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피아노부 TTP- 제 17회 정기 연주회 -감상일 : 2008년 3월 14일 늦은 7시감상 장소 : 고려대학교 인촌기념관연주회 구성 : TTP(동아리명) 구성원들이 한명씩 나와서 각자 자신의 개성 있는 곡을 피아노로 연주한다.연주자 : TTP 회원 (Talk Through Piano)연주형태 : 피아노 독주연주회 특징 : 피아노를 좋아하는 아마추어들의 모임으로 일반 연주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젊은이들의 열정을 쉽게 느낄 수 있다.연주곡 : F.Chopin - Grandes Valses Brillant, OP.34 No.3 in F Major연주자 : 간호학과 07 정 지은연주곡 해설 : 이 곡의 별칭은 ‘고양이 왈츠’이다. 이렇게 불리게 된 데에는, 쇼팽이 피아노 건반 위에 뛰어 오른 고양이가 자신이 낸 피아노 소리에 놀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 힌트를 얻어 썼다는 일화가 있다. 왈츠는 18C 말, 독일에서 인기 있던 춤곡으로 쇼팽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 장르이다. 쇼팽은 1827년 바르샤바에서 최초의 왈츠를 작곡하기 시작해서 죽기 한 해 전까지 20곡 이상의 왈츠를 작곡했는데, 실제의 무용을 고도로 양식화한 작품임과 동시에 왈츠의 형식을 빌린 서정시 적인 작품이 많다. ‘Grandes Valses Brillant’는 작품번호 34의 3곡을 가리키며 1838년에 출판되었다.감상평 : 공연을 여는 처음 연주곡인 만큼 발랄하고 신선한 곡으로 시작을 하지 않았나 싶었다.곡의 별명이 ‘고양이 왈츠’라는 사실을 듣는 순간 내 머리속에는 어린 시절 즐겨 보았던 만화 영화인 ‘톰과 제리’에서 고양이인 ‘톰’이 쥐인 ‘제리’를 잡기위해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보는 모습이 떠올랐다. 또한 이런 곡인만큼 두꺼운 정장을 입고 넥타이를 한 남성 연주자가 연주를 하기보다, 발랄하고 가벼운 느낌의 드레스를 입은 여성 연주자가 연주를 해 주었기 때문에 곡의 느낌이 더욱 살아 있었던 것 같았다.프랑스의 작곡가인 루이 엑토르 베를리오즈(Louis HectorBerlioz)는 쇼은 잘 살려 주었으나 격렬한 부분에서 그 느낌을 잘 되살려 주지 못한 점이 약간 아쉬웠다.연주곡 : F.Chopin - Polonaise, Op. 53 inMajor 'Heroique'연주자 : 일어일문학과 07 김 웅기연주곡 해설 : 쇼팽의 폴로네이즈는 크게 ‘웅대한 리듬과 예전의 화려했던 시절을 떠올리는 곡’ 과 ‘러시아의 압제하에 있었던 역경과 고난의 시대의 폴란드를 묘사한 우울한 곡’으로 나눌 수 있다. 1842년에 작곡된 ‘영웅’ 폴로네이즈는 전자를 대표하는 최고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클레젠스키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것은 쇼팽의 작품 중 정점을 이루는 것으로 가장 장대하고 완벽한 양식을 갖추고 있다.” 이 작품에서 우리에게 감명을 주는 것은 장대한 구상과 고조된 상념 그리고 강렬한 영감이다.※polonaise : 무용은 16세기 말 궁정의 행렬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며 여러 조(組)의 남녀가 나란히 줄을 지어 나아가면서 춤을 춘다. 원래는 기사들의 춤이었으나 뒤에 여성 파트너가 끼이게 되었다. 장엄하고 격식 있는 무용으로 궁정이나 귀족들의 저택에서 무도회가 시작될 때에 추었다. 18세기에는 무용에서 독립된 기악곡형식이 나타났으며 그것은 보통 속도의 3박자로서 여성(여린박)마침을 지닌 프레이즈 구조, 짧은 리듬 동기의 반복이 특징이다. 1800년대에는 폴란드의 J.코즐로프스키와 M.K.오진스키의 피아노곡에서 보기와 같은 리듬이 정형화되어 19세기 폴로네즈의 특징을 이루었다. 