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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학 레포트(제논)
    1. Who is Z?n?n?제논[BC 490?~BC 430?]?원어명: Z?n?n ho Eleat?s?별칭: 엘레아의 제논?국적: 그리스?활동분야: 철학?출생지: 이탈리아 엘레아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엘레아학파의 원조인 파르메니데스의 제자이다. 불생불멸이고 부동인 유일의 실재를 가르치는 스승의 학설을 이어 받았다. 특히 운동을 부정하는 증명인 에 의하여 그것을 추진하였다. 반대자의 전제로부터 모순을 내포한 결론이 돌출되는 것을 보여 최초의 전제의 오류를 지적하는 귀류법(제논의 역설)을 개척하였다.제논은 기원전 489년에 태어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의 스승이었던 파르메니데스가 65세가 되고, 소크라테스가 이제 겨우 청년이 되었을 때, 제논의 나이는 40세였다. 엘레아 학파의 핵심 인물로서 제논의 활동은 주로 스승에 대한 비판을 논박하는 것이었다. 그의 논조는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을 비난하는 자들이 지니고 있는 그 논리의 기본적 가정이 비난하고 있는 엘레아 학파의 이론보다 더 우스꽝스럽고 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으로 그들을 난처하게 하는 것이었다.2. 제논에 얽힌 일화그리스 철학자 제논은 그 당시 반박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역설을 내놓아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다. 이러한 역설들 때문에 그는 얼마나 인기가 없었던지 왕에게까지 미움을 받아 무참히 처형되고 말았다고 한다. 처형 당시 그는 형장에서 마지막으로 왕에게 직접 전해야 할 중대한 비밀이 있다며 왕에게 가까이 가서 왕의 귀를 물어 뜯었다고 한다. 왕을 호위하고 있던 병사가 재빨리 제논의 목을 잘랐는데 그의 목이 잘려진 뒤에도 그의 목이 왕의 귀를 물고 있었다고 한다. 그가 얼마나 고집이 세고 집념이 강한 사람이었는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제논의 역설이 우리는 결론이 분명히 틀렸다는 것을 알고 있으나 그의 논증 중 어디가 잘못된 것인지를 반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필자는 이러한 역설들을 조사함으로써 그에 따른 간단한 수학사적 내용과, 역설의 극복과정에 관련되는 무한의 개념이 어학을 변호하려 했다. 일자의 존재에 관한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이 모순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들에 맞서 제논은 시간과 공간 속에 다수의 사물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는 것이 더 심각한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제나 존재하며 소멸될 수도 창조될 수도 없고, 변화한다고 느끼는 것은 단지 해가 움직이는 것처럼 또는 영화필름의 인물들이 실제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은 환상일 뿐이라고 주장하기 위한 역설이 바로 제논의 역설이다.4. 제논의 역설과 해결① 이분의 역설 (분할의 역설)-선분의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갈 수 없다. 선분이 무한개의 점을 포함한다면 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선분은 자와 콤파스를 이용하면 중점을 구할 수 있다. 선분의 길이가 아무리 짧아도 이것은 가능하다. 이 사실에서 선분이 무한개의 점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문제가 일어난다. “만일 점이 아무리 작아도 크기를 갖는다면 이 선분의 한 끝에서 다른 끝으로 갈 수 있는가?”A로부터 B로 가기 위해서는 그 중점 C를 통과해야 한다. 또 A로부터 C로 가기 위해서는 그 중점 D를 통과해야 한다. 중점이 무한히 많고, 각 중점을 통과하는데 얼마만큼이라도 시간이 걸린다면, 유한의 시간 내에 무한의 점을 통과할 수 없으므로, 결국 A로부터 B로 가는 데는 무한의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따라서 운동체는 A로부터 B에게로 도달할 수 없다. 즉, 운동은 일어나지 않는다.제논과 입장을 달리하는 피타고라스학파의 지지자들은 이 역설에 대해서,“점에는 위치가 있지만 크기는 없다. 또, 시간도 크기가 없는 시간이 모인 것이다.”라고 변명한다. 선분 상에 아무리 많은 점이 있다 하여도 이들 점에 하나씩 대응하는 시간 역시 크기가 없기 때문에, 모든 점을 통과하는 데는 무한의 시간이 필요없다는 이야기다. 이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제논이 내놓은 역설이 바로 유명한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달음질 경주’이다.-그렇다면 제논의 주장이 왜 옳지 않을까?가야할 거리를 1스가 c지점에 오면 거북이는 d지점으로... 이렇게 아무리 무한히 계속된다 한들 한없이 가까워지기는 해도 아킬레스는 거북이를 영원히 추월할 수 없다는 것이다.사실 누구나 제논의 주장이 옳지 않음을 안다. 하지만 제논의 논증이 어디가 그른지 말해보라고 하면 제대로 오류를 잡아내는 경우는 별로 많지 않다. 시간의 연속성 때문이라는 둥, 실제로 달려보면 결과가 다르니 당연하다는 등의 대답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혹은 속도가 어떻고, 무한급수가 어떻고 하면서 나름대로 수식을 써서 보여주는 사람도 있다. 일말의 진실을 담은 대답도 많으나, 여전히 제논의 논증이 어디가 틀렸는지는 알려주지 않는 대답이어서 여전히 찜찜함을 남기는 경우도 많다. 이 역설에 대해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사람마다 생각하는 방식이 정말로 다르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그렇다면 제논의 주장이 왜 옳지 않을까?이 역설을 깨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시간을 재는 것이다. 사실 경주를 한다고 했으니 달리기 기록을 재는 게 당연한 수순이 아닐까 싶다. 이제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보자. 아킬레스는 거북이보다 100배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다. 곧 아킬레스의 속도는 100m/s, 거북이의 속도는 1m/s라고 하자. 이제 거북이와 아킬레스가 경주를 하는데 거북이가 느리므로 아킬레스보다 100미터 앞에서 출발한다고 하자.아킬레스가 처음 100미터를 따라잡을 때까지 걸린 시간은 얼마일까? 아킬레스가 달리는 속도가 100m/s이므로 1초가 걸린다. 이제 그 다음 1미터를 따라잡는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일까? 당연히 1/100=0.01 초일 것이고, 그 다음 1/10미터를 따라잡는데 걸린 시간은 0.1/100 = 0.0001 초일 것이다. 따라서 제논의 논의에 걸린 시간을 전부 더하면 다음과 같다.1초+0.01초+0.0001초+0.000001초+...이 수를 모두 더하면 1.01001001001... 초임을 알 수 있다.중요한 포인트는 여기에 있다. 제논은 ‘영원히’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했다는 게 문제였던 것이다.놓이게 된다.-우리는 왜 쉽게 역설에 빠지는 것일까?두어 줄만 계산하면 간파할 저런 허점을 쉽게 놓치는 이유는 상식 혹은 감에만 의존해서 판단하려는 경향 때문이 아닐까 한다. 