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 You stick this one, you stick that one... you come in here, you stick this poison in me... (hitting him) The relationship between Don and Bob seems to be retied in a spiritual value through Bob`s act that he want to show the coin to Don and Don`s act that he take wounded Bob to hospital.DON: BobBOB: What?DON: Get up. Bob. I`m sorryBOB: What?DON: I`m sorryBOB: I fucked up.DON: No. You did real goodBOB: No.DON: Yeah. You did real good.BOB: Thank you.DON: That`s alrightBOB: I`m sorryDON: That`s alright3. Conclusion Material value precedes spiritual value in Materialism and capitalism. Materialism connect with individualism and selfishness, and it makes the feature like Teach.
미국문학과 문화 / 김은옥 교수님- 영화 ‘Forrest Gump'와 ’Crash' 비교?분석'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이라는 말을 누구나 한번쯤 들어 보았을 것이다. 미국을 흔히 ‘기회의 땅’이라고 묘사한다. 인종이나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가지고, 그 기회를 통해 꿈을 이루어 낼 수 있는 곳이 ‘아메리칸 드림’의 미국이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이런 아메리칸 드림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아이큐가 75인,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덜 떨어지는 포레스트 검프는 흘러가는 대로 ‘열심히’살다가(혹은 달리다가) 돈도, 명예도 모두 가지게 된다. ‘착한바보’의 성공과 지고지순한 사랑 때문에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영화 말미에 모두 눈물을 보이게 된다. 바보 포레스트가 이루어 낸 것이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다. ‘돈과 성공’이 포레스트의 꿈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말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물질적 성공’이라는 가치에 치중하고 있기 때문에 포레스트는 ‘아메리칸 드림’을 이뤄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는 말한다. ‘자, 봐, 미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아이큐가 75인 바보도 해냈어. 미국은 정말 기회의 땅이야’ 포레스트 검프는 흑인 친구(바버)도 끌어 안고, 에이즈가 걸린 히피 여자친구(제니)도 끌어안는다. 그러나 현실도 정말 그러한가? 영화 크래쉬는 미국의 현실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영화 크래쉬 안의 미국은 더 이상 포레스트 검프에서 그리고 있는 것처럼 ‘기회의 땅’이 아니다. 영화는 미국사회를 차가운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 영화 안에서 '인종'의 문제는 포레스트 검프에서처럼 쉽지 않다. 백인은 흑인을 두려워하고, 흑인 또한 백인에 대한 피해의식을 안고 있다. 같은 시대에, 같은 공간 안에 공존하지만 그들 사이엔 보이지 않는 벽이 있다. 영화의 첫 나래이션에 '접촉'을 꿈꾸어서 '충돌'을 일으킨다는 말이 나온다. 누군가는 이 영화를 '화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화해가 일어나지 않는다. 모두 금속이나 유리로 된 것 안에 갇혀있고, 그것을 통해 사람들을 본다. 금속이나 유리는 자신을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서로의 '이해'를 단절시킬 뿐이다. 이것이 지금 미국사회가 직면한 현실인 것 같다. 8개의 충돌 안에서 화해를 보여주고 있는 작은 부분이 있긴 하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영화 크래쉬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현실 그 자체인 것 같다.19세기에 미국은 노예문제로 인한 남북전쟁 등 서로 다른 것에 대한 완전한 분리를 경험했다. 21세기로 넘어오면서 흑인과 백인, 명분상으로는 모두 같은 권리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지금의 미국사회는 19세기부터 경험했던 과거의 청산과 더불어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과 후유증도 함께 경험하는 모순된 시대이다.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말로 ‘기회의 땅’으로 묘사되지만 현실은 그렇게 따뜻하지 않다. 포레스트 검프에 나타나는 이상적인 미국과, 크래쉬에 나타나는 차별이 존재하는 미국. 현실과 가까운 쪽은 크래쉬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또 완전한 미국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상적인 ‘기회의 땅’의 미국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허상이지만, 영화 크래쉬의 말미에서 흑인 여자를 추행하던 백인 경찰관마저 위태로운 생명앞에서 자신의 생명을 던질 수 있게 되었듯 생명에 대한 존중과 포용의 정신으로 언젠가는 현실로 만들 수 있는 '꿈'일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충돌’은 ‘접촉’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발자크의 리얼리즘19세기의 프랑스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로 전제정권과 민주주의 중산층 등 무수한 일들이 얽혀있는 혼란의 시대였다. 