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독교사 요약학과학번이름중국 기독교사 요약제1장 프로테스탄트 선교의 준비시대(1807-1842)제1절 일반적 개황중?영관계가 아직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점점 악화되고 있던 시기에 중국에 파송되어 온 선교사는 청조의 금교정책과 폐관자수정책으로 동남아시아 일대에서 사역하거나 비밀히 중국에 입국하여 주로 마카오와 광주에 머물면서 선교활동을 모색하였다. 이시기의 선교사 활동이란 처음엔 문화적인 형식으로 진행되었는데, 먼저 중국어를 습득하여 성경번역을 시작하였고, 그다음 선교문서 발간, 의료기관 설립 등 선교의 기초를 놓는 일을 하였다. 이시기는 본격적인 선교를 준비하고 실제적인 개방을 맞이하는 시간이었다.중국에 입국하지 못한 많은 선교사들은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마카오 등지에서 중국의 해안과 내지를 여행하면서 정탐하거나 연구하여 향후 선교의 방향을 모색하고 준비하였다.중국내에 있었던 선교사들은 성경학교를 운영하면서 중국 교회의 기틀을 놓았다. 또 한편으론 중국의 문화를 서양에 소개함으로써, 동서문화 교류의 매개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던 것이다.제2절 로버트 모리슨의 개척 선교프로테스탄트의 선교 활동은 공업화에 따른 고난에 때한 정신적인 반려로서 나타났으며, 18세기 말의 영국에서 복음주의 운동으로 그리고 뉴잉글랜드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발전하였다. 영국 형제회의 창시자 조지 폭스의 “아! 열심 있는 몇사람의 크리스쳔을 얻을 수 있다면 복음을 중국으로 전할텐데!”라는 탄식을 듣고, 1661년 존스탑스, 리처드 코스트로프, 헨리 펠이 중국 선교에 지원하여 그 실현을 보는 듯 하였지만, 세 선교 지원자가 중국 선교를 위하여 동진하던 중 안타깝게도 이집트에서 추방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146년 후, 로버트 모리슨이 중국 선교에 지원하게 되고, 그가 최초로 중국의 프로테스탄트 선교사가 되었다.로버트 모리슨은 1782년 1월 영국에서 스코틀랜드의 혈통을 이은 청빈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장로인 아버지를 본받아서 독실한 크리스챤으로 자라났다. 그리고 하여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다. 1834년 모리슨의 소천으로 런던선교회의 중국 선교가 침체되어 다음해 7월 메드허스트는 광주에 상륙하여 에드윈 스티븐스와 북상하여 중국의 연안 일대를 여행하면서, 선교 문서를 전하였다. 이후 일시 귀국하였다가 1838년 7월에 다시 바타비아에 상륙하여 런던선교회의 수석 신분으로 홍콩에서 개최된 성경번역회의에 참석하였고, 후에 상해에서 거주하였다. 그 해에 그 미국의 대학으로부터 명예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상해에서의 그의 주요 선교사역은 성경번역이었고, 1846년엔 서경을 영역하였다. 그밖에는 한문 소책자 59권과 말레이어 소책자 6권도 출판하였다.윌리엄 로크하르트는 더블린과 함께 헌던에서 각각 의학을 공부하고 런던 선교회의 중국 의료 선교에 참여하여, 1838년 로크하르트는 런던선교회에서 파송된 최초의 의료 선교사로서 메드허스트와 함께 중국으로 향하였고, 바타비아를 거쳐서 이듬해 1월에 중국 광주에 상륙하여 중화의약전교회 사역에 종사하였다. 처음엔 광주에서 중국어를 배우다가 중국과 영국의 외교적인 문제로 인해서 바타비아로 가서 메드허스트에게 계속 중국어를 배웠다. 그리고 다시 마카오로 돌아와서 의료활동을 재개하였다. 그 후 홉슨과 디버 의사 등이 마카오에 상륙하자 로크하르트는 그들에게 의료활동을 맡기고 중국의 정해, 주산 등지를 순회하였고, 주산에 병원을 개설하였다. 당시 주산은 영국인들의 점령지였는데, 1841년 영국인들이 주산을 철수하자 로크하르트는 마카오로 퇴거하였다가 홍콩으로 이주하여 진료활동을 하였다. 그리고 1844년에는 상해에서, 1861년엔 북경에서 병원을 열었다. 그리고 1864년 귀국 후 로크하르트는 중국학을 영국의 대학에 개설케하는 최초의 사람이 되었다.사무엘 다이어는 1828년 말라카에 상륙하여 중국 선교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1843년 홍콩 성경 번역회의에 참석하고 광주에서 싱가포르로 가던 도중 마카오에서 열병에 전염되어 소천하게 되어 마카오에 있는 모리슨의 묘 곁에 안장되었다. 그는 중국 내지회의시 뉴욕으로 돌아가 소천하였다. 그는 중국의 복건성 하문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현지인 70여명의 교회로 성장시켰으며, 외국인 선교사로서 최초의 민남 교회의 개척자이기도 하다.인쇄기술 전문가인 윌리엄스는 이라 트레이시와 함께 1833년 광주에 상륙하여 마카오에서 동인도회사의 출판일을 하면서 광주기간을 편집하였다. 그와 동시에 윌리엄스는 브리지만의 Chinese Repository에 80편의 글을 기고하여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저술가의 한사람이 되기도 하였다. 그는 브리지만의 중문광동반언촬요의 출판을 도우며 습급대성을 간행하였다. 그는 본래 일본 선교를 가려했으나 실패하고 중국 선교 11년이 되던 해에 귀국하여 유니온 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848년 다시 광주로 돌아와 계속 출판 업무를 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작은 중국 총론이며, 미국최초의 중국의 지리, 정부, 교육, 사회생활, 예술 종교 등 총망라한 영향력 있는 백과전서적인 중국 연구서였다. 지금까지도 중국을 연구하는 서양학자들의 권위있는 연구 자료중의 하나이다. 그 외에 화문주음자전도 있다. 