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학도로서 공부를 하면서 모든 역사를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을 수없이 들어서인지 이 책 내용을 완전히 공감하지는 못했다. 물론 이 내용들이 다 틀렸다는 말은 아니다. 3장 한국인의 신명과 예술성의 경우에는 새롭게 깨닫는 내용도 많았다. 특히 한국 문화에서 나타나는 무교의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잘 잡아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자면 타국의 개인적 신앙심을 바탕으로 한 조용한 기독교가 한국으로 전파되면서 무교의 영향을 받아 예배 시간만 되면 ‘오~하나님’을 부르짖고 시끌벅적한 기독교로 변해 버린 모습을 지적할 때 나는 진심으로 무릎을 탁! 쳤다. 뭐든 ‘우리’가 우리를 이해하는 것 보다는 ‘너희’가 우리를 이해하는 것이 객관적인 것에 가깝긴 하다. 그러나 나는 1장, 2장을 읽으면서 연신 인상을 찌푸렸고 고개를 갸우뚱 하기가 일쑤였다. 사실 처음 제목을 보고 생긴 약간의 반발심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럼 한국에 문화가 없다는 말인가?저자 최준식은「세계의 문화와 조직」이라는 책에서 네덜란드인 홉스테드가 제시한 이론을 저자 자신도 모른다는 한국인과 연결한다. 이를 보면서 한국인도 모르는 한국인의 문화와 특성이라하면서 어찌 외국인이 본 것과 연결하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제3자는 객관적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그도 네덜란드인이며 유럽인인데 자신들의 문화영향을 안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저자는 책을 쓰게 된 동기가 홉스테드의 책 때문이고, 나중에는 심지어 자신의 이야기는 되지도 않는 것이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대학자의 이론을 듣는 게 더 낫겠다고 한다. 겸손이 지나쳐 예에 어긋난 것처럼 보일 정도다. 홉스테드의 이론은 각 문화의 성격을 규정하는 여러 기준(권력거리, 집단과 개인 등등)을 제시한 것인데 견강부회 식으로 갖다 붙인다는 느낌이 들었다.저자는 특히 미국과 일본의 예를 많이 들어 한국문화를 설명한다. 우리도 잘 알고 있듯이 ‘우리’라는 말의 남용에 대해서 쓰고 있는데 굳이 영어로 번역하면 ‘our family’, ‘our house’ 같이 우스꽝스러운 꼴이라는 것이다. ‘우리 남편’ 이런 말은 따지고 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조차도 잘 알고 있지만 영어로 번역해서 우스운 꼴이 된다고 해서 ‘우리’의 남용을 지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리’라는 표현은 문법과는 다른 특유의 가치관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도 우리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유교를 실리를 잘 받아들인 일본과 비교한다. 우리가 일본과 이렇게 극심한 차이가 나는 것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고 본다. 완전히 부인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선이 망한 이유가 전적으로 유교 때문은 아니라는 것은 사학을 조금이라도 공부한 사람이라면 알 터인데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과 교수인 저자가 저런 발언을 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물론 그렇다고 한국 문화(책에서는 대부분 집단주의와 가족주의로 통한다.)의 단점을 꼭꼭 숨겨두는 것이 옳은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 집단주의와 가족주의가 만연해 있다는 것은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사회에 미치는 악영향도 분명히 알고 있다. 우리 사회가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문제라는 것도 가슴은 이해 못 할지 몰라도 머리로는 똑똑히 이해하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이용한 것일까?저자는 사소한 것도 집단주의로 끌고 간다. 딸 아이 운동회 얘기를 보고 나는 전혀 다른 두 느낌이 들었다. 운동회 때 체육교사의 구령에 맞추어 전교생이 교장선생님에게 “단결!” 하고 거수경례를 하는 것은 과거 군부의 집단주의적 감정이 남아있다는 것에 대한 조금의 동감과 단체운동 또한 집단주의적 산물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그것이다. 또 호칭문제도 그렇다. 우리말에서 높임법이 유난히 발달되어 있는 것을 권위주의, 집단주의 때문이라고 말하는데 전혀 상관없지는 않겠지만 앞, 뒤에서 권위주의와 집단주의를 안 좋은 것으로 평가하고 또 다시 전적으로 몰아가는 것은 몹시 극단적이다. 이 외에도 저자가 전적으로 몰고 가는 것, 즉 다른 가능성은 배제하고 어느 한 가능성만 생각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다. 우리나라 가족 형태와 권위주의 정치체제를 연결시킨 것이 그것인데 외적으로는 핵가족제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가부장제에 근거하고 있다는 현상 파악은 꽤나 정확한 편이지만 서양식 핵가족제로 쉽게 옮겨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권위주의적인 정치판도 금세 없어지지 않을 것이고, 세대가 거듭되고 가정 내 민주요소가 정착되면 정치도 그렇게 될 것이라 하는데 도대체 이 같은 연결고리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다른 가능성은 전혀 열어두지 않고 말이다.
