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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히틀러의 선전정책과 영화
    히틀러의 선전정책과 영화(나치정권의 영화산업)-순서-?들어가기 - 독재자와 영화1. 히틀러는 누구인가?2. 히틀러의 선전 정책3. 히틀러의 영화 산업4. 패전과 히틀러 영화 산업의 여파5. 결론?들어가기 - 독재자와 영화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독재자 중에 영화를 좋아한 사람이 많다. 레닌, 스탈린,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그랬고, 페론과 차우셰스쿠, 북한의 김정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영화를 정치에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정책을 폈다. 폭군 네로는 한편의 시를 짓기 위해 로마 시가지를 불태웠고, 희대의 독재자 히틀러는 젊은 시절 미술을 공부한 사람이다.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도 영화에 미쳐 '치네치타 촬영소'를 만들었다. 유명한 영화 「벤허」도 이 촬영소를 빌려서 만든 작품이다.독재자들은 영화를 정권 유지에 활용하기 위해 노력했다. 독일의 독재자인 히틀러도 마찬가지였다. 히틀러는 문학과 영화,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을 선전하기 위해 힘썼고 특히 스스로 영화를 좋아하여 )괴벨스와 함께 독일 영화가 나치 군대의 전위로서 세계를 정복할 임무를 부여받았다고 선언했다.나는 독재자와 영화의 관계 속에 히틀러가 장려한 독일의 영화 산업과 그 성과를 알아보고 나치 시대의 영화산업이 어떤 방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조사해 보았다.1. )히틀러는 누구인가?히틀러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히틀러가 죽고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의 이름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독일의 독재자로 남아있다.히틀러는 오스트리아의 세관원의 아들로 태어나, 13세에 아버지를, 18세에 어머니를 잃었다. 관리가 되기를 바라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실업학교를 다녔으나 성적이 좋지 못했고 태도가 불량하여 결국 퇴학당하고, 16세에 그는 고향집으로 돌아왔다. 2년 후 빈에 있는 조형 미술 아카데미의 회화과에 응시했으나 떨어졌다. 다음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의 연금으로 크게 어렵지 않은 생활을 할 수 있었으나 금전감각에 어두웠던 그는 1913년에 빈을 떠날 때 까지 3년 동안을 부랑자 수용 경제 상태였던 독일은 쉽게 나치와 히틀러의 약속에 빠져들고, 이렇게 히틀러는 인류역사에 있어서 크고 어두운 발자국을 남기게 된다. 히틀러는 독일 국민들에게 12년 동안 절대적 지지를 받게 되는데 이는 히틀러 개인의 능력도 있겠지만 선전의 효과가 컸다. 히틀러는 라디오, 언론,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집권의 당위성을 표현했다.히틀러의 독재는 역사상 그 이전에 나타난 다른 독재자들과 비교해 볼 때 한 가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을 갖고 있었다. 그의 독재는 현대 기술의 발전기에 접어든 현대에 비로소 처음으로 나타난 독재이다. 곧 국가를 지배하는 데 온갖 기술적인 방법을 완전히 이용한 독재 제도였다.2. 히틀러의 선전 정책- 히틀러가 선전의 이론을 마련했다면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은 요셉 괴벨스다.히틀러는 대중을 휘어잡는 데 있어 선전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나치당이 정권을 장악하고 유지하는데 선전은 가장 큰 힘이 되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기술, 카톨릭 교회의 조직과 포교 방법,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이 구사한 선전술, 미국의 광고 기술, 그리고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철저하게 연구했다. 히틀러는 가장 효과적으로 대중을 움직이려면 대중의 생리와 군중의 심리를 올바르게 파악해야 한다고 보았다.히틀러가 보기에는 대중의 지능은 한계가 있었다. 