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식사안녕하십니까! 저는 본 결혼식의 사회를 맡았고, 신부님이 형부 중에 가장 존경하는 둘째 형부 ○○○입니다.이렇게 신랑 신부의 부부로서의 첫 발걸음을 축하해 주기 위해 참석해주신 내빈 여러분께 신랑신부와 양가 부모님을 대표하여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방역 상황일 때)안전한 방역을 위해서 모든 참석자분들은 예식 중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하여 주시기를 부탁드리며 식순이 진행될 때마다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부탁드리겠습니다그럼 지금부터 여러 친지분들과 하객 여러분이 지켜보시는 가운데 신랑 ○○○군과 신부 ○○○양의 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2. 화촉점화-먼저 서로 다른 두 개의 불꽃이 만나 더욱 거대하고 환한 하나의 불빛으로 이루어지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화촉점화가 있겠습니다. 양가 어머님은 앞으로 나오셔서 화촉을 밝혀 주시길 바랍니다. 양가 어머님! 입장!(입장후) 양가 어머님께서는 자녀들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화촉을 밝혀 주시길 바랍니다.어머님들께서는 양가 화합의 뜻으로 서로 마주 보고 인사를 하시겠습니다. 양가 어머님! 인사!! 여러분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박수후) 어머님들께서는 자리에 앉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3. 주례소개와 주례등단-다음은 오늘 결혼식의 주례를 맡아주실 주례 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주례를 맡아주실 ○○○ 목사님은 현재 ○○○교회의 담임 목사로서 주님의 사랑을 직접 실천하며 지역사회와 성도들에게 큰 덕망을 얻고 있습니다.4. 신랑신부 각각 입장-자 이제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 신랑 신부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가슴 벅차오르는 첫 발걸음의 시작을 뜨거운 박수로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신랑 입장~!(오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늠름한 신랑이 입장하고 있습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다음으로 신부 입장~!(오늘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가 입장하고 있습니다. 금지옥엽처럼 키운 막내딸도 이제 시집을 갑니다. 아버님 어머님 수고하셨습니다.)5. 신랑신부 맞절-신랑 신부는 마주 보고 서겠습니다.(5초)두 주인공이 세상에서 가장 고결하고 아름다운 약속의 장소에 섰습니다. 서로를 향한 맞절은 더욱 사랑하겠습니다. 더욱 존중하겠습니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제 신랑신부가 가족과 하객 여러분 앞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경건하게 맞절하겠습니다.신랑 신부 맞절~(5초) 여러분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2초)6. 혼인 서약-이어서 주례 선생님의 혼인 서약이 있겠습니다.(낭독후) 아름다운 사랑의 언약이었습니다.7. 성혼선언-다음은 주례선생님께서 두 사람이 완전한 부부가 됨을 선언하는 성혼 선언문을 낭독하겠습니다. (낭독후) 가족 여러분 큰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8. 주례사-이어서 ○○○교회 ○○○목사님의 축복의 기원이 가득 담긴 주례 말씀이 있겠습니다.9. 양가 부모님과 내빈께 인사-다음으로 신랑신부가 양가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먼저 신부 부모님께 인사드리겠습니다. 신랑신부는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5초) 부모님의 지극한 사랑으로 신랑신부가 어느덧 이렇게 장성하여 새로운 가정을 꾸립니다. 그 사랑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아 신랑신부!!인사!!(5초)
