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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인의 고통 평가A좋아요
    1994년 퓰리처상 수상자 케빈 카터를 아는가?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라는 작품으로 그는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수상 후 작가는 수많은 비난을 받게 된다. 사진을 먼저 찍고 독수리를 쫒아냈다고 하는 것이 주된 비난의 요지였다. 그리고 결국 3개월 뒤 1994년 7월 28일에 친구와 가족 앞으로 쓴 편지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소녀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비난이 과연 진실이었을까? 그 소녀의 고통만 알았다고 했을 뿐 작가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때, 고 신효순, 심미선 학생이 미군 장갑차에 깔려 사망했다. 월드컵에 쏠려있는 대중의 관심을 어떻게 하면 돌리고, 촛불집회에 동참하게 할까? 미군의 폭력을 고발하는 길거리 사진전시회를 열었다. 전시된 사진 속에는 잔혹하게 살해된 고 윤금이씨 사진이 포함돼 있었다. 국부에 우산이 꽂힌 채 죽은 그녀의 모습은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두 학생들의 죽은 현장 사진도 구토를 일으킬 정도로 끔찍했다. “자, 보십시오. 이것이 미군이 저지른 만행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기에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정도로, 몇몇 사진들은 극도로 자극적이었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평화운동을 고민할까, 아니면 복수를? 그도 아니면 너무나 참혹하여 고개를 돌려 버릴까?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며 한도의 한숨을 쉴까?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충격요법을 사용한다. 충격적인 사진이나 자극적인 문구를 쓰는데 별 주저함이 없다. 문제의식을 느낀다 해도 지금 당장 대중의 즉각적인 반응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이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정말 그럴까. 잔혹한 이미지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을 할까,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보면서 “가슴 아프다”고 느낀다면, 그 연민은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당시 행동연대 활동가들은 잔혹한 사진을 전시하는 것은 죽은 자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일반 시민들에게 잔혹한 이미지들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 그 자체가 바로 폭력이라며 문제제기를 했다. 어떤 이미지들을 통해서 타인이 겪고 있는 고통에 상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특권을 부당하게 항유하는 사람들 사이에 일련의 연결고리가 있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하루도 빠짐없이 전쟁, 기아 등으로 죽어가는 잔혹한 이미지들을 접한다. 이런 이미지들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떤 자각을 던져주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도 전쟁은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이다. 타인의 고통을 성찰할 기회가 수도 없이 많은 현대 사회에서, 왜 도리어 사람들은 무관심하거나 무감각해지는 걸까?한편으로는 잔혹한 이미지들에 익숙해지는 것이고,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 불편하여 고개를 돌려버리는 거다. 아니, 좀 더 솔직해보자. 끔찍한 이미지 속의 사람들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현실에 안도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게다가 이러한 이미지들은 무력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 고통이 엄청나게 광범위하기에 내가 할 수 있는 게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개입한다 해도 얼마나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라는 무력감 말이다. 게다가 타인의 고통이 나에게 얼마만큼의 의미를 지니는가. 아니, 타인의 고통이 과연 무슨 의미인가. 