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Bronze개인인증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2
검색어 입력폼
  • 판매자 표지 명청시대 이갑제
    명청시대 이갑제
    이갑제주원장의 정책목표 가운데 하나가 농민생활 의 안정이었으며, 이는 요역 부문에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원말 이치(吏治)의 문란과 요역 부담의 편중으로 인한 농민의 고통을 잘 알고 있던 주원장은 요역을 주민의 능력에 따라 공평하게 부과한다는 목표를 내걸고 전국적으로 인구와 자산을 조사하여 부역황책을 만들었고 이와 동시에 향촌사회의 여러 업무를 주민 스스로에게 맡긴다는 방침 아래 그들을 조직하여 요역을 부과하는 제도를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유명한 이갑제(里甲制)이다. 이갑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것은 부역황책(賦役黃冊)이 작성되는 홍무14년(1381)인데 황책의 구성 자체가 이갑조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이갑제는 이미 그 전에 구상된 것이다.이갑의 내부조직은 장정수와 세량액의 많고 적음에 따라 이장호(里長戶) 10호와 갑수호(甲首戶) 100호로 각각 편성되어 있고 이들보다 정(丁)과 양(糧)이 적거나 노인이나 어린아이 내지 부녀자만으로 구성되어있는 집들은 각각 대관(帶管)호, 기령(畸零)호라 하여 함께 이갑에 포함되었다. 따라서 한 이(里)는 110호보다 많은 것이 보통인데 대체로 자연 촌락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져, 촌락이 작은 경우는 몇 개를 합치고, 큰 경우에는 두어 개 정도로 분할하는 등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났다. 당시 지방에는 현 밑에 향(鄕)이 있고 그 밑에 지역에 따라 호칭이 달랐던 이(里)?촌(村?)사(社)?보(保)?둔(屯)?장(莊) 등이 있으며 또 그 아래에는 자연촌락들이 존재했는데 이갑제가 시행되면서 이 촌?사?보 등에 해당하는 구획이 그대로 이(里)로 편성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이갑이 비록 인위적으로 편성된 것이라 해도 그것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향촌 내의 구체적인 상호관계나 결합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므로 가능한 한 자연촌에 기반을 두고 조직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아무튼 이갑의 역(役)은 한 명의 이장과 10명의 갑수가 1년간 담당하여 10년에 한번씩 돌아오게 했는데 10년째에는 다시 각호의 정?량을 조사하여 황책을 새로 만들고 그에 따라 역을 지도록 한느 방식이었다.이갑역이 하는 일은 원래 다음 두 가지가 대표적인 것이었다. 하나는 세량의 징수와 독촉, 다른 하나는 이(里)내의 범법자 체포를 포함하여 홍무4년에 남직례?절강?강서?호광 등에 세량징수와 운반을 위하여 특별히 설치한 양장(糧長)이 있는 곳에서는 이장이 양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하였다. 두 번째 일은 원문이 구섭공사(勾攝公事)인데 종래에는 ‘공사’를 넓게 해석하여 이갑 내의 제반 공적인 사무 수행을 보조하는 것으로 보았으나 근래에 새로운 설이 대두되어 이에 따랐다. 이갑역이 이같이 말단의 행동대원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서 이갑 중에서 나이도 들고 덕망이 있는 사람을 이노인(里老人)으로 임명하여 비교적 경미한 소송사건을 처리하도록 하고 이내의 교화와 권농도 맡겼다. 이장과 갑수는 이 두 가지 일 외에 황책의 작성과 이갑 주민의 동향파악도 했는데 후자는 이갑역만이 한 것은 아니고 기타 직역(職役)과의 협조를 통해 수행되었다.그런데 후대로 가면서 이갑이 부담해야 할 역의 내용이 늘기 시작하였다. 본래 생산자로부터 직접 특산물을 납부시키거나 세량에서 절납, 또는 정부의 그매 등 다양한 방법으로 궁중과 중앙정부의 수요를 해결했던 상공물료와 원래 국가예산으로 해결해야 할 지방정부의 운영경비인 공비(公費)가 모두 이갑의 부담으로 된 것이다. 이같이 바뀐 것은 대체로 영락연간 때부터였는데 이는 전술한 존류의 감소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더욱이 15세기 후반 이래 상공물료와 공비의 항목 및 그 액수가 자꾸 늘어나서 그것이 본래의 두 가지 일보다 부담이 더 커져버리니 이갑의 납부액은 갈수록 늘어나고 특히 공비의 경우는 그 해의 당번인 이장 갑수가 그 잡다한 경비를 다 대고 실제 노력봉사도 하는 등 부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어찌됐든 1년 고생하면 9년은 쉬는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실은 일반 민호(民戶)가 짊어져야 할 또 한 종류의 역이 있었으니 바로 잡역(雜役)이다. 본래 이갑역보다 먼저 있었던 것이나 이갑제가 생기면서 이갑역이 정역(正役)이라 불리고 그 밖의 여러 많은 역들이 뭉뚱그려저서 잡범차역(雜泛差役) 내지 잡역이라 불리게 되었는데 이 부담도 해가 갈수록 만만치 않는 것이 되었다. 전국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것만을 들어봐도 중앙 및 지방관청에서 잡무를 맡아보는 조예(?隸), 감옥을 지키는 금자(禁子), 각 기관의 문을 파수하는 문자(門字), 관원의 거마을 부리는 마부, 각 학교에서 시중을 드는 재부(齋夫)와 음식을 만드는 선부(膳夫), 지역의 경찰업무를 맡아보는 궁병(弓兵), 아문의 창고를 지키는 두급(斗級)과 고자(庫子), 물자를 수송하는 해호(解戶), 관용 교통과 운수를 담당하는 역부(驛夫)?수부(水夫), 공문서를 전달하기 위하여 전국 곳곳에 설치한 급체포(急遞鋪)의 포사(鋪司)?포병(鋪兵)등이 있고 이 밖에도 지방별로 상당히 많은 종류가 있는데 거의 다가 지방정부가 담당해야 할 업무로서 이것을 경비를 안 들이고 요역으로 해결했던 것이다.잡역은 관청의 필요에 따라 수시로 부과되었고 그 인원이나 기한에 관한 규정이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처음에는 부유한 호(戶)에 주로 부과하고 그 양도 많지 않더니 해가 갈수록 관(官)의 자의로 요역이 과다하게 부과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조예의 예를 들어보면 그 숫자가 정통6년(1441)의 규정에 포정사(布政司)에 36명, 부(府)에 20명, 주(州)에 14명, 현에 10명으로 되어 있는데, 어떤 관청에서는 몇 십 명씩 심지어는 이삼백 명씩 초과하여 지방관의 사적 용무에 동원되기도 하고 그들로부터 금품을 받아내기도 했다. 