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Ⅰ. 서 론Ⅱ. 도덕의 계보학1. 계보학2. 도덕의 자연사Ⅲ. 선과 악의 개념1. 선악의 개념2. 좋음과 나쁨 개념3. 망상과 공동선의 가치Ⅳ. 노예 도덕과 주인 도덕1.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2. 노예 도덕과 주인 도덕Ⅴ. 양심과 죄의식1. 양심2. 죄의식Ⅵ. 금욕주의적 이상과 극복1. 금욕주의적 이상2. 극복과 극복인(Ubermensch)Ⅶ. 결론※참고문헌Ⅰ. 서 론니체의 윤리학은 지극히 삶에 대해 중심적인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니체는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명제인 살아있음에 대하여, 심층적으로 탐구하기를 원하고 있다. 지식이 지혜의 위에 군림하는 오늘날 책 속에 쓰여진 삶의 지침서, 도덕은 우리의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움을 안겨 주는게 사실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개인보다는 집단이 우선시 되는 사회, 그에 반발하는 개인주의적 성향은 성숙되지 못한 채로 방종의 이름으로 반발심을 심어주고 있다.인류의 역사가 흐를수록 삶에 대한 긍정성은 점점 잃어가고 부정성이 허무주의적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집단 속에 개인을 스스로 지워가는 우리는 니체의 글을 통해 생동감 넘치는 건강한 개인이 되는 길을 탐색해봐야 할 것이다.오늘날 유럽에서의 도덕 감각은 섬세하고 말기 단계이며 다양하고 민감하며 세련되었는데 그에 속하는 도덕학 은 아직 젊고 미숙하며 서툴고 조야하다. ) 니체는 『도덕의 계보』에서 소크라테스의 주지주의적인 철학의 등장과 함께 생에 적대적인 세력의 등장을 통해 지적위선과 도덕적 가식이 인간의 생을 안팎에서 제한하고 억누른 결과 인간이 병약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니체가 지적한 서툰 도덕감각은 1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인류에게 허무주의로 가는 길로 유혹하고 있다. 합리적, 이성(작은 이성)적 삶의 우위성은 우리의 입버릇이 되었고 비합리적, 반이성적인 단어는 우리의 외부의식에서는 단호히 거부하지만, 심연의 영혼에서 생동하는 에너지를 숨기고 심지어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를 버리고 역전시켜 버리는 것, 그것이 바로 도덕에서의 화폐 위조 행위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본다면 화폐 자체가 가치의 위조물이자 마법이며 ‘철저한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치의 보편적 기준을 찾아 나선 도덕학자들의 노력은 곧잘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드러났지만, 경제학자들이 떠받드는 화폐는 하나의 가치 척도로 환원할 수 없는 다양한 사물이나 활동이 성공적으로 교환되도록 한다. 이것이야말로 마법이며 뛰어난 위조 행위인 것이다.도덕학자들로서는 도덕을 자연스러운 것, 본능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싶겠지만 도덕이야말로 인위적인 조작 행위다. 니체의 말대로 “모든 도덕은 방임과는 반대의 것이며 ‘자연’에 대한 폭압이고 ‘이성에 대해서도 폭압이다.”) 니체는 『선악의 저편』의 한 장의 제목을 “도덕의 자연발생사”)라고 붙였는데, 이 글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도덕의 ‘부자연스러움’이다.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의 역전. 자연과 비자연의 역전.우리가 도덕을 인위적인 것으로 본다면 자연은 분명히 도덕의 외부에 위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미 자연 안에도 가치를 심어놓았고 결국 우리는 자연 속에서도 인간의 가치를 본다. 사람들은 “맹수나 맹수 같은 인간(예를 들면 체사레 보르지아Cesare Borgia)을 근본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열대의 온갖 기이한 동물이나 생물 중에서도 가장 건강한 이들의 근저에서 ‘병적인 것’을 찾거나 심지어는 그들에게서 생득적인 ‘지옥’을 찾고자 하는 한, 사람들은 ‘자연’을 오해하는 것이다.”) 뱀처럼 흉측하게 생긴 동물이나 괴기한 식물들과 惡과 연관시키고, 우리 안에 있는 자연, 즉 본성(nature)에 대해서도 본래적인 선과 악을 논한다. 우리는 확실히 자연을 지나치게 도덕화했다. 루소처럼 자연을 지고의 善으로 간주하는 경우조차 자연은 도덕의 굴레를 쓰고 있다. 문명을 자연의 야만성에 대한 승리로 보았던 볼테르와 문명을 인간을 타락시킨 악으로 보았던 루소. 자연으로 돌아가라! “자연에 가까워지는 것은 선인가, 악인가?”) 신이 갖고 있는,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의지의 활동에 의해 현실화되는 자기 극복 과정이 불신되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인간은 좀더 나은 세계를 꾸며내고 이것을 자기 극복적인 삶보다 더 진실되고 더 선한 세계로 평가하게 된다. 현실의 삶과 당위의 세계와의 대립은 결과적으로 삶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도출시키게 된다. 그렇다면 형이상학적 토대를 갖고 있는 절대적 도덕은 인간과 인간의 현실적 삶을 그대로 긍정할 수 없는 인간의 무능력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투스트라는 절대적 도덕이라는 허구 세계를 만들어내는 자를 이 세계를 경멸과 불신의 대상으로만 간주하려 하는 정결하지 못한 정신의 소유자로 생각하는 것이다.형이상학과 결합된 절대적 도덕 유형은 필연적으로 인간의 자연적 본성과 체험적 삶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니체에게 이런 도덕 유형은 삶과 유리된 공허한 도덕이며, 삶의 내용을 부분적으로 부정하는 허무적 도덕에 불과하다. 