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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캐비닛을 읽고
    -오늘날의 사회를 진실되게 풍자한 소설-상피에르의 죄수, 루저 실바리스상피에르란 도시에 80년형을 선고받은 ‘루저 실바리스’라는 죄수가 있다. 그는 48m의 까마득히 높은 첨탑위의 감옥에 갇혀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이 첨탑위의 감옥은 그 나라에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죄수를 가두어 두는 곳이다. 그럼 ‘루저 실바리스’는 첨탑에 갇혀야 할 만큼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일까? 그건 아니다. 그는 단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신부에게 욕을 하고 주먹으로 감자를 먹인 일 밖에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 그는 80년 동안이나 긴 세월을 첨탑 위에 갇혀야 했을까?비인간적인 사회, 내가 사는 곳인데 당연히 적응해야지!책의 첫 부분부터 이상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물 대신 휘발유를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휘발유가 다른 식단보다 육체와 정신에 훨씬 더 효율적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또 휘발유의 어떤 성분이 도시에서의 삶을 자동차 엔진처럼 규칙적이고 역동적으로 만들어준다고 믿는다.그들은 비인간적이도록 규칙적이고 바쁜 생활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부드럽고 달콤한 인간적인 미각을 즐기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쓰고 텁텁한 비인간적인 미각을 선택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인간적인 미각을 즐길만한 여유가 없다. 속도의 천국인 21세기는 자동차처럼 규칙적이고 빠른 것만을 원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동차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휘발유를 마신다.그래도 비인간적인 사회는 피하고 싶다.새끼손가락에서 조그마한 은행나무가 자라는 남자가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들은 이 은행나무를 없애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남자는 오히려 은행나무가 잘 자라지 않는다고 걱정한다. 그래서 그는 은행나무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한다.어느 순간부터 은행나무는 빠른 속도로 자라기 시작한다. 은행나무가 그의 몸에 기생하며 자라고 있기 때문에 은행나무가 잘 자라면 자랄수록 그만큼 그는 수척해져 갔다. 그는 은행나무 때문에 자신이 곧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몸에서 은행나무를 뽑아내지 않는다. 오히려 남들의 시선이 은행나무의 건강에 해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자신이 죽은 뒤에도 은행나무가 땅 속에 쉽게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도록 가족과 직장을 버린 채 산 속으로 들어간다.그는 왜 그렇게 은행나무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아마도 그는 비인간적인 현대 사회를 잊기 위한 발버둥으로 은행나무에게 집착했을 것이다. 그는 비인간적인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었기에 자신과는 다른 자연을 닮은 생명체가 그의 몸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무한한 기쁨을 느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은행나무에 애정을 쏟았는지도 모른다.사랑받고 싶어요. 빨리 그러고 싶어요.고양이가 되고 싶어 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 남자는 한 여자를 사랑하고 있었는데, 그 여자는 고양이 이외의 존재에 대해서는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사랑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고양이가 되려고 노력한다. 어느날 그는 고양이로 변신시켜 준다는 한 마법사를 찾아가게 된다. 그 마법사는 고양이가 되는 마법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적어도 몇 십년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고양이 변신에 필요한 몸과 마음의 수련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고양이로의 변신이 오래 걸릴 것 같다는 말에 실망하게 된다. 하지만 마법사는 이렇게 말한다. 마법은 오랫동안 서서히 일어나는 거라고, 갓난 아기가 어른이 되고, 봄에 아름다운 꽃이 다시 피어나는 것처럼 서서히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그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쉽게 사랑을 얻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사랑을 받기 위한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고민하기도 한다. 이는 오늘의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의 군상을 잘 보여준다. 게다가 자기가 소망하는 일이 빨리 이루어지길 바라는 모습에서도 현대인의 특징이 여실히 나타난다. 현대인에게 있어 마법은 자신의 소망을 성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마법 같은 일을 너무도 빨리 성취하기를 바란다. 목표를 이루기 위한 노력에 가에 쫓기듯 가능한 빠르게 목표 지점에 도달하려고 한다. 하지만 마법엔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이분법적인 세계에 살고 있어요.한 남자는 어떤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그 사람은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고, 지적이고 세련된 화법을 구사했으며, 상대방의 마음마저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는 남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치부가 있었는데, 남자의 성기와 여자의 성기를 동시에 가진 비정상적인 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남자는 그 사람을 벌레 보듯 대했고, 그 이후로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이 세상은 어정쩡한 존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어떠한 선택을 두고, 이것을 할까 저것을 할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를 우유부단하다고 지적하고, 빨리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재촉할 것이다. 그나마 이러한 경우는 개인적인 측면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여러 사람들의 희생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간혹 나와 다른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마음은 간혹 엄청난 희생을 불러오기도 한다. 최근의 한 사건은 많은 사람들을 희생하도록 만들었다. 