일본과 중국의 민정에 밝은 윌리엄스는 미국의 주북경외교관서의 비서직으로 위촉되어 외교관으로 변신하였고, 천진조약체결때, 리드의 통역관을 맡기도 하였고, 이후 대리공사가 되어 중미 사이의 외교 사무를 처리하였다, 1876년 그는 은퇴하고 귀국하여 예일대 한학교수를 역임하였고, 미국성서공회와 미국 동방학회의 회장직을 역임하였다.피터파커는 프로테스탄트의 중국 선교 역사상 최초의 정식 의료 선교사이다. 1931년 목사안수를 받고 고아주에 상륙하였다. 그는 트레이시와 함께 싱가포르를 방문하여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진료활등을 하였다. 1835년엔 광주로 다시 돌아와 13양행 구역내에서 박제의원을 개설하였고, 1837년엔 조수를 뽑기 위해 3명의 중국인 학생을 데리고 강의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중국 최초의 의학교 초석이 되었다. 그후 파커는 유구의 나파에서 의료선교를 하면서 병원이 지역사회에 봉사해야할 뿐 아니라 사회에 결과로 1842년 남경조약에 의해 중국과 구미 제국의 관계는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게 된다.문제는 영국정부도 역시 선교사들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이익을 챙겼다는데 있다. 그들은 조약사항에 선교에 대한 사항은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래도 후에 1847년에 프랑스의 황포조약을 본받아 최혜국 대우로 무역항에서 교회설립의 권리를 획득하면서 1842년을 경계로 하여 중국 선교는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불문하고 발전하게 되었다.제2절 각 선교단체의 활동남경조약으로 홍콩이 영국에 할양되면서 5항이 개항되자 중심지가 광주와 마카오에서 통상항으로 옮겨짐에 따라 중국의 프로테스탄트 선교는 비로소 개척시대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선교활동은 5개 항과 마카오 및 홍콩으로 제한되어 이썼고, 홍콩이 선교의 근거지가 되고, 5항중에선 상해가 중심지가 되었다.1. 영국의 선교단체- 런던 선교회1840년 런던선교회가 바타비아 선교사역을 철수함과 동시에 윌리엄 영은 싱가포르 중국 선교부를 주관하였다. 그는 복건성의 하문을 순방, 그 일대를 순회전도 하다가 하문에 기도소를 설치하였다. 그는 호주 시드니에서 화교들을 선교하다가 1850년 이래 런던선교회와 사역관계를 끊고 장로회에 속한 중국인 교회에서 봉사하였다.1848년 조셉 에드킨스는 상해에 도착하여 천진과 북경에서 유수한 어학자로서 중국 종교사 및 불교 등에 관한 연구를 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를 석교정류가 있는데 기독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전반적으로 공격한 타종교 비판의 선교 문서이다. 특히 이 책은 여러 가지 입장에서 불교를 비판하여 불교의 권위를 저하시키고, 기독교의 우월성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중국 지식인의 교양의 기초인 유교의 학설도 원용하여 불교의 공격을 위한 강의 수단으로 삼았다.- 침례회죠수아 마쉬만은 어학의 재능이 뛰어나서 인도어로 성경을 번역 출판하였을 뿐만 아니라 1822년엔 중국어로 성경을 번역 출판 하였다. 이후 아편전쟁이 끝난 후 침례회의 파송으로 영파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하다가 산동성 지부에서 교회를 설성서와 기도서를 부경관화와 평이한 백화로 번역하였고, 1874년엔 북경어로 구약전서를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그 후엔 신 구약 전서를 쉬운 말로 번역하여 미화 성경회에서 1902년 이를 출판하였다.티모시 리처드는 1870년 침례회 선교의 파송을 받아서 상해에서 산동성 연대로 가서 선교사역을 시작하였다. 이해에 산동성에 기근이 발생하여 동료의사와 함께 산동성 북부 각지를 순회하면서 환자를 치료하고, 의약품을 공급해주면서 열심히 선교하였다. 그리고 각계각층의 모금을 통해서 산서성의 기아구제사업까지 성공하면서, 반기독교적 성향이 강하였던 산서성에 선교의 길이 예비 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후에 일간신문과 주간 잡지를 발간하여 문서선교에 종사하였고, 광학회를 인수하여 태서신사요람과 자서정동 등의 명작을 번역 인쇄하였다. 1902년에 선서대학당을 세우게 되어 교육선교를 하고자했던 염원을 이루었다. 당시 산서대학당은 많은 졸업생들이 우수한 인재들이 되어 중국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허드슨 테일러는 1853년 중국 복음선교회 파송선교사로 이듬해 상해에 도착하여 중국인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중국어를 공부하였다. 10차례에 걸쳐서 절강성을 순회하며 선교여행을 하였고, 이기간 중에 중국어 신약성경 1800권과 2000권이 넘는 선교책자들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때 그의 복장은 중국식복장에 변발을 하였다. 하지만 이로 인해서 선교사들의 비난을 받게 되고, 중국복음선교회의 후원이 단절되면서 사면하였다. 그럼에도 양자강 연안과 시골을 다니며 복음전파를 하였으며, 후원자가 없는 독립선교의 틀을 잡는 계기가 되었다. 건강상으로 잠시 귀국했다가 1865년 중국 영적 필요와 간구라는 호소문을 유럽전역과 미주지역으로 보내어 중국선교의 절박성을 호소하여 이것을 계기로 중국내지선교회가 1865년에 조직된다. 그리고 China:It`s Spiritual and Claims라는 소책자를 발행하여 몇십년간 영국에서 큰호응을 받았고, 내지회 선교사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이후 내지회 선교사들과 절강.
