보도자료 제작과 홈페이지, 온라인배너, 포스터 디자인 작업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마케팅활동을 하였습니다.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온라인 게임업체인 넷마블과의 예매권 바터 프로모션이었습니다. 미취학아동이 타깃이자 신석기시대를 배경으로 한 액션RPG게임 스톤에이지를 선정하여 영화예매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기획해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왕십리에서 진행된 공룡전문가들과 다문화가정 초청 시사회를 기획하였고, 공룡 옷을 입고 스티커와 카드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이후 영화는 입소문을 탔고 이후 103만명의 관객신화를 이루었습니다. 부족한 제품이라도 수익모델을 잘 구축하고 어떻게 마케팅전략을 수립하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짐을 배웠습니다. 업무를 직접 경험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협업하면서 마케팅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가진 대외 커뮤니케이션 강점과 마케팅 활동 경험을 통해 MAXIM에서 마케팅팀의 활력소이자 슈퍼서브가 되겠습니다.MAXIM 이란 당신에게 어떤 매거진인가? (900자 내외)[MAXIM은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다]MAXIM의 엣지는 패션에 꿈 많은 대학생의 패기를 꺾었습니다. 그것은 저의 첫번째 모욕이자 좌절이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2003년, 한일월드컵의 뜨거운 열기가 가라앉고 캠퍼스가 사랑으로 무르익을 봄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남자라면 꼭 봐야할 Must have 아이템 잡지인 MAXIM을 친구의 권유로 구입했습니다. 혈기왕성한 저는 므흣하고 흐믓한 여성들에 정신이 팔렸지만 현실을 직시, 짝사랑 그녀를 공략하기 위해 남성패션 정복 페이지를 펼쳤습니다. 어디서 매력학과라도 전공한 듯한 8등신의 모델들이 시대를 앞서가는 흰색 자켓과 빨간 후드티를 매치해 뽐을 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당히 그리고 아주 자연스러운 듯 옷을 매치했고, 건축한 개론의 수지를 닮은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했습니다.봄은 원래 그렇게 추운 계절인가요? 독도 기준 100해리 근처에서 갓 잡아 올린 신선한 오징어같은 저에게 시련이 찾아왔었습니다. 바로 MAXIM때문입니다. 당시에는 힙합바지스러운 링클면바지에 흰색 티셔츠를 받쳐입은 폴로카라티가 먹어줬기에 수지가 보기에 저는 설운도 아저씨 코스프레를 한 줄 알았을 겁니다. 시대를 앞서 나가는 당신에게 큰 박수를 보냅니다. 이제는 오징어를 위한 현실 100% 리얼 패션을 페이지에 채웠으면 합니다. MAXIM에 입사하게 된다면 제가 오징어들과 함께 패션의 바다를 헤엄쳐 나가겠습니다. 모욕감을 느꼈던 그 때로 돌아가 90년대 패션을 드레스코드로 한 파티를 개최해 MAXIM을 홍보하는 마케팅 전략을 구사하겠습니다. 90년대의 아날로그 감성이 물씬 풍기는 노래와 콜라텍과 나이트를 섞어 놓은 듯한 무대를 통해 '붐'의 사회로 MAXIM만이 가능케 할 홍보를 기획하겠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MAXIM은 '격언'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1.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때 느꼈던 감정,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2010년 남아공 월드컵 기간 동안 한국대표팀의 경기가 있는 날, 서울시청 광장에서 아이스티와 아이스초코, 샌드위치를 판매를 하였습니다. 단기간의 이익과 월드컵의 추억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고, 20대의 열정과 패기로 소위 대박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먼저 친구와 함께 40만원의 자본금을 투자해 아이스티 분말가루와 생수를 구입하고 지인에게 아이스박스 2통을 빌려 장사준비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전이 열리는 장사 당일, 아침부터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장사를 해야 할지에 대해 수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파라솔 대여를 알아보았지만 비싼 가격과 판매장소와 먼 운송거리가 문제였습니다. 대안을 찾던 중, 집 근처 식당을 운영하시는 조기축구회원 형님이 생각났습니다. 일요일마다 꾸준히 참석하는 조기축구회에서의 친분으로 케노피를 무료로 빌릴 수 있었습니다. 시청역 2번 출구 앞에서 장사를 시작했지만 비 때문에 응원하러 나온 인파가 너무 적었고,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도저히 판매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더구나 단속반의 철거 명령이 계속되면서 장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에 절치부심하며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장사 이튿날, 아르헨티나전이 열리는 예선 두 번째 경기 때에는 비가 내린다는 기상예보를 미리 접하고 상암 월드컵 경기장으로 장소를 옮겼습니다. 