이런 도덕 유형을 설교하는 자들은 삶의 자연적 측면을 거부하고 매도하며 억제의 대상으로 삼기에 창백한 범죄자다. 니체는 절대적 도덕의 허구가 단순히 관습적 질서나 도덕철학이라는 특수 영역에만 제한되지 않고, 철학 전체 역사의 근본 도식을 제공해왔다고 간주한다. 그래서 철학이 삶의 전제 조건들과, 삶의 가치감과, 삶을 편드는 것에 대한 은밀한 분노가 된 것은 바로 “철학의 키르케)”였던 도덕 때문이라고 단언하는 것이다. 도덕의 허구는 철학뿐만 아니라 서양의 정신과 삶 전반에 근본 도식을 제공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니체는 도덕이 갖고 있는, 삶에 적대적인 토대를 폭로하는 것을 ‘모든 가치의 전도’를 위한 토대로 생각한다. 따라서 ‘모든 가치의 전도’는 지금까지의 모든 도덕적 가치들로부터의 탈출을 시점으로 삼아, 지금까지 도덕적으로 금지되고 경멸되고 저주받아온 것 전체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과 신뢰를 결과로 갖게 된다.도덕은 형이상학적 이분법의 토대일 뿐만 아니라, 인식 추구 및 진리 추구의 토대이기도 하다. 즉 철학적 진리 추구는 ‘기만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선과 악은 가치와 정도의 차이만을 가질 뿐이다. 또한 선과 악은 가변적이다. 인간의 삶과 조건이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본질적 ? 가치적 이분법’은 이제 선과 악의 ‘가치와 정도의 차이’로 대체된다. 이런 입장은 도덕 행위에 대한 재고찰을 요구한다. 선과 악이 단지 가치와 정도의 차이만을 갖는 것이라면, 특정 행위의 도덕적 가치는 그 행위 자체에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니체의 도덕의 자연성 회복은 행위 자체에 있을 수 없다. 그래서 니체의 도덕의 자연성 회복은 행위 자체가 가치 면에서 완전히 공허한 것임을 밝히는 데로 나아간다. 행위는 그 자체로는 도덕적 선도 아니고 도덕적 악도 아니다. 동일한 싸움이 경우에 따라 달리 평가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행위는 절대적이고 불변하는 도덕적 가치를 가질 수 없다. 그리고 행위의 상대적인 도덕적 가치는 행위 주체를 척도로 평가된다. 따라서 도덕적 사실이나 도덕적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Ⅳ. 노예의 도덕반란과 주인도덕1. 도덕에서의 노예반란“그만 하라!” 차라투스트라는 그자에게 노기 띤 웃음을 지으며 소리쳤다. “그만하라, 그대는 연기자여! 남의 눈을 속이는 날조자여! 어쩔 수 없는 거짓말쟁이여! 남의 눈을 속이는 날조자여! 어쩔 수 없는 거짓말쟁이여! 나 그대의 정체를 잘 알고 있으니!“아첨하지 말라, 그대는 어쩔 수 없는 배우여! 그대는 거짓스럽다. 진리에 관해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그렇다면 언제부터 귀족적인 정신인 전쟁과 힘, 강한 몸과 모험, 그리고 활력이 넘치고 자유롭고, 쾌활한 활동들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적들을 불신과 증오 또는 감금으로서 제거하는 가치전도의 상태를 이어받은 두려움의 사회의 살고 있는 자발적 전사가 된 것일까? 그것은 역사적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정치적지배권이 교회와 성직자들 에게로 넘어갔을 때 이러한 성직자 귀족들은 초기에 등장하였던 선의 개념을 니체가 무리와 군중이 받아들이는 것으로 간주한 비천한 선의 개념으로 바꾸기 시작하였다. 위에서 언급하있는 대목이다.) 기억 속에 남기기 위해서는, 무엇을 달구어 찍어야 한다 : 끊임없이 고통을 주는 것만이 기억에 남는다 - 이것은 지상에서 가장 오래된 심리학의 주요 명제다. 오늘날까지도 지상에서 인간이나 민족의 생활 속에 장엄, 진지함, 비밀스러움, 음울한 색조가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일찍이 지상 모든 곳에서 약속하고 저당 잡히고 서약을 할 때 얼마간의 공포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말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니체는 공포를 통한 고통이 기억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이러한 기억에서 우리는 지우는 과정인 망각을 통하여 마음의 질서를 유지하여 확고한 정신적인 건강을 얻어야 한다고 말한다.2. 죄의식하지만 니체는 양심의 개념 자체보다는 양심의 가책, 즉 죄의식의 개념을 일차적 공격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는 죄의 개념의 근원을 부채와 연결시킨다. 부채를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유추해서 되갚음의 일종인 처벌을 통한 쾌감을 냉혹한 명제이지만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적인 원리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현대의 인간들은 현실을 거부하고 고통의 두려움에서 병적인 유약 화와 도덕화의 결과를 일반적인 속성으로 변질 시킨 것을 망각하였으나, 고대인 들인 고통을 일으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안에서 최고의 매력을, 삶에 이르는 진정한 유혹을 발견하였다고 말한다. 다시 현대인들로 돌아가면 사회의 법들을 준수 하고 이익에 자기 몫을 지불하지 않는 것을 채무로 생각하고 이것을 지극히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죄의식의 개념이 형성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정당한 그 것에서 정의와 부정이 생겨났으며 사회의 범죄자들의 대항해 채무를 모아서 집행하는 개인과 무관한 폭력을 사용하여 삶의 본질을 왜곡 하였고 그러한 폭력을 힘의 열등한 자들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강제하는 선한 의지라고 말한다.우리는 악한 인간과 다른 존재가 되도록 하자, 즉 선한 존재가 되게 하자! 그리고 선한 인간이란 능욕하지 않는 자, 그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는 자, 공격하지 않는 자, 보복것이다.