그 사건은 바로 이라크 전쟁이다.부시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언하면서, 세계를 미국편과 그렇지 않은 편으로 분류하였다. 우리나라 역시, 비록 두 가지 선택 중 어느 쪽도 선택하고 싶지 않더라도, 둘 중의 하나를 무조건적으로 선택해야 했다. 결국 우리나라는 이라크에 별다른 악한 감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미국을 선택해야 했다. 즉 우리나라는 어정쩡한 존재를 좋아하지 않는 세계 질서 때문에 국민 다수가 원하지 않는 이라크 파병을 해야만 했고, 파병에 대한 자치 경비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해야 했다.여자의 성기와 남자의 성기를 모두 가지고 있던 그 사람 역시 어떻게 보면 이분법적인 세계의 희생양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은 몸 한쪽이 불편한 장애인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 사람은 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는 이유로 취급을 받게 되고, 그렇기에 자신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극도로 꺼리게 되었다. 이분법적인 사회 분위기가 한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게 만드는 것이다.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활동하는 영역은 국내에서 세계로 점점 더 확장될 것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시점에서 각자의 삶의 방식과 생각을 지닌 존재들을 포용할 능력이 없다면, 미래에는 지금보다 극심한 배타적 차별과 이분법적인 ‘밀어내기’가 생겨날 수 밖에 없다. 신분이 능력을 지배하던 근대이전 신분제 사회의 불합리한 모습 이상의 불평등한 구조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세계라는 넓은 공간에서 모두가 인간답게 공존하며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나와 다를 수 있는 상대방의 처지와 가치를 이해하고 그러한 ‘다름’과 ‘차이’를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루저 실바리스의 『상피에르 사람들』상피에르라는 도시에 80년형을 선고받은 ‘루저 실바리스’의 죄는, 높은 첨탑위에서 80년 동안 감금해야 하는 형에 비해, 사실 아주 작고도 사소한 것에 속한다. 물론 신부에게 욕을 한 행동에 대해서는 처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어린 ‘루저 실바리스‘를 80년 동안이나 감옥에 가둘 만 한 일은 아닌 것 같다.그러나, 기적적으로 ‘루저 실바리스’는 이 첨탑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첨탑 감옥에 감금된 지 24년이 되는 해에 상피에르에 화산 폭발이 일어났다. 그 피해로 인해 그 도시 사람들의 대부분은 죽게 되었다. 하지만 높은 첨탑위에 있었던 ‘루저 실바리스’는 그 엄청난 재앙을 모면하게 되었다. 어쨌든 상피에르의 가장 꼭대기에서 모든 사람들의 미움과 야유를 받았던 루저 실바리스는, 상피에르가 자신에게 준 미움과 야유의 힘으로 살아남게 되었다.그 후 그는 사람이 살지 않는 멕시코의 사막 끝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그는 ‘상피에르 사람들’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 그 책에는 상피에르의 역사와 사람들의 이모저모, 그리고 화산이 터졌을 때의 모습에 대해 생생히 적혀 있었다. 아마도 그은둔하며 매일 조금씩 이 책의 원고를 썼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에는 엉뚱하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았다. 가령, 클리오레 신부의 엉덩이에 오소리 꼬리가 달려 있다든지, 데일리 가문의 아이들이 두 세대에 한 명씩 부엉이 발톱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마치 ‘캐비닛’의 서술자가 ‘이상한’ 사람들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것처럼 ‘루저 실바리스’ 역시 엉뚱한 이야기들을 책속에 기록해 놓고 있었다.교훈을 얻을려고 하지마라, 그냥 그 사건 자체를 바라보라.지하철에서 한 흑인 청년이 백달러 지폐를 세고 있다. 이를 본 한 할머니가 그 청년에게 다가와서 자신의 손녀가 75달러가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해 죽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할머니는 당신에게는 그 돈이 수백 번이나 찾아올 월급 중에 하나겠지만, 자신의 손녀에게는 한번밖에 없는 목숨과도 같은 돈이라고 말하면서, 그 돈을 자신의 손녀를 위해 쓰게 해달라고 부탁한다.하지만 그 청년은 그 돈을 할머니에게 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청년 역시 그 돈을 쓰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하철에서 만난 흑인 강도에게 돈을 빼앗기고 살해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흑인 강도들 역시 그 돈을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청년과 같은 지하철에 타고 있었던 그 할머니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결국 이 돈은 어떤 누구에게도 유용하게 쓰이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은 무엇일까?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그들에게 자신의 월급을 줘야 한다는 것일까? 아니다. 그런 교훈은 현실세계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식으로 살았다간 이 험한 세상에서 굶어죽기 십상이다. 그럼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어하는 진정한 의도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다. 즉, 우리에게 교훈을 찾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슨 일에서건 습관처럼 교훈을 찾으려 하고 잠언을 얻으려고 한다. 하지만 사실상 그 교훈이나 잠언은 우리의 인생을 좋은다.
    독후감/창작| 2008.01.09| 4페이지| 2,000원| 조회(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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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민사관 극복안]타자에 의한 `한국적`이미지 창출과 극복 평가A+최고예요
