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양오행설◆( The doctrines of yin-yang and Ohaeng)이번 주 강의는 음양오행설이 무엇이며, 또 우리 전통 문화 속에서 음양오행설이 어떻게 반영되었는가를 알아보았다.먼저 음양오행설에 대해서 알아보자면, 음양오행설은 음양이라는 두 개의 원리와 오행이라는 다섯 개의 원소의 상호작용에 의해서 우주자연의 원리를 설명하는 이론이다. 음양은 개념적인 것이고 오행은 사물을 구성하는 원소의 상호작용으로, 실제 생활과 관련이 깊은 것은 오행이다.음양과 오행은 처음부터 같이 이론이 성립 되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서로 오랜 시간 따로따로 정리되어 내려오다가 후에 합쳐지게 된 것이다.먼저 음양에 대해서 살펴보면, 우주자연의 원리(음양)에 대해서 아주 오랜 세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축적해 온 것이 『주역』이고, 음양이 오늘날의 모습으로 완성될 수 있게 한 사람이 바로 공자이다. 음양설은 주역을 기반으로 해서 나오게 되었다. 음양설에서 말하는 태극이란 음양과 사상, 팔괘를 생기게 하는 바탕 즉 우주만물이 생겨나는데 바탕이 되는 것이다. 태극에서 나온 두 개의 힘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생겨나는 것이 바로 양과 음이다. 양은 활동적이고 적극적이며 밝은 기운이고 그와 반대로 음은 조용하고 차분하고 정갈한 기운이다. 이러한 다른 성격의 양과 음이 서로 상호작용 함으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만들어 간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양과 음의 성격을 4가지로 세분화 시켰는데 그것이 四象이다. 또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모든 사물들과 인간관계 등 세상의 모든 것들을 8종류로 배치한 것이 팔괘이고 다시 세분화 하여 64개로 배치시킨 것이 64괘이다.다음 오행에 대해서 살펴보자. 오행은 다섯 개의 원소로, 동양에서 세상을 구성하는 것으로 오랜 경험에 의해서 정리 한 것이다. 이 원소들의 작용에 의해서 세상의 모든 사물이 만들어 지고 없어지기도 한다. 오행은 화(빨강), 수(검정), 목(파랑), 금(흰색), 토(노랑)인데 여기에 양을 나타내는 日과 음을 나타내는 月을 더하면 우리가 아주 잘 아는 요일이 된다. 음양과 오행으로 이루어 진 것이 일주일이다. 오행에서의 원소들이 서로 작용하여 상생상극하는데, 세상의 모든 것의 시작을 水로 보고, 완성은 土로 본다. 물이 나무를 키워내고 나무는 불을 만드는 水生木 木生火 火生土 土生金 金生水 와 같은 서로를 만들어내는 상생관계가 있고. 불은 불을 없애고 불은 금을 녹이는 水剋化, 火剋金 金剋木, 木剋土, 土剋水의 상극관계가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동양사상은 서양의 분명히 구분되는 이분법적 사상과는 달리 상대적인 개념으로 전체 속에서 서로를 만들어내고 서로를 이겨내는 관계를 설명한다.음양과 오행은 아주 오랫동안 각각 생겨져 내려오다가 기원전 4세기 추연 때에 이르러 합쳐져 정리되었다. 이때부터 세상의 모든 일들을 음양오행의 관계에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오행은 또한 양의 성격의 오행과 음의 성격의 오행으로 나누어지고 홀수는 음을 짝수는 양을 색에서도 원색은 양을 중간색 계통은 음으로 구분하였다.이렇게 모든 것을 통계내고 내려오는데 주자가 다른 동양의 모든 사상들을 유교입장에서 결산하였다. 주자의 태극도는 동양사상에서 보는 우주자연의 원리를 정리한 것이다.태초의 혼돈이 있었는데 그것을 무극이라 한다. 무극 안에서 서로 다른 두 기운, 음과 양이 소용돌이치면서, 태극이 만들어 졌다. 태극이 만들어져 음과 양이 변화를 하는데 이것을 道 라고 한다. 태극의 핵심 원리는 理이고 음과 양의 핵심을 이루는 힘 즉, 세상 만물을 움직여 가는 힘은 氣이다. 그리고 이러한 음양의 운동으로 인하여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의 기본이 되는 오행이 생기고 오행의 핵심을 質이다. 오행이 상생상극 함으로 세상의 만물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의 매개가 되는 것이 남-여, 수컷-암컷이다. 