두급과 고자의 경우는 그 교대가 제때에 이루어지지 않는 게 문제였다. 홍희원년(1425) 북경의 지방정부라 할 순천부(順天府) 예하의 한 백성은 궁중의 천재고(天財庫)에서 역을 한지 5년 만에 교대가 되어 돌아가는데 고(庫)의 관원이 도망간 것으로 알고는 체포를 하자 조정에 호소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 선덕제는 그 체포한 관원을 처벌했지만, 그 후에도 유사한 일이 또 일어나자 모든 역은 반드시 1년마다 교대하도록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잡역은 신사(紳士)의 호는 면제시키고 일반 민호에게 부과하는데 부담이 무거운 역은 세량을 많이 내는 호에게, 가벼운 것은 적게 내는 호에게 할당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를테면 조예와 금자와 궁병은 세량액이 2~3석인 호에게, 역부와 수부는 5~10석인 호, 포사와 포병은 1.5~2석인 호에게 부과하는 식이다. 홍무18년 부터는 역전(驛傳)과 관련된 역을 제외하면 호를 상중하 3등급으로 나누어 부과하는 것으로 대개 바뀌었는데 호의 등급은 황책에 기재되어 있는 정(丁)수와 세량액, 자산 등에 의해 분류되었다. 그 분류작업은 황책 작성의무를 진 이장의 일이므로 지역의 부유한 호들이 이장에게 손을 써서 등급을 낮추거나 아예빠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리되면 결국 그 부담은 가난한 호에게 전가 된다. 이 같은 폐해는 명조가 세워진지 70~80년쯤 지난 15세기 전반의 선덕?정통 연간에 이르러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이제 그 불공평함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개혁이 강구되어야 할 때가 온 것이다.주원장이 나름대로 꿈꾸었던, 지주와 자작농층을 주체로 한 향촌사회 질서의 체현이자 조직인 이갑제는 그의 사후 몇 십 년이 지나지 않아 그 구조가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명 초기부터 현실적으로 지주?전호의 생산관계 관행이 엄존해 있었고, 대토지소유의 진전으로 인한 사회의 계층분화가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작농을 기반으로 균분균역 이념을 표방한 이갑제는 내재적인 모순을 서서히 드러내게 되었다. 특히 사회분화현상은 사회변화와 발전 속도에 따라 확대될 수밖에 없었으며 중기에 들어서면서 더욱 심화 또는 가속 되었고, 사회 여러 부문에 걸쳐 동시 병렬적으로 일어남으로써 이갑질서는 점차 붕괴되어 갔다.이갑제의 임무 가운데 특히 중요했던 것이 부역징수였는데 명조의 재정규모가 점차 커짐에 따라 명초에 비교적 가벼웠던 부역이 점차 증가하여 농민의 부담이 갈수록 무거워지고, 상품생산 및 화폐경제의 진전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확대되어가는 상황에서 세역의 은납화는 상업적 대지주의 땅을 경작하던 농민의 부담을 가중시켰을 뿐 아니라 이갑 구성원들 간의 불균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사회과학| 2022.07.06| 3페이지| 2,500원| 조회(160)
    미리보기
  • 판매자 표지   비디오스튜디오(Ulead,Corel Video Studio) 강좌-레포트 강의자료
    비디오스튜디오(Ulead,Corel Video Studio) 강좌-레포트 강의자료 평가A+최고예요
    비디오스튜디오를활용한 동영상 편집1. 비디오스튜디오 소개12. 비디오스튜디오 설치 및 실행하기13. 콘텐츠 배치하기64. 장면전화 효과 적용하기115. 비디오 필터 적용하기166. 타이틀(자막) 적용하기177. 동영상 클립 작업하기218. 배경음악 삽입하기239. 인코딩 하기2710. 고급 기능 활용30(1) 비디오필터 세부기능 활용 30(2) 오버레이 기능 활용33(3) 나레이션 녹음하기380. 비디오스튜디오 소개(0) 개요Ulead사에서 최초로 개발되었고 지금은 Corel사로 인수되어 비디오를 취미로 즐기는 사람들 및 UCC 애호가에게 PC에서 전문적인 형태의 비디오와 슬라이드 쇼를 쉽게 제작할 수 있다. 초보자의 경우 편리한 마법사를 통해 자동으로 영상을 캡처하고 몇 분 안에 비디오를 마무리하여 메뉴, 타이틀, 전환, 음악 등을 완전하게 갖춘 영상을 만들 수 있다.(1) 주요 기능VideoStudio 편집기는 멋진 가정용 동영상을 제작할 때 필요한 모든 도구를 제공합니다. 간단한 단계적인 워크플로를 따라하면 기술적인 편집 기능을 배우는 것보다 창조적인 작업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0) 쉽고 융통성 있는 사용자 인터페이스가 장점이다.1) 비디오 캡처 및 가져오기(DV, DVD, HDV 캠코더)가 가능하다.2) 선명한 필터 및 효과가 지원된다.3) 오디오 편집이 가능하여 뛰어난 사운드의 구현이 가능하다.4) 거의 모든 비디오 소스의 사용이 가능하다.1. 비디오스튜디오 설치 및 실행하기(0) 설치 CD를 넣고 'Setup'을 진행한다.(1) 'Next‘를 클릭한다.(2) 라이센스에 동의하고, 'Next'를 클릭한다.(3) 'User Name'과 'Company Name'을 적고 'Next'를 클릭한다.(4) 설치할 디렉토리를 정하고 ‘Next'를 선택한다.(5) 설치될 국가를 선택한다. ‘대한민국’을 선택하면 북미식(NTSC)방식이 자동으로 선택된다.(6) 'Next'를 눌러 진행한다.(7) 파일 복사가 진행된다.(8) ‘Finish'를 눌러 설치를 완료하고면의 'Video'를 누르면 콤보박스가 펼쳐지는데 ‘Image'를 선택한다.(3) 비디오를 가져올 때와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이미지를 가져온다.(4) 이미지의 번호 순서 대로 아래의 스토리보드(Story Board)에 배치시킨다.배치시킬 때는 아래 그림 처럼 마우스를 이용하여 해당 사진을 끌어다 놓으면 된다.(5) 이번에는 콤보박스를 선택하여 'Video'리스트로 이동한다. ‘Video'리스트 중에서 ’001.avi파일을 마우스로 끌어다가 스토리보드의 3번과 4번 사진 사이에 배치한다. 그러면 삽입된 동영상 때문에 이미지들이 한단계씩 뒤로 밀려나는 것을 볼 수 있다.이어서 ‘002.avi'와 ’003.avi' 를 6번 이미지 뒤에 순서대로 배치 시켜보자.