여러 가지 바쁘신 중에도 이처럼 오셔서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해 주시는 마음에 두 집안을 대표해서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아이들을 품 안에 품고만 살아 항상 어리게만 생각해 왔는데 어느덧 벌써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대견한 마음이 들지만, 한편으론 두 사람의 독립에 대해 걱정이 앞서는 것이 세상 모든 부모들의 마음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진 각자의 영역에서 다른 길을 걸어왔다면 이제부터는 두 손을 마주 잡고 미래의 길을 함께 개척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 걷는 길이 어둡다면 내일은 더 밝은 날이 기다릴 것이라는 희망을 간직하며 계속 앞만 보고 걸어나가길 바랍니다. 별은 바라보는 자에게 빛을 줍니다. 신랑신부의 가슴 속에 빛나는 별들을 품어나가며 품격있는 삶의 아름다운 별자리를 완성해 나가길 기원합니다.‘배려(配慮)’라는 말은 한자 ‘짝 배’자와 ‘생각할 려’자가 만나서 짝처럼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것은 사랑의 결과물이 아닌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인생의 짝과 화촉을 밝히는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향한 배려의 마음을 늘 마음 속에 간직하길 바랍니다. 힘든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잊지 말고 험난하지만 즐거운 삶의 여정을 완주했으면 합니다. 한국 속담에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을 만들고, 소가 물을 마시면 젖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물을 마셔도 뱀은 사람에게 해로운 독을 만들고, 소는 사람에게 이로운 우유를 만듭니다. 이와 같이 신랑신부의 마음이 아름다우면 하는 일마다 행운이 찾아오고, 바르지 못한 심성은 자기 주위 사람은 물론 사회를 불행하게 합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두 사람은 항상 서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사랑의 힘으로 세상을 극복해 나가며 밝은 미래의 청사진을 그려나갈 것이라 믿습니다.더불어 양가 부모님께 ‘절대 효도’하며 살아가십시오. 오늘이 있기까지 두 분의 부모님께서는 음과 양으로 적극적인 뒷바라지를 해 주셨습니다. 서로 다른 부모 밑에서 오랜 시간 성장해 왔지만 이제부터는 또 다른 부모님도 극진히 모셔야 합니다. 예부터 결혼은 ‘이성지합(二姓之合)’이라 했습니다. 신랑 신부 두 사람만의 결합이 아니라 두 성씨의 만남이라는 것이지요. 이제 두 분은 ○씨(신랑측 성)도 되고 ○(신부측 성)씨도 되어서 두 부모의 키워준 노력에 사은(謝恩)하며 살길 바랍니다.
우선 이렇게 과장님을 떠나 보내는 자리에 여러 직원들을 대신하여 이 자리에 서게 됨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과장님과 이 순간까지 왔던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니 많은 생각과 감정, 순간들이 맑은 하늘을 아름답게 수 놓는 뭉게구름처럼 피어 올랐습니다. 되돌아보면 과장님과 함께 했던 지난 ( )년은 우리 모두에겐 참으로 소중한 배움의 기간이었습니다.단순히 보이는 현상에만 얽매여 갈팔질팡하며 눈앞의 현실에만 전전긍긍하던 저희에게 과장님께선 세상을 더 넓게, 더 깊게 보는 시야를 갖게 해 주셨습니다. 또한 한결같고 일관된 원칙 아래 언제나 다정하고 넉넉한 사랑으로 감싸주셨습니다. 과장님이 저희에게 주셨던 지혜와 다정다감한 사랑은 앞으로도 내내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간직하겠습니다.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부서 특성상 어렵고 힘든 일도 많았지만 과장님이 계셨기에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힘이 되는 지혜를 배웠습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서로 다른 행동으로 살아갈지라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법을 터득했고, 개인을 감추되 공동체를 위하는 헌신적인 가치관을 내면화했습니다. 과장님께선 떠나시지만 과장님이 남기신 유산을 물려받아 이제는 지금까지의 실제적 경험과 새롭게 다져진 이론적 터를 가지고 서로 합심하여 새로운 출발을 하고자 합니다.
