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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무원의 마케팅 전략과 향후 방향
    목 차1. 기업소개2. 환경분석3. 경쟁기업 분석4. 핵심 문제점 분석5. 대안 및 결론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Blue Ocean』의 또 다른 사례Well-Being열풍을 통한 음식에 대한 관심도환경친화적 식품기업의 선도적 역할기업 선정 동기기업 이념OpennessSolidarity바른마음경영 TISOTrustIntegrity환경 경영품질 경영고객기쁨경영이웃사랑, 생명존중기업 비전 및 정신풀무원의 정신이웃 사랑생명 존중풀무원의 비전“인간과 자연을 함께 사랑하는 LOHAS 선도기업”기업 사업 부문Fresh FoodFood 서비스Health FoodGlobal 산업R D 센터Food 유통사업부문연혁1981.05.12 압구정동에 `풀무원 무공해 농산물 직판장' 개설(풀무원유기식품 설립) 1984.05.31 `풀무원효소식품'을 `풀무원식품㈜'로 상호변경 및 법인전환 1985.04.01 `풀무원유기식품'을 `풀무원식품㈜'에 통합 1986.09.20 한국산업연구원 지정 `유망중소기업' 선정 1991.01.04 풀무원식품 미국 현지법인 `PULMUONE U.S.A.' 설립 1995.05.12 `풀무원식품㈜'를 `㈜ 풀무원'으로 상호변경 1995.07.15 `풀무원 LA두부공장' 준공 1995.10.05 '㈜ 풀무원' 주식 상장2000.09.16 ㈜ 풀무원 홈페이지 오픈(www.pulmuonefood.co.kr) 2002.03.13 풀무원USA, 뉴욕 두부공장 준공 2003.02.05 풀무원”생명을 하늘처럼”광고, 제1회 우수환경광고상 대상 수상 2004.05.12 창사 20주년 기념식 및 풀무원농장 개소(충북괴산) 인터넷 쇼핑몰 풀무원이샵(www.pulmuoneshop.com)오픈 2005.06.30 제5회 투명회계대상 수상 (한국회계학회) 2006.04.23 KBS 신화창조, '두부 한 모의 승리- 풀무원의 새로운 도전' 방영2006.05,20 국내 식품업계 최초 '완전표시제' 시행조직도총괄CEO식품CEO마케팅본부생산본부영업본부N P D특판SBU물류SBUN E W B I ZH M SH M RH M IS P계 란 피 킹 센 터F C 영 업 담 당E C R 영 업 담 당E * B D 실E R 팀판 촉 서 비 스 사 업 부S C M 기 획 팀S O P영 업 혁 신 담 당M I T다 카 라 아 그 리얼 음 공 장명 가 공 장스 프 라 우 트제 2 생 면 공 장제 1 생 면 공 장제 3 두 부 공 장제 2 두 부 공 장제 1 두 부 공 장유기농 시장의 급성장2007년 6900억 규모전망연 17%이상의 꾸준한 성장률날로 커지는 소비자들의 욕구소비생활의 화두로 떠오른 “Well-being”열풍시장환경 분석시장환경 분석두부시장 규모 – 총4000억 중 포장두부시장의 규모는 2500억 국내 브랜드 두부류 시장은 풀무원, CJ백설, 대상 종가집의 3파전의 양상포장 두부 시장점유율경쟁기업의 전략 - 1제품 마케팅 및 시장 차별화 전략 1. 100% 국산콩만을 사용 2. 소포제와 유화제를 사용하지 않음 3. 전통 두부 생산 방식을 국내 최초로 포장 두부 생산에 이용 Target ☞ 식품 안전에 예민한 젊은 주부층경쟁기업의 전략 - 2제품 마케팅 및 시장 차별화 전략 1. 영양이 강화된 발아콩 사용(원료 차별화) 2. 비압착 방식을 사용하여 제조 3. 종가집 김치 제품과 연계 - 제품 유통을 김치 대리점 망 이용 - 다양한 판촉행사 마련 ('김치+두부'의 시너지효과)SWOT 분석상대적으로 높은 가격 두부에 국한된 브랜드 이미지Weakness해외 시장 확장 가능성 자연식품 선호 경향 전반적인 생활수준 향상 건강에 대한 관심 증가Opportunity후발 경쟁사들의 증가 (→ 치열한 경쟁) 잘 바뀌지 않는 고객 성향Threat좋은 기업 이미지(깨끗한 이미지) 높은 기술력 (유기농법, 생산시설자동화) 높은 시장 점유율(핵심상품-두부) 고품질의 상품Strength전략 분석기존 제품의 가격을 낮춤 광고를 통해 다양한 제품 홍보 인프라를 이용한 신 이익 창출 (다른 기업과의 제휴 등)W→O 전략고급인력과 기술력 위주로 상품을 