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종묘종묘는 사적 제 125호, 총면적 5만 6503평으로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해 있다. 종묘의 조영(造營)은 1394년(태조 3년) 12월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할 때 중국의 제도를 본떠 궁궐의 동쪽에 영건을 시작하여 다음해 9월에 1차 완공하였다. 그 뒤 1546년 (명종 1년)까지 계속되었으며 1592년 (선조 25년)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종묘의 주전인 정전은 동시대의 단일 목조건축물로는 규모가 세계에서도 가장 큰 건물로 그 특징은 옆으로 긴 형태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건물 한 칸마다 한 왕의 위패를 모시도록 하였기 때문에 정면이 매우 길고 수평선이 강조된 독특한 형식이다. 숲으로 둘러싸인 한 가운데 정전이 남쪽을 향해 놓여 있고 정전의 서쪽으로는 부속건물인 영녕전이 역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정전과 영녕전은 모두 굵은 나무기둥을 기본으로 한 동양의 전통적 목조건물의 형태로 이 건물의 주인인 신령을 위한 건축적 산물로서 장엄함과 웅장함이 느껴진다.▶종묘의 역사적 의의종묘(宗廟)는 조선왕조의 역대 제왕들 및 왕비, 그리고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고 일정한 시일을 정하여 신명(神明)과 교접(交接)하며 제사를 해하던 사당으로 태묘 또는 대묘 라고도 하였다.종묘건축은 비단 조선시대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시대에도 선왕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던 건축물이 존재했음을 여러 문헌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사상체계 및 정치이념이 바뀌게 되었는데 그러한 변화들은 일반 백성들보다 당시 새 왕조의 개창(開創)을 주도했던 지배층들의 사상에서 확연히 드러나게 된다. 결국 현존하는 종묘 즉, 조선시대에 영건된 종묘는 고래(古來)로부터 전승되어 왔던 우리나라 종묘건축의 형식이 조선시대로 넘어와 새롭게 대두되는 여러 가지 요구조건들을 수용하면서 변화되어 나타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종묘는 시대 변 ‘국조오례의’ 의 그림과 같지만 내용이 보다 상세하고 전에 없던 집사청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종묘외부공간에 동선체계가 정확하지는 않으나 표시되어있다.⑹ 현종 때의 영녕전 증축증축의 이유는 증보문허비고를 보면 “영녕전의 태실이 본래 4칸인데, 뒤에 조천하는 신주가 점점 늘어남으로 인하여 동서 협실 각각 2칸을 더 세웠고, 이대에 이르러 또 동서 협실 각 2칸을 세웠다.”고 되어서 신주가 늘어남으로 인해 신실의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했다.⑺ 영조 때의 종묘 증축영조 때의 종묘증축은 신위를 봉안할 실의 부족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어 중건을 결정한다. 그런데 이 실의 부족은 세실 제도의 운용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세실 제도란 나라에 지대한 공을 남긴 임금은 백세가 지나도록 종묘에서 제사를 받도록 하는 제도이므로 영조 때의 경우 기존 11칸 중 7실의신위가 불천지위로 되어있는 실정이었다. 다라서 실을 4칸을 증축하여 15칸으로 정하는 것이었다. 증축방법은 동편의 한 칸을 헐어내고 이것과 새로 4칸을 결합시켜 증축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동쪽으로 4칸이 늘어남으로써 나머지 동독에 있는 건물들도 철거하여 뒤로 물러나도록 하였다.. 이때 철거된 건물들은 제기고, 동월랑, 남신문, 동문 등이었다.⑻ 헌종 때의 종묘, 영녕전 증축헌종 때의 증축은 영조대의 종묘증축 방법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헌종2년(1834)의 공사는 종묘 정전과 영녕전을 모두 증축하는 것이었으며 종묘 정전은 영조 때 개축한 뒤 거의 110년만에, 영녕전은 현종 때 개축한 뒤 167년만의 일이었다. 그사이 왕위의 계승으로 보아서는 정조, 순조 2대에 불과 하였지만 장조, 익종 등 추존왕이 있어서 다시 신실이 부족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때에는 정전과 영녕전 양 건물에 각각 4칸씩을 늘여 신실의 여유를 충분히 잡았으며 그 결과 정전은 19칸 건물이 되었고 영녕전은 정전 4칸에 좌우 익실 각 6칸을 모두 합한 16칸의 건물이 되었다. 