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시 : 봄은 간다 (김억)1. 이해와 감상이 시는 봄날 밤에 느끼는 개인의 애상적 정서를 간결한 시어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암담한 상황 속에서 여러 상념에 사로잡혀 있는 화자가, 지나가는 봄을 깨닫고 깊은 절망감에 탄식하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화자가 처한 암담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일제 간정하라는 시대적 배경과 관련지어 이해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 있다.1~3연에서는 애달픔 상념 속에서 봄을 보내야 하는 화자의 안타까운 처지가 드러난다. 희망을 표상하는 봄이건만, 밤을 맞은 화자는 자신의 처지를 아달파 하며 여러 상념에 사로잡혀 있다. 그런 가운데 문득 봄날이 지나가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무상감마저 화자를 감싼다. 4~5연에는 화자의 절망감이 드러난다. 덧없이 지나가 버리는 봄에서 느끼는 무상감과 더불어 상념은 아득할 정도로 더욱 깊어지고, 자신의 서글픔을 알아 주듯 새의 슬픈 울음소리는 들린다. 또한 어두운 밤을 감싼 안개 저편으로 종소리는 화자를 피해 울려 퍼지는 듯하다. 6연은 화자가 자신의 이런 서러운 처지,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을 말할 수 없는 형편에 놓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침묵할 수밖에 없는 당대 현실과 관련지어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7연에서는 이제 마지막인 듯한 봄 꽃잎이 하나 맥없이 떨어져 버린다. 순간 화자는 견딜 수 없는 서글픔과 안타까움에 깊은 탄식을 하게 된다.시기적으로 최초의 자유시로 알려져 있는 주요한의 ‘불노리’보다 약간 앞서 있는 이 시는, 교훈성이나 계몽성이 사라지고 서정적 자유시로서의 요소를 잘 갖추고 있다. 그리고 ‘밤’과 ‘봄’에서 보이는 양성 모음의 대비, ‘-다’, ‘-데’, ‘-ㅁ’ 에 드러난 각운 등의 운율적 배려, 2음보 가락으로 빠르게 읽히는 속도감 등을 통해 시인이 형태적인 배열과 율격에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작품을 살펴보면,봄은 간다 - 김억?밤이도다봄이도다?밤만도 애닯은데봄만도 생각인데?날은 빠르다봄은 간다?깊은 생각은 아득이는데저 바람에 새가 슬피운다?검은 내 떠돈다종소리 빗긴다?말도 없는 밤의 설움소리 없는 봄의 가슴?꽃은 떨어진다님은 탄식한다.이 시는 최초의 자유시로 널리 알려져 있는 주요한의 '불놀이(1919)'보다 앞서 발표된 것으로 문예 주간지 에 실린 서구적 작품이다. 이 시엔 교훈이나 계몽 의식이 보이지 않으며 한문투의 문장에서 벗어나 순 우리말을 구사하고자 한 흔적이 뚜렷하다. 완전히 내재율의 시는 되지 못하였지만 식민지 지식의 청년의 심리적 고뇌를 3·4조 4·4조의 애띤 민요 가락으로 표현하고 있다. 전체 7연으로 각 연이 2행씩 형태적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1, 3, 5, 7연에는 '-다'의 형태로 종지부가 나타나고, 2연에 '-데', 6연에 '-ㅁ'의 각운에 의한 율격 조화를 노리고 있다.시 전체의 분위기는 어둡고 침울한데 어두운 현실을 '밤, 바람, 검은 내' 등의 상징적 시어로 표현하여 상징주의 경향을 느낄 수 있다. 신시에 대한 자각이 부족했던 당시의 형태에 대한 관심을 갖고 순 우리말을 구사한 한글시를 정착시키려 노력한 점을 의미있게 받아들여야 한다.2. 시인 ‘김억’ 에 대해호는 안서(岸曙)이고, 일본 게이오[慶應]의숙 문과 수학하였으며 1914년 《학지광》에 《미련》, 《이별》, 《태서문예신보》에 《밋으라》, 《오히려》, 《봄》, 《봄은 간다》 등의 서정시를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창조》 후기 동인이며, 《폐허》의 핵심 동인이다.