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나의 존재를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면 어떤 느낌일까? 만약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죽고 세상에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면 나는 끝없는 외로움을 느꼈을 것이고, 내가 인정받지 못함에 자살 충동을 몇 번 씩이나 느꼈을 지도 모른다. 인간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임을 이 소설을 통해서 다시 한 번 느끼게 되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의 향수에서는 존재에 대해 갈망을 하는 인물인 장 바티스트 그루누이를 소개하고 있다. 그루누이는 민감한 후각을 갖고 태어나 모든 사물을 시각이 아닌 후각으로 지각하고, 그 향기를 가두는 방법을 터득해 원하는 사람의 체취를 향수로 만들어 간직하는 능력을 선보인다. 그러나 자신은 정작 향기가 없다는 것과 남의 향기를 흉내 낸다고 해서 자신의 향기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결국 향기가 날아가 버리듯 세상을 떠나버린다. 여기서 향기는 그 사람의 존재 곧 영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루누이가 소녀들의 향기를 소유하는 과정에서 소녀들은 영혼을 빼앗겨 죽게 되는 것이다. 우선 소설 향수의 주요한 특징 중 첫 번째는 인간들의 모든 혐오스러운 점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소설의 거의 끝부분에 그루누이가 자신이 좋은 향수를 뿌렸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자신에게 아부하는 모습을 보고 굉장한 혐오를 느낀다. 하지만 인간들은 냄새의 천재인 그루누이조차 자신이 향기가 없다는 존재임을 뒤늦게 깨달은 것처럼,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르고 살 때가 많다. 그러면서 자신을 제외한 모든 인간의 본능과 욕심에 대해선 꼭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처럼 생각하고 혐오를 느낀다. 두 번째 특징으로 타인의 향기를 자신에게 입히고 싶어 함으로서 남을 추구하고 모방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그루누이가 타인의 향기를 소유하길 갈망하듯 향수 제조인 발디니도 남이 만든 향수를 시샘하고 그를 모방하려 애쓴다. 하지만 인간은 곧 자신의 자아를 찾으려는 단계를 거치게 되고, 소설의 세 번째 특징으로 자신의 고유의 존재를 남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인간을 그루누이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 그는 자신에게 향기가 있어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를 꿈꾼다. 허나 다른 사람의 향기를 입고 사람들이 자신을 인식함을 넘어 우러러 보게 되어도 어차피 그 향기는 가면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그는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타인으로서가 아닌 그루누이 그 자체를 인정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 정리하자면, 파트리크 쥐스킨드는 소설 향수를 통해 인간은 자신의 속성을 잘 알 필요가 있고, 남을 모방하지 않은 채 자아를 실현하여, 남에게 그 존재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존재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향수에서는 그루누이의 태생부터 인간이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주의적 존재임을 보여준다. 그의 어머니는 파리에서 가장 악취가 심한 생선가게 안에서 그루누이를 출산하고, 자신의 입조차 풀칠하기 어려운 형편 때문에 생선 내장 속에서 그가 죽게 내버려 두었다. 하지만 그루누이는 죽음보다 삶을 선택했고, 그의 첫 울음소리는 그의 어머니를 교수형에 처하게 만든다. 이 장면은 인간의 살벌한 생존의 욕구를 보여준다. 그루누이가 자라면서 일꾼을 짐승같이 부려먹고 돈 욕심에 눈이 먼 무두장이 그리말을 만나게 되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인간의 본능적인 욕심보다는 명예에 대한 욕망을 가진 향수 제조인 발디니를 만나게 된다. 발디니가 후각의 천재인 그루누이를 이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욕심은 그리말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그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해 욕심을 내는 게 아니라, 이름을 떨쳐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를 보여준다. 그루누이가 거쳐 간 인물들을 통해 욕심의 점차적인 단계가 보여 지고, 그루누이에게도 그것이 적용됨을 알 수 있다. 그도 처음에는 생존을 원했고 점점 성장할수록 세상의 향기를 수집하고 나중엔 향기로 자신의 이름을 멀리 떨치고 싶어 한다.향수에서 향기가 영혼을 상징한다면, 좋은 향기는 높은 신분이고 나쁜 냄새는 낮은 신분을 상징한다. 주인공을 제외한 사람들은 좋은 향기를 우러러 보고 낮은 신분 사람들을 막 대한다. 그루누이가 파리를 떠난 후 갔던 그라스에서 만난 드뤼오는 향기에 따라 자신도 모르게 그루누이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한다. 그는 그루누이를 혼내려 그를 찾았지만 마침 좋은 향수를 뿌린 그루누이에게 자신도 모르게 친절하게 얘기를 건네고 만다. 이 좋은 향기를 묘사하는 방법은 영화에 아주 잘 표현되어있다. 그루누이가 처음으로 만든 향수를 맡아보는 순간 발디니는 순식간에 꽃이 만발한 지상의 낙원에서 아름다운 여인이 사랑한다고 속삭이는 장면으로 빠져든다. 영화는 그 향기가 얼마나 황홀한지 풍성한 색감과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의 효과로 사람들에게 소설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전달하였다. 소설은 이 장면을 이렇게 표현했다. “발디니는 마음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들이 떠올랐다. 나폴리의 정원…사랑의 고백이 바로 귓가에서 들리는 듯하고……지금 바로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처럼 말이다!” 인간들은 이렇게 아름다운 향기를 맡고 황홀한 감정에 젖어 결국엔 성에 대한 욕구를 채우고 싶어 한다. 