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주의와 능력주의는 대립할 수 있는가요즘 ‘스카이 서성한 중경외시 동건홍’이란 말을 모르는 수험생은 없으리라 생각된다. 각각의 단어들은 하나의 특정 대학을 지칭하고, 어절을 기준으로 그 서열이 정해져 있는 재미있는 말이다. 이러한 말이 나오게 된 데는 물론 우리 사회가 아직도 많은 자리에서 한 개인의 능력을 판단하는데 있어 학벌이라는 잣대를 사용하기 때문이기도 하겠다.그렇다, 우리나라 교육 모순이 응결되어 있는 지점은 ‘대학서열체제’이다. 한국사회의 대학서열체제의 특징은 먼저 대학의 교육 능력이나 관련 학문에 대한 학생들의 흥미 또는 특기와 무관하게 입학생들의 성적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전국의 모든 학생들은 ‘다양한 방면에서의 인재를 기르자’는 교육 목표와는 비교적 괴리감이 느껴지는 수능시험에 의해 점수로 서열화 되고 있으며, 이 점수는 앞서 말했듯 학생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점수를 대학과 학과에 맞춰가는 재서열화를 야기한다.이와 같은 현상을 비판하는 불만의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있어 왔다. 그러나 사회가 점차 발전함에 따라 다양한 부문에 있어 능력 있는 개인이 속출하게 되었고, 따라서 그 목소리는 점점 커져서 최근의 ‘능력주의’라는 말도 등장시키기에 이르렀다. 능력주의란 학벌이나 연고 따위에 관계없이 본인의 능력만을 기준으로 평가하려는 태도를 말하며 이는 실력주의와 유사한 말로 쓰인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과연 이 능력주의가 학벌주의의 대립 개념으로서 성립 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물론 우리 사회의 학벌주의라는 것이 지나치게 고착화 되어있음은 이루 말할 것 없다. 하지만 한 개인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어떠한 도구도 없는 상황에서 학벌, 즉 출신 대학의 네임 밸류(name value)라는 것은 경시할 수 없는 부분이 된다. 눈에 보이는 듯 아닌 듯 예전부터 지금까지 서열화 되어있는 대학들 중 상위 대학에 입학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사회 구성원들도 인정하는 사실 중 하나이다.그런데 만약 학력에 대한 어떠한 인센티브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어쩌면 개인에게 있어 자기 계발에 대한 동기부여를 없애는 격이 될지 모른다. 물론 좋은 학력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그 시간이 자기 계발의 시간이라고 단정 지을 순 없겠지만 학력의 평준화를 이룩한다고 해서 개인이 자기 계발을 위한 시간을 더 많이 얻게 된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능력주의에서 말하는 개인의 능력이라는 단어가 어떤 특정하고 분명한 능력을 의미한다면, 이도저도 아닌 보통의 사람들은 능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면 학벌이라는 문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능력을 부여하는 시발점이 된다고도 할 수 있겠다.간혹 학벌주의의 지나친 고착화로 인해 대학이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그저 학벌을 취득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으로 평가절하 되는 경우를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노력에 대한 보상심리로 인해 학생들이 수업을 가볍게 여기고, 이에 따라 수업의 질도 함께 떨어진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후죽순 생겨나는 신생 대학들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다. 실제로 서열화 된 대학 중 상위 대학의 강의 커리큘럼이나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태도를 보면 그곳이 왜 상위 서열화 되었는지를 너무나도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서열이 높은 학교에서는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혹은 더욱 상위 계열로 올라가기 위해 학생들의 수준을 높이는 교육을 실시한다. 이러한 상황이 서열화를 더욱 고착화시킬지도 모르지만, 이 같은 환경 속에서 상위 서열화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평균 능력치가 장래에 그렇지 못한 학생에 비해 높아지게 되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생명체의 능력을 활용하거나 목적에 맞는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인간의 생활을 유용하게 하려는 산업을 우리는 생명산업 이라고 한다. 최근 과학기술의 진보로 생명 공학적 발전이 눈에 띄게 이루어지고 있다. 유전자를 조작한 식품인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에 대한 연구가 세계 각지에서 활기를 띄고 있는 실정이다. 무르지 않는 토마토는 최초 GMO이며, 그 외에도 제초제 저항성을 지닌 콩과 해충 저항성을 지닌 감자 등 여러 가지 실용적 성공 사례가 있다. 이러한 GMO의 개발은 식량 생산의 효율성을 높여 줄 수 있다.그러나 유럽의 여러 환경단체들은 유전자 변형 식품을 반대하고 있다. 유전자 변형 작물은 돌연변이를 양산하는 시발점이 된다는 것이다. 알파드 푸스타이 박사의 실험은 또한 유전자 변형 식품이 심장 형질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잘 보여준다. 이 실험에서 유전자 변형 옥수수를 먹은 쥐는 간과 심장이 비대해지는 등의 신체적 이상 현상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GMO가 생태계를 위협하는 잠재적 요소라는 것을 검증하는 실험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콩의 30%는 미국에서 수입된 유전자 변형 콩이다. 