Ⅰ.서론Ⅱ.상업의 부흥Ⅲ.도시의 발생ⅰ.길드ⅱ.경제와 정치의 발달과 지적 활동 토대의 제공Ⅳ.결론Ⅰ.서론농업의 혁명과 농노의 해방, 그리고 세련된 귀족 생활은 상업의 부활, 도시의 발달 등과 뗄 수 없는 관련을 갖는 것이었다. 부활된 상업은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지방 시장에서 이루어진 일상적인 교역이었다. 농노나 자유농민들은 여분의 곡물이나 달걀 몇 꾸러미를 시장에 내다 팔았던 것이다.)서로마의 몰락이후 서유럽에 등장한 기독교문명과 장원제의 등장을 위시한 중세는 450년간의 ‘성장’을 거쳐, 1050~1300년의 기간 동안 중세의 전성기를 누려왔다. 250여년의 중세 전성기에서 상업의 부흥과 도시의 발생은 사회·경제적 측면에서 중세를 고대와 근대처럼 한 문명으로써 인정할 수 있는 이유의 근거가 되었다. 앞으로의 내용은 서유럽 1050~1300년의 기간에 생긴 상업의 부활과 도시의 혁명에 대하여 논 할 것이다.Ⅱ.상업의 부흥고대 문명의 몰락은 자연스레 상업의 쇠퇴를 가져왔다. 2세기와 3세기의 내란으로 상업은 쇠퇴의 길을 걸어왔으며, 게르만족의 침입과 무슬림의 지중해와 이베리아 반도 장악으로 9세기에 상업의 쇠퇴는 절정에 다다르게 된다. 서유럽은 아드리아 해를 개방한 비잔티움과 간간히 교역만 할 뿐, 고대의 대규모 무역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10세기 이후 베네치아가 콘스탄티노플에 곡물, 포도주, 목재를 수출하고, 북부 이탈리아 도시들의 자체 모직물 제조업이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중세 상업이 눈에 띄게 활발해 졌다.중세 유럽에서 상업번영의 선구적인 존재가 된 이탈리아 도시들이 유럽 다른 지역 및 동방 여러 지역과 행한 원격지 무역은 11세기에서 13세기 후반에 걸쳐 십자군 영향으로 결정적으로 도약했다. 제 1·2차 십자군은 육로로 행해졌지만 이후 십자군은 모두 해로로 수송되었기 때문에 원정군 수송은 이익이 많은 사업이었다. 십자군 전쟁을 촉매로 비잔틴 제국의 상업을 독점한 베네치아와 북부의 이탈리아 도시들은 지중해와 흑해를 잇는유럽 대륙으로 이동 하였다.중세 상업의 부흥은 비잔틴 제국과의 무역을 통한 이탈리아 도시들의 무역활동이 전부가 아니었다. 중세 초 북해에서 무역을 전개했던 민족은 프리슬란트인 이었다. 프리슬란트인들은 라인 하구에서 네덜란드 북부에 걸쳐서 정착했던 게르만족의 한 부족으로 민족이동기의 게르만족 가운데 상업에 적응성을 보인 유일한 부족이었다. 그들은 9세기 말까지 캉토뷕과 라인연안의 두루슈테데 두 항구를 거점으로 하여 북해 연안무역에 종사했으나 노르만인의 침입으로 이 북방상업은 완전히 쇠퇴하고 말았다. 그러나 노르만인은 약탈활동에서 익힌 해운지식을 토대로 평화적인 중개 무역상인으로 전환하여 11세기 전반 덴만크의 카누트 2세(Canute Ⅱ, 1017~1035)가 잉글랜드, 노르웨이를 통합해서 왕국을 건설한 이래 그 전성기를 맞이했다.그러나 본래 발트해에 면한 영토가 없었던 독일은 12세기 전반부터 엘베강 이동의 발트해 남방 연해지와 그 배후지에 식민과 도시건설로 북유럽의 원격지 무역의 기틀을 마련했다. 독일인은 곧 스칸디나이아인에 이어서 발트해 무역을 독점 했다. 독일인의 발트해 무역권은 라인하류 쾰른을 대표한 기존 북해 무역권과 통합하여 북독일 도시들의 상인 연합체인 한자(Hansa)를 탄생시켰다.한자의 기본정책은 시민의 자유, 특히 상인의 우세에 기초한 자치의 유지, 영방제후의 끊임없는 공격에 대한 방어 외에 시장 및 통상로에서 평화를 확보하고 통상국가로부터 관세경감과 유통상의 특권을 획득하여 상업독점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하여 주요 상품 중계지에 商館을 설치하여 상권을 유지했다.)독일 한자는 서쪽으로는 잉글랜드와 플랑드르에서 북방으로 스칸디나비아, 동쪽으로는 러시아의 노브고로드에 걸치는 북해와 발트해 연해국으로부터 상업상의 자유와 특권을 획득하여 상업에 독점적인 지위를 확립한 북독일 도시들의 원격지 상인조합 이었다. 독일 한자는 1158년 발트해 서부의 독일 해항도시인 뤼벡의 건설로부터 최후의 한자 회의가 열린 1669년까지 5세기동안 존속하면서 동서 육상으로 연결하는 무역로에 자리 잡고 있어서 12~13세기에 번영한 곳이 상파뉴의 대시(大市)였다. 이곳은 이탈리아와 남부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방에서 플랑드르에 이르는데 통과지점이었을 뿐만 아니라 손강과 라인강, 세느강, 르와르강의 상류에 위치하여 이탈리아 상인과 플라드르 상인이 조우하는 지역이었다. 대시는 상파뉴백의 지배하에 투르와, 바리-쉬러-오브, 라뉴이, 프로뱅의 4개 도시에서 1년에 총6회, 6주간씩 개최되었다. 전 유럽의 원격지 상인이 여기에 모여들어 플랑드르의 모직물, 이탈리아 상인이 반입한 오리엔트와 이탈리아의 산물, 그 외의 영국과 북방산의 상품들이 거래되었다. 시장의 평화를 확보하는 영역적 지배권자인 상파뉴백은 대시 개시권을 보유하고 상품 판매세, 점포 임대료, 대시법의 위반자에게 부과하는 벌금 징수 등으로 거액의 화폐수입을 획득했다. 플랑드르와 이탈리아를 잇는 통상로를 축으로 하는 상파뉴의 대시는 유럽대륙의 상품유통에서 규모가 가장 큰 중계지 역할을 했으나 14세기 이후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상파뉴 대시에 대신하여 국제시장의 중심이 된 것은 플랑드르의 브뤼주였다. 브뤼주는 이프르, 헨트와 함께 일찍이 잉글랜드로부터 원모를 수입하여, 유럽 최대의 모직물 산지로서 유럽 전역을 그 시장으로 하고 있었다. 북해와 발트해 상권을 독점한 독일 한자 상인들은 브뤼주에 상관을 설치하여 모직물을 북유럽과 동유럽에 독점 중개하는 동시에 동유럽으로부터 곡물, 조선자재 등 반제품이나 원료상품을 브뤼주 시장에 공급했다. 이리하여 브뤼주는 발트해 무역권의 서방극점이요 지중해 무역권의 북방극점으로서 3세기 동안 국제적인 상업 및 금융도시로 번성했다.)