그는 번역시집 《오뇌의 무도》를 펴내는 등 활발한 활동으로 현대시의 성숙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민요조의 서정시를 창작하고, 압운을 도입하는 등 우리 시의 다양한 가능성에 대한 실험을 주도하였다. 시집으로는 《해파리의 노래》(조선도서, 1923), 《봄의 노래》(조선도서, 1925), 《금모래》(조선도서, 1925), 《안서시집》(조선도서, 1929), 《지새는 밤》(조선도서, 1929), 《안서시초》(조선도서, 1941), 《민요시집(民謠詩集)》(조선도서, 1947), 《먼동이 틀 때》(1947) 등이 있고, 이외에 번역 시집인 《오뇌의 무도》(1921)가 있다.김억은 시 창작과 외국시의 번역, 소개 등을 통해 한국 시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특히 최초의 근대 문학 번역 시집 《오뇌의 무도》는 베를렌, 보들레르 등의 시를 번역한 것으로서, 1920녀대 한국 시단에 상징적, 퇴폐적 경향을 보이는 데 영향을 끼쳤다. 또한 1923년에 간행된 시진 《해파리의 노래》는 근대 최초의 개인 시집으로 인생과 자연을 7.4조, 4.4조 등의 민요조 형식으로 담담하게 노래하고 있다.3. ‘봄은 간다’의 상징주의적 경향이 시 전체의 분위기는 어둡고 침울한데, 어두운 현실을 ‘밤, 바람, 검은내’ 등의 상징적 시어로 표현하여 상징주의적 경향을 느낄 수 있다. 또한 ‘밤, 봄, 애달픈데, 깊은 생각, 새가 슬피 운다, 검은 내, 밤의 설움, 꽃은 떨어진다, 님은 탄식한다’ 등 일련의 이미지와 사물의 연쇄를 통해 상징주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암시, 몽롱, 음울, 절망’을 나타냄으로써 시적 상황을 모호하게 하고 있다. 이러한 모호한 형상화를 통해 이 시는 봄밤에 시적 화자가 까닭없는 상실감으로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느끼는 연민과 슬픔을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현대시작품론]1910년대 시 : 불놀이 (주요한)1. 이해와 감상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한 청년이, 슬픔과 좌절 속에서 방황하다가 새로운 삶의 의지를 회복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 시는 감정의 직접적 노출이 단점으로 지적되기도 하지만, 현대시의 조건을 거의 완벽하게 구비한, 자유시의 선구자격으로 평가받고 있는 작품이다.이 시의 시적 화자는 임을 잃고 난 후의 죽음에 대한 유혹과 사월 초파일의 흥겨운 불꽃놀이로 나타나는 삶의 열정으로서의 현실 사이에서 고통받고 있는 존재이다. 사월 초파일 날, 그는 강물에 몸을 던져 죽을 생각을 한다. 그러다가 매화포 터지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수놓는 시뻘건 불덩이를 보며 그는 ‘고통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는 삶의 의욕을 갖게 된다.여기서 ‘물’이 죽음이라면 ‘불’은 삶의 표상이다. 이러한 죽음과 삶의 대립은 ‘어둠’과 ‘밝음’, ‘불’과 ‘불’의 대립으로 이어져 시 전편을 격정적이고 불안한 분위기로 이끌면서 전개되는데 마지막 연에서는 극한적 자학의 상황에서 벗어나 불타는 정열로 온갖 괴로움과 슬픔을 극복하여 새 희망으로 나아가려는 시적 화자의 의지가 형상화되고 있다. 시 전문을 보면,[1] 아아 날이 저문다, 서편 하늘에, 외로운 강(江)물 우에, 스러져 가는 분홍빛 놀…… 아아 해가 저물면 날마다, 살구나무 그늘에 혼자 우는 밤이 또 오건마는, 오늘은 사월(四月)이라 파일날 큰 길을 물 밀어가는 사람소리는 듣기만 하여도 흥성스러운 것을 왜 나만 혼자 가슴에 눈물을 참을 수 없는고?[2] 아아 춤을 춘다, 춤을 춘다, 시뻘건 불덩이가, 춤을 춘다. 잠잠한 성문(城門) 우에서 나려다보니, 물냄새, 모래냄새, 밤을 깨물고 하늘을 깨무는 횃불이 그래도 무엇이 부족(不足)하여 제 몸까지 물고 뜯을 때, 혼자서 어두운 가슴 품은 젊은 사람은 과거(過去)의 퍼런 꿈을 찬 강(江)물 우에 내어던지나 무정(無情)한 물결이 그 그림자를 멈출 리가 있으랴?