공사 방법은 역시 영조 때의 예에 따라 종묘 정전의 기존 건물을 그대로 두고 .제정제정은 제례 때 사용하던 우물로 원형으로 돌을 다듬어 설치하고 주위에는 담장을 둘렀다.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으며 물이 늘 찼다고 한다. 제정 주변에는 전석을 깔아 정리하고 서쪽 담장 밑에 배수구를 마련하여 제정 주변이 항상 깨끗하도록 배려하였다.12.진사청전사청은 종묘제사에 사용하는 제수의 진찬 준비를 하던 곳으로, 마당을 중심으로 그 주위로 건물을 'ㅁ'자형으로 배치하였다. 마당에는 제수를 준비하던 돌절구 등의 흔적이 남아있다. 주실은 정면 7간, 측면 2간이고 옆에 온돌과 마루방을 들여 행각으로 꾸몄다.13.정전종묘 정전은 매 마다 신위를 모신 신실인 감실 열아홉 칸, 그 좌우의 협실 두 칸, 그리고 협실 양끝에서 직각으로 앞으로 꺾여 나와 마치 신실을 좌우에서 보위하는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동?서월랑 다섯 칸으로 구성되어있다. 남문인 신문(神門)에서 보면 동서 109미터, 남북 69미터나 되는 묘정 월대가 넓게 펼쳐있고, 월대 가운데에는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남북으로 나 있으며, 그 북쪽 끝에 상월대와 기단이 설치되어있다. 묘정과 정전이 놓여있는 상월대 사이에는 3개의 계단이 나있다. 가운데 계단을 태계(泰階), 동쪽의 계단을 동계(東階) 혹은 조계, 서쪽의 계단을 서계(西階)라 한다. 상월대에 이르는 이들 계단과 동월랑의 계단 소맷돌에는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정전이 곧 '천상의 공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종묘 건축이 다른 건물과 다른 차이점은 건물 내부에 모실 신위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건물을 옆으로 증축하여 늘린 점이다. 정전은 동?서월랑을 포함하여 길이가 101미터가 되는 길고 장중한 건물이다. 이처럼 건물 길이가 긴 이유는 조선왕조가 지속되면서 봉안할 역대왕의 신위가 늘어나면서, 이에 따라 중축했기 때문이다. 서측을 상(上)으로 하여 제1실인 서쪽 첫 번째 칸에 태조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그런 다음 서쪽부터 차례로 태종(3대), 세종(4대), 세조(5대), 성종,(9대), 중종(11대), 선조(14대), 인조( 각 왕의 비(妃)를 합쳐 모두 34위 신위가 16감실에 모셔져 있다.영녕전은 현재 보물 821호로 지정되어 있다.영녕전 후면(後面)과 북계(北階)영녕전 역시 정전과 마찬가지로 전면 퇴칸은 묘정을 향하여 틔어있다. 그러나 나머지 세 면은 전벽돌로 막혀있고 석축단으로 된 북계 뒤에 담장을 쌓았다. 정전도 담장을 둘러 신실의 위계를 두었듯이, 영녕전 후면 가운데 담장은 태조의 4대조를 모신 영녕전 지붕의 길이 만큼 높게 조성하였다. 좌우 협실 뒤를 둘러쌓은 담장보다 높게 한 것이다. 이는 영녕전 지붕의 높이 만큼이나 담장에서도 그 위계를 보여주는 수법인 것이다. 정전과 다른 건축적 특징은 영녕전 후면의 전벽돌로 마감한 부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정전이 후면을 모두 전벽돌로 마감한 것과는 달리 영녕전의 후면은 '기둥이 뒷편 전벽돌 사이에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영녕전 망료위(望燎位)초헌관이 축문과 폐를 태우는 곳이다. 축문과 폐를 태우면 비로소 종묘제례가 끝난다. 정전과 영녕전 서편 뒤쪽에 각각 하나씩 위치하고 있다.17.제기고(祭器庫)정전의 제기는 정전 동편 협실 두 칸에 보관하고 있다. 하지만 영녕전의 제기는 영녕전 동편에 별도의 제기고를 마련하여, 보관하고 있다. 영녕전 제기고는 원래 수복방으로 쓰였다고 한다. 정면 네 칸, 측면 한 칸 규모이며, 전면에 두 개의 출입문과 살창을 내고 전벽돌을 둘러 마감하였다.18.악공청(樂工廳)종묘제례 때 음악을 담당한 악공들이 준비하며 기다리던 곳이다. 악공청은 정전과 영녕전 밖에 서쪽에 별도로 마련되어있다. 이들 악공청들은 현재 남아 있는 것만으로 정확한 내부 구조를 알기 힘들다. 정전에 부속된 악공청의 경우 지금은 개수하여 정면 6간 측면 2간을 이루는 기둥만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영녕전에 딸린 악공청은 정전의 악공청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규모가 작다. 정면 3간 측면 1간으로 정전에 부속된 악공청에 비해 1/4 규모로 남아 있다.종묘와 창경궁을 잇는 육교창경궁과 창덕궁은 응봉자락을 따라 흐르는 지맥에 위치 그리고 하월대의 가장자리는 집사, 무관들의 자리이다.정전의 양끝 동, 서월랑은 정전과 직각으로 꺾여서 정전 건물을 감싸고 있으며 특히 동월랑은 벽체를 설치하지 않고 개방하여 제례종사원들의 활동을 편하게 하고 있다.