칼빈주의 발제안-영화와 성경이 만났을 때《영화와 성경이 만났을 때》Chapter 1. 영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오늘날에 우리는 대중문화의 물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 중 우리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바로 영상 매체이다. 그 가운데서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는 영상매체 발달의 시초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지금부터는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무엇이며, 또한 영화가 우리 삶에 있어서 어떠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지를 알아보려 한다.1.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것들⑴ 오락과 교훈을 동시에!영화의 기능은 단순히 시간을 때우는 오락기능이나 쾌락본능 만을 만족시키는데 있는 것은 아니다. 인식과 교양이라는 교훈적 기능도 할 것이다. 영화는 내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남의 삶, 그 구체적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문학이나 다른 예술이나 비슷한 점이 많다. 간접 체험 통해 인생과 사회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쌓고, 나아가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행동의 지침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나는 최근에 개봉한 [다크 나이트]라는 영화를 통해서는 화려한 액션씬과 멋진 무기들을 보면서 눈요기를 할 수 있었지만, 반면에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내면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특히나 인간의 악한 마음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⑵ 대리 만족감-합법적으로 금기를 깰 수 있다!우리는 때때로 이웃이 사는 모습 혹은 남의 연애사 같은 것들을 궁금해 하고 엿보고 싶을때가 있다. 아니면, 현실에선 할 수 없는 것들, 마음속으로만 간절히 바라는 것들이 있다. 이러한 것들을 대리만족 시켜주는 것이 바로 영화이다.영화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모습들 중 복수, 폭력, 불륜 등등 현실에선 법적으로 걸리는 것들이 영화 속에서 만큼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영화를 보는 내내 등장인물을 통해서 평소 할 수 없었던 금기의 위반들을 꿈꾸게 된다.)뿐만 아니라, 상황과 여건이 되지 않아, 현실속에선 이룰 수 없던 꿈들을 영화 속울도 흘리지 않았는지를 물으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하나님은 북한에 있는 그들을 위해서 마음 아파하시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신다는 것을 이 영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2. 오늘날 영화의 힘! ― 우리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는가?오늘날에 영화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크다고 할 수 있다. 마가레트 마일즈는 영화의 문화적 영향에 대해서 이렇게 요약을 하였다.[1983-1993년 사이에, 몇가지만 말하자면 인종, 나이, 생태, 가족, 교육, 중독, 낙태, 폭력, 성차, 계층, 미국의 대외 정책, 근본주의 기독교, 신 우파(New Right), 가족 가치관, 복제기술, 에이즈와 같은 요소들이 대중영화에 스며들었다. 간단히 말해, 영화는 역사가에게 그 당시의 문제와 갈등을 진단하고 처방하기 위한 비교할 수 없는 자료를 공급한다.)]그 외에 영화가 우리의 삶과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살펴보자면,? 영화는 관객이 삶을 좀 더 보도록 도와준다는 것이다.? 영화는 다른 사람들과 우리 자신을 공감대를 갖고 이해하도록 도와준다.? 점점 더 시각화 되고 있는 문화에서 영화의 이미지는 중요한 지식의 근원이다.? 영화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 반응하고 그 삶을 형성하면서 사용하는 도구 상 자의 일부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는 사람의 개인적인 형성에 중요한 요소이다.? 영화는 우리의 불안이 무엇인지 규명해 줄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의 가치관도 보여준 다. 영화는 우리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말해준다.? 영화는 관객에게 삶의 경험과 문화에 대한 더 큰 이해를 제공할 수 있다.)Chapter2. 영화와 성경의 만남1. 그리스도인들이 영화를 봐야하는 이유사실 앞에서 알아온 것과 같이 영화는 우리에게 주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우리 삶과 사회에 많은 영향력을 미친다. 좋은 영향력만 끼친다면 다행이지만, 안타깝게도 나쁜 영향력도 많이 끼친다. 특히나 반기독교적인 사상들이 만연해 있는 경우가 많다. 또, 어떤 영화는 심심풀이용으로 만들어진 아무런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저희가 핑계치 못할찌니라 롬 1:20]하나님은 이 땅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다. 