알아두세요!동영상 편집 작업은 PC의 자원을 많이 사용하는 장시간의 작업이 대부분이므로 시스템 오류로 인한 작업 손실을 막고 다음에 연속적인 작업을 하기 위해서 10분에 한번 자동으로 프로젝트가 저장된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프로젝트가 저장되어 있는 경우에 해당되므로 ‘File > Save’를 선택하여 최초 저장을 해주도록 한다.3. 장면전화 효과 적용하기(0) 비디오스튜디오의 기본 편집화면은 초보자를 위한 ‘Storyboard View'로 되어 있으나, 세밀한 작업을 위해 현재 선택 되어 있는 버튼 우측의 버튼(Timeline View)을 선택하여 작업을 진행한다.알아두세요!이미지 하나당 기본 재생시간은 3초이다. 마우스를 이용하여 이미지 클립의 경계부분을 드래그하여 원하는 길이만큼 조절이 가능하다.(1) 장면전환 효과를 사용하기 위해 상단의 버튼을 클릭한다.(2) 장면전환 효과를 선택하면 아래 그림처럼 ‘A’에서 ‘B’로 변환하는 여러 가지 화면을 볼 수 있다.(3) 해당 효과를 클릭하면 아래 그림처럼 좌측에 장면전환 효과를 테스트 해볼 수 있는 화면이 제공된다. 재생버튼을 눌러 테스트 해보도록 한다.(4) 상단의 선택상자를 클릭하면 더욱 다양한 효과를 선택이 가능하므로 본인이 의도하는 효과가 무엇인지 확인한설정(7) 모든 클립의 경계 부분에 효과를 적용하여 본다.알아두세요!화면에서 클립을 다른 클립이 보고 싶으면 하단의 스크롤바를 활용하고, 더욱 세밀한 타임라인 작업을 하고 싶거나 대략적인 클립 화면을 보고 싶을 때는 돋보기 기능을 활용하면 된다.(※ 본 예제에서는 'F/X > CrossFade'효과를 일괄적으로 적용하였다.)4. 비디오 필터 적용하기(0) 클립자체에 효과를 적용하는 기능으로 상단의 선택상자를 클릭하면 필터를 활용할 수 있다.(1) 비디오 필터는 50개가 기본적으로 샘플링 되어 있으며, 사용자가 세부적인 설정을 할 수 있는 기능이 지원된다.(2) 첫 번째 이미지(bds1.jpg)에 'Cloud' 필터를 적용해 보자. 장면전환 효과를 사용할 때처럼 해당 필터를 이미지 클립위에 끌어다 놓으면 된다.(3) 필터효과가 적용된 화면을 재생 버튼을 눌러 테스트 해보면, 아래 그림처럼 구름이 지나가는 영상이 완성된다.(4) 다른 클립에도 적절한 비디오 필터를 적용해 보자.5. 타이틀(자막) 적용하기(0) 상단의 을 클릭한다.(1) 좌측 화면에 ‘Double-click here to add a title’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더블 클릭하고 제목을 적는다.(2) 자막은 기본적으로 클립의 재생 기본 시간인 3초동안 적용된다.(3) 글자체가 너무 단조로우므로 우선 제목을 드래그 하고 원하는 글자체를 선택한다.(4) 색상 선택기를 이용하여 자막에 원하는 색상을 입힌다.(5) ‘Border/Shadow/Transparency’를 이용하여 테두리, 셰도우, 투명도 설정을 한다. 설정화면 우측에 대문자 'A'로 어떻게 세부설정이 되는지 바로 리뷰가 된다.글자 테두리 색상 선택하기글자 테두리 두께 설정하기글자에 셰도우 적용하기(6) 글자에 효과를 적용한 그림은 아래와 같다.알아두세요!1. 위 상태에서 키보드로 방향을 지정하면 글자의 위치가 이동 한다.2. 노란 점으로 마우스를 이동하면 글자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커서가 생긴다.3. 자주색 점으로 마우스를 이동하면 글자를볼륨조절, 음소거, Fade in, Fade out 을 각각 설정할 수있다. 영상 클립에 음소거를 설정하여 배경음악을 설정하더라도 어색하지 않게 한다.적용 전적용 후(2) 마우스 포인터를 영상클립 바로 앞부분 타임라인에 위치시킨 후, 그 부분부터 재생을 하여 효과가 정상적으로 적용되었는지 테스트 해본다.(3) ‘002.avi', ’003.avi'도 마찬가지로 위의 설정을 참고하여 작업해준다.7. 배경음악 삽입하기(0) 상단 메뉴에서 를 클릭하여 오디오 메뉴를 불러온다.(1) 오디오파일을 불러오기 위해 를 클릭한다.(2) 원하는 오디오파일을 선택하여 열기를 누른다.알아두세요!1. 를 클릭하면 선택된 미디어가 재생이 된다.2. 에 체크를 하면 오디오나 비디오 파일을 별도로 재생버튼으로 작동시키지 않아도 자동으로 미리 재생해 볼 수 있다.(3) 가져온 파일이 리스트의 우측에 오디오 클립으로 등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4) 오디오 클립을 'Music Track'으로 끌어온다.(5) 하단의 스크롤 바을 이용하여 ‘Video Track' 타임라인의 끝부분까지 이동한다.(6) 영상이 끝나는 부분의 타임라인 안쪽을 마우스로 클릭해서 그 부분에 포인터가 지정되게 한다.(7) 오디오 클립을 기준으로 위의 타임라인에 표시한 부분은 아래 그림에서 화살표가 지시하는 위치와 동일한 부분이다. 표시한 부분 이후로는 동영상 재생에 아무 필요가 없으므로 삭제하도록 한다.(8) 현재 상태에서 버튼을 누르면 아래그림 처럼 오디오 클립이 절단된 모습을 볼 수 있다. 키보드의 'Del'키를 눌러 타임라인 상에서 제거 한다.(9) 남아 있는 배경음악용 오디오클립에다 볼륨을 알맞게 조절하고, Fade In - Fade Out 효과를 적용한다.(10) 효과가 적용된 오디오클립은 음악이 시작하는 부분에서는 볼륨이 서서히 높아지고, 음악이 끝나는 부분에서는 볼륨이 서서히 낮아진다.알아두세요!작업 중에 갑자기 프로그램 오류가 생겨도 당황하지 마세요~!!!오류로 인해 비디오스튜디오가 비정상 종료해도 다 이었으므로 아래의 인코딩 옵션을 선택한다.(4) 저장될 폴더를 지정하고, 파일 이름을 적은 다음 ‘저장’ 버튼을 누른다.(5) ‘저장’버튼을 누르면 지정된 폴더에 파일이 인코딩 된다.(6) 파일 인코딩이 100% 끝나면, 비디오스튜디오 재생기에서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된다.(7) 지정된 폴더에 파일이 정상적으로 저장되었는지 확인하고 외부재생기(예:곰플레이어, 알쇼, KMP)로 재생하여 테스트 한다.알아두세요!◎비디오 품질은 곧 화질이라고 할 수 있으며, 화질은 해상도와 초당 프레임 수(fps)에 의해서 결정이 된다. 해상도가 높으면 미세한 부분도 표현이 가능하지만 해상도가 낮으면 화면이 거칠어진다. 그리고 초당 프레임 수가 많을수록 장면 전환은 부드럽지만 초당 프레임 수가 적어지면 동작이나 움직임이 어색하고 끊기는 느낌이 난다.비디오는 사용하는 압축 코덱에 따라 결과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압축율이 낮은 비디오는 화질이 좋지만 파일 용량이 커지고, 압축율이 높은 비디오는 상대적으로 화질은 좋지 않지만 파일 용량이 작아진다.◎오디오 품질은 곧 음질이라고 할 수 있으며, 압축율에 의해서 음질이 결정이 된다. 압축하는 방법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압축율이 낮으면 음질은 좋지만 파일 용량이 커지게 된다. 반면 압축율이 높으면 파일 용량은 작아지지만 음질이 떨어지게 된다.9. 고급 기능 활용(0) 비디오필터 세부기능 활용완성된 프로젝트에 비디오필터 효과를 추가적으로 적용하도록 한다.0) 'Lensflare' 적용? ‘bds3.jpg’를 선택하고 재생시간을 5초로 늘려준다.→① 비디오 필터 중에서 를 ‘bds3.jpg’에 적용한다.② ‘Attribute’탭을 선택해보면 기존에 적용되어 있던 ‘Cloud’효과가 보이고, 그 아래 ‘Lensflare'효과가 새롭게 적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개의 효과는 서로 겹쳐 보이게 된다.새롭게 필터를 추가하면 계속 효과가 누적되게 된다.③ 필터 리스트 아래의 선택상자를 눌러보면 미리 설정된 6개의 다른 세부설정이 있다.된다.