대중은 쉽게 잊고 한꺼번에 많은 것을 소화하지 못하니, 집중적이고 반복적으로 대중을 설득해야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선전의 효과를 보기위해 대중 중에서 가장 아둔한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 내용을 반복적으로 주입시켰다.이처럼 히틀러는 과거의 어느 정치가보다도 투철하게 대중의 심리를 꿰뚫고 있었다. 다만 그것의 대중에 대한 경멸의 눈초리로 본 것이었다.①히틀러의 선전원칙*허위의 원칙 -대중은 일반적으로 작은 거짓말은 의심하지만 엄청난 거짓말은 믿는 버릇이 있다.*악과 불행의 근원의 단순화 -너무 많은 적을 동시에 미워하도록 하면 단순한 대중은 혼란에 빠진다.(이 원칙에 따라 히틀러는 모든각적인 열광이며 확신을 불어넣을 수도 있다.*목적은 대중의 세뇌②히틀러와 선전부위의 선전 원칙의 실천에 옮기기 위해 강력하고 독립된 선전 전담기구의 필요성의 의식하고 1933년 3월 선전부가 신설된다. 그리고 괴벨스가 제국선전부장관에 임명된다. 괴벨스 는 선전의 핵심적인 기능 가운데 하나는 확실한 주제들을 대중들의 눈앞에다 가져다 놓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국민들이 특정한 정보에 주목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를 성취하기 위해서 뛰어난 선전가는 반드시 자신의 청중을 개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한 집단으로서도 파악할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선전은 인간 심리학에 대한 상당한 기술과 이해를 요구한다.③히틀러와 전당대회집단적 유대를 잃은 개인은 물에서 나온 고기와 같이 무력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히틀러는 알고 있었다. 히틀러가 수없이 대 스타디움에서 군중대회를 연 것도 군중을 집단적인 도취 상태로 몰아넣기 위한 것이었다.3. 히틀러의 영화산업나치 이데올로기는 극단적인 민족주의, 즉 독일민족이 세계의 다른 어떤 민족보다 본래 더 우월하다는 믿음에 기반 한다. 그 다음으로 이러한 통념은 독일 민족이 순수한 아리아 인종에 속하고 다른 민족 집단들, 특히 유태인들은 열등하고 위험한 조재들이라는 관점에서부터 유래한다. 또한 나치는 여성들을 선천적으로 남성에게 종속적이고 시민은 정부 지도자들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나치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나치 정권은 영화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히틀러는 영화광이었다. 그는 배우 및 영화제작인들과 친교를 나누었고 종종 저녁식사 후 영화를 상영하기도 했다. 히틀러보다 더 영화에 심취한 사람은 괴벨스였는데 그는 매일 영화를 보고 영화제작인들과 어울렸다. 1934년에 그는 검열권을 갖게 되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상영되는 모든 장편, 단편영화, 뉴스 등을 검토했다. 그는 나치의 이념을 생생하게 표현하는 영화가 나오기를 원했다.그 당시 독일의 영화산업은 수출에 의존하고 있었다. 괴벨스는 국내 영화 제작비는 급속하게 증대되었다. 정부는 영화산업의 지원이냐 아니면 영화산업의 국유화냐 하는 두 가지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직면했다.나치 정권은 영화에 대한 더 커다란 통제를 가능케 하는 국유화를 선택했다. 그리고 서서히 영화사들을 흡수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화들은 정부의 요구에 부합하지 않았고 1939년에 전쟁이 시작된 이후 영화 제작은 위축되었다.나치 시대의 영화들은 대부분 오락적 성격이 강했고 정치적 내용을 전혀 담고 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은 괴벨스가 선전의 메시지가 대중적인 오락물의 틀 속에 숨겨져 있을 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33년에서 1945년 사이에 만들어진 1,097편의 영화들 중 나치를 선전하는 영화는 겨우 1/6 정도이다. 모든 영화들은 괴벨스의 승인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확실하게 나치 이데올로기를 공격할 수도 없었다.①선전적 성격이 강한 영화☞사악한 공산주의자들과 용감하고 젊은 히틀러 지지자들 간의 투쟁을 묘사* SA맨이라는 낙인 (프란츠 사이츠)* 한스 베스트마 (프란츠 벤츨러)* 활달한 히틀러 청년단 (한스 스타인호프)☞레니 리펜슈탈 감독의 나치 선전 영화* 의지의 승리-1934년 누렘베르크에서 열린 나치 전당대회에 즈음하여 만들어진 기록영화이다. 히틀러가 리펜슈탈 감독에게 요청하여 만들어졌으며 엄청난 물량을 지원했다. 