‘조선미의 탐구자들‘이라하여 조선 건축과 조선 사람만 생각했던 건 나의 성급한 판단이었나 보다. 저자가 재일 동포라는 사실에 놀랐고 이 책 속의 조선미의 탐구자들 대부분이 서양인, 일본인이라는 것에 또 놀랐다. 재일 동포가 쓴 책이다 보니 한국문화를 지나치게 우수한 문화로 보는 감이 있지만(옮긴이의 말) 이 책을 읽으면서 한 생각은 주로 ‘미술적 안목도 키울 필요가 있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사실 예전에도 어느 교수님께서 “사학과 학생들도 미술을 조금 알아둬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때는 왜 그래야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조선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서양인들과 조선을 우습게만 보았을 일본인들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은 우리의 것들(딱 보기에 아름다운 것도 있지만 소박미에 중점을 둔다.)을 나는 여러 번 보아도 ‘아-소박한 아름다움이다.’ 이런 생각을 못했으니 나의 눈이 얼마나 편협한지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의 눈에 아름다운 것은 원각사지 석탑이나 경천사지 석탑같이 보기에 크기로 압도당하고 놀라운 균형미와 섬세함을 갖춘 것들뿐이었다. 이러한 조건들이 아름다움이 아니란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나는 어느 정도 진정한 아름다움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그 생각은 저들로 인해 와장창 깨졌다. 조선백자와 연적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느낄 날이 내게도 올까 싶다.진정한 조선의 아름다움을 안 서양인들도 물론 놀랍지만 더욱 놀라웠던 것은 일본인들이다. 다기(茶器) 얘기를 하면서 온갖 일본어를 쏟아내어 잠시 나의 무지함에 답답함이 일기도 했지만, 그들의 학자로서의 양심을 생각하니 영화 ‘한반도’가 생각났다. 일본에 극히 불리한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자로서의 양심을 지켜 사실을 밝히는데 기여한 영화 속의 인물들처럼, 도미모토 겐키치 ? 가와이 간지로 ? 구로다 다쓰아키 ? 야나기 무네요시 이들 또한 학자, 지식인의 양심을 지켜 조선의 문화주권을 되찾아주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이들이 진정으로 조선의 문화주권을 돌려주고 독립을 시켜주기 위해 노력을 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당시 일본의 조선 문화재 약탈 관행을 ‘죄악 중의 죄악’이라고 말하며 총독부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끊임없이 반환을 요구한 것을 보면 이들은 적어도 정치와는 다른, 국적을 불문하고 만인에게 통하는 보편적인 감정의 순수한 문화의 힘을 믿었던 것만은 분명하다.이 책을 읽으면서 사학도로서 주목할 만한 사실들을 알게 된 것도 하나의 수확에 해당하는데, 일제 강점기 당시 역사적 사실의 이면이 그것이다. 사실 이면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굵직한 역사적 사실에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하던 사실이 끼어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었다. 경천사지 석탑을 반환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던 헐버트가 고종의 헤이그 특사 중에 한명이었고 고종에 의해 미국으로 보내진 헐버트가 워싱턴에 도착하기 전에 일본이 을사조약을 서둘러 체결하였으며, 우리에겐 아픈 상처이지만 그토록 완강하던 일본이 석탑 강제반출 사실을 인정하고 반환을 지시했던 것은 석탑 반출 사건이 조선병합에 어떠한 지장도 주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의 사실을 보고 나는 흡사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역사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침묵을 깬 이도 일본인이었단 사실 또한 나를 놀라게 한건 마찬가지였고 조선 해방의 중요한 계기라고 할 수 있는 카이로 선언의 서두 부분(…조선 민중의 노예 상태에 유의하며…)에서 ‘노예상태’라는 말도 야나기가 그로부터 수십 년 전 문화를 잃어가는 조선민중을 생각하며 한 말이라는 점에서도 역시 그랬다.고등학교 때 근현대사 교과서에서 간송 전형필과 간송미술관에 대해서 짧게 본 기억이 난다. 그 때는 ‘그런 사람이 있구나.’라고만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다시 알았다. 그는 부잣집 자식으로 태어나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는데 일생을 보낸 사람이고 문화재를 사들이기 위해 집안 소유의 땅까지 처분해가며 조국과 역사를 위한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였다. 이러한 간송 전형필 선생의 (문화재에 대한)광기는 지금껏 어느 것에도 저렇게 미쳐 본 적이 없는 나에게 큰 충격이었다. ‘미쳐야 미친다.’