…… 아아 꺾어서 시들지 않는 꽃도 없건마는, 가신 님 생각에 살아도 죽은 이 마음이야, 에라 모르겠다, 저 불길로 이 가슴 태워버릴까, 이 설움 살라버릴까, 어제도 아픈 발 끌면서 무덤에 가보았더니 겨울에는 말랐던 꽃이 어느덧 피었더라마는 사랑의 봄은 또다시 안 돌아오는가, 차라리 속시원히 오늘밤 이 물 속에…… 그러면 행여나 불쌍히 여겨줄 이나 있을까…… 할 적에 퉁, 탕 불티를 날리면서 튀어나는 매화포, 펄떡 정신(精神)을 차리니 우구우구 떠드는 구경꾼의 소리가 저를 비웃는 듯, 꾸짖는 듯 아아 좀더 강렬(强烈)한 열정(熱情)에 살고 싶다, 저기 저 횃불처럼 엉기는 연기(煙氣), 숨막히는 불꽃의 고통(苦痛) 속에서라도 더욱 뜨거운 삶을 살고 싶다고 뜻밖에 가슴 두근거리는 것은 나의 마음…….[3] 사월(四月)달 따스한 바람이 강(江)을 넘으면, 청류벽(淸流碧), 모란봉 높은 언덕 우에 허어옇게 흐늑이는 사람떼, 바람이 와서 불 적마다 불빛에 물든 물결이 미친 웃음을 웃으니, 겁많은 물고기는 모래 밑에 들어박히고, 물결치는 뱃슭에는 졸음 오는 이즘'의 형상(形象)이 오락가락―어른거리는 그림자 일어나는 웃음소리, 달아논 등불 밑에서 목청껏 길게 빼는 여린 기생의 노래, 뜻 밖에 정욕(情慾)을 이끄는 불구경도 이제는 겹고, 한잔 한잔 또 한잔 끝없는 술도 이제는 싫어, 지저분한 배밑창에 맥없이 누우며 까닭 모르는 눈물은 눈을 데우며, 간단없는 장고소리에 겨운 남자(男子)들은 때때로 불 이는 욕심(慾心)에 못 견디어 번뜩이는 눈으로 뱃가에 뛰어나가면, 뒤에 남은 죽어가는 촛불은 우그러진 치마깃 우에 조을 때, 뜻있는 듯이 찌걱거리는 배젓개 소리는 더욱 가슴을 누른다…….[4] 아아 강물이 웃는다, 웃는다, 괴상한, 웃음이다, 차디찬 강물이 껌껌한 하늘을 보고 웃는 웃음이다. 아아 배가 올라온다. 배가 오른다, 바람이 불 적마다 슬프게 슬프게 삐걱거리는 배가 오른다.[5]저어라, 배를 멀리서 잠자는 능라도(綾羅島)까지, 물살 빠른 대동강(大同江)을 저어오르라. 거기 너의 애인(愛人)이 맨발로 서서 기다리는 언덕으로 곧추 너의 뱃머리를 돌리라 물결 끝에서 일어나는 추운 바람도 무엇이리오 괴이(怪異)한 웃음소리도 무엇이리오, 사랑 잃은 청년(靑年)의 어두운 가슴속도 너에게야 무엇이리오, 그림자 없이는 밝음'도 있을 수 없는 것을―.오오 다만 네 확실(確實)한 오늘을 놓치지 말라.오오 사르라, 사르라! 오늘밤! 너의 빨간 횃불을, 빨간 입술을, 눈동자를, 또한 너의 빨간 눈물을…….이 시의 주제는 조국을 잃은 슬픔과 그 슬픔을 극복하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시적 경향은 주관적, 감상적, 영탄적, 낭만적, 상징적이며, 표현상의 특징은 연 구분은 있으나 행 구분은 없는 산문시라는 점이 두드러지며, ① 생경한 한문 투가 최대한으로 배제되고 가능한 한 순수한 우리말로 시를 쓰고 있다는 점, ② 자유시의 고유의 율격인 내재율을 거의 완성된 형태로 보여준다는 점, 동일한 음절의 반복을 통해서 형성된 리듬이 유유한 내재율을 느끼게 하며, 7·5조의 기본율조가 작품 전체의 내적 질서를 유지시켜 줌으로써 음보율이나 음수율 등과는 질이 다른 자유시 고유의 율격(호흡률)을 느끼게 해준다.1연은 불놀이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2연은 가신 님에 대한 격정, 그리움이 불놀이의 정경 묘사 가운데 제시되고 있어 시적 화자 내부적 갈등과 욕망을 보여주고 있다. 3연은 그러한 상황에서의 허탈감, 4연에서 혼란스러운 심리상태를 보여주면서 갈등극복과 강렬한 삶의 의욕을 제시하고 있다. 내용상의 특징으로는 최남선과 이광수의 신체시에 나타나는 계몽적 입장, 목적의식 등을 과감히 배제하고 순수예술을 지향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문학사적 의의는 한국 근대시사에서 본격적인 근대 자유시의 형성과정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점이다.에 나타나는 대립적 요소들은 흥청거리는 배경과 상반되는 감정을 드러낸다. 