종묘는 정전과 동, 서월랑에 의해 이루어지는 ㄷ자형의 낮고 긴 수평적인 건축 형태와 그 앞의 넓은 월대를 구성하여 종묘 제례라는 의식을 거행하고자 하는 기능적 요구를 충족하면서 동시에 하나의 장대한 건축 공간을 창출하고 있다.4. 종묘의 제례동선체계종묘에는 여러 가지 길이 얽혀있다. 지금 현재 관람로는 제전으로서의 길을 상실하고 공원으로 개방되면서 만들어졌고, 제사준비를 위한 서비스 통로가 있었지만 의미있는 길은 원래 두가지이다. 하나는 신도(神道)고 또 하나는 어도(御道)이다.신도는 인간이 다닐 수 없고 혼령만이 드나드는 길이고, 어도는 제사담당자인 임금과 세자가 이동하는 의례의 길이다. 두 길은 모두 전돌을 가지런히 깔아 쉽게 인지된다.정전과 영녕전 마당의 중앙을 관통하여 각각의 신문으로 이어지는 외줄기 길이 신도이다.어도는 동문만을 출입할 수 있게 설치되어 임금이라도 남쪽 신문을 지날 수가 없다. 이 어도를 따라가면 제주인 임금의 동선을 알 수 있고, 그것이 종묘제례의 중요한 의례순서이다.종묘의 정문을 들어온 어도는 향대청과 망묘루 앞의 연못을 지나 우측으로 꺽어져 재실 속으로 사라진다. 재실의 서문에서 시작하여 정전의 동문을 빠져 나온 후 정전 남쪽 담장을 끼고 꺽어져 영녕전 영역인 동문을 향하게 된다. 정전에서 유사한 절차의 제례를 지낸 임금은 재실로 돌아가 머묾으로써 제례를 마친다.종묘에서 중요한 것은 의례를 위한 길들이며, 일상적인 길은 길이 아니다. 어도는 전돌이나 거친 넙적돌로 포장되어 있다. 제례를 위해서는 매우 천천히 움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일상의 길들은 잘 다져진 흙바닥으로 빨리 걸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종묘에서는 빨리 갈 수 있는 길은 아니다.5. 종묘가 중국 태묘와 다른점종묘는 비록 중국에서 비롯한 제도에 따라 한다.
종묘(宗廟)전자과 2200868 노동철 무역학과 2301583 정주영 무역학과 2401532 오하나목차1. 종묘2. 역사적 의의3. 상징적 의미4. 종묘의 구성5. 종묘의 특성6. 종 묘 제 례 악7. 정리1. 종묘사적 제 125호 총면적 : 약 18만 6787㎡ (서울 종로구 훈정동)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조선왕조의 역대 제왕들 및 왕비, 그리고 사후에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봉안하고 일정한 시일을 정하여 신명(神明)과 교접(交接)하며 제사를 해하던 사당 '태묘' 또는 '대묘' 라고도 함.2. 종묘의 역사적 의의조선의 한양 천도 후, 제일 먼저 신도읍 건설공역 대외적으로는 신왕조의 정통성 과시 대내적으로는 조상의 위대함을 찬양종묘와 경복궁 창건명나라로부터의 승인을 얻기 위함통치의 정당성과 근거 마련3. 상징적 의미임금이 궁궐을 중심으로 해서 남쪽을 향하였을 때, 오른쪽에 사직, 왼쪽에 종묘 국가의 흥망(興亡)은 종묘, 사직의 존망(存亡) 종묘와 사직의 존재는 정치이념 상 국가 기틀의 완성과 왕조의 뿌리를 상징4. 종묘의 구성정전4. 종묘의 구성영녕전4. 종묘의 구성♠ 창엽문♠ 신향로♠ 망묘루♠ 어숙실5. 종묘의 특성중시되는 것 모셔진 신위를 위한 장소와 공간을 마련하는 것 제례 예법에 맞는 건축공간을 조성하는 것 제례를 행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머뭄의 공간과 움직임의 공간을 구성하는 것 겹겹이 쌓인 죽은자의 공간 여러 겹의 통로와 영역을 지나 도달해야 하는 통과의례를 거쳐야 한다 대칭인 듯 비대칭 개별적으로는 비대칭이지만 전체적으로는 대칭5. 종묘의 특성위계의 따른 지붕의 높이 의례공간의 위계질서가 반영 기단과 처마, 지붕은 위계에 따라 높이가 다름 절제미 제례를 위한 공간이기에 화려해서는 안됨 구성, 구조, 장식, 색채의 간결함과 단순함 유네스코 지정 1995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 한국 유교 전통의 표현, 지금도 행해지는 전통의례 유산, 건축적 가치등을 인정. 특히 백성을 생각하는 정신을 높이삼6. 종 묘 제 례 악7. 정리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뿌리, 정신적 버팀목 유교 = 효를 중시 조선내에서 매우 중요한 건축물 종묘 - 사적 제 125호 정전 - 국보 제 227호 영녕전 – 보물 제 821호 종묘제례악 – 중요무형문화재 제 1호 종묘제례 – 중요무형문화재 제 56호이상으로 발표를 마칩니다. ^^감 사 합 니 다 . . .{nameOfApplication=Show}