폴로네즈는 베토벤, 슈베르트를 거쳐 쇼팽의 피아노곡에서 발전의 정점에 이르렀는데 그것들은 고도로 세련된 예술성과 함께 폴란드의 민족성을 반영하는 웅장한 표현으로서 널리 알려졌다.감상평 : 폴로네이즈의 기본리듬이 전개되며, 마치 영웅이 개선을 하는 모습을 표현한 듯 했다. 마치 하늘에서 색종이와 꽃잎이 날리고 길가에는 시민들이 개선 장군을 환영하러 나와있는 모습이랄까. 초반부에는 화려한 시절을 나타내 주다시피 곡은 피아노 저음 건반 특유의 웅장함이 느껴졌고, 중반부에는 는 그 선물을 더욱더 값지게 해 주었다. 더불어 개인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평소에 좋아했던 곡들을 직접 연주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었다.연주곡 : Ryuichi Sakamoto - 'Merry Christmas, Mr. Lawrence'연주자 : 생명과학부 07 정 선진&건국대학교 음악교육과 첼로전공 04 노 은비연주곡 해설 : 일본 음악의 거장 류이치 사카모토가 1983년에 작곡한 곡이다. ‘Rain’ 과 더불어 사카모토의 가장 유명한 곡 중 하나이며, 이 곡은 영화 ‘Merry Christmas Mr. Lawrence’ 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곡이기도 하다. 초반부는 조용하게 밀려왔다 되돌아가는 물결처럼 진행되다가 후반부에서는 웅장하면서 긴박한 음색이 우리의 귀를 사로잡는다.감상평 :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연주회 최초의 피아노 & 첼로 합주라는 데에 있었다. 이 곡에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Merry Christmas Mr Lawrance’ 라는 영화를 직접 관람하지는 못하였으나 곡 만큼은 TV, 라디오 등 대중 매체를 통해 익히 들어와서 피아노 음을 악보가 아닌 글로써 표현 할 수 있다면 간단하게 표현을 할 수 있을 만큼 익숙한 곡이었다.초반부는 부드럽고 잔잔하다가, 후반부에는 급격한 분위기로 바뀌는 이 곡은 전체적으로 단순한 멜로디가 반복되는 형태였다. 특히 이 곡에 있어 첼로의 선율은 가히 나의 귀를 압도 할만 했다. 첼로가 주는 느낌은 뭐랄까, 잔잔한 피아노 선율의 바다에 떠다니는 한척의 우렁찬 배 고동의 느낌이었다.그리고 아마추어 공연에 흔히 나타나는 조화의 어긋남(가끔 각 악기의 음이 따로 들리는 느낌)이 이번 연주회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연습 양이 많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연주곡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을 한껏 선사해준 멋있는 합주였다.연주곡 : F.Schubert - 4 Impromptus, Op. 90(D 899) No. 2 inMajor연주자 : 영어교육과 07 유 나라연주곡 해설 : 슈베르트는 100여 E major 'La Campanella'연주자 : 국어교육과 07 김 선영연주곡 해설 : ‘라 캄파넬라’ 는 이탈리아어로 ‘종소리’ 라는 의미로 원곡은 파가니니가 작곡한 바이올린 곡이었다. 파가니니는 ‘악마의 바이올린’ 이라고 불릴만큼 기교적으로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했던 바이올리니스트였다.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하는 리스트는 파가니니의 연습곡들을 피아노로 편곡하였는데, ‘라 캄파넬라’는 이 중 세 번째 곡으로 파가니니 연습곡 중 유명하고 대중적으로 친숙한 곡이다. 드라마 , 에 등장한 바 있다. 난곡으로도 유명하며 작곡됐을 당시 슈만이 “이 곡은 오직 리스트만이 칠 수 있다.” 라고 말 했을 만큼 고 난이도의 화려한 테크닉을 자랑한다.