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학 개론(기말 보고서)- 외국의 교육평가를 중심으로 -Ⅰ. 들어가며나는 교육대학원 신입생이다. 평소 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은 해보았지만, 체계적으로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와 관련된 이론, 어떻게 역사 수업을 해야만하는가에 대해 공부해 볼 수 있었다. 첫 학기, 공부하면서 들었던 생각은 교육학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다. 피아제, 아이스너, 존 듀이 등 여러 학자의 이론은 정말 생소한 것이었다.특히 교수님이 말씀하신 장상호의 교육본위론은 이해는 가지만, 완전히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비판적인다. 교육본위론은 ‘현재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란 질문을 시작으로 대다수 사람들이 학교=교육이라고 이해하고 있지만, 학교≠교육이 아니다에 초점을 맞추어 주장을 전개한다. 그러면서 교육이 교육다워야만 현재의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하화하기’와 ‘상구하기’란 교육학적 새로운 개념을 이야기하면 그 과정에서 존우, 존현등의 개념과 과정을 소개한다.수업을 듣기 전, 우리는 학교=교육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장상호의 주장처럼 이것을 극복해야한다는 점에서는 공감한다. 하지만 현재 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꼭 교육학이라는 관점에서 다가가고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에는 다소 부정적이다. 학교라는 공간은 사회의 여러 부분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 교육의 주 공간이 되는 학교를 꼭 교육학계가 말하는 교육다운 것으로 해결할 수만 있다는 것은 아집이라 생각한다. 물론 하나의 방편은 될 수 있겠지만.현재 교육학계가 직면한 위기인 교육학만의 그 무엇이 없다는 것과 이것을 재정립해야한다는 의견은 타당하지만 그것은 교육학계에 국한된 문제이다. 학교는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고 교육적인 장소만은 아니다. 과연 교육학이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이론을 세운다고 교육이, 한국 교육의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 학교≠교육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학이 너무 책임감있는 목소리를 낼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교육본위론에서 현대 사회에 학기에 약 500유로(80만원) 정도의 등록금을 받기 시작했다. 독일 교육은 기본적으로 사교육 없이 학교교육만으로도 충분히 운영되고 있고 경쟁을 배재한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우리처럼 크게 교육비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초등학교인 그룬트슐레(Grundschule)는 베를린과 브란덴브룩, 메클렌브룩-포어폼머른 등 6년제인 세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4년제를 채택하고 있다. 독일 초등학교도 우리나라처럼 여섯 살이 입학 연령이지만 가을에 새로운 학년이 시작되기 때문에 한국보다 6개월 먼저 입학한다.모든 아이들은 입학 전에 학교 전문의로부터 초등학교 입학 여부에 관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간단한 지적 능력 테스트와 신체검사, 집중력 등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원만한 단체 생활과 학습을 따라갈 수 있는지 여부에 관한 검사다. 의사는 진단 결과를 학교와 부모에게 통보해 주며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아이들에게는 초등학교 입학을 다음 해로 연기할 것을 권한다. 독일 부모들은 의사의 권유가 있으면 큰 문제없이 입학을 한 해 미룬다. 또 결과에 따라서 부모가 원하면 입학 연령 전에도 입학이 가능하다.초등학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 명의 담임교사가 4년 동안 가르친다.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교 교사 1인당 학생 수가 20.9명으로 되어 있지만 학교에 따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어떤 학교는 20명 미만일 때도 있고 어떤 때는 30명이 넘는 경우도 있다.초등학교 다음 단계는 중학교 과정이 아니라 중고등학교로 실업계인 레알슐레(Realschule), 인문계인 김나지움(Gymnasium)으로 나뉜다.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 학년인 4학년인 다소 이른 시기이기는 하지만 미리 진로를 결정해야한다. 물론 상급 학교에 다니면서도 얼마든지 인문계 학교와 실업계 학교를 넘나들 수 있지만 이 시기에는 이미 대학 진학과 직업교육에 대해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중고등학교는 실업계 학요인 9학년으로 끝나는 하우프트슐레와 10년에 졸업하는 레알슐레로 나누어지며 대학 진학을 위한 인문계 가 될 수 있다. 