리펜슈탈감독의 뛰어난 촬영기법, 편집, 음악의 사용을 통해 나치이데올로기와 그 열기에 관한 화려한 기록영화가 만들어졌다. 이 영화는 전 세계인들에게 독일의 엄청난 군사력을 과시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올림피아-1936년에 베를린에서 있었던 올림픽을 기록한 영화이다. 정부의 대규모 지원으로 만들어졌으며, 독일을 세계 공동체의 협조적인 구성원으로 보여줌으로써 나치의 호전성에 대한 두려움을 가라앉히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졌다.②제 3제국의 적들을 공격하는 영화*칼 페터스, 1941(헤르베르트 셀핀) -반 영국 영화, 영국의 비밀요원들이 아프이트 할란) -반 유태인 영화, 유태인들에 대한 폭력성을 야기시켰다.*영원한 유태인, 1940(프리츠 히플러) -반 유태인 영화, 유태인을 기독교 국가들을 떠돌면서 타락행위를 퍼뜨리는 집 없는 인종으로 묘사하고 있다.④오락적 성격의 영화*캘리포니아의 황제, 1936(루이스 트렌커) -1849년에 황금광 시대를 불러 일으켰던 요한 아우구스트 수터 의 이야기로 감독자신이 주연을 맡고 있다. 영화의 대부분이 미국에서 촬영되었다.*청춘, 1938(바이트 할란) -엄격한 도덕성에 대한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안녕 프란치스카, 1941(헬무트 카우트너) -연애사건을 묘사한 영화이다. 마지막 장면이 나치 당국에 의해 훼손되어 정치적 성격이 없는 영화에서 나치를 옹호하는 성격으로 변한다.4. 패전과 히틀러 영화 산업의 여파라디오나 뉴스의 직접적인 선전보다 영화의 은근한 선전은 더 큰 성과를 거두었다. 괴벨스는 나치가 무너지는 그 순간까지 영화 산업에 나섰다. 대표적으로 가 있다. 괴벨스는 를 통해 나폴레옹에 대한 저항이 군대가 아니라 바로 국민들로부터 나왔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의 제작에 보통 영화 2편을 제작할 수 있는 거금을 들인 것은 이 기획의 중요성 알려준다.이후 독일이 연합군에 패하고 독일을 점령한 연합군은 나치 영화제작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 할지를 고민했다. 괴벨스는 베를린이 함락되는 동안 자살했고, 칼 리터 (cpu) 감독은 아르헨티나로 추방당했다. 리펜슈탈은 워낙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 질 것이란 사실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에게 어떤 범죄에도 책임이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것은 그녀가 는 단지 기록에 불과하고 의 재정은 스스로 충당했다고 주장해서이다. 다른 많은 영화제작인들도 나치 시대에 그들이 했던 활동을 조사받는 동안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바이트 할란은 를 통해 유태인을 체포 하도록 부추기고 강제 수용소로 보내는 것에 대한 반대를 약화시켰다고 하여 재판을 받았다. 그러나 할란은 자신을 비롯 크다.
    인문/어학| 2011.03.27| 6페이지| 1,000원| 조회(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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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덕 감독의 영화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 사계절에 담은 인생이야기
    김기덕 감독의 영화 사계절에 담은 인생이야기♣순 서♣1.들어가기2.김기덕 감독과 3. 자세히 보기4.속의 반야심경5.속의 업에 따른 윤회6.속의 물의 이미지7.속의 죄업과 죄의식8.결론1.들어가기인간으로 살아가는 우리들 속에 내재하고 변해 가는 속성과 숙성의 의미를, 그렇게 순환되고 생성하는 우리의 삶을, 순수 속의 잔인함, 욕망 속의 집착, 살의 속의 고통, 번뇌 속의 해탈을, 기가 육체를 만들고 육체가 단풍처럼 변하고 썩어 이슬로 땅에 스며드는 사람이, 사계절의 반복과 그 무엇이 다른가.-2001년 미국 선댄스 영화제에서 김기덕.은 사계절을 화폭에 담아낸 듯 아름다운 영상미를 자랑하고, 그 영상 속에 인간의 모습을 사계로 표현해 그려 넣었다. 봄의 동자승, 여름의 소년승, 가을의 청년승, 겨울의 장년승, 그리고 봄에 다시 동자승으로 순환되는 인간사를 여러 색으로 표현하여 안방에 두고 보는 병풍 같은 영화이다.영화를 처음 볼 때, 두 번째 볼 때, 세 번째 볼 때……, 영화는 보는 횟수에 따라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처음 본 (이하 봄)에서는 뛰어난 자연풍경에 심취하여 속세를 떠나 선계에 들어간 느낌으로 영화를 받아들였으며, 두 번째 볼 땐 인물에 집중하여 계절에 따라 다른 감정을 보이는 인물에 대해 생각했고, 세 번째 볼 땐 인물이 쌓는 업과 반복되는 흐름에 주목하여 영화를 보았다.