내가 나의 무게로 숨이 막힐 때 타인의 고통이 나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아니, 타인의 고통이 내게 들리기는 하는가. 타인의 고통은 어떻게 감각되는가.그렇다면, 나는 상상할 것이다. 그 고통의 성질을.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 고통은 좋은 것일까. 좋다면 어디에 좋은 것일까. 그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이 그 혹은 타인에게 그것을 견디어야할 이유가 될까. 그러한 이유가 된다하더라도 나에게 그것을 견디라고 말할 권리가 있을까. 그 혹은 타인은 그것을 견딜 수 있을까. 위태위태 견디려다가 그 좋은 것을 만나지도 못하고 고통 속에 죽어버리지는 않을까. 고통은 결국 그런 것일까. 죽어버리는 것일까. 그래, 어떤 사람은 고통으로 죽어버렸던 것 같다. 그러나 모두는 아냐. 그렇다면 그 혹은 타인은 '어떤 사람'에 속할까, 아니면 그 밖의 모든 사람에 속하는 걸까. 그 어느 쪽이든 내가 그것을 판단할 수 있을까. 나의 판단이 옳을까. 나의 판단이 옳더라도 그것을 얼마만큼 확신할 수 있을까. 타인의 고통을 판단해도 좋은 걸까. 나는 그 고통을 바로 알고 있을까. 그 고통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고통은 끝내 상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나는 회상할 것이다. 나의 고통에 대하여. 내가 고통스러워한 일이 있던가. 그 고통은 어떤 이유에서였는가. 그 고통이 그 혹은 타인의 것과 비슷한 성질의 것이었나. 나는 그 고통을 어떻게 했었나. 그 고통을 견디어 냈을까.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그 고통을 어떻게 견디어 살아있는 것일까. 나는 살아있는 것일까. 내가 살아있다면 나는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나는 죽어본 기억이 없는데 죽음의 상태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죽어본 기억이 없으니 살아있다고 확신해도 좋은 것일까. 죽음의 상태가 삶의 상태와 확연히 다를 것이라고 확신해도 좋은 것일까. 어쩌면 난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린게 아닐까. 그 혹은 타인도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리는게 아닐까. 고통은 결국 그런 것일까. 죽어버리는 것일까. 고통을 견딘다는 건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죽어버린 사람들이 자신의 죽음을 망각하고 삶에 머무르며 뱉어낸 구차한 변명이 아닐까.그러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흐린 시야에 비춰지는 어디에서든 고통을 만날 수가 있다. 곳곳에 고통이 있다. 단단한 아스팔트 위, 텅 빈 거울 속, 얼룩진 컴퓨터 자판과 어제 스친 낯모를 아저씨의 어깨에도. 거대한 구토 속에 있다는 사르트르의 말처럼.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다. 그 모든 고통이 나와 닿은 후 형상화된다. 고통은 세상에만 있는 것도 아니요, 내 안에서 자생하는 것도 아니다. 고통은 거기에도 있고 여기에도 있다. 내게 닿아지는 세상이 고통이듯 세상에게도 내가 고통이다. 고통이 죽어버리는 것이라면 세상이 나의 고통으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유아론적이지만, 그러나 지각되는 세계란 것이 그렇지 않은가. 타인의 고통을 상상하기 위해서 나의 고통을 회상해야 하듯, 세상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나의 경험에 달려있지 않은가. 이 또한 너무 편협한 생각일까. 그래, 나는 이처럼 하나의 판단을 내리는 것도 몹시 두려워졌다. 생각은 자꾸만 의심으로 흘러가고, 의심은 자꾸만 깊어지고, 깊어질수록 아파온다. 고통이 감각된다.나는 그 혹은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려는 시도로부터 나의 고통 속으로 다시 들어왔다. 회귀의 과정에서 나는 타인의 고통에 대해 완전히 길을 잃었다. 시작한 곳을 되짚어볼 수가 없다. 이미 그러한 시도조차 사소하게 느껴진다. 나는 이미 타인의 고통을 감당할 수가 없다. 아니 타인의 고통까지 감내할 용의가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혹 나의 고통이 사라질 즈음 그 혹은 타인의 고통 또한 사라지지 않을까. 다시 말해서, 그 혹은 타인의 고통이 사라질 즈음 나의 고통 또한 지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의 고통은 모두 하나가 아닐까. 우리는 결국 모두 하나의 이야기를 아파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혹 그렇다하더라도 나에게 감각되는 고통은 오로지 나의 고통뿐인데, 그것이 사실 그의 것이었든, 타인의 것이었든 그것이 나에게 얼마큼의 의미를 지니겠는가. 아니, 그것이 나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것이기는 할까.
