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적어야 할까 고민고민을 하는데 내가 나자신의 한계를 극복한 적이 있었나 곰곰이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딱히 집안이 힘들었다거나 가족들과 문제가 있었다거나 그런건 없었다. 난 그저 평범하게 굴곡없이 평평하게만 살았었단걸 이글을 쓰면서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19~20살에 나의 한계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그 경험은 반수를 했던 경험이다. 사실 이 이야기를 쓰기에는 뭔가가 이상했다. 나의 한계를 극복하는 내용을 써야하는데 나에게 반수는 그냥 단순히 나의 한계를 경험했던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2007년 나는 평범한 여고를 다니면서 3학년의 쓰디쓴 생활을 경험한다. 나는 고3때 그다지 공부를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 점심시간에 매점가고... 쉬는시간에 매점가고... 야자시간에도 매점가고... 특히 야자시간 중간중간에 선생님 몰래 친구들이랑 007첩보영화를 방불케 할정도의 민첩성으로 후문으로 나가 분식집에서 떡볶이를 먹고 문구점에 가서 군것질을 하곤 했다. 항상 그러다가 선생님께 걸려 교무실 앞에서 무릎꿇고 있었던 적도 셀수 없이 많았다. 어느새 나는 우리반에서 담임선생님께 가장 많이 혼나는 탑3에 들어가 있었다. 여름방학때부터는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했다. 거의 매일 독서실가서 새벽2시까지 공부를 하곤 했었다. 하지만 성적은 잘 오르지 않았고 그럴때마다 '난 뭘해도 안되는건가. 뭘 어떻게 해야하지'하면서 속으로 많이 울었었다. 그렇게 시간은 지나고 수능을 치고 난 뒤 성적표를 봤다. 성적표를 보는데 답이 나오지를 않고 계속 한참을 멍을 때렸었다. 결국 그 성적으로 간곳은 계명대학교 한문교육과였다.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어서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내심 많이 걱정을 했었다. 내가 한문교육과를 들어가서 한문을 배울거란거는 꿈에서도 생각하지 못했다. 선생님이 되기를 원하셨던 부모님의 말씀을 따라서 한문교육과에 넣었지만 내가 가고싶었던 길과는 달라서 고민을많이 했었다. 여하튼 결국엔 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정말 캠퍼스의 낭만을 마음껏 누려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조그마한 하나하나 모두가 신기하고 마치 내가 청춘드라마에서 보던것들이랑 겉보기에는 비슷했다. 하지만 실상은 너무나 달랐다. 내가 들어간 과는 사대이고 한문 공부를 하는곳이라 별로 놀지않고 서당같은 분위기 일줄 알았었는데 너무나 반대였다. 술도 사대중에서는 가장 잘먹고 잘놀고 선배들과는 매우 깍듯하게 예의를 갖춰야했고 그런것들이 나에게는 낯설었다. 하지만 더욱 힘들었던 것은 전공과목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살면서 공자,맹자를 공부하는 일이 없을꺼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배우려니 나랑 너무 맞지가 않았었다. 나랑 한문은 맞지 않는거구나 생각을 하고 나는 조금씩 반수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빠른 90년생이었기 때문에 반수를 해서 다른학교를 들어가더라도 동기들과 나이도 같을것이고 무엇보다도 나에게 맞는 공부를 다시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굳건히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1학기는 거의 끝이나 가고 성적표를 받았는데 우리과에서 2등을 해서 성적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이게 웬일인가 싶었다. 처음 대학교와서 받는 장학금이었기 때문에 나자신도 놀랬었다. 휴학신청서를 내면서 장학금은 포기를 하고 친하게 지냈던 동기들과도 이별하게 되었다. 이제 진짜 큰마음먹고 열심히 해보자해서 단단히 준비를 했었었다. 그것도 잠시...몇일이 가지 않았었다. 