경복궁을 다녀와서..무역학과 정주영미술관 또는 박물관 견학을 하고, 그에 따른 감상문을 적는 두 번째 장소는 고민을 참 많이 해봤다. 지난달에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다녀온터라, 또 박물관을 가기에는 그렇고, 인터넷으로 미술관을 알아보는 중에, TV에서 사극드라마를 하고 있었다. 조선시대의 궁궐도 참 아름답다는 생각에 경복궁을 한번 더 다녀와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릴 적과, 고등학교때도 갔다 왔었지만, 그때당시에는 제대로된 견학이 목적이 아니라 선생님에 이끌리다시피 돌아다녔던거라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전철안에서 여러번 가봤던 곳이라 이번 견학이 조금은 진부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역시나 한국의 고궁의 모습은 계절, 시간, 그리고 그날의 날씨 등 주변 환경에 의해 너무나 다른 풍경을 연출하기에, 때로는 이곳이 낯설게 느껴지기 까지 했다. 특히나 오늘처럼 흐린 평일의 관람객이 그다지 많지 않은 날의 고궁의 조용한 모습은 더더욱 새로웠고 신비스러웠다.입구인 흥례문으로 들어서기 전 뒤를 돌아 광화문 너머를 보았다. 높이 솟은 빌딩의 상층부와 하늘이 멀게 느껴졌다. 그다지 높지 않은 광화문 주변의 담벼락이 매우 높게 느껴졌다. 문 하나를 두고 안과 밖에서 이렇게 다른 기운이 느껴지는 것은 역시 건축의 기운이 공간을 채우고 있기 때문일까? 증명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철골빌딩으로 채워진 바깥의 공간보다 돌과 나무와 흙으로 채워진 이곳 안의 공간이 더 친숙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을 것이다.다시 뒤를 돌아 경복궁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흥례문쪽에는 관람객들이 꽤 많이 있었다. 유치원 꼬맹이들을 보면서 어릴적 생각이 낫다. 과연 쟤네들이 크면 나같은 생각을 또 하겠지 하면서....흥례문 앞에 서서 보이는 근정문과 근정전의 모습은 역시나 큰 스케일로 다가왔다. 창덕궁의 그것과 비교해 웅장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뒤의 인왕산이 고궁을 마치 팔로 끌어안듯 감싸고 있는 형상이었다. 창덕궁이 산자락을 타고 리듬감 있는 배치형태를 띤다면 경복궁은 땅에서 솟은 듯 무게감 있는 사각형 형태의 배치를 하고 있는 듯 하였고, 근정전 뒤로는 뒷마당 같은 작고 아담한 공간들이 유기적으로 집합되어 있었다. 공간의 스케일이나 재료 역시 용도에 맞게 짜여진 듯 하였는데, 예를 들면 왕의 공간인 근정전은 위엄 있는 큰 스케일과 높이로, 왕비의 공간인 교태전은 아늑함과 안정감 있는 스케일로 자경전은 작은 스케일과 아름다운 꽃무늬담으로 지어져 있었다.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경복궁을 이루는 각각의 건축물들에서 통일성 또한 느껴졌다. 건축물을 이루는 재료, 지붕의 형태, 그리고 선 그것이 만드는 질서가 전체적인 통일성을 만들어 가고 있는 듯 하였고 그것이 또 다른 경복궁만의 색깔을 띄게 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분명히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지만, 경복궁에 있는 건축물 하나를 때서 창덕궁에 붙인다면 정말 어색하게 느껴질 것이라 생각하였다.
‘중화요리에 담긴 중국’을 읽고...무 역 학 과정주영제대 후, 복학해서 처음으로 듣는 학기 수업들...교양과목은 분명 사람들의 입과 입들을 통해서 선택하는게 대부분이고, 역시 나또한 그랬다.동양 역사와 문화! 같은 과 선후배와 동기들과 함께 이 과목을 선택했고, 기대 역시 많이 했다.학창시절 때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고, 그만큼 열심히 했다. 그래서인지 이 수업은 다른 수업과는 반대로 졸음을 달아나게 해준다. 월요일 밤 레포트로 밤새고 피곤한 상태에서 수업을 들어가도 잠이 확 깨고 수업에 집중하게 된다.학기 초에 교수님이 독후감을 제출하라고 책들을 정해주셨는데, 무슨 책으로 할까 고민하게 되었다. 먼저 인터넷으로 책 제목들을 써보며, 페이지 숫자를 확인했다. 물론 작은 분량의 책을 읽기 위해... 그러나 막상 책을 정할 때, 직접 훑어보지 않는 한, 페이지, 표지, 저자, 출판사 이런것들과 관계없이, 책 제목으로 결정하게 되는 것 같다. ‘중화요리에 담긴 중국’책 제목부터, 딱딱하지 않고, 재미있고 편안하게 볼 수 있을 것 같아 선택을 했다. 평소에도 중국요리가 지역단위로 3 ~ 4 지역으로 나뉜다는 것은 대충 알고 있었고, 물론, 과제를 위한게 우선이 될지 모르겠지만, 어차피 읽고 해야 되는 거, 이왕 재밌게 해보자는 식으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처음에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볼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미 다 예약이 꽉 차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사서 보기로 했다.