물과 불, 어둠과 밝음 등의 일련의 대립적 요소들은 삶과 죽음 사이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의 애상적 정조는 일제 강점하의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청년 지식인의 고뇌와 관련 있다. 즉 임의 정체는 애인, 조국 등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벗어나 이 시의 상실감은 민족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시적 화자가 노래한 것은 혼자만이 이해할 수 있는 사적인 주관이 아니라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사회적인 주관인 것이다.이 시에서 강물은 감정 이입이 투영된 것으로 허무의 심상과도 연결된다. 그리고 4월 초파일에 모인 사람들의 흥성스러움과 홀로 눈물을 참을 수 없는 시적화자의 슬픔이 대비된다. 또 '불'은 강렬한 삶의 욕구로 이 삶의 욕구는 '시뻘건'이라는 색채감과 '춤'이라는 율동으로 강렬하게 표현된다. 시적 화자는 밤하늘을 깨문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부정적 현실에 대한 자아의 내면적인 항거이다. 불과 상반되는 '물'은 시적 자아를 유혹하는 죽음이다. 시적 화자는 물에 들어가 죽고 싶은 욕망과 정열적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이 갈등은 시적 화자에게 자조적인 웃음을 하게 하면서 비정상적인 심리 상태를 가지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갈등은 미래의 회복된 조국을 향해 '맨발로 서서' 반겨 맞이한 심리로 변하여 '곧추 뱃머리를 돌리라'의 강한 삶의 의욕을 보여 갈등을 벗어난다. 즉 시상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나아가 부정적인 요소도 받아들이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이 시는 5연으로 된 산문시로 독백적인 서정시의 특성을 보인다. 1 - 3연은 현실의 세계를, 4 - 5연은 환상의 세계를 보임으로써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분열적인 심리를 드러낸다. 현실 세계에서는 시적화자는 죽은 임으로 인한 상실감과 비통함에 젖어, 물과 불의 대립적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삶과 죽음의 욕망에 갈등한다. 그러나 죽음의 끝에서 화자는 삶의 용기를 얻는다.이 시는 우리말을 발굴하여 구사했다는 점이 높게 평가된다. 재래의 정형성에서 과감히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계몽성, 교훈성이 배제된 주관적 정서와 미의식을 갖춘 근대 자유시의 본격적인 출발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인정된다.2. 근대시로서의 ‘불노리’주요한의 불놀이가 근대적이라 평가받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주요한이야말로 최초의 근대시인이기 때문이다. 앞서 최여제의 ‘산녀’나 김동환의 ‘봄’ 등이 발표되기도 했으나 문학성에 있어서 주요한을 따라올 수 없다. 두 번째 이유는 그런 주요한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시가 바로 ‘볼노리’이기 때문이다. ‘불노리’를 발표하기 한달 전 주요한은 ‘눈’이라는 시를 발표했다. 그러나 ‘불노리’야말로 그의 대표작이며 근대성을 표상해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불노리’에는 시대적 상황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즉, 서구 문명에 대한 동경과 새로운 것으로 나아가고자 했던 시인의 욕망과 거기에서 오는 혼란, 좌절을 담고 있다.