특히 아킬레스와 거북이의 역설에서는 ‘작은 수라도 무한 번 더하면 무한’이라는 '감'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감이 근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닌데, 사실 아무리 작은 수(양수)라도 무한 번 더하면 무한히 커지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a>0인 a를 한없이 더하면 곧, a+a+a+a+a+a+...는 어떠한 숫자보다 크게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처음에 제 아무리 큰 숫자로 시작하더라도, 일정 비율로 꾸준히 줄어드는 숫자인 경우에는 ‘무한히’ 더하더라도 ‘유한값’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정확히 수식으로 표현하자면 -1 < r < 1 일 때 아래와 같음을 보일 수 있다.a+ar+ar ^{2}+ar ^{3}+ar ^{4}+... ={a} over {1-r}무한등비급수의 식에 위의 값을 대입해 보면...1+{1} over {100}+{1} over {100 ^{2}}+{1} over {100 ^{4}}+... ={1} over {1- {1} over {100}}={100} over {99}임을 쉽게 알수 있다.③ 나는 화살의 파라독스-나는 화살은 날지 않는다.이분과 경주역설의 경우 적어도 ‘운동’이라는 개념 자체는 인정하고 있다. 즉, “운동이란게 있다 하더라도 시작도 추월도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제논은 이에서 더 나아가 화살역설을 통하여 “운동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펼친다.만일 어떤 화살이 ‘운동’하고 있을 경우 어떤 ‘순간의 시작점’에서는 A라는 위치에 있다가 ‘순간의 종점’에서는 A와 다른 곳. 예를 들어 B란 위치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A와 B가 서로 다른 곳이라면 그 사이의 거리는 분할될 수 있다는 뜻이며, 따라서 그 사이를 지나는 데 걸린 시간. 즉, 순간이라는 것도 분할 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는 ‘분할 불가능의 시간’이라는 ‘순간의 정의’에는 정지해 있고, 정지가 겹쳐 쌓이면 운동은 없다.-그렇다면 제논의 주장이 왜 옳지 않을까?우리는 제논의 역설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근거는 실수의 연속성에서 비롯된다. 실수의 연속성은 제논의 역설을 뒤엎을 수 있을 만큼 시공의 연속성을 확실히 표현하고 있다.그럼, 실수의 연속성을 가정하고(칸토어의 증명), 이에 따라 제논의 역설이 옳지 않음을 밝혀 보기로 하자. 우선 제논의 역설을 잘 살펴보면 '순간'이란 개념이 이 역설의 마디마다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을 수직선으로 표시하고 순간은 어떤 점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카메라맨은 동물의 생태를 사실적으로 찍기 위해 셔터를 누를 어떤 순간을 기다린다. 셔터를 누를 순간이 다가옴에 따라 시간은 수직선 위의 점으로, 예컨대1 , 1.4 , 1.41 , 1.414 , 1.4142 , ...처럼 시시각각 '순간'을 향해 다가갈 것이다 카메라맨이 '지금이야말로 셔터를 누를 순간이다.'라고 생각했을 때, 시간은 위 계열의 끝으로서 수직선의 점 1.41421356... 에 도달할 것이다. 이러한 순간이 존재한다는 것이 바로 실수의 연속성이라 할 수 있다.제논이 별 거리낌 없이 '어느 한 순간을 생각해 보자.'라고 말한 부분을 수의 세계에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실수의 연속성이 필요한 것이다. '순간'을 과거와 미래를 구분하는 점이라고 간주할 때, 연속성의 보증이 없으면 이 분할점은 의미를 잃어버리고 만다.우리는 순간이란 개념이 실수의 연속성과 아주 깊게 결부되어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고 우리가 제논의 역설을 완전히 뒤엎은 것은 아니다. 제논의 역설을 타파하는 열쇠는 역설 속에 서술되어 있는 '다음 순간'에 있다. 과연 제논이 말하는 '다음 순간'은 존재하는 것일까?어느 순간이든 임의의 순간을 생각해 보자. 위의 예를 인용해 이 순간은 수직선 위의 점으로서 a=1.41421356.... 으로 표시되었다고 하자. 제논의 역설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a의 다음 순간은(1)a보다 크다.(2)a와 .
    교육학| 2010.08.03| 8페이지| 1,500원| 조회(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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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구 지도안
    피구의 지식의 구조기능인지적 지식사회학적 개념타인배려규칙준수역동성의원리작용반작용의원리협동심배경지식심동적 기술/전략경기능력지식태도심리?사회적 태도심리학적 개념내용관련지식전략적극성자신감집중력생리학적훈련과 조건역학수비공격인지적접근피구의기원및역사피구의 종류피구의특성과효과활동시유의점게임방법및규칙체력영양스포츠의학정리운동준비운동무게중심의이동충격의원리한정된공간에서빠른방향전환공주시하기무게중심잡기공피하기공받기상대의움직임파악균형잡기상대에게공이어주기가슴으로받기수비공격공몰기목표물맞추기수비의이동알기패스경로파악하기목표물인식하기공간안에서공피하기가슴으로받기무게중심잡기협응력조정력순발력공이어주기공방향바꾸기목표물의방향예측하기공던지기정확히조준하기전술적접근피하기 & 던지기게임원형피구하기방패피구하기꼬리맞추기네칸피구하기목표물획득풍선터뜨리기민첩성정확성※ 참고 문헌김용환 좋은 체육 수업을 위한 체육교재론 뒷목출판사류태호 외 공저 게임수업의 새로운 접근 이론편 대한미디어체육과 지도안 작성의 이론과 실제. 학회사문규진, 김용환 저 구성주의에 의한 체육교재론 양서원이계영 외 공저 체육게임 대사전 무지개사★ 피구의 학습 환경 분석 ★필요한 환경구비여부수준용기구1. 피구 단원을 가르치는 데에는 무슨 용구가 필요한가?ㆍ배구공 8개(2인 1조로 연습 교사포함 16명)ㆍ줄긋기 도구(청테이프 사용)上2. 용기구가 부족할 경우나 없을 경우의 대책은 마련되어 있는가?ㆍ피구는 적은 수의 공으로도 충분히 수업할 수 있다.上3. 용기구의 손질은 잘 되어 있는가?ㆍ대체적으로 공의 상태가 청결함ㆍ공 안의 바람도 적당히 들어있음中학습 공간및시설4. 학습 지도 공간은 얼마나 되는가?ㆍ 실내 체육관 (피구 경기하기에 충분히 넓은 공간이다)上5. 학습자의 수는 몇 명인가?ㆍ남여 혼성 16명上6. 주어진 공간에 학습자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가?ㆍ수용 가능하다.上7. 학습 공간은 깨끗이 관리 되는가?ㆍ비교적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으나 먼지가 많다.中8. 현재의 시설로 모든 학습지도를 할 수 있는가?ㆍ멀티미디어 자료 없이도 수업이 가능하나 시청각 본적이 있는가?ㆍ TV나 인터넷 등의 다른 자료를 통해서 피구 경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ㆍ학생들이 이미 관련된 지식구조에 나타난 기술과 전략에서 경험한 것은 무엇인가?ㆍ 대부분의 학생들은 배구공을 접한 경험이 별로 없으며 피구 게임에 대해 간접 경험만 있을뿐 직접 해본 사람은 별로 없다. 그리고 피구 게임을 조금 해본 학생도 정확한 공 피하기의 자세라든지 동작을 알지 못한다.ㆍ학생들의 피구 경험은 어느 정도인가?ㆍ 피구 학습에 대한 실제적인 경험은 없다.ㆍ초보자의 특성- 공을 두려워하여 끝까지 공을 쳐다보려 하지 않는다.- 공을 몸 전체를 이용하여 받는 것이 아니라 팔로만 받으려고 한다.- 공을 몸 전체를 움직여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시각적으로 보이는 머리 부분만 피하는 경향이 있다.ㆍ학생의 운동능력을 초보자, 중급자, 상급자 중 어느 부류로 분류할 수 있는가?