이 책 내용은 전반적으로 3개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처음부분은 저자에 중국요리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하며 시작하고 있고, 중화요리에 관련된 옛날이야기를 중심으로 책 내용이 전개되어지고 있다. 뒷부분은 부록처럼 중화요리 이름에 관해 설명해주고 있는데, 이 뒷부분은 솔직히 많이 지겨운 내용이라 졸릴뻔했다.일반적으로 중화요리라 함은 짜장, 짬뽕 등 자주 시켜먹는 음식들을 떠오르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 짜장, 짬뽕은 거론조차 되지 않았고, 평소 즐겨먹던 만두조차, 중국의 만두라고레까지,, 떠도는 말로 중국 사람은 나는 것은 비행기, 헤엄치는 것은 잠수함 빼고 다 먹는다는 얘기가 어찌보면 맞을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제일 잔인한 사람들이 중국 사람들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중국은 세계에서 3번째로 큰 나라이며, 인구 또한 세계의 한축을 맡고 있을 만큼 엄청나게 많은 나라이다. 비록 한 국가이지만 그 문화의 다양함은 우리나라 몇 십개를 합쳐놓은 것만큼 다양할 것이다. 음식 또한 다르지 않을 터, 이 책을 읽으면서 다양한 중국의 요리들, 요리에 관한 역사이야기 등을 보면서 과연 중국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삶의 요소를 3가지로 압축할 때, 우리나라는 의식주라 하지만, 중국인들은 식의주라 한다. 우리들은 입는거라는 껍데기를 중요시 하는 한편, 중국인들은 먹는다는 실속에 비중을 둔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의식동원이고 음화식덕이라고 했다. 의약과 먹는 것은 뿌리가 같고, 마시고 먹는 일은 덕이라는 뜻이다. 중국의 한약재 점포에서 인삼, 녹용 따위의 각종 한약재를 상어 지느러미, 말린 전복과 해삼. 오징어 같은 건어물들과 함께 취급하고 있음을 보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또 중국에서는 백성이 굶게 되어 반란이 일어나 왕조가 바뀌는 결과를 낳았고, 참을성 많은 중국인들이라 하지만, 굶는 것 못참는 듯 했다.또한, 중국인은 타고난 식도락가이다. 그들은 참으로 먹는 것을 즐기고 이것을 감추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어엿한 위치에 있는 이들도 직접 칼을 들고 요리 하기를 즐긴다. 심지어 당의 현종은 자신이 요리를 만들어 이태백과 함께 이를 즐기기도 했다고 한다.중화요리의 그 요리법 중에서 가장 크게 나눠서 봐야 할 것이 불로 요리하는 방법, 또 우리가 사용하는 칼이 아닌 칼과 그 기술들이다. 치솟는 불길 속에서 요리사가 움푹 패인 프라이팬을 아래위로 까불면서 요리하는 모습에는 두 가지 중요한 조리 원리가 있다. 그 하나는 센 불의 사용으로 고온 처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프라이팬을 다루면서 재료를 불로 요리한다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한자의 칼질에 절(切), 참(斬), 비(批), 감(?), 삭(削), 선(旋) 등 100가지가 넘는 표현법이 있을 만큼 칼의 그것 또한 중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중화요리라 함은 말이 중화요리이지, 워낙 땅 덩어리가 크고 지역 간의 특색이 뚜렷하게 다르므로 이들 전체를 하나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화요리를 일반적으로 4지역으로 나눈 구별법이 있는데, 즉, 노계로 대표되는 산동 및 북경요리, 월계로 대표되는 광동요리, 소계, 호계로 대표되는 상해요리 천계로 대표되는 사천요리가 그것이다. 이 4지역 요리의 특징을 간단히 구분짓자면, 북경요리는 짜고, 광동요리는 담백하며, 상해요리는 새콤 달콤하고, 사천요리는 맵다는 것에 특징을 둘 수 있다.이 책의 중화요리에 관한 내용 중, 이 4지역 요리의 특징을 가장 큰 비중을 두고 싶다. 책의 저자인 고광석씨는 중화요리에 관련한 중국 역사를 주 내용으로 담았지만, 그것은 보다 책의 내용에 다가가기 쉽게 하려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 보였고, 분명 그것또한 재미있고 의미있는 부분이지만, 난 이 내용을 보다 더 집중을 해서 본 것 같다.북경이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3천년 전인 주나라 때이며, 전국 시대에는 연나라가 자리했으나 도시로서 처음 이름을 얻은 것은 당나라가 망하고, 10세기경인 소위 5대 10국 시대에 북쪽의 거란족이 세운 요나라가 남경 또는 연경으로 정했던 때, 12세기에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가 이곳을 중경으로 부르면서 역사 속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북방 민족으로부터 번갈아 지배를 받은 북경요리는 소수 민족들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었으며, 여러 왕조를 거치면서 궁중 요리와 북경요리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게 되었다.