육사(陸史) 이원록의 민족주의와 편석촌(片石村) 김기림의 모더니즘 탐구육사(陸史)와 편석촌(片石村)의 시를 파악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하게 짚고 넘어 가야 할 점은 바로 ‘전통과 서구화’란 개념이다. 이는 한일 합방 후 한반도 전역을 휩쓸었던 가치 대결이었고 논란거리였다. 육사가 민족성을 바탕으로 한 기개적 전통의 영향을 받았다면 편석촌 김기림은 서구적인 근대화의 물결을 타면서 기틀을 잡아나갔다. 둘 다 거의 일정한 작가관을 가지고 작품 활동에 임했기 때문에 그들의 머리 속에 깔려 있는 중심 사상을 알아본다는 건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고 그들과 좀 더 가까워 질 수 있는 계기점이 될 것이다.이육사-비극적 인식과 초월에의 의지1.육사는 퇴계의 14대 손으로써 외조부는 항일 의병장을 지낼 정도로 기개 있는 가문과 전통 사이에서 자랐다. 조부로부터 한학을 배우고 어머니한텐 엄격한 윤리 교육을 받음으로써 선비적 정신의 고결함과 지사적 결단의 단호함은 이미 어렸을 때부터 집안의 영향이 컸다고 아니 할 수 없다. 그가 겪었던 이러한 가문과 전통이 시인 이육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육사가 생전 활동했던 시기는 우리 역사의 가장 암울했던 일제 치하였으며, 유소년기 교육적 환경의 영향으로 과감히 항일 운동에 뛰어 들게 된다. 그 당시 폭력과 테러를 주로 하는 가장 과격하고 격렬했던 단체인 의열단에 들어가서 항일 운동의 선봉에 섰던 시인이자 독립 운동가였던 육사는 비록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을 불멸의 시들을 몇몇 발표하고도 시문학사적으로 육사의 시와 시적 활동을 자리 매길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는 그가 독립운동에 치중해서 문단과의 교류가 별로 없었음에서 기인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사에 대해 항일 민족 시인이라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고 그의 시를 신격화시킴과 동시에 민족주의나 저항성의 개념으로만 받아들인다. 이는 단선적인 의미 파악밖에 안되며 그의 시를 정확히 알기 위해선 '세계관적 지향'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육사 시는 광복에의 기다림과 의지라는 신념의 고결함에만 의미가 있는 게 아니라 그러한 기다림과 의지를 살아 있는 한 개인의 삶에 근거한 절실한 체험의 일부로 형상화시킨다면 더 깊은 의미가 부여될 수 있다. 1920년대 초의 퇴폐적 낭만주의, 1920년대 후반 카프 계열의 시, 1930년대 중반의 모더니즘까지 이를 단선적으로만 파악한다면 우린 그 어디서도 육사를 찾아 볼 수가 없다. 육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선 그만큼 다양한 접근 방법이 필요할 것이다.그의 대표작 「광야」를 살펴보자.「광야」에서 육사는 끊임없이 광막한 '광야'를 공간적인 배경으로 삼고 있으며, 태초의 역사가 시작되는 과거에서부터 지금의 현재, 그리고 미래로 이어지는 순차적인 시간 구조가 보인다. 일제 치하에서 조국의 광복을 그리고 자신을 희생시키겠다는 강건한 의지가 엿보인다. 1연부터 3연까지를 보자면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부분은 닭 울음소리가 새벽을 알리고 위대한 시대가 열렸음을 암시하는 울음소리로 해석할 수 있다. 과거 시점으로써 광야의 원시성과 역사 문명의 태동을 말하고 있다. 동시에 이 닭 울음소리를 우리 민족성과도 연관시켜 살펴 볼 수가 있다. 요즘에야 아침을 깨우는 건 미리 타이머가 맞춰진 탁상시계나 핸드폰 모닝콜 정도가 될 것이다. 이는 서구적 근대화의 대표적 산물들이다. 육사가 활동했던 일제 치하 시대에는 막 서구적 근대 문명의 물결이 휘몰아 칠때였기 때문에 시계, 전차, 전화 등 수많은 물질 문명 유산들이 우리나라를 덮기 시작했다. 그런데 육사는 정확하고 성능좋게 새벽을 알리는 시계 대신에 우리 민족 대대로 아침을 반겼던 닭 울음소리를 시적 재제로 선택함으로써 전통적 민족성을 한층 부각시키고 있다. 4연의 ‘눈’은 어두운 당대의 현실을 말하고자 하는 ‘고난’이 되겠고 ‘매화 향기’는 예전부터 선비들이 즐겨 쓰던 시어로써 육사의 선비적 지조를 파악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말로써 시적 자아의 고매한 정신을 뜻한다. 그리고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린다는 건 미래의 싹이 될 조국 광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시키겠다는 의지이다. 주로 암담한 현실 인식과 희생적 극복 의지가 돋보이는 연이다. 마지막 연에선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조국 광복으로 비유하면서 영광스럽고 밝을 미래에의 소망이 나타난다. ‘광야’는 산맥도 차마 범하지 못하는 땅이다. 