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麗末 三隱14세기 후반 약 50년 동안은 한국 한문학사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루는 시기였다. 그것은 여말에 수입 보급된 성리학이 당시 한국 유학에 뿐만 아니라 한문학에도 크게 영양한 바 있어, 새로운 문풍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이 이전의 한국에 있어서의 한문학은 곧 유학이요 따라서 유자는 곧 문인이어서 양자를 서로 떼어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이 여말에 이르러 성리학이 차츰 연구 보급되면서 차츰 양자를 나누어 구분하려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구분은 후일 조선시대에 성리학이 크게 강성하면서 엄격하게 되었지만, 이와 같은 경향이 시작된 하나의 과도기적시기가 곧 14세기 후반부터였고, 삼은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유학자요 한문학자였다.여말에 당시 몇몇 문인 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흥학운동이 있었다. 이 운동은 혼란과 암운 속의 고려왕조 마지막을 장식하고, 새 시대의 진폐를 약속하는 그런 생동적 거사였으니, 이는 주로 당시 성균관의 학관들에 의하여 전개 추진되었다. 그 핵심적 인물이 바로 삼은 즉, 목은 이색과 포은 정도전 및 도은 이숭인 그들이었다.이 운동은 아직 수입된지 나날이 얕아지던 성리학 연구를 한층 촉진시켜서 종래의 사장 위주였던 유학에서 벗어나, 성명 이기를 강론 탐구하는 새로운 유학으로 전환하여 학술과 유풍을 크게 일신하였다. 그러나 이들에게 있어서는 아직 사장학의 구습을 완전히 탈피하기에는 시기 상조였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관료 출신 문인 학자들이었기 때문에 각종 국가적 관찬의 제술 즉, 경세문장을 외면할 수 없었고 특히 외교상의 시문 수응에 필요했던 사장을 경시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경학과 아울러 사장학을 익히고 발전시키는 일도 함께 도모해야 했다. 다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사장을 하되 경학을 바탕으로 하는 사장으로서 이른 바 「재도지기」로서의 문장을 모색 지향했던 점이 그 특색으로 지적될 수 있으며, 곧 이것이 삼은으로 대표되는 여말 한문학의 하나의 큰 특미이었다 하겠다. 이러한 경향은 후일 조선 관학계를 지배했던 권沙逾白 해가 지니 모래밭 더욱 하얗고일락사유백雲移水更淸 구름 가니 물은 더욱 맑구나운이수갱청高人)弄明月 고인은 밝은 달을 희롱하고고인롱명월只欠紫鸞笙) 다만 자란생 없는 것이 흠이구나지흠자란생이 시는 한포에서 달을 감상하는 염흥방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물가에 서니 모래밭이 하얗게 펼쳐지고 저 멀리 구름이 흘러간다. 이제 해가 지고 달이 떴다. 밤이 되어 사위가 어두워지자 다른 것들은 어둠 속에 묻히고 말았으나, 모래밭은 달빛을 받아 더울 하얗게 느껴진다. 물결이 고요한 곳, 구름 그림자에 물빛이 어둡더니 구름이 옮겨 가매 달빛을 받아 물빛이 한층 맑아진 듯하다.시 속의 자아는 그 달빛 속에서 세상의 근심과 욕심을 잊은 듯 보인다. 자연과 하나가 된 모습이다. 그래서 시인은 그를 高人이라고 불렀다. 강가에 서서 세상을 잊고 자연과 하나되어 감정의 승화를 즐기는 그 모습은 신선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옛적 신선들은 자란생을 불었다고 하던가. 이런 밤에 자란생을 불게 되면 그야말로 완전한 신선의 모습을 담게 될텐데 그는 자란생이 없는 것이 아쉬웠다.