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선생의 생애와 교육 사상, 교육 활동교육학과201544-361418 박송이지난 2016년 8월 20일, 한 방송국의 대표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에서는 LA특집을 방송했다. LA 한인타운, 남가주대학교 등 LA의 명소 아닌 명소들을 스쳐가는 것으로 방송이 끝나는 듯 하였던 방송은 할리우드 거리를 방문 하면서 반전을 맞이하였다. ‘할리우드 거리에 있는 한국인 배우 3명을 찾아라’ 라는 미션에서 대한민국 대표 국민 배우라고 할 수 있는 이병헌, 안성기는 손 쉽게 찾았지만, 약 200개의 작품에 출연하며 20세기를 대표하는 동양인 배우인 미지의 그는 우리에게 도통 낯설기만 하였다. 마지막 미지의 배우인 그는 안필립, 바로 독립운동의 아버지인 도산 안창호 선생의 아들이였다. 必立 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도산은 조국을 반드시 일으켜 세우겠다는 강한 의지를 늘 품고 있었다.무한도전의 멤버들이 짜증을 내며 지겨워 했던 LA의 자칭 명소들은 사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상징적인 장소였던 것이다. 이내 멤버들은 무지함에 고개를 숙였으며, 이는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독립운동가였던 것 같긴 한데 도시락 폭탄이 안중근선생이였나 안창호 선생이였나 가물가물했다.도산 안창호(安昌浩, 1878-1938)선생, 우리나라의 자주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인 안창호 선생은 독립운동가였을 뿐만 아니라 평생을 교육을 통하여 우리 민족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한 근대 교육의 선각자였다. 한 일각에서는 도산의 사상은 그대로 교육 사상이요, 거꾸로 교육 사상은 그의 사상의 전부이다 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교육사상이야 말로 그의 사상의 진수를 형성한 것이다. 그의 일생은 민족 교육을 통하여 민족 독립을 추구하며, 그에게 있어서 교육이란 민족의 광복을 위한 것이자, 민족의 미래를 위한 희망, “횃불”로서의 의미를 지녔다. “죽고 살고 노예되고 독립됨이 다 교육에 달려있다.” 고 말한 도산의 발언처럼 그의 사상과 삶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바로 교육이였다.도산의 교육 사상과 활동을 알아보기 위하여 도산이 살았던 시대적 배경과 그의 생애는 반드시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시대는 영웅을 만든다 라는 말처럼 인간은 그가 살고 있는 시대 속에서 행동을 익히고 생각을 가다듬기 때문이다.1878년 도산 안창호가 태어난 때이다. 명성황후 세력이 쇄국정책으로 대표되는 흥선대원군을 밀어내고 집권한지 5년이 된 때로서, 조선은 자주적인 근대화의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 러시아의 남하정책과 조선침략을 노린 일본의 정책, 그리고 각 나라의 이해관계 속에서 우리나라는 결국 1910년 국권을 빼앗기게 된다. 도산은 이러한 시대 속에서 외국이 마음대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싸우는 이유는 우리나라에 힘이 없는 까닭이라고 결론을 짓고 신학문을 배우기 위하여 16세에 한양으로 떠나게 된다. 한양의 구세학당에 입학한 도산은 기독교의 신심(信心)을 깨닫게 되고 신학문인 산수, 세계지리 및 과학 등을 배우며, 기독교 사상을 기저로 하여 인류를 사랑하는 세계관 등을 터득하게 된다. 1897년 도산은 독립협회에 가입을 하게 되고 이 곳에서 만민공동회를 개최하여 부패한 정부와 관리를 비탄하고 민중의 각성을 촉구하는 쾌재정 연설을 하게 되었다. 이후 독립협회가 정부의 탄압으로 해산이 되자, 교육의 필요성을 깨달은 도산은 1899년 점진학교를 세우고 후진양성에 힘썼다. 점진학교는 지금의 초등학교로서 최초의 근대학교이자 남녀공학이 실시된 학교였다. 도산은 점진학교를 운영하여 여러 어려움을 해결하는데 교육적 전문지식과 능력을 터득하고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된다. 미국에서 도산은 한국 동포들의 참담한 생활을 보고 이를 지도할 책임을 느껴 우리 동포들의 단결과 계몽을 위한 한인친목회를 조직, 공립협회로 발전 시켰다. 공립협회는 야학을 개설하여 회원들을 교육시키고 공립신보라는 일종의 신문으로 민중 계몽에 힘을 썼다.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을사보호조약을 강제 체결한 것을 듣게 된 도산은 구국운동을 전개하기 위하여 귀국한 후, 비밀결사 신민회를 조직하고 민족 각성 운동을 전개하는 한편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하여 민족독립투사를 양성 하는 등의 활동을 펼쳤다.34세 되던 해 도산은 대한인국민회 중앙 총회를 조직하고, 이듬해 흥사단을 조직하였으며, 3·1 운동 후 상해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을 펼쳤다. 1924년에는 중국 남경에 동명학원을 설립하여 청년 교육에 힘쓰는 등 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32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의 상해 홍구 폭탄 투하 사건으로 체포된 도산은 2년 6개월의 복역 후 결국 1938년 향년 60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도산은 이처럼 독립운동과 함께 지속적인 교육 활동을 실시하였다. 이는 그의 사상 중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힘의 사상’에 근거한 것이다. 청일전쟁을 지켜본 도산은 우리 민족이 힘이 부족함을 깨달았으며, 민족의 힘을 기르는 것을 민족독립의 기초로 보았다. 도산은 이러한 민족 부흥의 핵심인 힘을 위해서는 건전한 인격의 형성과 공고한 단결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민족의 3대 자본축척을 강조하였다. 3대 자본은 금전의 자본, 지식의 자본, 그리고 신용의 자본을 의미한다. 