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흔히 박목월은 모더니즘을 피하고 시문학파의 방법에 다시 정신과 육체를 부여하였다고 말한다. 목월은 시어를 다듬는 데 누구보다도 힘을 기울인 시인이었으며, 출발 때부터 이미지를 위한 묘사에도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1973년에 월간 《심상(心象)》을 창간한 것만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이미지를 머리에 두고 있었는지 알만하다. 오늘 날 여전히 이미지는 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박목월은 동시와 시, 양쪽 모두 두각을 나타낸 훌륭한 시인이었다. 일제 때에도 한글로 시를 쓰고 사랑한 것은 문학적 차원에서는 바로 민족애와 상통함을 알 수 있다. 언제나 우리들 서민의 곁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청노루 박목월. 이제부터 박목월의 생애와 문학적 생애를 중심으로 그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박목월의 생애시인 박목월의 본명은 영종(泳鐘)이다. 1916년 1월 6일 경북 경주군 서면 모량리 571번지에서 부 박준필과 모 박인재 사이의 2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조부 박훈식은 일찍이 눈을 뜬 개화의식의 소유자로, 아들 준필이 대구의 중학교를 졸업하도록 하고, 며느리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목월의 부친은 당시 경주군 수리조합의 이사로 목월에게 엄격한 법도를 가르쳤고, 이에 반해 어머니는 자상한 사랑을 베풀었다. 목월은 7세 되던 해에 건천 보통학교에 입학한다. 목월은 어려서부터 상상력이 풍부한 소년이었다. 1929년 3월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0년 4월 대구에 있는 계성 학교에 입학한다. 목월은 우등생은 아니지만 온순하고 성실하며 부지런하였다. 목월은 16세가 되던 해에 아동잡지에 동요를 투고하였고, 1933년 봄 「통딱딱 통딱딱」이라는 동시를 처음 발표하였으며, 그 해 6월 『신가정』에 「제비맞이」가 현상 당선되면서 정식 동요 시인으로 등단을 하였다. 이를 계기로 목월은 평생 문학의 길을 걷기로 결심하게 된다.19세가 되던 1935년 3월에 목월은 계성 학교를 27명중 14등으로 졸업한 후, 5월에 경주의 동부금융조합 서기로 취직한다. 이, 그토록 갈망하던 해방의 순간이 도래하였지만 나라는 좌익과 우익의 첨예한 갈등으로 인해 또 다른 혼란 상태를 맞이하게 된다. 그런 와중에서 목월은 김동리의 권유 로 우익 단체인 청년문학가협의회에 가입하면서, 조지훈, 박두진 등과 교류를 나누면서 『청록집』을 발간한다. 1950년 6월에는『시문학』이라는 시 전문 잡지를 발간하지만 한국 전쟁으로 인해 창간호가 종간호가 되고 만다. 그러나 한국 전쟁 후의 시편들을 보면 전쟁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지만 민요적 가락이 자취를 감추었고 표현도 조금은 느슨해지고 있다. 목월은 1955년 12월에 첫 번째 개인 시집『산도화』를 상재함으로써 초기의 시 세계를 일단락 짓는다.1950년대 후반은 목월의 일생 중에서 가장 많은 경제적 시달림을 받은 시기라 할 수 있으며 1962년에 한양대 국문과 교수로 임용된다. 그는 한 시간 강의를 위해 사흘을 뜬눈으로 새우면서 강의 준비를 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성실하게 교수의 직무를 수행하였고, 그러면서 자기 시론을 논리적으로 체계화해 나갔다. 1962년 11월에는 당시 영부인인 육영수 여사의 문학 개인교수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1965년 4월에는 한국 시인 협회가 재 창립되었고, 1968년 2월 회장에 취임하여 하직 때까지 그 자리를 맡는다.목월의 나이 48세 때 상재된 시집『청담』부터 목월의 시 세계는 “생활감정에 밀착되면서 시를 통해 인간의 지혜로운 세계를 탐구” 하는 것으로 전환한다. 한편, 목월의 나이 52세 때 간행된 시집『경상도의 가랑잎』은 또 다른 방법으로 생의 달관을 노래하고 있다.자연적 정한의 세계에서 출발하여 현실생활을 거쳐 그 달관의 경지에 도달한 목월은 50대인 1973년 초봄 한국시의 전체적 수준의 향상을 위해 사재를 털어 시 전문지를 만들기로 결심하고 10월『심상』을 창간한다.목월에게서 시는 삶 자체였다. 1978년 3월 24일, 목월은 평소처럼 새벽 산책에서 돌아온 뒤 가벼운 어지럼증을 느껴 자리에 누웠고, 그리고는 편안한 모습으로 영원히 잠든떨어진 곳에 김동리가 살았다. 동리의 나이가 23살 목월의 나이 20살 일 때, 둘은 계성 동문 관계로 자주 만났다. 그만큼 정이 돈독했다. 동리는 ‘소원, 우리 저기 갈까?’ 하면 목월은 그곳이 술집인 줄 알고 두 말 없이 그곳으로 향하기도 했다. 후에는 좋아하는 색이 바뀌었지만 그 무렵에는 노랑색을 좋아했다. 또 눈을 퍽 좋아했다. 눈 속을 헤매기도 한 목월은 아직 시단에는 오르지 못했고 동시를 쓸 때였다.박목월은 큰 두 줄기를 형성하고 있는데 하나는 동요와 동시를 쓴 줄기이며, 나머지 하나는 시(성인)로 이루어지는 줄기다. 동요와 동시는 앞에서 말한 대로 초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고 또 ‘즐겁기 때문’ 이라는 한 마디로 윤곽을 잡을 수 있다. 어린이에게는 무엇보다도 즐거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시는 그렇지 않다. 그 동안의 전쟁과 삶에 대한 성찰 등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변해간다는 것은 그 가운데 ‘발견’ 이라는 것이 도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목월이 1978년 3월 24일에 작고했는데 63년간이라는 동안은 일제 식민지시대, 6 ? 25 시대 등 엄청난 일이 있었던 것이다.목월의 동시에 대한 애정은 소박성을 넘어서 나라말, 민족 정서에 대한 인식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러므로 목월의 동시가 동시로서의 우수성과 함께 동시에 대한 인식도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3. 목월 시 대표작(1)「산철쭉」이 지닌 의미a 射程距離 안에서b 산철쭉이 핀다c 미소가 굳어진 봉오리가d 불안 속에 밀집하여e 고개를 남으로 돌린다.f 그g 갸륵한 向日性에h 나의 가슴이 더워온다I 死角이 없는j 자연속에서k 이편 비알에는 늙은 소나무l 줄기에 박힌 破片이m 옹이로 아물었다.n 그 고된 시련o 나와 나의 형제의 것이다.「산철쭉」이라는 작품은 목월의 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첫째는 신자연이라는 의미를 대표한다. 목월 시를 자연과 결부해서 설명할 때 자연은 물론 소재에 지나지 않는다. 