    『상상의 공동체』와 『오리엔탈리즘』의 논제를 한국에 적용하여. 유 선 미타자에 의한 ‘한국적’이미지 창출과 극복1. 머리말최근 서구적 근대에 대한 반성으로 제기된 ‘포스트 모더니즘적 역사학’은 어느새 하나의 학문적 조류를 형성하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이며 전통은 창조되고 날조된 것이라는 주장이 새삼스럽지 않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인 상황은 종종 상반되는 담론을 만들어내며, 이러한 담론은 언제나 타자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언제나 이데올로기가 결부되어 있다. 결국 본질적이고 선험적인 민족과 전통은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고안되고 실체화되는 것이다.‘한국적’ 전통 혹은 ‘한국적’ 문화는 일제의 식민지배 과정 중에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제국주의 국가였던 일본은 노골적으로 자국의 전통을 오래되고 훌륭한 것으로 만드는 동시에 종속국이었던 한국의 전통은 정체되고 멸망할 것으로 이미지화 시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시기에 한국의 박물관이 일제를 통해 처음 세워졌다는 사실은 이러한 가정을 더욱 정당화 시켜준다. 사실 박물관에서의 역사 재현은 유물이라는 강력한 역사적 증거물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정치적 효용 가치가 상당하다. 그리하여 식민주의자들은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식민지의 역사를 재단하는 공간으로 박물관을 활용하기도 했다. 따라서 일제시기에 설치된 한국 박물관의 설립주체, 운영, 목적을 살펴보는 것은 ‘한국적’ 전통 문화의 식민지적 성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한편, 서구 제국주의 국가의 국민들은, 그들의 국가가 만들었던 편향된 관점, 즉 문명에 대한 기준과 오리엔탈리즘적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한말이나 식민지시기에 개인적 자격으로 한국을 다녀갔던 이들의 여행기나 저서들에서도 이러한 시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서구에 의해 열등한 것으로 부과되고 결정지어진 우리의 자화상을 뒤집어보기 위해서는 그들이 무슨 이유로, 우리의 어떤 모습에서 한국과 한국인을 동양미지가 어떻게 식민담론과 연결되고 있는지를 추적해보겠다. 이러한 작업은 그들만의 표상으로 우리에게 덮어 씌워진 이미지를 비판적으로 의심하고 문제시 하도록 도와줄 것이다. 이것을 통해 시사되는 점들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향후 ‘한국의 세계사’가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답하고자 한다.2. 타자를 통한 ‘한국적 표상’ 읽기서양인들이 동양을 차별하는 가장 뚜렷한 양상으로는, 끊임없이 진보하는 서양에 맞서 동양을 정체되어 있는 사회나 퇴락한 사회로 보는 것이다. 유럽이 자유, 진보, 문명, 근면, 역동성을 의미한다면, 비유럽 세계는 종속, 정체, 야만, 나태, 무기력을 의미하였다. 여기에는 젠더의 개념이 부과되었는데, 전자가 강건한 남성의 이미지를 지닌다면, 후자는 여성으로 상징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문객들은 한국과 한국인들에게서 무엇을 보았는가?1) 방문객이 본 한국?한국인의 ‘보편적 특성’① 종속성(從屬性)제임스 게일(1868-1937)은 한국인에 대한 경험과 인상들을 서구인의 자기중심적 권위로 해석했다. 그는 한국인의 보편적 속성을 머슴의 삶으로 대변했다 즉 한국의 토착민들은 지주의 명령에 복종할 뿐, 권리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한국인들은 자신들의 자유가 침해되거나 훼손되었다고 해서 어떠한 분노나 욕망을 일으키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열등하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믿고 있었으며, 내세에서 모든 굴레로부터 해방되리라는 숭고한 희망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한국인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의존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양의 독립 사상은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대신 한국인은 숙명적으로 복종하는 삶을 인생으로 받아들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확대하여 게일은 동양과 서양의 특징을 독립심과 의존의 대칭적 요소로 설명하고 있다.서구에서는 어떤 집이든 간에 넓은 지역에 따로 서 있듯이 사람은 누구나 독자적이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모두 공동작업을 행하고, 가옥들은 한 곳에 모여서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마을의 형태를 갖춘을 정당화하는 것이었다. 19세기 말의 다른 서구인들 역시 게일과 동일한 방식으로 한국과 한국인을 인식했다. 비숍이 보는 한국 사회는 ‘매우 중국적’이고 ‘의존적’이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한국을 정부, 법률, 교육, 예절, 사회적 관계, 도덕적 측면에서 단지 막강한 이웃나라를 미약하게 반영하는 곳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한국에 부치는 마지막 말”에서 다음과 같은 소감을 적으며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독자는 약하고, 나태하고, 가난하고, 어디까지나 의존적인, 그러나 마음 편히 지내는 한국 국민들을 보았다. 독자는 이제 홀로 지탱할 수 없는 이 나라의 전망, 그리고 두 개의 강대국이 몹시 탐내는 영토의 가치를 어느 정도까지 판단할 수 있었을 것이다.② 정체성(停滯性)‘한국인의 특성’으로 방문객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정체성’이었다.『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저자 새비지-랜도어는 자신에 책이름을 통해 이러한 견해를 압축해 놓았다. 즉 “고요한 아침의 나라”는 한국의 정체성의 상징이었다“조선”은 원주민들이 자기 나라를 부르는 오늘의 유일한 국명이 되었는데 이는 고려라는 국명이 오늘날 조선 사람들에 의해 전적으로 포기되었기 때문이다. 이 국호의 뜻은 매우 시적인데 “고요한 아침의 나라”를 의미하며 현재의 조선 사람들에게 알맞은 표현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그들은 그들의 선조인 고구려의 정열과 힘을 전적으로 상실한 듯이 보였기 때문이다.여기에서 한국인이 정체적일 수 밖에 없는 원인은 여러 가지로 제시되고 있다. 새비지-랜도어는 한국을 쇠락하고 죽어가는 나라로 보았는데, 국왕에서부터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개혁에 끈질기게 저항하는 나라로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러한 한국을 ‘보수주의’라는 개념을 사용하여 표상하였다.게일에 의하면 한국인의 정체는 게으름에서도 연유하고 있었다. 한국인에 대한 그의 첫인상은 매우 ‘게으른 사람들’ 이었다. 그는 조선의 불행을 일하는 사람이 극히 적은 데서 온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보기에 조선 민족은 하는 일 없이 그냥 세것은 무능력한 국왕과 부정·부패한 관리들이 자행하는 수탈에서 기인하는 것이었다. 조선 국왕은 군주다운 엄격한 훈련과, 왕가의 전통을 이을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변덕스런 자신의 정책과 결단력이 부족한 행동 때문에 어려운 상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존재로 간주되었다. 관리들은 살아 있는 민중들의 피를 빨아먹는 벌레와 같았다. 요컨대, 한국에는 수탈하는 사람과 수탈당하는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한국인은 일할 의욕을 느끼지 못했고, 그래서 사회는 몇 세대 동안 비효율적으로 흘러갔다. 한국인은 누구를 막론하고 부패한 정부 형태가 개선되기를 희망했지만 ‘모두가 너무 게을러서’ 개선을 위한 시도를 하지 않았기에 정체되어 있기만 했다. 그리하여 한국인은 극도로 무력하고 유약하며 무관심에 빠져있는 생활을 하게 되었고, 이것은 한국인의 민족성으로 고착화 되었다.3. 일제하 한국 박물관의 식민지적 성격박물관은 한 사회 문화적 정체성의 구심점이다. 