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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A.Torrey의 성령론 평가A+최고예요
    서 론- 토레이 박사의 성령론을 연구하게 된 배경본 글의 일차적 목적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을 넘어서 세계 전역에 영적 각성을 일으켰던 유명한 전도자이자 성경신학자였던 R. A.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1856~1928)박사의 성령론을 정리하고 살펴봄으로써 현대에 넘쳐나는 수많은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력 가운데에 좀 더 올바른 성령에 대한 성경적 가치관을 확립하고자 하는 것에 있다.오늘날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성령에 대한 이해는 다양하다. 어떤 이들은 성령을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이해하고 , 어떤 이들은 성령을 지식적으로만 이해하고, 또 다른 이들은 성령을 인간의 이성을 뛰어넘는 큰 능력으로만 생각한다.성령에 대한 무관심과 편견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기독교 신학에 적지 않은 손상을 입혔다. 잘못된 성령이해로 인해 엉뚱한 이단 사상으로 빠지기도 하고, 성령의 사역을 잊어버리거나 억압함으로 하나님의 능력과 멀리 떨어져 있는 가운데 지식만을 앞세우며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같이 성령의 사역을 등한시 여기는 일도 비일비재 하게 되었으며, 성경의 권위를 타율적 권위로 변질시켜 교회를 지배와 다스림만이 있는 경직된 권력구조로 만들어 가기도 하였다. 또한 사랑만을 앞세워 무분별한 방종과 방탕함과 음란함이 교회 안과 밖에서 넘쳐나고 있는 것이 현재 그리스도인들과 교회 지도자들이 헤쳐 나아가야할 당면한 과제 인 것이다.이러한 입장에서 볼 때, 생령의 근원된 성령님과 구체적으로 교제하고 동역하며 말씀을 근거로하여 기본적인 신앙을 강조하면서 자유주의 물결에 대처하여 정통주의 입장을 고수한 R.A.토레이 박사의 성령론은 금새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치며 그들의 삶과 사역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하였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신학자들 사이에서 이 교리는 한 번 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표적 성령론 중에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20세기 대표적 성령론 중의 하나인 토레이 박사의 성령론에 대해 연구하는 것이 좋은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보면 성령은 근심하시는 분이시다. 다시 말하면 성령은 인격자이시니 곧 우리들을 사랑하시는 인격자이시며 거룩하사 죄를 극히 싫어하시는 인격자이시다는 것이다. 이 사상은 참으로 귀중한 것으로서 이러한 생각을 가짐으로써 우리는 언어와 생각에 조심하여 우리에게 내재하시는 성령을 즐거우시게 하려고 하는 능력있는 격려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이와 같이 우리는 어떤 사람의 힘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문제를 성령께 대한 올바른 생각을 가짐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성령을 슬프절을 시게 하더라도 나만 즐거우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진실로 모든 문제를 성령의 뜻대로만 해결하기 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2>둘째로 성령이 인격자이심을 증명하는 또 한 가지 사실은 다만 인격자만이 행할 수 있는 여러 행동을 성령께서 가지신다는 것이다. 고린도 전서 2장 10절에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는 말씀이 있다. 다시 말하면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성령은 단지 발견할 수 없는 진리를 깨닫도록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고 강하게 하는 빛만이 되실뿐 아니라 친히 하나님의 깊은 진리에 통달하시사 당신이 발견하신 것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인격자이시다. 성령이 인격자가 아니시라면 도저히 이렇게 말할 수 없는 것이다.다음으로 로마서 8장 26절을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고 하였다. 여기서 성령은 인격자라야 행할 수 있는 일, 다시 말하면 기도하시는 분으로 표현되어 있다. 성령은 단순히 우리에게 오시어 기도하도록 우리를 권고하는 감화력만도 아니고 우리가 기도를 드리는 일을 인도하시기만 하는 분도 아니다. 그는 실로 자신이 친히 기도하시는 인격자이 했던 설교를 오순절 전날에, 다시 말하면 성령께서 강림하시기 전날에 하였다고 하면 그러한 결과가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오순절 날에 베드로와 일백 이십 명이 “다 성령의 충만심을 받았고”(행2:4) 그 다음에 베드로가 설교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 안에서 개인적으로 전도하였기 때문에 그처럼 놀라운 결과가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무엇보다 귀중한 일은 성령을 믿는 일이다. 사람의 죄를 일깨워주시는 성령의 능력을 믿고 우리 자신을 그에게 맡기고 그의 영광스러운 역사를 행하시도록 맡겨야 한다. 그리하면 정녕코 놀라운 역사를 하실 것이다. 그러면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일깨워 주시는 죄가 무엇인지 생각하여 보자. 성서에 이런 말씀이 있다. 곧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 함이요”라는 말씀이다.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책망하시는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아니 하는 죄이고, 술을 마시거나 도둑질 하거나 간음하거나 살인하거나 그 밖의 어떤 부도덕한 짓을 행하는 죄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죄를 책망하시는 것이다. 