    사회과학| 2008.01.02| 4페이지| 1,000원| 조회(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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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사대립은 사회발전을 촉진시킨다
    ??Ⅹ?Ⅸ. 문제 제기무엇이 노동자를 노동자로 만드는가? 개별 노동자들은 어떻게 계급에 근거한 집합적 행위자, 즉 노동계급으로 형성되는가? 무엇이 자본가와 노동자로 하여금 서로 대립하게 만드는가?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진행되는 산업화?도시화의 진전 이 노동자들이 한 지역으로 집중하도록 만들고, 나아가 교통수단과 통신수단의 발달에 의해 상호작용이 증가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결합과 연대, 조직화가 촉진될 것이라는 마르크스의 전망은 마르크스중의 계급론 내에서 단순한 전망을 넘어 하나의 정설)로 여겨져 왔다. 때문에 노동자들의 결합과 연대, 조직화 과정을 필연적이고 자동적인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마르크스주의 계급론 내에 암묵적으로 내재되어 왔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을 본격적인 논의 주제로 다루기까지에는 적지 않는 시간이 소요되었다.이 보고서는 바로 그러한 계급형성과 대립이 과연 사회발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가에 관한 것이다. 그 중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대립, 즉 노사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노사관계란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관계를 말한다. 노사 관계는 노동력의 효율성과 적합성에 대한 양측의 판단에 근거를 두고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사용자와 근로자의 관계에서 서로 반대되고 이율배반적인 내용이 있는데 이를 노사관계의 이중성)이라고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노사관계는 협조적 관계와 대립적 관계를 가진다. 생산성을 높이고 부가가치를 크게 하기 위해서 노와 사가 협력하여 나아간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인 배분에서 노사 간의 이해가 같지 않다. 앞 단계에서의 부가가치는 기업의 이윤과 근로자의 인건비등으로 분류되는데 이 단계에서 당사자에서 배분되는 몫은 역관계에 있으므로 노사관계는 대립되어 투쟁내지 갈등 관계로 나타난다. 둘째로 노사관계는 종속관계와 대등관계를 동시에 가진다. 근로자는 사용자에게 고용된 종업원으로서 명령이나 지휘에 복종해야하는 종속관계이나 노동력을 공급하는 입장에서 근로자는 노동력을 공급하는 입장에서 근로자는 노동조합을 자유로이 결성하여 근로조건이나 인건비들의 결정을 사용자 측과 대등한 입장에서 교섭하고 협상하므로 대등관계에 있다. 이 같은 노사관계의 이중성이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대립에 대한 판단을 어렵게 하고 있다.Ⅰ. 노사 협력?그렇다면 노동자와 자본가들의 관계 중 가장 이상적인 것은 무엇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파업 등 극단적인 대립 없이 노사가 원활히 협조하여 회사를 운영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나라에서는 유한양행, 그리고 일본의 도요타 기업을 들 수 있다. 도요타 자동차는 50년 대규모 노사분규사태를 겪은 후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노사분규가 없었다고 하며, 심지어 유한양행은 창사 이래 단 한 번도 노사분규가 없었다고 한다. 이와 같은 노사대립주의의 반대선상에 서있는 참여협력주의의 이론은 이론적 관점에서만 보면 노사 모두에게 좋은 방식이다.그러나 실제로 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노사 관계는 불안정하며 갈등 구조라고 하는 것이 정설이며, 노사 모두에 의해 수용이 거부되고 있다. 이는 노동자와 자본가 서로 요구하는 수준과 내용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근, 국내에서 벌어지는 노사 간 상호신뢰를 쌓기 위한 각가지 노력들마저도 열린 경영과 열린 노동운동이 착근될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다. 석유값 상승과 내수 위기, 비정규직 증가 등 IMF 위기 이후 계속된 불황 경기는 파이를 키우자 주장하는 자본가측의 손을 들어줘, 노동자측의 지나친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노동자는 근로자들이, 회사가 노동자를 착취해 기업주의 이익만 챙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본가는 그 반대로 생각하기가 쉽다. 