경기 시작 6시간 전부터 경기장 앞에서 거리판매를 시작했습니다. 첫 번째 실패를 경험삼아 케노피를 미리 대여하였고, 비가 올 것을 대비해 우비와 우산을 준비하였습니다. 예상처럼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비가 오기 시작하였고, 경기장 내부로 들어가 판매를 하였습니다. 내부에서는 좌판을 깔 수 없었기에 음료를 들고 개인판매를 하였습니다. 이런 노력으로 경기 당일 3천원 가격의 음료수를 110잔 판매해 33만원의 이익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장사를 해보면서 영업이라는 것이 단순한 판매가 아닌 상황 대처능력이 필요하고, 정확한 판단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2. 이제까지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은 무엇이었으며, 그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일과 그 때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대학에서 2006년 과내 축구 동아리에서 1년 동안 주장을 역임했습니다. 사실, 축구 동아리 ROKA는 저를 비롯하여 친한 친구들과 함께 만든 과내 최초의 축구동아리였습니다. 설립멤버로 단순히 축구를 좋아하고 즐기기 위해 만든 동아리였는데 신입부원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교내 축구대회에 참전하는 등 활동을 하면서 더욱 커졌습니다. 군 입대를 앞두고 많은 추억들을 만든 동아리였기 때문에 후배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습니다. 더구나 축구를 워낙 좋아하기 때문에 축구관람이나 축구연습을 홀로 많이 하는 편입니다. 1년 간 주장을 맡으면서 기존의 팀을 새롭게 바꾸고 싶었습니다. 성적도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는 축구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축구는 팀워크와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저는 하나씩 바꾸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선후배간의 자유로운 의사소통입니다. 선배라 해서 후배에게 명력하고 후배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타파했습니다. 사석에서도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하도록 말을 놓게 하였고, 축구게임을 통해 친목을 도모했습니다. 둘째, 체력강화입니다. 체계적인 훈련 시스템을 마련해 놓지 않아 부상자가 많았었고 팀 전력에 누수가 생긴 적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항상 연습 전에는 스트레칭과 볼트래핑을 그 이후에는 패스와 슈팅훈련, 그 다음에는 전술훈련을 했습니다. 이런 훈련 방식은 개인의 능력도 향상시켰고, 팀 전력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극대화하기 위해 제가 먼저 후배들에게 다가갔습니다. 주장으로써 실력이 팀원들보다 상위에 있어야 한다고 판단해 밤에는 개인적으로 후배와 연습을 했습니다. 또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항상 연습시간 10분 전에 운동장에 나가 준비를 하였습니다. 히딩크를 롤모델로 하여 6개월간의 준비를 한 결과 ROKA는 32개팀이 겨루는 토너먼트 대회에서 4강의 성적을 거두었고, 8개팀이 겨루는 리그전에서 준우승을 했습니다.3. 자신에게 요구된 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세워 시도했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표 달성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이나 그 때 느꼈던 자신의 한계는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2006년, 단편영화 '인생무상(A Fine Day)'를 제작 및 연출을 하였습니다. 취업대란 속에 살아가는 청년 실업자들의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취업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된 영화입니다. 3개월간의 시나리오 작업을 거쳐 과내 조교활동으로 받은 장학금 200만원을 제작비로 마련하여 영화제작을 기획하였습니다. 6월 3,6,10일 총 3일간의 제작 기간에 촬영을 하였고, 대학교, 병원, 사무실, 한강대교를 오가는 로케이션 루트였습니다. 스탭 구성은 대학생 스탭 4명과 상업영화 현장실무자 20여명을 합해 25명의 스탭이 참여하였습니다. 제작 당시 목표는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나 미장센 영화제 등 독특한 소재를 채택하는 곳에 입상하는 것을 목표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제작을 하고 편집을 하는 과정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편집에는 4개월간의 시간이 소요되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비선형 편집을 해본 적이 없었고, 편집 프로그램을 처음 다루어 봤기 때문에 시간과 노동이 많이 소요되었습니다. 