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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넬슨만델라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현재의 남아공
    대통령 넬슨 만델라╺ 석방 후 1991년 아프리카 민족회의 의장으로 선출╺ 1990년부터 1993년까지 백인정부와 만델라측 간의 협상 끝에 아파르트헤이트는 해체되기 시작╺ 1994년 4월 27일 남아공의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아파르트헤이트는 완전 폐지됨╺진상공개를 통한 보복없는 과거 청산 작업을 위하여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을 실시╺ TRC의 활동으로 흑백 간의 갈등과 내란발생의 위기를 극복 ╺ 권력에 수반되는 폐해를 단호히 거부 (장기집권, 부패)비판의 목소리╺백인 정권과의 민주화 협상에서 기존 경제정책의 유지를 약속 ╺재무부와 광물에너지부도 백인정권에게 맡겨짐╺ 이런 시장경제틀을 유지함으로 백인 기업들은 과거와 같이 기업활동을 하고 기존의 주류사회를 유지 (드비어스)╺전 부인 위니 만델라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만델라는 백인들의 부당한 거래에 합의하고 대통령 시절 정책으로 인해 흑인들이 여전히 마이너에 머물고 있는 점을 강력히 비판인종분규 이후 현재의 남아공-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 : 백인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실행된 남아공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 -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 :완전한 변화, 탈바꿈 `정치` : 만델라에 이어 줄곧 흑인이 대통령으로 당선, 인적 물갈이가 급하게 되다 보니 비교적 젊은 나이에 중요직책에 배치 `경제` : 경제권은 여전히 백인이 쥐고 있음, 가속균형성장정책(ASGISA)과 흑인경제강화정책(BBE),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를 통해 흑인 중산층이 증가
    인문/어학| 2011.12.28| 16페이지| 1,000원| 조회(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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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넬슨 만델라에 대해서 그리고 아파르트헤이트 해체 이후 남아공의 모습
    넬슨 만델라, 그는 누구인가?-출생과 성장기만델라는 1918년 7월 18일, 동남부 이스턴케이프 주의 시골마음에서 마디바 부족의 추장 가문에서 13명의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마디바는 더욱 큰 부족 템부에 속한 소 부족인데 결국 만델라 가문은 템부 왕가의 한 지파인 셈이다. 템부족은 다시 대부족 코사족의 한 지파이기도 한데 코사족은 줄루속에 이은 남아공 2대 부족이다. 그래서 남아공에선 만델라를 존칭이자 애칭으로 마디바라고 부른다.만델라 아버지인 가들라 헨리 음파카니스와는 가축 소유권을 둘러싼 소송에 휘말려 법원의 소환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한 끝에 추장직을 박탈당했다. 이후 노동자로 전락한 뒤 사망했으며 만델라는 템부 추장의 후견으로 인근 지역에서 초등학교, 중고교 그리고 대학교육을 받았다.만델라는 인근 소도시 포트헤어에서 대학교 2학년 재학 중 학교당국에 반대하는 투쟁에 휘말린 뒤 퇴교 경고를 받고 방학을 맞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그 곳에서 결혼하라는 템부족 추장의 말을 따르지 않고 요하네스버그로 무작정 상경한다.-청년기와 민주화투쟁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요하네스버그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사환으로 일하며 명문 비트바테르스란트대학 법대에 입학하고 34세 때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이 과정에서 만델라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함께 일하는 흑인지식층과 교분을 트면서 백인정권의 흑인 차별정책에 눈을 떠 민주화투쟁을 시작한다. 26세인 1944년, 당시 민주화투쟁의 중심인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청년조직 ANC청년동맹의 창립 멤버로 가담한다.만델라가 ANC의 중심인물로 확고한 위상을 구축한 것은 1952년의 전국적 저항운동 때였다. 그는 당국의 차별적 조치에 맞서 전 국민이 궐기하는 저항운동의 동조자를 규합하는 책임을 맡아 전국을 돌며 치밀하게 지지자를 확보하여 수개월에 걸친 저항운동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 때문에 그는 당국에 체포된다. 이 저항운동으로 ANC는 소규모 결사조직에서 10만여 명의 회원을 지난 조직으로 발전한다.