Ⅲ.도시의 발생무역을 활성화시킨 것은 화폐 경제와 신용장치의 확대만이 아니었다. 도시의 급속한 성장 역시 교역의 촉진에 큰 역할을 했다. 도시의 발생은 다른 어느 곳 보다도 특히 이탈리아에 집중되었는데, 유럽 최대 규모의 도시는 대부분 이탈리아에 있었다. 베네치아, 제노바, 밀라노, 볼로냐, 팔레르모, 피렌체, 나폴리다른 도시들의 인구 증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1150년경에서 1300년경 사이에 적어도 세 배는 증가했으리라 추정된다. 볼로냐 근방의 소도시 이몰라의 인구가 1210년의 4,200명에서 1312년에 11,500명으로 늘어났다는 기록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750년과 1050년 사이에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 도시 생활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중세 전성기의 도시 발달은 가히 도시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다. 더욱이 중세 전성기 이래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활발한 도시 생활은 서유럽 및 근대 세계 문명의 중요한 특징이었던 것이다.종전에는 중세 도시 혁명의 일차적 원인이 원격지 무역의 부활에 있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론적으로 농업 중심적 유럽 사회에서 안정된 위치를 갖지 못했던 떠돌이 행상들은 서로에게 필요한 보호 수단을 마련하고, 아울러 그들의 상품을 판매할 시장을 설립하기 위해 점차 도시로 모여 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의 상황은 그보다는 좀 더 복잡한 양상을 띠었다. 물론 일부 도시들은 원격지 무역으로부터 상당한 자극을 받았으며, 베네치아 같은 주요 도시의 성장은 그와 같은 요인을 배제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도시들은 그 기원과 경제적 활력을 원격지 무역보다는 인근 지역의 번영과 부에 입각하고 있었다. 도시 인근 지역은 도시에 잉여 농산품과 공산품 원료를 제공했으며 인구를 유입시켜 주었다. 바꾸어 말하자면 전반적인 경제적 활기야말로 도시 성장의 주요 원인이었다. 도시와 인근 지역은 공생 관계를 유지했다. 도시는 인근 지역에 시장과 수공업자들이 만든 공산품을 제공했던 반면에 인근 지역의 잉여 식량에 의존해서 생활했고, 더 나은 생활을 찾아 나선 잉여 농노나 농민들의 이주와 더불어 성장했다.도시의 대두와 함께 도시의 영향이 미치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나 장원제에 동요했다. 도시민의 주축인 상공업자들은 식량을 외부에서 조달하거나 농민들로부터 구입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고취시켰다. 그래서 장원제의 경제적 토대와 함께 정신적 기초까지 무너지기 시작했다.)이처럼 중세 도시의 성장은 상업 발달에 촉매제로 작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도시의 급격한 인구 유입은 현대의 도시와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대도시에서는 대재앙이 빈번히 발생하였다. 예를 들어 화재가 한번 발생하면 목조 건축물이 많은 대부분의 도시들은 잿더미로 변했다. 게다가 위생 상태도 열악했으며, 전염병의 발발은 치명적이었다. 여기에 매계절마다 여행자와 순례자, 방문자, 상인, 인근 농민들이 수시로 도시를 찾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도시가 번창하기 시작하자 많은 도시들은 각각 전문적인 특성을 갖기 시작했다. 파리와 볼로냐는 일류 대학들을 육성함으로써 부를 획득하게 되었다. 베네치아, 제노바, 쾰른, 런던 등은 원격지 통상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밀라노, 겐트, 브뤼주 등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다. 가장 중요한 도시 산업은 직물 제조업이었다. 직물 제조업은 때로 대규모 생산 및 투자 기법을 발달시킴으로써 근대적 공장제와 산업 자본주의의 선구가 되었다. 그러나 대규모의 공업은 중세 경제에서 어디까지나 예외적인 현상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ⅰ.길드중세 도시의 가장 특이한 경제·사회적 조직은 guild였다. 이것은 대략적으로 말하자면 특수한 이익을 보호·증진하기 위해 조직한 전문 단체라고 할 수 있다. 그 종류는 상인 길드와 수공업자 길드가 있었다. 상인 길드의 일차적 기능은 조합원을 위해 지방 시장의 독점을 유지하고 안정된 경제체계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상인 길드는 도시 내에서 외부인에 의한 상업 활동을 엄격히 금지했고, 조합원이 확보한 판로에 소속 조합원들의 참여권을 보장했으며, 획일적인 가격을 책정했고, 어떤 한 개인도 조합원이 생산한 상품을 매점하지 못하도록 모든 가능한 수단을 강구했다. 이러한 모든 경제적 기능에 더하여 길드는 중요한 사회적 기능까지도 담당했다. 길드는 종종 종교 단체나 자선 단체 및 사교클럽으로서의 기었다.