오늘날 세계 각국에서 중국요리를 대표하는 북경오리 요리는 6세기경인 남북조 시대의 기록에도 보이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로 발전한 것은 명나가가 남경을 첫 수도로 정했을 때, 남경에서 이미 대중화되어 있던 오리요리를 구이로 다른 하나는 굽는 방법에 있다. 강제로 살을 찌운 오리와 오리를 잡으면 깃털과 내장을 제거 하고 물갈퀴를 떼어내어 겉에 엿을 발라서 나흘간 그늘에 말린 다음, 몸 속에 공기를 불어넣어 보기 좋게 부풀린 오리를 대추나무나 배나무 장작 불 위에 매달아 놓고 비버의 맥아당 양념을 발라가며 다갈색으로 익을 때까지 오랜 시간 구워내는 것이다. 강제로 살을 찌우는 모습과 오리요리를 하기위해 하는 작업들을 보면, 중국인들의 먹는 것에 대한 잔인함은 미덕으로 봐줘야 하겠다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광동요리의 유명한 음식 중에서도 광동채삼절 이라고 하면 삶은 개고기, 참새찜, 뱀고기 수프를 가리킨다. 중국에서는 개고기 요리를 삼육탕 또는 향육이라고도 부른다. 삼육탕은 주로 남쪽 지방의 명칭이고, 향육은 주로 동북의 조선족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통하는 이름이다. 광동 지방 말로 삼에 육을 더하면 구가 되고, 이 아홉 구자는 개를 나타내는 구자와 발음이 같아서 까우이기 때문에 삼육탕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향육은 조선족의 조상이 대부분 북한 출신이고 또 북한에서는 단고기라고 부르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단고기를 뜻하는 한자어를 찾아 향육이라고 이름 지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조선족 보신탕집에서는 우리나라에서와 같이 전골로 끓여 먹는 방식보다는 삶아서 가늘게 찢은 고기를 양념에 찍어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는데 최근에는 우리 식으로 내 놓는다. 중국이란 나라 참 웃기는 나라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1988년 개고기를 법적으로 정육점에 팔 수 있게 하려 했으나, 세계 각국의 반대와 비난으로 없었던 일로 해야되었다. 그런데 이 중국이라는 나라는 광동채삼절에 개고기가 들어간다니.... 왜 우리나라의 개고기 문화만 가지고 뭐라 하는지 잘 모르겠다. 문화의 상대성은 있어도 우열은 없는데 말이다.한편, 뱀은 동면을 앞두고 추운 겨울에 대비하여 영양분을 축적해두어야 하므로 가을철에는 통통하게 살이 오른다. 또한 뱀고기에는 각종 영양소가 많고 습기를 제거해주는 효과가 있으며, 뱀 요리는 조리 잎, 콘 칩같이 생긴 것이 딸려 나오면 뱀 수프가 틀림없다고 생각해도 된다.광동 사람들이 참새를 먹게 된 것은 꽤 오래 전으로 광주에서 발굴된 서한 시대의 남월왕묘에서는 200여 마리분의 참새 뼈가 출토되었다고 한다. 작雀은 참새의 일종으로 찬바람이 불면 북쪽으로부터 날아와 논의 이삭을 먹어 치우기 때문에 화화작 이라고도 한다. 책에는 우리가 참새를 불에 구워 소금에 찍어 먹는다고 했는데, 참새를 먹는다는 소리는 못들어 봤기 때문에 그건 잘 모르겠고, 중국인들은 참새를 털을 벗기고 꽁무니를 통해 내장을 솜씨 좋게 빼내고 기름에 반쯤 튀긴 다음 약한 불에 쪄서 먹는다고 한다. 털을 벗긴 상태에서 참새를 통째로 한 입에 넣으면 뼈와 함께 아삭아삭 씹히는 맛이 과연 광동 요리의 3총사라고 하는 이유를 알게 해준다는데 광동요리 한번 먹어보고 싶다. 뱀은 말고......또 중국 사람들에게 있어 돼지고기는 육류의 기본이다. 그래서 우리가 갈비라고 하면 소갈비를 뜻하지만 그들이 갈비라고 하면 돼지 갈비를 뜻한다. 광동 지방에서 요리 상에 돼지 구이 요리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특히 새끼 돼지 통구이는 빠질 수 없는 필수 메뉴이다. 통돼지 구이는 광동성의 주강 삼각지 일대가 유명한데, 잘 익은 돼지의 겉 색깔이 황금빛으로 아름다워 금돼지라고 하며, 어미 돼지는 대금저, 새끼 돼지는 유저라고 한다. 유저는 유리의 애저에 해당하는 말이다. 그러나 음식점의 메뉴에서는 보통 췌이피루주로 올라 있는데 이는 바싹 구워 아삭아삭 씹히는 맛에 착안하여 붙인 이름이다. 이 새끼돼지통구이는 처녀의 순결과 연관 지어진다. 광동요리는 좋은 환경에서 각종 먹거리가 풍부하게 산출되므로 음식의 종류와 조기 기법에서 다른 지방이 따라올 수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호남 지역이 음식에서 앞서는 것은 같은 이유일 것이다.세계에서도 유명한 미식가인 청나라의 건륭황제는 강남 지방을 여섯 번이나 찾았다. 경치가 아름답고 음식이 맛있어 멀고도 먼 강남을 거듭하여 찾았던 다.