[시인론]‘주요한(朱耀翰)’에 대해※ 주요한(1900-1979)1. 주요한, 그는 누구인가1900년∼1979년. 시인·언론인·정치가. 호는 송아(頌兒). 필명은 벌꽃·낙양(落陽) 등. 평양 출신. 목사 공삼(孔三)의 8남매 중 맏아들이며, 소설가 요섭(耀燮)의 형이다. 1912년 평양숭덕소학교, 1918년 일본 메이지학원(明治學院) 중등부, 1919년 동경의 제1고등학교를 거쳐, 1925년 상해(上海) 후장대학(?江大學)을 졸업하였다. 대학재학 시 상해의 독립신문 기자로 활동하기도 하였다.귀국 후 동아일보사와 조선일보사 편집국장 및 논설위원을 지냈고, 일제 말기에는 실업계에 투신하여 화신상회(和信商會)의 중역으로 있었다. 또한 광복 후에는 흥사단(興士團)에 관계하는 한편, 대한상공회의소 특별위원, 대한무역협회 회장, 국제문제연구소장, 민주당민의원의원 초선 및 재선, 4·19 당시는 부흥부장관 및 상공부장관을 역임하였고, 5·16 후에는 경제과학심의회 위원, 대한일보사 사장, 대한해운공사 대표이사 등을 지냈다. 메이지학원 재학시절에 학우들과 회람지를 발행한 것을 계기로 시인이 되기를 소망하였고, 그때 스승이었던 가와지(川路柳虹)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전하여진다.그의 문단활동은 1917년 11월호 《청춘 靑春》지에 낙양이라는 필명으로 소설 〈마을집〉을 투고하면서부터 전개되었고, 이어 번역소설 〈밥〉(미하일 알치바세프 원작)이 《학지광 學之光》에 발표되었다. 그의 시작활동은 1919년 1월에 간행된 《학우》 창간호에 ‘에튜으트’라는 큰 제목으로 창작시 〈시내〉·〈봄〉·〈눈〉·〈이야기〉·〈기억〉의 5편을 발표하면서, 그리고 같은 해에 김동인 등과 더불어 창조(創造)동인에 가담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대표시로는 〈불놀이〉(《창조》 창간호)와 〈빗소리〉(《폐허 이후》 창간호) 등을 들 수 있다. 그는 미국시인 휘트먼(Whitman, W.)과 일본 낭만파시인들의 영향을 받아 시를 썼지만, 그들과는 달리 전원과 자연을 바탕으로 하여 맑고 차분한 서정의 시세계를 이룩하고 있다. 이러한 특색은 첫 시집 《아름다운 새벽》(1924)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작품경향은 초기에 해당되는 것이고, 광복 후에는 정치와 경제분야에 관여함에 따라 그에 관한 논문들을 많이 발표하였다. 그는 한국근대시의 형성기에 그 선구자적 공적을 남긴 시인으로 평가되고 있다.그의 유해는 경기도 고양군 벽제 소재 새문안동산에 안장되어 있고, 1979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받았다.시집으로는 《아름다운 새벽》 외에, 《3인시가집 三人詩歌集》(三千里社, 1929), 《봉사꽃》(世宗書院, 1930) 등이 있고, 일반논저로는 《자유의 구름다리》(泰成社, 1959),《부흥논의》(大成文化社, 1963),《안도산전서 安島山全書》(三中堂, 1963) 등이 있다.2. 주요한의 시 세계
개화기시대의 문학; 개화기 시가개화기 시가와 사회사적 성격1. 개화기 시대현실과 문화풍토19세기 후반, 특히 갑오경장을 계기로 한 우리의 근대적 맹아는 그 개혁의 진행과 함께 많은 시련을 겪게 되었다. 일본의 제국주의적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우리의 주권을 제약하고 독립의지를 말살시키려는 정치적 책동이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면서 수구의 갈등은 더욱 심화되어 갔다. 더욱이 개항 이래 밀려드는 서구 문화의 유입과 새로운 세계관의 도래는 필연적으로 신구 세력의 갈등을 초래하였다.이러한 시대현실은 문화의 면에서도 큰 변혁을 이루어 새로운 시대에 대응하는 문화적 풍토를 조성케 하였다. 무엇보다도 종래의 한문식 표현에서 벗어나 일상어를 바탕으로 한 언어표현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최초로 국한문 혼용의 언문일치체 문장을 구사한 유길준의 ‘서유견문’은 이 방면의 선구적 업적에 속한다. 또한 고조되는 외래사조나 문물에 대한 관심과 새로운 근대문화에의 각성을 바탕으로 많은 교육기관이 설립되고 신문.