    자연과학| 2010.01.29| 43페이지| 3,500원| 조회(2,865)
    미리보기
  • 판매자 표지 adobe audition 주요 효과 및 녹음기능 사용방법
    adobe audition 주요 효과 및 녹음기능 사용방법
    본 문서는 Adobe audition 3.0을 기준으로 만들어 졌습니다.버전에 따라 메뉴가 다르긴 하지만 메뉴 항목만 같다면 기능은 같습니다.목차1. 볼륨 조절 및 페이드 효과2. 보컬 제거3. 지연 및 에코 효과4. 변조 효과5. 노이즈 제거 및 복원6. 속도 조절7. 녹음 설정 및 Edit View에서 녹음하기8. Multi track View에서 녹음 후 Mixdown하기1. 볼륨 조절 및 페이드 효과Effect?> Amplitude and Compression(진폭 및 압축효과)?> Amplify (증폭효과) : 오디오 신호를 증폭하거나 감쇄할 수 있다.Effect?> Amplitude and Compression(진폭 및 압축효과)?> Amplify/Fade : 페이드인 페이드 아웃 효과를 적용할 수 있음2. 보컬 제거Effect >Stereo Imagery >Center Channel Extractor:?왼쪽 및 오른쪽 채널 모두에 공통적인 주파수, 즉 가운데로 팬되는 사운드를?유지하거나 제거합니다. 대개 음성, 저음 및 주선율 악기는 이 방식으로 기록됩니다. 따라서 이 효과를 사용하여 보컬, 베이스 또는 킥 드럼의 볼륨을 높이거나 그 중 하나를 제거하여 노래방 믹스를 만들 수 있습니다.>> Vocal Remove : 보컬에 해당하는 주파수를 제거하는 기능?3. 지연 및 에코 효과Effect >Delay and Echo(지연 및 에코 효과) : 지연은 원본 신호에서 복제되어 수 밀리초 안에 다시 발생하는 별도의 사본이다. 에코는 원본 사운드와는 뚜렷이 구분되는 사본으로 들리도록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지연되는 사운드이다. 반향 또는 코러스 효과는 믹스를 혼탁하게 할 수도 있지만 지연 및 에코는 트랙의 분위기를 돋우는 훌륭한 방법이다.>> Delay(지연효과) : 다른 여러 효과 뿐만아니라 단일 에코를 만드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35밀리초 이상의 지연은 불연속 에코를 만들지만 15-34밀리초의 지연은 단순한 코러스 또는 플랜저 효과를 만든다. 하지만 지연 설정은 아래 그림의 '코러스'나 '플랜저' 효과 보다는 결과가 효과적이진 않다.>> Echo(에코효과) : 사운드에 일련의 반복되는 소멸형 에코를 추가한다. 단일 에코를 만들려면 '지연'효과를 사용한다. 지연 양을 조절하면 협곡의 메아리부터 금속성으로 진동하는 배관음 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효과를 만들 수 있다.?- 반사형 사운드 : 지연을 균일화 하여 실내의 고유한 사운드를 밝은 느낌의 에코를 만든다.- 흡수형 사운드 : 소리가 흡수되어 없어지는 느낌의 어두운 사운드4. 변조 효과Effect >Modulation(변조효과) >Chorus : 코러스 효과는 약간의 피드백이 포함된 짧은 지연을 여러 개 추가하여 동시에 재생되는 다수의 음성아니 악기소리를 시뮬레이션 한다. 이 효과를 통해 다채롭과 풍부한 사운드를 얻을 수 있다. 코러스를 사용하게 되면 보컬 트랙을 향상시키거나 모노 오디오에 스테레오와 같은 느낌을 추가 할 수 있다.Effect > Modulation(변조효과) >Chorus/flanger(코러스/플랜저 효과)[변조] >[플랜저] 효과는?딜레이를 응용한 이펙터의 하나. 제트기의 상승 하강음과 같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짧은 지연을 여러 개 추가하여 여러 음성이나 악기 소리가 동시에 재생되도록 시뮬레이션합니다. 이 효과를 통해 다채롭고 풍부한?사운드를 얻을 수 있다. 이 효과를 사용하면 보컬 트랙이 강화되거나 모노 오디오에 스테레오 공간감이 추가된다.5. 노이즈 제거 및 복원Effect >Restoration(복원) >Noise Reduction (노이즈 감소):??[노이즈 감소] 효과는 배경 및 광대역 노이즈를 크게 줄이며, 신호 품질 저하는 최소한으로 유지합니다. 이?효과는 지속적으로 들리는 노이즈 등의 다양한 노이즈 조합을 제거할 수?있습니다. ?적절한 노이즈 감소의 양은 배경 노이즈의 유형과, 나머지 신호에 대해 적절한 품질 손실 정도에 따라 달라집니다.Effect >Restoration(복원)> Automatic Click Remover (클릭음 자동 제거):?레코드 기록에서 탁탁거리는 소리와 잡음을 빠르게 제거하려면 [노이즈 감소/복원] >[자동 클릭 제거] 효과를 사용하십시오. 오디오의 넓은 영역이나 하나의 클릭 또는 팝 음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6. 속도 조절Effect >Time and Pitch >Stretch(스트레치): 이 효과를 사용하면?음성 구간의 속도를 늦추거나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Effect >Time and Pitch > Pitch Shifter(피치 시프터) ?:?오디오의 피치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이 효과를 사용하여 노래의 키를 더 높게 변경할 수 있습니다.Effect >Time and Pitch >Stretch(스트레치): 이 효과를 사용하면?음성 구간의 속도를 늦추거나 빠르게 할 수 있습니다.Effect >Time and Pitch > Pitch Shifter(피치 시프터) ?:?오디오의 피치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이 효과를 사용하여 노래의 키를 더 높게 변경할 수 있습니다.6. Edit View 에서 녹음하기1) 마스터 볼륨상태를 조절 한다.- 옵션 >속성 >믹서장치를 'output' 선택- 마이크 관련 된 속성을 체크한다.- 여기선 'front mic'를 사용한다.- pc의 뒷 마이크 단자를 선택할 땐 'rear pink in'은 선택한다.(pc마다 컨트롤 이름이 다를 수 있음)- 'front mic'에 음소거 체크가 해제 되었는 지 확인한다. 음소거에 체크가 되어 있으면 마이크로 녹음을 할 수 없음.- '옵션 >고급 콘트롤'을 선택하고 'frontMic'의 고급 콘트롤을 선택한다.- 그리고 '마이크 증폭'을 선택한다. 이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소리가 작게 녹음 된다.2) 녹음 콘트롤 상태를 조절 한다.- 마스터 볼륨의 '옵션 >속성'으로 들어가서 'audio input'를 선택한다.- 사용할 볼륨 컨트롤인 'front mic'를 ?선택한다.3) audition에서 녹음할 새 작업 화면을 생성한다.