미국의 자국 내에서 생산되는 유전자 변형 콩만도 전체 생산량의 45%에 육박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우리나라는 곡물 자급률이 25%에 불과하기 때문에 곡물의 수입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그렇다고 해서 GMO의 수출을 금지할 경우 이는 무역 분쟁을 초래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안정성 규제 지침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수입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물론 GMO는 생산성의 증가와 생산 비용의 절감을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가 있다. 그러나 터미네이터 기술과 지적 재산권제를 이용한 종자 산업의 생산적 독점 지배는 기술을 가진 선진국과 가지지 못한 개도국 사이의 종속적 관계를 양상하게 되므로 이는 결코 경제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아직 우리에게는 GMO의 장단점을 절대평가 할 만한 기술적 척도와 윤리적 잣대가 여러모로 부족한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3%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비율의 유전자 조작식품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판매자와 국가에서 조차 GMO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에 그저 식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에게 구매 의사 결정을 통해 GMO에 대한 자율성을 인정하여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 세상과 대화를아프간으로 피랍됐던 19명의 피랍자들이 지난 8월 17일 무사히 귀환을 하였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극과 극을 달렸다. 물론 엇갈린 목소리 속에서는 이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조금은 힘을 내고 있는 듯 했다. 심지어 그들에게 계란을 던지자는 ‘계란 열사’는 네티즌 사이에서 영웅처럼 떠올랐다. 물론 그들의 계란은 비단 19명의 피랍자들에게만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기독교에 대한 많은 국민들의 지적과 경고였다.‘따르르릉’,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큰삼촌이었다. 그분이 내게 전화를 직접 거신 것은 그 때가 처음이지 싶다. 삼촌은 다짜고짜 내게 물으셨다. 잘못 되어가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너의 생각을 말해보라고. 나는 무척 혼란스럽지 않을 수 없었지만 나의 혼란은 비단 갑작스런 질문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를 이어 지금까지 목사로 살아온 당신의 삶, 그것의 모든 바탕이 되고 있는 근본의 흔들림, 그 흔들림을 느끼고 있는 그분의 떨리는 목소리 때문이었다.구약성경 시편 138장 7절에 보면 ‘내가 환란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케 하시고 주의 손을 펴사 내 원수들의 노를 막으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시리이다’라는 말이 있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읽으려고 밑줄을 그어뒀었기에 외우고 있는 몇 안 되는 성경 구절이다. 그런데 피랍자들이 귀국하던 그 날, 인천 공항에 한 기독교 신자가 이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그들을 반가움으로 맞이하고 있는 것을 뉴스에서 보았다. 주님의 자녀가 이렇게 무사히 돌아온 것은 다 주님의 보살핌 덕분이라고 그는 생각했던 것일까. 그렇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두 명의 피랍자가 살해당하는 동안 주무시고 계셨던 걸까. 그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기독교가 두들겨 맞고, 마치 면죄부를 팔던 중세의 타락한 구교처럼 손가락질을 받게끔 만들어 자학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기독교가 개독교라는 별명을 갖게 되고, 피랍사태에 대한 기독교 내에서의 엇갈린 반응들이 기독교의 분열을 조장하는 지금의 사태를 두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란 매우 난감한 일이다. 그분의 목적이 ‘경각’을 일깨우는데 있었다면 그분은 실수를 하셨음에 틀림이 없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오묘한 신의 영역이니 나약한 신자로써 받아들이기가 벅찰 따름이다.피랍 사태 이후 공격적인 선교활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터져 나왔다. 김형태 서울 연동교회 원로목사는 4일 ‘장로교 목사 안수 100주년 기념 참회기도회’에서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와 관련해, 젊은이들을 자극시켜 봉사활동이라는 미명 아래 선교를 강행하는 것은 옛날 점령군이 파견된 외국에 선교사들이 가서 이교도들을 개종시키는 전투적 선교를 방불케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교회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지는 순수한 봉사활동을 한꺼번에 매도해선 안 된다며 맞섰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교인들끼리 ‘네 하나님은 누구냐’와 같은 원초적인 비판을 하게 만들었기에 아직까지도 기독교는 분열의 위험 속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돌이켜보면 한국 교회가 그동안 다민족, 다종교의 인류공동체 안에서 다양성과 정체성을 인정하는데 인색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전부터 한국 교회의 선교 및 전도 방식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세계 개혁 교회 연맹 회장인 세트리 니오미 박사는 한국 교회가 기존 선교 전략을 수정하지 않으면 큰 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세계 교회의 공식적인 입장을 전달했다.
