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가족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모습*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아버지의 동포(同胞)다.→ 자식은 아버지의 모든 것*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족들 앞에서 한없이 강한 사람이지만 아버지 역시 힘들고, 약한 사람의 모습 또한 존재*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아버지는 자신이 아무리 힘들어도 자식들을 보며 힘을 내고, 자식들로 인해 힘든 것을 위로 받는 다는 것을 의미아버지의 귀로* 흔들리며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리어커꾼의 거치른 손길 위에도* 가난한 아버지는 어질기만 하다* 까칠한 주름살에도* 상사를 받들던 여윈 손가락 끝에도 십원짜리 눈깔사탕이 고이 쥐어지는 시간. 가난하고 깨끗한 손을 가지고* 한줄기 주름살마저→ 바깥일(사회생활, 직장생활)이 고된 아버지를 의미. 밖에서의 이런 힘들고 고된 아버지도 집에서는 대통령보다 위대한 사람이 되고 그 어떤 것과 관계없이, 조건없이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아버지의 등을 밀며* 등짝에 낙인처럼 찍힌 지게자국→ 단순히 지게를 많이 져서 생긴 지게자국의 의미를 벗어나 자식에게 보여 주기 싫었던 삶의 무게, 역경, 상처, 고단함을 의미아버지의 나이* 처음 부분→ 나 자신도 아버지와 같이 삶의 고난을 알게 되고 그런 슬픔을 이해한다는 의미* 나는 이제 강물을 따라 흐를 줄도 알게 되었다.→ 삶과 같은 강물처럼 물 흐르듯 유하게 사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왜 강가에 지게를 내려놓고 종아리를 씻고 돌아와→ 자식을 대할 때의 아버지는 슬픔과 역경을 다 씻어버리고 깨끗한 모습으로 대함조원들과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예전 수업시간에 어머니에 대한 시를 접했을 때에는 여학생들의 공감이 많이 이루어진 반면, 이번 아버지에 대한 시에서는 남학생들의 공감이 많이 이루어졌다. 조원들과 각자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편하게 나누었는데, 조원들 거의 모두가 공통적으로 한 말은 아버지가 나이 드실수록 자꾸 여성스러워지신다는 것이었다. 예전의 아버지는 마치 슈퍼맨처럼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아는 완벽한 아버지였는데 우리가 크면서 아버지가 나이 드시고 나니 아버지도 실수할 때가 있고 허점이 있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많이 나왔다. 아버지가 딸과 아들을 대할 때에도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딸이 남자 친구를 데려왔을 때와, 아들이 여자 친구를 데려왔을 때 아버지가 딸과 아들을 대하는 태도가 가장 많이 다른 것 같다. 우리조의 한 남학생은 아버지에게 애교를 부리기 힘든 아들로서의 위치보다 애교를 부려도 어색하지 않은 딸의 위치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여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지와 둘이 있으면 어색해하는 딸도, 애교 부리며 친하게 지내는 딸도, 딸임에도 불구하고 아들 역할을 하고 있는 딸도 있었다. 같은 딸, 아들이여도 집에서 각자의 위치, 성격에 따라 모두 다른 것 같아 함께 이야기 하며 다른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너무 재미있었다. 다른 어려운 주제에 비해 이번 주제는 토론할 때도 재미있고, 시도 어렵지 않아서 좋았다.