그러나 백인정권의 탄압은 더욱 체포 뒤 내란 혐의로 1964년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그는 유명한 최후진술에서, “나는 백인이 지배하는 사회, 흑인이 지배하는 사회와도 맞서 일생동안 투쟁해왔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조화롭고 평등한 기회를 누리며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상을 품고 있으며, 이를 위해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백인 재판부가 사형을 선고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고 훗날 회상한 바 있다.만델라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1964년 케이프타운 앞바다에 위치한 로벤 섬의 악명 높은 교도소에 수감되어, 466/64라는 수번을 부여 받았다. 이는 1964년에 로벤 섬에 수감된 466번째 죄수라는 뜻이다. 그는 바닥에 누우면 머리와 발끝이 각각 벽에 닿는 독방에서 복역했다. 그는 그곳에서 환갑을 지내는 등 18년의 투옥생활을 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만델라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는 항상 미소를 잃지 않으며 머리를 태양을 향해 똑바로 치켜들고 발을 내딛는다고 했다. 그것이 낙관론이라는 것이다. “인간성에 대한 나의 신념이 혹독한 시련을 겪는 어두운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나는 절망에 굴복하지 않으려 했고 굴복할 수도 없었다. 그것은 곧 패배와 죽음의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종신형으로 감옥에서 죽는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준비만 잘 한다면 언젠가는 감옥에서 나와 아프리카 대지를 두 발로 걸을 것이라는 낙관적인 사고를 했다. 열악했던 감옥 생활이 여러 번에 걸친 투쟁으로 점점 개선되고, 교도관과도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그곳은 마치 정치범들의 대학과 같은 느낌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만델라가 감옥 생활을 모범적으로 잘하고 오히려 투쟁의 노하우가 더 좋아지는 것을 우려해서인지, 정부에서는 교묘한 술책을 부리기도 했다. 수차례에 걸쳐 만델라에게 탈옥 제의를 하는 인물을 보낸 것이다. 만델라는 유혹을 느꼈으나 그것을 거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탈옥을 시킨 후 사살할 계획이었던 것이다.만델라는 감옥에서 채소밭을 가꾸었다. 묘목을 구해 나무도 었고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실용주의를 택했다. 1990년부터 1993년까지지 벌인 남아공 백인정부와 흑인대표인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만델라 간의 협상 끝에 아파르트헤이트는 급속히 해체되기 시작했고, 1994년 4월 27일 실시된 선거에서 아프리카 민족회의(ANC)는 62%를 득표하여 ANC의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는 1994년 5월 27일 남아프리카 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아파르트헤이트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만델라가 남아공 대통령이 되고 나서 부딪친 가장 큰 과제 중 하나는 과거사 정리 문제였다. 백인 정권 치하에서 벌어진 무자비한 인권탄압 행위는 흑인들에게 엄청난 분노를 안겨줬다.그러나 만델라는 진실과 화해위원회(TRC)를 설치해 이 문제를 원만히 풀어나갔다. 특히 이 위원회는 보복을 위한 과거사 조사가 아니라 진상규명으로 피해자에게는 명예회복을, 가해자에게는 참회의 기회를 주는 화해에 초점을 맞췄다. 이 같은 진상공개를 통한 보복 없는 과거 청산 작업은 아파르트헤이트반대 투쟁을 이끌었던 만델라가 대통령에 올라 단결과 화합을 강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TRC의 활동으로 남아공은 흑백 간의 갈등을 비록한 국가분열과 내란발생의 위기를 극복하고, 지난 94년 이후 흑인 정권이 10여 년 동안 정치, 사회적으로 비교적 안정을 유지할 수 있는 초석을 다졌다.만델라의 또 다른 위대한 점은 장기집권이나 부패 등 권력에 수반되는 폐해를 단호히 거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5년 동안의 대통령 임기를 마친 뒤 재임하지 않고 깔끔하게 타보 음베키로 하여금 뒤를 잇게 하고 물러났다. 권력을 놓지 않고 장기집권을 하다 불명예스럽게 쫓겨나거나 사망한 아프리카 지도자들의 사례에 견줘볼 때 만델라의 단임 결정은 칭송 받을 만하다.-비판의 목소리만델라 대통령 시절의 경제정책 등 국가지도자로서의 평은 그리 좋지 못하다. 만델라는 백인정권과의 민주화 협상에서 기존 경제정책의 유지를 약속했다. 재무부와 최대 기업 활동 분야를 관장하는 광물에너지부도 백인정권 당시인 시각도 있지만 모든 지도자가 좋은 면만 있을 순 없고 항상 칭찬만 받기는 힘들다. 