청노루, 자하산 등 상상력을 통한 자연이라 해도 그 자 갈밭을 건너는 바람뭐락카노 뭐락카노 뭐락카노니 흰 옷자라기만 펄럭거리고……오냐, 오냐, 오냐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이승 아니믄 저승에서라도인연은 갈밭을 건너는 바람뭐락카노, 저편 강기슭에서니 음성은 바람에 불려서오냐, 오냐, 오냐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죽음은 사랑과 함께 오랜 옛날부터 가장 널리 노래되는 문학 소재이다. 그것은 아마 우리의 삶에서 그것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의 삶이 더욱 깊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들은 알 수 없는 인연의 질긴 줄에 이끌려, 자신의 의사와는 전혀 관계없이 타의적으로 주어진 삶을 살아가며, 사랑으로 인해 생(生)의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이루지 못하는 사랑에 괴로워 울기도 한다. 또한 언젠가는 반드시 찾아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많은 고통을 받기도 한다.이 작품은 바로 죽음을 소재로 하여 죽음을 넘어서는 인연과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다. 앞의 이 아우의 죽음을 다룬 것에 비해, 이 작품은 누구의 죽음을 말하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다. 다만 끊을 수 없는 인연이 매우 강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면, 시인의 가족이거나 절친했던 친우(親友)일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이 시의 형식적 특징은 먼저 화자와 청자를 등장시켜 대화체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뭐락카노'라는 사투리가 제시하는 삶의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과, '오냐'라는 시어가 제시하는 응답 내지 수긍의 상황이 작품 전체의 시상과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강'으로 나누어진 삶과 죽음의 세계에서 시적 화자인 '나'는 이승인 강 이편에서 저승인 강 저편으로 건너간 사람을 간절히 그리워하고 있다. 나는 지금 '이승 아니믄 저승으로 떠나가는 뱃머리'에 앉아 '저편 강기슭에서' 나를 향해 외치는 그의 말을 들으려 하나, '바람에 불려서' 도저히 알아 듣지 못한다. 그래서 '니 뭐락카노' 하며 나도 그를 향해 소리 지르지만, '나의 목소리도 바람에 날려서' 그에게 전달되지 못하고 그저 강안(江岸)에 흩어질 뿐이다. 왜냐하면, '강'이 너무 들리지는 않아도, 화자는 더욱 큰 소리로 재회의 약속을 하며 그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애타게 노래하는 것이다.이렇게 요약될 수 있는 이 작품은 다음과 같이 세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제1단락인 제1-4연에서는 피할 수 없는 운명적 벌리의 상황을 펼쳐 보이고 있다. 강기슭의 차안과 피안, 곧 이승과 저승으로 하직을 고해야 하는 것은 운명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냐? 라는 물음이 하나요,제2단락인 제5-7연에서는 비록 운명적 상황으로 인한 별리일지라도 연(緣)을 끊어 놓을 수 없는 것 아니냐? 라는 물음이 둘이라면,제3단락인 제8-9연에서는 온건한 자기 긍정으로 회귀하여 운명에 순응하면서 이별의 정한을 초극해 내고 있는 것이 셋이다.이와 같은 구조는 마침내 이별의 정한을 생사를 초극하는 경지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서정 미학의 정점에 '이별의 정한'이 놓이게 한 것이다.4. 박목월의 문학사의 업적(1) 자연의 성격목월을 자연 시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피상적인 분석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자연은 오직 시적 대상이며 소재로서 주관적 현실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소재나 대상의 측면만을 두고 자연 시인이라고 한다면 수긍할 일이겠으나 시 정신이 보다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니 이 점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그의 자연물은 예컨대 청노루나 자하산 등의 추상적 물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 시를 ‘심혼의 자연’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다. 동시에 나오는 순한 동물들과 환상적 기법은 초기 시의 자연을 설정하는 데 바탕이 되고 있다. 후기 시에서의 자연은 처음에는 실제의 자연이지만 그 자연을 통하여 심혼의 자연을 희구하는 동안 초록 이미지는 구원 의지가 담긴 자연을 발견하게 된다. 이 자연은 부활의 모태가 된다. 때 묻지 않은 자연을 삶의 지표로 삼았기 때문에 이 자연이 후기 신앙시에서는 부활하는 의지의 자연, 인간의 본향과 같은 자연으로 바뀔 수 있게 되는 것이다.목월 시는 청색 계열이 주조를 이루고 있는데 초기 시에서는 뚜렷한 구분이 없지만 후기 시에서는 삶
김춘수(金春洙,1922.11.25.-2004.11.29), 호: 대여(大餘) 한국의 시인1. 시적 순수성의 옹호김춘수 시인은 가장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불행한 시인이다. 일견 볕 잘 드는 방에서 언어와 놀이에 빠져 자기 유희에만 열중한 시인의 뒷잔등을 먼저 보게 되는 듯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들여다보면 그가 방 밖 세계에 대한 예민한 시선과 자신의 자유 의지 사이에서 긴장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음을 보게 된다.그의 삶과 시적 편력은 매우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하지만 그의 시에 드리워진 시인의 생애는 마치 추상적 편린과도 같아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시에서 생의 기미를 읽으려는 그런 독법 자체가 가장 무효화되는 시인이 바로 김춘수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역설적으로 시인은 고집스럽게 견지해 온 자신의 시세계가 딛고 있는 자신의 삶과 시에 대해 오해와 편견에 대해 끊임없이 설명하고 이해 시키려 해 왔다.그는 1922. 11. 25. 경남 통영의 부유한'수재집안"에서 태어났다. 통영보통학교를 졸업하고 경기중학에 입학했으나 중퇴하고 일본 동경의 예술대학 창작과에 입학했다. 1942년 일본 천황과 총독 정치를 비방했다는 혐의로 퇴학당하고 6개월간 유치되었다가 서울로 송치되었다. 