양의 도로 남자가, 음의 도로 여자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원칙에 의해서 만물이 생겨나고 자라고 변화한다는 것이 바로 태극도에서 말하는 우주자연의 원리이다. 여기서 가장 빼어난 기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인간인데 그리하여 인간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한다.그렇다면 한국전통문화속에 음양오행설이 어떻게 반영되었는가?태극기보자. 먼저 태극기의 중심의 태극 마크는 陰 과 陽의 합일을 의미하며, 태극의 사방에는 팔괘 중 사괘가 포함되어 있다. 하늘과 아빠 年을 의미하는 건. 땅, 엄마, 月과을 의미하는 곤. 물, 아들 日을 의미하는 감. 불, 땅, 時를 의미하는 리. 태극기에는 한 나라가 다 들어가 있다. 신성한 색인 흰색이 바탕이 되는 국토와 중간에서 음양의 조화로 살아가는 국민들, 그리고 그들을 사방에서 감싸는 사괘는 정부를 뜻한다.설날이면 가족과 둘러앉아 즐겼던 윷놀이에서도 음양오행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윷의 단면조차도 음(평평한 땅)과 양(둥근 하늘) 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도, 개, 걸, 윷, 모는 오행을 상징한다. 또한 가운데 점을 제외한 점의 개수는 28개로 28수를 의미하며, 오행을 제외한 수는 24로 24절기를 의미한다. 최단거리는 동지를, 최장거리는 하지를 의미하는 등 많은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윷놀이 판을 이용해 한해의 운세를 보기도 했다.
◆자연주의 (Naturalism)◆이번 주 주제는 자연주의에 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가 유독 자연주의 성격이 강한 이유를 살펴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전통문화 의, 식, 주에서 드러나는 자연주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우리 생활에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먼저, 자연주의의 개념에 대해서 파악을 할 필요가 있다. 자연주의란, 원래 있는 그대로의 법칙에 인간이 순응해서 같이 껴들어 굴러가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연구함으로서 그것의 법칙에 인간이 따라서 사는 것이다.그렇다면 자연을 정복하고 이겨내는 서양의 방식과는 달리 왜 우리나라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면서 살아야 했을까? 그것은 우리나라의 기후?지리적 조건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우리나라의 기후는 매 계절 그 날씨에 맞게 대처해야 하는 뚜렷한 사계절을 가지고 있으며, 국토의 70~80%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식물이 잘 살수 없는 산성토양으로 사람이 살기에 아주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만한 적당한 환경이다. 그러므로 잘 살기 위해서는 항상 자연을 신경 쓰고 조화를 이루어 살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자연주의의 출발이다.또 우리나라의 도교는 중국의 장자 도교와 많이 다르다. 우리는 그 근원을 단군에서 찾고 있다. 도교는 한국 전통적 무속 신앙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중국의 도교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의 법칙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는데 그것이 바로 음양오행설과, 풍수지리설이다. 특히 풍수지리설은 주생활에 관련된 연구라고 할 수 있다.우리나라는 예부터 사물을 그저 사물로 보고, 정복해야할 대상으로 보았던 서양과는 달리, 사물을 사람과 동일시하면서 모든 것에 그 격을 부여하였다.