    공학/기술| 2011.09.15| 14페이지| 2,000원| 조회(2,663)
    미리보기
  • 판매자 표지 명・청시대의 지방행정제도
    명・청시대의 지방행정제도 평가A+최고예요
    명?청시대의 지방행정제도명청시대의 공식 지방행정계에서 가장 큰 단위는 성(省)이었고 그 다음의 단위는 부(府)였으며 주?현(州懸)은 가장 낮은 행정단위였다. 주는 부와 대등한 위치에 있는 것도 있었고 현과 동일한 위상을 가진 경우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말해서 명청시대의 주와 현은 중앙에서 관료를 파견하는 최하위 행정단위였다. 명대에 임시관으로 출현한 총독과 순무는 성의 최고관리로서 점차 상설 관직이 되었고 특히 청대에 지방행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 또한 각 성에는 행정 담당의 포정사, 감찰 담당의 안찰사, 교육 담당의 학정과 같은 관료가 있었다. 성 아래의 행정조직인 부(府)의 장관은 지부(知府)라고 했고 주의 장관은 지주(知州), 현의 장관은 지현(知縣)이라 했다. 지주(支柱)와 지현(知縣)의 역할은 매우 광범위하여 조세징수?치안?소송?풍속?교육?제사 등 자신의 관할구역 내의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주현의 행정은 지주?지현 혼자 담당하기에는 너무나 버거운 것이었으므로 그 밑에 행정을 돕고 집행하는 좌이관(佐貳官), 서리(胥吏), 아역(衙役), 장수(長隨), 막우(幕友) 같은 여러 종류의 보좌 인원이 존재 했다.주현관지주와 지현, 즉 주현관은 백성의 일을 직접 관장한다는 측면에서 일반 백성과 가장 가까이 있는 관료였으며 흔히 ‘부모와 같은 관료’(父母官)라 지칭되었다. 이는 바로 주현관이, 관원을 감독하는 관료인 지부 이상의 고위 지방관들과 다른 점이었다. 주현관의 임기는 보통 3년이었는데 자신의 출신지 부근에서 근무하지 못하게 규정한 회피제의 제약을 받았다.청대 옹정(擁正)연간부터 정부는 지방관 부임지의 성격을 충(衝)?번(繁)?피(疲)?난(難)으로 묘사했다. ‘최요’ 혹은 ‘요’로 간주되는 현의 경우 그 행정이 특히 중요했기 때문에, 이미 다년간 다른 곳에서 행정경험을 쌓은 기존의 지방관 중에서 적합한 인물을 해당 성의 총독?순무(이하 독무로 약칭)가 선발하여 지현에 임명했다. 즉, 행정 부담이 무겁지 않은 대다수의 현에는 봉급은 이보다 적은 액수였다. 그렇지만 양렴은은 이런 정규 봉급보다 많아서 지주의 경우 지방마다 차이는 있지만 은 500~2,200냥이었고 지현의 경우는 은 400~1,200냥이 일반적이었다.그렇다면 주현관은 이 정도의 수입으로 개인적 그리고 공무상의 지출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주현관은 자기 가족을 부양하는 것 외에 행정에 소요되는 여러 비용도 부담해야 했다. 우선, 자신의 지방행정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 막우나 장수에게 일정한 보수를 주어야 했는데 특히 막우의 봉급은 상당히 높았다. 또한 정부재정이 부족할 때는 자신의 양렴은에서 일정액을 기부해야 했다. 아울러 과거시험이나 군대 물자조달, 상급 아문의 사무경비를 위해서 정긱적으로 돈을 내야 했으며, 자기 관할의 세금 비축분에 대한 감사 이후 만약 부족분이 발견될 경우에는 이를 보충해야 했다. 이 밖에 상급관이 자신의 관할지역을 통과할 때는 접대비가 필요했고, 상급관 및 상급 아문의 관원에게 관례적으로 상납하는 떡값도 있었다.결국 이런 비용들은 주현관의 정규 봉급과 양렴은을 포함한 봉급 총액을 훨씬 초과하게 마련이었다. 주현관은 부족분을 다른 소득원을 통해 조달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이 ‘누규’)(陋規)라고 불리는 관행이었다.중국의 세제는 일단 정해진 뒤에는 오랫동안 변경되지 않았으므로 경비가 부족하게 되면 정규 세금 자체를 올리기보다는 부가세를 추가적으로 징수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보통 명청시대의 주현행정을 묘사할 때 ‘서리정치’라는 용어를 쓰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행정경험과 행정전문지식, 부임지에 대한 이해가 결여된 독서인 출신의 주현관이 실제로는 아문의 행정을 장악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실질적 권력은 지방의 사정과 실무에 능통한 서리들의 수중에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 연구자가 최근 지적한 것처럼 실제로는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책상물림 같은 게으른 문인들과 사악하고 교활하며 도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서리들이 결탁해서 과연 거대한 중국을 그렇게 오랜 시간에 걸쳐 비교적 무난하게 운 관련해서는 다른 아문에서 들어오는 서류를 접수하거나, 또 서리가 서류를 조작하거나 서류작성을 미루지 않도록 감독하는 역할을 했다. 재판과 관련된 기능으로는, 우선 재판준비를 감독하고 진행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 장수는 아침 일찍 그날 심리할 송사의 수를 확인하고 재판이 진행될 수 있도록 증인 및 기타 출석인원의 출두를 지휘했다. 살인사건이 보고될 경우 장수는 보고서를 검토하여 주현관에게 제출하고 형방의 서리, 검시 담당 아역에게 재판에 참석하도록 알려야 했다. 검시일이 잡히면 아역을 미리 보내 검시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도록 하는 것도 장수의 책임이었다. 또한 장수는 아역들이 감옥과 죄수를 잘 관리하고 있는지도 점검해야 했다. 