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미술사겸제 정선의 ‘인왕제색도’와 그의 평가- 리움에 다녀와서리움의 특별전 전에는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작품이 시대별이 아닌 자연, 자유, 상상이라는 섹션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사실 전시를 보면 입장에서부터 집중력이 하락선을 그리면서 급격히 떨어지는데 이번 전시는 정말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정선의 (국보 제 216호, 조선 1761년, 종이에 수묵)와 그것을 모방한 황인기의 (2004, 채색화판에 크리스탈)이었다. 후자는 일전에 TV에서 소개하는 것을 보고 직접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원작과 함께 한 공간에서 보게 되니 운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를 그린 정선은 정선보다 겸제로 많이 알려져있다. 18세기의 이 위대한 화가는 화원 출신이다. 출중한 학덕 때문에 관리(현감)으로 발탁되어 종사품의 벼슬에까지 올랐다. 이런 위상은 당대 저명한 문인들과 교류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으며 그를 안견 다음의 대가로 칭송받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정선은 서울 인왕산 일대와 금강산을 소재로 한 산수풍경을 여러 점 남겼는데 이렇게 우리 산천을 직접 그린 것은 놀라운 사건이다. 산수가 막연하게 정신적 의미의 주권을 상징했던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민족이 살고 있는 땅, 즉 몸체라는 자각이 정선에 의해 공식적으로 선언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진경산수라고 부르는 정선의 산수화는 산수를 만들어 그렸던 안견의 관념산수와는 대립된다고 여겨지지만 상호보완적이라고 보아야 옳다. 는 실제 왕궁 주변의 산을 그렸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는 주권의식이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왕궁이 보이지 않으며 화가의 관심은 여체가 옷을 벗으며 알몸이 되는 것처럼 신비에 싸인 산이 자욱한 안개가 걷히며 그 실체를 신비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암각표현에서 육질이 실감나게 드러나는 것은 준법을 유감없이 표현했다기보다는 산을 우리 시선 앞에 보다 가까이 놓는 최선의 조치였다. 전통적으로 존중되었던 삼원법이 고려되지 않고 여백이 강조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보여주려는 것은 송대 화가들의 표현주의적 미감보다는 왕궁을 지키는 인왕산의 남성적인 힘의 구체적인 실감인 것이다.비온 뒤의 인왕산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직접 인왕산을 보고 그렸는데, 비온 뒤 안개가 피어오르는 인상적 순간을 포착하여 그 느낌을 잘 표현하였다. 산 아래에는 나무와 숲, 그리고 자욱한 안개를 표현하고 위쪽으로 인왕산의 바위를 가득 배치하였다. 산아래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으로 그리고, 산 위쪽은 멀리서 위로 쳐다보는 시선으로 그려 바로 앞에서 바라보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주고 있다. 비에 젖은 뒷편의 암벽은 거대하고 무거운 느낌을 주는데, 이를 위해 먹물을 가득 묻힌 큰 붓을 반복해서 아래로 내리긋는 대담한 필치를 사용하였다. 좀 더 가까이에 있는 능선과 나무들은 섬세한 붓질과 짧게 끊어 찍은 작은 점으로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조선 영조 27년(1751)에 그려진 이 그림은 이제까지의 산수화가 중국의 것을 모방하여 그린 것에 반하여 직접 경치를 보고 그린 실경산수화일 뿐만 아니라 그 화법에 있어서도 우리나라의 산수를 너무나도 잘 표현하였다. 따라서 그의 400여점의 유작 가운데 가장 크고 그의 화법이 잘 나타난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된다.진경산수는 정조년간 김홍도의 출현으로 제2의 변모를 하며 순조년간 까지는 그 양식적 세련미를 유지하였지만 말기화단에 득세한 김정회파나 김수철파 등에 밀려나게 된다.