박물관의 구성 체계는 단순히 진귀한 보물과 예술품을 수집·전시하는 차원을 넘어 유물을 통해 그 사회 구성체의 문화적 특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편, 박물관의 설립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박물관의 성격은 물론이고 박물관을 통해 형성되는 정체성도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제 시대부터 존재한 우리나라 박물관 제도는 ‘박물’이라는 용어에서부터 제도적인 측면까지 일본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1) 이왕가박물관(李王家博物館)이왕가박물관은 일본정부의 명확한 의도에 따라 조선왕조의 주요 궁궐인 창경궁 일곽에 동물원, 식물원과 함께 설립되었다. 명정전 일대를 전시실로 삼아 1909년 11월 1일에 문을 열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이 된 것이다. 1911년에는 명정전의 북쪽에 인접한 작은 언덕에 박물관 본관을 신축했다. 그 구조는 일본풍으로 만들어진 이층의 건물이었다.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박물관 설립이 고종이 퇴위되고 순종이 즉위하는 시기에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박물관 건립 직전인 1907년 6월에는 으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이때 일본에서 벚꽃이 다량으로 들어오게 되었는데, 그래서 1924년에는 야간 벚꽃 놀이를 위해 밤에도 창경궁이 개방되었다.일본이 내정 지배권을 확립하자마자 서울에 있던 국왕의 거처에 박물관과 동·식물원을 설치하고, 일본의 국화인 벚꽃을 심어 시민들에게 공개한 것은 한국인을 일본의 신민으로, 그리고 한편으로는 교화의 대상으로 만들고자 함이었다. 또한 이왕가박물관은 고대의 유물만을 부각시켜 전시하였는데, 이는 한국인에게 한국은 신라시대와 고려시대에는 번성하였지만 조선시대는 쇠망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인식시켜, 정체성론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결국 이왕가박물관은 일본이 멸망한 조선왕조를 대신하여 한국 전통문화를 보호하고 관리하는 주체임을 알리는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2)조선총독부 박물관이왕가박물관은 한국인의 주체적인 설립 의지에 따라서가 아닌, 궁궐을 유원지화하고 구경거리로 삼으려는 일본의 의도로 세워진 것이다. 또한 이왕가박물관은 조사, 연구 기능이 거의 없었고, 유물이 수집된 주요 방식도 시중에 나도는 도굴품을 구입한 것에 불과하였다. 유물전시는 체계적이지 못하고 단순히 형태적인 분류를 따랐을 뿐이었다. 즉 이왕가박물관은 우리나라 박물관의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박물관으로서 일제 식민지시기에 가장 중심적인 역할을 한 것은 1915년에 세워진 조선총독부 박물관이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박물관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1915년에 일제가 식민지 경영 5주년을 기념하여 경복궁 내에 ’如政五年紀念朝鮮物産共進會‘를 개최하였는데, 이를 기념하는 작업으로 근정전 동쪽의 미술관에 한국 古來의 회화·조각·불상·불구등의 많은 물건들을 진열하였다. 이 때 미술관으로 세워진 건물이 다음 해부터 총독부 박물관으로 이용된 것이다.이 박물관의 진열 역시 일제의 식민지적 의도가 적용되었다. 漢族이 이주하여 그곳에 漢人의 식민지가 만들어졌던 낙방의 대방군 시대부터, 유학의 영향과 계속되는 전란 및 당쟁으로 인해 산업도 공예.
    인문/어학| 2008.01.24| 6페이지| 2,000원| 조회(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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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본주의와 자유 (밀턴 프리드먼)
    '밀턴 프리드먼'의 『자본주의와 자유』를 읽고,˚자본주의, 그리고 자유˚-한국 자본주의가 나아갈 길.-Ⅰ. 序 文충격적인 뉴스의 연속이다. 쓰레기 상자가 만두소의 고기로 변신하고 있다는 사건부터 시작해서 고졸인 사람이 돈으로 학위를 사서 몇 년 동안이나 대학교수로 재직했다는 보도까지, 그리고 전 서울 시장이 개인적 이익을 위해 특정한 법률을 통과시켰다는 소식도 마찬가지이다.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비윤리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개인의 이익을 추구했다는 점이다. 사실 개인의 이익 추구는 자본주의 사회를 유지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개인의 이익추구는 어느 선 까지 허용해야 하는 것일까?한편, 21세기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가치는 정부개입의 축소를 끊임없이 외치고 있다. 동시에 개인의 자율성, 특히 경제부문에서의 자율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신자유주의 가치를 수호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비효율성을 근거로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 정책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그렇다면 이와 같은 ‘작은 정부’의 형태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가능할까? 그리고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복지정책의 일부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재활 시스템은 축소돼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자본주의와 자유』라는 책을 통해 찾아보려고 한다. 더불어 현재의 한국 자본주의 모습을 진단하고, 대다수가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한국 자본주의의 미래와 나아갈 길을 제시해 보려고 한다.Ⅱ. 本 論1. 자유의 향유 vs 윤리적 문제밀턴 프리드먼은 이렇게 말했다.“자유는 개인이 자유를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를 내포하는 개념이 아니며, 매사를 포괄하는 윤리도 아니다. 실로 자유주의자의 주된 목적은 ‘윤리적 문제를 개인이 해결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다.”(p.41.)밀턴다운 주장이다. 그는 개인의 자유가 시장경제의 자원배분과 소득분배를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돕는다고 보았다. 윤리적 문제의 해결을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이러한 생보았던 것이다.그렇다면 ‘윤리적 문제의 개인적 해결’을 피력했던 그의 주장은 과연 실효성을 얻을 수 있을까? 그는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았다. 인간은 자신의 이익 앞에서 다른 사람의 자유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개개인의 이익추구는 그들의 자유를 저촉하게 만든다고 보았다. 깨끗한 음식을 선택하고 싶은 자유와 불량식품을 만들어 이익을 추구하려는 자유가 동시에 향유될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이다. 그래서 그는 어느 한쪽의 자유가 향유되기 위해서는 때때로 다른 쪽의 자유가 제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p.63.)이러한 주장에 근거하면, 개인의 자유 향유에 따른 윤리적 문제는 개인이 해결 하도록 내버려 둘 수 없게 된다. 두 가지의 자유가 충돌하다면, 윤리적으로 옳지 못한 자유를 제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또 다른 그의 주장이 떠오른다.