이는 판매하는 권한을 자본가가 가지고 있고 그걸 분배하는 권한도 자본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던로프의 노사관계론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자본은 노동에 비해 유리하다. 자본은 노동수요 조절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자본에 유리한 노동조건 형성하여 권한을 자본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노사가 대립하지 않으면, 결국 노사 관계는 종속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가난하게 될 수밖에 없고, 자연스레 구매력이 떨어지게 된다.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가 가난하고 병약하게 된다면 결국에는 사회발전이 저해될 것이다.Ⅱ. 무엇이 사람들로 하여금 갈등상태에 빠뜨리는가?굳이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대립이라 한정 짓지 않더라도 계급 간 대립에 관해서 많은 학자들의 논의가 있었다. 갈등 이론적 시각이 새로운 사회학으로 인식된 것은 기능주의 사회학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60년대 초의 일이다.) 기능주의가 등한시했던 갈등과 변동을 재발견하려고 노력했던 시도가 갈등이론을 대두시켰던 배경이며, 두 독일 학자 마르크스와 지멜의 사상들은 현대 갈등주의 이론에 많은 영향을 준다.0. 마르크스 & 지멜독일의 두 사회학자 마르크스와 지멜은 모두 변증법적 개념을 도입했다. 마르크스는 사회관계에 내재하는 모습을 지적하는 말로 ‘사회갈등’을 사용하며, 주어진 사회관계는 그 대립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헤겔 등의 독일의 관념론자와는 달리, 사회적 실체가 그 자체의 변화를 발생시킬 ‘모순들’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봉건주의는 결국 자본주의 발생의 ‘원인이 될 모순’을 가졌으며, 또 자본주의는 그것의 붕괴 및 공산주의 출현을 결과할 모순들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변동의 역동성은 사회관계에 내제화하는 모순들에서 나온다. 이 모순은 갈등을 불가피하게 되며, 따라서 사회분석의 목적은 이 모순들의 작용을 이해하고 촉진하는데 있다.반면 지멜은 변증법 개념은 질서와 무질서의 두 가지 경향의 존재를 인정한다. 인간관계는 질서와 갈등, 안정과 변동에의 잠재성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마르크스와는 달리 이것을 ‘역사의 추진력’이라 보지 않는다. 지멜의 변증법 개념은 갈등과정의 편재성과 불가피성을 강조하기 위한 배경적 가정으로 나타난다. 즉, 마르크스와 지멜 모두 갈등을 사회체계에 널리 퍼져있는 불가피한 특성으로 보았다. 그러나 사회의 본질에 대한 가정, 지적목표는 매우 달랐다. 다음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Marx - 갈등의 분열성Simmel - 갈등의 통합적 결과 강조조건폭력적 갈등이 가속화되는 조건갈등의 정도가 변화할 수 있는 조건원인갈등의 사회구조적 원인에 관심(자원의 분배와 불공정한 분배에 내재하는 이익의 갈등)갈등의 발생 후, 갈등의 형태와 결과에 관심갈등의강렬성한 사회 계급이 분명한 목표를 인식하면 폭력적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폭력적 갈등은 사회체계와 그 변동의 불가피하고도 냉혹한 특성이라 전제.갈등집단들이 각각 추구하는 목표들이 명확할수록 갈등은 단순히 목표를 달성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보기 쉬우며, 관련 집단은 갈등의 큰 희생을 피하기 위해 타협, 협상은 다른 대안을 강구한다.→ 갈등은 사회전체에서 강렬성을 가짐, 결과는 다양한 하나의 과정.1. 다렌도르프의 변증법적 갈등이론다렌도르프 역시 사회변동의 원천, 요인을 사회구조의 본질적인 성격 자체에서 발견해 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다르게 급진적 혁명론을 전개하지 않았으며, 사회구조의 성격을 경제적인 생산관계에 대해 특징짓지도 않았다는 것이다.다렌도르프는 현대 산업사회에서 나타나는 갈등의 원천은 계급적 대립이 아닌, 권위 또는 지위를 차지하려는 상반된 이해관심이다. 권위관계는 명령하는 사람과 이행하는 사람으로 나뉘는데, 전자는 지배집단이 되고 후자는 종속집단이 된다. 권위관계가 조성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권위가 배분되지 않기 때문이다. 즉 권위 배분의 차이는 상반되는 이해득실을 발생시켜 이익집단을 등장시킨다. 일단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면, 그것이 같은 폭력성의 정도나 강도에 상관없이 사회구조의 변화가 초래된다. 그래서 권위관계에서 자리의 상하이동, 지배집단이 피지배층 요구를 수렴해서 규범을 고치거나, 아니면 서로 자리가 바뀌기도 한다.