개발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벌림)T→S 전략잘 바뀌지 않는 고객 성향을 역이용 (→고객이 원하는 신제품 개발)T→O 전략기존 시장 확대 강화 ☞해외 시장 개척 제품 다각화 ☞건강 보조식품등(녹즙) 전 제품에 유기농법 확대 적용S→O 전략핵심 문제점 분석두부류에 국한된 기업 제품 이미지『글로벌 콩 가공식품 전문 기업』전략적 Image Making 『풀무원=두부』후발업체(CJ)와의 시장점유율 경쟁『오가닉스 유기농 두부』와 같은 프리미엄 두부 출시포장 두부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율풀무원의 나아갈 길식품서비스 자회사의 사업 다각화 유기농 및 건강식품의 지속적인 기술력의 개발데이야끼 소스 및 향신료 등을 가미한 구운 두부 마늘로 양념 훈제한 두부 땅콩와 함께 으깨 버무린 두부 빵이나 크레커에 발라먹을 수 있는 크림 형태의 두부빠르게 변화하는 소비자의 입맛 다양 글로벌 유기농 식품 회사로 발돋움{nameOfApplication=Show}
    경영/경제| 2008.11.13| 17페이지| 2,000원| 조회(6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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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뮤지컬 엔터테인먼트의 마케팅 전략
    재미로CJ엔터테인먼트목 차1. 기업사명 2. 상황분석 3. 기업목표 4. STP분석 5. 마케팅 믹스 6. SWOT 분석 7. BCG 매트릭스 8. 사업확장1. 기 업 사 명풍요로운 문화생활을 위한 질 좋은 서비스 제공For better Life2. 상 황 분 석- 주 5일 근무제 도입。주 5일 근무제 도입이후 여가시간 증가의 따라 레져산업등을 포함한 서비스업 성장。1) 사 회 적 환경2) 소 비 자 분석3) 경 쟁 사 분석3. 기 업 목 표. Cj엔터테인먼트사의 “재미로” 의 문화산업의 기반 구축을 위한 인지도 상승. . 향후 3년 안에 시장 점유율 15~20%차지. . 향후 5년 안에 공연 횟수와 공연장소 확장.4. STP 분 석1)시장 세분화 - 유명한 뮤지컬들을 미리 예매하고 찾아가는 적극적인 구매자형 - 뮤지컬을 즐기지만 매개체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구매자형 - 화제가 되는 뮤지컬을 선호하며 외향적 요소를 선호하는 고객 - 뮤지컬에 무관심한 고객층2) 타겟팅 - 20대 중반의 커플 - 30대 전문직 고소득층의 남성 여성 - 40~50대 자신의 자아 충족을 원하는 중년층3) 포지셔닝 - 즐거움과 대리만족을 주는 뮤지컬 - 세련된 사람들이 즐기는 뮤지컬 - 가족 간의 사랑을 느끼는 뮤지컬5. 마케팅 믹스제품(Product) - 깔끔하고 이용이 편리한 실내 공연장 - 출중한 연기력과 대중에게 친근한 배우진 - 지성인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스토리 구성가격 (Price) - 기존 뮤지컬 보다 고가 전략 일반석 4~5만원 R석 7만원 예상유통 ( Place ) 대학가 주변에 소극장 정기 공연 - 주요 대도시 순회 공연 일정판촉 ( Promotion) Cyworld 미니 홈피 이용한 마케팅 메가박스 영상 광고 길거리 마케팅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한 마케팅 - 입 소문 마케팅 VIP마케팅*마케팅 캘린더 - 5 ~7월 : 인지도 증대 위주의마케팅 - 8 ~10월 : 둘째 주 공연 - 11~12월: 객석 점유율 하락 예상, 재포지셔닝 및 브랜드 강화위주의 마케팅 브랜드 강화 이미지 : 재미로 홈페이지 회원 가입등을 통한 회원DB확보6. SWOT 분 석.강점 (Strength) - 기존 흥행영화의 색다른 뮤지컬화 - CRM개념의 도입 - 홍보를 위한 적극적 매체 사용 . 약점 (Weakness) - 영세한 시장 규모. - 많은 투자비용과 긴 제작 기간.. 기회 (opportunity) - 주 5일제 도입으로 인해 늘어난 여가시간 - 경제 성장을 통한 삶의 질을 추구하는 시민 의식 . 위협 (threat) - 타 뮤지컬에 비해 다소 비싼 가격 - 복합적인 엔터테인먼트 기업의 과다 경쟁 - 뮤지컬에 대한 친숙도 결여7. BCG 매트릭스-기존의 성장률이 높고 시장 규모가 큰 영화 산업에서 벌어들인 자금을 사람들에게 다소 낯선 뮤지컬이라는 공연 산업에 투자.뮤지컬영화 산업낮음높음높음낮음8. 사 업 확 장- 공연 범위, 공연장 확대와 공연횟수 증가 - 참신한 스토리를 위한 시나리오 작가 공모 - 오디션을 통한 신인 배우 발탁{nameOfApplication=Show}
