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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문]화엄사
    '05 한국건축사 답사 레포트김재숙화엄사 가는길,,일주문 화엄사를 향하는 길에 제일 먼저 들어서게되는 화엄사의 일주문은 중생들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 사이의 경계를 표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문에 들어서는 우리들도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벗어버리고 진리를 구하고 돌아오자는 마음이었다. 제법 귀여운 용 두마리가 양쪽 기둥에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화 엄 사처음에는 해회당과 대웅상적광전만 세워졌고 그 후 643년(선덕여왕 12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되었으며, 875년(신라 헌강왕1년)에 도선국사가 또 다시 증축하였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30년(인조 8년)에 벽암선사가 절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7년만인 인조 14년(1636년)에 완성하였다.지리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천년 고찰로, 544년(백제 성왕22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으며, 절의 이름은 화엄경(華 嚴經)의 화엄 두 글자를 따서 붙였다고 한다.화엄사 가람배치사찰 내에는 각황전을 비롯하여 국보 4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 지방문화재 2점등 많 은 문화재와 20여동의 부속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화엄사의 가람배치는 화엄법계의 연화장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화엄사는 불이문, 금강문, 천왕문이 태극의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보제루, 운고각으로부터 대웅전까지 이르기까지 또 하나의 태극형상을 이루고 있다.불이문일주문을 통과해 차를 주차해 놓고 걸어서 오분정도 올라가니 불이문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화엄사 전체의 규모를 생각해봤을 때 상당히 소박한 모습이었다. 불이문의 안쪽이 바로 부처님과 부처님의 진리가 깃들어 있는 신성하고도 복된 곳임을 명심하며 보다 엄숙하고 지극한 마음가짐으로 한걸음 한걸음 향했다.벽암국일도대선사비이 비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화엄사를 중창하신 벽암스님의 일대기와 업적을 기린 기념비라고 한다. 화엄사 불이문과 금강문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만월당도선대사비를 지나면서 계단위에서 바라본 요사채인 만월당의 모습이다. 이렇게 한폭의 그림과 같은 곳에 거주하시는 스님들이 부럽워서 도망칠것만 같다. 문수동자와 보현동자는 마치 잡귀를 없애는 주문을 외우고 있는듯 하다. 아직도 문이 하나더 남아있는 듯 하다. 서쪽으로 보이는 사천왕문을 한번 통과해보자.밀적금강나라연금강문수동자보현동자덕장전과 선등전사천왕문보통의 사찰이 일주문에서 대웅전까지 일직선상으로 되어 있지만 화엄사의 경우 천왕문이 금강문에서 서쪽으로 약간 비켜있는것이 매우 특색있다. 왜 그랬을까? 가람의 대문 역할을 하는 금강문과 정면으로 마주 보고 있으면 그 문을 넘나드는 수행자들에게 방해라도 된다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사천왕은 불국정토의 외괵을 맡아 지키는 수호신이라서 그렇게 비껴 세워 놓았을까. 화엄사의 가람은 4개의 공간으로 영역화 되어 있는데 그 첫번째가 바로 약간식 비켜있는 불이문·금강문·천왕문 ·보제루까지 이어지는 직선형 진입공간이다. 건물들이 약간씩 비켜있어 일직선 가람형태에서 느낄수 없는, 절집으로 깊숙이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 여기서부터는 사천왕의 수호를 받는 청정도량이란다. 몸가짐과 언행을 더더욱 신중히 해야 할 것 같다.왼쪽 위부터 북방다문천왕 남방증진천왕 서방광목천왕 동방지국천왕당간지주사천왕문을 지나 원융요 앞에 위치하고 있는 당간지주는 신라 헌겅왕원년(875년)도선국사께서 화엄사 형국을 보니 마치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배와 같은 형국이라 돛대를 상징하는 당간을 이곳에 세웠다고 한다. 당간지주는 멀리서도 절이 있음을 알리는 깃발을 세우기 위한것으로 큰법회나 기도가 있을때 깃발을 꽂아 둔다. 그래야 사람들이 이 깊은 산중에 절이 있는지 알테니 말이다.보제루보제루는 승려와 신도들의 집회를 목적으로 지은 것으로 단아한 맞배 지붕집이다. 천왕문 쪽(좌)에서 보면2층 누각이었는데, 대웅전 쪽(우)에서 보니 단층이다. 보통 절의 누각을 지날때는 누하진입과 우각진입이 있다. 누하진입은 말그대로 누각밑으로 지나가는 것이고 우각진입은 오른쪽으로 돌아서 가는것이다. 화엄사는 우각진입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인지 보제루가 약간 왼쪽으로 밀려나 있어 동선을 오른쪽으로 유도원통전과 각종 석탑들이 다 보였다. 