강물이 흐르면서 오랜 세월의 도움을 받아야만 길을 열 수 있는 땅이다. 지금 이 광야에 눈이 내려 그 험난한 자리에 인간의 길을 개척하여 희망을 만들어 내려는 시인의 노력이 큰 고난을 맞게 되었다. 단지 홀로 아득한 매화 향기만이 시인의 마음을 증명할 뿐. 그런데 시인은 이러한 역경에 좌절을 한다거나 다른 땅으로 도망가지 않는다. 끝까지 시간의 영원성에 몸을 내던지면서 광야에서 뿌렸던 씨의 결실을 보고자 한다. 이는 ‘내재적 초월’로 어두운 현실을 받아들이고 절망의 현실로부터 초월에의 의지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윗부분에서도 언급했듯이 육사의 이러한 의지는 막연한 조국 광복에의 소망과 의지라는 신념 문제보다 육사 개인의 삶에 근거한 체험을 형상화했다고 보는 게 이 시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시를 읽다 보면 문득 예전 기개있는 선비들이 모여 앉아 서로 시를 주고 받는 장면이 연상이 된다. 언어만 한자에서 한글로 바뀌었을 뿐 ‘광야’에서 느껴지는 시적 뉘앙스는 그 예전의 전통적인 시조와 별반 차이가 없다. -으랴, -리라, -려라 와 같은 시구의 나열은 부조리에 대항하는, 깨어있는 한 인물의 강건하고 애절한 외침으로 다가온다. 육사의 이러한 외침들은 당시 일제의 억압에 숨조리고 분노하던 민중의 목소리이다. ‘착취의 역사’ 속에서 부대끼던 힘없고 약한 민중들의 소리 없는 외침이다. 육사 역시 이러한 민중들 속에 한 민중이었기 때문에 그 들의 생각과 생활을 알았으며 이를 ‘광야’라는 시를 통해 표면화 하고 있는 것이다. 억눌렸던 그 당시 현실 속에서 지조와 기개란 전통적인 선비사상을 바탕으로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게 바로 시인 이육사였고, ‘광야’이다.김기림- 재기발랄하고 서구지향적인 이미지즘김기림은 1908년 善山 金氏의 6녀 1남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 민족주의자였던 백부의 영향을 많이 받아 민족적 학교인 보성고보에 입학했고 성적 또한 우수해 많은 선생님들이 그를 인정했다고 한다. 김기림이 한국적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불릴 수 있었던 계기가 되어준 사건은 바로 동경유학이었다. 아시아권에서 일찍이 서구 문명을 받아 들인 일본은 그 당시 점점 근대적인 국가로 거듭나고 있었고 문학에 있어서도 서구적인 요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김기림은 일본에서 근대 문명에 대해서 눈을 떴고 이를 자신의 시속에 문명의 요소 하나하나를 녹여 나갔다.김기림의 문학관을 설명하는 데 있어, 스펜더(Stephen Spender)와의 연관성을 추적하는 것은 몇 가지 이유에서 타당성을 가지고 있다. 김기림이 스펜더의 를 번역했고 거기에 나타나는 기계문명의 이미지가 나 와 같은 기림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 또한 기림의 대표시인 의 이미지가 스펜서의 와 유사하다는 것 등은 이미 지적되어온 사실이다. 김기림이 스펜더와 동년배였다는 사실 역시 이에 첨가될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김기림은 그의 시론 곳곳(기림은 시를 창작하기 전에 항상 명확한 시론을 제시했다.)에서 스펜더를 언급하고 있는데. 특징적인 것은 스펜더가 엘리어트의 한계를 극복하고 나온 적극적인 시인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김기림의 견해는 스펜더를 위시한 오든 그룹이 정치에 참여했고, 그와 관련된 시를 창작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김기림이 구상했던 가장 바람직한 시인의 모델이 어떤 것이었는지 추측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시대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를 추출하고, 그것을 시에 적극적으로 반영시키는 인텔리로서의 지식인을 이상형으로 설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스펜더는 김기림이 꿈꾸었던 바람직한 시인의 표본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해방기의 정치 활동 역시 이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1930년대의 한국의 사회구성체는 기형적이나마 자본주의적인 경제구조로 편입되어 있었다. 모더니즘 문학은 이러한 자본제적 생산양식에 부응하여 발흥된 것으로서, 문단 상황으로는 카프의 퇴조와 그에 대한 대타의식, 서구화된 일본의 신감각파의 문학적 감수성의 수용 등에 영향 받은 것이기도 하다. 