건축공학과 4학년[ 끊임없이 궁금해 하며 문제의 근본에 도달한다 ]저는 항상 일상생활 속에서 어떠한 일이 있던 간에, 누구를 만나건 간에 매사에 '왜?' 라는 질문을 거듭하면서 근본적인 문제점에 도달하고자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 흔히 보이는 현상도 또 다른 시각으로 폭넓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지하철 이용 중 지하철의 실내등을 끄는 현상을 발견하였습니다. '왜 끌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문제의 해답을 얻기 위해 스스로에게 거듭 질문하면서 가설을 세웠습니다. 또한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담당자에게 문의를 하여 궁금증을 풀었습니다.이와 같이 저는 항상 의문점을 해결하고자 ' 의문 - 질문 - 가설 - 확인 ' 이라는 절차를 만들어 이를 지키도록 합니다. 이런 사물 및 현상의 근본을 찾는 성격은 사회 생활 속에서 어떠한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이를 효과적으로 대처하고 문제를 개선하는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일을 유연하게 처리하자 !! ]저는 무엇에 크게 집중하여, 집중을 하고 있을 때에는 주변 관리를 잘 못할 때가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이러한 성격 때문에 항상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말이 ‘남자는 멀티플레이어가 되지 않지만, 여자는 멀티플레이어가 된다.‘라고 하는데, 저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멀티플레이어가 되지 않는남자 같은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저의 성향은 집중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 할 때는 큰 장점이 되는 성격이지만, 미래에 다양한 업무를 하게 될 때는 단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따라서 이러한 성격을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따라서 다이어리를 이용해 일년, 한달, 주간, 하루 단위로 매사 꼼꼼히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여 빠지는 일 없이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습관을 길렀습니다. 또한 이를 통하여 집중력과 유연성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못했다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 ]저의 24년 짧은 삶에도 크고 작은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항상 저는 '그렇기 때문에 못했다'라는 핑계를 말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냈다'라는 말을 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해 왔고 그렇게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노력해서 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며 여태 껏 살았고, 앞으로도 ‘노력하면 된다라고‘ 굳게 믿으며 살아갈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을 알다 - 컴퓨터 동아리 ]대학생활 동안, 컴퓨터 동아리 활동을 하였습니다. 건설공학부 과동아리로 공학도에게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배우고, 토론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커뮤니케이션 역량을 키우는데 활동 목표가 있었습니다.하지만 입학할 때와는 다르게, 동아리가 목표를 잃고 그냥 친목이 목적이 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그렇게 느꼈을 때가 저에게는 개인적으로 2~3학년 시기였기 때문에 전공공부에 매진하여야 되는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대학생활을 시작한 추억을 가지고 있는 동아리여서 저만의 애착이 있어서 동아리를 개선하고자 노력했습니다.동아리의 목표를 되찾기 위해 두 가지 방안을 생각했습니다.첫째, 동아리 회칙을 다시 세워 운영의 체계성을 두었습니다. 동아리 회원들에게 각 업무를 분담하고 각자 맡은 역할을 통해 동아리를 운영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동안 회장중심의 운영진이 운영을 하였기 때문에 동아리 회원들의 개개인의 책임감이 적은 것을 극복하고자 하는 방법이었습니다.