다시 그쪽으로 발걸음을 떼었다.화엄사의 풍경보제루에 않아 경내를 바라보다가 문득 단풍나무에 눈이 머물렀다. 가까이서 보니 아직 덜여물은 단풍나무씨가 빨간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가을에 단풍구경이라는 말을 무색하게하는 풍경이었다.범종각보제루의 좌측에 자리하고 있는 범종각은 불교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네가지 물건 중 하나인 범종을 매달아 놓은 루이다. 하늘과 산 등의 주변 경관과 범종각의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마침 스님이 타종을 하고 계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절내에 종소리가 울려 펴지면서 경건한 기운이 소리를 타고 흐르는 듯 하다.운고각보제루의 오른쪽에 불교에서 중생을 제도하는 네가지 물건중 목어, 법고를 매어놓은 운고각이 있다. 수업시간에 사진으로만 본 것들인데 이렇게 가까이서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다.화엄사의 전경ㅁ 자형의 마당일주문을 지나 금강문과 천왕문을 거쳐 대웅전을 가리고 있는 보제루를 돌아가면 비로소 탁 트인 화엄사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큰 마당을 가운데 두고 정면에 대웅전, 왼쪽에 각황전이 높은 석축 위에 장대하게 자리잡고 있다.동오층석탑각 층마다 귀기둥형(우주형)만이 새겨졌고 다른 조각이나 장식은 없다. 특히 1층 탑신은 높이에 비해 넓어 중후하며, 지붕돌은 평평하고 얇으며 받침은 각층 4단씩이고 추녀 밑은 수평이다. 지붕돌의 층 수에 따라 차례로 줄어가는 비율(체감율)도 크고 제 1층과 2층의 줄어듬은 더욱 크다. 적묵당 앞에 위치하고있다화엄사 동오층석탑서오층석탑동오층석탑은 꾸밈이 없는데 비해 이 탑은 조각과 장식이 가득 찬 장엄한 탑으로 이중의 기단 위에 세운 5층의 평면 네모꼴인 탑이다. 아래 받침돌과 가운데 받침돌은 한 돌로 붙였고 각 면에는 눈모양을 새겼으며 그 안에 12지신상을 방향에 따라 조각했다. 보재루 옆 범종각 뒤에 위치하고있다.화엄사 서오층석탑각황전과 대웅전 계단..대웅전 계단각황전 계단화엄사가면 유심히 봐야할 것 중에 놓치기 쉬운 것이 있는데 각 두건물의 계단이 미묘하게 다긴 반면 백제식 계단은 좁고 짧다.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 유심히 볼 수 있었는데 신라식계단은 부드럽고 섬세한 느낌이 드는 반면에 높고 짧은 백제의 계단에서는 기백이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사실을 우린들만이 자세히 보고 있는 것 같아 왠지 흐뭇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대웅전보제루를 지나면 정면에 바로 눈에 띄는 대웅전…화암사의 중심이 되는 법당인 대웅전이다. 외부의 기둥배치와는 다른 내부 평면계획을 하여, 불좌의 뒷기둥 열을 조금 후퇴시켜 예불공간을 확대시켰다. 보물 제 299호로 고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건물인데도, 거대한 규모에 안정된 비례를 갖춘 뛰어난 각황전으로 인해 조금은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신세이다.각황전각황전은 다포계 중기 형식의 건물이며 현존하는 건물 종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중층형식의 건물로써 내부에 있는 15개의 고주가 기본 구조물이 되어 여기에 1층부의 바깥기둥과 2층부의 변주가 부가된 구조 방식이다. 한 사찰내에 큰 건물은 대웅전 하나라는 상식을 깨면서 까지 허물어 지지 않고 대웅전과 함께 위용을 자랑하며 자리 잡고 있다. 주 불전인 대웅전 보다도 오히려 더 크고 장엄함을 자랑하며 또한 빛이 바랜 단청에서 옛 건물의 청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각황전을 의식해서일까 …각황전 앞의 석등 또한 그 크기와 시원함이 돋보인다. 그 앞에 선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각황전각황전 뒷뜰다포양식각황전은 외부 첨자가 곡이 매우 심한 쇠서를 가지고 있고 다포 양식이다. 다포 양식이 그렇듯 복잡한 공포가 처마 밑에 꽉 차있어 고고한 이미지의 색채와는 반대로 매우 화려한 느낌을 주었다. 넓게 트여있는 각황전의 앞마당에서 건물의 측면을 따라 후면 으로 들어가면 자연과 어우러진 작은 뒷뜰을 만날 수 있다.각황전에서 바라본 석등과 대웅전각황전 으로 향하는 가파른 계단을 다 오르면 눈앞에 보는 이를 압도하는 석등이 하나 서있다. 이 석등은 높이가 6.36미터, 직경이 2.8미터에 이르는 대형이면서도 뛰어난 균형미를 갖추고 있는 우리나라황전 앞의 석등이 그렇게 커야했었나 보다. 아마 보통의 크기인 석등이었다면 석등의 존재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각황전 앞 석등석등은 불교에서 의식용의 불을 밝히기 위해서 돌로 만든 등기이다. 장구 모양의 고복형 계통으로 8각으로 된 기대 옆면에는 눈 모양이, 석등 아랫부분인 연꽃무늬의 돌에는 귀꽃을 갖춘 이중화관의 연꽃이 장식되었다. 연꽃 받침 위에는 1단의 구름 무늬 받침대와 간석굽 받침대를 갖춘 위에 고복형의 중간 기둥을 두었다.원통전원통전 앞 사자탑통일 신라 시대의 석탑으로 사 사자 삼층석탑을 모방한 것이라고 한다. 2층의 기단 위에 탑신을 얹고 있는 모습의 이형석탑이라 해도 완전하지 않은 것 이어서 '노주'라고 불리기도 한다. 