우리 끼리 교회 안에서만 신학을 제한 해둔다면(물론 교회안에서도 성령님이 임재하시지 만) 그것은 성령님의 능력을 제한 한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시 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신분이시다! 바로 이 세상과 문화를 창 조하신 분이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 문화 속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길 원하시고 성 령으로 역사하시길 원하신다. 그렇기에 신학도 역시 교회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 니라 세상 속에서 역동적으로 운행하시는 성령님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넓은 문화 속에서 역사하시며 삶의 모든 것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앞에서도 말한 것과 같이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만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 다! 하나님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의 가운데에 계시며, 온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일부 인 문화도 창조하신 분이란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도 말씀하시지만 우리가 읽는 책, 듣는 음악, 보는 TV프로그램, 그리고 영화 등등 수많은 삶의 행동들을 통해 서도 끊임없이 말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말뿐만 아니라 이미지도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글자보다는 그림, 이미지 하나 만으로도 모든 것이 표현 되 는 세상이 되고 있다. 어쩌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 일지도 모르 겠지만, 우선은 이러한 이미지를 통해서도 하나님을 만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는 것이다.나는 최근에 천국과 지옥에 관한 영상을 본적이 있었다. 늘 성경속에서나 목사 님의 말씀을 통해서만 접해서 그런지 현실적으로 잘 와 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 영상을 본 순간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서 떠나질 않았다. (물론 영상에서 묘사된 천국 과 지옥의 모습은 성경속의 묘사를 완벽하게 표현한 것은 아니 관점을 통해서 영화를 보자!지금까지 우리는 영화가 무엇인지, 그리고 영화를 왜 보아야 하는 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영화를 보아야 하는 것일까? 영화 속에서 쏟아내는 수많은 대사들과 영상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그 답은 오직 하나이다. 성경적인 관점을 통해서 올바른 시각으로 영화 속의 문제의 장면들과 문제의 내용들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는 다면, 결국 세상 문화에 우리가 먹혀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제부터는 성경적인 필터링을 통해서 영화를 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여러 가지의 접근법을 알아볼 것이며, 또한 복음주의 신학을 따라 어떠한 접근법으로 다가가야 하는 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Chapter3. 성경적으로 영화를 바라보는 방법은 무엇일까?1. 영화비평의 여러 가지 신학적 접근법이것은 로버트 존 스톤이 구분한 5가지의 접근법이다. 이 접근법은 리처드 니이버의 에서 분류한 문화의 5가지 유형과 비슷한 양상을 띄고 있다. 그것 을 유념하며 살펴보자!①회피 (재세례파의 선택“문화와 맞서는 그리스도”)회피라는 접근법을 택한 그리스도인들은 영화에 대해 초기 보수적 개신교와 로마 카 톨릭이 취한 보이 코트 성향을 그대로 유지해왔다.) 즉, 이들은 영화는 너무나도 악하 고 죄악된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피하자는 주의이다.②경계 (루터교(보수적 복음 주의자들)의 선택 “역설 관계에 있는 그리스도의 문화”)경계라는 접근법을 택한 그리스도인들은 회피를 선택한 이들과는 다르게 영화를 완전 히 회피 하지는 않는다. 다만, 영화를 감상할 때에 순수하게 영화자체를 보는 것이 아 니라 영화를 보는 내내 끊임없이 신학과 연결시키려고 하려고 한다. 그리고 만약에 성경속의 인물이나 내용과 엇비슷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시에, 약간 억지스럽다고 생각이 될 정도로 신학적으로 연결하여 해석을 하려 한다.③수용 (가톨릭의 선택“문화위의 그리스도”)수용이라는 접근법을 선택한 도 무시 해버린 채 좋은게 다 좋은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펼치며 무작위로 받아들이려 한다.⑤대화 (개혁주의(진보적 복음주의자들)의 선택“문화의 변혁자 그리스도”)대화라는 접근법을 택한 그리스도인들은 영화는 영화자체 그대로 감상한 후, 신학과 영화가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상호작용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영화 와 신학은 서로 대화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서 T. S. 엘리엇과 R. W. B. 