우리 사회는 어떠한 패러다임으로 구성되어있는가사회학적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 지금의 한국사회를 지배하는 패러다임은 상대적으로 이상주의의 그것에 가깝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상주의 안에서도 개인이 모여 만든 사회가 이데아를 만드는 하나의 유기체라고 보는 사회유기체론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겠다. 사회유기체론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을 생물유기체의 기관에 견주는 것으로, 개인은 사회유기체의 한 부분으로서 활동하고 저마다의 역할을 수행하지만, 거기서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이는 다시 공동체주의까지 확대된다.우리 사회에서 그 모습을 살펴보자면, 최근의 출산율 감소에 대한 정부의 태도에서도 그것을 찾아볼 수 있다. 여성의 지위 향상과 물가 상승에 대한 자녀 양육비 등의 다양한 이유로 갈수록 출산율이 줄어들자 정부는 출산율 장려 대책을 내어놓기 시작했다. 출산율의 감소는 젊은층의 노동력 감소를 의미하고 이는 다시 고령화 문제를 야기하며, 사회 구성원의 고령화는 사회 경제력의 약화를 가져오기 때문에 정부에서 현 사회 구조를 유지하게 위해 대책을 수립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단순한 출산율 감소 하나가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야기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마치 유기체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또 다른 사례를 살펴보자면, 최근 우리나라는 한미 FTA 체결을 앞두고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다. 충분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긍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여 국민을 설득시키려 했었던 한미 FTA는 영세 1,2차 산업에 종사하는 개인들에게 큰 거부감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각론에서도 한미 FTA체결은 그 어떤 나라보다 먼저 추진되어야 할 필요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반대론자가 주장하는 비교열위산업이 피해를 받을 것이라는 지적은 단기적으로 감수해야할 부분이며 장기적으로는 우리산업의 경쟁력을 촉진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것이 찬성자들의 목소리였다. 이 시즌을 즈음 하야 공익광고에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왔다. 한 직장인 남성이 힘든 표정으로 퇴근을 하는데, 퇴근길 친구를 만나 술을 한잔 마시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게 된다. 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술집 텔레비전으로 ‘FTA체결 후 무역수지 얼마 돌파’, ‘국민 1인당 소득 얼마 증가’와 같은 FTA의 장점만을 모은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그는 택시를 타고 집으로 귀가한다. 그리고 마지막 나레이션이 나온다. ‘대한민국은 발전하고 있습니다.’ 공익광고협의회와 FTA협상 추진회가 이러한 광고까지 만든 이유는 바로 FTA의 파급효과가 사회 전체적으로 큰 효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소수의 FTA를 반대하는 개인에게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 본업에 충실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개인은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맡은바 임무를 다할 때 비로소 유기체가 병들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양파농은 얼마 전 공급과잉으로 인한 양파 폭락을 막기 위해 양파를 폐기하기에 이르렀으나, 시세를 회복하는데는 소용이 없었다. 세계 시장의 문이 열렸기 때문에 더 이상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어려워 졌기 때문이다. 정보의 폐기 보상금이 차라리 낫다며 밭을 갈아엎는 농부들의 돌아선 뒷모습이 서글프기 짝이 없었다. 과연 우리의 농업은 이대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일까.도쿄 이와이시는 대파 생산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중국산 대파가 대량으로 유입되면서 대파 농장에 큰 위기를 가져오게 되었다. 대파의 시세는 3년간 폭락했고 이와이시는 출하경비와 유통기한을 낮추려고 노력했지만 그 역시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끊임없는 연구를 했고 따라서 소비자 중심의 농업 경영이 필요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공급과잉의 시장 틈새를 공략하여 고품질 시장을 개척해나간 것이다.이는 우리나라에서도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상주 한방 참외의 작업 기계화와 합천 딸기의 예빙 시스템은 산지의 신선함을 식탁까지 고스란히 보존하는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이러한 고품질 농산물은 소비자의 충분한 관심을 받게 마련이다.수출 농가의 성공 비결을 살펴보면 농산물의 신선도를 최대한 보존하고, 유통기한 및 원산지 표기를 제대로 잘 지켜 소비자에게 신뢰도를 심어주며, 엄격한 품질 관리를 통해 고품질 농산물 생산에 전력을 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우리나라 대다수 농가의 농가 운영 방식에 대해 살펴보자. 우리나라 대다수 농가는 신선도 유지 시설이 없다. 자동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일터에서는 모든 것이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는 열악한 생산 공정 하에서 결코 고품질 농산물이 생산 될 수 없음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체계성이 없는 주먹구구식 수출은 국산 농산물끼리의 과다 경쟁을 유발할 가능성도 있어서 체계적 관리가 필요하다.이렇듯 아직 우리는 세계시장에 발맞추어 나갈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못하다. 바이어들은 우리나라의 배가 되는 넓은 생산 시장인 중국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도 이를 새로운 기회의 장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