“개개인은 절대적 자유를 누릴 수 없기 때문에 정부가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토론장으로서나, 정해진 규칙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심판자로 기능해야 한다. 규칙의 의미에 대해 이견이 있을 때 그 차이를 조정해주는 일, 내버려두면 정정당당하게 경기하려 하지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그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제하는 일, 이러한 일들이야말로 자유사회에서 정부가 맡은 기본적 역할이다”(p.62.)이러한 견해는 개인의 정당하지 못한 자유추구에 대하여 정부의 개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밀턴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윤리적 문제를 개인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부가 정정당당하게 경기하려 하지 않는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그 규칙을 준수하도록 강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자유의 영역을 윤리적 문제까지 확장해야 한다는 건지, 아니면 비윤리적 행위로 경제활동을 하는 자의 자유는 제한해야 한다는 건지, 그의 생각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부분이다.아마도 그의 주장은 우선적으로 윤리적 문제를 개인에게 최대한 위임하되, 만약 그 문제가 다수의 자유를 위협하게 되면 그때 중러야 하는가?이처럼 밀턴이 주장하는 ‘작은 정부’는 개인의 자유 추구에 따른 윤리적 문제에 대하여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조금 더 큰 정부”의 모습이 필요하게 되는 순간이다.2. 밀턴이 말하는 ‘작은 정부’란 없다.밀턴은 자발적인 교환에 지나치게 큰 비용이 들거나, 그러한 교환이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일에만 한정하여 정부의 개입을 허용하였다. 즉 정부를 시장이 자력으로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하고 경쟁의 규칙을 정하고 중재하며, 집행하는 주체로 파악한 것이다.한편, 생각해보면 시장을 통해 할 수 있을 법한 일이지만 기술적 제약이나 그 비슷한 상황 때문에 처리하기 어려운 몇 가지 일들도 정부를 통해 수행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다시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첫째, 전화시스템이나 수도시스템처럼 기술적인 이유로 여러 개의 기업보다 하나의 기업만이 존재해야 할 경우, 이를 정부에게 맡기자는 것이다. 이는 시장의 불완전성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오히려 정부에게 맡기는 것이 다수에게 이익을 줄 것이라는 밀턴의 믿음 때문이었다.둘째, 외부효과의 해결이다. 자선활동이나 환경을 오염 시키는 행위는 그 혜택이 시혜자 이외의 사람에게도 돌아가기 때문에 자유시장 내에서 적정량의 생산을 유도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이처럼 시장의 불완전성을 바탕으로 발생하는 일들은 정부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이것 외에도 밀턴이 주장하는 정부의 역할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번에는 축소해야 하는 기능을 중심으로 나열해 보겠다.첫째, 그는 정부에게 화폐에 대한 책무를 수행 하게 하면서도 그러한 목적으로 정부에 부여되는 힘을 제한하려고 했다. 정부가 이러한 힘을 남용하게 되면 자유사회가 약화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둘째, 국제 무역에서 이루어지는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이 제거되기를 바랬다. 더불어 수입할당이나 그 밖의 정량제한도 철회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셋째, 조세제도의 불합리성을 지적했고, 이와 관련된 법인세와 누진세 등의 축소?폐지를 주장하였다.이처럼 밀턴은 정부의 역야 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이 책의 서론에도 잘 나타나 있다.“자유인은 국가가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지 않을 것이고, 자신이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도 묻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도 각자가 맡은 바 책임을 다하고 저마다 목적을 이루며, 무엇보다도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나와 내 동료 시민들이 정부를 통하여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물을 것이다(p.23.).”하지만 밀턴이 주장하고 있는 ‘작은 정부’의 모습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된 상태―적극적으로 세금이 거두어 진 상태―를 전제하고 있다. 정부가 독점기업을 운영하고, 외부효과를 해결하며, 화폐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은 정부’ 역시 조세 징수를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법인세와 소득세와 같은 큼직한 조세징수를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밀턴의 모순된 발언은 그가 말하는 ‘작은 정부’가 존재할 수 없음을 증명해준다.3. 사람에 대한 투자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가진다.그는 직업 및 전문교육을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한 형태로 보았고, 기계, 건물 또는 다른 형태의 비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와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는 비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에 비해 과소하게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밀턴은 그 이유를 자본시장의 불완전성에서 찾았다.예를 들어, 물적 자본에 대한 투자의 재원으로 일정 금액을 대출할 경우, 대출자는 물적 자산 그 자체에 대하여 저당권이나 잔여재산분배청구권의 형태로 어느 정도 담보를 확보할 수 있다. 만약 상환이 힘들어 지더라도, 그 물적 자산을 매각함으로써 투자의 일부분을 회수할 수 있다.하지만 인간의 소득능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이와 유사한 대출을 시행할 때는, 대출자는 그에 견줄 만한 어떠한 담보도 얻을 수 없다. 노예제 국가가 아닌 이상 투자를 체화하고 있는 개인을 매매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설령 매매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 담보가치는 물적 자산에 견줄 수 없을 것이다.따라서 자신의 수정부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그런데 그는 이 문제에 관해서도 정부의 개입 범위를 제한해 놓았다. 즉 정부의 투자금액은 이에 대한 추가수입이 투자액을 갚고 시장이자율만큼의 수익을 산출하는 선에서 개인에게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인적자원에 대한 정부의 보조금을 차후에 개인이 모두 갚게 하는 시스템의 도입을 주장한 것이다.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개인은 승인받은 교육기관에서 직업훈련을 받을 곳에 자금을 쓸 것을 약속하고, 정부로부터 매년, 일정 기간, 일정 한도의 금액을 조달받게 된다. 