잡지의 출간이 잇따라 이루어짐으로써 이 땅의 문화적 환경은 일대 전환의 시기를 맞게 된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소학교령이 공포되어 전국에 초등학교가 생겨난 것과 미국인 선교사들에 의한 여러 ‘학당’의 설립,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신문인 [독닙신문]이 창간된 것 등은 이 시기의 문화적 풍토를 대변하는 것들이라 할 수 있다.2. 개화기 시가의 등장과 그 범위이와 같은 갑오경장 이후의 급속한 사회변화는 그 문화적 환경의 대변혁과 함께 새로운 문학적 대응물로서의 작품들을 탄생시켰는데, 이른바 개화기 시가는 이러한 상황에서 형성되었다. 개화기 시가의 범위를 일단 갑오경장을 전후한 19세기 후반에서, 본격적 인 근대문학이 전개되는 20세기 초, 3.1 운동을 전후한 시기 이전으로 잡아볼 때 이 시기의 시가형태와 개념적 정의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거듭되어 왔음을 확인할 수 있다. 논자에 따라서는 이 시기의 시가를 ‘창가ㅡ>신체시’순의 전개를 주장하여 신체시 이전의 모든 시가를 창가라는 개념으로 묶어 이를 개화기 시가를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용하기도 하고(임화, 백철, 조연현, 조윤제, 김동운, 문덕수 등), 창가 이전에 개화가사를 두어 ‘개화가사ㅡ>창가ㅡ>신체시’ 순의 전개를 주장함으로써 전통가사 형식을 답습한 개화가사와 다소 새로운 가요인 창가를 구분지어 사용하기도 하며(조지훈), 개화가사를 다시 개화시와 개화가사로 구분하여 ‘개화시ㅡ>개화가사ㅡ>창가ㅡ>신체시’ 순의 전개를 주장하는(송민호) 등 견해를 달리하고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이시시의 시가에 대한 포괄적 개념설정이나 세분화된 갈래구분은 이 시기의 시가를 보다 잘 이해하고 체계화된 설명을 가능케 하는 차원에서 논의된 것이라면 모두 다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면에서 이 시기의 시가가 전통시가와는 다소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그 내용과 형식의 측면을 특징적으로 살펴보고 성격에 따라 몇 가지 유형을 두어 체계화 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 여겨진다.실제로 이 시기의 시가는 [독닙신문]의 독립.애국가류를 비롯하여 가사(개화가사), 시조, 한시 등 전통적 시가형태와 창가, 신체시 등의 새로운 시가형태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신문, 잡지를 통해 발표되었다. 이 개화기 시가들은 특히 새로운 시대적 상황에 대처하여 개화사상이나 자주독립사상을 고취시키려는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고 있는 것이 지배적인데, 시속에 편승해 매국하려는 자들을 징계하고자 하는 강한 외침과 일제에 강렬히 저항하는 의지를 담은 것들도 하나의 보편적 경향을 이루고 있다.그런데 여기서 ‘신체시’까지를 개화기 시가의 범주에 넣어 살피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신체시는 흔히 우리 시문학사에서 최초의 근대시적 특징을 지니는 문학형태로 일컬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제로 단순한 몇 가지의 형태적 변형에서일 뿐, 개화기적 특징을 두루 담고 있다는 역사적 성격과 내용적 사실 이외에도 개성적 차원에서 개인의 정서적 반응을 노래한 근대적 서정시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에 과도기적(이행기적) 특징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따라서 신체시 역시 개화기 시가의 말미에서 새로운 시의 태동을 예비하는 단계에 놓여 있는 문학으로 이해함이 옳다.3. 독립, 애국가류와 개화가사개화기 시가는 특히 초기에 있어 ‘독립가’, ‘애국가’라는 모습을 띠고 있었다. [독닙신문]을 중심으로 하여 발표된 ‘독립가’, ‘이국가’ 및 ‘동심가’, ‘이민가’, ‘셩졀숑츅가’, ‘셩몽가’ 등이 이에 해당된다. 