한국미술사 과제나는 오늘 과거 시험을 보는 형을 위한 연꽃 그림을 하나 화원으로부터 받았다. 형이 과거에 연달아 합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조금 있다가 형을 만나기로 했는데, 우리가 종종 가는 다관에서 차를 사준댔다. 그곳에서 쓰는 다완은 비색으로 색이 고와서 차 맛이 한결 더 좋기 때문에 즐겨 간다. 차를 다 마시고 함께 집으로 갔더니, 내가 보여달라고 졸랐던 ‘몽유도원도’를 아버지께서 가져오셨다. 안평대군安平大君)이 꿈에 도원에서 논 광경을 안견에게 말하여 그리게 한 것으로, 도원명(陶淵明)의 《도화원기(桃花源記)》를 바탕으로 한다고 했다. 내가 보니 왼편의 현실세계와 오른편의 도원세계가 대조를 이루고, 왼편의 현실세계는 정면에서 보고 그렸으나 오른편의 도원세계는 조감법을 구사하였다. 화원 선발 시험이 다음주라 긴장되고 기분이 고조되어 있었는데 보고 싶었던 그림을 보게 되어 너무나 기뻤다. 초화(草花) 과목은 자신이 있는데 죽(竹) 과목은 역시 자신이 없다. 사실은 곽희의 영향을 받은 안견의 그림을 보고 감명을 받아서 화원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 사절단이 되어 북송으로 가서 중국 그림을 접하는 것이 내 소원이다.나는 오늘 사법고시를 보는 형을 위한 초콜렛이랑 엿, 휴지 세트를 샀다. 엿은 꼭 붙으라고, 휴지는 문제 잘 풀으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조금 있다가 형을 만나기로 했는데, 근처 스타벅스에서 커피 사준댔다. 처음엔 자판기 커피랑 뭐가 다른지 모르겠었는데 지금은 즐겨마신다. 커피 다 마시고 집으로 갔더니 아버지께서 ‘해리포터와 불사조의 잔’을 다운받아 보고계셨다. 해리포터는 조앤 롤링이 펴낸 해리포터 책을 영화화한 것이다. 이것은 판타지, 모험, 액션을 다루고 있는데 현실 속에서는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는 판타지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그래픽과 스케일 때문에 제작비가 1500억원 이상이 된다고 한다.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과의 실기시험이 다음주라 긴장되고 기분이 고조되어 있었는데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보니 기분도 좀 풀린 것 같다. 정물은 자신이 있는데 아그립파는 역시 자신이 없다. 사실은 미국 시트콤 ‘프렌즈’를 보고 미술감독이 되기로 결심을 했다. 꼭 합격해서 미국으로 유학가는 것이 내 소원이다.수업을 들으면서 줄곧 이 배우고 있는 모든 것이 과거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뭐 그때는 그랬으려니 이렇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왜 그렇게 비슷비슷한 그림만 줄창 그리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국립중앙박물관에 가서 몽유도원도를 직접보니, 그림을 오른쪽에 그리고 왼쪽에 제발을 단 것이 꼭 지금 우리 세대가 블로그나 개인 미니홈피에 박물관 앞에서 찍은 자기 사진을 올리고 밑에 ‘박물관 갔다왔다^^’라고 쓰면 그걸 본 친구들이 리플을 달아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개중의 사람이 다음이나 네이버, 싸이월드 등의 인터넷 싸이트에 아이디를 적어도 하나는 가지고 있듯이 그들에게도 내가 지금 배우는 것들이 일상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그림을 동경하는 것은 내가 지금 국산인 르까프 안 신고 나이키 신는 것과 같지 않을까? 중국 그림을 모사하는 것은 시트콤 같은 장르를 수입해서 ‘거침없이 하이킥’같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과 같지 않을까? 심지어 관객들 웃음소리를 넣는 패턴까지 똑같이 말이다.그런 의미에서 그냥 시험과목의 대상으로만 여겼던 화조화, 다완 등의 소재를 A:B=C:D처럼 ‘과거:어떤 것=현재:어떤 것‘으로 대입시켜보다가 위의 글 같은 글을 써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것 같기도 하다.