는 말처럼 내가 과연 무엇에 미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조국을 위한 역사적 사명을 갖고 수집해야 할 문화재도 없거니와 나에게 그럴 자격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간송 선생처럼 대단한 수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선생이 그것을 어찌할 수 없는 운명으로 생각했듯 나 역시 어떠한 것에 미쳐봐야 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은 일본 최초의 노벨문학상을 받은 소설로서 일본의 근대 서정문학의 정점을 이루는 대표작이다. 그러나 나는 디자이너 앙드레김이 세상을 떠났다는 기사를 읽던 중 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앙드레김’하면 ‘흰 옷’이 바로 떠올려질 만큼 그는 흰 옷을 유달리 좋아한 것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가 바로 이 소설 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앙드레김은 생전 어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흰 옷을 입게 된 것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이라는 책을 감명깊이 읽었기 때문"이라며 "순수함, 정신적 세계의 순수함이 순백에서 가장 많이 느껴진다. 정신적인 안정이 느껴진다." (민중의 소리)고 말한 바 있다. 한 인간의 일생의 업적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힘을 가진 소설이라니, 내 인생의 모티브도 찾을 수 있을까 생각하며 첫 페이지를 넘겼다.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 인생의 모티브, 찾지 못했다. 애초에 이 소설은 ‘인간의 일생의 업적에 영향을 끼칠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는, 읽는 이에게 어떤 동기나 교훈을 주기위해 큰 목소리로 탄탄한 줄거리를 외치고 있는 소설이 아니었다. 다소 비장한 각오로 첫 장을 넘겼으나 채 다음 장을 넘기기도 전에 나는 더 이상 책을 읽고 있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은 저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13년에 걸쳐 쓴 연재분을 합하여 탄생한 소설이라 그런지 전체적으로 줄거리나 인물의 성격이 뚜렷하지 못하여 처음에는 이해하는데 다소 어려웠다. 더듬더듬 소설 속의 길을 찾고 있을 때 즈음, 주인공 시마무라가 설국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요코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놀라 밖과 안의 기온 차이로 수증기가 낀 창문을 문질러 닦고 ‘거울’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그 거울로 남자는 여자를 관찰한다. 이 때, 소설 속에는 ‘거울’이라는 장치가 숨어있다고 생각했고 나 또한 그 거울을 통해 소설 속 인물들을 관찰 하였다. 그 후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기며 그 어떤 잣대도 대지 않고 그저 시마무라의 순간적이고 단면적인 의식의 흐름을 따라갔고 나 또한 무심하게 시선을 흘리는 것 같은 기분으로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니 소설이 한 층 더 쉽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도시에 사는 주인공 시마무라는 겨울이면 '밤의 밑바닥이 하얘질‘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눈의 고장‘ 유자와 마을로 휴가를 떠난다. 그는 여기서 만난 게이샤 고마코, 고마코를 만나기 위해 마을로 가는 기차에서 만난 요코, 그리고 고마코의 약혼자로 추정되나 지금은 요코의 애인인 유끼오 이들 셋 사이에 은근히 끼어 묘한 삼각구도의 분위기를 낸다. 시마무라는 서양 무용에 관한 글을 번역하며 벌이를 하는데 그리 어렵지 않은 형편으로 등산과 여행을 즐기며 유유자적한, 그러나 고독한 인물이다. 공허한 느낌의 그는 소박한 생명력이 있는 고마코에게서 우정과 사랑 그 사이의 감정을 느낀다. 사실 나는 이 소설에서 시마무라가 고마코를 사랑한건지, 고마코와 유끼오가 정말 약혼자 였는지, 요코와 고마코의 사이가 좋은건지, 나쁜건지를 정확히 따지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 속에서 그들만의 묘한 관계를 그저 느낄 뿐이다. 인물 간의 정확한 관계정립에 몰두하여 시야가 좁아지면 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무한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물을 그릴 때는 붓을 휙 하고 그은 것처럼 간소하게 묘사하였지만 반면 그 배경의 자연은 아주 자세하게 정성을 들여 하나하나 그려 놓았다.나는 바로 이 소설의 배경에 압도되었다. 에서의 배경묘사는 그 자체로도 충분히 아름다워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주지만, 그저 장소와 시간 등을 알려주는 배경으로서만 역할 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공의 감정을 대신 나타내어 주는 중요한 요소로써도 작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상대적으로 인물묘사를 과하지 않게 한 것 같다. 