마이스터가 되면 개인 공장을 개업할 수 있으며 각 기업의 현장 책임자나 직업학교 교사 등 다양한 방면에서 취업의 문이 열려 있다. 물론 임금과 직책도 보장된다.대학은 13학년까자의 김나지움 과정을 마치고 아비투어에 합격한 사라만이 진학할 수 있다. 독일 대학은 모두 시립이고 평준화되어 학과별로 인기학과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학별 수준 차이가 거의 없다. 독일에는 현재 1386년 건립된, 가장 오래된 하이델베르크를 비롯하여 365개 대학이 있고 이중에는 600년 이상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들이 많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학에서는 석사 과정에 해단하는 문과 계열은 마기스터, 자연과학 계열은 디플롬으로 통합했었으나 지금은 우리나라와 같은 학사와 석사 제도로 세분화되었다.ⅱ) 선택폭이 다양한 독일 수능시험, 아비투어한국 사람들은 국영수가 빠진 입시 공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은 다르다. 독일은 주마다 각기 다른 입시 제도인 아비투어를 도입하고 있어 통합적이고 일괄적으로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지역별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수업의 방법이라든지 입시 과목의 선택권을 다양하게 인정한다는 점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한 주의 제도라 하더라도 이 나라의 전반적인 입시 경향을 살펴보는 데 무리가 없다. 여기서 설명하는 제도는 노드라인 베스트라랜주의 아비투어다.독일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입시를 위한 수업이 진행되는 학년은 오버스투페(Oberstufe)라고 하는 기나지움 고학년인 11학년부터 13학년까지다. 그중에서도 11학년은 아인퓨룽스파제(Einfuhrungsphase)라고 하여 본격적인 입시 준비 학년인 오버스투페의 도입 단계이기 때문에 유동성이 많은 학년이다. 아인퓨룽스파제는 학생들이 보스투페에 필요한 내용과 방법적인 면에 적응할 수 있도록 연습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이때는 수업도 복습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성적이 특별히 우수한 학생들은 월반도 쉽게 할 수 있다. 또한 10학년 2학기 평균 점수가 3점 이상인 사람에 한해서는 6개 그룬트코스와 심화 과정인 라이스퉁스코스로 나뉜다. 심화 과정은 기초 과정에 비해 전문적이고 깊이 있는 수업이며 시험도 같은 과목일지라도 난이도가 다르다. 아래 표에 보이는 것처럼 12,13학년 동안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은 독일어와 외국어, 수학, 사회과학 중에서 한 과목, 자연과학 중에서 한 과목, 체육, 종교 혹은 철학 등이다. 학교에 따라 들을 수 있는 수업이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보기와 같이 선택의 폭이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독일어와 수학처럼 체육이 필수라는 것이 특이하다. 체육은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과목이기 때문에 그 어떤 수업보다 중요시 한다.- 고학년 필수 이수과목 -독일어수 학외국어 독일어, 불어, 이탈리아어, 일본어, 러시아어, 라틴어, 중국어, 스페인어, 그리스어, 터키어, 영어, 네덜란드어, 히브리어 중 택일사회과학 역사, 사회학, 법, 지리, 철학, 교육학, 심리학 중 택일자연과학 수학, 물리, 영양학, 생물, 컴퓨터, 화학, 기술 중 택일종교, 철학, 문학 중 택일음악, 미술 중 택일체육*인문계의 경우 사회과학을 자연계는 자연과학을 각각 한 과목 더 선택한다.독일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구술시험을 포함한 아비투어 필기시험은 심화 과정 두 과목과 기초 과정 두 과목을 포함한 총 네 과목이다. 그런데 그 네 과목이라는 것이 독일어를 비롯한 영어, 수학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우선 의무 규정은 독일어를 포함한 다양한 외국어 중에서 언어 영역으로 한 과목을 선택해야 하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 중 각각 한 과목, 나머지 하나는 완전 자유다. 보통 네 과목 중 가장 자신 없는 과목을 구술시험으로 선택하여 필기시험과는 약간 다른 준비 과정을 거치기도 하지만 시험의 출제 경향은 비슷하다.독일 입시의 가장 큰 장점은 선택의 폭이 다양하고 광범위하다는 데 있다. 누구나 수학과 영어를 잘해야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과목일지라도 필기시험에서 제외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재량으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우리대학에 입학하는 데는 거의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다.2. 프랑스ⅰ) 교육과정‘교육은 모든 시민의 공통된 것이고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거치며 처음 만들어진 공교육 제도에 대한 헌법 조항이다. 