이런 독립,애국가류는 ‘보국안민, 문명개화, 신교육’등 대동소이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을 볼 때, 현실의식과 문학적 지향은 이전 시기와 비교해서 판이하게 달라졌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같은 형태의 비슷한 내용들을 담은 시가가 이후 계속 발표되었는데, 특히 ‘대한매일신보’에 이르러 이른바 ‘개화가사’로 불리어지는 수백편의 가사체 시가가 시대의식과 현실의지를 반영하여 활발히 창작되기에 이른다. ‘대한매일신보’에 게재된 개화가사는 특히 ‘사회등’란을 중심으로 강력한 사회비판 의식을 담은 노래들을 표출하였다. 또한 연을 나누어 전개하는 수법이 동원되기도 하였는데 각 연의 말미에 반복구를 두는 등의 새로운 수법을 가미하여 전통가사와는 다른 차원에서 당대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른 저항정신을 보다 심화된 갈등구조로 형상화해 낸 특징을 띠었다. 이와 같은 개화가사들은 독립,애국가사류보다 그 주제의식과 내용의 면에서 훨씬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개화가사는 비단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600여편 뿐 만 아니라, 당대 뜻있는 항일구국투사들의 개인문집 속에서도 ‘창의사’의 이름으로 널리 전해져 오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이 시기 ‘대한매일신보’의 ‘사회등’란을 중심으로 발표된 개화가사를 일컬어, 운문형식을 띤 애국계몽문학이라 이름하기도 한다.이들 독립 애국가류와 개화가사는 전통적 율조인 4.4조 리듬을 취하고 있다는 데 큰 공통점이 있다. 말하자면 세차게 밀려드는 외래사조와 문물제도들에 대한 반응을 새로운 형식적 장치를 구비하여 새로운 감수성의 차원으로 노래하기 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형식적 율조를 통해 보편적인 정서 반응으로 노래하고 있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그 보편적 정서 반응은 작품 속에서 개화의지를 강조하거나 일제와 외세에 침탈되어가는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독립의식을 고취시키려는 모습으로 드러나 있다. 뿐만 아니라 개화가사에 이르러서는 시대현실을 직시하고 일제의 식민정책에 대항하는 강렬한 저항정신을 형상화한 것들이 많으며 신,구 문화의 갈등양상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들도 상당수 발견된다.4 창가의 성행창가란 주로 6.5조, 7.5조, 8.5조 등의 형태적 특징을 보이며 서양식 악곡에 얹혀 불린 개화기 시가를 말한다. 가창의 여부가 필수적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쉽게 단정을 내리기 어려우나, 4.4조의 독립,애국가류 및 개화가사와는 그 형태의 면에서 다소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그 첫 작품은 종래의 통설에 의하면 최남선의 ‘경부텰도노래’로 알려져 왔으나, 실제 이보다 훨씬 앞선 1896년 11월 21일 돌립문 정초식을 거행할 때 배재학당의 학생들이 윤치호가 지은 ‘애국가’를 불렀다는 기록이 있어 주목된다.개화기 시가는 최남선에 이르러 그 형태적 측면에서 큰 변화를 보이게 되는데, 창가 역시 그에 의하여 본격적인 출발이 이루어졌다. 최남선은 당대의 선각 지식인으로서, 새로운 이념과 세계관 및 개화의지를 이 창가 형식을 통해 전파, 고취함이 효과적임을 주목하여 그가 간행한 ‘소년, 청춘’ 등의 계몽적 잡지를 통해 활발히 발표하였다. ‘경부텰도노래’를 시발점으로 최남선은 단형, 장형의 창가들을 통해 대중계몽의 의지를 확장시켰다. ‘소년대한, 태백산가, 어린이 ㅅ굼, 가을 ㅅ듯, 세계일주가’ 등은 그의 대표적 작품들에 해당한다.