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가정. 대학에 들어와 내가 듣고 싶은 교양과목을 처음으로 성공시킨 과목이다. 이 수업을 들으면서 결혼과 관련된 여러 가지 주제들을 훑어보다 평소에 생각해 볼 기회가 별로 없었던 ‘이혼’이란 주제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해 보기로 했다.먼저 이혼에 대해 생각해 보기 전에 결혼에 대한 내 생각을 정의해보면, 결혼은 법적으로 두 남녀가 한 쌍의 부부가 됐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하나의 형식적 절차이다. 물론 결혼은 두 남녀의 결속과 애정을 증폭시켜주고 사회적으로 타당한 동거의 이유를 마련해주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법적 절차일 뿐, 두 남녀가 평생 동안 함께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는 아니다. 결혼은 두 남녀가 서로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굳은 확신이 섰을 때에 비로소 선택하게 되는 것이며 따라서 필수적으로 택해야 하는 과정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사회적인 시각, 특히 대한민국 사회에서의 시각에서 결혼은 매우 필수적이고 당위적인 것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를 택하고 있다고 생각하며 두 남녀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다면 결혼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결혼에 대해서 쉽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부부간에 애정이 식거나 악화된 감정이 커져서 더 이상 좋은 감정을 끌어낼 틈조차 없다면 헤어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명목상은 부부이지만 서로 다른 남자, 여자를 만나면서 상대방에게 꼬는 자녀들에게 상처 주는 것보다는 낫다고 본다.우리 주변에서 이혼은 더 이상 보기 드문 숨겨진 일이 아니다. 보도된 뉴스기사를 보면 우리나라의 이혼률은 세계3위이고 하루 평균 370쌍이 이혼을 한다고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느 부부는 이혼을 위해 법원 앞에서 서류를 들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아마 나에게 이혼이란 개념이 선 것은 어릴 시절 보았던 TV속 드라마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드라마 속의 어린아이들이 엄마 쪽으로 아빠 쪽으로 끌려 다니던 모습들. 엄마나 아빠를 그리워하며 울던 모습들.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던 나는 그저 특별히 불행한 아이들의 이야기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커 오면서 그것은 그저 TV 드라마 속의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같은 반 친구 중 누군가의 부모님이 이혼하신 경우라면 그 친구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 삐뚤어지는 것을 알 수 있었고, 그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난 다음에야 다시 바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를 볼 수 있었다.내 주변에 이혼사례를 들어보면 미국에 계시는 나의 친척언니도 얼마 전에 이혼을 하셨다. 이 원인은 경제적인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언니의 경우, 아이(나에게는 조카가 되는)가 둘이 있다. 이 조카들은 현재 아빠와 살고 주말에 언니가 계신 곳으로 와서 지낸다고 한다. 난 얼마 전 이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조카들이 떠올랐다. 부모님의 이혼이 이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흔히 생각하는 비행청소년 쪽으로 가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이혼이라고 했을 때 자녀들에 대한 편견인가 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편견에 그친다는 것을 조금만 둘러보면 알 수 있다. 부모님이 이혼하셔도 바르게 열심히 사는 친구들이 얼마든지 있고, TV나 라디오에서도 그런 훈훈한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또 우리가 훌륭하다고 하는 유명인 중에서 찾아 볼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방송인 유희열, 김장훈 그들도 부모님이 이혼하셨다고 한다. 유희열의 자서전에 보면 그는 비록 아버지의 사랑은 많이 받지 못했지만 어머니와 형과의 사랑으로 힘든 생활을 이겨냈다고 한다. 많은, 여러 사람의 사랑이 중요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 내 조카들의 경우, 미국은 이혼도 많고 재혼도 많은 곳이라 한국보다 적응은 잘 할지 몰라도 아이들이 입은 상처는 어디나 같을 것이라 생각된다. 한쪽 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보다 양쪽부모를 만나며 자라는 아이들이 더 부모님을 이해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양쪽 부모에게서 받는 사랑은 한 부모에게 받는 사랑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많고도 심각한 문제를 발생시키는 이혼은 어떠한 이유들 때문에 이루어질까.이혼을 하는 이유 중에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클 것이다. 