ㆍ거의 모든 학생이 경험해 보지 못했으므로 초보자로 분류한다.ㆍ너무 많은 것에 대해서 너무 많이 생각하고 걱정한다.→ 학습과 수행에 관한 편안한 집중의 상태가 되도록 구성한다.ㆍ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가 그들에게 주어지는 어려움이 있다.→ 기본 동작 연습 시 구분 동작으로 나누어 설명해 준다.ㆍ적극적 경험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자신감과 안정성이 결여되어 있다.→ 공에 대한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데 이를 위해 공 던지기, 공받기 등을 통해 거부감을 없애고 흥미를 키우게 한다.→ 교사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자주 해주어 자신감을 갖고 피구를 할 수 있도록 한다.ㆍ너무 많은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경향이 있다.→ 피구 동작을 연습하거나 동작을 할 때 불필요하게 무리한 힘이 들어가지 않고, 힘을 뺀 부드러운 동작이 되도록 지도한다.신체적 특성ㆍ10세 아동의 일반적 신체적 특징ㆍ자극에 대한 반응시간이 성인에 가까워진다.ㆍ급격한 신체 성장이 이루어져 성장에서 개인차가 현저해 진다.ㆍ근육이 발달하여 거의 모든 운동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ㆍ체력 상태가 40분 동안의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 할 수 있을 정도로왕성한 상태이다.ㆍ학습자 상황 및 정의적 특성을 발달시키기 위한 피구의 지도 방법① 공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피구에 대해 두려움을 가진 초보자이므로 공을 익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학습자가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해주어 자신감과 성취감을 형성하도록 지도한다.② 선지식이 있어 호기심이 매우 높은 상태이다.→ 공 피하기 프로그램을 넣어 학생들의 피구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도록 한다.③ 경쟁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로 상대에 대한 배려와 협동심이 부족하다.→ 팀별로 게임을 하도록 하여 흥미를 증진 시키고 집단의 소속감, 협동심, 친밀성, 역할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도록 한다.→ 피구에 대한 기초적인 기술을 배운 뒤, 두 사람이 함께 연습하도록 하여 소속감과 적극성, 창의성 및 동료들과의 친밀성을 함양하도록 한다.④ 동료 간, 선생님의 평가나 비판에 민감하다.→ 학습자의 신체적 상황을 고려해 모든 학생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긍정적 피드백을 제공한다.학습자 수준 ‥‥‥‥‥‥‥‥‥‥‥‥‥‥‥ 下♣ 학습자의 수준을 ‘下’로 정한 이유학습의 대상은 10세의 초등학교 3학년 남ㆍ녀 학생이다. 피구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과 기능이 부족하고, TV나 신문, 인터넷 등의 다른 자료를 통해서 피구 경기하는 모습을 본 경험이 있고, 기본적으로 공에 친숙한 선지식을 가지고 있어 공을 통한 학습 시에는 학습자의 흥미와 관심이 매우 높다. 하지만 개인의 기본 기술이나 기초 지식이 부족하여 정확한 동작이나 기능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특히 게임 규칙과 각 기술의 특징 및 정확한 동작의 폼 형성이 미흡한 상태이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적인 수준은 매운 낮다고 볼 수 있다. 때문에 본시 학습자 수준을 ‘下’로 설정하였다.★ 피구의 계열성 결정 ★종 목 : 피 구학 습 자 수 준 : 下 학 습 환 경 : 上차 시과 제 수1 차시2 차시3 차시수비 &공격게임 하기동그라미 피구 게임연습방패 피구 게임연습꼬리 맞추기 게임연습칸피구 게임연습수비공 피하기한정된 공간 빠르게 이동하며 안정감있게 받는다.날아오는 공을 가슴높이에서 안정감있게 받을 수 있다.공격공 던지기ㆍ4칸의 정해진 공간안에서 공을 받자마자 빠르게 던진다.ㆍ꼬리선수의 움직임을 잘 파악하여 공을 던진다.같은 팀원에게 공 이어주기를 하며 5m전방 이상의 목표물을 맞힐 수 있다.지식수비공 피하기칸피구 게임과 꼬리 맞추기 게임의 규칙과 방법을 안다.공을 주시하며, 한정된 공간 안에서 공을 잘 피할 수 있는 전략적인 움직임을 이해한다.공 받기무릎을 굽혀 낮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한 다리는 앞으로 벌려 균형을 유지하며 공을 안정감있게 받는 원리를 이해한다.공을 던져서 맞히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던져야 함을 안다. 또한 공을 두 손으로 잡고 자기의 가슴높이에서 던지는 것이 안정적이지만, 상대편을 맞히기 위해서는 한 손으로 잡고 던지는 것이 효과적임을 안다.공격공 던지기태도ㆍ공에 대한 공포심을 극복하기 위해 끝까지 공을 보고 반응하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한다.ㆍ상황에 따른 민첩성과 순발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한다.ㆍ피구에 대한 긍정적이고 호기심 있는 태도를 가지며, 적극적으로 임하는 태도를 가진다.ㆍ타인을 배려하는 자세로 게임하며, 즐겁게 놀이하도록 한다.★ 1차시 수업 지도안 ★단 원공놀이일 시2010. 6. 3(목)장 소실내학 습 주 제동그라미 피구 게임하기차 시1/3차시지도교사김현진학 습 자 료피구왕 통키 음악, VTR, 배구공 8개, 바닥에 줄을 그을 청 테이프, 과자학 습 목 표동그라미 피구 게임의 규칙과 방법을 알고, 상대방을 배려하며 한정된 공간 안에서 공을 잘 피할 수 있는 전략적인 움직임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목표물 획득하기를 통해 피하기 훈련을, 풍선 맞추기를 통해 던지기 훈련을 한다.수 업 형 태이해중심 게임수업기초체력요소순발력, 조준력, 협응력운 동 능 력던지기, 받기, 이동하기 등학 습 조 직개인→모둠→전체게 임 활 동적 용게 임 내 용투 입 단 계게임영상(1)게임(2)게임(3)도입전개정리만화영화 피구왕 통키동그라미피구목표물 획득하기 던지지 않도록 주의시킨다.※게임의 구조와 규칙, 방법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도록 한다.단계학습요소교수 ? 학습 활동시간자료 및 유의점(※)정리 및 반성정리운동▶정리운동하기관절과 근육을 푸는 스트레칭으로 마무리한다.목 풀어주기팔을 등 뒤로 보내고 반대 손으로 팔 흔들기팔꿈치를 누르기▶과제제시-‘동그라미 게임을 통하여 자신에게 필요한 기본 운동 연습하기‘를 제시 한다.(공 피하기, 공 던지기, 공 받기)▶차시예고-피구의 또 다른 형태인 방패 피구를 할 것임을 예고한다.1‘1‘※15초정도씩 몸의 각 관절을 충분히 풀어준다.나. 형성(수행)평가 계획영 역평 가 내 용평 가 기 준척도학습자 기재란심동적움직이는 목표물을 향해 정확히 던지는가?여러방향에서 날아오는 공을 잘 피할 수 있는가?목표물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5m전방이내의 목표물을 맞히며, 한정된 공간안에서 공을 잘 피할 수 있다.상목표물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3m전방이내의 목표물을 맞히며, 한정된 공간안에서 공을 잘 피할 수 있다.중목표물의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하고, 한정된 공간안에서 공을 잘 피하지 못한다.하인지적날아오는 공을 피하거나 움직이는 사람을 맞추는 방법을 알고 있는가?게임의 규칙을 잘 알고 있는가?공을 피하거나 던지는 방법과 게임의 규칙을 3가지 이상 알고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상공을 피하거나 던지는 방법과 게임의 규칙을 1~2가지 알고 전략을 수립할 수 있다.중공을 피하거나 던지는 방법과 게임의 규칙을 잘 모른다.하정의적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로 게임에 참여하였는가?타인을 배려하는 태도로 적극 참여한다.상타인을 배려하며 참여한다.중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참여한다.하★ 2차시(본시) 수업 지도안 ★단 원공놀이일 시2010. 6. 10(목)장 소실내체육관학 습 주 제방패피구 게임하기차 시2/3차시지도교사김현진학 습 자 료40㎝의 긴 줄 4개, 배구공 1개, 바닥에 줄을 그을 청 테이프학습목표날아오는 공을 피하거나, 목표물의 움직임을 예측하여 5m전방이내의 목표물을 맞힐 수 있다. 상대방을 배려하며 게.