통영중학과 마산중.고교 교사를 거쳐(1946-1952) 해인대학과 경북대,영남대 교수를 지냈으며(1960-1981),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국회의원을 역임했고, 이후 방송심의위원회 위원장 및 한국시인협회 회장 등을 지냈다.시작 활동으로는 1945년 '통영문화협회(유치환,윤이상,전혁림,김상옥 등)를 결성하면서 문화 계몽 운동을 하는 한편 본격적인 시 창작을 시작하였으며, 동인지 『로만파』(조향, 김수돈,1946),『시연구』(유치환,김현승,송욱,고석규,1956)를 발간한 바 있다. 시인은 초기에는 유치환,서정주,청록파의 시에 영향을 받았으며 30세가 넘어 비로소 자신의 시를 쓰게 되었다고 말한 바 있다.시인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시쓰기와 관련된 몇개의 삽화들이 있다. 통영바다와 전문씨암탉은 씨암탉,울지 않는다.네잎토끼풀 없고바람만 분다.바람아 불어라,서귀포의 바람아,봄 서귀포에서 이세상의제일 큰 쇠불알을 흔들어라바람아,- 「이중섭1」전문김춘수의 많은 시들은 그 일상적 맥락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불연속적 이미지의 병치,절제된 표현과 정제된 언어로 이룬 언어의 금욕주의, 너무 많은 공정을 거쳐 깎아지른 듯한 언어, 심상이나 비유에서 환기되는 비일일상적인 정경들이 중심적이기 때문이다. 언어로부터 의미를 거두어 내고 그리하여 삶과 일상,현실과 역사를 거세해 내려는 시인의 의지가 단계적으로 전개되어 가는 시기라 할 수 있다.타령조 연작과 이중섭 연작은 그의 시가 극단적인 무의미 시로 막 진입하려는 지점에 씌어진 시들이다. 이 시들에는 육체성이 두르러지는데 그간 시인이 벗어버리지 못한 순결 콤플렉스가 다소 극복되는 양상이 엿보인다. 감상과 이데올로기적 관념을 거세해 온 그의 무의미 시는 좀더 실험적인 단계로 들어선다.돌려다오불이 앗아간 것, 하늘이 앗아간 것, 개미와 말똥이 앗아간 것,여자가 앗아가고 남자가 앗아간 것,앗아간 것을 돌려다오.불을 돌려다오. 하늘을 돌려다오.개미와 말똥을 돌려다오.여자를 돌려주고 남자를 돌려다오쟁반 위에 별을 돌려다오.돌려다오.-「처용단장 2-1」중에서언어의 의미란 본디 끝없이 차연되고 미끄러지는 것이기에 기표가 실로 더 우세하며, 의미는 없으되 음악이나 주문 같은 원초적인 생명력을 지닌 언어만이 완벽하게 순수한 시를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의미의 계기성없는 소리의 반복과 리듬의 환기, 또 심리적 박동의 고조만으로 구체적인 현존을 느끼게하며,쓸모와 도구성을 내던져 버린 언어의 몸짓으로 현기증 나는 긴장 상태와 열락을 이루는 것, 이것이 무의미의 절정이라 확신한다.시인은 이 시들을 자신의 의지로 만들어 악보같은 시, 추상화 같은 시로 완성했다. 그러나 이 단계는 트릭의 정점인 동시에 한계와 맞닥뜨린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몰아 간 무의미 시에서 숨이 차오르는 힘겨움을 느끼게 된 것이다. 음절도 해체하고 을 함축하고 있다. 시인은 적극적인 고립과 소외를 감당하면서도 여느 차원과는 다른 시를 지향해 왔으며, 현실을 당위적으로 체험하게 하는 공리적인 효용성을 갖지 않는 절대 언어의 시, 무용지용의 시 세계를 추구해 왔다.고군분투하여 이루어 온 김춘수의 절대 언어와 무의미 시는 곧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신기루와 정신적 유희의 인공낙원 사이에서 위태롭게 존재해 왔다. 낭만적 토로나 인간적 체취를 거부하고 일상적 언어나 감각으로는 잡을 수 없는 그 어떤 '안타까운'것들을 시로 포착하려는 인공낙원의 의지는 바로 그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한다는 이유 때문에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시는 시인이 아닌 언어가 말하는 것이고 시는 인격이 아닌 인식으로 쓰는 것 이라고 주장하며 시의 향유는 삶의 모방이 아니라 춤이나 놀이와 유희정신과 같다는 자신의 시학을 올곧게 지켜왔다. 무용한 시를 통한 무상의 감동, 삶의 구속에서 벗어난 정신적 해방의 유희 공간- 이것이 바로 언어가 이루는 시의 세계라는 것이다.시인은 무의미와 의미의 세계를 선회하면서 시적 주체로서의 개인의식과 실존을 강조하고 존재론적 문제,내면 탐구, 언어의 딜레마,의미와 무의미의 문제들에 천착해 시를 한층 형이상학적 차원으로 끌어올렸다. 문학과 삶의 본질적 관계를 재조명하여 삶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역설적으로 삶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는 시의 존재 의의를 극대화한 것, 이것이 김춘수 시인이 지닌 시사적 의의이다.그의 절대적 예술관은 한국시가 지닌 인식의 넓이와 깊이를 더없이 확장시켜지만 역사와 삶의 문제들로부터 자유롭지 못해 온 한국 시의 현실에서 그의 유희정신은 부침을 거듭해 왔기 때문이다.4. 꽃의 시인 일생 마감김춘수 시인은 1946년 해방 1주년 기념사화집에 시 "애가"를 발표하여 등단하였으며, 초기의 시경향은 라이너마리어 릴케의 영향을 받았고, 1950년경부터 사실을 분명히 지시하는 산문성격의 시를 써왔다. 그는 사물이면에 내재하는 본질을 파악하고 시를 써 으로 일컫어 졌다. 2004년 11 있다. 그것은 자신 속에 숨겨진 몽상이나 본능의 불길 혹은 정열적인 탐구로 자신을 풍요롭게 하지 못한다. 그의 언어들은 과거의 세계가 지니고 있던 의미들의 창고와 단절되어 있으며, 현재에 있어서도 이 우주를 마음대로 요리하는 '전능적인 자아'의 마술적 손길들에 붙잡히지도 않는다. 그의 시들은 단지 '고독' 그 자체, 그것의 가난함에서 솟아나며, 그 가난 속에서 간신히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 무엇인가가 사라져버리는 풍경들이, 그리고 점차 말이 없는 침묵의 고요함에 지배되는 풍경들이 시적인 이미지들로 자리잡는다. , , , , 어떤 것을 들어보아도 그러하다. 이 불모의 시공간을 인식하는 것이 슬픔이며 동시에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면 그의 초기시들이 탄생하는 지점을 어느 정도 눈치챈 것은 아닐까? 전문가을 저녁 산과 들의 어스름 풍경을 어떤 고독한 사람의 죽어가는 광경과 겹친 이 시는 통상적인 기교를 뒤집었다. 즉 사람의 어떤 운명을 자연의 풍광으로 비유하는 대신 자연의 어떤 경관을 사람의 어떤 운명으로 바꿔놓은 것이다.자신을 살게 만들 수 있는 오직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면서 죽어갈 수 있는 사람의 죽음은 얼마나 슬프고 아름답고 정결한가? 그가 에서 '아름다운 꿈들은 사라지는가'라고 물었을 때 바로 이 슬프고 아름답고 정결한 것은 하나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이 불모의 세계는 그러한 것들이 사라진 채 어둠과 먼지 그리고 단단하고 두꺼운 침묵에 둘러싸인다. 나 의 불묘성을 보라.