    사회과학| 2007.12.15| 5페이지| 1,000원| 조회(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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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람직한 대학문화
    우리는 20년 동안 오로지 대학 입학만을 목표로 삼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고3에 이르는 12년 동안 우리가 배워왔던 많은 과목과 내용들은 모두 입시를 위한 것이지,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고자 자율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단 하루의 수학능력시험으로 지난 시간 동안의 공부를 평가받는 것은 여간 스트레스가 아닐 것이다.이런 입시 스트레스와 타율 속에서 생활해 왔던 고3이 스무 살이 되어 대학에 들어온다. 20년 레이스 기간 동안 선망의 대상이었던 대학은 그들에게 자유를 주며 그에 따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모든 대학이 그렇듯 3월이면 개강과 각종 환영회로 술자리가 마련된다. 오리엔테이션과 MT는 빠질 수 없는 행사이다. 시간이 깊어갈수록 불야성을 이루는 대학가엔 유흥과 향락 문화가 대학 문화인 양 돼가고 있다. 집과 학교에 있는 시간보다 술집에 있는 시간이 훨씬 많다. 이것이 과연 대학이 그리고 대학문화가 추구하고 지향하던 것이었을까?대학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배우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예견하는 곳으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학문의 장이었다. 배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토론을 하고 새로운 지식이 집합하는 곳이 바로 '대학'의 시초였다.70~80년대 최루탄 연기 속에서도 맨몸으로 권력에 맞서 싸웠던 이들이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에겐 민주주의가 최대의 화두였기에 숱한 탄압에도 새로운 시대를 갈망해 왔다. 4·19혁명,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6월 항쟁에까지 학생과 시민이 중심이 된 민주혁명은 이제는 교과서 끄트머리에 몇 십 줄짜리 암기용 역사로나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다. 당시 대학생들이 시위의 횃불을 든 채 목이 터져라 요구했던 민주주의가 실현된 지금 대학생들은 그들과 같은 젊은 사고와 열정을 가지고 있는가?오늘날 대학에는 젊음을 가장한 헛된 대학문화만이 있을 뿐이다. 술이 문화로 둔갑해 버렸고, 소비를 통해 젊음이 낭비되고 있다. 오늘날의 대학생들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학점을 쌓고 있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긁고 짜깁기한 리포트와 나날이 발전해 가는 커닝 기술은 순수 대학인의 자질과 대학문화의 본질을 사라지게 했다.중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를 당연히 가는 것처럼 보편화된 대학이 이제는 '출세 등용문'이나 '취업 사관학교'가 아니길 바라며, 졸업 후 모래를 담을지 금을 담을지 곰곰이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보자. 힘든 입시경쟁에서 허덕이며 들어와 학문의 상아탑을 세우고자한 다짐을 유흥과 향락의 장에 빠져 허송세월하기엔 그대의 청춘이 아깝지 않은가?