洞庭晩靄 동정호의 저녁 노을一點君山)夕照紅 한 점 같은 군산에 석양빛 붉게 들자일점군산석조홍闊呑吳楚)歲無窮 오와 초를 거칠게 삼킬 듯이 기세가 무궁하고활탄오초세무궁長風)吹上黃昏月 긴 바람 불어오며 황혼의 달이 떠오르니장풍취상황혼월銀燭)紗籠)暗淡)中 은촛불이 뿌연 등롱 속에 있는 듯하네은촉사롱암담중이 시는 넓고 광활한 동정호의 기상을 선명하게 전해준다. 동정호는 말이 호수이지 사실 바다와 같다. 동정호 한 가운데 산처럼 솟은 섬에 저녁 노을이 진다. 그런 가운데 저녁 물결은 거침없이 출렁대며 호수 주변의 땅을 삼킬 것만 같고 그 기세는 끝이 없다.밤이 되자 먼 곳에서부터 큰 바람이 거침없이 불어온다. 때마침 떠오른 달은 마치 바람 때문에 불려 올라 온 것만 같다. 그러나 저녁 무렵 물안개가 불처럼 뿌옇게 보일 뿐이다. 하지만 뿌연 달빛은 동정호의 조망을 더욱 장엄하게 만들어 준다.책을 읽고 흥이 나서 이 시를 지었다는 말을화자의 모습은 마치 마른 나무 그루 같다고 느낀다.蠶婦 누에치는 아낙城中蠶婦多 성안에는 누에치는 아낙들 많고성중잠부다桑葉何其)肥 뽕잎은 어찌도 그렇게 잘 자랐는지상엽하기비雖云桑葉少 비록 뽕잎이 적다고 말하지만수운상엽소不見蠶苦飢 누에들 괴롭거나 굶주리는 것 보지 못했네부견잠고기蠶生桑葉足 누에가 나올 때는 뽕잎 충분하더니잠생상엽족蠶大桑葉稀 누에가 커지니 뽕잎도 드물어졌네잠대상엽희流汗走朝夕 아침저녁으로 땀 흘리며 분주하건만유한주조석非緣)身上衣 자신의 상의 때문이 아니라네비연신상의노동의 결과가 자신에게로 돌아오지 않는 현실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유교적 애민 의식을 보여주는 시다. 시인은 여인들의 뽕 따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성안에는 누에치는 집이 많아서 언제나 뽕잎이 부족하다고 말을 하지만 누에가 굶주리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것은 뽕잎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에를 키우는 여인들이 쉬지 않고 일을 하기 때문이다.누에가 커가면 뽕잎을 먹어치우는 속도나 양이 많아진다. 따라서 뽕잎은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러면 여인들은 하루 종일으로 쉬지 않고 땀 흘려야만 한다. 시인은 여인들의 힘든 일을 안타깝게 여긴다. 하지만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비단이지만 자기가 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이 시는 사회적 현실을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런 비판을 노동력 착취나 왕조의 봉건적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지배계급의 유교적 애민 사상의 한 표현이다. 시인은 당대 사회의 지도층으로서 유교적 관념을 수요하여 이의 실천을 힘썼던 사람이다. 따라서 그는 피지배층들의 삶을 안정시켜야 사회가 안정이 되고, 그래야만 정치 질서가 정상화되는 것으로 판단했을 것으로 생각된다.3. 圃隱 鄭夢周(1337~1392)고려 충숙왕 복위 6년에 태어나 조선 태조 1년에 세상을 떠난 고려말의 문신, 학자로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 본관은 영일(迎日), 시호는 문충(文忠)이다.정몽주는 호는 포은이었으나, 밭을 찾아 숨을 겨를은 없었주었다. 이 시는 앵두를 맛보면서, 그것을 매개로 하여 자신의 임금에 대한 충정과 은덕을 되짚어 감격하고 있다.多景樓贈季潭 다경루에서 계담에게欲展平生氣浩然) 평생에 호연지기 펴고자하면욕전평생기호연須來甘露寺樓前 모름지기 감로사 누각 앞에 오게나수래감로사누전甕城畵閣斜陽裏 옹성의 화각소리 석양 속에 들려오고옹성화각사양리瓜浦歸帆細雨邊 과포로 돌아가는 배는 가랑비가에 있구나과포귀범세우변古?)