김춘수에게 이 불모성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깊이 탐색되지 않는다는 것은 초기시에서 치명적인 한계이다. 그러한 불모의 일상적인 세계로부터 자신을 스스로 격리시킨다는 순결함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그의 시들에서 두드러진다. 바로 이 부분이 후기의 에까지 그대로 이어진다는 것을 지적하기로 하자.소년의 고독과 그 순결함이 시적인 풍요로움을 상당부분 가로막았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그의 시들에서 시적인 이미지들을 빚어내는 힘이기도 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 고독하고 에서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약간은 철학적인 분위기에서 모두 정리하고 설명하는 구절들을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이 시에서 감동적인 울림을 갖는 생명력 넘치는 언어들로 탄생되기는 어렵다.4김춘수적인 시세계, 김춘수적인 미학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그의 , 에서 혹은 , 연작이나 그리고 최근의 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흐름을 생각해본다. 그 흐름을 통해서 희미하게 감지되는 어떤 것이 있다. 그의 시에서 이러한 독특한 흐름으로 가는 입구에 나 , 같은 시들이 놓여 있다. 마치 시간의 역사적인 흐름이 소멸된 것 같은 회화적 공간이 그러한 시들의 배경을 지배한다. 에서 아마도 우리는 그러한 최초의 순수공간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개인의 고독한 분위기는 전체 사물을 지배한다. 부분딸기밭에서 보던 일상적으로 익숙한 대상으로서의 딸기와 그로부터 낯설게 된 다방의 고독한 공간 속에서 놓인 딸기의 대조가 이 시의 회화적 평면과 그 미학을 마련한다. 그 진열장 안의 딸기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뻘겋게 달아오른다. 그것은 자신의 주위 공간을 빨아들이면서 그 가쁜 숨을 쉰다. 이 팽팽한 '낯설게 하기'는 '딸기'에 대한 우리의 익숙한 감각을 무너뜨린다. 여기서 과연 김춘수는 그가 '의미의 탈바꿈'이라고 불렀던 것을, 또 하이데거가 고흐의 (그는 세잔이라고 착오를 일으켰던 것 같다)에서 이룩했다고 칭찬했던 '유용성 너머의 근원적 의미'를 마련할 수 있었는가?김춘수가 이러한 전환점에 서서 이러한 목표 달성보다는 그러한 것에 대한 추구 자체를 시의 대상으로 삼아 성공했다는 것을 지적해야만 하겠다. 이나 , , ?눈짓? 등은 때로는 그러한 추구의 미묘한 상태나 좌절, 혹은 약간의 희열 등에 대해 노래한다. 우리가 너무 잘 아는 역시 그러한 단계의 여러 시도들로부터 결정(結晶)된 것이다. 사실 김춘수의 이러한 과정에서 볼 때 이 시는 오히려 너무 설명적이며 서술적이다. 그것은 오히려 이나 에서 비해 자신의 세계를 깊이 있게 드러내지 못한다
「 壬 辰 錄 」1. 유형분류한국 고소설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공통점을 지닌 작품들끼리 묶어서 고찰하는 유형론적 연구가 절실히 요망된다. 어느 한 가지 기준만으로는 한국 고소설의 전모를 드러낼 수 없기에 내용, 소재, 발생기원 등을 인용하는 다원론적 방법으로 한국 고소설을 나누어 보았을 때 「임진록」은 군담소설에 들어가게 된다. 군담소설이란 조선조 후기에 유행하던 한글소설로서 주인공이 전쟁을 통해 군담 및 영웅적 활약상을 보이는 작품군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것을 작품 소재의 원천에 따라 창작군담소설, 역사군담소설, 번역 및 번안군담소설로 나눌 수 있다. 즉, 허구적인 주인공을 설정하여 실제 역사와는 무관한 사건으로 꾸며낸 작품을 창작군담소설이라 하고, 역사적 전란에서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들의 활약상을 그린 작품을 역사군담소설이라 하며, 중국의 군담 소설을 번역?번안한 작품을 번역 및 군담소설이라 한다.임병양란 이후에 활발히 나타난 군담소설의 창작 동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첫째, 임병양란으로 인한 민족적 울분을 필설로나마 토로하기 위해서이다.둘째, 「삼국지연의」를 비롯한 중국소설의 애독이 큰 동인으로 작용하였다.셋째, 임병양란 이후 극심한 당쟁을 목격한 문사들이 충의의 윤리를 고취시키기 위한 방법의 일환으로 간신과 충신 간의 대결에서의 권선징악을 보이고자 군담소설을 창작하게 된 것이다. )대개는 역사군담류가 시기적으로 먼저 출현하고 그 뒤에 창작 군담류가 쏟아져 나온 것으로 보인다. 역사군담소설로는「임진록」,「임경업전」,「박씨전」등이 있으며, 창작군담소설로는 「유충렬전」,「소대성전」,「장백전」등이 있고, 번역 및 번안군담소설은「삼국지연의」가 있다. 조사하고자 한 은 역사군담소설이며 이 작품은 창작 연대, 작자가 미상이다.역사군담류로서 임진란을 소재로 한 대표작이「임진록」이다. 「임진록」은 임진왜란 전기의 하나로서 기존의 사실에 영웅적 인물행위를 과장 첨입하여 왜적에게 당한 통한을 앙갚음하고자 하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작허구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서 실존인물이 아닌 최일영이나 관운장 등을 내세워 전개시켜 나가는 것.3)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내용을 결합시킨 계열로서 위의 두 계열을 조합한 것.또한, 「임진록」은 한글본과 한문본이 있으며,「임진록」,「님진록」,「흑룡록」, 「흑룡 일기」등의 표제로 된 국문본이 필사본 또는 판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글본으로는 경판본 ( 京板本 ) · 완판본 ( 完板本 )이 있다. 필사본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본 · 흑룡록(黑龍錄 : 李明善本) · 흑룡일기(黑龍日記 : 白淳在本) · 한남대학교(구 숭전대학교) 도서관본(3책) 등이 널리 알려져 있다. 세창서관의 구활자본「임진록」도 전하고 있다. 한문본으로는 국립중앙도서관본이 역사적 사실과 매우 가까운 것으로, 장서각도서의「임진록 (6책, 단실거사편)과 계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명선본(國際文化館, 김진태 역)은 고려대학교 도서관본(壬辰錄合綴 痒 公傳) · 경북대학교 도서관본(번역)과 계맥을 같이하고 있다. 한글본은 전쟁에 패배한 우리 민족의 정신적 사기를 양양하는 것을 문학적 특질로 볼 수 있는 데 반하여, 한문본은 이여송이란 중국의 장수를 주인공으로 하여 사대주의적 색채가 농후하게 나타난다.임진록에는 처음부터 형성과정과 배경이 다른 역사계열, 최일영계열, 관운장계열이 있으며, 이들 계열이 변이되거나 부분적으로 타 계열과 혼합된 역사계열(변), 최일영계열(변), 이순신 계열이 있고, 어느 계열에도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변이가 심한 이본들도 상당수 있다. 