12분의 상영타임을 맞추기 위해 촬영했던 영상들을 눈물을 머금고 편집해야 했고, 그 때문인지 내용의 연결이 쉽지 않았습니다. 편집을 생각하고 영상을 찍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열정과 패기만으로 시작했던 촬영이었기에 영상 내에서 많은 오류가 있었습니다. 사전에 사진콘티로 피해를 최소화하려 했지만 사진과 영상이 다르다는 것을 편집과정에서 알았습니다. 제한적인 영상으로 기존에 생각했던 메시지를 만들기 어렵다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지만, 교차편집과 멀티편집을 통해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필요 없는 부분들을 과감히 잘라내고 추가로 필요한 부분들은 재촬영으로 보충했습니다. 파부침주의 심정으로 사용할 수 있는 영상과 편집 기술을 모두 동원하여 모든 것을 쏟아 부었습니다. 영상에 음악이 입혀지면서 제 모습을 갖추어 갔고, 완성본 ‘인생무상’은 독립영화진흥회가 주최하는 독립영화발표회에서 발표작으로 선정되었고 감독협회를 통해 상영되었습니다.(학업 이외에) 본인이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했던 다양한 활동들을 기술하고, 그 중에서 가장 자기주도적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했던 경험을 골라 상세히 기술해 주십시오. (창업/장사 경험, 공모전/경진대회 수상, 특허/실용신안 출원 등 자신만의 차별화된 경험을 기술해 주시되, 반드시 상기한 예시에 해당하지 않아도 됩니다.) / 1200자 내외A) 다양한 활동들에 대한 기술은 400자 내외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B) 스스로 어떤 수준의 목표를 설정하고 어떤 계획을 수립하여 어떻게 실행했습니까?C)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그 과정에서 본인이 얻은 것은 무엇입니까? (1200 자 10 단락 이내) 자2009년에 뚜레쥬르에서 아르바이트로 시작해 1년이 넘게 일을 하면서 매니저로 근무하였습니다. 매장 영업과 아르바이트 생 관리, 주문과 반품을 주 업무로 하여 근무하였고, 고객 관리와 클레임을 처리하였습니다. 최근에는 관심분야인 영화, IT,축구를 주제로 한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무비키노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입니다. 특히 IT관련 최신소식을 공부하고 누리꾼들과 공유하면서 저의 의견을 제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항상 모든 일에 호기심을 가지고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에는 열정적으로 활동들을 하는 성격입니다. 그 중에서 2010년 5월 마카오 원정대원으로 선발되어 마카오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기억에 남습니다. 마카오관광청, 웹투어, 다음 TV팟이 주최하는 이벤트 및 공모전에서 선발인원 5명 안에 들어 무료로 마카오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선발기준은 자신이 다녀온 기억에 남는 해외여행을 여행 UCC로 만들어 업로드를 해서 네티즌들의 클릭 수와 별점, 추천 수에 따라 점수를 책정하고, 마카오 현지에서 어떤 식으로 촬영을 진행할 것인지를 명시한 촬영계획서를 제출해 총점을 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원정대원이 되기 위해 국적이 다른 남녀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마카오 Hot&Sweet 이라는 컨셉트로 남성들이 즐길 수 있는 스포츠, 클럽 등 Hot한 여행지를 소개하고 여성들이 즐길 수 있는 먹거리, 쇼핑 등 Sweet한 여행지를 소개하는 영상을 담을 계획을 하였습니다. 마카오에서 3박 5일의 여행을 하면서 마카오 구석구석을 카메라 속에 담을 수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3일 간의 작업을 거쳐 MP3음원을 설정하여 2분 분량의 마카오 홍보영상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이후 인코딩 과정을 통해 상상마당에서 스크린으로 시사회를 가졌고, 다음 TV팟에 게재를 해 마카오를 홍보하는 영상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촬영계획서와는 다르게 MACAU의 첫 글자를 따 여행지를 소개하는 영상이 결과물로 나오게 되었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영상 하나로 내가 가진 생각과 느낌들을 영상 하나에 담아낸다는 것은 항상 연구하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해야 나올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형식적으로 최선을 다한다는 말보다는 진심이 담긴 행동하나, 생각 하나가 나를 바꿀 수 있고 타인의 행동을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