그러나 오늘 날 넬슨 만델라는 인권운동가로서는 그 누구보다 많은 존경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인종분규 이후 현재의 남아공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는 전 국민의 16% 밖에 안 되는 백인이 자원 확보와 노동이윤 수취, 정치적 지배의 모든 면에서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백인과 흑인, 혼혈인, 인도인 등으로 나누어 차별한 남아공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이다. (1948년에 시작하여 1994년에 종식)-트랜스포메이션(transformation)남아프리카공화국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는 트랜스포메이션이다. 완전한 변화, 탈바꿈, 변신이라는 뜻과 함께 남아공에서 쓰이는 표현으로 기관, 조직의 민주화를 뜻한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뽑히고 흑인정부가 들어선 이후 남아공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모든 분야에서 변화를 겪고 있는데 이 모든 것을 트랜스포메이션으로 해석 할 수 있다.정치 분야의 경우 우선 대통령은 줄곧 흑인이 당선되고 있다. 만델라에 이어 타보 음베키, 제이콥 주마가 뒤를 잇고 있다. 이와 함께 부통령, 장관, 부장관, 국장 등 주요 직책에 흑인이 진출해 있는 등 오늘날 남아공 사회를 움직이는 엘리트 계층은 흑인들이다. 그러나 흑인정부가 출범한지 10여 년만에 급하게 인적 물갈이가 되다 보니 30대 등 비교적 젊은 나이에 중요 직책에 배치된 경우도 있다. 경험이 많고 실무가 밝은 것은 아무래도 비교적 오래 근무한 백인이라 젊은 흑인 밑에 나이 든 백인이 실무를 처리하는 모습도 간혹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백인들의 불만이 분출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현재 경찰의 과학수사 분양의 중요 직책이 공석인 이유가 현재로서의 적임자는 백인인데, 백인을 기용하지 않기 위해 공석으로 남겨두고 있다는 의견도 있다.경제 분야는 트렌스포메이션이 가장 느린 분야이다. 남아공의 경제권은 여전히 백인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세계 최대의 다이아몬드 기업 대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원하는 사람에게 사서 원하는 사람에게 판다’는 원칙에 따라 백인 농장주로부터 토지를 사서 현지 주민에게 분배하는 정책을 펴왔다. 그러나 이런 정책이 큰 효과를 보지 못하자 정부가 직접 나서 백인 농장을 유상 수용해 주민에게 분배하는 정책으로 전환하기도 했다.또 남아공 정부는 경제, 사회적으로 흑인을 배려하는 또 다른 정책으로 어퍼머티브액션(affirmative action)을 펼치고 있다. 과거 백인 정부의 흑인차별정책으로 불이익을 받은 흑인들에게 취업 등에 있어 백인들보다 우대해주는 정책이고,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에서 흑인 기업에게 우선 입찰을 해주는 정책도 여기에 포함된다. (앞서 말한 흑인경제강화정책은 남아공 기업들이 흑인들에게 지분의 일정규모를 제공하거나 고용인의 특정인원을 흑인으로 채용하는 정책을 말한다.)사회 분야에서 트랜스포메이션이 진행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도시나 주요 공공기관의 이름이다. 흑인정부는 토착 백인의 언어인 아프리칸스로 되어 있는 주요 도시 이름을 현지 흑인들의 고유어로 바꾸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국제공항은 O.R 탐보 국제공항으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이는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영국에서 남아공 흑인망명정부를 이끌었던 올리버 탐보를 기리 위해서다. 이와 함께 남아공의 수도 프리토리아도 츠와니로 개명을 추진하고 있다. 프리토리아는 백인 정치가 프리토리우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츠와니는 현지 부족의 추장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다만 이는 프리토리아가 이미 국제적으로 남아공의 수도로 많이 알려져 있고, 또한 토착 백인들의 수도 개명을 반대해 개명작업은 진전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떠오르는 관광산업남아공이 민주주의로 전환된 뒤 경제가 분야별로 발전하고 있지만 가장 큰 발전을 이룬 분야의 중의 하나는 관광산업이다. 남아공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외국인 방문객의 수가 1990년에는 200만 명에서 2009년에는 1000만 명을 넘어 약 20년간 5배이상 늘어났다. 관광산업이 발전하기 전 자원이 풍부한 있다.
    사회과학| 2011.10.31| 6페이지| 1,500원| 조회(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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