세금징수와 관련해서도 서리와 아역을 감독하여 업무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 장수의 주된 역할이었다. 장수는 세금징수를 위한 서류가 잘 구비되어 있는지, 징수는 잘 이루어지고 있는지, 이 과정에서 서리와 아역의 농간이 없는지 점검했다. 결국 장수라는 존재는 주현관의 일상적 사무를 도와 주현관의 업무 부담을 줄여주며, 아문 내 여러 집단의 활동을 조율하고, 서리와 아역을 감독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장수의 사회적 신분은 천민이었으므로 과거에 응시하거나 관직을 가질 수 없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일부 장수는 주현관 가족의 오래된 가복이었고 일부는 친척·친구·동료·상관이 추천해준 자들어었다. 또한 성도(省都)에서 가난한 신임 주현관이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장수 자리를 얻은 사람도 있었다. 가난한 주현관에 돈을 빌려주고 주현관이 그 빚을 다 갚을 때까지 자신을 장수로 고용하게 했던 것이다. 장수는 능력과 임무의 성격에 따라 보수를 받았지만 대게 형식적인 수준이었고 주된 수입원은 역시 여러 종류의 누규였다. 앞서 행정업무의 증대에 따라 서리와 아역의 수가 증가했음을 언급한 바 있는데 이렇게 증가한 서리와 아역을 통제하면서 행정을 보좌하기 위해 장수·가인·막우 등 주현관이 개인적으로 고용한 인원 역시 18세기 동안 그 수가 급격)의 시행과 더불어 징세와 송사(訟事)와 문서행정이 늘어났는데, 이 역시 서리의 수와 중요성을 증가시킨 한 가지 요인이 되었다.서리는 주현관과는 달리 현지에서 충원된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현지 사정에 밝은 반면 현지인의 이해관계를 주현 행정에 자의적으로 반영할 여지도 많은 존재였다. 지방의 유력 신사는 자기 휘하의 인물을 서리?아역에 배치하고 지방아문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었다. 한 집안의 인물이 아문에 가게 되면 그 집안은 그 사람을 통해 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서리의 근무기간은 5년이었지만 이 기간이 다된 뒤에도 이름을 바꾸는 방식으로 그 자리에 계속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자신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가족이나 친척이 후임자가 되려고 노력했다. 결국 주현관은 계속 바뀌더라도 서리는 터줏대감이나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았다. 서리가 사무에 능숙해질수록 지방관의 행정에 도움이 되었지만, 반대로 부정을 저지를 가능성도 커졌다고 할 수 있다.서리는 문서를 다루는 직책이었으므로 어느 정도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서리 중에는 과거시험을 준비하다가 실패하여 서리가 된 사람들도 있었다. 서리는 아역과 달리 글자를 읽을 줄 알았으므로 종종 정직성이라든가 도덕적 수양이라는 유학자의 덕목을 자신의 직업과 연관짓곤 했다. 그래서 자기들이 유교경전을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이라고 자화자찬을 하곤 했다. 이것은 자기의 직업을 명예로운 것으로 미화하고 싶은 바람에서 나온 표현이다.서리는 5년의 근무기한을 채운 뒤에는 관료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생겼는데, 독무가 주관하는 시험에 합격한 사람들은 하위직에 임용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관료가 될 자격을 얻었더라도 바로 현진에 임용되지 못하고 본적지에서 마냥 대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또한 실제 관진에 오르더라도 지위가 매우 낮고 수입도 적었기 때문에 그들은 가능한 한 서리 자리에 눌러 앉으려고 했다.정식 서리인 전리의 정원은 매우 적었지만 이들이 고용하는 정원 외 서리의 수는 계속한 준비를 갖추어 놓았다. 재판이 진행될때 피의자에게 고문을 가하여 자백을 받고 체벌을 시행하는 것도 이들의 임무였다. 아역은 야간순찰, 소환장 전달, 범인 체포, 세금징수 재촉 같은 업무도 담당했다. 강도나 도둑을 잡거나 야간순찰을 돌거나 곡물?관은(官銀)창고, 감옥을 지키거나, 관은 혹은 죄수를 호송하는 것 역시 아역의 업무에 속했다. 이 밖에도 곡물을 측량하거나, 검시를 하거나, 가마를 나르는 일을 하는 아역도 있었다.아역의 범주에 이런 집단들이 모두 포함되지만 모두 같은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었다. 일부 아역은 평민이었지만, 그 밖의 아역은 법적으로 천민이었고 과거에 응시하거나 관직에 오를 수 없었다. 그러므로 아역은 지식인과 평민이 멸시하는 대상이 되곤 했다. 서리와 마찬가지로 주현에서 고용할 수 있는 아역의 수는 각 성마다 정해져 있었다. 그렇지만 서리와 마찬가지로 그 정원은 현실적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고 실제로는 훨씬 많은 수의 아역이 존재했다. 이렇게 행정상의 현실적 수요에 따라 추가적으로 고용된 아역을 )백역(白役)이라 하였다. 그 외에 자신과 가족의 보호를 위해 돈을 내고 명목상으로만 아역으로 등록하고 일은 하지 않는 아역도 있었다.아역의 봉급은 평균적으로 약 은 6냥 정도로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본래 아역의 업무는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복무해야 하는 것이었지만 명말 이래 요역의 은납화에 따라 납역자들은 요역을 직접 부담하는 대신 돈을 냈고 이 돈은 전문적으로 아역의 업무를 담당할 사람을 고용하는 데 쓰이게 되었다.아역 역시 서리와 마찬가지로 각종 비리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는 서리와 더불어 아역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확산하는 원인이 되었다. 아역은 법적인 지위는 평민보다 낮을 수 있었지만 대민업무에서 관의 위세를 업고 있었기 때문에 권력을 남용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장수주현관은 현지 사정에 어두운 외지인이었으므로 토착민인 서리와 아역을 통제하고 자신의 행정업무를 도울 수 있는 보좌역이 필요했다. 지방행정에서 그런 보좌역했다.