루이스가 말한 정의를 보자면, 문학작품 읽기에 대한 고전적인 에세이에서는(여기서 문학이란 말을 영화로 바꾸어서 생각하면 된다!)‘문학작품은 그대로 읽되, 문학비평 은 분명한 윤리적 신학적 관점에서 마무리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2. 우리가 진정 추구해야할 접근법은?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추구해야할 신학적 접근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대화’이다. 대화의 접근법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영화와 신학은 둘의 위치를 구분을 하되 영화비평을 하기 전에 먼저 영화 작품 그대로를 감상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에 대한 비평을 할 때에는 절대적으로 신학적인 위치를 지키면서 영화속의 이야기를 재해석해야 한다.지금까지는 이론에 대해서만 알아왔는데, 이제 그 이론을 사용하여, 실제적인 적용을 해보고자 한다.Chapter4. 실전적용!-Sex and the city를 대화의 접근법으로 비평해보자!1. Sex and the city의 전반적인 내용Sex and the city는 한때 미국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포함한 다른 여러나라의 수많은 여성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이다. 올해 나온 영화는 예전에 나왔던 드라마 시리즈의 총 완결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이 영화속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캐릭터 4명이 나온다. 그녀들의 이름은 캐리, 사만다, 미란다, 샬롯이다. 이들은 서로 다른 성격과 취향을 가졌지만, 그녀들의 공통된 주 관심사는 바로‘사랑’이다. 특히나 이번 영화에선 사랑과 더불어서 결혼에 대한 것도 함께 공통적인 관심사로 떠올랐다.먼저 각자의 캐릭.
제3의 물결을 읽으면서 내내 들었던 생각은 바로 이것이다. ‘엘빈 토플러’ 이사람은 진짜로 천재다! 이책이 쓰여졌던 당시는 1980년대이다. 1980년대에 쓰여진 책이 지금와서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그리고 실제로 그러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사회를 꿰뚫듯이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 정말로 놀라웠다. 어찌보면, 노스트라다무스 처럼 예언가 같기도 하고, 점쟁이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가 말한 제 3의 물결이란 어림잡아 짚은 미래(오늘날)의 모습이 아닌, 과거의 모습들을 되짚어 봄으로써 철저하게 분석하고 논리적으로 전개했다고 볼 수 있다.그는 책 초반에서 지난 제1 물결에서 제 2물결로 바뀌어 가는 과정들을 설명을 하면서 제 3의 물결이 등장한 주된 원인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현재 그 물결이 바뀌어 가는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고 말하였다. 나 역시 제 3의 물결속에서 살아온 사람이다. 정말로 작가의 말처럼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가는 지식들과 유행들....변화의 속도가 겉잡을수 없이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다. 아주 가까운 예로 요즘의 중고등학생들의 문화만 봐도 잘 알 수가 있다. 나는 졸업을 한지 불과 3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어느새 중고등학생들의 용어나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 자체가 내가 중고등학교 시절과는 너무나도 많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이것은 아주 극히 일부분이긴 하지만, 이 작은부분에서 조차도 큰차이를 느낄수가 있는데, 다른 것들은 오죽할까? 사실, 이 당시 엘빈 토플러가 예견했던 속도보다도 더 빨라지고 있다.이전의 제2의 물결이 주류였던 산업사회의 특징은 무엇이었을까? 우선 첫 번째, 에너지로 쓰이던 것이 유한하고 제한적인 재료였다. 그것은 사실상 아직까지도 거의 주류로 쓰이고 있는 화석연료이다. 두 번째론, 새로운 기계를 개발하기 위한 기계를 생산했다. 세 번째는, 대량판매 시스템이다. 이것은 물건생산에 대해서만 언급을 한 것이지만, 전체적인 부분에 대입해서 보았을때, 당시 산업사회는 획일화가 되어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네 번째는, 실질적인 권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통합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고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중간적 존재로 서로의 차이점들을 모두 통합들 시키는 역할을 하는 전문가들이다. 이는 하나의 개인적인 전문가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의 역할조차도 어떠한 권력자로서의 역할보다는 다양하게 얽혀져 있는 사회를 통합적으로 정리하는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다섯 번째로는 조직화 되어있는 사회이다. 통합이 되었기 때문에 상위그룹부터 하위 그룹까지 모두 서로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있고,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유연하다기 보단 굳어져있는 직선적인 사회라고 볼 수 있다. 