오노레 드 발자크는 그런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소설가였다. 또한 발자크는 리얼리즘의 대명사처럼 인식되는 인물이다. 발자크의 리얼리즘은 발자크적 리얼리티라고 칭할 만큼 다른 리얼리티즘과는 다른 면면들을 가지고 있다. 리얼리즘에 관한 논의에서 그의 리얼리즘은 한 측면만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리얼리즘의 모든 국면과 관련을 지닌 작가로 언급되고 있다.발자크는 ‘예술 창작 행위를 역사 해석 또는 나아가 역사철학의 성질을 띠는 것으로 간주’하고 ‘현재를 역사로, 역사에서 결과해 나오는 과정의 어떤 것으로 간주’한 리얼리즘의 건설자였다. 그는 당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가 과거에 유례를 갖지 않은 새로운 사회하는 것을 인식했을 뿐만 아니라 이 사회의 특징이 경제에 기반을 두고 건축된 구조라는 점을 직감했다. 따라서 그는 이 사회의 작용의 양태를 고찰했을 뿐더러 그 작용의 원동력을 발견하는 데 큰 비중을 두었다. 그가 낭만주의 문학에서 절대적 위치에 있던 상상력을 끌어내리고 그 자리에 문학의 기록성을 올려놓은 것도 현실 역사의 기록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회의 모든 계층, 모든 사물을 묘사하려는 야심에서 생활의 모든 국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고 그것을 분석하려고 했다. 그는 한 인물에 접근하는 경우에도 그에게 직핍하지 않고 동심원을 그리면서 이모저모를 여색인 뒤에 사람의 특징을 드러내는 방법을 쓰고 있다. 동시대의 작가인 스탕달이 인물의 심리에 취중했던 것과는 달리 발자크가 환경의 묘사, 사물 자체에 관심을 많이 기울인 것도 그의 특징적인 방법을 보여 주는 사실이다. 그 사물들에 대한 풍성한 묘사 속에서 그는 인간과 그를 둘러싼 환경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서로 반작용하는 역동적 구조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려고 한 것이다. 그의 인물은 19세기 소설 주인공의 특색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것으로 인식된다. 사회의 부정성을 대변하는 듯한 인물의 만화경이 그의 작품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현실의 모순이 그러한 인물을 배태한다는 작가의 인식에서 연유한다. 도덕적 인간이라든지 순결한 정신은 사악한 자본주의 사회의 삶의 양태를 보여주는 데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발자크에게서 인물은 그 개인의 심리학적 측면 때문에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가 속한 집단, 계급의 대표자로서 중요한 것이다. 서로 충동하는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이전투구에서 비로소 자본주의의 역동적인 구조는 탐색될 수 있었던 것이고 개개 인물의 심층의식도 탐구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와 마거릿 대처의 시장경제 비교 분석2008년 2월 새로운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성장이라는 큰 과제를 우선 해결하겠다고 이야기하며 ‘시장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거릿 대처는 전 영국 수상으로 수상직을 세 차례 역임하면서 영국병에 찌든 영국을 시장경제국가로 살려냈다. 마거릿 대처의 정책은 ‘대처리즘’이라고 불릴 만큼 성공적이었다. 우리가 지금 마거릿 대처에게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지 또 배우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지 마거릿 대처와 이명박 정부의 시장경제를 비교, 분석 해보려한다.마거릿 대처는 ‘철의 여인’으로 불리었다. 그녀는 영국을 시장경제국가로 살려냈을 뿐만 아니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냉전을 종식시키고 자유세계를 건설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처는 구조개혁을 통해 기업을 살림으로써 사회주의정책에 물들어 온 영국경제를 자유시장경제로 바꾸어 놓는데 성공했다. 대처는 “성공의 비밀은 꼭 한 단어- 기업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대처리즘의 원리, 실제, 정책은 대처가 ‘인촌기념강연’에서 손수 설명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마거릿 대처 수상은 믿음의 뿌리에 자유가 도덕의 본질이라는 확신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가 통화 안정을 이룩해야 하며 기업 활동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유재산제도를 확대해야 하며, 법을 준수해야 하고 세계 평화를 보장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마지막으로 영국 헌법을 유지해야 한다고 했다.이런 이념에 뿌리를 둔 마거릿 대처의 구조개혁과 노동개혁은 큰 효과를 이루었다. 마거릿 대처의 노동개혁으로 영국은 노동시장 유연성이 미국만큼 높은 대표적인 시장경제 국가가 되었다. 대처의 이런 개혁 후 영국은 OECD 국가 중 G4가 되었고, 선진국 중에서는 미국 다음으로 고성장, 저실업을 이루었다. OECD는 이에 회원국에게 대처의 구조개혁을 권장하기도 했다.대처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작은 정부, 시장경제 활성화, 규제 완화와 철폐, 노동시장 유연성 등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표방하듯 취임과 함께 747공약 (연평균 7% 성장, 10년 후 1인 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강국 진입)을 실현해 한국사회를 선진경제사회로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그 747공약을 위해서 각종 규제철폐를 통한 기업 활동의 활성화와 공기업 민영화, 감세, 법질서 확립과 노조의 불법행동을 엄단하겠다고 역설했다.