이것은 모두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은 무겁게 볼 영화도 아니고 가볍게 볼 영화도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불교적 사상을 배경에 깔았지만 짙은 향내로 머리가 아픈 영화도 아니고, 아무렇게나 여겨버릴 만큼 뜻이 없는 영화도 아니다. 을 통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자신의 인생에 소소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면 영화를 보는 시간 동안 충분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2.김기덕 감독과 은 김기덕 감독의 이름을 지우고 영화를 상영했다면 쉽게‘이것이 김기덕 영화이다.’라고 결론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이전에 ,등에서 소외계층을 밑바닥까지 끌어내려 그들을 통해 사회담은 결과물이 아닐까 생각 할 수 있다. 이것을 뒷받침 하는 자료로 김기덕 감독의 인터뷰를 예로 들 수 있는데 김기덕 감독은 인터뷰에서 을 급하게 살아오면서 쉬어가는 입장으로 찍은 영화라고 설명했다. 영화 자체가 자신에 대한 해석을 담았다고 했으며 이것은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관객 자신의 해석이 될 수 있다고도 했다.이 영화와 김기덕 감독의 인연을 더욱 깊게 해주는 것은 바로 김기덕 감독이 직접 출현 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장년승으로 출현하여 속세에서 벗어나 겨울 산에서 구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겨울 산에 돌을 매고 오르는 연기를 하는 동안 무슨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분명 한 것은 이후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이다.김기덕 감독은 이전에 높은 채도의 채색을 이용해서 공간을 현실로부터 떼어놓아 ‘영화적 공간’을 만들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그러한 시도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또 육체를 자극하여 얻어내는 소통이 아니라 시적 언어를 가져와 관객을 자극한다. 이것을 통해 이후 김기덕 감독의 영화가 좀 더 상징적인 언어로 발전하는 모습을 확인 할 수 있다.3. 자세히 보기①봄- 업의 시작 : 장난에 빠진 아이, 살생의 업을 시작하다.만물이 생성하는 봄. 노승과 동자승이 깊은 산 속 주산지 호수 위에 단아하게 떠 있는 사찰에 기거하고 있다. 유일한 교통수단인 나룻배를 타고 개울로 놀러 나온 동자승은 물고기와 개구리, 뱀의 허리에 실로 돌을 묶는 장난을 한다. 이것을 유심히 지켜보던 노승은 다음날 동자승의 허리에 돌을 묶어 두고, 동자승이 힘들다며 하소연 하자 어제 한 장난의 잘못을 일깨워 주며 잘못을 되돌리지 않으면 평생의 업이 될 것이라 이른다. 동자승은 허리에 돌을 묶은 채로 자신이 한 잘못을 되돌리러 가지만 물고기와 뱀은 이미 죽어있었다. 동자승은 서럽게 울며 잘못을 뉘우친다.“가서 찾아서 모두 풀어주고 오너라. 너도 그럼 풀어주마.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 중 어느 하나라도 죽었으면 너는 그 돌을 평 떠나라고 말한다. 소년승은 소녀와 떨어 질 수 없다고 애원하고 스님은 결국 소녀를 떠나보낸다. 그날 소년은 절을 떠난다.“욕망은 집착을 낳고 집착은 살의를 품게 한다.”노승의 대사는 앞으로의 사건을 짐작 할 수 있게 한다. 노승은 초월적인 존재로 묘사되는 부분이 많은데 이 대사를 통해서도 그것을 알 수 있다.③가을 - 절망과 분노: 살의를 품은 청년, 고통으로 몸을 떨다.낙엽이 지는 가을, 노승이 뭍에서 가져온 떡을 싼 신문을 펼치자 범인의 사진과 함께‘30대 아내 살해 후 도주’라는 기사를 보게 된다. 십여 년 전에 사철을 떠났던 소년승이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이 된 것이다. 청년은 배신한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되어 사찰로 도주해 온다. 노승은 소년의 죄업을 씻어주기 위해 노력한다. 자살하려는 청년을 구하고 바닥에 반야심경을 새기게 하여 마음의 짐을 더는 방법을 가르친다. 청년을 잡으러온 형사들을 회유하여 청년이 반야심경을 다 새길 수 있도록 돕고 청년이 반야심경을 다 새긴 후, 죗값을 치르러 형사들과 떠나자 노승은 혼자남아 자신의 다비식을 준비한다.