금전의 자본은 경제적 자본이요, 지식의 자본은 정신적 자본이요, 신용의 자본은 도덕적 자본으로서 이러한 세가지 밑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3가지의 자본 축적이 없이는 개인도 독립할 수 없고 민족도 독립할 수 없다고 보았다. 도산은 우리 민족의 힘을 배양 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인격 훈련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으로 보고 서로 단결할 때 민족의 위대한 힘이 생긴다고 믿고 실천하며 이것이 바로 도산의 교육 이념이 되었다.또한 도산은 늘 우리나라의 독립을 확신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힘을 기름과 함께 우리민족이 책임정신과 민족 개조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민족 개조 정신이란 능력이 없는 우리 민족이 능력 있는 민족으로 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부터 개조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했다. 이러한 민족 개조의 정신이 없이는 우리의 힘만으로는 결코 독립과 번영을 이룰 수 없다고 확신하엿다. 도산은 우리 정치, 교육, 의식주, 나쁜 풍속과 습관을 개조해야한다고 했다. 산과 강까지도 개조하지 않고 자연에 맡겨 두면 산과 강이 황폐하고 민족도 약해진다고 했다. 또한 눈에 보이는 것만을 개조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마음, 도덕, 인격 등 자기 자신부터 개조해야 하는 일에 힘써야한다고 했다. 도산은 민족적 습관과 성격, 정신을 개조하기 위하여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의 4대 정신을 기르고 건전한 인격체를 많이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4대 정신 중 도산은 그 첫 정신으로 무실(務實)을 강조하였다. 무실이란 실을 힘쓴다는 뜻으로 거짓과 허위를 버리고 성실하게 살며, 실력과 실질을 힘쓰는 것이다. 도산은 우리민족의 얼렁뚱땅 넘기는 것과 부허(浮虛, 마음이 들떠있어 미덥지 못한 상태)병이 우리 민족의 병폐로 보고 그 자리에 착실을 심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역행은 행하기를 힘쓰는 것으로 실천주의를 의미한다. 충의는 충성과 신의의 합성어로서 일에는 충성을 다하고 사람에 대해서는 신의를 지키자고 하였다. 도산은 우리민족이 개조해야 할 것 중 하나가 바로 불충불신(不忠不信)으로, 이를 개조하는 것이 참된 길로 보았다. 마지막인 용감은 옳은 일을 위하여 두려움 없이 돌진하며 어려운 일을 당할때는 참고 견디는 자세를 의미한다.
사회복지현장에서의 양적 조사의 의의와 유의사항교육학과201544-361418 박송이"사회복지"라는 말은 우리에게 있어 그다지 낯선 단어는 아니다. 그러나 사회복지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정확하게 답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고 단언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 사회복지란 남을 돕는 것, 이에 좀 더 나아가 장애인이나 노인 등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 정도로만 인지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복지란 단순히 남을 돕는 "자원"으로 정의하기엔 그 의미가 너무나 크다. 사회복지의 사전적 정의는 " 국민의 생활 안정 및 교육·직업·의료 등의 보장을 포함하는 복지를 추구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 즉 넓은 의미의 사회적 방책의 총칭. " 을 말한다. 다시말해, 좁게는 공적 부조를 덧붙인 사회복지사업을, 넓게는 사회사업 이외의 사회정책·사회보장·주택보장 등을 포함하는 의미이다. 이것은 사회복지가 사회구성원 모두가 기초적인 생활보장은 물론 인간적인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수단들을 적절하게 활용하기 위하여 사회적 부를 비롯한 각종 권리, 기회를 차별 없이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적절히 배분해야 함을 나타내고 있다. 세계는 지난 수십 년 동안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다양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이룩해 왔다. 도시화, 산업화를 통한 생활수준의 향상과 함께 환경오염, 소득 양극화의 심화, 도심 인구 집중 등과 같은 불균형을 초래해 왔다. 이에 사회보장 제도에 관한 베버리지 법안을 제창한 영국의 경제학자 베버리지는 무지, 불결 나태, 결핍, 질병 등을 사회적 위험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사회적 위험을 제거하기 위한 공적인 개입을 촉구하였다. 즉, 사회복지의 실천을 강조한 것이다. 이러한 사회복지는 모든 사회현장에서 적용이 가능하다. 사회복지현장이란 사회복지의 실천이 이루어지는 곳을 말하며 단순한 '장소'의 개념에서 벗어나 사회복지실천이 행해지는 ‘장’(setting), '문제‘(problem), '대상 집단’(client)을 모두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 사회복지의 실천은 객관적이고 체계적인, 그리고 과학적인 근거가 있을 때만 정당화 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사회복지 조사는 사회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필수적인 단계가 되었다.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둘러싸인 우리사회에서 맹목적인 이해를 제거해주고 시민들의 삶에 개입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사회복지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준다. 