    경영/경제| 2008.11.13| 17페이지| 1,500원| 조회(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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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지 영웅들의 리더십
    삼국지에서 보는리더들의 리더쉽과현대에의 적용1. 삼국지에서 보는 리더십역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바로 리더이다. 리더가 이끄는 국가 경영은 곧 역사의 흐름이 된다. 수세기가 지나도 삼국지가 널리 읽히는 것은 삼국지 안에서 보여지는 수많은 리더의 성공과 실패, 그리고 그들의 인간경영 리더십 때문일 것이다. 삼국지는 다양한 리더십을 가진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어 현대 우리에게 인간관계의 형성, 문제해결의 방법, 의사결정의 다양한 상황을 간접경험하게 해주고 있다. 삼국지에는 천하를 호령하여 삼국을 건설하는 세 영웅이 등장한다. 위의 조조, 촉의 유비, 오의 손권. 이들은 서로 다른 방식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국가를 통치한다. 그러나 삼국지에서 볼 수 있는 리더의 모습은 이 셋뿐만이 아니다. 이 영웅들 아래서 그들을 보좌하며 조언을 하였던 유비의 제갈 공명과 관우, 조조의 순욱, 곽가, 사마의, 손권의 주유와 노숙, 육손 등 2인자들의 리더십 또한 삼국지에서 볼 수 있다.2. 삼국을 이끈 세 영웅의 리더십삼국을 건국한 조조, 유비, 손권 이 세 사람은 한 나라의 왕으로서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고 국가 경영스타일도 달랐지만, 출중한 리더십이 있어 사람이 따랐고 인재를 잘 썼다는 공통점이 있다. ‘인재를 얻는 자는 흥하고, 인재를 잃는 자는 망한다.’ 이처럼 큰일을 이루는 경영자는 인재를 중시하는 한편 시대 상황을 잘 읽고 이에 부합하는 경영방식을 밀고 나가 나라를 통치한다.2.1 조조 ‘불같은 야망과 패도 철학’조조를 ‘치세의 능신이고, 난세의 간웅이 될 사람’이라고 했듯이 조조의 용인술은 난세에 적합한 유형이다. 조조는 실력을 가장 우선시했던 리더였다. 철저한 재능지상주의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적이라 할지라도 능력을 보이면 탐내어 자신의 편으로 가담케 하였다. 조조가 관우를 끌어들이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조조는 이처럼 진정한 인재를 볼 줄 아는 통찰력의 소유자였으며 엄격과 관용을 겸비한 문제해결자였다. 자신이 보는 세계관이 확실하였으며 인간의 심리와 문제해결자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걸출한 리더십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공과 사를 구분하는데 있어서 철저하게 냉정했고 다소 이기적인면도 있었다. 이러한 면에서 조조는 현대와 같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 효과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리더형이라고 할 수 있겠다.2.2 유비 ‘천운을 거스르지 않았던 대기만성형’유비는 인성과 성품을 대표하는 리더이며 정과 신뢰를 가장 우선시했던 리더였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강한 흡인력과 바다와 같은 포용력과 인자함이 있어 주위에 신하들이 믿고 따랐다. 