하지만 기존의 운영방법을 개선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우선 선배들에게 개선의 목적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하는 것으로 개선을 시작하였습니다. 개인적인 설득은 성공적인 개선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두 번째, 활동내용을 기록하는 활동이었습니다. 한 달에 한번 이상의 선배들의 컴퓨터 수업 강의를 진행하였지만, 진도 내용과 토론 내용이 기록 되지 않았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소속감과 참여도를 높이고자 '컴퓨터 수업 진도표와 토론집'을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편집부를 만들어 그동안의 자료를 모아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는 동아리 고유의 전통이 되어 매년 발간하고 있습니다.저는 항상 제가 소속한 단체에 강한 소속감을 느끼고 좀 더 발전적인 단체가 되도록 개선을 하려 합니다. 이러한 성격은 앞으로 제가 회사에서 적극적으로 업무를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미래를 준비하는 엔지니어 ]첫째, 일반기계기사 필기를 합격하고 실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기사 자격증 취득 후, 기술사 취득을 목표로 끊임없이 공부하겠습니다. 또한 이러한 공부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뛰어난 역량을 가진 엔지니어가 되겠습니다.둘째, 글로벌역량을 강화하겠습니다. 그동안 영어를 꾸준히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고 현재의 점수를 취득하였습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끊임없이 공부하여 세계 시장에 도전하는 엔지니어가 되겠습니다.
1. 한국근현대시사의 흐름을 역사적 맥락과 연관시켜 10년 단위로 서술하시오. 단 각 시대별 대표 시인과 작품을 반드시 언급하시오.① 암흑기의 저항시(1930년대 말~1940년대 초)1930년대 말부터 1940년대 초는 문학사상 암흑기에 해당한다. 신문이 모두 폐간되고, '문장' 역시 폐간 당하게 된다. 시를 발표할 지면을 잃고 말조차 빼앗겼다. 이러한 극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시인들이 붓을 꺾고 말았는데, 일제에 항거하는 시를 쓰며 민족사의 내일을 위해 헌신한 시인들이 있었다. 바로 이육사와 윤동주가 그들이다. 이육사는 '자오선(子午線)' 동인이다. 동시에 그는 당당한 민족 운동가이기도 하다. 그는 '광야(曠野)', '절정', '꽃', '교목(喬木)' 등을 통하여 남성적인 목소리로 강인한 대륙적 풍모를 보여 주었고, 일제에 대한 당당한 대결 정신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이것이 햇빛을 본 것은 8.15 이후다.윤동주는 식민지하의 지식인의 정신적 고뇌와 아픔을 '참회록(懺悔錄)', '십자가(十字架)' 등을 통하여 표현하였고, '서시(序詩)'를 통하여 도덕적 순결성을 노래하였다. 이 두 시인은 시와 행동이 일치했다는 점에서 시정신에 투철한 시인들이다.② 해방후 혼란기의 시(1945~1950)8.15 광복을 계기로 그 동안 붓을 꺾었던 시인들이 다시 우리말로 시를 쓰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시단은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좌익과 우익의 갈등 속에서 순수 문학과 프로 문학 사이의 대립이 심화되었다가 얼마 가지 않아 분단이 되고, 남쪽에서는 시단이 재편성되면서 순수 문학을 제창한 시인들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40년대 말에 와서 우리의 시는 두 경향으로 나누어지는데, 하나는 생명파와 청록파에 의하여 대표되는 전통시의 재건을 꾀하는 시풍이고, 또 다른 하나는 30년대의 주지시를 계승하고자 하는 시풍이다.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이 3인 공동 시집 '청록집(靑鹿集)'(1946)을 발간한 것을 비롯하여, 유치환은 '생명(生命)의 서(書)'(1947)를, 서정주는 '귀촉도(歸蜀道)'(1948)를 내놓았다. 이로써 전통시는 한층 발전된 모습으로 계승되는 계기가 되었다.