현 프랑스식 교육법의 근간이기도 한 위 내용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교육 개혁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오늘날 이미 이상적인 교육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프랑스지만, 올바른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노력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초기 프랑스의 교육 시스템은 사회계급에 따라 차별되는 보수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후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수 많은 교육 개혁이 시도되고 점차 현재의 중앙집권적인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다. 1808년 나폴레옹이 창설한 제국대학과 함께 국가가 주도하는 교육제도가 확립되고 사립학교가 등장하게 된다. 현재 프랑스의 교육의 원칙은 4가지로 이루어진다. 교육의 자유, 무상교육, 공교육과 종교의 무관성, 자격과 학위 수여 국가 관리가 바로 그 것 이다. 교육의 목적은 개개인에게 지식을 전달해 사고, 판단 능력의 증진과 개발에 의미를 두며, 모든 학습체제는 확실한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진행되고 있다. 교육 선진국이라고도 불리는 프랑스의 교육체제의 장점은 앞서 언급한 4가지 원칙과 연결되어 있다. 우수한 문화 환경을 배경으로 적은 교육비에 자유롭게,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프랑스의 학생들은 우리나라와 사뭇 비교된다. 끊임없이 교육제도 표준화에 힘쓰고 있는 개혁 또한 세계화를 향한 프랑스 교육 향상에 이바지 하고 있다.취학 전 아동(3~6세) 교육을 담당하는 프랑스 유치원은 대부분 정부에서 운영되는 공립 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의무교육은 아니지만 90% 이상에 해당하는 프랑스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으며 모든 교육은 무상으로 이루어진다. 교육과목의 70~80%는 예능교육으로 이루어지고 이는 아이들의 자율성과 바람직한 생활습관을 기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프랑스 무상의무교육에 포함되어 있는 초등학교는 총 5년레아
한국 현대 문학의 이해( 문학과 영화와 그 밖의 예 )역사문화학부0701114 김재훈1. 문학과 영화에 대해현대는 활자로 메시지를 전달하던 시대에서 영상으로 전하는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과거 자신의 마음을 정성어린 편지 속에 담아 보내던 상황에서 이제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영상 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변했다. 학생들의 공부 방법도 교과서 위주에서 동영상강의로 바뀌었다. 이 글에서 나는 활자양식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소설과 현재 영상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영화에 대해 둘을 비교 분석하여 상세히 알아보고자 한다.영화는 다른 예술 장르와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그 중에서도 문학과 연극에 가장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두 매체 모두 이야기구조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와 공통점을 가진다.소설이 영화화되는 경우 그 원인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소설의 내용이나 형식이 영화적 내용이나 형식으로 전환시키기에 용이한 경우이다. 쥬라기 공원같이 작가가 영화화를 전제에 두고 소설을 쓴 경우처럼 말이다. 다른 하나는 소설의 대중성 때문에 이미 베스트 셀러가 되어 있어 잠재적으로 관객층을 광범위하게 확보하고 있는 경우이다. 예로는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를 들 수 있다.영화와 문학은 같은 줄거리를 다루는 매체이면서도 그 표현양식이나 제작방식이 전혀 다르다. 첫째, 영화는 보는 이야기이고, 소설은 읽는 이야기이다. 둘째, 영화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며 객관적인 영상으로 이야기하는 데 비하여, 소설은 관념적이고 은유적이며 주관적인 심적 환기작용을 이용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셋째, 소설은 그 길이가 무척 자유로워 초 장편 소설로부터 단편까지 다룰 수 있는 데 비하여, 영화는 100분 내외로 그 길이가 한정되어 있다. 넷째, 소설은 개인의 창조물이지만 영화는 집단의 창조물이다. 소설은 작가의 개인적 견해와 사유방식, 표현방식이 존중되는 매체인데 비하여 영화는 자금을 지원하는 제작자의 상업적 의도가 가장 많이 반영되는 매체이다. 따라서 소설을 영화할 경정을 표한다. 아울러 활자매체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데 비해 영상매체는 직접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상상력의 부족을 우려하기고 한다. 