동시에 개인은 정부에서 받은 1000달러당, 자신의 소득 중 일정 비율을 앞으로 매년 정부에 지급하겠다는 계약을 맺는다. 이러한 방식으로 직업훈련을 받는 개인들은 자연스럽게 직업훈련에 대한 전체 비용을 부담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이 시스템은 운이 좋아 보조금으로 훈련을 받는 사람들이 그 투자로 인한 모든 수입을 누리게 되는 것을 방지해 준다고 한다. 보조금의 비용을 일반 납세자들이 부담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왜곡된 소득의 재분배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하지만 이 시스템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예를 들어, A라는 사람이 직업훈련을 통해 능력을 향상시켰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마침 A가 속해있는 회사의 내부사정이 악화되어 A에게 향상된 능력만큼의 급여를 지급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간주하자. 이 경우 A는 “직업훈련동안 받지 못한 임금”이라는 기회비용과 정부에게 상환해야 하는 “보조금액”을 이중으로 떠맡게 되어 직업훈련을 받지 않았을 때보다 더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이다.인간은 이익을 창출하는 ‘인적자본’이기에 앞서 감정을 느끼고, 생각할 줄 아는 ‘인간’이다. 하지만 밀턴은 ‘인간’을 ‘인간 자본’으로만 보았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직업훈련 시스템’은 사람들에게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없다. 이 시스템은 임금이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개인의 개별적인 상황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인적 자본에 대한 투자가 위험이 많.
    사회과학| 2007.12.03| 6페이지| 3,000원| 조회(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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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극화 문제의 해결은 또다른 성장을 부른다
    -성장이 지속되려면 국민통합부터 이루어져야20711767 -유선미소득 불평등 지수인 지니계수가 최근 4년 동안 해마다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이는 상위층과 하위층의 격차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가정형편상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 하는 어린 학생들은 최저임금에 묶여 하루하루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매일밤 서울역에는 하룻밤 묵을 곳이 없는 노숙자들로 가득차 있다. 헌법에 장애인 고용법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려는 기업 때문에 장애인들은 자신의 노력 여부와 관계없이 취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다른 한쪽은 조기유학, 조기 영어교육 등의 사교육 열풍을 주도하고 있고, 성형수술과 어학코스를 묶은 호화판 해외연수 프로그램까지 참여하고 있다. 또한 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몇 십억 짜리 아파트는 경쟁률이 치열하여 분양 받기도 힘들 정도이다.우리 사회는 소득 양극화, 교육 양극화와 같은 부유층과 빈곤층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사회 양극화라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시장경제원리를 기본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의 편중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하지만 잘 사는 것과 못 사는 것의 차이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부모 밑에서 태어나고, 장애가 있고 없고, 무슨 직종에서 일을 하느냐와 같은 사회 구조적인 틀에 의해 결정된다면 이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자유무역 협정, 대통령 선거, 공직자 부정부패 등 굵직한 사회 쟁점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회 양극화 현상. 그 원인은 무엇이고 사회 양극화 문제 해결을 통해 국민 통합의 길로 가기위한 방안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사회 양극화 현상의 원인을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첫 번째 원인은 분배보다 성장을 위주로 한 경제 정책이다. 1960년대부터 IMF 외환위기까지 우리나라는 중공업, 제조업 위주의 수출 정책을 기반으로 단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이 과정에서 도시와 수도권 그리고 재벌 위주의 대기업은 크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농·어촌은 본연의 모습을 잃어 버리고 황폐화 되었다. 그리고 중소기업은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 내더라도 대기업에 묶여 제대로 된 발전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대기업이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강력한 힘을 이용하여 더 좋은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을 가만히 놔두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은 어떻게든 그 기술을 구매 하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대기업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계약서가 작성되기를 강요한다. 심지어 계약서를 위조하여 중소기업을 무너뜨리면서까지 이익을 취하기도 한다. ‘얼라이언스시스템’이라는 중소기업 역시 이러한 대기업의 횡포로 문을 닫게 되었다. 이처럼 성장 위주의 정책으로 한쪽으로만 발전하는 기업 구조는 양극화의 원인으로 작용한다.IMF 구제 금융 원조를 받기위해 이행해야 했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 도입이 그 두 번째 원인이다. 이는 금융, 증권 시장을 개방하여 외국 자본의 유입,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 위주의 산업 구조를 만들었으며 주식과 벤처기업을 통해 고소득자를 양산시켰다. 반면에 명예퇴직과 정리해고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비정규직 채용의 증가는 저소득자를 훨씬 많이 증가 시켰다. 이로 인해 소득의 양극화는 더욱더 심해지기 시작했다.특히 노동시장의 유연화는 ‘新’노동탄압이라고 불릴 만큼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 근로자과 거의 같은 일을 하지만 임금은 정규직의 반밖에 받지 못한다. 이는 사용자에 있어 노동비 절감을 의미하므로 그들에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준다. (주)코오롱 역시 기존의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 노동자를 채웠다. 문제는이러한 부당한 해고에 대해 노동자와 회사측간에 어떤한 합의도 이루어 지지 않은 채 기업 마음대로 결정 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안이 추진될 시기의 회사측은 이들과의 대화조차 거부하고 용역경비 비용을 지출하면서까지 노동자들을 탄압했다.