그루누이를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죽이려 했던 사람들은 그가 마지막에 처형장에 궁극의 향수를 뿌리고 나타났을 때, 곧장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더니 결국엔 서로 부둥켜안고 성욕을 채운다. 인간의 아주 본능적인 그 장면을 보고 유일하게 이성적이었던 그루누이는 역겨움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성에 대한 욕구가 있기 마련이다. 지은이는 인간의 아주 본능적인 욕구를 본능 앞에 이성적일 수 있는 그루누이의 시선으로 바라봄으로서, 독자들에게 인간의 본능은 가장 혐오스럽게 보여 질수 있지만, 누구든지 갖고 있다고 인정해야만 하는 성품이라고 말하고 있다.사람 눈에는 항상 남의 떡이 더 커보이듯이, 인간들은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을 남을 통해서 찾을 때가 많다. 허나 이 모방을 통해 자신을 잃어버린다면, 그것은 잘못된 방법이다. 원래부터 향기가 없던 그루누이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던 소녀들의 향기를 하나씩 소유하기 시작하고, 결국 자신의 향기로 만들려고 한다. “단 한번만이라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 되어 자신의 내면을 드러내고 싶었다.” 하지만 향기는 그 사람 고유의 존재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그루누이가 다른 사람의 향기를 소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타인의 가면을 쓴다는 것이다. 그루누이는 결국 심각한 자아상실에 빠져 큰 회의를 느껴, 그 존재를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더 나아가 사랑받았음에도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오히려 옛날을 그리워하게 된다. “기쁨은커녕 최소한의 만족감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항상 갈망해 왔던 일,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만드는 일에 성공한 이 순간에……자신은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증오 속에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루누이의 존재는 남을 모방한 사랑 속에서가 아니라 언제나 증오 속에서 나타나 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서 나는 “악취에 질식하지 않기 위해 차라리 산산조각으로 폭발해 버리고” 싶을 만큼의 상실에 빠지게 된다. 결국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는 것처럼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처음부터 자신만의 향기를 갖고 다시 태어나고 싶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사람에게 미움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로 무관심이다. 그루누이는 향기가 없기 때문에 그가 길을 지나가도 사람들은 알아채지 못한다. 그루누이가 어디서 죽었다고 해도 알아챌 사람이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그는 병이 걸려 몸이 썩어 들어가도 냄새하나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을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그의 미래나 현재보다 그의 과거이다. 하지만 그루누이를 가장 가깝게 알았던 사람들, 그의 출생을 알고 있는 그의 어머니, 그의 유년기 시절을 알고 있는 고아원의 유모, 그리고 그의 청년기를 알고 있는 무두장이 그리말과 향수 제조인 발디니는 그루누이와 작별을 한 후에는 모두 드라마틱하게 죽어버린다. 때문에 그루누이의 존재는 더욱더 미궁에 빠진다. 그런 외로움 때문인지 그루누이는 자신만의 냄새의 왕국을 상상하며 자아실현을 이루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그의 상상속의 공간일 뿐, 그가 상상에서 깨어나면 “현실세계가 그에게 부여하는 고통의 시간은 끝이 없었다.” 그는 그가 냄새의 천재라는 것에 대해, 또 냄새라는 영역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정작 자신의 존재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왜 다른 인간들과 달리 고유의 냄새가 없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큰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이것을 그는 뒤늦게 깨닫게 된다. 남의 냄새에만 흥미가 있었고 자기 자신을 돌아 볼 기회는 만들지 않았던 것이다. 이처럼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단점과 장점을 알고 얘기할 수는 있으나 정작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돌아보지 못한다. 자신을 스스로 돌아보기가 힘들다면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통하여 자기가 남에게 어떻게 비추어 지는지 알 수 있다. 그래서 남에게 무관심보다 신랄한 비판이라도 받는 편이 자신을 인정받고 발전시키기 위해 좋다. 그래서 그루누이가 소녀들의 향기를 입고 다니는 목적을 세웠는지도 모른다. 소녀들처럼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그루누이는 그가 처음 사랑을 느꼈던 향기를 가진 소녀가 자신이 바로 뒤에 있음에도 아무도 못 본 듯 두리번거리는 상상을 한다. 그 장면은 그가 얼마나 절망적이게 존재의 위기를 느꼈는지 말해준다. 향기 없는 그는 투명인간과도 같았던 것이다. 하지만 남의 향기를 입었다고 하여서 사람들이 그루누이를 그루누이 자체로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희생자인 로라 리쉬의 아버지는 로라의 향기를 뿌린 그루누이에게 “내 아들아!”라고 외친다. 궁극의 향기를 뿌린 그루누이는 자신조차 자신의 존재를 무시하고 무작정 남의 흉내를 냈으며 그 모든 것이 덧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걸 바르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인간은 자신만의 자아를 이루고 그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여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