제 2의 물결이 갖고 있는 통합하고 획일화하는 특성은 하나의 국가내의 통합을 넘어서서 전세계적인 획일화가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 즉, 개개인의 다양한 개성은 인정받기 힘든 시대 인 것이다!이러한 제 2의 물결의 특성으로 인한 폐해로 인해 더 이상 산업문명은 버틸 수가 없게 되버린다. 그 요인으로 첫 번째로, 산업사회의 폐기물들로 인해 생태계가 더 이상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지금까지의 산업사회를 지탱해오던 유한하고, 제한적인 에너지가 고갈 되어 버린 것이다.이로 인해서 제3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에너지 부분에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엘빈 토플러는 이에 대해서 태양에너지와 같은 대체 에너지가 사용될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놀랍게도 그의 예측은 오늘날 무섭도록 똑같게 이뤄지고 있다. 사실상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석유가 주로 쓰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산화탄소 배출규제가 있었음에도 잘 지켜지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최근에 전 세계적으로 Eco-Energy를 외치고, 친환경적인 것들이 주요한 사업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두 번째론, 기술자체가 작은 단위로 바뀌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일명 ‘나노’라고 불리는 단위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반도체를 개발하게 되고, 이 반도체를 이용해서 수많은 기기들이 소형화 될 수 있었다. 반도체와 같은 기술들이 발달이 되면서 함께 발달한 것이 두말할 것 없이 바로 컴퓨터이다! 사실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인해서 다품종 생산까지도 가능하게 되었고, 이전의 한정되어있던 지식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세 번째론 우주과학이다. 사실 우주는 제 아무리 제 3의 물결이 도래했다 하더라도 다 밝혀질 수가 없는 ‘신의 영역’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라고 엘빈 토플러는 말한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주만물은 모두 하나님의 작품이고, 그리고 그 오묘한 뜻을 창조물인 우리의 과학적 지식으로 다 해석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사람들은 우주과학 기술을 이용해서, 우주 안에서의 자원 획득과 우주에서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자 하려 한다. 네 번째론, 우주와 반대로 심해개발이다. 바닷속의 풍부한 자원을 개발하려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다섯 번째로, 아주 중요한 문제인, 유전자 사업이다. 이부분에 있어서 엘빈 토플러도 굉장히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왜냐하면, 생명이 달려있는 문제이며, 인간의 존엄성과 윤리적인 문제들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전체적인 흐름의 변화로 보자면 탈획일화이다! 이전의 제2의 물결이 획일화, 통합이었다면, 제3의 물결은 개인적으로 개별화 되어 있으며, 굉장히 다양하며,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매스미디어의 경향의 변화로 자세하게 볼 수가 있다. 이전에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하던 매스미디어들은 쇠퇴하고, 각분야의 전문적인 정보들이 따로 분리되어 더욱 자세하게 제공이 된다. 그리고 어떠한 경직된 구조속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라 열린 구조안에서 자유롭게 역할이 바뀌게 된다. 이로 인해 각역할들이나 위치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져 버렸다. 이것은 가족의 형태에도 영향을 주게 되는데, 기존의 전통적인 가족의 형식에 벗어난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핵가족의 형식에서 까지 벗어난 형태의 가족이 나타나게 되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가족, 동성애 가족, 싱글족 등등..엘빈 토플러는 외적인 변화 뿐만 아니라 내적인 변화, 사랑의 의미까지도 변해버릴 것이라는 우울한 예측을 한다. 사랑이외의 조건까지도 사랑으로 여겨질 것이라는 것이다. 사실 나 역시도 이러한 조건을 보는 것 역시 필요하다고 생각을 한다. 이것은 그동안 제 3의 물결속에서 살아왔기에...그 가치관에 물들었기 때문일까?