    예체능| 2010.08.03| 16페이지| 3,000원| 조회(3,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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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권 향상
    Ⅰ. 서 론장애인 인권 향상을 위해 시각 장애인의 이동권과 정보 접근권을 중심으로 인권 향상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려한다.“장애인은 자유로운 이동과 시설이용에 필요한 편의를 제공받아야 하며, 의사 표현과 정보 이용에 필요한 통신, 수화통역, 자막, 점자 및 음성도서 등 모든 서비스를 제공받을 권리를 가진다.” 위 문장은 장애인 인권선언 4항에 나오는 내용이다. 대다수의 비장애인들에게 있어 이동할 수 있는 권리, 즉 이동권(Rights of Mobility)은 하나의 권리로서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공기가 없이는 살아갈 수 없지만, 공기를 마시는 것을 하나의 권리로서 이야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비장애인들은 살아가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 노약자, 아동, 임산부는 이동권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로 통하지만 통시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그들은 결코 이 사회의 소수자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일생을 살아가며, 아동의 기간을 거쳐 노약자의 시기를 맞게 되고, 여성의 경우 임산부의 상태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 사회에서 장애의 발생 요인 중 89.4%가 각종 질환 및 사고에 의한 후천적 원인에 의한 것이라는 현실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 누구나가 일시적으로 그리고 잠재적으로 장애인일 수 있음을 말해준다고 할 것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장애인들의 이동권을 빼앗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만 하더라도 턱이 너무나도 많아 장애인들이 이동하기에 상당한 불편을 겪는다. 우리 아파트에는 상당수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눈에 띄질 않는다. 왜일까? 아마도 선뜻 집을 나선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큰 도전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에게 이동권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또한 그 권리가 인간답게 살 권리라고 한다면 두말 할 나위가 없다. 장애인의 이동권 확보의 책임을 서 나는 그들의 입장(특히 시각 장애인)에서 세상을 바라보며 이동권 확보를 위한 아이디어를 현황 및 개선방안, 그리고 기대효과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려한다. 또한 그들에게 있어 이동권 만큼이나 중요한 정보 접근권에 대해서도 현황 및 개선방안, 기대효과를 중심으로 생각해 보겠다.Ⅱ. 본 론1. 시각장애인의 이동권 향상을 위한 아이디어1) 대중교통 수단의 이용 - 버스① 현황 및 문제점: 시각 장애인들이 혼자서 버스를 탄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얼마 전 버스정류장에서 시각 장애인라고 쓰여 있는 노란 조끼를 입은 한 남자를 만났다. 그 는 내게 몇 번 버스가 오면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은 버스 도착 음성 및 시각화면 시스템이 설치되어 버스가 몇 분후 도착하는 지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나는 그에게 버스음성시스템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더니 그는 이 시스템이 그리 큰 도움이 되어 주질 못한다고 말했다. 이유인즉 000번 버스가 도착한다고 방송이 나와도 버 스가 바로 도착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또 여러 대가 동시에 오기라도 한라면 절대로 혼자 탈 수 없다고 했다. 버스도 그럴 것이 차량 정체가 있을 수 있고 변수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② 개선 방안: 시각 장애인을 위해 점자로 된 버스별 도착 알림 서비스 버튼을 만드는 것이 다. 예를 들어 시각 장애인 혼자서 514번 버스를 타야한다고 가정하자. 그는 점자로 설치된 514번 버튼을 누르면 도착예정 시간을 알려주는 동시에 시각장애 버튼 신호가 버스기사에 게 전해져 시각 장애인이 기다리고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시각 장애인을 안전하게 태우고 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③ 기대 효과: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어서 택시는 이용하지 못하고 버스를 이용해야 하는 시각 장애인에게 경제적 부담을 덜어 줄 수 있고, 무엇보다 혼자서 버스를 탈 수 있기에 이 동권이 조금은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2) 대중교통 수단의 이용 - 지하철① 현황 및 문제점: 시각장애인들이 버스에 비해 지하철을 많이 이용하지만, 154개 역사 가운데 스크린 도어가 설치된 곳은 신길역 단 한 곳 뿐이다.) 따라서 시각장애인 사고 위험은 당연히 높을 수밖에 없 다. 또한 지하철 내에 음성유도기, 점자 블럭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거나 아예 설치 되어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승강장과 지하철 간격이 너무 넓어 여러 번 빠지고, 신발을 잃어버린 적도 많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하철 이용객이 너무 많아 이동시 부딪히는 경우가 빈번하다.② 개선 방안: 일단 예산은 많이 들어가겠지만 모든 역 내에 스크린 도어 설치를 의무화 해야한다. 그리고 지하철역 내에 통합 안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시각장애인들이나 중증장애인, 기타 위급한 시민들의 경우 안내나 도움을 요청할 때 해당 지하철역으로 전 화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전화번호도 모르고, 찾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지하 철역 입구에서부터 지하철역 안까지 전 지역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통합 안내 전화 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112나 119처럼 긴급 통화 시스템을 일반 휴대전화 로도 가능하게 하여 쉬운 번호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좌측통행의 일반화가 시 급히 필요하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붐빌 경우에 더욱 시급하다.