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우 또한 해고된 노동자 못지않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임금차별도 문제지만 더욱더 견딜 수 없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차별이라고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야근을 해도 간식거리가 나오지 않는다. 그들에겐 안전교육도 실시되지 않고 안전모나 안전화 역시 지급되지 않는다. 특근이 있어도 성과급이 지급되지 않고 명절 귀향비도 지급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노조도 결성하고 개별적으로는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도 행해 보지만 노동자들은 여전히 기업으로부터 탄압을 받을 뿐이다. 이와 같은 비정규직의 양산과 그로 인한 해고는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하고 더 나아가 상층부와 하층부의 간격을 더 넓히는 결과를 초래한다.세 번째는 기업이 노동자를 자본의 이익실현 도구로 생각하는 것이다. 기업은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방안으로 생산성의 향상을 유도하기보다 노동비를 절감함으로써 이익을 취하려고 한다. 한국은행이 지난 1월에 발표한 자료 따르면 서민들의 실질소득 향상은 0.3%에 불과한 반면 기업들의 이윤은 62%나 늘었다고 한다. 또 국가에서 발생한 재화의 공정한 분배를 가늠해 보는 노동소득분배율 외환위기 이전인 1995년 63.3%에서 2004년에는 58.8%로 4.5%나 감소했다. 즉, 일하는 노동자들의 몫은 줄고 기업의 이윤은 대폭 증가했다는 얘기다. 이처럼 실업의 증가와 양질의 취업이 줄어드는 현상은 노동자 대다수의 생계를 위협하여 양극화 문제를 심화 시킨다.네 번째, 정부의 잘못된 정책도 양극화 심화에 일조했다. 사전에 철저한 계획없이 이루어진 대규모 국책 사업은 국민의 세 부담을 증가시켰다. 그 예가 ‘새만금 간척사업’이다. 간척사업을 완성했을 때의 기회 비용과 중간에 그만 두었을 때의 기회비용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정부의 계획 부주의로 공사가 지연되면서 발생한 기회 비용만 해도 2조원에 달한다. 정부의 부주의로 필요이상의 세금을 걷는 것 역시 하위층에게 큰 부담을 주게 되어 부의 양극화를 심화 시킨다.그리고 정부의 흐지부지한 복지정책과 소비세, 유류세, 주세와 같은 여전히 높은 간접세 비중도 소득 재분배 효과를 반감시킨다. 특히 2006년 지금까지 시각 장애인에게만 허용되어 오던 안마업을 개방하라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그렇지 않아도 생계유지가 힘든 이들을 정부가 직접 나서서 절대적으로 가난한 하층민으로 전락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복지 정책을 제대로 시행할 자신이 없으면 적어도 그들의 일자리는 빼앗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장애인을 더 심한 사회적 약자로 전락시키는 정부의 정책은 소득 재분배에 해가 될 뿐이다.그렇다면 이러한 사안들에 대한 해결방안은 어떠한 것이 있을까? 그것의 첫 단계는 양극화의 맹점이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하는 것이다. ‘한 국가, 두 국민’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소득의 많고 적음에 따라, 교육 수준의 높고 낮음에 따라, 장애가 있고 없고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어떠한지에 따라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으로 분열되는 현상은 국민 모두에게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부유층은 사회 환원, 기부 등을 통해 사회 통합에 기여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동시에 하층부를 바라보는 개인적인 시선 또한 달라져야 할 것이다. 노숙인들은 노숙 생활의 혹독함 이외에 사회적 낙인 때문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한다. 이는 노숙인의 자활 의지에 치명적인 적으로 작용하여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단순히 정부와 사회의 지원만으로는 양극화가 해결되기 힘들다. 주변 사람들의 인식변화가 동반되어야 양극화 문제에 대한 해결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사회과학| 2007.08.08| 3페이지| 1,500원| 조회(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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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우리학교를 보고 - 재일동포 문제에 대한 이해와 해결방안
    북한 사람들이 쓰는 억양처럼 아니 북한 사람들이 듣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할 만한 어눌한 말투를 쓰는 사람들, 그리고 일제 강점기를 떠올리게 하는 검고 칙칙한 치마 저고리를 입고 있는 여학생들, 거기에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공부는 하지 않고 북한 TV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춤을 추거나 노래를 부르며 마음 편히 놀고 있는 철없는 학생들, 그리고 카메라가 자기들을 찍고 있는데도 자신들의 외모가 예쁘게 나오고 있는 건지 아닌지에 대해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바보같이 크게 웃고만 있는 학생들, 이것들은 영화가 막 시작했을 때 내가 ‘홋카이도 조선초중고급학교’의 학생들을 보고 떠올렸던 생각들이다.홋카이도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초중고급학교는 해방직후 재일 조선인 1세들이 조선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그 정체성을 일본 땅에서 살아갈 후손들에게도 물려주기 위해 그들의 손으로 직접 세운 민족학교이다.재일동포 1세들은 식민지 한국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 일본으로 이주 했거나, 태평양 전쟁 시기에 강제로 일본까지 끌려온 사람들을 가리킨다. 1945년, 나라는 해방되었지만 그들의 상당수는 귀국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한국은 해방정국의 혼란 때문에 일자리가 부족했고, 특히 재일교포가 귀국 할 경우에는 1,000엔 이상을 가져갈 수 없도록 미군정이 재산반입을 엄격히 제한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재일 동포는 조국으로 귀국하게 되더라도 생계를 꾸려 나가기는 쉽지 않았다. 더구나 남북한으로 갈라진 정치적 상황은 그들의 귀국을 가로막는 커다란 장애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의 재일동포 1세들은 분단의 상황이 종식되고 자신들의 경제적 처지가 나아지면 귀국을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귀화는 곧 '일본에 대한 또 다른 형태의 굴복'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비록 육신은 일본에 머물러 있더라도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것에 대해서는 완강히 거부하는 입장이었다.