이러한 자연주의의 한계가 있었는데 그것은 진취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농경사회, 안정된 사회에서는 자연과 어울려 살기가 매우 적합하였지만, 서양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물결을 따라 우리나라도 근대화 사회로 접어들었는데, 근대화 과정에서 동양의 문화가 뒤쳐졌던 원인이 바로 이 자연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생활이 안정된 지금 다시금 자연주의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는 지금 자연을 거스른 결과가 보여 지면서, 자연의 반격이 시작되었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친 환경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이 생기면서 자연주의가 설 자리가 다시금 커지고 있다.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자연의 리듬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에 대해서 써놓고 있는데, 거기서 사람이 잘 살기 위해서는 지리, 생리, 인심, 산수 이 네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살기 좋은 곳이 못 된다고 말하고 있다.주생활에서 자연주의를 살펴보자면, 우리나라의 전통 집들은 모두 자연과 어우러져 자연에 빗대 절대 튀지 않는 모양을 하고 있다. 또한 자연자원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빌려 쓰는 것이었다. 자연에서 내가 쓰는 것만큼만 빌려 쓰고 필요한 만큼 조금씩 추가되어 늘려나가는 일실일동의 원칙이었다. 꼭 필요한 공간만 확보함으로 가능한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 하였다.사람이 생활하는 공간을 양의 공간이라고 하였는데,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은 예부터 확 트인 공간인 마당을 두었다. 농경사회를 반영하는 흙 밖에 없는 마당은 비가 와 질척해 지지 않도록 흙을 잘 다지고 모래를 깔아놓고 돌 디딤돌을 놓았다. 후원에는 자연과 연계된 공간으로 활엽수인 과일나무를 심고 방풍과 야생동물로 부터 보호받기 위해 대나무를 심었다.우리나라에서 지붕은 크게 기와와 초가로 나뉜다. 기와는 흙을 구어 만든 것으로, 모양도 뒤에 있는 산의 모양과 조화를 이루어 만든다. 초가집은 식물성 소재로 만든 것은 모두 초가지붕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하는 볏짚으로 만든 지붕과 억새 지붕, 붉은 소나무로 만든 너와집을 그 예로 들 수 가 있다. 이와 같은 우리 지붕에는 자연을 소재로 함으로 생태계질서가 살아 있었다. 한국 지붕의 또 다른 특징은 자연적인 것들을 지붕을 가지고 조절하였기 때문에 지붕이 집 전체의 1/3 정도 크다. 또한 큰 지붕이 미처 가리지 못하는 옆쪽 흙벽을 위해 눈썹지붕이라고도 하는 추가지붕이나 보조지붕을 만들기도 하였다. 벽은 황토와 흙을 칠해서 사용하였고 균열을 막기 위해 그 안에 수수깡을 섞고 겉에 회칠을 하였다. 기둥은 나무 그 본연의 모습 그대로를 활용하였다. 모양도 크기도 서로 다른 나무로 기둥을 세워 집을 짓는 다는 것은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문에 사용되었던 한지는 숨 쉬는 종이로서 밖의 공기와 안의 공기를 소통시켜 주었다. 문을 중첩시켜 만듦으로 공기를 차지 않으면서 밖의 공기와 소통시켜 보온 효과도 있었다. 또한 비오면 수분을 머금고 건조할 때는 그 수분을 배출하여 자연 수분 조절을 하였다. 울타리는 죽은 나무를 이어서 만들거나, 살아있는 개나리나 싸리나무를 이용하여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농경사회에서는 퇴비가 아주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뒷간은 예부터 수새식이 있었지만 그러기 보다는 밑에 구덩이를 파 퇴비를 모아 두었다가 그대로 퇴비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우리가 자연과 어울릴 수 있는 장소가 있었는데 바로 별장과 별서다 별장은 사는 집 가까운 곳에 두고 자연과 쉬고 싶을 때 머무는 곳이었고 별서는 사는 집과 뚝 떨어져있는 곳으로 더 자연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역사와 문화◆유교문화 (Confucianism)◆이번 주 강의는 유교문화에 대한 것이었다. 