[한국미의 탐구]고궁박물관 관람 감상문근대 회화에서 한국화의 미래를 보다회화실에 들어갈때 한국화과이니만큼 재료도 자세히 들여다보고 좀 눈여겨보겠노라고 다짐했다. 가장 눈길을 끈 작품은 대한제국 1905년(광무9) 양기훈의 그림인 였다. 비단에 채색을 한 십 폭인 그림이었는데, 정교하게 다듬지 않은 터치와 담채가 지금 인사동에 있다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무척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 그림은 도화서 화원으로 활동했던 양기훈(843~)이 고종 황제의 평안한 노후를 기원하며 그린 그림이다. 조선 후기에 유행하기 시작해서 근대기까지 많이 그려졌던 기러기 그림은 갈대 蘆 자와 기러기 雁자를 차용하여 음이 같은 노후의 행복과 건강을 상징하는 그림 소재가 되었다. 마지막 폭의 글은 중국 진나라 때 무인 양호와 손초의 ‘안부’로, 떼 지어 힘 있게 날아오르는 기러기의 모습에 국권 회복의 의지를 담아 그린 것이다. 제목의 설화를 차용한 그림이라는 점에서 시적인 느낌을 받았고 옆에 글을 쓴 것은 꼭 문자와 텍스트에 주목하기 시작하는 현대 회화의 흐름에 귀속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일월오봉도(조선, 비단에 채색, 육폭)의 설명에 ‘궁궐 정전 어좌 뒤편이나 왕의 초상인 어진 주변, 임금이 잠깐만이라도 자리하시는 장소에 펼쳐 왕권을 상징하는 병풍그림’이라고 써있었는데 탈 권위적인 지금 시대를 사는 내 눈에는 조금 우스꽝스럽게 상상되었다. 졸졸 쫓아다니면서 이걸 펼쳐주는 데다가 왕의 초상 뒤에도 두다니, 솔직히 나는 아기 젖병 물리려고 쫓아다니는 엄마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데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단지 그것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해와 달은 음양이고 다섯 개의 봉우리는 오행을 상징하니까 도덕으로 말하면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이 되고, 이것은 우리 전통 문화의 모든 체계를 상징한다는 것은 사실 예측가능한 점이었다. 그런데 햇빛 달빛이 비취면 만물이 자라나고, 그 숱한 만물 가운데서 대표가 되는 것은 바로 사람이다. 사람은 음양오행의 가장 순수한 기운을 타고 났기 때문에 가장 슬기로울뿐더러 동물에게 없는 도덕심까지 있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천지인(天地人) 우주를 이루는 세 가지 재질, 삼재(三才)가 모두 갖추어 진다.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한자 해설 책을 보면 석 삼(三)자는 우주의 삼재를 뜻한다는 설명이 있고, 임금 왕(王)자는 그 삼재를 하늘로부터 인간을 거쳐 땅에 이르기까지, 수직으로 관통하는 하나의 원리를 관철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부여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그 자체로는 미완성이다. 오직 자연의 섭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 덕을 받들어 성실하게 행하는 착한 임금이 한가운데 앉을 때에만 이 그림이 완성된다. )
한국미의 탐구근대한국미술에서 찾은 현대의 한국미- 리움에 다녀와서리움의 특별전 전에는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작품이 시대별이 아닌 자연, 자유, 상상이라는 섹션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사실 전시를 보면 입장에서부터 집중력이 하락선을 그리면서 급격히 떨어지는데 이번 전시는 정말 영화를 보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정선의 (국보 제 216호, 조선 1761년, 종이에 수묵)와 그것을 모방한 황인기의 (2004, 채색화판에 크리스탈)이었다. 후자는 일전에 TV에서 소개하는 것을 보고 직접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원작과 함께 한 공간에서 보게 되니 운이 참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를 그린 정선은 정선보다 겸제로 많이 알려져있다. 18세기의 이 위대한 화가는 화원 출신이다. 출중한 학덕 때문에 관리(현감)으로 발탁되어 종사품의 벼슬에까지 올랐다. 