최남선의 개척적 업적을 바탕으로 본격화된 창가는 이후 1900년대에 이르기까지 놀라운 숫자로 늘어난 학교들을 통해 광범위하게 확산되었는데, 이들 학교창가는 특히 교육적 이념보다는 민족정신의 배양과 신문화 보급의 목적성을 지향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그 곡조 역시 학교 설립자들이 선교사인 경우 찬송가풍의 곡조에 얹혀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학교에서 교과목으로 창가를 가르치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창가는 이후 급속도로 확산되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창가는 일제에 의해 조종되던 매국정부에 의해 금압을 받게 되는데, 그것은 이 형태의 시가가 생활 전반의 문제들을 들추어 내기도 하고 더욱이 학교창가의 확산과 함께 항일의지를 담은 모습들로 구체화되기도 하자, 이를 금지시키고 관변의 차원에서 현실에 순응하는 창가로 대치시키기도 하였다. 이후 창가는 제도적 차원에서 일본식 가요의 이식에 이용되기도 하고, 국내에서 계속되지 못한 항일의지의 창가들은 해외에서 투쟁하는 독립군의 군가로 그 맥을 잇기도 하였다.
개화기의 시가 : 경부텰도 노래1. 이해와 감상최남선이 지은 장편 기행체의 창가로 근대 문명의 이기인 철도 개통을 찬양한 노래이다. 한 연이 4행씩 총 67절로 되어 있는 장편의 창가이다. 이 노래는 일본의 철도 개통 노래를 본받아 지었다고 하는데, 개화 가사까지 고수해 왔던 4.4조, 4음보의 전통 가사 율격을 깨뜨린 최초의 7.5조 노래라는 데 그 의의가 크다. 작품의 일부를 살펴보면,우렁탸게 토하난 긔뎍 소리에남대문을 등디고 떠나 나가서빨니 부난 바람의 형세 갓흐니날개 가딘 새라도 못 따르겟네.늙은이와 뎖은이 셕겨 안즈니우리네와 외국인 갓티 탓스나내외 틴소 다갓티 익히 디내니됴고마한 딴 세상 뎔노 일웠네.제시된 부분은 첫 두 절인데, 1절에서는 기적을 울리며 힘차게 출발하는 기차의 빠른 모습에 찬탄을 보내고 있다. 문명의 이기인 기차를 예찬하는 가운데, 새로운 문명에 대한 화자의 긍정적 시각을 드러내고 있다. 2절에서는 노인과 젊은이, 내국인과 외국인이 한 기차에 동승하고 있는 새로운 모습을 노래하고 있다. 외국인과 외국 문명에 대해 적대적이었던 지금까지의 모습과는 달리 호의적이며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함께 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됴고마한 딴 세상 뎔노 일웠네.’라는 표현을 통해 이와 같은 모습이 기존의 우리 사회의 모습과 아주 다르다는 사실을 말하고, 이것이 바람직하다는 화자의 판단을 ‘내외틴소 다갓티 익히 디내니’라는 구절 가운데 드러내고 있다. 개화된 세계에 대한 작자의 낙관적 기대를 보여 주는 부분이다. 철도라는 신문명의 이기가 지닌 이점을 전파함으로써 새로운 과학 문명의 찬양과 민중의 계몽이라는 목적도 아울러 달성하려 했던 작품으로, 스코틀랜드 민요 ‘Coming through the Rye(밀밭에서)’ 의 곡조를 빌려서 노래로 부르기도 하였다.2. 개화기 시가 속의 ‘창가’개화기의 대표적인 시가 양식으로는 개화가사, 창가, 신체시 등이 있다. 전체적으로 모두 공론성이 강조된 계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형식상으로는 정형률을 멋어나지 못하고 있어, 고전시가에서 근대시로 옮겨 가는 시가 문학의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개화 시가의 한 양식인 창가는 3음보 율격의 노래를 서양식 악곡에 맞추어 부르도록 지어진 시가이다. 서양 행진곡과 찬송가의 영향을 받은 창가는 문명 개화의 필요성과 새 시대를 향한 의욕 고취를 주요한 내용으로 삼고 있다. 특히 창가는 근대적 교육이 실시되면서 서양 음악 교과를 통해 확산되었는데, 개화가사와 신체시의 중간 단계로 볼 수 있으며, 가사보다는 가창에 중점을 둔 특징을 지니고 있다.3. 근대문학 건설과 최남선의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