시마무라는 기차에서 처음 요코를 보고 아름다움에 반해 기차 창문에 비친 요코의 모습을 관찰한다. 창밖의 눈으로 덮인 산과 들의 풍경을 감상하는 듯 몰래몰래 요코를 관찰하던 순간, 갑자기 요코의 얼굴이 붉게 밝혀진다. 저녁노을이 지고, 기찻길 주변에 등불이 켜진 것이다. 시마무라는 ‘그녀의 눈은 땅거미의 물결 사이에 떠 있는 기묘하게 아름다운 야광충’이라고 느꼈다. 이렇게 창문 밖의 한 풍경을 묘사하는 듯 여인을 묘사하니 직접적인 인물 묘사보다 한층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왠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저자는 이렇듯 배경과 인물을 함께 묘사하여 읽는 이의 감수성을 극대화 시킨다.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결말에서 나온다. 은하수가 흐르는 밤하늘 밑에서 고마코와 시마무라가 손을 잡고 불난 창고를 향해 달려가는 장면이다. 평온하게만 흐르던 줄거리가 마을 창고에 불이 나면서 급박해 진다. 종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이 소리쳐 조요하기만 하던 마을이 소란스러워 진다. 이것을 발견한 고마코와 시마무라는 불난 곳을 향해 달려간다. 이 순간에도 시마무라는 자신은 그저 관광객일 뿐인 외부인인데 이렇게 게이코와 함께 달려가는 것이 오지랖이 아닐까 고민하며 내적 갈등을 한다. 고마코를 향한 감정에서도, 요코를 향한 감정에서도, 해 마다 찾는 이 마을에서도 그저 외부인으로만 지내려고 한 그 이지만 결국 불이 난 창고를 향해 급박하게 뛰어가는 모습에서 이미 그는 이 모든 것에 깊은 정을 주었음이 느껴졌다. 달려가던 중 그들은 은하수가 흐르는 하늘을 바라보는데, 그 순간 시마무라는 ‘은하수 속으로 몸이 불현듯 떠올라가는 듯’했다. 또 ‘자신의 조그마한 그림자가 지상에서 거꾸로 은하수에 비쳐진 것’처럼 느꼈다. 다른 인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거울’에 비쳐진 풍경의 일부처럼 보게 된 것이다. 이 부분에서 등장하는 은하수는 문자 그대로 ‘무서운 아름다움’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이 부분에서 은하수에 몸이 두둥실 떠올라 흐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야구팬들은 부산을 흔히 ‘구도 부산’이라고 일컫는데, 이는 '공 구(球)', '도읍 도(都)'자를 써서 '야구의 도시'를 의미한다. 부산시민에게는 세계적인 김연아, 박지성선수보다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선수의 홈런이 더 큰 활력소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성급한 일반화일까. 다른 도시의 야구팬들보다 부산의 야구팬들이 특히 유명한 것은 열정적이고 극성인 응원 때문이다. 부산이 연고지인 프로야구선수들은 야구를 잘 할 때는 대한민국 그 어떤 귀인이 부럽지 않은 대우를 받을 테지만 성적이 저조하거나 실수를 했다 치면 말 그대로 ‘뒤통수 조심’해야 한다. 부산에서 관중들의 물병 투척, 오물투척 사건은 하루 이틀 있는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화를 낼 수 없다. 화를 냈다가는 더 큰 파장을 일으켜 경기에 나오지 못 할 수 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프로’이기 때문이다.박민규 저, 은 지금은 사라진 원년 프로야구 팀 ‘삼미 슈퍼스타즈’와 함께한 주인공의 추억과 인생을 풀어낸 소설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진 ‘삼미 슈퍼스타즈’를 응원하면서 주인공은 자신의 가치관을 형성해 간다. 그는 우리나라에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프로’라는 새로운 세계, 새로운 가치관이 생겨났다고 생각한다. 직장 상사가 신입사원들에게 “하루빨리 프로가 되게.”라고 말하게 되었고, 가벼운 멸시와 조롱을 담아 “허허, 이 친구 아마추어구먼.”하며 프로로 전향을 전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프로들로 넘쳐났고 이런 분위기에서 당시 중학생 이였던 주인공은 프로 중학생이 되어야만 할 것 같았다고 한다.그렇다. 현재의 자본주의 세상은 야구든 회사든 모든 분야에서 프로만을 찾고 있으며 프로들로 넘쳐난다. 프로가 무엇일까. 그들이 무장하고 있다는 ‘프로정신’이란 것이 무엇일까.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프로’는 영어 ‘professional’을 일컫는 것으로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 또는 직업 선수‘ 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것만으로는 프로라고 불러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프로는 지식, 기술을 가지고 있되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프로답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당연히 프로도 실수 할 수 있다. 하지만 프로는 프로이기에 너그러운 이해심으로 보듬어 지지 않고 잔혹하리만큼 객관적으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프로는 무한 경쟁의 세상 속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것이다. 