    사회과학| 2007.12.15| 1페이지| 1,000원| 조회(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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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평] 당신들의 대한민국
    한국인보다 한국을 잘 아는, 그래서 한국인이 되어버린 박노자, 그는 러시아의, 레닌그라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다. 그는 구소련 시절, 고교 시절 ‘춘향전’을 접하고 한국에 매료되어 결국 한국사를 전공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1999년 한국인으로 귀화해 지금은 노르웨이에 있는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있다.한 사람이 태어나 일련의 사회화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 사회에 대한 비판을 하기가 어렵다. 알게 모르게 사회 지배층의 이데올로기를 흡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들의 대한민국’의 저자 박노자는 대한민국의 사회화 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무너져가는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서 태어나 지금은 한국인으로 귀화한 그의 독특한 사회화 과정은 대한민국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만들었다. 그의 저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을 읽다 보면,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우리들이 당연히 여기고 넘기는 것에 대한 의문이 제기 된다. 그의 냉철한 시각, 어떻게 보면 냉혹하다고 볼 수 있는 그의 필력은 서로 잡아먹기를 탐내는 사회, 전근대와 국가주의를 넘어서라는 책 부제에서 절실히 나타난다. 책장을 넘기면 양반의 나라로 자처하고 있는 대한한국사회가 지니고 있는 폭력성과 기만성을 남김없이 드러낸다. 그는 개인의 자유가 집단의 필요에 묻혀버리고 마는 것을 병역 거부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시선 속에서, 자기 종교가 아니면 다 배척해버리는 자종교 중심주의에서 철저한 국가주의와 집단주의를 읽어낸다. 격동적인 근현대의 민주 투사로 평등한 이상사회를 꿈꾸던 운동권 학생의 머릿속까지 점령해버린 군대적 계급주의와 사회변화를 이끌어야 할 상아탑을 지배하고 있는 권위주의까지 우리가 망각하고 외면해버린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우리는 민주적이고 공정한 국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박노자는 한국사회에 대해 상반되는 견해를 보인다. 지금을 벗어났다고 생각했던 군사주의 유산이 아직도 우리사회를 뒤덮고 있고 지배층에 의해 조작된 민족주의라는 마약이 우리의 두뇌를 지배하고 있다. 이미 실질적인 계급사회가 형성되고 있으며 노동자들은 신자유주의의 체제 하에서 비정규직제도, 산업연수생제도, 시간강사제도 등으로 미화되고 제도화된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그의 이러한 진단은 결국에는 계급론으로 까지 발전하는데 이는 곧 사회주의와 맞닿아 있는 지점까지 발전한다. 우리가 그동안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배워왔던 '상식'이라는 이름으로 통했던 지식과 문화들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지극히 비정상적이며 특정 계층, 특히 지배계층의 이익을 위해 윤색된 내용이라는 것과 그에 대한 구체적인 여러 사안들에 대한 그의 인식과 비판은 날카롭다. 모순된 구조에 하나의 톱니바퀴가 돼버린 대한민국의 우리들은 현 구조에 대한 어떤 의문도 품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그는 우리에게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외부에서의 지식과 두뇌의 유입, 그리고 읽기 쉬운 칼럼형식들의 글을 통해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던 우리 한국인들의 시각과 사상적 스펙트럼을 직접적으로 크게 넓혀주었다. 그는 한 개인의 실존적 존엄성을 중요하게 여기며 극단적이며 집단적인 것이 가져오는 폭력성에 대한 경계를 강조한다. 대한민국사회의 집단적인 모습을 크게 1부 한국사회의 초상, 2부 대학, 한국사회의 축소판, 3부 민족주의인가 국가주의인가, 4부 인종주의와 대한민국으로 나누었다.1부의 한국사회의 초상을 어떻게 보면, 그가 말하고자 하는 말이 다 담겨있다. 후반부의 내용은 1부에서 다루는 내용들에서 파생된다. 300여 쪽 되는 책의 페이지에서 100장 이상을 투자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것은 그가 이 파트에서 말하는 바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부제를 가지고 있고, 박정희?종교?사대주의?영어공용화?역사 등 대한민국사회가 금기시하며 언급하길 꺼려하는 주제로 거침없이 써 내려가고 있다. 그 중 그가 가장 중요시하게 여긴 것은 박정희정권이다. 독재자에서 어느 순간에 민족주의자로 변모해버린 박정희,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인물도 없을 것이다. 