③ 기대 효과: 장애인들로 하여금 위급상황에 대한 불안 심리를 조금이나마 해소시켜 대 중 교통이용에 한층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 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또한 안전방지에 도움이 될 것이다.3) 대중교통 수단의 이용 - 열차① 현황 및 문제점: 열차의 경우 열차 탑승까지 계단도 많고 복잡하여 혼자 탑승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설령 열차를 탔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좌석을 찾기 위한 차량의 번호 와 좌석번호가 점자로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아 본인의 좌석을 찾기란 쉽지 않다.② 개선 방안: 역 입구에서부터 열차를 탈수 있는 곳까지 점자 유도기나 음성 유도기가 필요하다. 또한 우리가 직접 이곳저곳에 설치하기 보다는 시각장애인 단체나 시각장애 인들이 설치하기를 요구하거리 이동 뿐 아니라 장거리 이동이 가능해지게 되어 그들 의 활동범위가 확대될 것이다.4) 에스컬레이터나 엘리베이터① 현황 및 문제점: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 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는 계단 손 잡이에 점자 표지판을 설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으나, 에스컬레이터에 관한 기준은 없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에스컬레이터가 현재 어느 방향으로, 어느 쪽으로, 어느 층에서 어 느 층으로 운행 중인지에 대한 음성 안내가 되어있다고 한다. 엘리베이터 내 역시 버튼 을 눌러야지만 “00층입니다”라는 멘트가 나오기 때문에 감으로 버튼을 누를 수 밖 에 없 어 잘못 누르는 경우가 많다.② 개선 방안: 에스컬레이터에도 음성 안내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엘리베이터 내에도 음성안내 뿐 아니라 각 버튼마다 그 정보를 알 수 있는 점자 표기가 필요하다.③ 기대 효과: 지하철이나 대형할인 마트 백화점등에 많이 설치되어 있는 에스컬레이터 나 엘리베이터에 장애인을 위한 작은 배려로 점자나 음성 안내를 확대한다면 장애인들도 대형마트나 백화점등에 조금은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5) 주차방지 돌기둥① 현황 및 문제점: 한 조사에 의하면 시각장애인들의 53%가 이런 주차방지 돌기둥으로 인해 부상을 입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각장애인들의 진행방향은 사방인데 진행 표시 점자블록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거나 설치되어 있다하더라도 진행 표시 점자블록 위나 점자블록 아주 가까이에 주차방지 돌기둥이 설치된 경우가 빈번해서 잦은 부상이 일어나고 있다.② 개선 방안: 시각장애인의 진행방향을 고려하여 주차방지 기둥 주위에 점자블록을 원 형으로 설치한다. 그리고 부딪히게 될 경우 큰 충격이 드는 돌이나 쇠보다는 충격을 흡 수할 수 있는 재질로 주차방지 기둥을 만들었으면 한다.③ 기대 효과: 길을 가다 너무나도 잦은 돌기둥 때문에 낯선 길을 가기가 힘들었던 시각 장애인들에게 돌기둥을 피할 수 있는 도움이 되어 부상의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2. 시각장애인의 정보 및 문제점: 21C는 바야흐로 정보화 시대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정보 화 시대에서 살아가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정보이다. 그 정보습득의 핵심 메카 는 다름 아닌 인터넷이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인터넷 사용 환경은 인터넷 속도에 반비례 하고 있다. 일반 가정뿐만 아니라 공공시설에서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PC 설치가 미흡하다. 정보의 격차는 경제의 격차를 낳게 되기 때문에 정보의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② 개선 방안: 시각장애인용 PC 설치(보이스 기능 탑재 PC)는 관·공서 뿐만 아니라 PC가 설치되어 있는 곳에는 의무화 할 필요가 있다.③ 기대 효과: 정보의 격차를 줄임으로써 시각장애인의 삶의 질을 어느 정도 향상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2) 도서관의 이용① 현황 및 문제점: 도서관을 다니다 보면 참으로 이상한 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 장애인 주차장, 장애인 화장실 등은 구비되어있는데 반해 대다수 도서관은 장애인들이 정작 도서 관이용을 할 수 있는 좌석배치 조차 미흡하다. 또한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점자도서가 턱없 이 부족하고 점자 도서가 배치되어 있는 곳도 내가 살고 있는 대전에는 거의 전무하다.② 개선 방안: 기존 장애인 주차 시설, 장애인 화장실 등에 치우쳐있던 관심을 도서관을 이용하는데 있어 좌석배치 확대를 비롯한 실질적으로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적극적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각장애인들의 정보접근성을 위해서라도 점자 도서관의 설치가 시급하다.③ 기대 효과: 장애인들의 도서관 이용을 활성화함으로써 복지부분의 향상과 더불어 장 애인들의 사회적 진출이 활발하게 되어 자기 발전 및 나아가 국가 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3) 지폐 식별의 어려움① 현황 및 문제점: 현재 시각장애인들의 경우 지폐 식별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이다. 얼 마전 수업 시간에 교수님께서 눈을 감고 지폐를 만져보면서 어디에 점자 구분이 되어 있 는지 맞춰보라 하신 적이 있다. 나름대로 손의 감각이 누구보다 민감하고 세심하다고 생 각한
    교육학| 2010.08.03| 5페이지| 1,000원| 조회(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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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방’과 분단국가의 수립, 그리고 전쟁