다른 조사와 마찬가지로 자료를 수집하는 조사과정은 자료 수집의 방법에 따라 양적 조사와 질적 조사로 구분 할 수 있다 양적 조사는 많은 자료를 수집하는 것으로써 조사나 실험, 관찰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수량화 하는 조사방법이다. 사회복지에서의 양적조사는 다른 사회과학 조사와 마찬가지로 사회현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이론을 정립해 가는 경험적방법을 사용한다. 이러한 경험적 방법(경험과학)은 자료에 근거하여 이론을 제시, 지지, 혹은 거부하는 과학적 방식이다.크게 사회복지조사의 양적 조사는 다음과 같은 유형으로 나뉠 수 있다. 질문지를 이용하여 자료를 수집하는(스스로 답하도록 하거나 면접을 통해 기입하는)조사인 질문지 조사, 응답자에게 질문을 읽어 주고 대면한 상태에서 언어적 상호작용에 의하여 자료를 수집하는 면접, 외부변인을 통제하고 독립변인을 조작하여 종속변인을 관찰함으로써 그 인과관계를 파악하는 실험, 그리고 서적, 신문, 문서, 영화, 노래 등 기존 자료를 객관적,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정보를 얻어내는 내용 분석법, 그리고 정부 기관이나 기존 연구 자료에서 발표된 통계자료를 이용하여 새로운 정보를 얻어내는 방법인 기존 통계자료 분석 등이 이에 해당된다.표 1. 양적조사와 질적 조사의 대표적 차이 사회복지조사의 양적 조사는 아래의 표와 같이 질적 조사와는 약간의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질적 조사는 해석적 접근법으로 해석이 되는 만큼 심층적이고 문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수 있으나, 양적조사는 현실적 접근법으로 객관적이고 일반화 할 수 있는 결과를 산출 가능하여 재정 지원과 출판 등에 용이하며, 데이터 구축 등에 사용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등 각각의 장점이 있다. 이에 본 보고서에서는 사회복지 현장에서 양적조사가 필요한 상황과 함께, 양적조사 시 유의해야할 점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사회복지조사는 대부분 개인, 집단, 또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실시되는 조사로써 가능한 과학적인, 그리고 합리적인 조사과정에 따라 조사가 이루어 져야 한다. 조사자는 어떠한 문제를 인식, 가급적 구체적이고 명확한 연구문제를 선정(연구문제의 선정) 후, 연구 문제선정에서 제기한 이론이나 가설을 경험적으로 검증하기 위하여 조사 연구에 대한 전반적인 계획을 수립(조사 설계)하게 된다.이 후 본격적인 연구를 위하여 자료를 수집하게 되고(자료수집), 수집된 자료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과정을 걸쳐 연구결과를 도출(자료 분석 및 해석) 해 낸다. 이렇게 조사가 이루어 진 모든 과정을 문서형태로 저장하는 과정(보고서 작성)을 걸치게 되면 사회복지조사가 종료된다. 이러한 사회복지조사과정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자료조사 과정 중 일종의 연역적 방법으로 통계적 방법을 동원하여 주로 수치, 측정, 실험, 수량적 관계와 진술에 초점을 두고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법칙을 설명하려는데 목적을 두는 양적 조사는, 콩트의 실증주의에 기초하여 객관적 실제를 가정하고 있다.‘청각장애인의 사회복지서비스 개발을 위한 욕구조사’ 연구는 대표적인 양적 조사방법인 질문지조사법을 사용한 사회복지조사를 실시한 사례이다. 이 연구에서는 서울지역에 거주하는 청각장애인을 중심으로, 청각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소비자 중심의 효율적인 서비스 개발·제공을 위하여 청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포괄적인 욕구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서비스 정책 및 프로그램 개발과 다양한 서비스 방안을 모색하기 위하여 연구를 실시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대상자 개개인들의 개별적이고 심층적인 자료보다는 청각장애인이라는 제한된 대상자들의 일반적으로 느끼는 불만족 사항이나 필요점 등을 포괄적으로 파악하기 위하여 양적 조사법 - 특히 질문지 조사법-을 사용하였다. 취합된 질문지를 분석, 연구한 결과 청각장애인들의 전반적인 생활실태 및 복지 서비스 인지도·이용도, 우선순위를 두어야 하는 서비스 정책 등에 대한 응답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이 연구에서는 본 응답 결과를 바탕으로 하여 청각장애인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서비스 정책 및 프로그램 개발을 위한 제언을 하며 연구를 마감하였다.또한 ‘노인대상 자원봉사활동이 대학생들의 노인 및 노인복지에 대한 인식에 미치는 영향’ 연구는 또 다른 양적 조사 방법인 실험법을 사용한 사회복지조사를 실시한 사례이다. 이 연구에서는 노인대상 자원봉사활동이 대학생들의 노인 및 노인복지에 대한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자원봉사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과 참가하지 않은 학생을 각각 실험 집단 및 통제 집단으로 선정하여 프로그램 전 후 설문조사를 통하여 노인복지에 대한 인식을 알아보는 실험을 실시하였다. 실험집단은 프로그램참여 전 기본적인 자원봉사활동에 대한 교육을 받았으며, 주 1회 4개월 동안 노인의 집을 방문하여 말벗해드리기, 건강 체크 등의 재가복지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설문 조사는 두 집단 모두 각각 프로그램 시작 전과 종료 후에 실시되었다. 사전 조사에서는 실험 집단이 통제 집단 보다 노인 복지에 대한 관심도는 높으나 노인에 대한 태도, 공경심, 복지에 대한 지식 측면에서는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사후조사 결과 통제집단은 사전조사에 비하여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으나 실험집단의 경우 노인에 대한 태도와 공경심 부문에서 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알아 볼 수 있었다. 이 연구 결과 노인대상 자원봉사활동이 노인에 대한 의식을 보다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으며, 본 연구 결과를 기초로 노인에 대한 지식 및 관심도를 높일 수 있도록 자원봉사프로그램에 교육적 측면을 도입하는 방법 등이 필요하다는 제언을 하였다.