박정희정권 시절을 보내지 않은 시대에게 박정희정권은 그저 구시대의 유물이며, 민주주의를 탄압한 사회악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박정희정권 시절 놀라운 경제 성장을 몸소 체험한 세대들에겐, 현재 부진하고 있는 대한민국사회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하고, 박정희의 리더십을 그리워한다. 즉, 민주주의를 철저히 탄압했지만, 북한에 뒤지던 우리나라의 경쟁력을 한강의 기적이라 불릴 만큼 철저히 강화시켰다. 바로 상반되는 두 가지 업적, 이 점이 박정희정권에 대한 상반되는 견해를 보이게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박노자는 박정희정권의 성과를 독재정권의 약한 정당성을 무마하기 위한 수단이라 주장한다. 국가 권력을 위해 인권을 희생시킨 박정희정권은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다. 이미 정당성은 확보할 수 없기에, 가장 명분을 찾기 위한 수단, 경제와 국가주의를 채택한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정부가 세운, 어떻게 보면 대한민국사회에서 가장 영웅시되는 성웅 이순신상에 대해 그는 다른 시각을 보이고 있다. 세종로에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순신상을 보며, 임진왜란에서 조국을 지킨 이순신의 충절을 느낀다. 그러나 이 책에서 보이는 이순신상의 모습을 보면 그 동상의 형상이나 상징성에서 일본 야스쿠니 신사 입구에 현대 군대체계의 창립자인 오무라 마스지로의 동상과 다를 것이 없다. 박노자는 이순신상을 통해 박정희 정권이 세계열강으로 편입, 더 구체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로서 나란히 서기를 원했던 것으로 본다. 이순신 동상은 그야말로 권력의 중심지로 과거, 현재, 외세, 언론의 권력이 총망라한 세종로에 세워졌다는 사실이 박정희정권은 민족주의자로 자처하였으나 철저하게 서구, 특히 미국 중심의 세계에 어떻게 해서든지 편입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2부 ‘대학, 한국사회의 축소판’에서는 지은이 자신이 한국에서 겪었던 대학사회를 아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한국과 인연을 교환학생으로 시작하였고, 한국에서 생활을 대부분 교수로 보낸 그에게, 대학은 하나의 삶의 터전이었다. 한국 대학생활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는 그는, 한국대학사회의 봉건구조를 파헤치고 있다. 대학은 고등교육기관이며, 지성인들이 보다 나은 학식을 쌓기 위해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 실상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대학 소유자와 대학 교수 사이,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는 심하다 싶을 정도로 중세 유럽의 주종관계에 흡사하여 절대적인 복종 외에는 목숨 걸고 바른 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히 사립대학의 재단이 국회를 향해서 돈과 로비를 가지고 자신들의 비리를 감추고자 하는 모습들은 정치권과 언론재벌, 교육재벌 사이의 거대한 연결고리를 드러낸다. 각종 편입학 비리로 뉴스가 떠들썩하고 있는 것은, 이 사회의 암울한 초상인 것이다.3부 ‘민족주의인가 국가주의인가’에서는 대한민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민족중심주의를 파헤치고 있다. 실제 ‘민족’이라는 말은 근대 이후에 일본을 거쳐 조선어와 중국어로 편입됐다. 오늘날 역사적 사실을 해석하는 관점에 이 같은 민족주의를 자주 사용하게 되는데, 박노자는 ‘민족’과 ‘우리’라는 것은 상당히 편리한 도덕적 가치판단의 기준이라고 제시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이 같은 민족주의라는 이름도 실제적으로는 ‘국가주의’에 더 가깝다고 한다. 즉 민족이라고 한다면 앞에서 말한 중국의 조선족 동포, 러시아의 고려인, 재일동포, 더 나아가서는 북한사람 등 모든 한민족을 아울러야 하지만, 실제 정책결정이나 시민들의 행태는 결코 이들을 한민족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서구인들에 대한 친근감으로 더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놓고 볼 때 역대 정권이나 재벌들이 자신들만의 국가에 이로운 사상기제를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민족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 개인의 권리와는 상관없이 국가 이데올로기에 유리하다면, 이를 받아들이는데 ‘민족’이라는 단어만큼 설득력 있는 명분은 없기에 사용한 것이다. 즉 자신들이 잘 살아가는데 이렇게 ‘민족’이나 ‘우리’만큼 민중의 생각을 단순화시킬 수 있는 것이 사실상 없기에, 대한민국사회의 구성원들에게서 ‘민중’이나 ‘개인’을 괴리시키는 주제인 것이다.4부 ‘인종주의와 대한민국’에서는 ‘바트자갈’이라는 몽골인을 상당부분 소개하는 데 할애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그는 모스크바 국립 대학교를 나와 몽골의 울란바토르에 있는 한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던 교수였다. 