이런 위상은 당대 저명한 문인들과 교류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으며 그를 안견 다음의 대가로 칭송받게 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정선은 서울 인왕산 일대와 금강산을 소재로 한 산수풍경을 여러 점 남겼는데 이렇게 우리 산천을 직접 그린 것은 놀라운 사건이다. 산수가 막연하게 정신적 의미의 주권을 상징했던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민족이 살고 있는 땅, 즉 몸체라는 자각이 정선에 의해 공식적으로 선언되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진경산수라고 부르는 정선의 산수화는 산수를 만들어 그렸던 안견의 관념산수와는 대립된다. 는 실제 왕궁 주변의 산을 그렸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는 주권의식이 표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림에는 왕궁이 보이지 않으며 화가의 관심은 여체가 옷을 벗으며 알몸이 되는 것처럼 신비에 싸인 산이 자욱한 안개가 걷히며 그 실체를 신비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암각표현에서 육질이 실감나게 드러나는 것은 준법을 유감없이 표현했다기보다는 산을 우리 시선 앞에 보다 가까이 놓는 최선의 조치였다. 전통적으로 존중되었던 삼원법이 고려되지 않고 여백이 강조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가 보여주려는 것은 송대 화가들의 표현주의적 미감보다는 왕궁을 지키는 인왕산의 남성적인 힘의 구체적인 실감인 것이다.이런 인왕제색도를 모방한 황인기의 작업은 우리의 전통을 현대적 맥락 속에서 자유롭게 구사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미술의 정체성을 모색하는 대부분의 작가들과 달리 황인기는 단순한 소재주의에 머물지 않고 좀 더 구체적인 방법론과 함께 좀 더 자유로운 정신을 가진 작가이다. 뉴욕에서의 유학과 체류를 통해 익힌 포스트모던한 기법으로 90년대 초반까지 한국의 현실적 풍경과 인간상을 다채롭게 표현해 오던 그는 90년대 중반 들어 동양의 전통적 수묵산수화를 디지털적으로 해석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산수화는 동양의 정신성과 세계관을 수묵을 통해 구현한다.동양의 수묵화는 사실의 재현보다는 자연과 세계에 대한 철학적 해석의 또 다른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음양의 상생(相生)과 조화를 근간으로 하는 동양의 회화적 전통에서 산수화는 자연과 세계를 대상으로 하되 작업을 통해 화가 자신이 우주와의 하나 됨을 인식하는 수련의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대부분의 전통회화는 기교의 무비판적 답습이나 현학적 관념 속에 머무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 서구 미술과는 다른 본질을 현대적으로 구현해 내는데 이렇다 할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0697110 최민혜Part5. 해석 및 요약아동청소년 문학은 항상 아동기와 관계가 깊다. 아동기를 바라보는 관점의 변화는 어린 독자를 위한 문학에 반작용을 받는다. 쾰른의 문학자 발터 파페는 아동기설화를 찾고 아동기설화의 서로 다른 소화를 분석했다. 그는 아동책에서 실제의 평범한 어린이가 드물다는 것을 인식하고, 아이들 세계에서 해석하게 된다. 덧붙여 설화 속 어린이의 형상의 두 개의 특징인, 숭고한 아이나 자연의 순수를 구현한 것 같은 아이의 설화와 “황금기”의 구현 같은 아이의 설화가 무엇보다도 우선이다. 그를 계몽주의의 “문학의 아동교육자”라고 불리게 한 이 작업은 대부분 과거를 향한 동경이나 미래를 예지하는 희망보다 아이를, 그리고 잃어버린 천국이 아닌 아동기의 인상을 선호한다.아동기 상의 비판은 이미 18세기에 선구자가 있었다. 독일 낭만주의 시대에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가 민중사상을 펼친 이래 계몽주의자들의 좁아진 문학개념은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는 것이었다. 낭만주의자들은 다시 아동시, 가곡, 수수께끼, 동화, 전설, 신화, 민중본과 인형극 같은 새로운 것을 인식했다. 장르들도 이전 계몽주의 시기에 적나라한 유모 이야기가 그대로 있는 즉 ‘금서’(H.H.Ewers,1985)로 여겨졌었다. 낭만주의의 청소년 문학은 앞선 시대와 함께 논쟁적인 토론 속에서 발생하기도 했다. 그 범애주의자들에게 동화들은 준금기였으나, 낭만주의에게는 주요한 장르이며 “시의 규범”(노발리스)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