갑자기 직업을 잃고 돈을 잃어 집안이 망하는 경우. 아니면 실업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것. 이건 너무나 현실적인 문제여서 나의 짧은 생각으로는 이혼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물론 사랑으로 극복 되어야 하고 그럴 수 있다는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사는 데 있어서 돈이란 그리 만만한 게 아닐 거란 생각이다. 저번 수업시간에 본 다큐프라임에서 어느 여자 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혼에는 두 가지 목적밖에 없다. 사랑 아니면 돈. 돈이 있어야 사랑이 가능하다는 말이었다.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는 부부 중 한 쪽이 바람을 피운 경우다. 충분히 이혼 사유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아마 남자들의 외도가 대부분일 것 같다. 4,50대 남자들은 왜 외도를 할까. 이것은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어서 그런 주제를 생각해 보라고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떠한 유혹이나 그 상황에서 약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생각해 보고 그것은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다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이유, 이유라기보다 원인에는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충분히 이혼을 막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으로 결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요즘 세대들의 의식이다. 요즘 친구들이나 대중 매체를 통해 본 젊은 사람들은 그저 좋으면 결혼을 하는 것으로 그에 따르는 책임 같은 것은 많이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법적인 책임과 의무가 따르지 않는 동거처럼 쉽게 생각하기 때문에 동거 생활을 청산하는 것처럼 사랑이 식으면 결혼을 끝내려고 이혼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인 것이다. 그에 따르는 책임은 과연 누가 책임 질 것인가. 이와는 정반대로 사랑을 느끼지도 않으면서 상대방의 조건만을 보고 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연애와 결혼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며 풍요롭고 안정된 결혼생활을 택한다. 모두 공감할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 여자들은 남자의 학벌, 집안, 재산 등을 보고 남자는 여자의 외모, 집안 등을 따지는 경우다. 하지만 쉽게 상대방의 조건만을 보고 결혼한 경우에는 결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사랑을 빼먹은 것으로 결혼하는 이유를 빼먹은 것과도 같다. 처음에 결혼생활은 즐거울지 모른다. 모든 것이 마련되어 있고 풍족하기 때문에. 하지만 점점 갈수록 중요해지는 부부끼리의 생활에 있어서 그들은 이미 사랑이 없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 들을 극복할 정조차 없어 그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흔히 연예인들이 말하는 이혼사유는 어떤 것일까. 그들은 너무 결혼을 쉽게 생각한 것일까 아니면 풍요로운 생활을 원했던 것일까...사람과 사람이 살다 보면 서로에게 상처도 줄 수 있고 싸울 수도 있다. 또 행복한 감정에 휩싸일 때도 있을 것이다. 이혼률도 많이 증가하는 추세이고 예전처럼 이혼한 사람들에 대한 사회 인식도 부정적이진 않다.
메스컴의 이해라는 수업을 통해서 처음 접한 ‘라쇼몽’ 이란 영화는 영화를 즐겨보고 좋아하는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DVD를 빌려보거나 인터넷 또는 영화관에서 본 영화가 200편 가량이 넘는다. 200편 넘는 영화는 대부분은 내가 좋아하는 액션이나 스릴러 장르였다. 그러나 오늘 본 이 영화는 여태까지 본 영화와는 색깔도 매우 틀리고 1950년대에 만들어졌다라고 생각도 못할 만큼 작품성이 뛰어났다. 흑백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재미없을 거라 단정했던 나에게 여러 가지를 느끼게 해주었고 영화에 대한 즐거움은 물론 나 자신에 대한 반성, 인간에 대한 믿음 등 지금까지 즐기려는 위주로 봐왔던 영화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우선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감동 깊었던 점은 교수님이 수업 마지막 즈음 말씀해주신 부분인 음악성 이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전의 전개를 음악으로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긴장감을 주었고 음악과 빗소리로 사건에 대한 분위기를 조절하고 있었다.또한 화면기법도 매우 훌륭해 보였다. 어떤 사건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 장면을 바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숲속의 나무로부터 카메라를 타고 내려온다던가, 남편을 속여 칼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는 다조마루가 나오는 부분 등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기위해서 카메라를 빠르게 이동한 점, 이야기 속 배경인 산 속에서의 빛 활용은 사건의 긴장감과 인물의 심리묘사와 맞아 떨어지게 연출한 점 등이 매우 훌륭하게 느껴졌다.