그가 일본의 유학을 하기 위해 한국에서 간단한 경비를 마련하려고 왔었으나 결국은 불법 체류자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한국인들이 대한민국사회의 이방인인 동남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임금체불과 갈취, 폭력과 협박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을 보았고 자신도 또한 그렇게 당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를 통해서 한국사회에 있는 서구 제국주의 열강들이 침략의 이념적 기제로 사용했던 ‘인종주의’가 이렇게 우리 한국에도 뿌리 깊게 내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일제 제국주의에 36년간 시름한 대한민국사회에서 새로운 제국주의가 양태 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후감/창작| 2007.12.15| 3페이지| 1,000원| 조회(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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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무덤에 관하여
    ☞1981년 x월 x일경영암군 시종면 만수리에서 이미 발굴되고 있는 1호분만이 아닌 2호분이 추가로 발견되었으니 어서 와서 발굴하라고 광주박물관 관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광주박물관 소속 박사들이 다 1호분 발굴에 전부다 소환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나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잘 아는 분야지만 출발 전 다시 한 번 살펴보고 가기로 했다. 옹관묘(甕棺墓). 한자대신 한글로 사용하자고 주장하는 한글학자들이 독무덤 혹은 독널무덤)이라고 주장하는 이 무덤양식이다. 크고 작은 항아리 또는 독 두 개를 맞붙여서 관으로 쓰는 무덤양식으로 동아시아에서 주로 발견된다. 중국 화북지방의 신석기시대 이래의 옹관묘제가 요동지방을 거쳐 한국으로 전해졌다는 설이 있긴 하지만, 나는 옹관이라는 것이 자생적으로 발생하기 쉬운 무덤양식이기 때문에 반드시 연결시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독무덤이 청동기시대 이래서부터 사용되었는데, 역사시대에는 하나의 고분형식으로서 조성되었다. 역사시대의 독무덤은 요즘 많은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나와 같은 학자들이 많이 기뻐하고 있다. 하지만 독무덤이 삼국시대를 지나서도 계속 채택되었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생활용기로 오랫동안 쓰였던 옹기로 된 소형 독무덤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어린아이의 주검을 매장하는 데 독무덤이 쓰였다고 추측하고 있다.☞다음날박물관에서 지원해준 차량을 타고 한두 시간 타고 가니 발굴현장에 도착했다. 발굴 소장이 말하길 널무덤인 1호분과는 달리 2호분은 독무덤 같다고 한다. 아직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발굴 해보면 알 것 같다. 특히 만수리 고분은 영산강의 유역의 독무덤인데, 영산강 유역의 독무덤은 다른 지방의 고분들과는 달리 독자성이 뚜렷하고, 고도의 토기 제작기술이 아니면 만들 수 없는 특수한 대형의 전용(專用) 독무덤을 주된 매장시설로 하고 있다. 즉 백제의 지방토착세력 및 마한 토착집단과 관련하여 중요한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더 기대된다.☞1982년 x월 x일발굴이 어느 정도 완료가 되어가는 시점이다. 발굴을 해보니 지름 10m, 높이 1m의 조그만 원형봉토 내에 4기의 독널이 매장되어 있었다. 독널은 1~1.5m 길이의 매우 큰 것이었으며, 형태는 U자형으로 성인용 널로 쓰기 위하여 특별히 제작되었던 거 같고, 나머지 3기는 입을 맞댄 이음독무덤이었다. 중심 독널 내에서는 내 예상대로 특이한 케이스가 발견되었다. 160cm 가량의 인골이 나왔고, 이 밖에 토기 ·철검 ·유리구슬 등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독무덤에서 독무덤에 주검을 넣는 방법은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이번 만수리 2호분과 같이 규모를 매우 크게 만드는 방식이다. 이 방식은 어른을 눕혀서 묻었다고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희귀하며, 대개의 경우는 두 개를 합친 길이가 50~130cm 범위이면서 60cm 정도가 가장 많다. 즉 어른이 아닌 아이를 묻는 소아장일 경우가 가장 많다. 실제로 김해 예안리의 독무덤에서는 어린아이의 유해가 발견되어 소아장임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독무덤은 이차장으로서 세골장일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고 학술계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사회과학| 2007.11.11| 1페이지| 1,000원| 조회(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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