감상평 : 평소 다른 사람들이 하지 않는 특이한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연주곡 해설의 ‘난곡(難哭)’ 이란 단어를 보는 순간 무언가 기대 되었다. 하지만 ‘라 캄파넬라’ 라는 곡은 ‘종소리’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본인이 느끼기에 종소리는 교회나 성당에서 멀리 은은하게 퍼지는 것이기 때문에, 연주를 듣기 전까지는 도대체 종소리를 단순하게 피아노로 나타낸 것뿐인 곡이 무엇이 그렇게 연주하기 어려운지 의아했다.그렇게 연주가 시작되었다. ‘!!!!!’ 나의 머릿속을 가득채운 느낌이었다. 내가 생각한 성당에서 은은히 울려 퍼지는 종소리가 아니었다. 이런 비유는 적절하지 않지만 마치 개의 목걸이에 달아놓은 자그마한 종이 개가 움직임에 따라 딸랑거리는 소리를 나타낸 것 같았다. 그리고 피아노 왼쪽 건반은 느린 듯 하면서도 오른쪽 건반은 정말 빠르게 연주되고 있는 광경이 눈앞에서 펼쳐진 것이었다. 그리고 종소리를 나타낸 멜로디는 정말 강렬하게 다가왔다.그리고 이 곡의 원작자가 바이올리니스트 였던 점을 감안했을 때 바이올린으로 이곡을 연주해도 색다른 맛이 있을 것 같았다.연주곡 : S. Bortkiewicz - Capriccio, Op. 3 No. 1 inminor.연주자 : 서울대학교 피아노 동아리 SnuPia 0inminor.연주자 : 의예과 07 이 준용연주곡 해설 :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가 모스크바 음악원을 졸업한 이듬해인 1892년에 ‘환상소품집’ 이라는 이름으로 발표된 Op. 3의 5곡 중 제 2곡으로, 1892년 9월 26일에 모스크바에서 작곡가 자신이 초연한 이래 각지에서 연주되었다. 이 곡은 또한 작곡가로서의 라흐마니노프의 이름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주부는단조이며, 첫머리에 장중한 악상이 인상적이다. 라흐마니노프는 크레믈린의 종소리에서 영감을 얻어 이 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중간부는 빠르고 격렬한 셋잇단음표의 꾸밈 속에서 E장조의 선율이 노래된다. 마지막에 거친 화음연타가 되어서 하강하면 처음의 종소리를 부각시키며 주부로 돌아오게 되는데, 제 1부의 악상이 중후하게 화음을 가미하면서 강대한 음향효과를 꾸며낸다.감상평 : 고등학교 시절 주말 이른 아침 친구의 집에서, 낡은 피아노 한 대에 베토벤과 조지 윈스턴을 논하며 서로 자기가 잘 연주하는 곡이 최고라며 다투던 두 친구가 있었다. 2년이 지난 어느 봄날 한 친구는 무대에 올라가 연주를 하게 되었고 다른 친구는 관객석에서 그 연주를 설레는 마음을 안고 뿌듯하게 바라보고 있었다.위는 필자의 이야기이다.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친구인 이준용 학우와 필자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피아노에 관심이 많았고 각자의 취향을 가지고 연주를 해 온 터라 연주회의 어느 연주보다 관심을 가지고 듣게 되었다.이 곡은 연주회 초반에 들었던 ‘Liszt의 La Campanella’ 와 같은 사물을 음악으로 묘사하고 있다. 바로 ‘종소리’ 이다. ‘La Campanella’가 명랑하고 밝은 종소리를 묘사하였다면 라흐마니노프의 곡은 약간은 어둡고, 중후한 종소리를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전반적으로는 초반부에는 잔잔한 종소리가 부각되다가 중반부를 넘어서면서 거친 화음연타로 이어지는데 이 멜로디를 듣는 순간 긴장감과 공포감이 다른 감정들을 압도하였다. 또한 번개가 치듯 피아노 건반을 연신 두들겨 대는 연주자의 손놀림 또