유비는 부하의 재능과 장점을 인정하였고 뛰어난 재능이 있는 인간 앞에서는 부하라 할지라도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 제갈량을 얻기 위해 유비가 세 번 찾아가는 ‘삼고초려’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재의 진정한 능력을 파악하고 아꼈다. 탁트인 솔직한 자세로 사람을 대하는 대인다운 풍모가 있었고 인정과 의리로 뭉친 사람이었다. 훗날 이러한 인정과 의리가 관우와 장비의 원수를 갚기 위해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오나라로 쳐들어가 대패하고 촉을 기울게하는 계기를 가져오게 된다.2.3 손권 ‘참모 활용에 뛰어났던 강동의 맹주’손권은 부하를 신뢰하고 인화(人和)를 중시하는 합의형이었다. 또한 조조와 유비와는 다르게 국가를 직접 건설한 것이 아니고 국가를 물려받아 지키는 ‘수성형’이었다. ‘인재를 믿지 않으면 쓰지 말고,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 에서도 볼 수 있듯이 손권은 신하를 신뢰하면 모든 것을 맡겼으며 인재의 육성에 힘썼다. 정황판단력이 뛰어났으며 그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을 선정하여 실천할 수 있는 의지력의 소유자이면서도 조심스러우며 참을성이 강했다. 인재의 등용과 활용면에서 남다른 안목과 부하와 늘 함께하는 동고동락의 솔선수범과 성실한 인간성이 그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3. 1인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지혜와 성공의 확신을 가져다주는 2인자 리더십어떤 문제에 대한 최종 결정은 1인자의 몫이다. 하지만 최선의 결정이 내려지기 전까지 2인자는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등 치밀한 계획과 실천방안들을 제시한다. 때문에 1인자의 능력과 인품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지만 탁월한 참모들을 둔 1인자와 그렇지 않은 경우는 극명한 대조를 보인다. 2인자들은 의리와 충성, 재능을 다 바쳐 1인자의 신뢰를 받고 뛰어난 협력자로 자신들의 영역을 지켰다. 즉. 1인자의 성공 뒤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2인자의 활약상을 삼국지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3.1 위나라를 세우고 발전시킨 2인자 ‘순욱, 곽가, 사마의’- 순욱 ‘인품과 경륜을 갖춘 명재상’순욱은 본래 원소에 밑에 있다가 원소가 1인자의 자질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조조에게로 간 사람이다. 자신이 모실 주군의 그릇과 장래성을 헤아릴 줄 아는 안목, 그리고 변화하는 세상의 이치를 내다볼 줄 아는 선견지명과 적절한 계책이 순욱으로 하여금 빛나는 2인자가 되게 하였다. 또한 순욱은 정욱, 곽가 등의 인재를 추천하여 등용하게 하고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여 계획을 세워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 대업을 이룰 수 있도록 보좌하였다. 그는 권력에 기대어 부귀영화를 탐내거나 위세를 뽐내지 않고 대의에 따라 나라의 장래를 내다보고 모범적으로 처신한 위나라의 명재상이었다.- 곽가 ‘창업 기초의 일등공신’순욱과 같이 곽가도 원소 밑에 있다 원소에게 실망을 느껴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순욱에 의하여 조조의 신하가 된다. 그는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어 조조의 신뢰를 받게 된다. 곽가는 주군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직언을 하였다. 이처럼 대국을 헤아리고 상대의 심리적인 측면까지 계산해 전체적인 작전구도를 짜는 곽가의 능력은 실로 발군이었다. 곽가는 창업기의 조조에게 나라의 기반을 만드는 최고의 공로자라 할 수 있겠다.