이육사의 유고집 '육사 시집(陸史詩集)'(1946)과 윤동주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48)가 간행되어 우리 시단에 충격을 주었다. 반면에 주지시는 '후반기(後半期)' 동인인 박인환(朴寅煥), 김수영(金洙瑛), 김경린(金璟麟) 등에 의하여 주도되었다. 이들은 '새로운 도시와 시민의 합창'(1949)이라는 공동 시집을 내면서 모더니즘 시인으로 주목을 끌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현대 도시 문명에서 소재를 취하여 주지적, 감각적 기법으로 표현하려고 했다. 그리고 '문장'지의 추천을 받아 등장했던 박남수(朴南秀)도 이미지를 중시하는 주지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③ 전쟁 후의 시(1950~1960)50년대 초에는 전쟁시와 애국시가 주류를 이룸. 유치환의 '보병(步兵)과 더불어', 조지훈의 '다부원(多富院)에서', 구상(具常)의 '적군 묘지 앞에서(초토(焦土)의 시 8)' 등은 전쟁의 비극성을 노래하여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특히, 구상의 '적군 묘지 앞에서'는 당시의 전쟁의 속성을 밝혔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전쟁이 끝난 이후부터 주지적 경향이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후반기' 동인인 박인환 - '목마와 숙녀' 등의 시 발표,도시적. 인생파적인 비애를 지적으로 노래 김수영은 '달나라의 장난'이라는 시집을 간행, 성에 의해 절제된 서정의 세계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때 '후반기' 동인과는 다른 주지주의 내지 참여 시인들을 만나게 된다. 신동집 - 존재론적 관점에서 사물의 의미를 탐구, 전봉건 - 감각적 이미지를 중시하는 시를 썼다. 김춘수 - '꽃', '꽃을 위한 서시(序詩)' 등을 통하여 사물의 지적 인식을 꾀하였다. 송욱도 특유의 기지와 야유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 풍자적 주지시인 '하여지향(何如之鄕)'을 발표. 정한모는 상실된 인간성을 옹호하는 시를 썼고, 김현승은 고독의 세계를, 김남조는 인간적 사랑의 고뇌를 형상화하려고 했다.④ 1960년~1970년대의 시시적 경향은 '참여적인 시, 생파적인 시, 전통파적인 시, 주지적 실험시'의 네 가지로 압축된다.첫째는 참여시를 들 수 있다. 4.19와 5.16의 정치적 소용돌이와 민중에 대한 탄압 속에서 사회 현실을 비판하고 고발한 시를 말한다. 조지훈의 '역사 앞에서', 신동엽의 '껍데기는 가라' 등은 민중의 한과 역사 의식을 형상화한 것이며, 김수영의 '풀'도 억압에 대한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준 것이다. 김수영과 신동엽은 60년대 한국시의 쌍두마차라 할 수 있다. 김수영은 모더니즘 속에서 자라난 모더니즘의 비판자로서 4.19를 계기로 강한 현실 인식에 바탕을 둔 참여시를 썼다. 그는 현실을 냉철하게 살피는 지적 인식의 정직성을 추구한 시인으로서 사회적 실천성을 중시했다. 신동엽은 투철한 역사 인식과 건강한 민중성을 보였다. 민중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70년대 민중 문학이 출발하게 되었다. 김지하(金芝河)의 '오적(五賊)', 신경림(申庚林)의 '농무(農舞)' 등은 70년대의 참여시로 치열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성부, 이시영, 조태일, 정희성 등은 70년대 민중 문학의 기틀을 닦았다.
강재의 인장실험 교수님반 - 3 조 재료역학및실 험실험목적 실험방법 실험과정 실험결과 결론 및 고찰 C ontents1. 실험목적 STRUCTURE- 금속재료가 KS 에 규정한 인장강도 및 항복점 등의 품질을 가지는지의 여부를 판정할 수 있다 . - KS 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 금속재료 인 경우 인장 실험을 실시하여 적합 한 허용 응력을 정할 수 있다 . 1. 실험목적2. 실험방법 STRUCTURE6 시험기구 사용재 료 KS B 0801 에 따른 인장시편 인장시험기 STRUCTURE 2 . 