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잠’의 쌍화점국어국문학과 2600491 이혜리1. 현행연구의 “쌍화점”고려가요 쌍화점은 만전춘과 함께 대표적인 조선의 남녀상열지사의 노래이다. 음주가무를 좋아했던 충렬왕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오잠이 만든 가요이다. 여직까지 알려진 연구로는 쌍화점이 고려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고 추측해 왔다.선행연구를 요약해 보자면,먼저, 쌍화점은 외국인에 의한 고려 여성의 성적 수난을 반영한다고 말한다. 쌍화점의 제 1연에 나오는 회회아비는 외부 세력의 극히 일부에 해당되는데,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외부 세력에 의한 수난 빈번했다고 할 수 있다. 외부세력에 의한 고려여성들의 수난을 회회인으로 대표시켜 몽골인 또는 아랍상인들의 부녀자 희롱으로 연구되어져 왔다.두 번째, 승려들의 부패상을 반영한다. 쌍화점이 생겨날 즈음 불교의 타락이 극심했으며, 삼장사는 당시 부패한 모든 절을 대표한 하나의 상징적인 것으로 보고 2연은 불교사원의 타락과 부패현상이 반영된 민중의 노래인 민요로 보고 있다.세 번째, 지배계층의 퇴폐적 행위를 반영한다. 고려후기나 고려 말의 왕들의 음행은 그 도가 지나쳤다. 왕을 우물속의 용으로 비하시킨 수법의 결과이다. 즉, 왕으로서의 기품이 없는 왕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3연은 왕들의 문란했던 당시 사실들이 작품 형성배경의 요인으로 작용했고, 자연발생적으로 이런 노래가 백석들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본다.마지막으로 무뢰배들의 횡포를 반영한다. 충렬왕 이후 시대는 지배계층의 도덕적 타락과 함께 일반사회의 기강도 상당히 문란해져 있었다. 4연의 ‘그짓아비’는 술을 파는 집의 관리자나, 술집과 관련되어 있는 무뢰한으로, 완력으로 행사하면서 백석들에게 해를 끼치는 시정의 잡배무리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 집단의 횡포에 의하여 성적으로 고통을 받던 당시 고려의 사회 역사적 상황이 4연에 잘 나타나 있다.따라서 여태까지의 연구는 쌍화점을 많은 남성들에게 희롱 받는 고려여인의 고통을 노래한 가요라 할수 있다.이에 따라 풀이된 쌍화점은 다음과 같다.1-1. 선행연구에서의‘쌍화점’현대어 풀이만두집(쌍화점:첫째 연 첫구에서 따온 것으로 만두가게를 의미로 쌍화는 만두를 뜻하는 음차의 말 이다.)에 만두 사러 갔더니만회회아비(회회 : 몽고인, 혹은 아랍 상인) 내 손목을 쥐더이다.이 소문이 가게 밖에 나며 들며 하면(소문이 나면, 소문이 퍼지면)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광대 네 말이라 하리라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위 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난잡한 곳이 없다.)삼장사에 불을 켜러(불을 밝히러) 갔더니만그 절 지주 내 손목을 쥐더이다(내 손목을 쥐더이다. : 적나라하고, 적극적인 구애의 표현).이 소문이 이 절 밖에 나며 들며 하면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새끼 상좌 네 말이라 하리라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난잡한 곳이 없다.)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만우물 용(봉건 시대의 금기이던 왕궁을 우물로, 제왕을 용으로 은유한 것으로 봉건사회에서 왕궁은모든 권력을 갖고 있는 곳으로 화수분과 우물처럼 재물이 마르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우물로 표현한것이 아닌가 추측됨.)이 내 손목을 쥐더이다.이 소문이 우물 밖에 나며 들며 하면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난잡한 곳이 없다.)술 파는 집에 술을 사러 갔더니만그 집 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이 소문이 이 집 밖에 나며 들며 하면다로러거디러 조그마한 시궁 박아지야(싀구바가 : 바가지야. '싀구박'은 원래 시궁을 치는바가지인데 여기서는 '술독에서 술을 퍼내는 도구의 바가지'를 말한 것.)