“남을 쉽게 죽인다고 해서 자기 자신도 쉽게 죽일 수는 없다. 칼로 이 글자들을 다 파거라. 한 자씩 파면서 분노를 마음에서 지워라.”가을은 단풍으로 인해 불타오르는 느낌을 준다. 그 느낌은 청년의 마음속과 일맥상통한다. 가을은 계절 전체가 청년의 마음을 나타내며 곧 겨울이 와서 그 불을 꺼줄 것이라는 것을 짐작 할 수 있다. 청년이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바닥에 새기는 반야심경은 평온의 세계에 이르기 위한 불교의 핵심이 되는 석가의 가르침이다. 이것을 통해 청년은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④겨울- 공(空): 성찰하는 중년, 내면의 평화를 구하다.호수마저 꽁꽁 얼어버린 겨울. 형기를 마치고 중년이 되어 폐허가 되어버린 암자로 남자가 돌아온다. 노승의 사리를 수습하고 수행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구한다. 그러던 나날을 보내던 중 사찰에 의문의 여자가 아기와 함께 찾아든다. 얼굴을 보라색 보자기로 가리고 있는 그녀는 아기만선아리랑은, 애잔한 가락으로 관객에게 전율을 준다.⑤그리고 봄 -다른 업의 시작: 새로운 인생의 사계가 시작되다.이제 노승이 된 남자는 어느새 동자승이 된 여인이 두고 간 아이와 고요한 사찰의 평화를 누린다. 동자승은 옛날 노승이 그랬던 것처럼 물고기와 개구리와 뱀의 입속에 돌멩이를 집어넣는 장난을 치며 즐거워한다. 영화는 이 장면을 보여주면서 반복되는 인생의 사계를 상징한다.이 영화가 그냥 겨울 부분으로 끝났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어지는 봄을 보여줌으로써 인생의 반복과 계절의 변화를 더욱 잘 보여주는 결과를 가져왔다.4.속의 반야심경반야심경은 공(空)에 대한 가르침이다. 대승불교의 진수를 기록한 것으로 반야심경을 이해하면 곧 불교 자체를 이해하게 되는 것과 같다. 이 경전을 배움으로 우리는 불교가 가르치는 복된 인생, 즉 깨달음을 얻지 못한 인생으로부터 환희와 평화에 찬 개오의 인생길을 찾아가야만 한다.인생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행복의 추구에 목표를 둔 삶의 연속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만큼 행복하게 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변하는 것을 변치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실체가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마음의 안정과는 다른 것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망상을 제거하는 지혜가 바로 반야심경의 가르침이다. 영화는 반야심경을 통해 공(空)을 가르친다. 영화 속 겨울의 역할과 반야심경의 역할은 같다.영화 속에는 반야심경이 두 번 나온다. 첫 번째는 봄의 동자승이 물고기, 개구리, 뱀의 허리에 실로 돌을 묶고 즐거워하는 장면에서 나오는 반야심경의 독경소리이다. 두 번째는 가을의 청년이 괴로움을 벗고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반야심경을 새기는 장면이다.첫 번째 봄의 반야심경 독경은 동자승의 행동과 대조적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천진하게 웃으며 장난을 치는 동자승은 자신의 장난이 살생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동자승의 장난은 결국 두 마리 동물의 죽음으로 이어 평안을 얻는데, 반야심경을 통한 마음의 평안은 청년 만 얻은 것이 아니다. 청년을 잡으러 왔던 두 명의 형사도 바닥에 새겨진 반야심경에 색칠을 하는 일로 반야심경의 가르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은 청년에게 적대적이고 범인으로 밖에 대하지 않는 마음에서 청년이 깨닫는 공(空)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변하고, 마지막에는(수갑을 채우지 않고 데려가는 장면) 청년이 반야심경을 통해 얻은 평안을 같이 느끼는 것으로 보여 진다.5.속의 업에 따른 윤회업과 윤회는 서로 분리 될 수 없는 개념으로, 초기 불교에 의하면 자신의 업에 따라 개체는 다섯 영역에서 환생하며 윤회한다. 초기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다섯 영역은 지옥, 동물계, 아귀계, 인간, 신(인간/동물)이다. 이러한 윤회개념은 단절되지 않고 연속적이다. 동물과 인간은 동물계와 인간계를 쌍방향적으로 이동하는 연속적 존재들이다.윤회는 업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업은 도덕성과 연관이 있다. 