이 죄가 곧 오순절날 성령께서 삼천 명에게 일깨워주시던 죄이다. 사도행전 2장 36절을 보면 이때에 베드로가 말한 것은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였느니라”고 한 것이었다. 그 다음 37절을 보면 “저희가 이 말을 듣고(곧 저희가 배척하였던 그분이 주와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 할고”라고 하였다. 그렇다. 오늘날 성령께서 사람들에게 일깨워주시는 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거룩한 주와 그리스도로 삼으신 그분을 믿지 않는 그 무서운 죄이다.이 불신앙은 모든 죄 중에서도 가장 악하고 결정적인 죄이며 견디지 못할 저주받을 죄라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한다. 그는 과거에 있어서 뉘우치기도 하겠지만 가장 무지식이 되게 하시지 않는다면 참되시고 살아 계시며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알 수 없다.그러므로 우리가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참 모습을 알게 하여 주님을 믿음으로써 구원받게 하려면 반드시 성령의 증거하심을 얻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하며 우리 자신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되 성령께서 우리를 통하여 당신의 증거하심을 타나내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만 우리의 힘만 가지고 토론하며 권면한다면 아무리 애쓴다고 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와 살아 계신 참 모습을 사람들에게 깨닫게 할 수 없다.또한 만일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참 지식을 얻기 원하면 성서를 연구하여 하나님의 성령이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씀하였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넉넉하지 못하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의 증거하심을 성경을 통하여 우리의 심령에 직접 나타내 주시도록 힘써야 하며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성령께서 당신의 증거하심을 직접 우리의 심령에 나타내실 수 있도록 만들기를 힘써야 한다. 성령께서 우리의 심령에 직접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주시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가져야 할 태도는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것이다. 사도행전 5장 23절을 보면 베드로가 말하기를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도 요한복음 7장 17절에서 다음과 같이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비록 복음이 사람으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려는 특별한 목적으로 사용되기는 하였지만 요한복음을 아무리 많이 읽는다고 하더라도 그것만 가지고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리를 깨달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저자 자신도 20장 31절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심을 믿게 함음서, 사도행전 및 서신들을 읽으며 공부하는 중에 특별히 마음에 걸리는 말씀이 있었다고 한다. 그 말씀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니”,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이 그들 위에 임하시니”, “성령의 선물”,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움” 및 그 밖의 이와 깊이 관련된 문구들이었다. 그가 이러한 여러 개의 관련된 말씀을 연구하는 중에 분명히 깨달은 것은 이 여러 말씀들은 실제에 있어서 모두가 같은 체험에서 나온 말씀이고 또 하나님께서는 현재에도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수 있도록 마련하고 계시다”는 사실이었다. 토레이 박사는 성경 저자들이 가졌던 경험을 자신은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이 후, 그 자신도 이러한 경험을 얻으려고 힘쓰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 토레이 박사의 성령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본받길 마음 속 깊이 간절히 원한다. 그러면 지금부터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성령 세례란 무엇인지, 또한 성령 세례의 결과는 어떠한지 그의 주장을 살펴보겠다.1. 성령 세례란 무엇인가성령 세례란 무엇인가 생각하여 보자. 첫째로 성령 세례는 사람이 이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알 수 있는 한 가지 역력한 경험이다. 이는 사도행전 1장 4~5절에 있는 말씀 곧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람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보아서 성령의 세례는 자기가 그 세례를 받은 여부를 알 수 있는 확실한 경험임이 분명하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언제까지 기다리며 또 전도사업을 시작할 날이 언제임을 사도들이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사도행전 19장 2절을 읽어 보아도, 이를 분명히 알 수 있다. “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 주심을 듣지도 못하였노라.” 바울을 다.
    인문/어학| 2010.06.11| 17페이지| 2,500원| 조회(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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