사실 프로라는 말은 ’프로 주부‘라는 말처럼 상대적으로 하찮게 여겨지는 직업에서 자긍심을 갖고 당당해 질 수 있는 긍정적 기능을 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의 임무에 책임감을 가지고 늘 최선을 다해 누구보다 노력하는 세상의 프로들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프로라는 것은 실수 없이 만능인 기계적인 인간상을 그리는 것 같아 씁쓸하다. 반면 ’아마추어‘는 어떠한가. 아마추어는 프로와 반대되는 말이다. 아마추어는 왠지 실수를 해도 용서가 될 것 같다. 아마추어는 어딘가 늘 미숙하지만 그렇기에 인간적인 면이 있고 낭만마저 느껴지는 듯하다.소설 속 주인공은 일류대에 진학하나 대학생활을 리포트를 내라면 내고, 출석을 부르면 대답하고, 시험을 치라면 치면서 보낸다. "필요이상으로 바쁘고, 필요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인생철학으로 말이다. 그는 프로 학생이 아닌 아마추어 학생이었다.하지만 늘 아마추어를 꿈꾸던 주인공도 결국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면서 점점 프로의 세계로 들어갔고, 또한 더욱더 프로다워지기 위하여 바쁘게 살아가게 된다. 그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면서 더욱 바빠졌다. 야구로 비유하면 ‘투 스트라이크 스리 볼’ 인생이었다. 삼진 아웃이냐 안타냐, 인생역전의 홈런 한방이냐. 그 가슴조리고 치열한 일상에서 살아 나가기 위하여 주인공은 최선을 다해 ‘바빴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가정을 버렸고 결국 아내와 이혼을 하였으며 그러고도 회사에서 퇴출 되었다. 쓰리아웃, 삼진이다. 하지만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이닝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인공은 실직한 후에 어린 시절 친구와 함께 주변의 변변치 않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아마추어’들을 모아 야구팀을 결성하여 다시 아마추어의 삶을 살아간다.그런데 이들의 야구는 일반적인 야구와 조금 다르다. 한 선수가 치기 어려운 공을 이 악물고 치면 나머지 선수들은 그 선수에게 호통을 친다. 잡기 어려운 공을 허슬플레이로 잡아도 역시 호통과 질책을 듣는다. 이들의 신조는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 인 것이다. 그래서 이들과 야구를 한 상대팀은 이겨도 기분이 좋지 않고 어딘가 찝찝한 기분으로 돌아간다. 자신들은 이기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경기 하는데 같은 아마추어가 봐도 실수투성이에 형편없는 실력인데다, 이기려는 의지 또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실수할수록 더욱 즐거워한다. 따라서 상대팀은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기분이고 주인공팀은 져도 진 것 같지 않은 기분인 것이다. 주인공은 이런 야구를 하면서 점점 낙천적인 인간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복잡하게 생각하면 복잡하고, 쉽게 생각하면 쉬운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라는 말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정설이다. 나 역시 사학과로서 역사를 공부하고 있지만 공부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만약...’이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된다.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만약 6.25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더라면’하는 식의 상상이다. 복거일 저, 소설 역시 이러한 ‘만약’의 상상력으로 탄생 된 소설이다.소설의 배경은 이러하다.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에서 안중근의 총에 죽지 않았고 현재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이다. 일본 사회는 거주지가 일본인 ‘내지인’과 조선에서 거주하는 사람 ‘외지인’으로 분류된다. 이러한 사회에서 주인공은 철저하게 내지인으로 살고 있는 조선인이다. 이러한 설정은 몇 년 전 2009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영화의 배경과 동일하다.(실제로 이 소설이 영화에 모티브를 주었다고 한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에선 이토가 하얼빈에서 죽은 것은 원래 사실이지만 일본이 과거로 특사를 파견하여 이토를 저격하는 안중근을 저지함으로써 역사를 바꾸고 이 비밀을 아는 소수의 조선인들이 원래의 역사를 되찾기 위해서 사투를 벌인다는 것이다. 비록 영화는 비현실적이나 소설과 비교를 하는 것은 꽤 흥미로웠고 느낀 점이 좀 더 확연해져서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이 소설은 한 마디로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다. 이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기노시다 히데요가 우리네의 아버지같이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일어나는 일에서 벗어나 결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조선인으로의 일탈 말이다. 