    ‘해방’과 분단국가의 수립, 그리고 전쟁(내용요약정리)1) 해방과 38선 획정○ 카이로회담 (1943. 11. 22~26)- 12월 1일 카이로선언 : “전기 3개국(미ㆍ영ㆍ중)은 조선 인민의 노예상태에 유의하여 ‘적절한 과정을 거쳐서’(in due course) 조선을 자유 독립케 할 것을 결정한다.”- ‘즉시 독립’이 아니었음. 구상은 전적으로 루즈벨트의 것. 그는 ‘적절한 과정’으로서 ‘신탁통치’를 생각.○ 포츠담회담(1945. 7. 22)- 트루먼은 소ㆍ영 대립의 와중에서 몰로토프의 한반도 탁치에 관한 문제 제기를 자연스럽게 무시. 미국은 소련의 참전 전에 전쟁을 끝내 만주와 한반도를 독점하려고 기도함.○ 일본의 패전과 해방○ 미국의 38선 획정- 일본의 항복- 8월 10일에서 11일 사이에 38선은 획정됨. 38선은 형식적으로는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한 편의적 군사분계선.2) 미군의 한반도 상륙과 미군정의 점령 정책미군정의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의 가장 원초적이고도 근본적인 목표는 한반도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을 억제함으로써 한국을 사회주의 세력에 대항하는 방파제로 삼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정치적으로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수립하는 것을 뜻했고, 경제적으로는 남한을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본주의체제에 편입시키는 것을 뜻했다.이 부분에서는 점령정책중 정치부분에 비중을 두고, 경제부분과 사회문화부분은 간략히 다루고자 한다.○ 정치부분미군정의 점령정책은 미군정에 의한 국가기구의 형성이고, 다른 하나는 미군정에 의한 친미적인 국내정치세력의 육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앞에서 밝혔듯이, 미국은 제 3국 국가들에게 냉전정책을 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제시대 반일운동을 하여 민중에게 지지를 받고 있는 좌익세력들은 눈엣가시가 아닐 수 없었다. 이에 미군은 자신들의 정치적 세력을 뒷받침 해줄 세력이 필요했다.또한 친일파들은 그들의 친일행적 때문에 해방된 조선에서는 설 땅이 없었으므로 새로운 보호자가 필요했다. 이 두 세력의 이익이 맞물려, 미국은 친일파를 친미파로 재기본 원칙으로 하게 되었다.귀속재산에 관한 건은, 일본인의 재산에 관하여, 혼선을 빚다가 모든 종류의 재산을 접수 관리하게 되었다.미군정 하의 원조경제정책은 군사적, 정치적 목적에 의해 제공되었다. 그 양도 매우 미약하였기 때문에 산업개발이나 자립적 산업구조를 형성할 수 없었다.○ 사회문화부문미군정은 분단국가에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안보관련 국가 기구의 활동을 정비 강화하여 사회세력 가운데 노동집단과 농민집단 뿐 아니라 언론에 대한 통제를 가하였다. 한편 미군정은 중요한 사회정책의 하나로 교육개혁을 실시함으로써 사회안정을 꾀하였다.그러나 이러한 정책도 역시 미군정의 순조로운 통치를 위한 것에 불과했다. 노조활동을 ‘반공’, ‘빨갱이’라 하여 탄압을 강화하였고, 언론은 자신들의 이익과 일치되는 한에서 보장한다는 것이다.) 또한 교육도 미국의 이해관계를 실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 졌고, 이는 한국의 공산화를 방지하고 미국식 민주주의를 건설하겠다는 입장인 것이다.3) 모스크바 삼상회의와 신탁통치○ 모스크바 삼상회의 (1945. 12. 16~26)- 12월 16일 미국은 유엔주도하의 4개국(미ㆍ영ㆍ중ㆍ소) 탁치를 규정한 안을 제출 → 소련은 당분간 한국 문제보다 일본 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 일본 점령에 참여할 수 있는 보장을 받는 데 주력.- ‘先 임시정부 수립, 後 후견’을 골자로 한 것. 이는 ‘선 탁치 후 정부 수립’을 골자로 한 미국안을 대폭 수정한 것. 또 소련은 탁치(Trusteeship)이라는 용어를 러시아어로 ‘후견’에 해당하는 용어로 대체.→ “조선인의 자주적 정부 수립을 미ㆍ영ㆍ중ㆍ소가 원조한다”는 내용.- 미국은 소련의 수정안을 거의 그대로 받아들임. 12월 28일 의정서 발표.→ 모스크바 회담은 ‘5개년 이내의 4개국 신탁통치’ 이외에는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이 없었음. 모든 것은 미ㆍ소공동위원회로 넘겨짐.○ 좌ㆍ우익 세력의 분화- 해방 직후부터 서서히 시작, 신탁통치 찬반론으로 확실하게 분화.- 좌익 : 조선공산당 - 남로당(박헌영)중도좌ㆍ소공위- 제2차 미ㆍ소공위에서도 미소간에는 1차와 마찬가지로 협의단체의 자격 문제로 인해 갈등이 노출됨.- 협의단체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양보 없이 계속되다가 7월에 접어들면서 사실상 미ㆍ소공위의 결렬이 가시화함.- 미국측은 8월 26일 한국 문제를 미?소?영?중 4개국 회담에 맡기자는 제안을 제출.- 그러나 소련측은 이는 국제협약의 위반이라고 반대.- 미국은 9월 16일 한국문제를 유엔에 상정할 수밖에 없다고 소련측에 일방적으로 통보. 17일 즉각 유엔에 상정.- 소련측은 이를 맹비난하면서 9월 26일 외국군대가 즉각 철수한 후 한국정부의 수립은 한국민 스스로의 손에 맡기자는 제안을 함.- 이후 소련측은 미국측을 비난하고 10월 21일 소련측 대표를 평양으로 철수시킴으로써 2차 미소공위는 완전히 결렬.3) 분단정부의 수립(1) 분단정부의 수립 과정○ 1947. 9.18. 미국은 “한반도 문제가 유엔총회에 상정됨에 따라 신탁통치를 거치지 않고 조선을 독립시키는 수단이 강구되길 바란다”고 하면서 한반도 문제를 정식으로 유엔총회에 제의함.유엔 총회 운영위원회는 한반도문제에 관한 미국의 제안을 토의사항으로 넣자는 결의안을 12:2로 가결(9. 21)○ 유엔 한국위원단- 유엔 한국위원단이 선거를 준비하기 위해 내한(1948. 1. 6).- 소련은 유엔에 유엔한국위원단의 입북을 거절할 것을 통보(1. 25).- 김구와 김규식계의 민족자주연맹은 남북 정치요인회담을 열어 남북 전역에서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주장.- 이승만과 한민당계는 우선 가능한 지역에서 총선거를 시행하고 독립정부를 수립한 뒤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루자는 주장을 함.- 유엔 한국위원단은 유엔소총회 보고에서 ① 남한만의 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세우거나, ② 유엔한국위원단의 업무 수행이 불가능한 것을 인정하여 모든 것을 유엔총회에서 처리할 것 등 두 방안을 제의.- 미국대표는 남한만의 총선거 실시를 주장.→ 이승만은 크게 환영. 김구는 비판. 좌익은 폭동으로 대응.○ 단독선거 실시, 정부 수립- 반대운동이 치인민회의, 미국과 소련에 철군 요구. 소련은 12. 24. 철군.- 소련,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승인.(2) 남북협상과 그 좌절○ 단독정부 반대운동- 1947년 말, 단독정부 가능성이 높아지자 단독정부 반대운동이 일어남.- 김규식은 여운형 암살 후 중도파 세력을 규합, 좌ㆍ우익 편향을 배제하고 민족의 자주 노선을 표방하며 민족자주연맹 결성(47. 12. 20).- 김구와 김규식은 북쪽의 김일성, 김두봉에게 남북요인회담을 제의하는 서신을 보냄. 남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한 후 다시 남북협상을 제의(3. 8).- 북한도 북조선노동당을 비롯한 북쪽의 9개 정당, 단체 이름으로 남쪽의 한국독립당 등 모든 정당 사회단체 앞으로 ‘전조선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 개최를 제의하는 서신을 보냄(3. 30).- 미군정 당국은 김구ㆍ김규식 등의 북행을 반대. 우익 청년 학생 단체 및 기독교 단체와 38선 이북에서 월남한 인사들의 단체도 이들의 북행을 강력히 반대. 반면 문화인 108인이 연서한 남북회담 지지성명(4. 14)을 비롯하여 중도적 정당 등도 남북회담을 지지.○ 남북협상- 김구ㆍ김규식 등이 평양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전조선 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는 시작되어 있었음. 여기서는 미ㆍ소 양국 군대의 즉시 철수 요청과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하는 전체 동포에게 보내는 격문이 채택됨.- 남쪽 대표 11명과 북쪽 대표 4명 사이에 ‘남북조선 제정당사회단체 지도자 협의회’ 개최.- 외국군대 즉시 철수, 외국군 철수 후 내전 발생 부인, 전조선정치회의 구성과 그 주도에 의한 총선거 실시 및 정부 수립, 남한 단독선거 반대 등 4개항이 합의됨.