이와는 반대로 은 영화와 문학을 가르는 대신, 이 둘의 상호소통을 인정하면서 문학 향유방식의 현대적변신이라는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재해석한다. 그리하여 영화는 우리의 삶과 현식을 반영해 주는 또 하나의 문학으로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에 동의한다. 두 개 중 어느 것이 맞다 옳타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현대에 문학과 영화가 상호 공존하는 현상만큼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이들의 차이성을 유지하면서도 상호관련을 맺는 다양한 방식을 면밀히 검토하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다.문학과 영화를 하나로 볼 수 있는가? 과거 사람들의 예언과 달리, 활자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에도 많은 신간들이 쏟아져 나와 진열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그런데도 극소수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출판사들은 여전히 불황이고, 순수문학 작품들은 더더욱 팔리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책을 읽을 시간에 사람들은 이제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스크린을 응시한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며 웃고 울었던 것처럼, 이젠 스크린을 보며 웃고 운다. 영화의 문학화는 영화가 예술과 문학으로의 접근을 추구하는 동시에 문학적으로 서술된 많은 이야기들을 영화에 이용하며, 문학을 모범으로 하여 영화적 서술의 독자적 능력을 계속 발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소설(문학)과 영화의 관계는 결코 일방적이지는 않다. 영화를 보는 독자들은 그들이 읽었던 소설에서 영화적 글쓰기 방식을 발견한다. 또한 영화를 보았던 작가들은 그들의 영화적 지각을 문학적 글쓰기로 들여오지 시작했으며 결국은 영화를 위해 시나리오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결과적으로 소설(문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력한 라이벌인 영화와 제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화 또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문학적 접근이 필요하다. 영화는 영상을 매개로 전달되기 때문에 신속량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소설과 영화의 상호성을 잘 이해하고 알아야 가능 할 것 이라고 생각해 본다.2. 작품 분석이제 나는 위 내용들에 관련해서 소설이 영화화된 작품을 비교 분석해 보고자 한다. 이에 앞서 나는 내가 읽은 소설, 그리고 그것이 영화화 된 내가 본 영화를 가지고 비교, 분석 했다는 것을 밝힌다.① 이문열의 1992년도 영화화 됨.이 소설을 안 읽은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를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홍경인이 나온다는 말에 우연히 이 작품을 보게 되었다. 나는 영화를 먼저 보고 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이 영화는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우리나라 영화제뿐만 아니라 국제 영화제의 많은 상을 휩쓸었던 영화이다. 이 영화는 박종원 감독이 영화화했다. 이 영화는 시골 국민 학교의 한 학급에서 동급생들 위에 군림하는 한 어린 절대 권력자의 우상이 만들어지고 다시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기성 사회에 대한 관객들의 반성적 통찰을 요구하는 작품이다. 이 절대 권력자는 자라서 잡범이 되는게 원작이지만, 영화는 그가 지금도 한국 사회 어디선가 또 다른 5학년 2반 위에 군림하여 나름의 방식으로 권력을 이룩했을 것이라 말하고 있다.이 내용을 영화화하는 데 있어 원작에 없는 인물들이 등장하거나 그 성격이 달라지는 인물을 볼 수 있다.대표적인 인물이 병태의 친구인 김영팔이다. 김영팔은 원작에는 없는 인물이다. 김영팔은 한병태가 엄석대를 상대로 시작한 고독한 싸움의 의미를 알았다. 그는 늘 지저분한 옷과 정리되지 않은 매무새로 외관상 보기에는 많이 모자라는 듯한 인상이다. 많은 아이들이 그의 행동이나 말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런 김영팔이 엄석대에게 저항하는 한병태의 모습을 보고 소중하게 가지고 있던 탄피를 준다. 또한 늘 병태와 함께 다니며 다른 아이들이 병태를 괴롭히는 것이 잘못이라 말한다. 그러다 한병태가 그 외롭고 힘든 싸움을 포기하고 엄석대의 휘하에 들어갔을 때, 영팔은 지난날 그에게 주었던 탄피를 돌려달라팔은 엄석대의 비행을 낱낱이 늘어놓는 아이일수록 과거 엄석대와 친하게 지낸 사이라는 것을 안다. 김영팔은 과거에는 누구보다 친하게 지낸 친구들이 그의 잘못을 적나라하게 비난하는 것을 보며 가슴 아파한다.