역사계열, 최일영계열, 관운장계열은 의 기본이 되는 이본군으로 계열에 따라 이야기의 내용과 의미, 그리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작자의 인식은 각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역사계열은 임진왜란에 대한 인식이 문헌설화와 비슷하며, 관운장계열은 구비설화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일영계열은 이 두 계열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면서도 위정자들에 대한 강한 적개심과 이들의 무능을 통한 민족자성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이들 이본 중 역사계열과 최일영계열, 관한 적개심이 그다지 나타나 있지 않은 것은, 원본의 성립시기가 조일교섭 직후의 시점이기 때문에 일본에 대해 조선민족이 품고 있던 적개심을 극복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일본인과 풍신수길의 출신담은 역사계열에만 실려 있다는 사실도 이러한 추정을 뒷받침 한다.서두에서부터 일본인의 유래와 대명관계 등 대외관계에 관해 신중을 기해 서술하려는 자세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또 말미에 토정몽유풍악의 이야기를 붙였다는 점, 중화질서와 더불어 전란 발발에 대한 해명으로서 천명론을 표명하는 것이 역사계열 원본의 주안점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2) 최일영 계열 - 국립도서관 한글본을 포함한 27여종의 이본최일영 계열의 임진록은 영웅소설로부터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듯, 허구인물인 최일영이 영웅소설의 주인공처럼 역경을 극복하여 대신이 되고, 국가의 위기인 왜의 침입에 대처하여 크게 활약하여 청병에 성공함으로써 왜근을 물리치고 국가를 구했다고 하는 내용으로 줄거리가 이어지고 있다. 명장 이여송의 활약이 크게 부각되어 있고, 최일영이 능력면에서 국왕인 선조보다도 우위에 위치하고 있다.임철호는 이와 같은 특징에 대해 무능한 선조를 비판의 눈으로 그리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서술에는 당시의 역사상황과 정치사상이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정홍준은 17세기의 정치사의 특징은, 16세기 이후 지방의 사림이 다수 중앙관료로서 진출함으로써 대신의 권력을 확대하고 그 위상을 강화함으로써 정치적 입지를 결정적으로 확보하려 하였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말하자면, 조선 초기 정도전이 주창한 대신중심주의의 정치이념이 17세기 임병양란 이후에 대두되어 최일영계열의 임진록에 이상론으로서 완벽하게 구현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한마디로 허구의 영웅적인 대신 최일영을 주인공으로 시도한 군담화된 작품으로, 최일영을 기용했는가 하지 않았는가의 차이에 따라 전황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점이 구조상의 가장 큰 특징으로 보인다.3) 관운장 계열 - 권영철본 등의 한글본 6종과 고대본 본에는 곽재우가 조선산천의 혈맥을 단맥하러 온 이여송에게 조력하는 역할과 가문의 번영에 집착하는 속인의 모습을 묘출해내고 있다. 문치정권에 집착한 나머지 생겨난 역사의 모순을 이여송이 해결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는 것이 한문본의 서술세계이다.4) 승전대본승전대본의 서술자는 사실적 서술시각과 낭만적 서술시각을 균형있게 조화하여 세계를 묘사하였다. 서술자는 중반부까지의 서사세계에서 사실적인 서술시각을 유지하며 다양한 역사적 인물에 현실감을 불어넣어 임진왜란 당시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서술자는 이순신, 유성룡, 선조를 비롯한 다양한 봉건 위정자. 애국적인 의병장, 기회주의적인 외국 구언병, 패권주의적인 일본 침략자 등의 현실적 인물들의 지향과 갈등 관계를 통하여 동아시아의 중세 봉건 질서의 위기와 수습 과정을 비판적이고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서술자는 일본을 완전히 항복시켜 동아시아의 중세 봉건 질서를 복구하려는 지향을 보이며, 이로 인하여 후반부에서는 낭만적 서술시각과 사명당이라는 낭만적 인물 형상이 부각된다. 서술자는 작품의 후반부에서 김응서와 사명당의 일본 정벌 사건을 낭만적으로 묘사한다. 그리하여 사명당이라는 낭만적 인물을 통하여 ‘중세 봉건 질서의 복구’ 라는 주제의식을 구현한다. 서술자는 수많은 현실적 인물 형상을 그리는데, 대부분의 현실적 인물의 형상 창조에서 특징적인 점은, 인물들을 왜적과의 전투과정과 결부하여 단편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현실적 인물 형상 가운데 이순신의 형상은 가장 높은 형상화의 수준을 보여주는데, 보편적인 성격 뿐만 아니라 개성적인 성격을 사실적으로 그림에 따라서 민족 수난기의 애국적인 장수의 전형을 창조하는데 성공한다. 낭만적인 인물 형상은 현실적 인물 형상에 비하여 양적으로는 크지 않지만 주제의식의 구현과 관련하여 작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적지 않다. 낭만적인 인물의 형상 창조에서 특징적인 점은 서술자가 현실적인 인물을 설정하여 영웅적인 능력을 부여하여 사건을 낭만적으로 해결하도록 묘사한다는 점이다. 중반부까지에서 인물의 역설적 의미를 분명하게 부각시킨다는 점이다. 김덕령의 형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김덕령은 가장 영웅적인 인물로 그려지며 조국을 왜적의 침략으로부터 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러한 형상화 방식은 김덕령이 역사에서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하고 봉건 위정자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삶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한편 현실적 인물의 형상은 단면적이지만 전형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인물의 역사적 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서술자는 임진왜란의 과정에서 조국에 큰 공을 세우거나 억울하게 또는 장하게 죽은 인물들을 중심인물로 설정하여 영웅화하거나, 또는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임진왜란 중 애국적인 인물들의 진실’ 이라는 주제의식을 구현한다. 