Ⅰ.머릿말Ⅱ.니체가 바라본 그리스도교ⅰ)원시그리스도교ⅱ)그리스도교 가치의 전도 또는 유대인의 승리Ⅲ.그리스도교에 대한 니체의 구분Ⅳ.예수와 바울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니체의 평가ⅰ)예수의 그리스도교ⅱ)실천가 예수ⅲ)바울의 그리스도교Ⅴ.맺음말Ⅰ.머릿말그리스도교는 동정의 종교라고 불린다. -동정은 생명감의 에너지를 증대시키는 강장적인tonisch 격정과는 반대의 것이다 : 그것은 의기소침하게 만든다. 동정을 느낄 때, 사람들은 힘을 상실한다.)『즐거운 학문』에서 서곡을 울려주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상연된 ‘신의 죽음’은 『도덕의 계보』에서는 그리스도교 도덕 비판으로, 『안티크리스트』에서는 그리스도교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20세기 서양 지성사의 근본을 뒤흔드는 사건이 된다. 이처럼 니체의 끊임없는 그리스도교 비판은 시대진단의 한 방법으로 근대의 병폐를. 지금까지 당연시 해왔던 종교관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해 왔다. 이제 우리는 니체가 그리스도교리와 실존사이의 괴리, 그리고 이것에 대한 정신적인 대안을 알아보기로 하자.Ⅱ.니체가 바라본 그리스도교ⅰ)원시그리스도교그리스도교에 대한 니체의 논의의 출발점은 유대교의 역사적 기원속에서 발견된다. 그리스도교는 그 궁극적 동기에서 완전히 유대적 현상이다.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발생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의 전망을 제시한다. ①그리스도교는 유대적 본능의 논리적 결과에서, “구원은 유대인에게서 온다”)는 구세주의 형식으로부터, 즉 당시의 유대교의 성장 기반에서 이해될 수 있다. ②예수의 심리학적 유형이 완전히 퇴화됨으로써 그는 인류의 구세주라는 유형에 종사할 수 있었다.유대인은 세계사에서 가장 진기한 민족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존재와 비존재의 문제에 직면해서 정말 섬뜩하리만큼 고의적으로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존재를 우선시했기 때문이다 : 그들이 치른 대가는 모든 자연, 모든 자연성, 모든 현실성, 외부 세계 및 내부 세계 전부에 대한 극단적인 왜곡이었다.)존재하느냐 존재하지 못하느냐의 물음 앞에는 피안과 허구의 메커니즘에서 기인한 수동성에 의해서 반응한다. 니체에 의하면 유대인들과 더불어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이 시작되었다. 니체는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은 원한 자체가 창조적이고 가치를 낳게 될 때 시작된다고 하였다. 그들은 강한 자들을 사악하다고 부름으로써 복수를 시도하지만 단지 상상적인 복수, 즉 그들의 마음 안에만 존재하는 복수에 그친다. 자신들을 긍정함으로써 가치를 창조하는 주인과는 달리 노예들은 자신들과는 다른 모든 것을 부정함으로써, 즉 주인들이 내세우는 모든 것을 부정함으로써 가치를 만들어낸다.노예 도덕은 처음부터 밖에 있는 것 , 자기가 아닌 것 을 부정한다 : 그리고 이러한 부정이야말로 노예 도덕의 창조적인 행위인 것이다. 가치를 설정하는 시선을 이렇게 전도시키는 것 - 이렇게 시선을 자기 자신에게 되돌리는 대신 반드시 밖을 향하게 하는 것은 실로 원한에 속한다 : 노예 도덕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먼저 대립하는 어떤 세계와 외부 세계가 필요하다. 생리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일반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 노예 도덕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반작용이다. 고귀한 가치 평가 방식에서 사정은 정반대다 : 그것을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성장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더 감사하고 더 환호하는 긍정을 말하기 위해 자신의 대립물을 찾을 뿐이다. )노예와 주인의 차이는 자기 자신의 긍정과 부정의 차이와 자신들의 행위 자체에서 가치를 창조하느냐 하지 않느냐 에서 나오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에서 가치를 찾는 것은 이기주의와도 같은 맥락인 것이다. 이러한 것을 노예는 대립물인 비이기적인 것을 善으로 추구 하는 것이다. 이렇게 노예의 가치는 주인의 가치와 본성과의 대조를 통해 파생적이며 부정적인 것으로 정의를 내린다. 그리고 행복에 관해서 니체는 주인을 필연적으로 능동적인 인간으로, 행복과 행위가 분리될 수 없고, 무력한 자, 억압받은 자, 독이 되는 증오를 품은 사람들의 행복을 마취, 마비, 안정, 평화, 안식일 , 정서적 긴장 도교』에서 제기한 “예수는 누구였던가?”라는 물음으로 들어가 보자.Ⅳ.예수와 바울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니체의 평가ⅰ)예수의 그리스도교우리는 두 가지 서로 다른 예수에 대한 니체의 평가, 즉 한편으로는 심리학적으로 특징지을 수 있는 인간 유형으로서의 예수와 다른 한편으로는 진정한 실천가로서의 예수에 접근할 수 있다. 전자는 예수의 인성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예수의 삶의 실천의 성격에 관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예수의 인간 유형에 대한 니체의 심리학적 발굴 작업에서 시작해보자.그는 예수를 “모욕적이지 않은 그리고 매우 진지한 의미에서” 하나의 ‘백치Idiot’라고 명명한다. 비저는 니체의 이러한 표현이 증오와 거부를 암시하는 것으로 평가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원래 라틴어의 ‘백치Idiota’라는 단어의 의미는 국가의 공무를 보는 정치인과 대립되는 사적인 개인, 또는 예술가에 대립되는 범인, 또는 식자에 대립되는 무지한 사람들을 함축했다. 그러나 이후 이러한 ‘백치’라는 단어는 18세기와 19세기에는 문화 없이 사는 인간들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그 당시 독일의 경건주의자였던 멘켄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스스로 ‘성스러운 백치’가 되고자 했다. 따라서 백치라는 용어는 한 인간을 비웃거나 평가 절하하는 일상적인 언어 사용 맥락에서 파악되어서는 안 되며, 그 용어가 사용된 정신사적 또는 문화사적 맥락 위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니체가 예수를 평가하는 단어로 사용한 ‘백치’라는 용어 역시 이러한 정신사의 흐름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이때 니체는 예수를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치’의 전범에 따라 파악하고 있다. 