한병태의 고독한 투쟁의 의미를 안 것도, 엄석대의 위세에 편승하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던 아이들의 돌연한 변화에 가슴 아파하는 것도 김영팔이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 학급에서 일어난 일들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인물이다. 감독은 김영팔을 통해 한 반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순수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조금은 어눌해 보이는 그를 통해 진실을 알리려는 것이다.원작에 없는 또 다른 인물은 미포에 동행하는 여학생이다. 시험을 마친 그들이 미포로 놀러갔을 때 그녀가 함께 온다. 성격이 뚜렷이 그려지지는 않으나 여학생은 그들의 나이보다는 나이가 많은 중학생쯤으로 보인다. 같은 학년보다 나이가 많은 엄석대는 벌써 이성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닷가의 허름한 창고에서 토끼를 잡아 술을 마시며 노래하는 모습은 어린 아이들이 흉내내는 어른들의 모습과 유사하다. 이런 장치를 통해 엄석대가 지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좀더 빠른 사춘기적 호기심을 드러낸다.원작과는 다른 성격을 지닌 인물은 6학년 때의 담임선생님이다. 젊고 의욕에 가득 찬 그는 아이들에게 진실과 자유에 대한 의미를 전달하려 애쓴다. 그를 통해 지금까지 엄석대가 지배하던 왕국은 서서히 무너진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어리석게 살아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런 후, 다른 어느 반보다 활기차고 민주적인 분위기로 운영된다. 그런 모습은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의 회상에서 현재로 돌아와 고향에 도착했을 때 그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는 그 지역의 국회의원이 되어 많은 보좌관들을 데리고 나타난다. 학생들에게 자유와 진실의 의미를 강조하시던 분이 국회의원이 된 것이다. 그 정의와 진실을 국회에서 실현하기 위해서, 이 부분은 상반된 생각을 갖게 한다. 하나는 학생들에게 정의와 진실을 강조하던 그가 국회에폭력을 휘두른다. 하지만 영화에서 엄석대는 자신의 비행이 아이들의 입을 통해 밝혀질 때 학교를 뛰쳐나간다. 그리고는 교실에 불을 지르는 좀 더 적극적인 행동을 한다.원작에서 한병태는 30년이 지난 지금 엄석대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궁금 해한다. 한병태는 강원도로 가족과 함께 피서를 가려고 기차를 타다가 연행되어가는 선글라스를 낀 남자의 귀에 익은 목소리에 뒤돌아본다. 그때 경찰들과 몸싸움을 하면서 선글라스가 벗겨져 얼굴이 드러난다. 그가 바로 엄석대다. 지난 시절 아이들에게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모습은 간 곳이 없고, 초라하게 연행되는 그를 보면서 한병태는 씁쓸해한다. 원작은 엄석대가 성실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진정한 영웅이 아니라 일그러진 영웅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에서 엄석대의 모습은 다르다. 상가집에 모인 친구들은 석대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한다. 그가 좋은 차의 뒷좌석에 앉아 지나가는 것을 봤다는 사람, 보이지 않는 자금으로 금융계의 큰손이 되었다는 등의 추측들이 난무한다. 과거에 석대를 아는 사람들은 그가 분명 사회에서 한 몫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상가에서 엄석대가 과거의 당당한 모습 그대로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엄석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이름으로 배달되어 온 커다란 화환을 보면서 그의 존재를 짐작할 뿐이다. 영화에서 그의 모습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아 정착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사회정의를 실천하는 모습이든, 아니면 어두운 세계의 큰손의 모습인지는 알 수 없다. 감독은 원작에서처럼 엄석대를 일그러진 영웅으로 보여주지 않고 그의 모습을 감추면서 관객들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긴다.상가를 나오는 한병태의 독백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여전히 5학년 2반의 모습은 사회 속에 있고 앞으로 그의 그늘 속을 벗어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우리 사회를 바로보는 시각이 긍정적이라기보다는 이다.