신자유주의 사회와 여성혐오 사상- “남성성과 젠더” 를 중심으로교육학과 201544-361418 박송이2016년 10월 02일 한 포털사이트의 사회뉴스 란에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다. 늦은 밤 귀가하는 여성들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를 방지하기 위해 서울시가 3년째 추진하고 있는 여성안심귀가스카우트에 대한 간략한 소개, 대원들의 고충 등에 대한 기사였다. 이런 것도 있구나, 하는 생각으로 스크롤을 내리다가 깜짝 놀라버렸다. ‘하는일없이 밤낮으로 세금만 축내는 밥버라지 계집들이란 기사구만’, ‘진짜 기생충들은 어릴때부터 나이들어서까지 기생충들이다 국가와 민족에 도움되는짓을 단 하나도 안함’, ‘역겹네 남자만 차별’ 등의 악성댓글이 한 두 개가 아니였다.이처럼 한국사회의 여성혐오 사상이 생각보다 깊게, 그리고 아주 넓게 퍼져있다. 아니, 사실 요즘의 한국 사회만의 문제는 아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여성은 기본적으로 이성이 없는 존재로 간주하여 남성의 지배를 받아야만 하는 열등한 존재로 규정하였다. 조선시대의 유교사상에는 가부장적인 지배질서에 따라 여성은 남성의 지배하에 있어야 하는 존재여만 했다. 이렇게 역사적으로 여성혐오 사상은 꽤나 오래전부터 만연했다. 여성혐오는 여성차별과 같은 역사적 맥락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대에 들어 활발한 여성 운동과 여성 교육으로 인하여 여성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화하였고, 이와 함께 여권도 신장하였다. 그와 함께 인터넷을 기반으로 대중적으로 생산되고 소비되는 여성혐오사상도 여성에 대한 멸시와 폭력을 정당화하기 시작하였다. 신자유주의 사회인 현재, 그리고 여성혐오사상, 그 상관관계를 ‘남성성과 젠더’를 통하여 보다 더 알아보고자 한다.신자유주의 시대의 노동시장은 노동의 ‘유연화‘ 라는 이름으로 비정규직 고용형태를 정착시키며 고용불안정성을 심화시켰다. 노동자의 권리가 강조되었던 과거와 달리 정규직은 사라지고 임시직, 시간제 근로자, 계약직 등의 고용형태가 변화하며, 이는 신 국제분업을 통하여 전지구적으로 고용형태를 성별화 하는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소비자본주의의 확산이 일어났고, ’남성성과 젠더‘에서는 이 같은 소비자본주의의 확산은 노동의 영역에서 남성적인 것의 가치보다 여성적인 것을 보다 더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것으로 여기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서비스 산업을 필두로 하여 전체 산업 영역에서 감정 노동이 일반화 되었고, 감정 자체가 자본화 하는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그 자리에는 해고하기 쉽고, 값싸며, 사람의 감정을 보다 더 잘 다루는 여성들이 진출한 것으로 보았다. 여성들의 교육으로 인하여 여성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여권이 신장되었을 뿐만 아니라, 노동시장에서의 여성노동에 대한 수요의 증가로 여성의 사회진출이 증가했다고 생각한 나에게 있어 여성노동의 질에 대한 부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였다. 그저 어렸을 때 맞벌이노동을 하는 어머니를 둔 친구들 보다 전업주부를 어머니로 둔 친구들이 훨씬 더 많았지만, 내가 취업을 하고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이 하나 둘 씩 늘어나는 지금 전업 주부가 된, 혹은 되겠다고 하는 여자친구들이 거의 없어진 것을 보고 그저 요즘은 여자도 다 일을 하는 사회지 라고 느꼈을 뿐이였다. 2016년 통계청이 발간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오히려 취업자의 임금근로자 비중은 여성이 76.4% 남성이 72.5% 로 여성이 남성보다 3.9% 높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여성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의 비중은 2016년도 기준 40.3%로 남성 임금 근로자 중 비정규직의 비중인 25.5%의 보다 14.8%나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1인 이상 사업체의 여성 월평균 임금은 2015년도 기준으로 1,781,000원으로 남성임금의 62.8%에 불과하였다. 각 학교급별 교원 중 여성의 비율은 59.3%이지만, 여성 교장의 비율은 모두 30% 미만이며, 대학(원)의 전임교원 중 여성의 비율 역시 24.4%에 불과하였다. 2014년 공직 내 여성 공무원 비율은 43.9%이지만 일반직 국가공무원 4급 이상 중 여성 관리자는 9.7%일 뿐이였다. 이와 같이 여성 노동의 양적 성장은 이루어졌으나, 여성 노동의 질적 성장은 함께 이루어지지 않았다. 콜센터, 마트 캐셔 등 감정노동이 주를 이루는 비정규직, 파견업체 소속의 노동 등이 주를 차지하였다.그러나 ’남성성과 젠더‘에서는 아직은 부족하지만 여성들에게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고, 이것이 또한 ‘감정자본’을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한 남성들에게 위협이 되고 있다고 한다 고 말하고 있다. 동국대 사회학과 조동기 교수는 여성혐오 사상은 “성평등주의 확산에 따른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와 청년층의 취업경쟁 심화가 결합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급증하였고, 전통적으로 남성들만이 경쟁했던 노동시장에 여성들의 참여가 늘어났고 오히려 2016년 통계청의 자료에 따지면 여성 취업자의 임금근로자 비중은 남성 취업자의 임금근로자 비중보다 3.9%가 높은 수준이다.