전체적인 흥미영역 배치 구성부터 살펴보자면, 크게는 Frost의 4가지 영역에 따라서 나누었다. 그 다음으로 고려한 것은 햇빛이 필요한가의 여부였다. 햇빛이 필요한 영역의 경우엔 4가지 영역을 함께 고려하여서 창문이 있는 곳에 적절하게 배치하였다. 언어영역, 수 조작, 미술 조형 영역, 과학영역이 그 예이다. 그리고 문옆에 유아들의 가방과 겉옷을 정리하여 보관 할 수 있는 정리장도 함께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유아들이 통행하기 쉽도록 공간간의 간격을 여유있게 배치하였으며, 가운데에 큰 두 개의 테이블을 준비하여 식사시간이나 간식시간때 다같이 앉아서 먹을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화장실의 문이 여닫힐 때 교실에서 활동하던 유아들이 다치지 않도록 안쪽으로 열리도록(화장실 벽쪽) 설계하였다. 교실문도 마찬가지로 유치원 복도에 다니던 유아들이 다치지 않도록 교실안쪽으로 열리도록 하였으며, 열릴 때 유아들이 부딪히지 않도록 선반이 있는 쪽으로 열리도록 하였다.각 영역별로 자세하게 살펴보자.①언어영역언어영역에는 햇빛이 잘들고 활동적인 장소와 최대한 멀리 배치하였다. 카펫을 깔아주고, 원형탁자를 준비하고 많은 책이 수납이 가능하도록 책장을 넓게 준비하였다. 원형쇼파를 마련하여 언제든지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②수·조작영역유아가 여러 가지를 집중하여 조작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용한 언어영역과 최대한 가까이 배치하였다. 언어영역과 마찬가지로 카펫을 깔았다. 그리고 자료들을 배치할 수 있는 선반들이 준비했으며, 교구들을 정리할 수 있는 바구니도 비치해두었다.③미술·조형 영역물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최대한 화장실에서 가까이 배치를 하였다. 또한 색구분을 잘하기 위해서 햇빛이 잘 드는 곳으로 배치하였다. 미술·조형영역은 바닥이나 주변이 쉽게 더러워 질 수 있기 때문에 청소도구함을 가까이 배치했으며, 유아의 옷을 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앞치마를 걸어둘 옷걸이도 함께 배치하였다.④과학 영역여러 가지 다양한 자연물들을 실험하고 관찰하기 위해서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배치하였다. 또한 여러 가지 실험자료들을 배치할 수 있는 수납공간도 마련하였다. 또한 실험중에 물을 쓰거나 액체를 치우는 경우가 많을 거라 생각이 되어 화장실과 가까운곳에 배치하였다.⑤목공영역교사의 눈에 잘 띄면서도 아이들의 통행이 드문곳에 배치하였다. 또한 목공작업중의 소음도 역시 고려하여 조용한 영역과 멀리 배치하였다. 그리고 공간을 조금은 좁게 하여 많은 유아들이 몰리지 않도록 배치하였다.⑥쌓기&대그룹 영역유아들이 자유롭게 쌓기 놀이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넓은 공간을 할애하였다. 넓은 공간안에서도 쌓기놀이를 하는 공간을 카펫과 선반으로 분리하였으며, 쌓기놀이중의 소음들은 카펫을 통해서 감소하도록 배치하였다. 쌓기 놀이엔 많은 교구들이 필요하므로 특별히 더 넓은 선반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넓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여 대그룹 수업때 역시 이용할 수 있도록 교실 가운데쪽으로 배치하였고, 중간에 피아노도 한 대 배치하였다.⑦역할놀이 영역쌓기 영역과 통합적으로 활동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선반의 길이를 약간 짧게 줄여서, 각 영역간에 이동성 있으면서도 영역별로 구분이 될 수 있도록 배치하였다. 장난감 싱크대를 설치하고 작은 옷장을 준비하여 역할 놀이때 쓰이는 복장을 입을 수 있도록 배치해놓았다.⑧음률영역음률영역의 경우엔 적당히 소음을 방지할 수 있는곳에 배치하여야 했고, 악기가 있는 영역인 만큼 물과는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배치하였다. 그리고 유아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곳에 배치하였다.⑨컴퓨터 영역컴퓨터 영역의 경우엔 조금 특이 했는데, 컴퓨터의 특성상 콘센트가 필요하기에 콘센트가 있는 벽면 쪽에 배치하였다. 세대의 컴퓨터를 준비하였는데, 유아들이 함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각 컴퓨터 마다 의자를 배치하였다.⑩물 모래 영역물 모래영역의 경우엔 상자를 만들어 움직일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최대한 어지럽혀지면 빨리 치울 수 있도록 화장실과 근접한 거리에 배치하였다.유치원 전체의 바닥은 모래와 흙을 섞은 약간 푹신한 바닥으로 구성하였다. 그리고 각 활동영역별로 테두리나 색으로 자연스럽게 분류를 해 놓았다.
관찰일시9월 24일관찰시간9:10-9:58(48분)활동영역쌓기영역등장인물가을(만4세, 남) 영현(만4세, 남) 정민(만4세, 남) 익성(만4세, 남)관 찰 내 용쌓기 영역에는 가을이와 영현이, 정민이가 있었다. 가을이와 영현이는 남아이고, 연령은 만4세이다. 그리고 정민이는 여아이고, 만4세이다. 이후에 합류한 아이는 익성이인데, 익성이도 역시 남아이고, 연령은 만 4세이다.비어있던 쌓기 영역에 가을이가 들어와서 블록들을 모두 꺼내기 시작한다. 옆에서 지켜보던 영현이가 “나도 같이 하자!”라고 하면서 블록들을 꺼내었다. 바닥에 블록들이 늘어져 있고, 영현이가 몇가지의 블록들을 가지고 어떠한 모양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내가 “영현아~지금 뭐 만들려고 하는거야?”라고 묻자 영현이가 “대포요! 여기서 이렇게 푸슝~하고 폭탄이 날라가요!”말하면서 열심히 만들었다.그때 가을이가 영현이에게로 와서 “우리 큰 자동차 만들자!! 선생님도 앉고~어~정민이도 앉고~다 탈 수 있는 자동차 만들자~”라고 말했다. 그러자 영현이가 “그래 좋아~그러면 자동차가 이따 만큼 커야돼~”라고 말하면서 블록들로 쌓기 영역의 메트 가장자리를 둘러쌓다. 가을이도 영현이와 함께 가장자리의 빈 공간들을 메워가기 시작했다.정민이는 함께 참여하지는 못하고 옆에서 보면서 혼잣말로“난 병원 만들고 싶었는데...”라고 하면서 주변을 계속 서성이고 있었다.쌓기 영역의 가장자리에 블록들을 다 세우고 나자, 가을이와 영현이는 각각 한 귀퉁이로 가서 블록으로 무언가를 쌓기 시작했다. 가을이는 원기둥모양의 나무블록을 나란히 세워두었다. 그래서 내가 가을이에게 “지금 무엇을 만들고 있는거야?”