당시의 모더니즘 작가들은 문학적인 특성으로 새로운 차원을 구축하려는 노력과 순수성 추구의 영향, 기법에 대한 자의식 등 몇 가지 공통된 단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들의 실질적인 근거지 역할을 했던 것은 김기림이 속해있던 ‘九人會’ 그룹으로, 이들 대부분이 도시를 중심으로 한 물질문명의 이기에 매혹되어 있었고, 악화된 식민지 상황 속에서 고립되고 무기력한 소시민 계층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의 순수화는 전문가가 자신의 분야에서 얻는 경험들을 더 이상 실제생활로 옮길 수 없을 때 즉 ‘경험의 소멸’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미적 경험이 이를 대체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한국현대작가작품론김수영 초기 시에 대한 고찰꽃이 열매의 上部에 피었을 때너는 줄넘기 作亂을 한다나는 發散한 形象을 求하였으나그것은 作戰같은 것이기에 어려웁다국수-伊太利語로는 마카로니라고먹기 쉬운 것은 나의 叛亂性일까동무여 이제 나는 바로 보마事物과 事物의 生理와事物의 數量과 限度와事物의 愚昧와 事物의 明?性을그리고 나는 죽을 것이다.1. “바로 봄”의 의식이 시는 여러 가지 난해한 점이 많은 작품이다. ‘꽃이 열매의 上部에 피었을 때’라는 첫 행부터 다소 논란의 여지가 생긴다. 보편적으론 꽃이 먼저 피고 진자리에 열매가 열리는게 자연의 진리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는 게 자연의 이치이다. 열매의 상부에 꽃이 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컨텍스트적 사회요인을 고려해 볼 때 꽃이 열매의 상부에 핀다는 건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무질서적인 현상이다. 시가 쓰여진 시대가 1945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광복과 더불어 가치관의 혼란과 혼돈, 민족의 분단에 따른 국민적 충격, 외국 문물과 문화가 범람하던 시대를 겪고 있는 시인의 심적 상태가 시로 형상화되었다는 견해가 그나마 의미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기초적인 틀을 잡아 줄 수 있을 것 같다.이 시는 기본적으로 ‘너-作亂’, ‘나-作戰’이라는 이분법적 대립이 주를 이루고 있다. ‘꽃이 열매의 上部에 피었을 때’와 같이 무질서하고 혼란한 시대에 ‘너’는 그것을 인식하지 못 하고 ‘줄넘기 장난’, ‘줄넘기 놀음’을 할 만큼 표피적 삶의 일상에 몰두해 있고, ‘나’는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해 ‘작전’같이 치밀하고 머리 아픈 어려운 일을 구한다. 이는 진지한 삶을 향한 자기 확인 행위로써 현실의 사회 인식과 시적 화자의 인식사이의 벽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시인은 삶의 철저한 반성의 결과 ‘설움’을 느낄 수밖에 없고 ‘설움’은 자기 갱신의 동인(動因)이 된다. 시인이 바라보기에 일상인들의 삶은 순간을 적당히 즐기며 미래에 대한 확신도, 현실을 극복하려는 적극적 의지도 결여 되어 있다. 시작(詩作)은 바로 이런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다. 국수를 이태리어로 마카로니라고 폼(?)을 잡으면서 먹고 있는 일상인들과는 대조적으로 시적 화자는 그까짓 거 먹는 게 대수인가 하는 식의 일종의 ‘반란’적 면모를 보이고 있다. 정리하자면, 1?2?3연은 시적 화자(시인)가 당면한 현실의 상황?상태를 보여준다 고 할 수 있다.4연은 시를 이해하는 핵심연이다. 바로 본다는 것은 현실 세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다. 사물과 사물의 생리?수량?한도를 바로 본다는 것. 그 누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의 생리를 이해하고 사물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며, 한도를 알아차린단 말인가. 그러니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우매한 일이지만 동시에 세상(사물)의 이치를 깨닫기 위한 명석한 일이기도 한다. 비단 사물만 바로 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사물과 동시에 시인 자신도 바로 봄으로써 반성이나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이런 ‘바로 봄’의 의식은 마지막 연에서 목숨까지 걸 정도로 엄숙해 진다. 