- 사마의 ‘천하를 삼킨 야심가’사마의는 자신이 뜻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의도를 철저하게 감추고 결정적인 때를 기다려 일거에 승부를 노리는 인물이었다. 사마의는 자신을 경계하는 세력에게 나약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안심하고 자신을 신경쓰지 않도록 한 뒤에 자신의 아들과 함께 군권을 장악하여 도읍을 점령하였다. 이로써 그는 명목상의 2인자일 뿐 실질적인 위나라의 최고 실력자로 군림하였고 이는 이미 진나라가 세워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마의는 의리나 충성보다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배신의 존재인 것처럼 보이지만 긴 역사의 흐름에서 볼 때는 배신자라기보다 통치 능력을 잃은 조정을 대신해 새로운 시대를 연 창업자로서 난세를 마무리한 걸출한 인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3.2 촉한을 세우고 이끌어간 2인자 ‘제갈량, 관우’- 제갈량 ‘실용적 사고를 가진 2인자의 전형, 천하의 기재’제갈량은 실질적으로 촉한을 이끈 최고 권력자였고, 촉의 국운은 그의 두 어깨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매우 뛰어난 전략가이자 일급 정치가였다. 그는 뜻을 크게 잡아 천하삼분지계를 유비에게 내놓고 확고한 2인자의 자리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격장지계를 사용하여 상대를 자기 의도대로 이끌었으며 원칙을 철저히 지키는 공평무사의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제갈량은 실용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이었고, 동시에 충절을 지키고 원칙주의자로서 자신의 면모를 잃지 않고 모범적인 삶을 보여줌으로써 2인자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관우 ‘목숨을 걸고 신의를 지킨 명장’난세에는 자신의 이해관계에 급급하여 의리를 지키기 어렵다 하였다. 이에 반해 관우는 당대의 명장으로 알려져 조조뿐 아니라 손권까지도 그의 용맹을 높이 사서 자신의 휘하에 두려 여러번 유혹하였으나 관우는 끝까지 의형제를 맺은 유비를 배반하지 않고 신의를 지켰다. 혼란한 시기를 맞아 그는 오로지 의리와 충성으로 유비를 받들었고, 걸출한 무용을 앞세워 촉의 수호신으로 일생을 보냈다. 이처럼 관우의 소신을 지키는 모습은 현재까지도 영원한 장군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3.3 오의 창업과 중흥에 앞장선 2인자 ‘주유, 노숙, 육손’- 주유 ‘인간적인 매력을 겸비한 비운의 지략가’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나 제갈량과 비교되어 역부족이라는 평가를 받은 주유는 비운의 지략가이었다고 할 수 있다. 친구인 손책을 주군으로 받들어 강동 일대를 평정했고, 후에 손권을 새로운 주군으로 모시며 강동의 수군을 양성했다. 그리고 쳐들어온 조조군을 물리쳤다. 가히 오나라 건국의 최고 공로자라고 할 수 있다. 주유의 화합하는 인품과 웅대한 전략 구상, 그리고 적극적인 개척정신, 활달한 인간관계 등으로 주유는 2인자로서 누구보다 신임을 받았고 소신 있게 행동한 비운의 장군, 풍류를 알고 상대를 포용할 줄 알았던 2인자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노숙 ‘관계의 중요성을 일깨운 협상가’노숙은 폭넓은 사고와 옳다고 판단한 일에 대해서는 끝까지 소신을 잃지 않은 2인자였다. 노숙은 유비와 손권이 힘을 합쳐 조조에게 대항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여 촉과의 관계를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무장도 아니고 책사로 꼽을 만한 비범한 지략은 없었지만 풍부한 인간미와 어떤 경우에도 변하지 않는 의리를 중시한 난세를 평정하고자 한 협사로, 손권을 받들어 주군의 영광을 위해서 일신을 바친 2인자였다.