그러나 현 정부는 큰 위기상황에 닥쳐있다.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 100일 만에 지지율은 20%밑으로 하락했고, 소고기 협상의 문제로 정권퇴진이란 구호까지 나오고 있다. 이는 국민들에게 반시장경제적인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 여기의 문제는 이명박 정부가 대처리즘의 표면적인 측면만을 받아들였다는 데에 있다. 영국병을 치유하겠다고 자처한 대처조차도 보건의료, 교육, 주택 등 기본적인 사회복지구조는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영국의 노동자나 서민계층이 대처시대의 고통을 참아낼 수 있었던 것은 적절한 사회복지제도와 직업교육 등 사회 안정망이 제대로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 이명박 정부는 어떠한가?이명박 정부는 서민들과 사회적 약자의 일방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재벌위주의 경제성장정책에만 매달리고 있다. 이대통령은 재계의 CEO들과는 핫라인을 설치해 언제든지 의견을 듣겠다고 이야기해놓고, 노동계에는 "불법파업을 없애겠다”, “자부심이 없는 사람들이나 스스로를 노동자라 부르고 노동조합을 만든다", “(교수노조는)프라이드도 없는 한심한 집단”, “외국기업도 강성노조 때문에 한국 투자를 기피하고 있다. 7% 경제성장을 내세웠는데 이런 노사환경에서 가능할지 의문이다”라면서 합법적 노동운동조차 반사회적 집단으로 매도했다. 현 정부의 이러한 기만적인 태도는 강부자, 고소영으로 회자되는 청와대 참모와 장차관들의 부동산 투기와 논문표절, 광우병파동으로 드러났고 결국 국민들의 대대적인 저항을 받고 있는 것이다.지금은 무한경쟁 시대다. 패러다임이 ‘경쟁’인 시대에 개혁의 방향은 ‘시장경제 활성화’뿐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시장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을 살려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기업의 성장뿐만 아니라 서민경제 안정을 위한 구체적인 경제정책과 사회안전망 구축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당신의 도시는 안전한가?- 주제 사라마구, 어느 날 갑자기 단 한사람만 제외하고 세상 사람들의 눈이 멀어버린다면?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이런 가상의 설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나 그의 글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추악한 인간의 본성은 나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짧은 분량의 글이 아님에도 문단 구분이 없고 대사에 따옴표나 물음표가 없이 쉼표와 마침표만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은 내 눈을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입의 움직임으로 보건대, 어떤 말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마디가 아니라 세 마디다. 누가 마침내 문을 열었을 때, 그 말은 확인된다. 눈이 안 보여.” 8p제일 처음 눈이 먼 남자가 나오는 부분이다. 그 남자는 실명상태를 우유의 바다에 빠진 것 같다고 표현한다. 우유의 바다. 책 속에서 가정된 실명의 상태는 어둠 속에 잠기는 상태가 아니라 하얀, 우윳빛 바다에 빠진 것과 같은 백색실명 상태이다. 백색실명 상태를 보이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정부는 실명 상태의 사람들과 보균자들을 격리수용한다. 처음엔 음식과 물이 모두 정상적으로 배급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모든 것은 힘들어지고 점점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강한 힘을 가진 눈먼 집단이 나온다. 그 힘을 가진 집단은 ‘눈먼깡패’들이라고 나오는데 총을 가지고 음식을 배급하고, 여자들을 강간한다.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배설물과 온갖 오물들이 널린 곳에서도 힘이 센 집단이 약한 집단을 착취하는 장면은 인간의 추악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은 힘으로 위계를 만들고 폭력을 행사한다. 이렇게 추한 인간의 모습들을 작가는 소름끼치게 묘사한다. 여기서 단 하나의 희망은 눈이 보이는 ‘의사의 아내’이다. 그녀는 극한 상황 속에서 ‘총’보다 ‘힘’보다 더 큰 ‘보이는’ 특권을 가졌지만 이를 눈먼깡패들처럼 사용하지 않는다. 그녀는 사람들을 이끌고 돌보며 희생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남편과 섹스 한 여자를 안아주기까지 한다. 그 순간의 미움 보다는 여자에 대한 연민이 더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작가가 그린 모든 사람들이 눈이 먼 세상은 눈이 멈과 동시에 인간임을 잊어버린 것처럼 이기주의가 만연하고 폭력이 난무했다. 소설에서 그려진 도시의 모습은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페스트가 창궐한 도시보다도 어쩌면 더욱 더 무서운 모습일 것이다. 그 어떠한 질병보다도 우리 자신을 잃는 것이 가장 나쁜 결과를 보여준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카뮈는 절망에 습관되어 버리는 것이 절망보다 더 나쁜 것이라고 얘기했다. 작가는 인간의 극한의 모습을 이렇게 처절하고 비참하고 더럽게 보여주면서도 의사의 아내를 통해 긍적적인 부분, 희망적인 부분을 남겨놓았다.“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46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