중국 경제 성장 요인무역학과 - 변인식 2101430 - 이지훈 2201435 - 신형균 2201417 - 정주영 2301583 - 배주희 2601565목 차1. 중국은 지금2. 중국의 외자유치3. 화교4. 3 F5. 결론1. 중국은 지금1. 붕괴되는 기러기형2. 경제 발전의 요인들 및 그 증거■ 붕괴되는 기러기형1. 중국은 지금임금자원경제개방중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의 요인기본적인 중국 경제 발전 요인1. 중국은 지금* 검색해봐요 지식 IN중국 성장의 요인* 중국의 외자유치* 화교의 네트워크* 3 F1. 중국은 지금2. 중국의 외자유치1. 지방 도시 구성2. 도시경제3. 외자 유치의 영향4. 중국 외자 유치의 특징중국은 홍콩 마카오 대만을 제외하고 31개의 성급 도시 332개의 지방정부 (이 중 275개가 지방도시) 2,873개의 현(縣) 정부가 있습니다.1. 지방 도시 구성출처 : 원스렌, 「중국 경제미래」, 안유옥 역, (서울: 한국경제신문, 2004), p. 40.미국 = 50개주 (50개주의 경제상황을 다 더하면 미국경제)중국 = 275개 지방도시5배 많은 인구4개 직할시 : 베이징, 상하이, 충칭, 텐진중국경제2. 도시경제외자유치는 주된 약품의 효과를 더 크게 해주는 보조약에 불과침체 경제 요인침체 경제 요인외자유치3. 외자 유치의 영향4. 중국 외자 유치의 특징발가락 친척 이정재아무기술 없는 발가락신발을 꿰맬 줄 아는 맨발이발을 할 줄 아는 김춘삼10000 원5000 원5000 원돈은 움직여야 부를 창조할 수 있다.프로젝트 외자유치기초시설 건설 강화서비스업 발전질서있는 노동력 방출외자 유치4. 중국 외자 유치의 특징3. 화교 – 화교가 중국경제 성장에 기여를 했는가?1. 화교의 정의2. 화교의 역사4. 화교의 영향력5. 중국에 미치는 영향3. 화교의 실태1. 화교의 정의중국 본토 이외의 곳에 정주(定住)하고 있는 중국계 사람.중국 or 대만의 양(兩) 당국이 인정한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거주 국가의 국적을 취득한 사람화 교화 인출처 : 왕샤오핑 · 박정동,「화인형 기업경영」(서울: 삼성경제연구소, 2004), p. 4.2. 화교의 역사1시기 : 한무제 서역원정(실크로드)2시기 : 명왕조 (바다의 왕자)3시기 : 청말기 (대량유출기)4시기 : 1949년 이후 (중화인민 공화국 탄생)3. 화교의 실태영국 프랑스와 맞먹는 인구 6000만출처 : http://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 청차오저,「중국경제성장의 비밀」최윤정·김준봉 역(서울: 지상사, 2005), p. 319.단위 100만 명3. 화교의 실태아시아미주유럽대양주아프리카77.1 %17.9 %2.6 %2 %0.4 %세계 화교 분포출처 : 무역연구소 동향분석팀,「화교기업의 중국사업 전략과 시사점」, (무역협회 , 2005), p. 1. http://www.kita.net4. 화교의 영향력총 인구의 3% 국부의 80%최상위 재벌 10개 중 6개가 화교총 인구의 30% 국부의 80%크게 다를 바 없다 !!.. ..동남아의 역내 1000대 기업들의 최소 60%가 화교 자본일 것…동남아 경제 70 %야후의 창업자 제리양(화교) 모건 스탠리의 조너던 주 JP 모건 체이스의 찰스 리등4. 화교의 영향력육체노동IT 금융미용 요식업IT 금융 벤처연 매출 10억 US$ 이상5. 중국에 미치는 영향중화경제권이란? 넓은 의미 : 중국 대륙과 홍콩, 대만,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 실제로 중국의 경제력이 미치는 범위. 좁은 의미 : 홍콩과 마카오, 광동성과 대만 등과 같이 지역적으로 인접한 곳들을 묶어 형성된 경제 협력체.5. 중국에 미치는 영향출처 : 왕샤오핑 · 박정동,「화인형 기업경영」, p.194. 에서 재인용하여 약간 수정.해외 화교중국 본토홍콩 마카오대만문화 · 뿌리 경제관계 긴밀화 정치적 중립확고한 경제 상호 의존 관계의 유지FDI화교의 자본5. 중국에 미치는 영향중국에 투자된 외국인 투자기업의 70%현재 중국이 매년 유치하는 FDI의 50% 이상출처 : 박한진, “華僑, 그리고 華商네트워크, 「World Village」, no.3 (2003. 5) pp.200-205화교의 보유자본 유동자본 2조US$ 주식자본 1조5천억US$ 총 3조5천억 US$ 2006년 중국 총 GDP인 2조 6천6백억 US$를 큰 폭으로 뛰어 넘는 수치 화교의 중국 복귀5. 중국에 미치는 영향수치자료 출처 : 외교통상부, 경제통상통계, 2007년 12월 3일자 동영상 출처 : MBN TV News, 2004년 6월 2일자화교 출신인 야후 (yahoo) 창시자* 제리 양* 유명한 화교들전 태국총리 , 현재 EPL 맨체스터 시티 구단주* 탁신사진 출처 : http://www.naver.com* 인천 차이나 타운 ** 한국에서의 화교 지역4. 