    사회과학| 2011.04.01| 8페이지| 2,000원| 조회(307)
    미리보기
  • 프랑스 귀족과 사회
    프랑스 귀족과 사회중세 전성기의 귀족과 기사는 다른 지배층과 상호 작용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왕·도시민 ·농민을 포함한 그들 주위에 있는 사회와 상호 작용하였다. 전인구 가운데 기껏 5%인 극소수만이 지배층이었지만 이들의 영향력은 상당했다. 귀족들은 지주, 법집행자, 강력한 전사, 왕의 대리인으로서 새로운 세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력을 가졌고, 다른 계층은 엄두도 못낼 정도의 부를 과시했다.중세 전성기 내내 사회구조의 변화가 귀족과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 사이의, 그리고 귀족들 사이의 상호작용을 구체화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이런 사회구조들은 결코 법제화되지 않았으며, 사회의 기능에 대해 기술한 당시 사람들은 그들이 실제로 본 것 만이 아니라 원하고 있던 것을 묘사했다. 따라서 오늘날의 학자들은 저변에 있는 사회구조, 그리고 성문화되어 있지 않았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던 규범 을 추론해야만 한다.중세사회가 기도하고 싸우고 일하는 세 위계로 구분되었다고 하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중세인들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관점은 환경과 상황에 의해 당연히 제한되었지만, 미리 정의된 어떤 ‘위계’의 자격에 의해 제한된 것은 아니었다.이런 위계론은 11세기 초에 랑의 주교인 아달베롱에 의해 처음으로 완전하게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달베롱의 사회관이 일반화 되는데는 시간이 걸렸으며, 매력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시기는 13세기로서 많은 이론가들의 그의 이론을 채택 하였다.귀족과 왕왕은 귀족의 일원이었고 다른 귀족에게 권력을 부여할 수 있었으나, 왕권은 그의 동료 귀족들의 동의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백작령이나 공작령과 마찬가지로 왕의 통치도 9세기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11세기부터 13세기에 이르는 시기에 프랑스 왕권이 점차 강화되었으며, 이리하여 귀족의 지위를 위협했다. 11세기의 프랑스 왕들은 정치적으로 매우 허약했다. 그러나 그들은 종교적인 중요한 의례적 지위를 가졌고, 그 누구도 감히 왕에 도전하여 왕좌를 넘볼 수 없었다.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왕들은 프랑스의 유력한 공작들과 백 프랑스 왕도 대영주들의 일정한 동의 없이는 통치할 수 없었고, 왕들이 강력하고 관료적인 국가를 발전시켰지만 이는 적어도 부분적으로 귀족들이 왕으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방치했기 때문이다.봉토보유와 봉건제귀족과 기사의 관계, 그리고 귀족과 왕의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발전들 가운데 하나는 11~12세기에 봉토보유가 증가했다는 사실이다.봉건제라는 용어는 중세 라틴어인 페우둠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언뜻 보기에 유용한 것처럼 보인다. 봉토라고 일반적으로 번역되는 페우둠은 봉신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봉사의 대가로 그의 생애동안 보유하는 일정한 토지를 의미한다. 봉토는 지대(地代)가 아니라 충성을 조건으로 부여되는 것으로서, 봉토보유는 사회에서 소수였던 지배층만을 대상으로 한다. 봉토보유제도는 지배층이 서로 간에 맺은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재산을 부여하는 것이 처음으로 일반화된 시기인 11세기에 발전한 것이다. 12세기에는 봉토에 수반된 서약과 복종의 양식이 점차 표준화되었다.‘봉건제’라는 용어는 17세기에 역사가들에 의해 지배층이 충성서약과 조건부 토지양도를 통해 서로 유대를 맺은 제도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그 용어에 다른 의미들이 덧붙여지기 시작했다. 프랑스 혁명기에는 ‘구식의’ 혹은 ‘낡은’과 동의어로 여겨졌다. 여기에는 봉건제를 용어를 처음 만든 사람들이 묘사한 봉토와는 연관이 없었다.19세기에 마르크스는 봉건제라는 용어에 농민들을 경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첨가한다. 경제력에 관한 그의 관점은 서구의 역사에서 고대 노예들에 대한 착취가 중세에 농노에 대한 착취로 대치되었다는 특정관점과 연관되어 있었다. 농노의 종속이 노예제보다 다소 개선된 것으로 여겼음에도 불구하고, ‘봉건제’는 ‘노예제’에 상응하는 것으로 보았다. 마르크스는 ‘봉건제’가 고대 말기부터 프랑스혁명까지 계속되었으며, 프랑스혁명 때 봉건제는 ‘자본제’ 하에서의 도시 프롤레타리아에 대한 착취로 대치되었다고 보았다. 그리고 마르크스가 그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중세의 역동적이고 복로서, 프랑스 도처에서 백작들이 신흥성주들의 등장으로 위협받았고, 기사들이 대량으로 등장했고, 카롤링 시대의 것을 모델로 한 법정들이 사라지고 신의 평화가 시작되어 만연한 폭력을 제한하였고, 농민들에 대한 성주들의 새로운 지배형태인 공권영주제가 전파되기 시작하던 때였다.12세기에 봉신의 신서는 매우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신서는 남녀사이의, 그리고 신과 인간 사이의 긴밀한 감정적 유대의 상징이 되었다. 봉신이 그의 주군 앞에 무릎 꿇듯이, 어떤 이상적인 연인은 연정을 품은 여성 앞에 무릎을 꿇었다. 13세기의 『성배의 탐색)』에서, 신은 퍼시벌이 ‘진정한 기사’인지, 그의 ‘주인’인 신에게 진심으로 충성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를 시험해 본다. 이 시기에 두 손을 꼭 잡아 들어 올리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표준적인 관례가 되었다. 이처럼 오늘날 기도하는 자세는 신서의식에서의 봉신의 자세에서 직접 유래한 것이다. 사람들은 봉신이 그의 주군에게 하듯이 자신들을 신에게 바쳤다.