모순된 역사적 현실을 낭만적 형상을 통하여 우의적이고 역설적으로 그려낸 권영철본은 역사소설의 또 다른 가능성, 곧 낭만적 상상력이 충만한 역사소설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준다.3. 연구사지금까지 에 대한 연구는 여러 방면에서 꾸준히 이루어져왔다. 그러나 기존의 대부분 연구들은 임진록을 역사소설로서 독립적으로 다루기보다는 다른 작품들과의 상호 연관성 및 영향관계 하에서 다루어졌으므로 임진록의 개별 작품론은 그리 심화되지 않은 상태이다.역사소설로서 임진록을 다룬 연구를 살펴보면, 우선 연구의 초기에 김태준은 『조선소설사』에서 군담소설이라는 항목으로 임진록을 다루었는데, 이는 현재 역사소설로 분류되는 작품들이 초기소설사에서 군담소설이라는 포괄적인 유형을 분류되었음을 알 수 있다.정형용은 『국문학개론』에서 역사소설을 '역사적 사실과 사상의 인물을 소재로 한 이야기책으로 기록적이고 단편적인 사실 위에 상상력에 의하여 구상적인 과거를 재현하는 의식적 구상을 전개한 것'이라고 정의하고 사실을 소재로 한 것으로 을 다루고 있으며, 정주동은 『고대소설론』에서 '역사소설이란 지나간 역사 중에서 두드러진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말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전기류(戰記類)로서 임진록을 다루고 있다. 또한, 김기동은 조선시.
“바람을 타고 날아온 황사, 그 심각성"Ⅰ. 서언지난 2007년 4월 1일 오후. 오랜만에 늦잠을 잔 나는 이불을 빨기 위해 방문을 열고 자취하는 건물의 세탁기로 걸어갔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하늘이 온통 노랗고 흐렸다. 그 때까지도 나는 그 이유가 황사 때문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구름이 온 하늘을 뒤덮은 것처럼 세상이 흐렸기 때문에 그저 비가 오려나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 그 날 저녁에 만난 후배가 마스크를 쓰고 있길래 “너 어디 아프니?” 하고 물어보았는데 후배가 심각한 얼굴로 “언니, 오늘 황사잖아요.” 라고 대답했다. 그제서야 나는 비가 오려고 하늘이 꾸물거리는 게 아니었구나! 하면서 방으로 달려가서 하루 종일 열어놓았던 창문을 닫았다. 황사현상이 이렇게 심한데 하루 종일 환기를 시키고 있었다니. 그 날의 황사는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 있을 만큼 가히 충격적이었다. 지금까지 황사의 심각성을 세세하게 알지 못했던 나는 (오죽했으면 황사와 흐린 날을 구분조차 하지 못했다.) 이번 기회를 빌어 황사의 원인과 심각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Ⅱ. 본론1. 황사(黃砂)의 정의주로 중국 북부의 황토(黃土) 지대에서 바람에 의하여 하늘 높이 불어 올라간 무수의 미세한 모래 먼지가 대기 중에 퍼져서 하늘을 덮었다가 서서히 강하하는 현상 또는 강하하는 모래 먼지를 말한다. 마그네슘·규소·알루미늄·철·칼륨·칼슘 같은 산화물이 포함되어 있다. 평상시에는 10∼50 ㎍/㎥인 먼지농도가 황사가 발생하면 100∼500 ㎍/㎥으로 증가하고, 황사의 주성분인 Si(규소), Al(알루미늄), Ca(칼슘), K(칼륨), Na(나트륨) 등의 농도가 상승한다.2. 황사의 발원지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황사의 주요 발원지는 중국과 몽고의 사막지대(타클라마칸, 바다인자단, 텐겔, 오르도스, 고비지역, 만주)와 황하중류의 황토지대이다. 이런 중국의 서북 건조지역은 연강수량이 400㎜ 이하(우리나라의 연강수량은 약 1100~1700㎜)이고 사막이 대부분이어서 모래먼지가 많이 발생한다. 발원지에서 배출되는 먼지 중 보통 30%가 발원지에 다시 가라앉고, 20%는 주변지역으로 수송되며, 50%는 장거리까지 수송돼 한국, 일본, 태평양 등에 침전된다.3. 황사현상의 발생 원인황사현상은 바람에 의해 퇴적된 모래와 진흙이 섞여 만들어진 뢰스(loess:황토)지대에서 주로 발생하는데, 대체로 건조지대와 반건조지대에서 모래폭풍과 같은 바람에 의해 일어난다. 강한 바람이 일면서 모래 또는 먼지 입자가 공중으로 올라가고, 올라간 입자 가운데 크고 무거운 것은 더 이상 상승하지 못하고 부근에 떨어진다. 그러나 작고 가벼운 입자는 대기 상층까지 올라가 떠다니다가 상층기류를 타고 멀리까지 이동한다.즉, 건조한 모래 먼지는 강한 바람이 불면 조금씩 위로 올라가고, 더욱이 강한 햇빛까지 쐬면 지열로 인해 대류가 생겨 그 부력으로 인해 떠오르게 되는데, 이러한 조건이 어우러질 경우 누런 모래 먼지는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 아시아 전역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특히 황사현상은 3~5월인 봄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데, 이는 황사의 발원지인 유라시아대륙의 중심부가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어 매우 건조하고, 또 강수량이 적은 데다 겨우내 얼었던 메마른 토양이 녹으면서 부서지기 쉬운 모래 먼지가 많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잘게 부서진 모래 먼지가 모래폭풍이나 강한 바람에 쉽게 날려 공중을 떠돌다가 멀리까지 이동해 낙하하는 것이다.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황사 역시 대부분 이 무렵에 발생한다.4. 황사의 발생 과정봄에는 겨울 내내 얼어있던 건조한 토양이 녹으면서 잘게 부서져 크기 20㎛ 이하의 작은 모래먼지가 발생한다. 이렇게 발생한 모래먼지 위에 저기압이 지나가면 강한 상승기류에 의해 3천∼5천 m의 높은 상공으로 올라간 뒤 초속 30m 정도의 편서풍과 제트류를 타고 이동을 한다. 이후 풍속이 느려지는 한국과 일본에서 하강하고 간혹 미국(1998년 4월)까지도 이동하기도 한다. 발원지에서 한반도까지 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일 정도이다.5. 황사의 크기와 구성성분사막지대의 황사에는 큰 모래가 많고, 황토지대의 황사는 대부분 그 크기가 작다. 20㎛보다 큰 입자는 구르거나 조금 상승하다가 부근에 떨어지고, 그보다 작은 입자는 부유하여 상층까지 잘 올라간다. 한반도와 일본에서 관측되는 황사의 크기는 1∼10㎛정도이다. 1㎛ 입자는 수 년 동안, 10㎛ 입자는 수 시간∼수 일 정도 공중에 부유할 수 있다.사막지대의 황사는 석영(규소)이, 황토지대의 황사는 장석(알루미늄)이 주성분이다. 철 성분도 많이 함유되어 있다.6. 우리나라의 황사 관측매년 주로 3∼5월에 3∼6일 정도 관측된다. 전국적으로 전체 관측 횟수를 보면 전라도 지방(최다 횟수 발생지역은 광주)이 가장 많다. 발생일수로 보면, 서울·경기지역과 서해안지역이 길다. 드물게 서울에서 1991년 겨울(1991. 11. 30 ∼ 12. 3)에 관측된 경우가 있다. 지난 1999년 1월 25일에 이른 황사가 발생되기도 했고, 2001년에는 1월 2일 오후 1시 경에 극심한 황사가 발생되었다.7. 