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일부 남성들의 증폭된 위기의식이 불안감과 함께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아 비난하고 편견을 조장하여 혐오주의가 출현하게 된다고 한다. 울대 여성연구소 홍찬숙 연구교수 역시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해 여성이 남성과 다름없는 하나의 노동주체로 인식되고 있는 지금, 여성 혐오는 남성들이 동의하지 않는 변화에 대한 반발이라고 말한다. 연세 춘추 - 영성, 서로를 혐호하게 된 이유 2015.09.19 문세린 기자모두가 힘든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한정된 일자리 -그것이 양질의 일자리이든, 아니든 간에-를 놓고 경쟁자가 더 생긴다는 것이 달갑지는 않은 일일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단순한 노동시장에서의 경쟁이 증가함이 아니라 삶의 영역까지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는 영향을 미쳤다. ’남성성과 젠더‘에 따르면 “노동의 주체로서 남성은 언제나 무언가를 자신들이 살 수 있다는 것으로 여성에 대한 우월감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여성들의 노동시장 진입과 여성의 권리 의식 신장은 남성들에게 아주 불리한 것이였다” 라고 한다. 특히 비정규직 혹은 임시직에 종사하는 남성들의 경우 더욱 크게 다가왔다고 한다. 기존 여성에게 남성이 ’돈'을 냄으로써 그에 상응하는 정서적인 것부터 성적 부분까지, 그리고 결혼과 함께 그동안의 투자를 모두 돌려받았으나, 시대가 달라졌다.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참여 함에 따라 그에 따른 경제적인 소득이 늘어났고, 이와 반대로 남성이 차지하고 있던 경제적 우월감은 경제적 평등으로 (물론 완전한 평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점차 바뀌어지게 되었다.
“서머힐”과 “바람의 학교”로 보는 한국 교육의 지향점201544-361418 교육학과 박송이[그림 1] SBS 특별기획 “바람의 학교”지난 2015년 11월~12월 SBS에서 방송한 창사 25주년 특별기획 “바람의 학교” 라는 프로그램을 우연치 않게 보게 되었다. 약 5시간 거리의 고향을 내려가는 고속버스 안에서 TV 채널 선택권이 없이 그저 자극적인 비속어에 깜짝 놀라 화면을 쳐다보게 되었고, 이내 곧 화면에 집중하게 되었다. 소위 말하는 ‘노는 아이’ 라는 개념을 넘어선 ‘비행청소년’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만한 전국 각지 16명의 아이들이 제주도의 한 대안학교에 모여 한달간의 합숙생활을 하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였다. 음주와 흡연, 폭력과 욕설을 하지 않는다, 휴대전화는 정해진 시간에만 사용한다, 항상 교복을 착용한다는 등의 어찌보면 참으로 당연한 사항을 입학 전 약속으로 정했고,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렇게 당연한 사항에 반발하며 욕설과 흡연을 허락해 달라는 다소 발칙한 주장을 펼치는 아이들을 보며 아, 정말 골때린다. 라는 표현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한달간의 합숙 생활 속에서 크고 작은 - 아니, 크고 크고 더 큰 - 사건들을 겪으며 아이들이 성장해 가는 장면들을 바라보며 비행청소년으로만 낙인 찍힌 아이들에게도 커다란 잠재력과 가능성이 있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된 프로그램이였다.아동 중심의 자유주의적 교육을 실천한 A.S Neill 의 저서인 ‘서머힐’은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의 학교와 매우 닮아있었다. ‘어린이들을 학교에 맞추는 대신 어린이들에게 학교를 맞추는 교육’ 을 하는 서머힐의 모습은 ‘바람이 부는 곳이면 어디든 학교다’ 라는 교훈을 가진 바람의 학교와 매우 유사했다. 그렇기에 바람의 학교와 서머힐을 비교하여 우리나라 대안교육의 지향점에 대하여 알아보고 싶었다.서머힐은 1921년 프랑스에서 실시된 제 1회 국제신교육협회 회의에 참석 후 국제학교를 세우고 근 100년이 다 되가는 현재까지 세계에서 가장 진보적인 학교로 건재하고 있다. 처음엔 실험학교로서 시작했다고 한다. 아이들을 학교에 맞추려 하지 않고 학교를 아이들에게 맞추자는 생각으로 서머힐을 시작했다고 한다. 학교는 수업을 듣는 곳이라는 어찌보면 당연한 프레임을 깨고 수업을 듣는 것을 아이들의 자율에 맡긴다. 수업이 의무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이다. 학급 편성 역시 당연히 학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심사에 따라서 편성되기도 한다고 한다. 닐에게 있어서 인생과 교육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의 발견과 그 준비에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의 행복을 위하여는 선한 본성을 따라 자유로울 때 행복하고 훌륭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행복이란 내적인 건강과 균형, 생에 대한 충족을 뜻하며, 억압을 받지 않고 삶의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하였다. 바람의 학교에서의 학생들도 비슷하였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투표하고 그 이유에 대하여 토의하는 수업에서 “자유” 는 “돈”, “명예” 등 다른 제시어 보다도 더 많은 표를 받았다. 또한 프로그램 내내 늦잠을 자는 자유, 흡연을 할 수 있는 자유 등 모든 행동에 있어 자유를 갈망하고, 충족되지 못할 때 반발을 하거나 예기치 못한 일탈행동을 하는 듯의 모습을 보였다. 이는 외부 압박에 의하여 생긴 적개심이 적절히 표출되지 못하고 자기 증오심으로 발현이 되며, 이것이 바로 반 사회적인 일탈 행동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닐의 주장과도 일맥 상통하는 듯 하였다.