위에서 언급한 조선초중고급학교의 학생과 교원들은 대부분 재일동포 3세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사람들은 귀화를 하지 않은 재일 동포 1,2 세대의 후손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들도 여전히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의아하게 생각되는 것은 이들의 고향이 대체로 현재의 남한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문서상의 국적은 한국이 아니라 조선이라고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학교의 구성원들은 왜 한국이 아닌 조선 국적을 선택하게 된 것일까? 남북으로 쪼개진 한반도의 대치 상황도 모자라서 재일동포의 세계에서도 좌익과 우익으로 갈라진 이념상의 ‘휴전선’이 존재하는 것일까?해방이후 1960년까지 정권을 장악하였던 이승만 정부는 정권의 유지와 임기 연장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였으며, 그 수단으로 냉전 이데올로기에 편승하여 좌파를 탄압하고 북진통일을 주장하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재일동포에 대한 관심은 소홀할 수 밖에 없었다. 차기 정부인 장면 내각 때에도 재일동포에 대한 정책은 진전되지 않았다. 3.15 부정 선거에 관한 책임자 처벌, 가난을 극복하고 경제 성장을 이룩해야 한다는 절박감, 4.19 이후로 뜨겁게 달아올랐던 통일 열기의 수용 등 당시로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재일동포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박정희 정부에 들어서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박정희가 정권을 잡고 있던 1965년에 일본에서는 제2의 을사조약이라고 할 만한 또 다른 형태의 굴욕 회담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한일협정이었다. 이 협정은 크게 어업에 관한 협정,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 문화재 및 문화협력에 관한 협정,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 및 대우에 관한 협정으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특히 문제시 되는 것은 경제 개발비라는 명목으로 일본에서 차관을 들여오는 대신 일제시대 이래로 이루어진 일본의 만행에 대한 한국 국민의 청구권, 즉 개개인이 일본정부로부터 마땅히 받아야 할 피해 보상의 권리를 정부 스스로 포기했다는 점이다. 이 과정에서 재일 교포의 법적지위 및 영주권 문제는 한일협정을 계기로 자연스레 일본 정부의 임의적 처분에 맡겨지게 되었다.한편, 북한 정부는 재일교포의 처지를 외면했던 남한 정부와는 달리 당국의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재일 교포에 대해서 꾸준한 관심과 외교적인 노력을 병행하였다. 그리하여 1950년대 말부터 대략 10만 여명에 이르는 재일교포들이 북한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재일 교포들이 북한에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잔류하더라도 그들에 대한 지원은 멈추지 않았다. 조선초중고급학교와 같은 민족학교에 대해서 물심양면으로 지원해 준 것도 위에서와 같은 사실을 대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재일 교포들은 일본에서 겪어야 하는 차별과 멸시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연고지가 어디인가에 상관없이 북한의 국적과 풍습을 지켜 오게 된 것이다.영화 장면 가운데 조선초중고급학교 학생들이 ‘조국’으로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원산행 배를 타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들이 인천이 아닌 원산행 배를 탔던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남한 정부는 북한 정부와 같이 재일 교포에 대한 지원을 하기는 커녕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는 미명하에 그들의 권리를 일본정부에 팔아넘겼다. 비록 1980년대 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정부가 재일교포들의 한국 국적 취득을 위해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실속 없는 허울에 불과하였다. 한국 국적을 취득한 재일 동포들은 문서상으로는 한국의 국민으로 인정될 수 있었지만, 여전히 일본 국내법의 적용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리는 없는 것이다. 즉, 기본적인 참정권조차 행사할 수 없는 껍데기에 불과한 ‘한국민’인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일본에서 거주하고 있는 재일 교포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동시에 민족학교를 다니는 재일교포 3세의 학생과 교원들이 한국의 국적을 취득하지 않는 요인이 되었다.물론 재일 교포 중에서는 조선의 국적을 고집하고 있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개 일본에서의 재일동포는 조선의 국적을 고수하고 있는 조선인 총연합일본(총련)과 친한국적인 성향을 가진 재일한국인거류민단(민단)의 두 단체로 나뉘어져 있다. 일본은 현재 북한과 국교가 체결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한국의 국적을 취득하거나 일본 국적을 취득하는 방법 뿐이고 북한의 국적은 취득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일동포가 ‘조선’국적을 선택하는 것은 곧 나라 없는 국민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일본정부의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은 민단보다 총련쪽이 더욱 노골적이다. 이러한 모습은 영화의 곳곳에서 쉽게 발견된다. ‘조국’을 다녀오는 수학 여행 이후, 원산항에서 일본으로 돌아오는 항구에서 여러 일본의 우익단체들이 학생들의 귀국을 저지하는 시위를 벌인다든지, 일본 우익 단체가 이들 학교에 전화를 걸어 조선학교의 학생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한다던지, 또는 일본 아이들이 조선학교 학생들은 죽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장면들을 통해서 그 심각성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심지어 요즘 일본 사람들은 일본 당국의 총련 탄압이 북한의 핵실험 때문이라 생각하고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는 실정이다.해방이후 좌?우익의 대립은 수많은 아까운 생명을 앗아갔다. 이에 더하여 한국 전쟁은 첨예한 이념 갈등은 물론이려니와 한반도의 땅덩어리마저 반으로 갈라 놓았다. 독재 정권에서의 이념 대결은 그들의 비정상적인 정권 형태를 그럴 듯한 정권으로 합리화 시켜 주었고, 재일 교포의 지위에 대한 권리 역시 일본 정부가 자의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방치하였다. 게다가 재일동포 내에서도 성향이 다른 두 집단으로 갈라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됨으로써 이들은 뚜렷한 이유없이 반목하고 대결하여 상대방을 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즉, 좌?우익의 대립이 분단의 분단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7.06.09| 3페이지| 2,000원| 조회(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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