잠시 까먹었었던 고등학교 공부를 다시 하려니 막막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몰랐었다. 내가 반수를 했던 2009학년도 수능에는 유난히 재수생과 반수생들이 많아서 소히 말해 많이 쫄았었다. 공부잘하는 애들이 더 좋은학교가려고 하는 이 마당에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그래서 반수학원을 갈까도 몇 번 생각했었지만 비용도 비용이지만 학원의 시간표대로 움직이는게 싫어서 나혼자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아파트 앞 정문에 있는 독서실에서 아침8시에 가서 새벽2시에 집에 오곤했다. 아침에 독서실에 가자마자 책상위에 녹차,사탕,물,육포를 항상 세팅시켜놓고 오늘 공부할 책을 쌓아두고 그리고 오늘 들을 인강을 미리 다운받아 놓는다. 그렇게 나는 나혼자 문제집과 인강으로 독수공방을 하였다. 외국어영역과 탐구영역은 혼자 해도 무리가 없었는데 수리영역과 언어영역은 혼자 하기가 많이 버거웠다. 특히 수리공부는 하다가도 몇 번 때려치고 싶었다. 그래서 정석을 집에가서 방바닥에 몇 번이나 던지고 했었다. 하지만 매일 밥먹는시간과 자는시간을 빼고 항상 독서실에 있는것이란 정말 고문과도 같았다. 껌껌한 독서실에서 하루종일 있는것은 나에겐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내가 공부하는 방에서는 반수생이 몇 명 더 있었다. 그래서 왠지 모르게 그 애들과 경쟁심이 붙었었다. 점심먹고 너무 졸려서 잠시 누웠다가 공부할까 하면서도 서서 다른애들 책상을 한번 휙 둘러본다. 그 친구들이 안자고 공부를 하면 나도 어떻게든 잠을 깨려고해서 잠을 자지 않았다. 뭔가가 밀리기 싫었었다. 오늘은 일찍 집에 가고 싶은데 하면서도 그친구들이 늦게까지 공부를 하면 나도 같이 늦게까지 공부를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것도 몇 달가지 않고 저녁에 친구들과 피씨방에 가서 몇시간 게임도 하고 시내가서 놀기도 했었다. 아직까지도 후회하는것중에 하나가 정말 열심히 공부를 하지 않았던 것을 많이 후회한다. 그리고 더욱 후회하는 것은 남자친구를 사귀었던 것이었다. 혼자 독서실에 있고해서 외로웠던 것이었는지 여차저차해서 한문교육과 동기중 한명과 사귀게 되었었다. 나 공부한다고 많이 배려를 해주었고 소소한 이벤트들도 해주고 많이 힘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공부에 소홀히 하지는 않았다. 9월 전국연합평가를 치려고 시내에있는 학원에 갔는데 재수생과 반수생이 그렇게 많은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는 머리가 번쩍 뜨였다. 열심히 하는사람들이 많은데 나는 이게 뭔가하고 싶었었다. 전국연합평가는 나에게 그나큰 시련을 주었다. 생각대로 점수가 잘 나오지 않아서 몇일 멍때리기도 했었다. 그렇게 또 아침밥먹고 나가서 공부하고 점심밥먹으로 집에와서 밥먹고 다시 나가서 집에와서 저녁먹고 또 나가서 새벽에 들어오고를 2달쯤 하니 이제 대망의 11월달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이젠 두 번째 치니까 많이 안떨리겠지 속으로 생각했지만 시간이 자꾸자꾸 다가오면서 떨리는 손과 떨리는 입술은 어찌 할수 없었다. 수능치기 3일전에 같은아파트에서 불이 났었다. 우리집은 9층이었는데 같은라인의 6층에서 불이나서 난리가 났었다.처음엔 밖에 연기가 많길래 안개이거나 소독차가 온줄로만 알았었는데 불이 난것을 알고 엄마와 나는 집안 곳곳의 연기를 뚫고 물수건으로 입을 막고 간신히 나왔었다. 그 소동이 있고 난뒤 뭔가가 안좋은 징조인것 같아서 기분이 찜찜했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나고 수능을 쳤는데 성적표를 보고 난뒤에 울컥했었다. 점수가 예상보다 더 안좋아서 어떻해야 할지 많이 힘들었었다. 원서를 넣은 세 개중에 두 개는 떨어지고 한곳은 추가합격으로 되었지만 그곳을 가지 않았고 추가합격원서를 낸 W대와 G대,대가대 중에서 나는 이 학교를 선택하여 오게 되었다. 학교는 내가 원하던 곳이 아니었지만 과는 내가 원하던 과여서 후회없이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보겠노라고 다짐했다.열심히 공부해서 매학기에 장학금을 타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