조각과 세련됨이 전의 것에 미치지 못해서 사사자 3층석탑 보다 훨씬 뒤인 9세기 무렵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조각에 대해 잘 모르는 우리의 눈으로 보기에도 사자의 형상이 사 사자 석탑에 비해서 생동감이 없어 보였다. 몸도 더 통통하고 팔다리의 연결도 부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고,,,^^;;명부전과 나한전사사자 삼층 석탑과 석등사 사자 삼층석탑은 효대라고 불리는 좊은 대지에 건립되었는데 매우 가파른 계단을 한참이나 오른 뒤에야 다다를수 있었다.이 탑은 절의 창건자인 연기조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웠다고 하는데 탑의 앞에 석등이 배치되어 있어서 본래 이 장소가 석탑을 세우기 위하여 마련된 지역임을 알 수 있었다. 석탑은 우주 대신에 암수 2쌍의 사자가 배치되어 있고 그 가운데 비구니 한명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가 연기조사의 어머니라 한다. 의도야 어찌 됬던 간에 다른석탑과는 전혀 다른 독특한 석탑을 감상 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희망돌어느 절에나 있는 작은 돌탑들…화엄사 안에도 소망을 담아 정성스레 쌓아 올리는 작은 탑들이 있었다.. 우리들은 하나씩 정성스레 소원을 빌며 탑을 쌓았다.화엄사 입구의 부도들화암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 한편에 오르면서는 미처 발견하지 못했었던 화엄사의 부도밭이 펼쳐져 있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을
    독후감/창작| 2007.05.18| 30페이지| 1,000원| 조회(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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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감상문]연곡사
    연곡사일주문연곡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보이는 일주문이다. 마치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두 팔을 활짝 펼치고 있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연곡사 입구에는 일주문만 덩그러니 있고 담이 없어서 제대로 찾아온게 맞는지 헷갈렸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 보자.삼층석탑(보물151호)일주문을 지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으로 대적 광전 우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상륜부는 유실되고 보주만 올려놓았다. 탑신부는 전형적인 삼층석탑이나, 이중 기단이 아니라 여러개의 석재가 3중으로 기단부를 이루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또한 일체감을 주기위해 한가지 석재를 사용한것이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석재를 사용한 점이 독특했다. 전체적으로 하층기단에서 탑신부에 이르기까지 굉장히 안정적인 느낌을 주었다.선방, 요사채연곡사는 화엄사와 함께 신라 진흥왕6년(545년)에 연기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나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가 중건되고 그 뒤 수차례의 병화로 불타버린 끝에 작은 법당이 초라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대부분 복원되어서 제법 큰 절로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절터가 커서 그런지 여전히 허전한 기분은 들었다.종각명부전, 화장실대적광전일주문을 통과해 쭉 계단을 올라가면 대적광전이 나온다. 대적광전은 불교 사찰에서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본존으로 모시는 당우(堂宇)라고 한다. 대적광전이 주불전일 경우 여의주를 입에 문 용으로 화려하게 장식한다고 하는데 이 모습이 잘 나타나 있는 것을 보니 바로 이곳이 연곡사의 주불전임을 알 수 있었다.아름다운 부도꽃 - 연곡사석가도, 스님들도, 우리들 모두 죽는다. 죽는 것이 아니라 새로 태어나기 위해 옷을 갈아입는 것이므로 입멸(入滅)한 스님의 사리를 안치한 것을 부도(浮屠)라고 부르고 그 앞에 스님의 행적을 적은 탑비를 정성껏 세웠다. 부도하면 또 연곡사의 동․서 부도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연곡사는 고려 초까지 스님들이 선(禪)을 닦는 절로 이름이 높았는데, 이 때문인지 부도가 많다. 그리고 건물 자체보다 부도의 아름다움으로 더 유명하다. 그럼 이제부터부도의 아름다움에 한번 빠져~~ 봅시다.연곡사 동부도(국보53호)법당 뒤쪽으로 상록수림이 우거진 언덕배기를 따라 올라가니 지리산의 미녀라고 불리우는 동부도가 자리잡고 있었다. 