황사현상의 이동 경로중국과 몽골 지역에서 발생한 황사는 다양한 경로로 이동하는데, 한반도와 일본에 영향을 미치는 황사는 거의 아시아대륙 중심부에서 발원한 것이다. 중앙아시아에서 발생하는 황사는 하와이나 미국 본토, 심지어는 알래스카 북쪽 해안까지도 이동한다.황사가 발원지에서 처음 발생할 때는 무시무시한 모래폭풍을 동반하기 때문에 희뿌연 모래 먼지로 뒤덮여 아주 심할 경우 몇 백 미터 앞도 분간할 수 없다. 이때는 모래 먼지뿐 아니라 입자가 큰 모래까지도 공중으로 휘말려 올라간다. 그러나 큰 입자는 얼마 이동하지 못하고 곧 떨어져 내리고, 작고 가벼운 누런 먼지만이 강한 상층의 편서풍을 타고 수천 킬로미터까지 날아가 떨어진다.멀리 갈수록 영향력은 약해지기 때문에 황해를 건너 한반도와 일본으로 건너간 황사는 발원지에서처럼 강력한 바람을 동반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는 해도 희뿌옇거나 누런 먼지가 공중을 가득 메워 안개가 낀 것처럼 시야가 흐릿해지는데, 하늘이 황갈색으로 변한다는 점에서 안개와는 다르다. 심한 경우 자동차나 건물에 먼지가 쌓이기도 하고, 이 때 비나 눈이 내리면 흙비나 누런 눈을 볼 수도 있다.한국에서 흔히 발생하는 봄철의 황사는 보통 1~5일 전에 발원지에서 떠오른 것으로, 발원지에 따라 혹은 상층바람의 속도에 따라 이동 시간이 달라진다. 보통 발원지에서 떠오른 먼지의 30% 정도는 그대로 발원지에 떨어지고, 20% 정도는 주변지역에, 나머지 50% 정도는 한반도를 비롯해 아주 멀리까지 이동하는데, 총량이 2천만 톤에 달한다.8. 황사현상의 피해발원지에서 모래폭풍이나 기타 강한 바람으로 인해 황사현상이 발생하면, 무엇보다도 발생 지역의 사막화가 급속하게 진행된다. 토양이 바람에 쓸려가면서 표토가 유실되고, 비옥한 토양이 메말라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된다. 이렇듯 식생이 파괴되면서 토양의 사막화가 빠르게 진행되는데, 황허 중류에서만도 매년 20억 톤에 달하는 토양이 휩쓸려 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전체에 걸쳐 산림 감소, 표토 유실, 모래 이동 등으로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중국 총면적의 15.9%가 사막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몽골의 경우는 더욱 심각해 국토의 90%가 사막화 위기에 처해 있으며, 1970년대 이래로 6만 9000㎢의 목초지가 줄어들었고, 식물 종수(種數)도 1/4로 감소하였다.또 멀리까지 이동해 한반도 등에 영향을 미치는 황사는 시정(視程) 장애, 호흡기 질환, 눈 질환, 알레르기 등 각종 질환을 유발한다. 나아가 황사에 포함된 미세 입자들이 대기 중에서 화학반응을 일으켜 각종 산화물을 생성하는 까닭에 흡연자들의 만성기관지염을 악화시키고, 노인과 영아의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중국의 산업화에 따라 납·카드뮴 같은 중금속과 발암물질 등 유해 오염물질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환경관리청과 지방자치단체에서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이들 유해 중금속의 오염도는 뚜렷한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그 밖에 누런 먼지가 햇빛을 차단해 시야가 흐려지고, 하늘이 황갈색으로 변해 항공기 운항에 영향을 미치며, 정밀기기에 황사가 들어가 오작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기타 강물이나 토양을 중화시키고, 식물의 기공(氣孔)을 막거나 생장 장애를 일으키는 등 황사로 인한 피해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와는 반대로 황사 속에 섞여 있는 석회 등 알카리성 성분이 산성비를 중화함으로써 토양과 호수의 산성화를 방지하고, 식물과 해양 플랑크톤에 유기염류를 제공한다는 이점도 있다.
* 목 차 *Ⅰ. 서론Ⅱ. 본론1. 지은이 소개2. 원문과 현대어풀이3. 내용 분석4. 이해와 감상5. 요점 정리Ⅲ. 결론* 참고문헌 *Ⅰ. 서론그동안 우리 사회는 유교를 국시로 하였기 때문에 유교적인 도덕생활을 강조하였다. 도덕교훈가사는 사람으로 지켜야 할 도리를 잘 가르쳐서 타이르는 것을 주제로 한 가사이다. 조선사회가 도덕을 중시?갈구하였기 때문에 도덕과 교훈을 주제로 한 가사는 대단히 많다.) 이 중 琴譜歌는 조선시대의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지은 가사(歌辭)로서 제작 연대는 알 수 없다. 필사본 ?속기아(續箕雅)?에 수록된 121구의 가사인데, ?장편가집(長篇家集)?에는 이본으로 130구의 가 현전하고 있다. 130구절의 가사로 되어 있으며, 《퇴계전서(退溪全書)》에 실려 있다. 이제부터 금보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Ⅱ. 본론1. 지은이 소개이황 (李滉 1501년 - 1570년)조선 명종, 선조 시대의 명신. 정치보다는 학자 지향형 인물이다.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퇴거계상[退居溪上]의 줄임말),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527년에 소과에 입격하고 1534년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사헌부 지평, 성균관 사성, 단양 군수, 풍기 군수 등을 역임하였는데, 풍기 군수 시절에 소수서원(紹修書院) 사액을 실현시켰다. 선조 즉위 직후 임금에게 올린 성학십도가 성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나타낸다. 조선 정치사에 있어 특히 남인(南人) 계열의 종주가 되었고, 사후 의정부 영의정에 증직되었으며 광해군 치세인 1609년에 문묘(文廟)에 배향되었다. 유저로 와 시조 및 가사 , , , , 등이 전한다.2. 원문과 현대어풀이 및 내용-1연-玉樓紗窓 化柳中의 白馬金鞭 少年들아!平生聞見 七絃琴을 알고 져리 질기는야知音을 못 ?거던 音律을 어이 알며博物을 못 ?거던 體法을 어이 알리知音과 體法을 날다려 뭇거드면窮天地理을 大綱이나 일으일라옥루사창 화류중의 백마금편 소년들아평생문견 칠현금을 알고 저리 즐기느냐지음을 못하거든 음율을 어이 알며박물을 못하거든 체법을桐玉斧로 베혀?야 三尺에 裁斷?니上中下體한 法이 天地人 三才로다태평대 성제왕이 요순밖에 또 있느냐내미복 유강구의 격양가도 좋거니와경역산 어뢰택의 양반이 어떻던고속리세안하니 일러 쓸데 없건마는금대 억조민이 대이왕 하자 하니민심을 타탁하여 일장금 만드실 때창오산 벽계변에 절로 죽은 석상오동옥부로 베어내어 삼척에 재단하니상중하체한 법이 천지인 삼재로다.- 3연 -中虛外實?야 陰陽을 配合?니三陽은 우의 잇고 二陰은 아?잇다背部에 둥글기? 이아니 天圓이며腹部에 모?기? 이아니 地方인가上天에 ?문 거션 天不足 西北이오下地에 ?문 거션 地不滿 東南이라天地를 旣法?고 人事로 ?일 져게大舜은 別?되여 上位를 摠領하고八元八愷? 