서머힐에서는 국어, 수학, 영어등 교과목 중심의 수업을 진행하는 우리나라의 공교육과는 달리 교과목 수업이 있지만 강조 혹은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유시간을 주고, 공예와 목공 수업 등 자신이 원하는 예체능 영역을 중시하였다. 또한 도덕적이거나 종교적인 교육은 거부하였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발달 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면 본성의 선함이자연스럽게 드러날 것이므로, 오히려 도덕적 훈련이나 종교적 가르침은 억압과 제재를 수반할 뿐이므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수업뿐만 아니라 다른 학교생활도 아이들의 자유에 맡기었다. 아이들 스스로가 학교생활을 의논할 수 있도록 자치회를 구성하였다. 예를 들어 친구들과 놀러갈 때 쓸 자신의 고장난 자전거를 고치기 위하여 한 아이가 다른 친구의 자전거에서 페달을 훔친 사건이 있었다. 자치회에서는 토의를 통하여 훔친 페달을 돌려주게 하고, 대신 자전거 수리비가 없는 친구를 위하여 모금활동을 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바람의 학교에서도 비슷한 자치회를 구성하였다. 어찌보면 당연히 금기 되는 미성년자의 흡연, 그러나 또 어찌보면 당연하게 행해지는 몰래 하는 흡연. 입학할 때의 약속이였던 학생들의 금연이 아이들에게는 당연히 지켜지지 않았고, 오히려 몰래 담배를 구하려 기숙사를 탈출 하는 등의 부작용을 낳게 되었다. 오랜 회의를 통하여 선생님은 아이들의 흡연 요구를 들어주게 되었고, 대신에 필요할 때마다 선생님에게 요청하는 방법을 통하여 아이들의 금연을 도와주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그렇게 아이들은 오히려 흡연을 규제하였던 초기보다 흡연율이 더 감소하였다.서머힐에서는 교육의 일종으로 연극을 만든다. 스스로 대본을 만들고 스스로 의상도 만든다.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연극을 통하여 표출한다. 바람의 학교에서도 연극 공연을 실시하였다. 자신의 창작품만을 상연하는 서머힐과는 달리 기존의 작품인 “수업료를 돌려주세요”를 각색한 공연이였다. 아이들이 스스로 연극의 연출, 배우, 작가, 분장 그리고 조명까지 맡아서 실시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막막하고 부끄러워 시작할 엄두도 못했지만 프로젝트들이 진행이 되면서 숨겨왔던 끼와 재능을 표출 할 수 있었다. 촬영 감독 역할에 빠져 재미를 느낀 아이는 다니던학교에 다시 돌아가면 방송반에 들어갈 거라는 말을 했고, 기타를 좋아하는 아이는 버스킹 공연에서 직접 부를 자작곡도 만들었다. 학생이 무슨 화장을 하냐며 집에서는 타박을 받던 아이들은 오히려 분장에서 화장솜씨를 뽐낼 수 있어 친구들에게 칭찬과 찬사를 듣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은 연극 과정에서 초반에 오글거린다며 꺼려했던 모습은 사라지고 항상 웃게 되었다. 그리고 책임감과 성취감 까지도 얻게 되었다.그러나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바람의 학교를 보면서 드는 걱정이 있었다. 얘들은 대체 어떻게 살려고 그러나 하는 생각이였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점수를 받고,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들어가서 좋은 회사에 취업을 해야지 좋은 배우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고리타분한 생각이 역시 내 생각이기도 했다. 나 역시 그러해서 적성에도 맞지 않는 공부를 해왔고, 3점짜리 수학문제 하나에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울기도 했었다.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에서 저런 커리큘럼은 분명 좋은 수능점수를 얻지 못하게 될게 분명한데, 저걸 어떻게 하나 싶었다. 서머힐에 대한 사회의 시선도 마찬가지였다. 미래에 대한 불안, 그것은 서머힐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이였다. 서머힐에서의 성공이란 “기쁘게 일하고 충만된 삶을 영위해 나가는 능력” 이였다. 달리 말하면 그냥 자신이 행복한 것이 곧 성공이였다. 그런의미에서 서머힐의 아이들은 충분히 성공하였고, 앞으로도 성공 할 수 있는 사람이였던 것이다. 오히려 서머힐의 시선에서 나는 성공하지 못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 초중고등학교 12년 내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 보지도 못하고 그냥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살아왔고, 나의 적성은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그저 소위 말하는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하여 배치표에 맞춘 점수로 대학과 학과를 들어갔었다. 취업을 위하여 그저 자격증을 따기에 급급했었고, 좋은 학점을 만들기 위해서 학교-집을 반복했었다. 그리고 남들이 보면 괜찮다 싶은 직장에 취업을 했고, 그리고 행복하지 않았다. 그냥 남들이 볼땐 괜찮은 삶이였다. 딱히 힘들어 하는 것도 없었고, 회사에서는 일 잘하고 잘 웃고 하니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재미가 없었다. 반복되는 일상. 아침이 되면 출근하고 저녁이 되면 퇴근했다. 퇴근 후에는 밥을 먹고 집안일을 하고 자면 또 아침이 되고 주말이 되면 익숙하게 데이트를 나가고 다시 주중이 되었다. 그렇기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늦었지도 모르겠지만, 아니 설사 늦었더라도 상관이 없었다.