- 서울로 돌아온 김구와 김규식은 평양에서의 남북 협상 경위와 합의사항을 설명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남한의 5ㆍ10선거를 거부함.○ 협상의 좌절- 북쪽에서는 제2차 남북협상을 해주에서 개최할 것을 제의했고, 북쪽에서 선거를 실시하여 정부를 수립할 예정이라 하고, 김구ㆍ김규식의 호응을 권함. 그러 총선거에 의한 통일 정부 수립을 요구함.- 그러나 결국 김구 암살(49. 6. 26)과 6ㆍ25전쟁으로 연결됨.◎ 논평1945년 8월 15일 우리나라는 일본의 패망으로 그토록 소망하던 독립을 맞이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가 맞이한 독립은 완전한 것이 못 되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힘으로 맞이한 것이 아닌 연합국의 승리로 인한 독립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남북을 미?소가 분할 점령하고 나라가 둘로 갈라지는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런 역사적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을 우리는 흔히 당시 세계사적인 흐름과 강대국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생각에는 그다지 큰 잘못이 없는 듯하다. 하지만 과연 우리나라가 해방 후 겪게 되는 시련들에 대한 이유를 외부적인 요인으로만 설명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본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 역사에 대한 가치를 정립하는데 있어서 오히려 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잘못을 감추고 남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것은 잘못된 우리의 역사에 대해 진정한 반성을 가지고 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과정을 겪게 된 우리 내부의 문제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우선 외부적 요인을 간단히 언급해보고자 한다. 외적 요인은 불완전한 해방인 8.15와 미군정의 실정, 즉 우리 손에 의해 이루어진 자주적 독립이 아닌 8.15와 미군정의 점령 정책과 사회?경제구조에 대한 미군정의 실정이 있다. 그리고 당시 세계사적인 흐름인 냉전체제로의 이행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들은 고난의 역사의 주요 이유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하나의 계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고난의 역사를 겪게 된 것은 우리 내부의 요인에서도 찾아 볼 수 있고 그러한 모습들이 더 큰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미군정은 우리나라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일본이 형성해놓은 식민지 지배구조를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이로 인해 친일세력과 반민족 세력에게 면죄부가 주어 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 면죄이다.
    교육학| 2010.08.03| 7페이지| 1,000원| 조회(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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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라의 삼국 통일론의 허구
    신라의 반쪽 통일(1) 삼국의 정세고구려가 수와 당의 침략을 막아내는 동안 신라에서는 신흥 귀족인 김춘추가 김유신과 결합하여 권력을 잡고 고구려와 백제에 대항하면서 삼국 간 항쟁에 주도권을 행사하였다. 이 시기는 중국에서 당나라가 강성하고 고구려가 중국과 강력히 대립하고 있을 무렵이므로 백제가 친고구려 외교로 기울자 신라는 당나라와의 접촉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따라서 이시기에 고구려-백제로 이어지는 남북 진영과 신라-당나라로 연결되는 동서진영이 서로 치열하게 대립을 하게 된다.(2)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7세기의 이러한 대립적인 상황에서 이미 내부적으로 정치질서의 문란과 지배층의 향락으로 내부 분열이 심화되어가던 백제는 결국 660년에 나·당 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면서 멸망하고 말았다. 한편 고구려는 거듭된 전쟁으로 국력이 소모되어 나라가 차차 기울어져갔다. 연개소문의 사후 치열한 정권 쟁탈전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은 민심을 황폐화하였으며, 밖으로는 돌궐과 말갈이 당에 복속되어 요동 방위선이 허물어졌다. 나·당 연합군은 이러한 틈을 타 다시 고구려를 공격하였고 668년에 고구려는 평양성마저 함락당하고 말았다.(3) 불완전한 통일의 완수 의의백제의 멸망 후 당은 백제 영토에 웅진 도독부, 평양에는 안동 도호부를 두고 엄연한 신라의 영토인 경주에도 계림 도독부를 두어 한반도를 당의 속국으로 만들려는 속셈을 드러내었다. 이에 신라는 고구려 유민과 합세하여 당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였는데 이로써 8년간의 나·당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으며 매소성과 기벌포에서 당의 군대를 물리친 신라는 대동강~원산만 이남의 땅만을 차지하는 부분적인 통일을 완성하게 된다.신라의 당나라와 연합한 정복전쟁을 가리켜 고구려, 백제, 신라가 한 국가로 합쳐지는 민족 최초의 통일국가를 완성했으며, 당나라 세력을 스스로의 힘으로 축출하고 통합된 민족문화의 형성과 발전을 가능하게 한 위대한 업적이라고 칭송하기도 한다.그러나 신라와 당에 의한 통일은 만주와 대동강 이북에 걸친 광대한 고구려 땅 대부분을 상실하고 평양도 완전히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삼국시대를 남북의 2국시대로 만든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는 신라가 자력이 아닌 외세의 힘으로 이루어 낸 결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생각해보기우리는 고대사를 바라볼 때 이러한 가정을 자주 해본다.‘신라가 아닌, 고구려가 통일을 했다면...... 저 드넓은 만주지방과 광활한 영토가 모두 우리의 영토였을 텐데......’ ‘백제가 통일을 했다면... 우리는 지금쯤 해양강국이 되어있지는 않을까......’ 하지만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역사의 의의는 과거를 통해 다시는 과거와 같은 과오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교훈을 찾는데 있다고 생각한다.신라의 삼국통일의 정당성 논란신라가 당나라의 힘을 빌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이 과연 정당한가, 아닌가는 이미 여러 학자들 사이에서 무수한 주장과 논쟁이 이어져 왔을 것이다. 그러나 신라가 외세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답지 못한 절반의 통일로 만들어 버렸고 고구려에 속해 있던 광활한 영토의 대부분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결과를 낳은, 역사상 가장 뼈아픈 사건인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삼국이 흥하느냐 망하느냐의 갈림길에 서 있던 7세기 중엽 당시는 한국역사상 최대 격동기였다. 