실험방법 버니어 캘리퍼스 용어설명 (1) 항복점 (Yield Point) 인장시험 경과 중 시편 평행부가 하중의 증가로 늘음이 시작되기 전의 최대하중 [ kg] 을 평행부의 원단면적 [mm²] 으로 나눈 값 [kg/mm²] (2) 항복강도 내력이라고도 하며 인장시험에 있어서 항복점이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을 때에는 연신 축상에 표점거리의 0.2% 의 영구연신율을 가진 점으로부터 시험 초기의 직선부분에 평행선을 긋고 이것이 응력변형곡선과 교차되는 하중 [kg] 을 원단면적 [mm²] 으로 나눈 값 [kg/mm²]7 (5) 인장강도 (3) 연신율 STRUCTURE 2 . 실험방법 (4) 단면 수축율 (Reduction of area) 시편의 전단면을 접속하여 측정한 표점간의 거리와 원 표점거리의 차를 원 표점거리로 나눈 값의 백분율 인장 실험시 시편의 파괴 직전에 최소 단면적 A 와 원단면적 A ₀와 의 차를 원단면적 A ₀에 대한 백분율로 나타낸 것 시험편이 절단되었을 때의 하중 . 측 , 최대 인장 하중 [kg] 을 시험편 평행부의 원단면적 [mm²] 으로 나눈 값 [kg/mm²] (6) 인장하중 시험편이 견디는 최대하중 [kg]3. 실험과정 STRUCTURE3 . 실험과정 (1) 시편 ① KS B 0801( 금속재료 인장시편 ) ② 시편의 채취 및 제작은 각각의 한국 산업 규격에 따름 ③ 시편의 정중앙 점을 표시 , 양쪽 방향으로 10cm 거리에 표점을 표시3 . 실험과정 (2) 실험기 ① KS B 5521( 인장실험기 ) ② 실험기는 견고한 기초대에 고정 ( 3) 실험 ① 실험 중 시편에는 축방향의 하중만 가해지도록 한다 . ② 시편 하부를 실험기 하부의 물림 장치에 물린다 . (4) 인장강도 실험 ① 첫 번째 시편 ( 강판 ) ② 두 번째 시편 ( 알루미늄 ) ③ 세 번째 시편 ( 구리 )시편명 강판 알루미늄 구리 표점길이 ( mm) 200 200 200 가로폭 ( mm) 25.03 24.97 25.24 두께 ( mm) 3.03 2.94 3.05 3 . 실험과정4. 실험결과 STRUCTURE4 . 실험결과 (1) 강판의 실험 결과 * 실험 전 표점거리 : 200mm * 실험 후 표점거리 : 254.82mm * 연신율 = {(254.82-200) / 200} * 100 = 27.41% * 항복하중 =2943kg * 항복점 = 2943kg/0.76cm²=3872.36kg/cm² * 인장하중 =3245kg * 인장강도 =3245kg/0.76cm²=4269.73kg/cm²4 . 실험결과 (2) 알루미늄 실험 결과 * 실험 전 표점거리 : 200mm * 실험 후 표점거리 : 222.11mm * 연신율 = {( 222.11-200 ) / 200} * 100 = 11.055% * 항복하중 =1304kg * 항복점 = 1304kg/0.74cm²=1762.2kg/cm² * 인장하중 =1574kg * 인장강도 =1574kg/0.74cm²=2127.03kg/cm²4 . 실험결과 (3) 구리의 실험 결과 * 실험 전 표점거리 : 200mm * 실험 후 표점거리 : 252.81mm * 연신율 = {( 252.81-200 ) / 200} * 100 = 26.405% * 항복하중 =1856kg * 항복점 = 1856kg/0.77cm²=2410.4kg/cm² * 인장하중 =2057kg * 인장강도 =2057kg/0.77cm²=2671.4kg/cm²구분 강판 알루미늄 구리 항복점 ( kgf /㎠)/( MPa ) 3872.36/379.49 1762.2/172.7 2410.4/236.22 인장강도 ( kgf /㎠)/( MPa ) 4269.73/418.43 2127.03/208.45 2671.4/261.8 파괴하중 ( kg)/(N) 2239/21942.2 1191/11672 1395/13671 연신율 (%) 27.41 11.055 26.405 4 . 실험결과5. 결론 및 고찰 STRUCTURE5 . 결론 및 고찰 실험 결과로 나온 최대하중으로 구한 응력은 응력 - 변형률그래프의 극한응력으로 인장강도가 된다 . 우리 3 조의 실험에서 인장강도의 값은 강판은 418.43Mpa, 알루미늄은 208.45Mpa, 구리는 261.8Mpa 로 강판 - 구리 - 알루미늄 순으로 인장강도의 크기가 나타났다 . 하지만 연신율은 강판과 구리의 인장강도 값이 200Mpa 정도 차이 남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수치가 나왔고 그에 반해 알루미늄과 구리는 인장강도 면에서 비슷한 수치가 나왔지만 연신율 면에서는 면에서는 2 배 넘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다 . 연신률로 인해 갑자기 파괴되는 취성재료에 반해 이번 실험에서 시편은 늘어났다가 파괴되는 것을 관찰 할 수 있었는데 이로서 시편이 연성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 또한 일반 구조용 압연강재의 인장강도는 400~510Mpa 로 강판만이 구조용 압연강재의 기준값 안에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 그리고 파괴하중은 시편이 파괴될 때 측정되는 하중으로 우리조 실험에서는 각각의 시편이 2239kg, 1191kg, 1395kg 의 값이 나왔다 . 