■ 가족 사례 분석 및 적정한 가족교육 프로그램 구성- 유아기 가족의 사례를 중심으로교육학과 201544-361418 박송이시대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함께 끊임없이 변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 가족의 형태 또한 달라지게 된다. Murdok의 ‘부부와 그들의 자녀로 구성되고, 공동거주, 경제적 협동, 재생산을 특징으로 하는 집단’이라는 가족의 고전적인 정의는 가족의 외형적 구성과 기능 등 구조적 측면만을 강조한 말 그대로 고전적인 정의일 뿐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Murdok의 정의에서 벗어난 가족 - 한 부모 가정, 조손가정, 재혼가정, 입양가정, 딩크족 가정 등- 이 더 이상 낯설지 만은 않을 만큼 가족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가족의 정의 역시 고전적 정의에서 벗어나 더욱더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넓은 개념으로서의 가족을 설명한 Levi-Strauss에 따르면 ‘가족이란 결혼에 의해 출발하며 부부와 그들 사이에서 출생한 자녀로 구성되지만 이들 외에 가까운 친척이 포함될 수 있다. 가족 구성원들은 법적 유대, 경제적, 종교적 등 권리와 의무, 성적권리와 통제, 애정, 존경 등 다양한 심리적 정서로 결합되어 있다’ 는 특성을 나타낸다. 이는 가족이 단순한 형태적 의미에서 벗어나 가족 구성원 간의 유대, 관계 등의 운명을 같이 하는 공동체적 특성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Gelles에 따르면 가족이란 ‘어떤 지위에 있는 사람들의 상호작용으로 구성되는 사회집단으로, 전형적인 특징화된 기능을 수행한다. 사회적, 생물학적으로 특징지어지는 관계를 맺으며 종종 주거를 공유하는 집단’으로 설명하며 가족의 기능을 강조하였다. 다양한 학자들에 의해 정의되는 ‘가족’이라는 단어는 그러나 공통적으로 1) 혼인, 동거, 출산, 입양 등을 통하여 구성이 되는 사회집단으로 2) 장기적인 헌신과 구성원의 역할 수행을 통해 유지되며 3) 애정적인 운명공동체로 4) 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단위 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즉, 가족은 단순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러므로 건강한 가족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 가장 기본적이며 기초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건강한 가족이 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맞벌이 가정이 증가하고 과도한 사교육 등으로 인하여 부모와 자녀가 함께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줄어들었다. 또한 급변하는 사회의 흐름으로 인하여 부모세대와 자녀세대 간의 소위 말하는 ‘세대차이’가 발생하고, 그에 따른 갈등이 나타나게 된다. 다음의 인터뷰 대상자인 32살의 남자와 28살의 여자, 그리고 만 4살의 남아로 이루어진 평범해 보이는 가정에서도 역시 가족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남자가 28살 때, 그리고 여자가 24살 때 어떻게 보면 다소 이른 시기에 남아가 그 둘 사이에 생겼다고 한다. 여자는 대학을 졸업 전이였고 남자는 취업준비생으로 예기치 못한 임신으로 인하여 많은 고민이 들었지만, 결국에 결혼을 하고 같은 해 아기를 출산했다. 여자는 학교를 2년간 휴학하고 아기를 돌보았으며, 남자는 취업준비를 접고 아버지 회사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그들은 현재 Duvall의 가족의 8주기에 따른 유아기 가족이자, 유영주의 자녀출산 및 양육기 가족이 되었다. 이 가정은 2인의 부모와 1인의 자녀로 이루어진 소가족이자 핵가족이며, 결혼을 통하여 독립적으로 새살림을 차린 신거제를 택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이른 나이에 준비되지 않은 부모가 되어 시가, 처가의 경제적인 도움과 양육의 도움을 받는 절충적인 형태를 띠고 있었으나, 현재는 전반적으로 경제적 독립이 이루어졌다.여자는 이 둘 사이에 찾아온 ‘아기천사’가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여자는 고등학교 시절 기숙사 생활로 처음 시작한 자취생활이 점점 버겁고 외로워진다고 생각했었고, 결혼을 통한 나만의 온전한 가족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내가 사랑하는 남편과, 나와 나의 남편을 닮은 자녀, 그리고 나로 이루어진 따스하고 의지할 수 있는 공간인 가정 속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여자가 생각한 가족 이였다. 남자는 조금 달랐다할 책임감이 있는 가볍지 않은-아니, 오히려 무거운- 것이라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결혼은 인생의 무덤 이라는 말처럼 왠지 모르게 결혼을 하고 나면, 그리고 그것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면 더 이상 나만을 위한 시간은 없겠구나 싶어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한다. 하지만 찾아온 아기를 모른 채 할 수 없어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결혼을 통해 한가정의 가장이 된 그는 돈을 벌기 위하여 기존에 공부했던 전공과는 전혀 다른 아버지 회사에 취업을 했다. 처음 하는 일이니 배울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아 남자는 야근이 잦아졌고, 양육에 대한 부분은 자연스레 여자가 전담하다시피 되었다. 여자는 신혼살림을 여자의 고향도 아닌, 그렇다고 학교가 있는 지역도 아닌, 남자의 회사가 있는 제 3의 지역에서 시작하게 되었고, 낯선 장소에서 아기와 24시간을 보내며 지내다 보니 산후 우울증이 오기도 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연애시절 소위 말하는 ‘닭살커플’이였던 이 둘의 사이에도 자연스레 다툼과 갈등이 많아졌다고 한다.이 가족에는 자녀 양육과 가사분담에 대한 갈등이 가장 컸다고 한다. 외벌이 부부인 이 가정에서는 상대적으로 자녀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은 여자가 육아와 가사활동을 전담하게 되었고, 그로 인한 여자의 불만이 쌓여져만 갔다. 