영화 속 이야기는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구성된 액자 식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처음 영화의 시작은 폭우가 쏟아지자 승려와 나무꾼과 한 남자가 비를 피하기 위해 허물어져가는 라쇼몽 이라는 문 아래로 모여들면서 전개된다. 나무꾼의 시체발견으로 시작해서 강간과 살인 사건과 관련된 네 명의 등장인물이 들려주는 서로 모순적인 증언을 통해 하나의 현실에 대해 얼마나 다양한 주관적 시각이 가능한지를 보여준다.자신의 관점에 따라 객관을 주관화 하는 각각의 인물들을 통해 자신을 실제보다 더 훌륭하게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이기적인 인간을 그리고 있는 같다.먼저 다조마루라 불리는 도적은 이미 사람을 2명이나 죽인 악명 높은 산적이며 유부녀를 겁탈하고 그녀의 남편까지도 조롱한 인간이다. 이 남자는 남편과의 결투에서 남자를 죽인 후 여자를 버려두고 혼자 달아나 버렸다고 한다.무사의 아내는 인간의 욕정에 이끌려 남편에게 돌아가기에는 이미 몸을 버렸고 남편의 태도는 너무 냉랭하였다. 결국 여자는 분노와 놀라움으로 남편을 살해하는 지경까지 가게 되었다고 한다.무사는 무사의 아내로서 행동해주지 못하는 아내가 원망스러운 동시에 겁탈현장을 지켜보며 자신의 무기력함과 죄책감에 괴로워하고 또한 아내에 대한 증오와 질투가 한꺼번에 드러나 자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다.숨어서 지켜보던 나무꾼의 이야기도 한 남자가 부추겨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남편과 산적이 싸움을 시작 하긴 했는데 그 싸움의 꼴은 우습기 짝이 없었다. 그런 웃기지도 않은 싸움 끝에 남편이 목숨을 잃었고 부인은 남편이 죽자 도망을 가더라는 것이다.영화상으로 보여 지는 당사자들의 이야기들은 모두 다 그럴 듯 하지만 네 사람이 동시에 입이 맞는 부분은 '남편의 죽음'과 '산적의 강간' 그 외의 부분은 도무지 말이 맞는 곳이 하나도 없다. 동일한 사건임에도 이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 이야기가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면 또 저 사람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이 영화 안에서 '여자가 강간당했다' '남편이 죽었다'는 두 가지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누가 무엇 때문에 왜 죽였는가에 대한 진실은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나는 사실 마지막에 사건의 진실이 누구인지 밝혀 질줄 알았다.사무라이 부부와 다조마루에 얽인 추악한 이야기는 비가 그치면서 마무리되고 인간에 대한 비웃음으로 엔딩을 맞이하는 줄 알았지만 이 이야기를 주고받던 세 사람은 어린 아기를 발견하게 된다. 위증을 하고 단검을 팔아 돈을 번 나무꾼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아기를 맡겠다고 한다.전후의 참상과 인간의 이기심, 거짓과 진실의 모호함 속에서도 한 가지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바로 이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아기이다. 이 아기를 통해 영화는 수많은 절망 속에서도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이 남았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나는 도적과 여인의 행동에 대해 이해 할 수 없었다. 남성우월주위를 매우 배타적으로 생각하고 모든 일을 여성학적 관점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인은 분명 자신이 의도적으로 한 일이 아니라 도적에 의해 성폭행을 당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굉장히 수치스럽게 여기고 도적은 그해 대해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사실 수치심과 죄책감은 가해자의 것이지 피해자의 것이 아니다. 피해자가 겪는 가장 큰 피해 중 강간이나 성폭행으로 인해서 "나는 더러워 졌다." "결국은 내 책임으로서 문제는 나에게 있다." "나도 성적인 흥분을 느꼈기 때문에 나도 책임이 있고, 나도 부도덕하다."등의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엄밀하게 따지자면, 성폭행은 가해자가 수치감을 느끼고 창피를 당하고, 죄책감을 느껴야지 피해자가 느껴야 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성폭행으로 인해서 자신이 더러워 졌다고 하면서 자신을 저주하는 것은 피해자가 자신에게 가해하는 행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성폭행으로 인해서 순결을 잃었다고 하는 것은 논리와 현실이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 시대상으로 보았을 때 여성은 정절을 중요시 여기고 여성에게 있어서 성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 때라 생각한다. 이 시대의 여성의 성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생각되었으며 그 욕구를 충실히 누를수록 덕을 갖춘 여성으로 평가되었다. 성이라는 것은 남성이 여성을 누르기 위한 제재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철저하게 남성의 시각으로 보여 지고 남성에 의해 만들어진 이 영화도 강간이 여인의 삶을 옥죄는 굴레가 된 것처럼 보여준다. 남성의 입장에서 그려진 여인의 모습을 남성들의 시각을 반영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신빙성이 적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