미래의 존재조건은 현재 자신의 행실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은 인간일 지라도 동물처럼 살면 동물이 되거나 그 이하의 상태로 떨어지게 된다는 것을 말한다.영화 속에는 업에 따른 윤회를 보여주는 장면이 곳곳에 보여 진다. 대표적으로 겨울 편에서 장년승이 고행하는 장면과 노승의 다비식에서 그것을 볼 수 있다.장년승이 몸에 돌을 매고 겨울 산을 오르는 장면 중간 중간에 봄의 동자승이 괴롭히던 물고기, 개구리, 뱀 장면이 삽입되어 있다. 허리에 돌이 묶여 괴로워하는 동물의 모습과 장년승이 자신의 죄업을 씻기 위해 고행하는 모습이 동시에 나타나 는데 이는 인간과 뱀, 물고기 등은 차이가 없는 불교의 업보로 인한 윤회 속에 놓여 있는 작은 미물일 뿐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가을에서 노승의 다비식 장면에서도 윤회를 볼 수 있는데 노승의 육신이 서서히 타들어가고 후에 활활 타오르게 되면 그 불 속에서 뱀 한 마리가 나와 사찰로 들어간다. 뱀은 겨울에서 노승이 벗어놓은 옷가지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여줌으로 관객들에게 노승의 환생으로 보여 지게 다.
    인문/어학| 2011.03.27| 9페이지| 1,500원| 조회(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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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햄릿과 완벽주의
    햄릿과 완벽주의 그리고 영화‘올드보이’햄릿을 읽다보면 ‘내가 햄릿이라면’ 이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햄릿은 선택의 순간을 가지고 그 순간은 그의 운명을 바꾸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햄릿은 늘 고민한다. 아버지의 유령을 만나서 아버지가 숙부에게 독살당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그는 분노를 바로 실행으로 나타내지 않고 연극을 꾸며 숙부를 떠본다. 그 연극 후에 숙부가 아버지를 죽였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을 때도 그는 숙부를 죽이지 않는다. 그저 생각, 또 생각할 뿐이다. 만약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내 앞에 있다면 난 분명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을 것이다. 숙부를 죽일 수 있는 찬스에도 숙부가 천국에 가서 자신의 복수가 틀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내세적인 일까지 신경 쓰는 것은 그가 엄청난 완벽주의자라는 것을 보여준다.복수의 완벽성. 햄릿이 꿈꾸는 복수는 완벽한 복수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복수하고 똑같은 결과를 얻기 위해 미친척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햄릿을 우유부단하다고 보는 사람도 많은데 내가 보기에는 너무 완벽하려다 우유부단해진 것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완벽성을 기하다보니 복수는 계속 지연된다. 그의 완벽성은 죽으면서까지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습에서도 드러난다. 복수도 끝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죽을 수 있을 텐데 그는 죽어가면서도 직접 포틴브라스를 다음 왕위 계승자로 지목하며 완벽성을 드러낸다.난 햄릿을 보며 영화 ‘올드보이’를 떠올렸다. ‘올드보이’의 우진은 햄릿처럼 완벽한 복수를 꿈꾼다. 우진은 자신이 사랑하는 누나가 소문에 의해 자살하자 그는 소문의 근원인 대수를 15년이나 가두어 자신이 완벽한 복수를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다. 15년의 세월도 완벽한 복수를 위해서라면 견딜 수 있다. 이렇게 까지 해서 그가 만든 상황은 바로 ‘누구나 근친상간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라는 전제하에 만든 우진의 작품이다. 대수는 우진이 만들어놓은 상황 안에서 자신의 딸을 사랑하게 되고 복수가 끝나자 우진은 자살한다.
    인문/어학| 2010.12.10| 1페이지| 1,000원| 조회(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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