대학시절 그 누구보다도 진취적인 성향을 띄었던 그녀에게 남자와 시가는 전통적인 여성상을 요구하였다. 직장활동보다는 ‘집에서 애 보면서 살림이나 조신하게 하라’라는 요구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전통적인 여성상을 원했던 보수적인 남자의 성향에 맞추어 지내보려 했지만, 소위 ‘독박육아’라고 불리는 여자의 육아 전담은 여자에게 큰 스트레스로 다가왔다. 가사분담과 육아분담을 요구하는 여자의 말에 매번 남자는 바쁘다, 피곤하다, 네가 밖에서 일하는 사람의 피로를 아느냐 라는 말로 늘 묵살하기만 했다. 여러 번의 부부싸움의 끝에는 결국 “이럴 거면 이혼해!” 라는 말로 종결이 되었지만, 아기가 있기에 그 결정은 매번 흐지부지 하여 여자는 남자의 역할 및 육아 분담을 원하였다. 현재의 다투고 싸우고 갈등하는 상황을 해결하고, 처음의 결혼을 결심하던 그 때처럼, 건강한 가정을 형성하고자 하였다.이 가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자의 가족생활 참여 확대가 시급했다. 현재 일주일에 약 3일 정도는 야근으로 10시 이후로 퇴근, 그리고 2일 정도는 친구들의 여가활동 및 술자리로 늦는 남자의 생활패턴에서 자발적인 가정생활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필요하였다. 우선 남자가 불성실한 가정생활을 하게 되는 이유를 알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였다. 분명 연애시절 다정했던 모습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혼 생활에서는 그 다정함이 사라진 원인을 우선 파악한 후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족교육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것이 필요하였다.남자와의 인터뷰에서 놀라운 점이 있었다. 남자는 자기가 결코 가정에 불성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미혼시절 일주일에 여자와 데이트를 하던 2일을 제외한 나머지 5일은 매일 친구들과 함께 밤늦게까지 놀았지만, 결혼 후인 지금은 주 2일로 친구들과의 만남을 큰 횟수로 줄였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은 사회활동을 하고 있으니 가정생활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은 아내에 비하여 아이를 돌보는 것이 서툴고 익숙지 않으므로 전업주부인 아내가 양육과 가사를 전담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였다. 또한 여자가 수동적인 성격으로 집에서 있는 것을 좋아하는데도 왜 불만을 가지는 지 이해하지 못하고 가사분담과 양육분담을 요청하는 것이 투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여자의 인터뷰에서는 주 2회로 친구들과의 만남을 줄였긴 하지만 미혼인 시절과 기혼인 시절을 비교하면 안 된다 생각하였고, 지금도 충분히 많이 만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한 전업주부인 자신은 한 달에 1번 외출 하는 것도 큰마음을 먹고 나가야 하는 자신과 비교하였을 때 남자가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하였다. 또한 전업주부인 자신이 양육과 가사를 더 많이 분담할 수는 있지만, 전적으로 차지하는 . 이 부부의 경우 결혼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지도 못하였고, 제대로 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었다.따라서 이 부부에게는 첫 번째, 배우자와 나와의 차이를 이해하고, 결혼생활 시 발생할 수 있는 갈등의 해결법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였다. 둘째로는 남자의 아이 양육에 대한 필요성을 알게 하고 쉬운 양육법을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였다. 현재 이 부부는 결혼 후 4년이 지난 부부이자 유아기 아동의 부모이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의사소통이 거의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따라서 이를 개선하기 위한 첫째로는 예비 부부 및 신혼기 부부 교육 프로그램의 일부를 차용하고자 하며, 남자의 자녀양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음으로 남성의 자녀교육 프로그램의 일부를 차용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구성하고자 한다.[전주시 건강가정지원센터 - 예비 부부 교육 프로그램] 현재 여성가족부가 시행하는 가족정책의 주요 전달 체계로서, 다양한 가족지원 정책을 제안, 실행하기 위해 설립된 건강가정지원센터는 가족문제의 예방과 해결을 위하여 가족돌봄나누사업, 생애주기별 가족교육사업, 가족상담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건강가정지원센터의 주요사업 중 하나인 가족교육사업은 가족이 생활하며 필요로 하는 것들에 대한 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결혼, 출산, 육아 등 가족생애주기에 따른 예측 가능한 가족의 문제를 예방하고 준비하고자 하는 생애주기별교육, 남성의 돌봄 노동 참여 및 일-가정의 균형을 위한 남성대상 교육 프로그램 등 다양한 가족 교육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1) 예비 부부 및 신혼기 부부프로그램은 자신과 상대방에 대하여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결혼 초기 적응을 도와 결혼을 앞둔 미혼남녀와 신혼기 부부를 대상으로 하는 대표적인 가족교육사업 중 하나이다. 건강한 결혼과 가족 가치관을 확립하고, 결혼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을 가지도록 도와준다. 전주시건강가정지원센터에서 실시하는 예비 부부 교육 프로그램에서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