정리하자면, 4?5연은 당시 현실의 상태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그러면 왜 하필 이 시의 제목이 일까?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를 ‘바로 봄’과 연계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 민족은 전통적인 기본 가치와 생활 규범을 공자가 창시했던 유학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우리를 지탱해주던 민족적 가치였던 유학 질서가 급격하게 무너지고 만다. 이런 변혁기에 시인은 공자의 이름을 빌려 당대 현실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논어 이인편(論語 里仁篇)에 보면,“子曰, 朝問道 夕死可矣”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공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올바로 보고 자신의 도덕적 이상 사회를 구현하려고 하는 내적 비전(道)이다. 공자가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해 도를 구하였다면 시인은 세상을 바로 보기 위해 發散한 形象을 원하고 구하였던 것이다.눈은 살아있다떨어진 눈은 살아있다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있다기침을 하자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기침을 하자눈은 살아있다죽음을 잊어버린 靈魂과 肉體를 위하여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기침을 하자젊은 詩人이여 기침을 하자눈을 바라보며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마음껏 뱉자2. “자유”의 문제이 시를 이해하기 위해선 먼저 시적 정황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지는 눈을 보고 있으니 시적 화자의 위치는 집일 것이다. 그럼 시적 화자는 집밖에서 보고 있을까? 방안에서 보고 있을까? 창문을 열어 놓았을까? 밤을 꼬박 샜을까? 물론 다양하게 상황을 유추해 볼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눈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 눈은 가장 왕성한 생명력을 지닌다. 즉 살아있는 눈은 죽음을 초월하여 오로지 순수하고 가치 있는 것에 대한 갈망을 지닌 자에게만 눈은 살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밤새 고뇌하다가 새벽녘쯤 되니 바깥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닫혀진 창문을 열어 밖을 바라보니 번뜩이면서도 서늘한 분위기와 함께 눈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내리고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눈을 쳐다보니 격정적으로 가슴이 터지면서 기침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기침을 하자’라고 하는 자아의 각성은 이런 살아있는 눈에 의해 촉발된 자각으로써 살아있는 눈에의 동참 행위인 동시에 시인에게 끊임없이 깨어 있을 것을 요구하는 행위이다. 의미를 확대해 보자면 젊은 시인은 눈과의 교감을 통해 자유 이행의 의지를 내비치는 것이다.3연에서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깔려 있다. 죽음이란 인간이 불완전하다는 걸 의미하며, 죽음을 인식한다는 건 곧 깨어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잊어버린 靈魂과 肉體”라는 시구는 현실에 대해 끊임없이 깨어 있어야 하는 젊은 시인에겐 바람직한 것이라 할 수 없다. 세류(世流)에 휩싸이며 무의식적으로 살아가기보단 새로운 삶을 향해 열려 있는 의식이 죽음인 것이다. 4연을 통해서는 ‘가래’란 시어에 주목해 보았다.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는 죽음을 잊어버린 지난 밤 동안의 시인의 고뇌라고 볼 수 있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그러지 못하게 가로 막는 현실의 장애 사이에서 겪은 지난 밤 갈등의 산출물이 바로 ‘가래’이다. 반영론적 관점에서 살펴보면, ‘가래’를 뱉어내는 행위는 결국 지난 고뇌와 갈등을 털어 버리고 종전 이후 도시 사회의 현실적 변모, 미국 문화의 급격한 유입과 퇴폐 및 소비 풍조, 정치적 부패와 혼란한 시대상으로부터의 결별인사이자 자유에의 의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