1. 왜 윤이상인가?2. 윤이상은 누구인가① - 윤이상의 연대기 요약② - 윤이상의 자아관③ - 문화적 이중인 으로서의 표본적인 삶④ - 부인이 바라본 윤이상3. 윤이상의 음악① - 윤이상의 음악관에 대한 기존 연구② - 윤이상 음악의 특징③ - 윤이상의 작품세계④ - 윤이상의 작품4. 윤이상 탐구 후기1. 왜 윤이상인가?처음 윤이상을 접한 기회는 대학 2학년 2학기 ‘한국 양악의 이해’ 라는 과목을 통해서였다. 교수님의 수업을 통해 윤이상이란 사람에 대해서 듣게 되었는데, 그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도 흥미로웠지만, 교수님께 얄팍하게 들은 그의 특이한 작품세계가 더욱더 끌렸다.소박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인터넷 웹페이지에서 처음으로 찾아 들은 곡은 ‘DOUBLE CONCERTO’ 이라는 곡이었는데, 아직 현대음악에 익숙지 않았던 나에게 이 음악은 한마디로 ‘난장판’ 이었다. 하지만 ‘난장판’이란 이미지는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이미지여서 친숙한 느낌이 들기는 하였다. 그 작품은 분명히 나에게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고, 그 말은 강하고 독특한 표현력을 지니고 있었다.나는 그 실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윤이상의 음악에 다가가는 길은 베토벤, 쇼팽, 라흐마니노프, 슈베르트 등 일반적 작곡가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어디에도 ‘윤이상의 음악은 이렇게 감상하라’ 라는 말은 나와 있지 않았고 작품에 대한 해설도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음악 취향이 아직도 18세기 이전의 고전파나 낭만파에 쏠려 있고, 일명 현대음악으로 통칭되는 현대파 음악에 그동안 인색했던 것도 그 이유일 것이다.하지만 현대 음악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있어서 윤이상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더해만 갔고 스스로 조금이라도 더 윤이상에 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펜을 들어보았다.2. 윤이상은 누구인가?① 윤이상의 연대기1917년 9월 17일 - 경상남도 산청군 덕산면에서 선비 출신의 부친 윤기현과 농가 출신의 모친 김순달 사이에서 장남으로 출생.1948 ~ 52년 - 통영여자고등학교, 부산사 처분, 이어 1968년 12월 5일에는 제3심에서 10년형으로 다시 감형.1968년 - 67년 10월 교도소에서 작곡활동을 허락 받은 윤이상은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1967/68)을 2월 5일 완성시킴. 건강이 악화되어 병원으로 이송된 그는 거기서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률(律)』과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영상』을 창작함. 서울에서 석방되기 전인 1968년 5월에 서독 함부르크 자유예술원 회원이 됨1969년 - 2월23일 서독 뉘른베르크 오페라극장에서 그의 이중오페라 『꿈』(『류퉁의 꿈』『나비의 미망인』)이 공연됨. 3월 30일 동료 작곡가, 음악가들의 국제적인 항의와 독일 정부의 조력 등에 힘입어 석방되어 서베를린으로 돌아옴. 6월23일 킬 문화상 수상1972년 - 서베를린 음악대학의 명예교수가 됨. 8월1일 뮌헨올림픽 문화행사의 일환으로 위촉받은 오페라 『심청』이 볼프강 자발리슈의 지휘, 귄터 레너트의 연출로 초연됨1977 ~ 87년 - 베를린 예술대학의 정교수로 재직함. 루이제 린저와의 대담 『상처받은 용』출판1981년 - 5월8일 퀼른에서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가 서부독일 라디오방송(WDR) 교향악단의 연주로 초연됨1982년 - 8월 북한에서 『광주여 영원히!』