먼저 그 개념을 살펴보고 우리 전통생활문화와 그 속에 녹아있는 유교와 성리학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유교는 한 마디로 말하면 공자의 가르침이다. 우리는 흔히 유교와 유학이라는 말을 같은 개념으로 쓰고 있지만 사실 유학은 공자의 학문 즉 이론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조금 달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유교의 중점은 무엇인가? 바로 인간관계에 대한 공자의 성현의 가르침이다.유학은 그 발달과정에 따라 크게 4가지로 나누어 질 수 있다. 바로 분서갱유 이전의 유학으로 공자의 가르침을 그대로 담고 있는 선진유학과 분서갱유 이후 한나라가 세워지면서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채택하여 분서갱유로 손실된 것들을 보건 하는 학문인 한당유학이 있으며, 송명유학은 신유학으로 새롭게 철학적 기초를 가진다. 거기에는 불교와 대립되는 이념을 성격을 가진 성리학과 정주학 주자학이 있고 또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양명학을 들 수 있다. 그리고 청대유학은 자기반성에 의한 실제로 도움이 되는 학문으로 고증학과 실학을 들 수 있다. 선진유학과 한당유학 때에 유학은 단지 인간관계만 규명하는 것으로 철학적인 성격은 아니었으나 그 후에 송명유학 부터는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우주만물의 이치까지 살펴보게 된다. 이를 신유학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아는 성리학이라고 한다.성리학은 고려 말에 전래되어 정치이념으로 자리 잡게 된다. 성리학의 기본 개념을 살펴보면, 성리학도 음양오행에 기초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음양의 조화에 의해서 性이 나오는데 먼저 태극의 성질이 사람 밑에 깔려있는 선하기만 한 것이 바로 성(性)이다. 성은 인의예지 四端으로 이어지며 사단은 사람 밑에 깔려 있지만 끄집어내야 하는 자기절제를 道心이라고 하고, 이 모든 것이 잘 이룬 사람이 바로 君子이다. 선만 있는 性선과는 다르게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을 情이라고 한다. 情에서 음양의 좋은 氣가 나타나면 四端을 이루는데 그렇지 못할 때에는 감정적인 것 七情이 나타난 사람들이 이어서 남은 밥상을 받는 상물리기는 식생활에서의 신분의 구분을 확실히 하였다. 의복의 문양도 신분에 맞춰서 구분하였다. 왕의 의복은 산, 화 , 화충, 조, 분미, 보, 불, 용, 종이의 9장문을 사용하였고, 황제의 의복에는 앞의 9장문에서 日과 月 星辰을 포함한 12장문을 사용하였다. 복색도 황제는 황금색을 왕은 빨간색을 사용하였다.신분의 구분만큼 남녀 간의 구분도 엄격하였다. 그러나 남녀 간의 구분은 지배층에게만 국한된 것이었다. 사실 우리나라도 성리학이 들어오기 전 고려나 그 전 사회에서는 구분이 엄격하지 않았지만 성리학적인 것들이 남녀를 철저하게 구별하는 것으로 변화시켰다. 그 계기는 세종 때 부부별침령으로, 남자는 사랑채에 여자는 안채에 건물을 따로 짓고 따로 생활하는 령을 내리면서 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가족 화 되어 지배층의 내부에서도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예는 부부간에 서로 상간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부부간의 예를 엄격히 지킴으로 그 밑에 자식들에게 사회생활에서의 본보기로 가르치기 위함이었다.양반집 부녀자는 안채를 가장 안으로 두거나 벽을 겹겹이 두어 외부로 부터 안채를 차단시켰고 부득이하게 양반집 아녀자가 밖을 나가게 되면 가리개를 사용하였음으로 머리부터 뒤집어쓰는 너울이나 장옷 쓰개치마 등 가리개가 발달하였다. 