그가 예수를 백치로 부른 이유를 니체는 『안티크리스트』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하며, 예수를 영웅과 천재라는 두 가지 범주로 규정한 르낭의 예수관을 거부하며, 당시 정신사적으로 사용되던 ‘백치’개념을 심리학적으로 범주화 한다. 니체는 백치로서의 예수의 근본 성격을 예수가 오로지 내면적인 것과 체험한 것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화내거나 질책하거나 벌하있다는 것 등은 르낭이 예리하게 밝혀놓은 점들이다. 니체 역시 예수를 마음의 천국과, 모두가 신의 자식이라는 복음주의적 평등관을 제시하고 있는 존재로 간주한다. 니체의 이런 입장을 비저는 키에르케고르가 기획한 ‘내면의 그리스도교론’을 선취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니체는 예수의 심리적 특징에 대해 고찰함과 동시에 예수의 복음을 분석해본다. 그 복음의 내용은 다음처럼 정리될 수 있다. 첫째, 신과 인간의 거리를 멀게 한 죄 개념이 폐기되었다는 것. 인간의 죄와 신의 벌이라는 유대교-그리스도교의 교리는 복음과는 무관하다는 것. 둘째, 신앙이 그리스도교인을 특징짓는 것이 아니라, 평화와 온유와 적대하지 않음이, 그리고 사람들을 구별하지도 차별하지도 않는 삶만이 그리스도교인을 특징짓는다는 것. 셋째, 구원은 이런 실천에 의해서 가능하다는 것. 넷째, 천국이란 마음의 특정한 상태이지, 약속되는 미래의 피안의 천국이 아니라는 것. 다섯째, 누구든지 다 신의 자식이라는 것. 예수뿐만이 아니라, 거리를 두지 않는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신의 자식이라는 것. 니체는 이렇듯 원한 감정을 넘어선 자유와 초탈의 복음, 복음주의적 평등, 복음의 실천, 내면의 구원 등을 예수가 가르친 기쁜 소식, 즉 복음Evangelium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이것을 교회의 교리가 제공하는 종말론이나 메시아주의와 구별한다. 후자는 인간의 죄, 신의 심판, 유일신과 독생자에 대한 교리를 전제하고 있다. 이것들은 니체는 복음이 아니라 禍音Dysangelium으로 간주한다.‘복음’의 심리 전체에는 죄와 벌의 개념이 없다 : 보상이라는 개념도 없다. 신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죄’가 없어졌다는 것. - 바로 이것이 ‘복음, 기쁜 소식’이다.)ⅱ)실천가 예수니체는 예수를 자신의 복음을 단지 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몸소 실천하기도 한 삶의 실천가로 여긴다. 예수가 스스로 실천을 통해 인간 실존의 가능성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예외적으로 예수를 칭송한다. 그는 예수에게서 복음의 실천적 삶을 어선 자유와 초탈의 복음, 즉 “모든 사람이 신의 아들”이라는 복음주의적인 평등관을 자신의 내면에서 실천함으로써 ‘신국’의 현실에서의 성취 가능성을 보여준 예수의 삶과 죽음에서 그들은 신이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희생으로 주었다는 부조리한 대답을 찾아냈고, 또 구세주의 전형 속에서 심판과 재심, 희생으로서의 죽음과 부활의 가르침을 강조함으로써 구체적인 현실정인 ‘축복’의 개념을 제거해버렸던 것이다.‘신의 나라’는 사람들이 오기를 고대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 ; 그것은 어제를 갖고 있지 않으며, 내일 이후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천년’이 되어도 오지 않는다-신의 나라는 마음속의 특정한 경험이다 ; 그것은 어디에든 있고, 어디에도 없다…)니체는 죄의 희생양, 즉 죄 지은 자의 원죄를 위해 무죄한 자가 희생되는 것을 부조리한 논리로 여긴다. 이에 대해 그는 처음부터 “예수는 ‘죄’라고 하는 개념 자체를 폐지했고, 신과 인간사이에 놓인 모든 괴리를 부정했으며, 신과 인간의 통일을 자신의 ‘즐거운 복음’으로 여기며 살았다”고 확신한다. 예수는 믿음을 통해서가 아니라, 신성의 감정, 즉 신과 같다는 감정을 통해 죄의 개념을 없앴고, 삶의 실존 방식을 복음으로 제시했다. 달리 말하자면 니체는 비정치적이고 가장 사적인 실존 형식으로서의 예수의 삶의 방식 속에서 어떻게 인간이 살아야만 하고 살 수 있는가 하는 가능성을 찾는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예수에 대한 니체의 제한된 긍정이 반그리스도교적인 맥락 속에 있다고 할지라고, 니체가 예수에 대해 거의 경멸 없는 존경의 관계, 즉 실상은 무의식적인 경탄과 결속의 관계에 있다는 결론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ⅲ)바울의 그리스도교니체에 의하면 그리스도교는 바울에 의해 전도되었다. 그는 예수에 대한 조심스러운 평가와는 달리 바울에 대해서는 분명한 톤으로 날카로운 비판의 메스를 들이댄다. 니체는 바울이 그리스도교 발생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으며, 또한 바울이 그리스도교의 실제적인 창건자라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된다.