가 연주됨. 그 후 북한에서는 해마다 정기적으로 윤이상음악제가 개최됨. 9월 제 7회 대한민국음악제에서 이틀간 ‘윤이상 작곡의 밤' 개최. 9월 24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관현악의 밤에서는 프란시스 트라비스의 지휘와 KBS교향악단과의 협연으로 『서주와 추상』『무악』『예악』『오보에와 하프, 소관현악을 위한 이중협주곡 : 견우와 직녀이야기』등을 우어줄라 홀리거와 하인츠 홀리거 등이 『로양』『피리』『오브에와 하프, 비올라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함. 이후 남한에서 윤이상의 작품이 비정기적으로 연주됨.1984년 - 5월15일 『교향곡1번』(1982~83)이 베를린 필하모니 창단 100주년 기념으로 동악단(지휘, 라인하르트페터스)에 의해 초연됨. 12월 5일 평양에서 윤이상상. 11월 3일 베를린에서 영면)② 윤이상의 자아관한 작곡가의 자아관은 음악관을 결정짓고, 음악관은 자신과 사회의 관계를 설정하는 세계관의 물음으로 이어진다. 왜냐하면 한 개인으로서의 작곡가가 생존하기 위해 사회에 대처하는 방식이 스스로에게는 창작의 당위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이는 그의 문화적 위치에 따라 변모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윤이상의 진술과 그에 대한 문헌을 종합해볼 때, 그는 한 편으로는 자신을 동아시아적 세계관을 소유한 자로, 다른 한 편으로는 한민족 또는 한국 민중의 한 지체라고 이해하였다. 즉 그는 자신을 동아시아 전통과 한민족의 역사로부터 단절하여 보지 않았다.윤이상의 민족의식은 20세기 한국사회의 특수상황 속에서 형성되었다. 그는 일제 식민에 저항운동을 하다가 투옥되었는가 하면, 광복을 맞이한 해인 1945년 9월부터는 ‘통영문화협회’의 창립회원으로서 민족문화 재건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가 김순남, 이건우와 함께 해방공간시기의 민족음악 운동에 참여한 기록은 없으나, 1950년대 서울에서 작곡활동을 할 당시에 쓴 다음의 글에서 민족의식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그 시대의 사회조직의 일원인 예술가는 그 민중에 대해 시대계발의 책임을 지고 있다. 무릇 예술은 어느 시대고 간에 그 시대의 산물이요, 민중은 자기세대의 감수력과 사고력을 타고나는 것인데, 민중에게 어느 한 시대의 예술을 편식시키는 것은 마치 흐르는 물을 한 군데 고이게 하는 것과 같이 교착과 부패를 가져 올 것이 분명하다.’위의 글에서는 서양음악의 급물살 속에서 민중이 보유한 정신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작곡가의 고민이 엿보이는데, 그에게 민족의식은 늘 민중에 대한 예술가로서의 윤리관과 결부되어 있었다. 즉 윤이상은 전통과 현대의 문제를 한국 시기에 의식하고 있었고, 이 문제의식은 유럽 시기 작곡양식의 발전과 맞물리게 된다. 이 발전이 두 문화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그러한 문제의식은 동아시아 전통과 서양현대를 접목하는 의무감으로 작용에 머무르지 못하게 했다. 그는 한국 땅을 떠나고, ‘동백림간첩단사건’에 연루되어 남한 독재정부에 의해 납치된다. 국제적 구명운동으로 독일로 추방된 후, 윤이상의 이름에는 조국을 등진 ‘정치적 망명 작곡가’라는 낙인이 찍히고 만다. 이어 독일 국적을 취득하고, 1980년대부터는 북한을 왕래한다. 통영과 베를린 사이에 난 창작의 갈래 길은 한국 전통문화와 서양의 근현대, 공서 사이에 난 곳일 뿐 아니라 남북 사이에 난 길이기도 했다. 분단독일의 지리적 특수성이 윤이상의 북한방문을 가능하게 했고, 그것이 향후 그의 창작행로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 갈래 길은 결과적으로 한민족에 대한 윤이상의 위치와 한국사회의 문화적 정체성을 변화시켰다. 