또한 양반집 부녀자가 말을 탈 때에는 반드시 승마용 바지를 입었는데 만약 입지 않을 때에는 기생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양반집 부녀자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철저하게 가리고 다녔다.아는 것만큼 보이고 보이는 것만큼 느낀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이 수업의 강의 하나 하나를 들으면서 항상 느끼는 생각이지만 그 동안 나는 우리 생활 전반에 널려진 문화와 역사에 대해서 그냥 무의미하게 스쳐지나가고만 있었다. 그런데 이제 지금 남겨진 옛것 또는 재생해 내려는 것 하나하나에도 관심이 간다. 예전집의 문양 하나하나에, 예전 관습하나하나에, 우리의 전통문화를 최대한 재현해 내려는 사극에 더 깨어진 눈으로 보고 느끼게 된다. 아는 것상과는 달리 상대적인 개념으로 전체 속에서 서로를 만들어내고 서로를 이겨내는 관계를 설명한다.음양과 오행은 아주 오랫동안 각각 생겨져 내려오다가 기원전 4세기 추연 때에 이르러 합쳐져 정리되었다. 이때부터 세상의 모든 일들을 음양오행의 관계에서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오행은 또한 양의 성격의 오행과 음의 성격의 오행으로 나누어지고 홀수는 음을 짝수는 양을 색에서도 원색은 양을 중간색 계통은 음으로 구분하였다.이렇게 모든 것을 통계내고 내려오는데 주자가 다른 동양의 모든 사상들을 유교입장에서 결산하였다. 주자의 태극도는 동양사상에서 보는 우주자연의 원리를 정리한 것이다.태초의 혼돈이 있었는데 그것을 무극이라 한다. 무극 안에서 서로 다른 두 기운, 음과 양이 소용돌이치면서, 태극이 만들어 졌다. 태극이 만들어져 음과 양이 변화를 하는데 이것을 道 라고 한다. 태극의 핵심 원리는 理이고 음과 양의 핵심을 이루는 힘 즉, 세상 만물을 움직여 가는 힘은 氣이다. 그리고 이러한 음양의 운동으로 인하여 세상을 구성하는 물질의 기본이 되는 오행이 생기고 오행의 핵심을 質이다. 오행이 상생상극 함으로 세상의 만물이 만들어지는데 그것의 매개가 되는 것이 남-여, 수컷-암컷이다. 양의 도로 남자가, 음의 도로 여자가 만들어진다. 이러한 원칙에 의해서 만물이 생겨나고 자라고 변화한다는 것이 바로 태극도에서 말하는 우주자연의 원리이다. 여기서 가장 빼어난 기를 가지고 태어난 것이 인간인데 그리하여 인간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지배한다.그렇다면 한국전통문화속에 음양오행설이 어떻게 반영되었는가?태극기보자. 먼저 태극기의 중심의 태극 마크는 陰 과 陽의 합일을 의미하며, 태극의 사방에는 팔괘 중 사괘가 포함되어 있다. 하늘과 아빠 年을 의미하는 건. 땅, 엄마, 月과을 의미하는 곤. 물, 아들 日을 의미하는 감. 불, 땅, 時를 의미하는 리. 태극기에는 한 나라가 다 들어가 있다. 신성한 색인 흰색이 바탕이 되는 국토와 중간에서 음양의 조화로 살아가는 국민들, 그리고 그들을 사방에서 감싸나는 자연주의를 살펴보도록 하자. 그리고 그것이 앞으로 우리 생활에 어떻게 이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자.먼저, 자연주의의 개념에 대해서 파악을 할 필요가 있다. 자연주의란, 원래 있는 그대로의 법칙에 인간이 순응해서 같이 껴들어 굴러가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을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연의 법칙을 연구함으로서 그것의 법칙에 인간이 따라서 사는 것이다.그렇다면 자연을 정복하고 이겨내는 서양의 방식과는 달리 왜 우리나라는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면서 살아야 했을까? 그것은 우리나라의 기후?지리적 조건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우리나라의 기후는 매 계절 그 날씨에 맞게 대처해야 하는 뚜렷한 사계절을 가지고 있으며, 국토의 70~80%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식물이 잘 살수 없는 산성토양으로 사람이 살기에 아주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만한 적당한 환경이다. 그러므로 잘 살기 위해서는 항상 자연을 신경 쓰고 조화를 이루어 살아야 했다. 이것이 바로 자연주의의 출발이다.