경성제대를 졸업한 엘리트 조선인으로서 꽤 높은 직위의 군인이었고 지금은 한 알루미늄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기획조정과 과장. 그는 그전까지 자신이 조선인이기 때문에 이 사회에서 받는 불이익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무엇인가 다름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괴로운 일이다. 합작투자협상을 잘 마무리한 히데요의 부장 승진은 당연한 것이었으나 내지인 야마시다가 인맥으로 부장 자리를 가로챈 것이 그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자신이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는 그런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그 기회를 박탈당한 것이다.그리고 그는 도끼에라는 직장 후배을 사랑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가 도끼에에게 뭔가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그가 원했던 건 자신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그녀가 알아주는 것, 그것뿐이었다. 말할 기회는 많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결혼해서 자녀까지 있는 남자인 것도 문제였지만 더욱이 그는 조선인이었기 때문에 명문가의 내지인 젊은 여자에게 당당히 고백할 수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자. 바꿀 수도 없는 내 핏줄 때문에 회사에서도, 사랑에서도 모든 것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이 같은 일은 앞으로도 수 없이 많을 것이다. 이 얼마나 분통터지는 일이겠는가. 그러던 중 알게 된 자신의 나라 조선은 히데요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오랫동안 시를 써 온 그에게 모국어로 알고 있던 일본어보다 훨씬 더 미묘하고 세세하게 감정전달을 할 수 있는 조선어도 그 몫을 했겠지만 그 조선어를 있게 한 ‘조선’, 한반도의 유구한 역사에 그는 전율을 느끼고 그러한 역사를 단 40년 만에 말살해버린 일본에 모멸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제 그의 눈에 대다수 조선인의 궁핍한 생활상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그는 남은 생을 조선을 위해서 살기로 결심한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말이다.(로스트메모리즈에서 주인공이 조선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결심을 한 것은 히데요의 일상을 거친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조선시가전과 조선어사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들통 나 모진 고문을 받으면서도 그것들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조선어로 시를 쓰고 조선역사를 알기 위해서 비굴하더라도 일단은 살아남는 것이 조선을 지키기 위한 히데요, 자기 나름의 방식이다. 자신을 구하기 위해 아오끼 헌병소좌와 정을 통한 아내를 용서했지만 딸을 욕보인 그를 죽이고 언젠가 어디선가 본 적이 있을 뿐인 상해임시정부를 찾아 망명을 떠나는 것으로 끝나는 게 다소 황당하긴 했다. 내가 기대한 것은 임시정부 앞에 선 기노시다 히데요가 아니라 조선인 박원신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결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니 결말 뿐 아니라 이 소설의 내용 자체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이다. 라는 제목은 이 결말과 관련이 있다. 시인의 죽으면 그 시인의 비명은 생전에 그가 썼던 많은 시 중에 하나라고 한다. 그런데 히데요는 자신이 쓴 수 백편의 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명을 찾아 임시정부가 있는 상해로 떠났다. 이것은 그가 인생에서 조선 시인으로서 비명에 남기고픈 시를 쓰지 못했기 때문에 상해 임시정부를 보고 조선인이라는 정통성을 느끼면서 쓴 시를 비명으로 남기겠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완전한 조선인이 되겠다는 말과 동일하다.그렇다면 히데요는 어떻게 일본 또한 자신의 모국이라는 딜레마에서 벗어났을까? 일본어로 시를 쓰는 것도 좋아하고 한 시도 일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에게 조선과 조선어는 운명이었지만 일본과 일본어는 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헌병소좌(아오끼)를 죽이면서(그 또한 군인이었다는 점에서 현역군인을 죽였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의미이다.) 그 딜레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치밀하게 시간 계산을 하고 짐을 챙기고 편지를 쓰고 집을 떠났다. 굴레라고 생각했던 조선이 아닌 일본의 굴레에서 벗어난 그는 진심으로 편안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