이 시기에는 삼국간의 분쟁이 일상화되다시피 했는데 수?당의 국제 정세의 변동에 더해지면서 사태가 더욱 격화되었다. 그 결과 현재는 ‘신라에 의한 삼국통일’ 이란 명제를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일반적인 견해는 현존하는 최고의 역사서라 할 수 있는 삼국사기에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에 학계에서조차도 별다른 의문 없이 널리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현재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는 ‘신라가 삼국이 하나라는 의식 하에 한민족을 통합하려는 의지로 삼국통일을 실현했고, 통일을 이룩한 이후에는 민족 융합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펼치는 사람들도 신라의 삼국통일이 외세의 도움을 받고 고구려가 장학했던 만주대륙을 잃어버린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인정하고 있지만, 한민족 통합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위해 추진되었다고 강조하고 있다.삼국사기에서는 ‘김유신이 중국과 함께 모의해서 삼국을 한 집안으로 만듦으로써 빛나는 업적과 명성을 남기고 자신의 일생을 마치게 되었다’고 하여 삼국통일에 기여한 김유신의 역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삼국유사도 마찬가지다. 일연은 “김춘추가 김유신과 함께 신통한 계획으로 힘을 합하여 삼한을 통일하고 국가에 큰 공로를 세웠으므로 묘호를 태종이라 하였다.”고 기록했다. 이로 보아 일연 또한 김춘추와 김유신이 주도한 신라의 삼국통일에 대해 예찬으로 일관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김부식, 일연의 평가는 물론, 신라인들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그런데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은 신라인의 삼국통일론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후삼국의 궁예와 견훤이 나당연합에 의한 고구려와 백제 멸망의 부당성을 지적하면서 각각 고구려와 백제의 부흥을 표방하자, 고구려와 백제의 유민이 열렬히 호응한 데에서 그런 사정을 확인할 수 있다.그렇다면 오늘날의 통념대로 김춘추와 김유신은 한민족 통합을 이룩한 민족의 영웅인 것일까? 아니면 삼국 통일 비판론자들의 주장처럼 그저 삼국간의 분쟁에 외세를 끌어들인 사대주의자일 뿐인가?▶ 삼국 통일의 속사정선덕여왕 642년에 김춘추는 고구려에 동맹을 제의했으나 고구려는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자 신라는 당나라로 눈을 돌렸고 당 태종을 만나 고구려 정벌 요청을 하자 당 태종은 신라의 구원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고구려가 신흥세력인 북방의 돌궐과 연합하여 중국 대륙을 위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태종은 이 기회에 아예 백제는 물론 고구려까지 정벌하자고 제의하였고, 전후 평양 이남과 백제지역을 신라에 할애한다는 영토 분할을 약속한다.660년 나당 연합군은 백제를 멸망시키고 668년에 고구려까지 멸망시키지만, 백제와 고구려의 멸망이 곧 신라의 삼국통일로 귀결된 것은 아니었다. 신라와 연합한 당은 백제와 고구려뿐 아니라 신라까지도 지배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는 백제의 옛 땅에 웅진 도독부를, 고구려의 평양에 안동 도호부를 설치하였고, 경주에도 계림도독부를 설치하고 그 도독에 신라왕을 임명하였는데 이는 신라를 자신의 한 도독부로 삼아 직접 지배하려는 책략이었다. 말하자면 신라로서는 9년간의 전쟁에 국력만 낭비하고 끝내는 당에 예속될 상황에 처해 있었다.결국 신라는 당과의 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신라군은 매소성 전투에서 당의 20만 대군을 대파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금강 하류 기벌포에서 당의 수군을 격파함으로써 한반도에서 당의 세력을 완전히 축출하는 데 성공하였다.그렇다면 신라는 고구려의 옛 땅인 만주는 그만 두고라도 ‘삼국통일’이란 용어를 쓸 만큼의 한반도 대부분을 차지했을까?당시 전국의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나누었는데, 서북지역의 중심이 대략 한강 이남지역에 치중해있었다. 이것은 신라가 한강 이북지역을 거의 방치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리고 그 후 신라는 당나라로부터 대동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인정받게 되는데 이것은 고구려가 멸망하고 반세기가 훨씬 지난 후에나 이루어진 것이다.당나라가 대동강 이남의 땅을 준 이유는 만주 지역에서 새롭게 일어나고 있는 발해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732년, 발해의 무왕은 당의 산동성을 침공하였고 이에 위협을 느낀 당은 신라에 군사동원을 요청하였으며, 이에 대핸 대가로 대동강 이남에 대한 영유권을 양도하였다. 이는 그 지역이 발해를 견제하기 위한 요충지에 해당하기 때문이었다.▶ 신라의 통일추진 의지 여부통념대로 신라 스스로 삼국을 통합하여 민족 통일을 이루어야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능력이 있었다면 결코 한강 이북 지역을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신라는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몰아낸 뒤에도 북진을 염두 해 두지 않았다. 고구려 유민들의 활발한 고구려 부흥운동으로 당의 한반도 지배가 난관에 봉착하는 등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한강 이북 지역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 또한 고구려가 멸망한 지 150여년이 지난 후 대동강 이남의 땅을 확보한 목적이 고구려의 옛 땅을 통합하기보다는 발해의 팽창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점에서, 신라에는 본래 삼국을 통일하려는 계획이나 그럴 만한 능력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백제, 고구려의 멸망을 가져온 당과의 연합전선 자체가 백제의 잦은 침입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생존 전략차원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한다.▶ 민족 차별 정책실제 신라는 신라 삼국 통일론의 주창자들이 그토록 극찬한 백제와 고구려 유민을 통합하려는 정책, 이른바 민족융합정책에도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는 차별적인 인사정책을 들 수 있다. 문무왕 13년(673) 백제 유민의 관직 규정을 제도적으로 마련하였는데, 이에 따라 백제 유민은 신라 17관등 중 10위인 대나마의 직 이하에만 임명될 수 있었다. 그리고 신문왕 6년(686)에는 고구려 유민에 대한 관직 규정도 마련하여 최고 7위 일길찬까지 임명할 수 있게 하였다. 이처럼 신라는 고구려와 백제 유민에 대한 극단적인 인사 차별정책을 자행하였다. 그 결과로 후삼국의 분열이 표출되었던 것이다.
    교육학| 2010.08.03| 7페이지| 1,000원| 조회(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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