3 F1. Fund2. Firm3. Flesh bloodFirmFlesh bloodFactory of the worldFund중국번영의 키워드 - 3F1. 자본 (Fund)어디로 흐르는가?유리하고 전망좋은 투자기회 엿보며 전세계를 누빔일본의 막대한 개인금융자산 (1500조엔돌파)캘리포니아 공무원 퇴직연금CalPERS (자산규모2200억달러)각국정부의 자본 유치 노력자율적 투자환경 조성 각종 세제혜택 경제특구지정1. 자본 (Fund)중국의 외자유치1직접투자에 비해 차관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 1992년부터 직접투자 의 비중이 늘어남2-1980 노동집약적 단순 임가공 업종 외국인 투자 위주 -1990 자본집약적 투자 유도 정책, 업종 개방 확대차관도입 위주에서 직접투자유치 위주로임가공생산 기지 유치 위주에서 첨단기술업종 위주로1. 자본 (Fund)시기별 직접투자 정책 환경 변화구조 전화기 - WTO 가입1978~ 19831984~ 19891992~ 2000촉진기 - 직접투자 유치확산기 - 전방위 개혁도입기 - 홍콩중심의 제한적 유입2001~1978~ 19831984~ 19891992~ 20002001~1. 자본 (Fund)중국 외자도입효과중국의 자본증가고용의 창출부족한 자금의 획득합리적경영방식 획득부족한 기술력의 획득1. 자본 (Fund)2. 기업 (Firm)기업의 고용창출은 일국의 소득으로 귀결기업의 세계진출 WTO체제하 어디든지 가능기업은 일국의 생산을 담당기업의 경쟁력은 국가의 경쟁력을 의미중국 국유기업의 폐단부정부패의 온상 생산성의 저하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력 상실 시장경제에 적응하는 기업모델 필요2. 기업 (Firm)국유기업 개혁의 전개'사회주의시장경제'를 새 목표모형으로 채택기본 방향 설정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이름으로, 공유중심의 소유제와 시장경제를 결합하는 이중적인 경제체제 지향국유기업을 민영회사로 전환, 국유부문 구조조정 실시국가 역량을 중대형 국유기업의 부실 해결 에 집중2. 기업 (Firm)중국기업의 글로벌화중국기업들의 해외 직접투자가 빠르게 증가 자본과 외환이 풍족해지면서 해외진출 여력이 발생 일부 선도적 기업가들이 해외진출을 주도 중국 국내시장의 포화상태가 해외진출 동력으로 작용2. 기업 (Firm)3806509001200* 녹색은 거래 건수거래규모(억 달러)■ 중국 기업의 M A 추이출처: 한우덕,「미래에셋 글로벌 총서」, (서울: 김 정, 2007), p. 82.2. 기업 (Firm)■ 세계 R D 투자에서 차지하는 국가별 비율* 2007년 예상치출처: 한우덕,「미래에셋 글로벌 총서- OECD(경제개발 협력기구), 세계은행」, (서울: 김 정, 2007), P.47.2. 기업 (Firm)3. 사람 (Flesh blood)노동1인당 어느 정도의 자본재를 이용해 어느 정도 생산하는가?생산성= 인적자원 + 기술자원 + 자연자원 + 물적자본인구는 그 나라의 생산성에 큰 영향중국의 인구출처 - http://www.cia.gov/library/publications/the-world-factbook/geos/ch.html#People3. 사람 (Flesh blood)3. 사람 (Flesh blood)인구의 Irony중국의 폭발적 인구증가는 식량,자원문제와 연결되어 적극적 산아정책을 필요 반대로 이러한 폭발적 인구증가는 노동자원의 폭발적 증가를 의미 노동자원의 효율적 이용은 자본량의 증가와 더불어 가능하게 됨중국의 인재육성개혁개방과 함께 해외유학의 허용 연어프로젝트 해외유학생, 핵심기술 보유자, 과학기술자 국내복귀 유도 - 창업지원, 연구보조금지원 등 각종혜택제공3. 사람 (Flesh blood)거대인구 = 거대소비시장3. 사람 (Flesh blood)■ 중국의 소비시장 규모 추이출처 : 한우덕,「미래에셋 글로벌 총서 - 국가통계연감」, (서울: 김 정, 2007), p. 72.5. 결론외자화교3 F중국의 경제 발전 에서는 빠질 수 없다 !!!!중국 경제 스펀지 !!!중국의 외자유치화교의 자본3 F중국의 경제 발전참고 문헌 :http://www.cia.gov http://www.kita.net http://www.naver.com왕샤오핑 · 박정동.「화인형 기업경영」. (서울: 삼성경제연구소, 2004) 원스렌.「중국 경제미래」. 안유옥 역. (서울: 한국경제신문, 2004) 청차오저.「중국경제성장의 비밀」최윤정 ·김준봉 역. (서울: 지상사, 2005) 한우덕.「미래에셋 글로벌 총서」. (서울: 김 정, 2007) 무역연구소 동향분석팀.「화교기업의 중국사업 전략과 시사점」 박한진. “華僑, 그리고 華商네트워크 「World Village」. no.3 (2003. 5) 외교통상부, 경제통상통계 2007년 12월 3일자 MBN TV News 2004년 6월 2일자감사 합니다!! 한 한기 동안 수고 하셨습니다 !!{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