한국 현대 문학의 이해아멜리 노통 의 을 읽고...역사문화학부0701114 김재훈※줄거리제롬 앙귀스트 라는 사람이 공항에서 비행기가 연착 되었다는 방송을 듣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텍스토르 텍셀 이라는 사람이 오더니 자신의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제롬을 귀찮게 군다. 자신 안에 다른 이가 들어있어 자신은 그를 거부할 수 없다느니, 자신의 새로운 면이 자신 안에 있다느니, 그로인해 어렸을 적, 구역질 나는 고양이 밥을 다 먹어치우기도 하고, 그러다가 한 여인을 강간 했다는 얘기도 하고 끝내 그 여인을 살해 했다는 말까지 한다. 그러다가 텍셀이 그 여인의 이름을 말했는데 공교롭게도 그것이 제롬의 10년 전 살해당한 부인의 이름이다. 텍셀은 자신은 죄 값을 치루겠다며 자신은 직접 제롬자신의 손으로 죽여라고 재차설득하자 제롬은 굉장히 화를 내며 지나가던 경찰한테 그자를 신고 하지만 경찰은 비웃기만 할뿐, 그냥 지나가 버린다. 텍셀은 제롬이 자신을 죽이길 원한다며 자꾸 이상한 소리를 지껄여대고, 그러던 중, 텍셀이 바로 제롬 이라는 소리를 한다. 제롬은 믿지 않는다. 하지만 텍셀이 여러 가지 증거물을 내놓고 제롬은 그런 증거에 당황해 한다. 텍셀은 자신이 제롬 안에 있는 '적' 이며, 그 부인을 살해한 것도, 제롬 안에 있던 자신이라고, 제롬은 너무 화가 나기도 하고 믿겨지지 않아 분노가 극에 달한다. 텍셀은 싱글대며, 못 믿겠으면 자신을 죽이라고 하고, 결국 제롬은 텍셀의 머리를 벽에다가 계속 찧는다. '자유! 자유! 자유!' 를 계속 외치며,,,바르셀로나 행 비행기를 기다리던 승객들은 그날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한 승객이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의 머리를 무작정 벽에다 들이받은 것이다. 예사롭지 않은 난폭성을 보이며 잔뜩 흥분해 있는 그 사람을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죽음이 닥칠 때까지 계속했다. 그 남자는 벽에다가 머리를 처박을 때마다 똑같은 고함소리로 자신의 동작에 박자를 맞추고 있었다한다.'자유!자유!자유!'※느낌 및 감상이 책의 제목을 처음 듣는 순간 평범한 소설은 아닐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적의 화장법, 적은 누구이고 화장법은 무엇인가? ‘적이 화장을 해서 누군가를 속인다’ 이런 뜻으로 해석하고 책을 읽게 되었다. 소설은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는 제롬과 텍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이 부분에서 역시 외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에게도 쉽게 말을 거는 것이 자연스럽구나!’ 라고 생각했다. 일단 둘 사이의 공방의 대화는 끊이지 않고 계속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서 속도감에 아울러 긴장감까지 느낄 수 있었다. 이것만으로 작가의 역량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야기가 진행 된 끝에 텍셀은 제롬의 아내를 20년 전 강간하고, 10년 전에 죽였다는 사실을 우연하게, 아니면 고의적으로 이야기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 다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실존하는 텍셀이 우연히 말하게 되었고 우연히 자기가 강간하고 죽인여자의 남편을 만났다거나, 또는 의도적으로 제롬에게 접근했다면, 이 소설은 그냥 평범한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작가는 내가 상상도 하지 못한 제롬 내면의 적, 또 하나의 제롬인 텍셀을 만들었다. 이로써 이전의 대화와 경찰이 제롬에게 한 행동이 모두 이해가 되었다. 대화로 스토리를 흥미진진하게 진행하였고, 마지막부분에는 반전으로 소설을 마무리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었고 생각할수록 어려운 소설인 것 같다. 결국 이 소설의 제목에서 적은 내면의 본능인 것 같았다.※분석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프로이드의 정신분석모형의 id-ego-super ego에 적용해서 설명하자면 텍셀은 id 인간의 본능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텍셀은 죄책감 없이 한 순간에 강간해 버리고 그 여자의 상황을 이해하지도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제롬과 그의 부인에게 계속 분노의 본능대로 자신을 때리고 찔러라고 그들의 본능을 자극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제롬이 처음 부인을 보았을 때 강간하고 싶은 마음, 그리고 부인을 죽인 일 이런 것은 id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만약 제롬의 super-ego(초자아)가 강했다면 균형을 이루어 올바른 자아를 유지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제롬의 초자아가 약했던 것은 아마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시고 할아버지 밑에서 홀로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텍셀과의 대화에서 제롬은 부정적인 어투를 보이는데 이는 ego가 약해졌음을 알 수 있다. ego가 약해졌을 때 사람은 보통 방어기재를 쓰고, 나쁜 짓한 사람이 더 많은 방어기재를 쓴다. 제롬이 그의 부인을 강간 하고 싶은 마음을 가졌을 때, 살인했을 때, 이 방어기재는 극단적으로 치닫게 되버린다. 즉 ‘해리장애’라는 정신이상을 겪는다. 이로 인해 그 순간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고 또 하나의 제롬인 텍셀을 만들게 되어서 자신을 합리화 시키는 것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