    경영/경제| 2008.10.22| 5페이지| 1,000원| 조회(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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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전쟁의 발발 원인과 의미 평가A+최고예요
    R/E/P/O/R/T『6.25전쟁의 배경 및 원인』과 목교 수 교수님학 과학번이 름제출일지금 내게는 무한한 기회가 주어져 있다. 내가 능력이 되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있다면 또는 그 하고자하는 일이 정당하다고 판단된 행위라면 언제든지 내 포부를 펼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내겐 주어져 있다. 이는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럼 내가 이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대남적화통일의 명분을 앞세운 북한 정권에 의한 남침인 6. 25전쟁에서 자유를 지키고자 자신의 목숨을 초개와 같이 생각했던 우리 선배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매년 6월 25일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의 중요성을 되새기고 조국을 위해 피 흘리며 죽어간 순국선열들에 감사하는 날인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었던 전쟁, 광복의 기쁨이 채 가시기도 전에 슬픔과 고뇌를 안겨준 전쟁, 우리민족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 막대한 인명 피해만 남긴 채 민족의 비극으로 끝나버린 전쟁이 바로 6.25이다. 이 전쟁으로 인해서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가 되어버린 대한민국과 북한. 어느덧 이 작은 한반도에 두 가지의 체제를 가지는 두 국가가 생긴지도 반백 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2국가 2체계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같은 민족이라는 것이다. 그럼 무엇 때문에 민족의 최대의비극인 6. 25전쟁이 발발하였는지 또 한 민족인 북한과 대한민국이 이렇게 아직까지도 서로 총을 겨누며 대치하게 되었는지 이 땅에 태어난 대한민국의 한 사람으로써 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6. 25전쟁은 크게 국내적 요인과 국내적 요인으로 나눌 수가 있다. 그럼 먼저 국제적 요인에는 첫 째로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들을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은 공산화 팽창정책을 펼쳤고 이에 다른 자본주의 이념을 가진 미국은 소련을 억제해야만 했다. 동쪽에 부동항을 확보하기 위해 소련은 한반도를 공산화 시키려 한 반면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계로 돌입할 것을 예상하고 절대로 소련에게 전진 항구를 내줄 수 없는 입장이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입장이 대립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던 것이다. 두 번째로 미국의 한반도에 대한 정책의 오류를 뽑는다. 아이러니 하게도 미국은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으로 일본 식민 국가들이 해방됨에 따라 차후 통치를 결정함에 있어 미국에게 한국은 군사 원조의 필요성 및 전략적 중요성에 있어서 아주 낮은 것으로 평가되고 말았다. 결국 미군은 1947년 9월 웨드마이어 군사사절단 보고서에 명시되어 있듯 한반도는 군사상 이점이 없으므로 소련군 철수 동시에 미군 철수한다고 되어있다. 