一行으로 압히 셔서우의셔 나? 令을 次例로 받들 져게扶桑 萬年枝에 츩갓치 얼킨 唐絲一川南北의 베갓치 질겨 날오三手의 交合?야 五絃을 드러?냐靑絲로 ?흘 이여 늘리여 밭인 ?은丹山 碧梧枝에 鳳의 꼬리 지시로다三絃은 三德되야 十六?로 밧쳐 잇고二絃은 二相되야 무어시로 고와던고九萬里 雲宵의 기럭의 발이로다중허외실하여 음양을 배합하니삼양은 위에 있고 이음은 아래 있다.배부에 둥글기는 이 아니 천원이며복부에 모나기는 이 아니 지방인가상천에 남은 것은 천부족 서북이오하지에 남은 것은 지불만 동남이라천지를 기법하고 인사로 꾸밀 적에대순은 별과되어 상위를 총령하고팔원팔개는 한줄로 앞에 서서위에서 나는 영을 차례로 받들 적에부상 만년지에 칡처럼 얽힌 당사일천남북에 베처럼 즐겨 날고삼수에 교합하여 오현을 들어내냐청사로 끝을 이어 늘리어 바친 양은단산 벽오지에 봉의 꼬리 짓이로다삼현은 삼덕되어 십육과로 받쳐 있고이현은 이상되어 무엇으로 괴었던가구만리 운소에 기러기의 발이로다- 4연 -瀟湘班竹枝로 쥴쥴이 골나 내니大絃은 濃濃?여 老龍의 우룸이오小絃은 冷冷?여 別鶴의 소?로다宮商角緻羽는 五音이 버려 잇고水化金木土는 四時를 맛다 잇다第一은 象角?니 木音이 春聲이라東風 百花節의 杜鵑의 소?로다第二는 象치?니 火蔭이 夏聲이라南山 松柏枝에 孔雀의 소?로다第三은 象商?니 金音이 秋聲이라興이라소상반죽지로 줄줄이 골라 내니대현은 농농하여 노룡의 울음이오소현은 냉랭하여 별학의 소리로다궁상각치우는 오음이 벌여 있고수화금목토는 사시를 맡아 있다제일은 상각하니 목음이 춘성이라동풍 백화절의 두견의 소리로다제이는 상치하니 화음이 하성이라남산 송백지에 공작의 소리로다제삼은 상상하니 금음이 추성이라서풍 백제성에 외기럭의 소리로다제사는 상우하니 수음이 동성이라북수 장강에 여울 우는 소리로다제오는 상궁하니 토음이 웅성이라춘추 전국시에 지동하는 소리로다원원한 정음이야 이렇듯 하거니와청아한 알운성은 조화를 길이 좇아옥지 집는대로 과마다 달라간다청산의 유수운은 풍월의 한정이오보허자 심방곡은 태평의 시흥이라- 5연 -南薰殿 月明夜의 손죠 빗겨 안으시고玉音을 놉히 ?야 解吾民 소? 할 제景星이 낫타나고 卿雲이 일어날 제百工이 相和?야 和答?고 이러?니그 아니 舜琴이며 이 아니 舜琴인가周文武 二加絃도 千古에 是非 잇고晉處士 漢臥龍도 이 ?즐 다 아던가未來에 女樂되야 淫亂을 일사마셔靑樓酒肆에 갑 밧? 物件되여離別曲 長短調로 가넌 님을 挽留?다가거나 오거나 一天下 雷同이로다엇지타 大聖 遺譜을 誤傳할 줄 잇슬는가남훈전 월명야에 손수 비껴 안으시고옥음을 높이 내어 해오민 소리 할 때경성이 나타나고 경운이 일어날 때백공이 상화하여 화답하고 일어나니그 아니 순금이며 이 아니 순금인가주문무 이가현도 천고에 시비 있고,진처사 한와룡도 이 뜻을 다 아던가미래에 여악되어 음란을 일삼아서청루 주사에 값 받는 물건되어이별곡 장단조로 가는 임을 만류한다가거나 오거나 일천하 뇌동이로다어찌타 대성유보를 오전할 줄 있겠는가* 시어 풀이 *? 옥루사창 : 아름답게 잘 꾸민 다락과 비단으로 바른 창문? 화류 : 사내를 상대로 노는 여자들? 백마금편 : 좋은 말과 훌륭한 채찍? 평생문견칠현금 : 평생 듣고 본 일곱 줄로 된 거문고? 지음 : 음악을 아는 사람. 또는 그 일? 음률 : 오음과 육률로 오음은 궁(宮), 상(商), 각(角), 치(?), 우(羽)의 다섯 음률을 말하고, 육률(六律)은 십이율 가운데 깊이 생각함? 태평대 : 기근과 전란이 없이 태평한 성대? 성제왕 : 성스런 임금들? 내미복유강구 : 남루한 옷을 입고 번화한 거리에 나가 놀면서 백성들이 사는 모양을 살펴 봄.? 격양가 : 땅을 두드리며 태평성대를 치하한 노래? 경력산 : 역산에서 밭을 갈음. 역산은 현 중국 산동성 역성 남쪽에 있는 산으로 일명 천불산, 순경산? 어뢰택 : 뇌택에서 고기를 낚음. 뇌택은 현 산동성 복현 동남쪽에 있는 못? 속리세안 : 나라가 잘 다스려져서 세상이 편안함? 금대억조민 : 오늘날의 수많은 백성들? 대이왕 : 정성으로 왕을 섬김? 췌탁 : 이루어 헤아림? 창오산벽계변 : 창오산은 일명 구의산이라고도 하는데, 중국의 호남성 영원현에 있는 산 이름으로 순임금이 승하 한 곳이고, 벽계변은 푸른 시냇가임.? 석상오동 : 돌틈에서 모질게 자란 오동나무. 이런 오동나무로 만든 거문고가 거문고 중에서 가장 좋다고 함? 옥부 : 옥으로 다듬어 만든 토끼? 중허외실 : 속은 비고 겉은 야무지고 튼튼함? 삼양 : 주역의 괘중에서 세가지 양효? 천지을기법 : 하늘과 땅을 이미 본으로 삼음? 별과 : 위대하신 순임금은 특별한 과임. 과는 나무 그루를 뜻함? 팔원팔개 : 원은 선, 개는 화를 뜻하여 팔원은 고신씨의 재주있는 아들 8명을 뜻하고, 팔개는 고양씨의 재주 있 는 아들 8명을 뜻함? 부상만년지 : 부상이 오래되어 만년이나 된 가지. 부상은 동해에 있다는 신령스러운 나무.? 당사 : 중국산의 실. 아주 가늘면서도 질긴 실? 오현 : 다섯 줄? 단산벽오지 : 단혈산의 푸른 오동나무 가지? 삼현 : 거문고의 석 줄? 삼덕 : 정직, 강극, 유극의 세가지 덕? 구만리운소 : 아주 멀면서도 높은 하늘? 소상반죽지 : 소상강가에서만 난다는 얼룩무늬가 있는 대나무 가지. 전설에 의하면, 순임금의 두 왕비인 아황과 여영이 순이 붕어한 뒤에 따라 죽고자 할 때, 피눈물을 흘린 것이 무늬가 되었다고 함.? 대현은 농농?여 : 굵은 줄은 농농하고 소리를 내어. 농농은 의성어? 별학 : 선학. 옛사무치는 소리? 유수운 : 흐르는 맑은 물소리의 가락? 보허자 : 조선시대 나라의 즐거운 잔치에 연주하던 놀. 일명 ‘장춘불로지곡’이라고도 함? 심방곡 : 신라말엽부터 유행하였던 일명 ‘신방곡’, ‘심방곡’이라고도 일컬어진 ‘시나위’? 남훈전 : 옛날 순이 오현금으로 남풍시를 연주하던 궁전? 옥음 : 여기서는 순의 목소리. 왕의 음성을 높여 이르는 말? 경성 : 서성, 나라가 태평한 때에 나타난다는 상서로운 별? 백공 : 온갖 악공들? 이가현 : 두 줄을 더한 거문고? 진처사 : 진나라 은사였던 도연명? 한와룡 : 촉한의 재상이 된 제갈공명? 여악 : 여자 기생이 부르는 음악3. 내용 분석1연 ? 경박한 소년들이 백마금편으로 화류양(花柳陽)으로 돌아다니며 기녀를 벗하고 거문고의 음률과 율법을 알지 못하면서 오직 변성만을 좋아하여 탕일하는 것을 개탄하면서 경성의 음률과 율법을 말해 주겠다고 하고 있다.2연 ? 역대를 살펴볼 때 태평성대의 제왕으로는 치천하(治天下) 오십년에 선치여부를 알지 못해서 남루한 오차림으로 거리에 나가서 격양가를 듣고 비로소 태평세임을 알았다고 한 요제와 역산에 밭을 가니 밭의 경계를 다투지 않고 그에게 양보하였으며 뇌택에서 고기를 잡을 때 뇌택 사람들이 그에게 집을 양보했다고 한 순제 뿐이라 하고 또 순은 창오산 벽계변의 석상 오동을 베어 오현금을 만드니 그 순금은 상중하체 한 법이 천지인 삼재를 본받았다고 하고 있다.3연 ? 거문고의 갖춤새는 속은 비고 겉은 튼튼하다 하여 배부는 마치 하늘의 둥긂과 같이 둥글고 복부는 마치 지방(地方)과 같이 모났는데 청사로 된 오현(五絃) 중 삼현은 16과 위에 아있고 나머지 이현은 그냥 안족(雁足)으로 버티어 놓았다고 말하고 있다.4연 ? 거문고를 타면 현마다 각각 독특한 소리가 나는데 대현은 마치 노룡(老龍)의 울음소리와 같고, 소현은 선학의 소리와 같다고 하고 있다. 오음(五音)을 구체적으로 말하기를 제1성은 동풍 백화절의 무견성과 같고, 제2성은 남산 송백지의 공작성과 같고, 제3성은 서풍 백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