네 말이라 하리라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그 잠자리에 나도 자러 가리라위 위 다로러거디러 다로러그 잔 데 같이 답답한 곳 없다(난잡한 곳이 없다.)2. ‘쌍화점’다시 읽기.하지만 쌍화점이 몽골인에게 희롱 받는 고려여인의 고통의 노래, 즉 사회적 상황을 풍자하는 노래라는 것은 작자와 일맥상통하지 않는다. 쌍화점의 작자가 누구인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는 무엇도 가리지 않으며 온갖 나쁜짓이란 다 하고 다니던 충렬왕의 간신‘오잠’이다. 또한 쌍화점도 충렬왕이 음주가무를 좋아하자 그에게 아첨하기 위하여 만든 노래인 것을, 쌍화점을 풍자의 노래라고 한다면 오잠은 충신이 되는 것이므로 맞지 않는다.나는 쌍화점을 시대풍자의 노래로 해석하지 않고, 오잠이 부자(父子)인 충렬왕과 충선왕을 이간질 했던 사건을 결부시켜 해석하려 한다.쌍화점 노래를 부른 여인은 충렬왕의 부인이자 충선왕의 어머니였던,‘홀도로게리미실’로 추정한다. 좀 더 확실히 말하자면 진짜 노래를 부른 것은 그녀가 아니라, 오잠이 노래를 지어 그녀가 불렀다고 하고 기녀들을 시켜 그 노래를 궁중악으로 연주하도록 했을 것이다.그녀는 원나라에서 건너온 공주로, 충렬왕은 그녀가 화를 내는 것을 매우 무서워했는데, 그것은 그녀를 사랑해서라기보다, 원나라와의 관계때문에 그녀를 두려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녀는 다른 몽고에서 온 공주들 보다 적극적이어서 남편을 대신해 섭정을 하는 등 힘이 컸기 때문에, 오잠에게 그녀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오잠은 그녀에게 흉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서 노래를 불렀다.먼저, 어휘를 살펴보며 알아보자.① ‘쌍화점’은 만두집?[퇴계집]에서는 쌍화점을 霜花店 이라고 표시했다. 때문에 ‘쌍화’라는 것은 만두라 특정지어 질수 있는것이 아니라, 뒤에서의 문맥에 따라 결정지어질 수있다.다음의 표를 보자.어디서뭐하러누구에게어떻게누가보았나쌍화점쌍화사러회회 아비손목을 쥐다삿기광대삼장사불 켜러사주손목을 쥐다삿기상좌우물물 길러우물용손목을 쥐다두레박슬?집술 사러그짓아비손목을 쥐다싀구박삼장사의 삿기상좌, 우물의 두레박, 슬?집의 싀구박은 모두 장소와 사물이 상통하지만 쌍화점을‘만두집’이라고 해석햇을때 삿기광대와 만두집은 상통하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쌍화점은 만두집이 아니라, 이 노래가 궁중무악으로 사용된 것을 생각하면, 광대들이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기 위해서 필요한 소도구등을 파는 곳, 또는 이 이야기의 화자가 충렬왕의 부인이라고 추측했을때, 화장품등을 파는 곳이라고 생각할 수있다. 삿기광대 또한 무악을 하기 위해서는 화장품이 필요했을 것이다.결론적으로 1연은 충렬왕의 부인이 화장품을 사러 쌍화점엘 갔는데 그곳에 있던 회회아비가 그녀를 희롱하려 손목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회회아비’는 누구인가?② ‘회회아비’는 몽골인?고려는 제25대 임금 충렬왕부터 제31대 임금 공민왕까지 약 100년간 고려의 왕들은 모두 몽골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기존의 해석에서는 충렬왕때 몽고인과 아랍상인들이 판을 치던 시기였기 때문에‘회회아비’를 그들이라고 추측했으나, 나의 해석은 다르다.회회 아비라 함은, 몽고인을 뜻하는 단어인‘회회’와 기생아비처럼 그의 주인이나 남편이 되는‘아비’를 합쳐 만든 말로, 몽골여인을 부인으로 셋이나 두고 있었던 충숙왕을 모함하기 위해 했던 말로 생각된다. 오잠은 충렬왕과 충숙왕사이를 이간질 하여 옥에 갇힌 적이 있었다. 또한 고려시대에는 아들이 아버지의 부인을 겁탈한 기록이 적지 않으므로, 오잠이 충선왕이 충렬왕의 비인, 홀도로게리미실을 겁탈하려 희롱했다는 가사를 붙인 것으로 생각된다. 더불어 가사에서 그녀는 회회아비에게 손목을 잡혔는데도 전혀 당황하지 않고 본사람이 없나 확인하여 삿기광대를 협박한다. 오잠은 이것을 충렬왕에게 들려주어 홀도로게리미실이 음란하다고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