니체와 융 사상에서의 '자기' 찾기Ⅰ.서론의식과 무의식의 전체가 곧 나 자신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그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도 포함된다. 이를테면 우리 신체와 그것의 작동 그리고 무의식 등이다.오늘날 우리는 물질적 풍요로움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비하면 굶어 죽는 사람이 없어! 그러니 우리는 福받은거야!” 물질적 풍요로움이란 의식주의 부족함 없이 육체를 안전하게 지속하고, 점점 팽창하고 있는 문화적 향유 속에서 정신 또한 안전지대에 안착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발전하고 있다는 진보사관 앞에서도 난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바로 인간 소외이다. 논리적으로 타당하고 체계적인 문명의 시스템에서 인간소외는 아이러니 한 난제인데, 과연 왜 그러한 것일까? 인간소외는 육체의 질병보다 정신적 질병, 공황상태를 유발하는 쪽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소외의 또 다른 단면인 정신적 질병에 대한 진단을 니체와 그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으며 난해한 니체 사상을 마치 아리아드네처럼 실마리를 찾아낸 융에 대해 알아보고자 할 것이다.Ⅱ.심층심리학자 니체니체는『즐거운 학문』의 서문에서 지금까지의 철학이 몸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출발했으며, 지금까지 사상사를 이끌어왔던 최고의 가치 판단의 배후에는 몸의 개념에 대한 오해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그에 따르면 철학이란 몸의 징후학이며, 철학자란 “건강, 미래, 성장, 힘, 생명 등의 문제”를 다루는 ‘철학적 의사’가 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철학이 박제된 개념의 논리적 텍스트를 다루는 인식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인간의 몸의 언어를 다루는 몸의 철학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니체는 전통적인 이성 철학 전체를 해체하며, 몸의 언어를 통해 새롭게 미래 철학의 가능성을 건설하려고 시도한다.니체의 몸의 언어는 그의 심리학적 세계 해석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심리학을 “힘에의 의지의 형태론과 발달 이론”으로 규정하고, 이를 통해 다시 인간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이르는 길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사유속에서 니체는 자신을 최초의 심리학자로서 철학적 작업을 하는 운명으로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러한 니체사상이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몸의 언어를 통해 해석하고 해석된 의미기호들을 건강과 생명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는 심층 철학을 의미 하지만 카우프만의 해석이 아니었다면 결국 오해되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하이데거나 뢰비트등의 탁월한 니체 해석이 실존주의 또는 형이상학적으로 니체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준 것은 사실이나, 인간의 영혼을 탐색하는 심리학의 언어를 통해 더욱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1926년에 이미 ‘영혼의 연구’나 ‘자기 탐색’이라는 개념으로 니체 사상을 해석하는 클라게스나 니체를 영혼학의 계승자로 보는 토마스 만에게서 잘 드러난다.특히 토마스 만은 의지의 심리학자인 쇼펜하우어가 모든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인데, 이러한 경향은 니체의 심리학적 급진주의를 넘어, 일직선상으로 프로이트와 자신의 심층심리학을 세우고 정신과학에 응용한 모든 사람에게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그는 쇼펜하우어의 후계자인 니체가 심리학적 급진주의라는 철학적 작업을 통해 현대 정신분석의 맥을 이어주는 가교자로 평가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가다머 역시 “니체는 표면을 뚫고 들어가 그 뒤에서 감추어진 것, 비밀스러운 것, 위장된 것, 말할 수 없는 것을 인식하는 천재적인 심리학자”이며, 또한 전경적인 것, 표면적인 것을 가면으로 해석하는 법을 가르쳤으며, 프로이트 역시 니체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보고 있다. 니체의 철학적 기반이 심리학이기에 니체 이후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나 융의 분석심리학, 아들러의 개인심리학 역시 니체의 사상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으며 나왔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심리학자로서의 니체와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철학자에 대해 알아보았다. 여기서 우리는 융의 니체읽기를 중심으로 더 나아가보자 한다. 니체와 융의 ‘자기’찾기의 문제를 비교하며, 특히 차라투스트라에 깊은 관심을 갖은 융의 사상 발전을 알아보고자 한다.Ⅲ.융의 니체 읽기니체에 대한 융의 관심은 그가 다니던 바젤대학에 니체가 교수로 재직 중이던 시기부터 시작 되었다. 융은 당시 바젤에 퍼져 있던 니체에 관한 편견적 소문에 두려워하면서도 호기심을 가지고 니체의『반시대적 고찰』,『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등을 읽었다. 그는 괴테의『파우스트』에서와 같은 강렬한 체험을『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하면서,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의 파우스트’라고 생각했다. 『파우스트』에 정신의 문을 열고 있었던 융은 그러나 이 당시 니체에게 귀의했다가 끝내 자살한 친구와,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한 천재로 전락한 지기(知己)가 있어,『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어떤 병적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하며 정신의 문을 닫고 철저하게 이 책을 덮어두었다. 