봉토보유는 실제로는 중세 전성기의 2~3세기 동안만 제대로 시행 되었다. 중세 말이 되는 봉토보유가 쇠퇴하여 귀족들 사이의 관계에서 부차적 요소가 되었다. 14~15세기에 국왕에 충성하고 봉사하는 국왕기사단의 발전은, 봉토보유의 대가로 귀족들이 행하는 봉사가 대귀족들을 통제하려던 왕에게 더 이상 충분치 않았음을 보여주는 것이다.귀족·장원제·농촌경제지배층의 보유한 봉토의 일부분은 농민소작인과 고용노동자, 심지어 영주의 식구들이 시장판매나 자가소비를 위해 농사를 짓던 경작지였다. 로망스나 모험담에 등장하는 기사들은 농사와 거의 관계없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귀족의 가장 중요한 기능들 가운데 하나가 농촌경제에서 지주로서의 기능이었다. 오늘날 프랑스 학계에서는 이런 영주제를 그냥 단순히 영주제 혹은 토지영주제라고 부른다.오늘날 농민을 지칭하는 peasant라는 영어는 프랑스어 paysan[뻬이정]에서 유래했는데, 이단어는 단순히 귀족을 위해 경제적으로 노동을 제공하는 경작자를 의미한다.귀족은 에서 장원제 하의 차지농과 영주의 관계는 오늘날 아파트에 세든 사람에게 친숙한 임대인-임차인 관계와 유사했다. 물론 한가지 중요한 차이점은 세를 받는 방식에 있다. 오늘날 대다수 주인은 돈을 원한다. 중세초의 연주는 노동을 원했다. 그러나 통상 이런 노동지대 이외에, 밀이나 닭 같은 현물지대가 추가 되었다.장원제에서의 지대는 오늘날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것과 달랐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지대는 영원한 것으로서, 세습되었고 변하지 않았다. 즉 어떤 사람이 그가 받은 만수스의 대가로 1년에 2마리의 닭, 1부셸의 밀, 1주일에 2일 부역을 했다면, 그의 후손도 똑같이 지불했을 것이다.귀족들은 맣은 경작지를 소유하고 이 경작지의 일부를 차지농에게 임대하고 나머지 경작지는 농민들의 노동지대를 이요하여 식량을 생산하는 기본적인 장원제는 6세기부터 13세기가지 농촌 경제조직의 주요체제였다.장원제는 생활에 필요한 식량과 사치품을 구입할 수 있는 지대를 받았던 영주들에게 분명히 유리한 제도였다. 그러나 장원제의 조직적 측면들은 농민들을 포함하여 경제 전체에도 유리했다는 주장이 제시되어 왔다. 영주들은 반드시 탐욕스런 무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장원제는 그들이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았든 경제발전을 촉진했다.13세기 중엽이 되면서 많은 영주들이 노동지대의 금납화를 중지했으며, 심지어 일부 영주들은 화폐지대를 노동지대로 다시 바꾸려고 시도 했지만 특기할 만한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그러나 이런 점에서, 농민들에게 임대된 토지와 영주직영지에서 일하는 오민들 사이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 장원제는 해체되고 있었다.지주는 중세 말에도 여전히 중요한 존재였으나 그들은 조상들이 한때 방대한 직영지를 가지고 있었던 곳에 조그만 ‘가정농장’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 시기에 귀족들은 고용노동이나 노동지대에 욕심 부리지 않고 그 대신 지대로 사는 것에 만족했다. 그렇지만 중세의 상당시기동안 그들 주위의 경작지에서 수확된 생산물은 그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그것들 일부는 그들 자신의 식량으로 소비되고 나머를 구분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양자가 언제나 혼합되어 있었다. 13세기부터 농노제의 속성을 명확하게 규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농노제가 등장한 뒤 수세기가 지난 뒤, 즉 농노제가 널리 퍼진 뒤에 행해진 것이다.많은 지역에서 농노는 영주에게 매년 1~2페니 정도의 인두세를 지불했다. 경제적 의미는 미미하지만 상징적 의미는 컸다. 많은 지역에서 그러했듯이 농노가 그의 목에 로프를 감고 무릎으로 걸어와서 그런 인두세를 지불하는 경우는 특히 그러했다. 신체의 주인들은 대체로 그들 농노의 상속을 규정했고, 그의 농노가 자유농이나 다른 농노와 결혼하려면 주인의 허락을 받아야 했고 일반적으로 돈을 지불했다.최근의 연구들에 의하면, 카롤링 시대에 왕실이나 백작의 궁전에서 전투를 담당했던 사람들 가운데 다수가 귀족들이 아니라 주로 농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었다. 이처럼 명확하지도 않았고 결코 보편적이지도 않았던 농노제가 중세 전성기에 이르러 프랑스에서 근본적으로 사라졌다. 5세기 동안 중세사회의 한 부분이었던 농노제가 11세기 말부터 12세기 초에 북 프랑스에서 급속하게 소멸하였다. 세르부스와 안킬라(하녀, 세르부스의 여성형으로 흔히 사용)등의 용어들이 12세기 초 프랑스의 사료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이후 농민은 단순히 ‘남자’나 ‘여자’라고 불렀다. 인두세와 결혼세도 사라졌다.농노제가 북 프랑스에서는 사라졌지만 잉글랜드, 남 프랑스 국경지역, 독일에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존속했었다. 농민들이 돈을 지불하여 자신을 되살 수 있지 않는 한 많은 농민들은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최근에 부활된, 노예들의 구속을 규정하고 있는 로마법을 시행하려는 영주들에 대항해서 그들의 자유를 지킬 수 없었다.독일에서는 ‘농노기사’인 미니스테리알레스)사이에서 농노제가 가장 현저하게 존속했다. 그들은 13~14세기 내내 프랑스의 기사들이 처음에 가졌던 종속적 신분을 유지했고, 사실상 이전의 프랑스 기사들보다 더 종속적이었다. 이러한 미니스테리알레스들은 강력하고 부유해져 그
    사회과학| 2011.01.10| 8페이지| 2,500원| 조회(242)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5
5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4
  • A좋아요
    1
  • B괜찮아요
    0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5월 25일 월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1:53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