동부도는 지리산의 미녀라는 이름에 걸맞게 매우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 부도는 연곡사의 동쪽에 네모난 바닥돌위로 세워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기단(基壇)은 세 층으로 아래받침돌, 가운데받침돌, 윗받침돌을 올렸다.연곡사 북부도(국보54호)동부도에서 산 쪽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10여분 올라가니 전체적으로 8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는모습이 동부도와 꼭 닮은 북부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 부도는 석질과 강도 차이 때문인지 동부도 보다 뒤늦게 만들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동부도보다 풍화가 더 심했다. 풍화가 심해지기 전에 서둘러서 보호할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연곡사 동부도비동부도비의 조각에서 독특한 것은 거북등에 표현된 날개이다. 네모진 대좌석과 귀부가 한돌로 조각된 이 탑비는 비신은 유실되고 이수만 남아있다. 오른쪽 앞발을 살짝 든 귀부의 정상에는 장방형 비좌를 마련하였는데 네 측면에는 구름문양을 조각하였으며 그 윗면에는 복판의 연화문을 새겼다. 똑바로 곧추선 귀두는 용두화 되었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현각선사 탑비 (보물 제152호)연곡사 법당에서 우측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대좌와 한 돌로 된 이 탑비는 역시 비신은 유실되었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다. 이 귀부의 앞발은 동부도비와는 반대로 왼쪽발을 살짝 들고 있다. 찢어진 입 뒤로는 바람에 날리는 듯한 수염이 인상적이다.서부도(보물 제154호)북부도에서 산길 따라 서쪽으로 내려가면 몇 기의 부도가 있는데 서부도라고 불리는 소요대사 부도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부도비를 별도로 세우지 않고 부도의 몸돌이나 다른 부분에 글자를 새기는 예는 조선시대에 이르러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양식으로, 서부도가 그런 예의 하나이다. 팔각원당형으로 아름다운 균형을 이루고 있다.연곡사를 둘러보는것을 마지막으로 드디어 우리 일행의 짧지만 굵은 답사가 끝이 났다. 화엄사가 예상외로 너무 커서 이곳저곳 구석구석 둘러본다고 초반에 너무 힘을 많이 뺐던것 같다. 그래서 이번 답사의 마지막 코스인 연곡사를 둘러볼 때쯤엔 힘없이 흐물흐물 거리면서 걸어다녔지만 이 사진을 보니 사진찍을때 다들 카메라를 의식할 기운은 남았었나보다. ㅋㅋㅋ 어쩌면 이것만 찍으면 이제 집에 간다는 생각에 힘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지리산 피아골 입구에 자리잡은 연곡사 앞에는 계곡이 있는데 마침 더위에 지쳐있던 우리에게 천국이 따로 없을만큼 너무 시원하고 좋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절에 시원한 계곡물까지 어우러진 그 풍경이 지금 더위에 부채질 하는 나의 머리속에서 둥둥 떠다닌다. 다시 가보고 싶을만큼. 매일 콘크리트의 딱딱하고 차가운 건물안에서 생활하다가 이번 답사를 계기로 이렇게 도시에서 떨어진 조용하고 공기좋고 물 맑은 곳에 나오니 기분은 정말 좋았다. 솔직히 이번 답사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좋은곳에 와보지도 못했을것이다. 연곡사를 보면서 우리 건축이 자연과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곡사는 화엄사에 비해 사람들의 발길이 그리 많지 않고 조용했는데 그래도 왠지 모를 기품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아무래도 각 부도에 모셔있는 스님의 혼이 마치 이 연곡사에 살아 숨쉬고 계시면서 이 절을 지키고 계신것만 같았다. 연곡사에는 곳곳에 부도가 참 많았는데 지금 우리는 너무나 우리의 옛 문화 유산을 멀리하고 있는 것만 같다. 솔직히 요즘 사람들 중에서 이런 우리의 옛 건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이곳에 오기까지의 과정은 정말 힘들것이다. 다들 어딘가 가고자 할때 사찰을 쉽게 떠올리지는안을테니 말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이렇게 가까이 해보면 결국 그 소중함을 느끼게되고 그 아름다움을 알게 되는것 같다. 이번 답사가 그저 스쳐지나는 여행쯤으로, 그저 교수님이 내준 과제로 인한 답사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조금만 더 우리 건축에 관심을 가져보면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마음속에 담을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는 조금씩이라도 시간을 내서 가까운 사찰이라도 한군대씩 다녀와야겠다.연곡사를 떠나며,,{nameOfApplication=Show}
    독후감/창작| 2007.05.18| 12페이지| 1,000원| 조회(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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