라고 묻자, 가을이가“미사일이요~ 미사일이 이렇게 삐용삐용 날라가요~ 저기에다가 버튼 만들어서~어~그래서~누르면 날라가요”라고 말하면서 영현이가 있는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면서 영현이가 블록을 쌓으면서 만들고 있던것을 가르키면서,“이게 그 버튼이에요~여기서 이거 누르면 미사일 날아가요~”그러자 영현이가“맞아~ 이거 이렇게 누르면 막 날아가~”라고 말하였다.그때 익성이가 가을이와 영현이가 만들고 있던 곳에 다가와서“너네 지금 뭐해~?”라고 묻자, 영현이가“자동차 만들어~”라고 말하였다. 이에 익성이가 다시“나도 같이 할래~”라고 말하면서 블록들 테두리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고는 테두리 한편에 자리를 잡고 함께 블록으로 무언가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영현이랑 가을이랑 익성이는 끊임없이 말을 하면서 블록쌓기를 하였다. 익성이가“이거 이렇게 하면 네비게이션이야~”라고 하자 가을이가“내건 TV도 나와~”라고 했고, 영현이는“난 리모콘도 있다~있잖아~우리아빠 자동차에는~네비게이션에 펜도 있다~”라고 했다. 그러자 가을이가“어..어..우리 우리 아빠거는 네비게이션으로 티비봐~”라고 했고, 익성이가“우리 아빠것도~”라고 하면서 각각 블록을 쌓아갔다.영현이는 블록 테두리를 이루고 있던 블록 하나의 방향을 바꾸면서,“이제 이건 변신도 한다~대포로 변신하는거야~”라고 하면서 블록을 쌓아갔다. 옆에 있던 익성이는 “이거를 이렇게~이렇게~하면서 돌아간다~”라고 하면서 나무블록 두 개를 돌렸다. 그걸 지켜보던 가을이가 “그러면 이거를 이렇게 하면 안돌아가겠다~”라고 하면서 익성이가 가지고 있던 나무블록 하나를 돌렸다. 익성이는 가을이가 하는 것을 보면서“맞아맞아~이거봐라 이거 이거 이렇게 하면 방향바껴~부웅~푸쉬이~”라고 하면서 앞에 블록을 좌우로 돌렸다. 그러자 가을이는“내거도~이렇게 이렇게 돌리면돼~”라고 하면서 익성이가 해놓은 모양과 비슷하게 놓고 좌우로 움직였다.영현이는 완성이 된 대포를 가지고,“이것봐라~대포다~버튼 삐비빗 푸슝~쿠왕~쿠당탕탕”대포가 쏘아진듯한 의성어들을 사용하였고, 익성이는 이걸 보면서 갑자기 양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면서“우가가가가~우워아아~”괴성을 질렀다. 이에 영현이는 더 크게 “푸쉭 푸슉콰아앙~”소리를 내었고, 익성이는 계속해서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면서 괴성을 질렀다. 이것을 한 5번정도 반복하자, 가을이가 익성이에게“너 시끄러워어어~전익성 넌 또 고릴라 흉내내냐??”라고 말하면서 짜증을 내었다.영현이는 갑자기 일어나서 쌓기 영역을 나가더니 색칠하는 종이와 색연필을 가지고 왔다. “난 이거해야지~선생님 저랑 같이 이거 색칠해요~”라고 하면서 나에게로 다가왔다. 그러자 익성이가“나도 이제 그만해야지~”하면서 나가려고 하자 가을이가 “아이씨~다 가버리면 어떻게~같이 이거해~”하지만 익성이는 쌓기 영역을 나갔고, 가을이도“씨..나도 이제 안할거야~”하고 쌓기 영역을 벗어나면서 활동이 종료 되었다.이 론 해 석1)정신분석이론에릭슨의 놀이단계에 따르면, 영현이와 가을이 그리고 익성이의 놀이 단계는 3단계 거시 영역 놀이 단계이다. 주로 이 단계의 유아들은 주변의 또래와 사회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것이 주요 특징이다. 영현이와 가을이 그리고 익성이는“우리 자동차를 만들자”,“나도 같이 만들자~”,“이건 네비게이션이야~”,“내껀 리모컨도 있어” 등등의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 계속적인 상호작용 통해서 블록으로 자동차도 만들고, 한명이 미사일을 만들면 따라서 미사일도 만들고 더 나아가서는 미사일이 나가는 버튼도 만들고, 네비게이션을 만들면 또 다른 한명은 TV가 나오는 네비게이션에다가 리모컨까지 만드는 등 서로에게 영향을 받는 행동들을 볼 수 있었다.2)인지발달이론①피아제이날 관찰한 유아들의 놀이 유형단계는 파아제에 의하면 3단계 중에서 2단계인 상징적인 전환을 수반한 상징놀이 단계이다. 가을이와 영현이 그리고 익성이가 쌓기 영역을 블록으로 테두리를 두르고 자동차라고 칭하고, 나무블록을 일렬로 세워서 미사일이라고 칭하는 것과 같이 블록 하나로 자동차와 미사일, 네비게이션, TV, 핸들...등등 다양한 것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버튼 삐비빗 푸슝~쿠왕~쿠당탕탕”,“우가가가가~우워아아~”등등의 의성어를 통해서 미사일이 발사되는 것이나 고릴라 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②비고츠키처음에 영현이와 가을이가 만들려고 했던 것은 커다란 자동차였다. 하지만 두아이는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미사일 달린 자동차를 만들었고, 더 나아가 미사일을 발사하는 버튼까지도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익성이가 들어오면서 네비게이션도 만들고, 처음엔 단순한 네비게이션이었던 것이 리모컨까지 달린 네비게이션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렇듯 유아들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처음엔 단순하였던 기능과 모형, 아이디어가 한층 더 발달하였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는 비고츠키의 이론에 따르면, 각 유아들의 ZPD가 서로서로 상호작용을 함으로써 그 영역을 더욱 좁혀나가고, 또 더나아가 새로운 ZPD를 확장해나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이 세명이 유아가 함께 블록을 쌓으면서 놀이를 함으로써 단순히 블록을 쌓는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특정한 목적이 있는 블록 쌓기가 되었다는 것을 관찰할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