또 우리나라의 도교는 중국의 장자 도교와 많이 다르다. 우리는 그 근원을 단군에서 찾고 있다. 도교는 한국 전통적 무속 신앙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중국의 도교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연의 법칙을 연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는데 그것이 바로 음양오행설과, 풍수지리설이다. 특히 풍수지리설은 주생활에 관련된 연구라고 할 수 있다.우리나라는 예부터 사물을 그저 사물로 보고, 정복해야할 대상으로 보았던 서양과는 달리, 사물을 사람과 동일시하면서 모든 것에 그 격을 부여하였다.이러한 자연주의의 한계가 있었는데 그것은 진취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농경사회, 안정된 사회에서는 자연과 어울려 살기가 매우 적합하였지만, 서양의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물결을 따라 우리나라도 근대화 사회로 접어들었는데, 근대화 과정에서 동양의 문화가 뒤쳐졌던 원인이 바로 이 자연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생활이 안정된 지금 다시금 자연주의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 이는 지금 자연을 거스른 결과가 보여 지면서었지만 그러기 보다는 밑에 구덩이를 파 퇴비를 모아 두었다가 그대로 퇴비로 사용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우리가 자연과 어울릴 수 있는 장소가 있었는데 바로 별장과 별서다 별장은 사는 집 가까운 곳에 두고 자연과 쉬고 싶을 때 머무는 곳이었고 별서는 사는 집과 뚝 떨어져있는 곳으로 더 자연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다.의생활에서 나타나는 전통 자연주의는 우리는 예부터 백의민족으로 불려왔다. 백의민족은 피지배층의 문화이다. 백의는 염색을 안 한 천연 그대로의 상태의 옷을 말한다. 백의의 기원은 염료로 사용하는 쪽이 귀해서 일반 백성들은 엄두를 못낸 것과, 맑은 물이 있기 때문에 굳이 염색할 필요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고, 농경문화에서 햇빛을 가장 많이 반사하는 색으로 유용했기 때문이고 또 예부터 햇빛을 상징하는 색으로 불교에서도 흰색을 신성시 하였다. 또한 우리의 백의민족의 정서를 없애기 위해 군청색과 검은색 계통의 옷을 입게 하는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정신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식생활에서 나타나는 전통 자연주의는 우리는 그 음식의 특징을 그대로 살리는 형태의 자연식과 또한 인간과 사물을 동일시하는 사상에 입각하여 같은 공간 같은 기를 가지고 있는 음식을 먹는 토산음식을 선호하였다.식물성 재료의 음식을 발효시켜 감칠맛 나는 음식을 먹었고, 옹기도 음식에 성격과 자연조건에 맞게 지역마다 그 모양을 달리하여 만들어 음식을 발효시켰다.예전에는 아토피라는 병을 상상이나 했을까? 콘크리트 벽에서 나오는 환경호르몬은 조금씩 우리 몸의 누적되어 새로운 증후군을 만들어 내고 오존층에 구멍이 뚫린 일이나 빙하가 녹고 있다는 소식은 해마다 강도를 더하여 들려온다. 우리가 자연을 거스른 결과가 나타나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이때에 자연주의가 부곽 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슬로건이 유행하기 시작하는데, 이때에 우리가 옛 전통을 다시 잘 살려 다시 자연과 조화롭게 산다면 지구와 인간의 수명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황토와 진흙을 사용하고 겉에 회칠하는 자연적인 벽을 실생활에 맞게 나간다.