尙留梁歲月 옛 가마엔 아직도 양나라의 세월 머물러있고고확상류양세월高軒直壓楚山川 높은 마루 곧바로 초나라의 산천 압도하여고헌직압초산천登臨半日逢僧話 올라가 반나절동안 스님 만나 얘기하면등림반일봉승화忘却東韓路八千 우리나라 돌아가는 팔천리길 잊겠네망각동한로팔천이 시는 명나라에 사행으로 가서 지은 작품으로, 강소성 북쪽 고산 감로사에 있는 다경루에서 지었다. 이 시는 다경루 주변의 장관을 묘사한 시로, 이 다경루에 오리게 되면 가슴속에서 호연지기가 솟아나와 쓸데없는 생각들을 다 털어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이 시는 힘찬 어제로 시작하여, 시종일관 호연지기를 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시하면서 그의 장쾌한 기상을 거침없이 펼쳐내고 있다.定州)重九韓相命賦 정주에서 중양절에 한상이 시를 지으라기에定州重九登高)處 정주에서 중양절에 높은 곳에 올라오니정주중구등고처依舊黃花照眼明 예와 같이 국화꽃은 환하게도 눈에 밝네의구황화조안명浦?南連宣德鎭 갯벌은 남쪽으로 선덕진과 이어졌고포서남연선덕진峯巒北倚女眞城 봉우리는 북쪽으로 여진성에 닿아 있어봉만북의여진성百年戰國興亡事 백년동안 전쟁하는 나라의 흥하고 망하는 일은백년전국흥망사萬里征夫慷慨情 만리길 온 사나이의 비분강개 정이로세만리정부강개정酒罷元戎)扶上馬 술 끝내자 장수께선 부축 받아 말에 오르니주파원융부상마淺山斜日照紅旌 얕은 산에 지는 해는 붉은 깃발 비춰주네천산사일조홍정이 시는 공민왕 12년(1363) 포은이 동북면 도지휘사 한방신의 종사관으로 여진족 토벌에 참가했을 때 정주에서 지은 시이다.중양절에 등고하는 풍속을 읊고, 정주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남북으로 이어있다는 것은 방향에 얽매이지 않고 어디로든 통할 수 있다는 자재로운 삶을 은연중 암시하며 ‘세로’는 이곳이 번화한 속세와는 거리가 먼 아주 한적한 곳임을 알 수 있게 한다. 그것은 거마가 다닐 수 있는 ‘관로’와 상대되는 것으로 욕심없고 소박한 스님의 성품과 어울리는 소재이다. 스님이 물길어 돌아간 절도 띠풀로 지은 소박한 집이며, 거기에서 차를 끓이느라 연기를 피우는데, 그 연기를 푸른 색으로 묘사하여 배경을 선계화하면서 흰 구름과 색채의 대비 효과도 아울러 노리고 있다.扈從城南 임금을 모시고 성남으로 가며郊甸)秋成)早 교외 가을 걷이 일찍 맞아서교전추성조君王玉趾)臨 임금님 귀한 걸음 임하셨네군왕옥지임觀魚)前事陋 고기 구경 옛 일이야 비루하지만관어전사루講武)睿謀深 무예 수련 임금님 뜻 깊으시네강무예모심鼓角滄江動 북 피리에 큰 강물도 출렁거릴 듯고각창강동旌旗白日陰 깃발들로 밝은 해도 어둑해졌네정기백일음詞臣多待從 기다리고 따르는 사신들 많아사신다대종會見獻虞箴) 우잠지어 바치는 것 모여 보시리회견헌우잠성남으로 사냥 간 임금의 행차를 모시고 따라가서 지은 시이다. 사냥하는 것이 무예를 수련하는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거기에 지나치게 탐닉해서는 안 된다는 경계를 하는 내용으로서 신하로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관인의식이 잘 드러나 있다.이 시의 주제는 미련에 함축되어 있으며 중간에 임금의 사냥을 긍정적으로 묘사한 것은 실은 이 주제를 강조하기 위한 예비적 장치에 불과하다. 즉 사냥이 비록 필요한 일이긴 해도 거기에 지나치게 집착해서는 도리어 해가 된다는 것을 말하기 위한 것이 이 시의 궁극적 목적인 것이다. 그것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고 올바른 신하들이 우잠으로써 경계를 해 줄 것이라는 확신으로 대신하고 있다. ‘사신’은 올바로 국가를 보위할 수 있고 ‘올바른 건의를 하는 글’을 지어 올릴 수 있는 신하를 뜻한다. 그런 신하들이기에 임금이 사냥에 지나치게 빠지는 것을 경계하는 ‘우잠’을 틀림없이 지어 올려 임금을 올바로 인도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 말에는 또 임금이 스스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