윤이상은 그 후 베를린 예술대학의 교수로 있다가, 오랜 투병 끝에 1995년, 39년 동안의 기나긴 이국에서의 생을 마감했다. 인생의 절반인 39년 동안을 한국에서, 39년 동안을 유럽에서 살았으니, 그것은 바로 문화적 이중인의 표본적인 삶이었다.)④ 부인이 바라본 윤이상- 한편의 시를 보고 부인이 바라본 윤이상은 어떠하였는지 살펴보았다.- 바다에서 당신을 찾으며 -이수자 (윤이상씨의 배우자)아들은 엄마의 마음을 위로한다고오늘도 손잡고 바다로 나왔습니다.신발 벗고 흰 모래를 밟으며당신을 찾아 나왔습니다.가는 곳마다 지구의 사대양을바다에서 바다로당신의 고향을 찾아다니던 당신미국의 서쪽 남단의 이 바다에도찾아 왔습니다.황혼에 타는 하늘에서끝없이 깊고 푸른 하늘에서힘차게 나는 흰 갈매기에서오늘도 당신을 찾아 나왔습니다.막막한 바다 위에서가고 또 오고 끝없이 밀어닥치는파도에서말없이 견디어 온몸으로받아 안고 있는 바위에서당신을 봤습니다.그러나 당신을 키워준당신의 바다에는 아직도 가보지 못했습니다.내 그 바다에 가는 날흰 모래 밟으며당신의 발자국 찾겠습니다.파도 철썩이는 바위 위에서당신의 음악도 듣겠습니다.1996년 5월미국 LA의 남단에서)- 이 시는 작곡가 윤이상 씨가 작고 한 후, 그의 부인인 이수자 여사가 그를 위해 지은 사이를 치열하게 살다 간 윤이상의 정체에 대한 문제는 어느 쪽에 국한 되어서는 안 되며 윤이상 자체에 접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와 같은 관점을 가진 슈미트(Ch.-M. Schmidt))의 경우, 윤이상의 실상을 가장 근접하게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윤이상의 작품이 “고향에서 얻은 음악적 경험과 유럽의 20세기 음악에서 얻은 그것을 고유한 개인양식으로 제한하며 결합하였다.”고 봄으로써, 단순한 동서융화와는 다른 견해를 보이기 때문이다.② 윤이상 음악의 특징윤이상은 5음계를 조금 넘어서는 노래로서 간단한 장식음을 섞어서 나름대로의 한국 풍을 의도한 음악으로 보인다. 반주는 음계를 부지런히 왔다 갔다 하는 방식으로 화성을 만든다. 그는 다른 음악들도 작곡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는 유럽에 건너간 후 한국에서 쓴 모든 작품들을 파기한다.유럽에서 작곡된 윤이상의 음악은 대단히 많은 요소들을 혼합한 것이다. 그의 음악은 12음 기법처럼 모든 12음들을 한 번씩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뿐만 아니라 음향적으로 사고하는 "음향 돗자리"를 깔아 작곡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래픽 적으로 작곡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일정한 형식이나 이론적 방향 없이 작곡한 그의 음악은 "인상주의적"이라는 말과도 어울린다. 한편으로 그는 한국음악에 대한 연상 작용을 통해 작곡하기도 했다. 그의 한국음악 관련성은 한국음악의 조성이나 리듬 등 금방 알아챌 수 있는 방법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리고 이루어졌다. 이는 국악 중 민속악보다는 궁중음악과 관련된 부분에 의한 것이 대부분이다. 착상된 그의 한국음악관련성은 우선 쉽게 눈에 띄는 것으로는 한국의 악기의 음색을 서양악기로 옮기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오보에는 피리를, 하프는 가야금을, 플루트는 대금을, 바이올린은 해금을 대신하여 소리 내는 것이었다. 또한 작품에 한국적인 제목이나 음악형식을 사용하기도 했다. 윤이상 음악을 말할 때에 가장 많이 얘기되는 것이 기법이다. 이는 하나의 선율만 있는 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