◆공동체 가족 개인(Community?Family?Individual)◆이번 강의는 실생활 속에서 유교문화가 어떻게 녹아 들어가 있는지에 대해서 배워보았다. 먼저 한국 전통사회의 마을공동체의 개념정리를 해보자.마을공동체란, 운명을 같이하는 집단으로 단순히 한 지역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혈연과 지연을 매개로 만들어진 공동체이다.마을은 주로 반촌과 민촌으로 나뉜다. 반촌은 양반이 주도하는 마을이고, 민촌은 일반 평민들만 양반 없이 사는 마을이다. 그러나 척박한 농촌이나 강촌, 어촌을 재외하고는 대부분의 농촌마을은 모두 반촌이었다. 그것이 주도적 형태를 띠는 것은 특히 조선후기 양반의 수가 늘어난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마을공동체는 자치적 운영을 하였다. 중앙정부에서 재판의 권한을 주어 백성을 통제시키기 위해 수령을 파견하였으나 중앙에서 파견한 수령이 유교사상에 입각해서 덕치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서 백성들을 교화시키는 덕치는 자치를 주도하는 사람인 군자, 즉 사림들에게 맡겨지게 되었다. 또한 수령은 그 마을에 중인쯤 되는 사람을 향리를 두어 행정업무 등 실무를 맡기게 하였다. 이렇게 수령, 향리, 사림이 마을을 자치적으로 운영하였는데 이들은 서로를 견제하며 마을을 다스려나갔다.지방사회에서는 그래도 사림이 절대적 권한을 가졌다. 백성들이 죄를 지었을 때 법으로 다스리는 수령과는 다르게 덕치에 입각하여 부끄러워 반성하게 하는 벌을 내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유교에서 가장 금하는 강상죄에 관해서는 마을 안에서 본보기를 보여줌으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강경하게 처리하였다. 그리고 이때에 수령은 그들의 처신을 보면서도 마을의 이미지를 위해서 묵인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양반이 살지 않는 민촌은 주로 마을 일들을 사람들이 모정 에 모여서 의논함으로 군역이나 세금을 분배하였다. 반촌에 비해 상대적으로 민주적이라고 할 수 있다.지금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는 것 중에 계라고 있다. 계는 몇몇이서 매번 필요한 만큼 모아서 급한 사람이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계가 마을 전체가 계를 들으면 동계가 된다.향도는 불교가 들어온 후 신자가 된 사람들이 염불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는 노동조직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불교의 요소가 빠지고 노동조직의 성격만 계승 되었는데 그 조직을 두레라고 한다.지방 사람들이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유교적인 것을 교양시키는 것을 보급하는 것이 향약인데 규모가 커져서 그것이 고을단위가 되면 이를 동약 이라고 한다. 동약은 마을 단위로 사람들끼리 유교적 약속과 규범이다.이러한 공동체 조직들은 대체로 자생적이고 이익을 따지지 않는 공동체 조직이다. 그런데 품앗이 라고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개인들 간에 상호 노동을 교환하는 것으로 서로 노동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 모든 체제가 조선후기까지 유지되어 왔었다.이제 한국 전통 생활문화와 가족에 대해서 살펴보자. 우리나라 전통생활의 중심은 가족이었다.우리나라가 부계중심의 가족제도가 성립된 것은 조선시대 후반이다. 그 전에 고려시대부터 조선전기 까지는 딸, 아들 구별 없이 제사를 지내고 재산도 규분 상속 되었었다. 그러나 17세기 이후 딸들이 유교사회에서 제사를 지내고 부모를 봉양하는 의무를 제한하자 재산 상속에 장남를 중심으로 차등을 두었다.친족은 부계는 8촌, 모계는 4촌까지만 친족으로 쳤다. 부계 8촌과 모계 4촌을 문중이라 하는데 문중은 종가중심으로 발달하게 된다.전통 문화에서는 식구와 한솥밥문화가 중요시 여겨졌다. 조선시대는 신분에 따라서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한 집에 살아도 신분이나 직위에 따라서 밥상을 달리하였다. 예를 들어 한 양반에게 첩이 있어도 본처와 본처의 혈통만이 식구가 되어 같이 한솥밥을 먹을 수 있었다.우리가 흔히 한국전통 사회에서 개인과는 거리가 멀 다고 생각하는데 우리 전통사회에서도 개인이 중시된 것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