그럼에도 니체에 대한 그의 경외감은 거의 평생 지속되었고, 1913년 프로이트와 결별한 이후와 외로운 전쟁기간 동안 그는 니체의 여러 저서들을 다시 읽어 나갔다.융이 본격적으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하나의 심리학 연구의 보고로 생각하고 이를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다루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59세가 되던 1934년 취리히 심리학 클럽 세미나에서였다. 융은 이때 니체가 국가사회주의의 선구자로 완전히 오해 받는 것을 보고, 오히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는 유럽과 세계를 휩쓰는 대변혁의 전조를 밝히며 경고하는 중요한 내용이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괴테의 『파우스트』와 마찬가지로 무의식의 내용을 풍부히 다루고 있는 심리학의 보고라고 생각했고, 이를 현대 영혼의 허무주의적 위기를 다루는 집단 드라마이며, 동시에 개인적 심리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융은 니체를 19세기에 무의식의 발견에 크게 기여한 사람으로 생각했고, 허무주의적 집단 무의식의 병리 현상을 지적하며, 그가 이를 진정한 ‘자기’ 발견을 통해 극복하려 했다고 본 것이다. 융은 또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니체의 의도하지 않은 신앙 고백으로도 읽는다. 즉 신을 저버린 탈그리스도교적 삶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심혼Psyche을 구원하는 원천으로서 계시된 자, 깨달은 자가 그에게로 다가서기에,『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원형Archetypus의 스타일을 구사하는 성직자의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인간의 진정한 자기 찾기 작업은 니체의 철학적 작업의 핵심에 해당할 뿐 아니라, 사실은 개성화와 자기 실현의 문제를 다루는 융의 사상적 작업의 중핵에도 맞닿아 있다. 인류의 가장 오랜 상징과 개성화 과정을 해석하는 융은 어찌 보면 니체 해석을 통해 자기 사상의 관심과 핵심적 내용을 표현했던 것이다. 이러한 유사성에서도 간과할 수 없는 불일치가 있기도 하지만 그들이 추구한 진정한 자기 찾기의 철학적 작업은 공통된 사상적 지평을 형성하고 있다.Ⅳ.자아와 자기 구분니체에게 철학은 인간의 고유한 ‘자기’를 찾는 문제로 귀결된다. ‘자기를 찾아가는 과정’ 또는 자기 ‘됨’의 과정이 다름 아닌 인간 삶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에 대한 관심은 융도 마찬가지다. 그는 개성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는 ‘자기화’나 ‘자기실현’으로 번역될수 있다고 말한다. 이때 융의 자기 실현이란 ‘자기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의 분석심리학이 의도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자기 찾기로 귀결된다. 니체와 융의 이러한 사상적 작업은 자아를 변형시켜 심층적인 자기를 찾는 것을 지향하기에 니체에게서 궁극적으로 ‘변형의 기술이며, 융에게 심리학은 자기 실현의 기술인 것이다.이 두 사상가에게서 거의 유사하게 나타나는 자아와 자기란 무엇이며, 이 두 개념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또한 우리는 어떻게 자아에서 자기로 변형되며 자기 실현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우리가 일상생활 언어에서 아무 구분 없이 쓰고 있는 ‘자아’와 ‘자기’란 니체와 융에게서는 명백히 구분되는 철학적 개념어다. 니체에게 자아란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는 의식, 또는 이성적 활동과 관련된다. 우리는 외부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이성적 언어와 의식의 기호를 통해 우리 자신의 삶을 더욱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표현한다. 그러나 니체는 데카르트의 의식철학적 자아 규정에 반대하며, “의식이란 하나의 표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의식이란 우리가 세계와 접촉하며 우리의 삶을 표현하는 피부 활동이며, 이는 언어의 세계로 표현된다. 그러나 피부가 인간 신체의 모든 것을 담지하고 있지 않듯이, 의식 역시 인간 자신의 전체가 아니다. 의식이란 인간의 외부 세계와 내면 세계의 관계적 텍스트, 즉 몸의 텍스트를 해석하는 논리적 기호, 즉 언어 활동과 연관해 작동된다. 인간의 자아는 이러한 논리적 언어의 세계 또는 의식을 매개로 하는 표피적?외형적 모습에 대한 명칭일 뿐이다. 니체는 언어를 매개로 하는 이러한 의식적 자아의 모습이 오히려 인간의 내면적 과정이나 충동을 해명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오직 의식이나 말을 통해 표현되는 상태가 우리 존재의 전체적인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노,미움,사람,연민,욕망,즐거움,고통 등 인간의 심리적 상태는 언어적, 의식적 활동 이전에 무의식적 텍스트에서 움직이는 우리 자신의 내면적 기호이기에, 우리는 우리 존재의 내면적, 무의식적 활동에 주목해야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니체는 의식 중심의 자아가 우리 존재의 전체가 될 수 없다고 단언하며, ‘몸이성’개념을 도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