항복점은 하중의 증가 없이 변형률이 생기기 시작하는 처음 최대하중을 원단면적으로 나눈 값이다 . 실험 결과 그래프에서는 교과서의 응력 - 변형률의 그래프와 같이 항복점이 뚜렷하지 못하여 옵셋법을 이용해 항복점을 구한 결과 강판이 379.49Mpa, 알루미늄이 172.7Mpa, 구리가 236.22Mpa 로 나타났다 .5 . 결론 및 고찰 이번 실험에서는 재료의 배합이나 양생이 필요 없이 제작되어 있는 시편을 사용해 오차가 적을 거라 생각했지만 강판은 중앙 지점 윗 부분에 파단이 일어 났고 구리와 알루미늄은 중앙지점보다 조금 아래쪽에서 일어났다 . 원래 정확한 수치가 나오려면 중앙 부분에서 파단이 일어 나야 하지만 아무래도 육안으로만 인장시험기에 시편을 맞물릴 때 수직 수평을 맞추기 때문에 이러한 오차가 발생한 것 같다 . 이처럼 수직과 수평이 제대로 맞지 않는 상태에서 시편이 설치가 되면 편심이 발생하여 파단하중이 줄어들고 파단이 일어나는 시간 늘어난 시편의 길이 그리고 파단이 일어나는 위치가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 또한 종류가 다른 세가지 시편으로 실험을 하여 각 시편마다의 연신율과 인장강도등 그 재료가 갖고 있는 고유의 특성을 알 수 있었다 . 특히 강판과 구리의 연신율은 비슷하지만 인장강도는 2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점과 알루미늄과 구리의 인장강도는 비슷하지만 연신율은 2 배가 넘게 차이가 나는 것을 보았다 . 그리고 강판과 알루미늄은 연신율과 인장강도 모두 강판이 2 배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이번 강재의 인장실험으로 인해 재료의 특성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End- Thank you for your listening{nameOfApplication=Show}
서정시의 다양성 사회의식을 반영한 서정시 1970 년대 – 언어의 선택과 심상의 전달 , 사회적 관심과 일상적 삶의 경험을 표현 , 전통적인 운율을 활용한 시들을 창작 , 특히 농촌사회의 급속한 변화와 그 변화에 적응치 못하고 소외된 농민들을 소재로 한 시들이 많았음서정주 질마재 신화 – 시에 이야기를 담았으며 , 일상어를 적절히 구사 , 서정시로서의 운율과 정서 , 서사시로서의 이야기적인 요소를 시집만큼 절묘하게 결합 떠돌이의 시 – 시간을 초월하는 본질적인 서정성과 ,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천상과 지상의 이미지가 공존하며 , 다듬어지고 선택된 비유어를 골라서 써야 한다는 전통적인 서정시의 틀을 깨고 일상적인 언어를 시의 언어로 만듬선운사 동구 - 서정주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삶의 애환에 젖은 애절한 음조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니다 .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 .많은 서정시 시인이 농촌을 무대로 했지만 농촌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문화의 유풍을 시에 담은 시인은 서정주가 유일 했다 .존재론적 서정시 앞서 말한 사회의식을 반영한 서정시와는 성격이 다른 것들을 모아 존재론적 서정시라 했다 . 1970 년대 삶의 현장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실존적이고 형이상 학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 당대의 정치 경제적 현실의 어두움보다는 생로병사나 희로애락을 성찰 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김종삼시인 6.25 전쟁의 비극상과 세간살이의 고단함을 심도있게 표현 이수익 시인 시집 야간열차는 일상사와 자연현상에서 어떠한 깨달음을 도출 다른 존재론적 서정시를 쓴 대부분의 시인들이 깨달음이나 영혼에 대한 깨달음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에 대해 표현하고 있다 .{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