실제로 한반도 주둔 외국군의 철수 논의가 된 후부터 불과 2년도 되지 않아 500여명의 미군을 제외한 전 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켜 한반도는 힘의 공백상태가 되버렸던 것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을 철수 시키는 대신 국군의 편성과 임시 주한 미 군사고문단을 설치하여 군사지원을 한다고 하였지만 이것은 결국 6.25 전쟁을 불러일으키는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또한 미국은 애치슨 성명에서 중국문제에 간섭하지 않고 일본열도를 확보한다는 의미에서 극동방위선 발표했는데 여기에서 타이완과 한반도가 제외된 것을 보면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로 소련, 중공의 한반도에 대한 이해관계의 일치를 들 수 있다. 미국이 주한 미군을 철수 시키는 시기에 소련 또한 한반도에서 자국 군을 철수시키는 듯 보였지만 뒤에서는 한반도를 적화시키기 위한 치밀한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다. 소련은 동유럽 위성국가 공산화에 성공함에 따라 눈을 돌려 월남, 미얀마, 필리핀,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을 적화 시키려는 정책을 세우고 있었다. 가장 먼저 한반도를 적화시킴으로 인해 극동의 팽창정책 실현의 전진기지를 확보할 수 있고 일본에 대한 영향력 행사와 미국에 효과적으로 대항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소련과 중국, 북한의 이해관계가 상호 일치되었다. 이는 1949년 3월 김일성의 방소중에 맺어진 군사비밀협약과 1950년 중소 군사동맹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국제적 요인 외에도 국내적인 요인이 있다. 첫 째로 남?북한 군사력의 불균형 및 전투준비태세의 미흡을 들을 수 있다. 북한의 김일성은 1949년 3월 소련을 방문해 조·소경제문화협정을 체결했고, 소련과 중국은 1950년 2월 우호동맹 및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북한은 소련과 중국 양 후원국으로부터 원조를 얻을 수 있는 길이 마련되었다. 그 중에서도 군사적 원조가 가장 두드러졌다. 소련은 북한에 진주한 직후부터 조직적으로 북한의 군사력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1945년 10월 모든 사설군사조직을 해체한 소련군은 11월부터 각 도 인민위원회에 보안청을 조직하고 이를 통제하는 보안부를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1946년 1월 철도보안대 창설, 같은 해 8월 보안기간요원 훈련소 창설, 1947년 5월 보병 2개 사단과 1개 혼성여단 및 인민군 총사령부 창설을 거쳐 1948년 2월 8일 육군 3개 사단과 해·공군의 기본체제를 바탕으로 조선인민군을 창설했다. 조선인민군 창설 후 남한에 대한 북한의 군사적 우위를 확신한 소련은 1948년 12월 25일까지 북한주둔 소련군의 철수를 발표함과 동시에 미국도 소련과 마찬가지로 남한주둔 미군을 철수시킬 것을 촉구했다. 1948년 후반부터 1949년 8월 사이에 중국공산군 소속 한인 의용군 2만여 명의 편입으로 북한군 규모는 더욱 확대되었고, 1949년 9월부터 남침 전까지 소련으로부터 대대적인 군사원조로 북한은 총 19만 8,380명의 병력과 242대의 T-34전차, 200여 대의 항공기 등을 보유하게 되었다. 당시 남한도 광복직후 국군이 창설되었지만 그 규모와 전투 장비 수, 기술면에서 북한군에 비해 너무나도 열세였다. 1949년 6월 주한미군이 철수한 이후 국군은 제 2차 세계대전시 미군이 사용하던 노후화된 경장비 위주로 무장되어 있었고, 전차나 대전차 화기가 전무한 상태에서 공비토벌 등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체계적인 전술훈련도 실시하지 못한 형편이었다. 이러한 군사력의 불균형은 전쟁 발발 초기에 여실히 드러났다. 북한의 기습남침에 수도 서울이 3일 만에 함락된 것을 보면 알수 있다. 두 번째로 그 당시 국내정세의 혼란을 들을 수 있다. 북한이 소련과 중국으로부터 원조를 받아 그 세력을 급격히 팽창시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남한을 둘러싼 정치적·외교적 상황은 매우 불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일본 항복 당시 한반도의 경제상태는 92%의 전력, 71%의 석탄, 83%의 금속제품, 70%의 광석이 북한지역에서 생산되고 있었으며, 1948년 5월 14일을 기하여 북한이 남한에 대한 송전을 중단하자 남한은 산업시설의 5%만이 가동할 수 있었으며 광복 이후 좌우사상대립과 민주 공산이라는 이념 투쟁으로 인한 사회의 불안은 더욱 증대되었다. 38°선을 통한 북한 무장공비의 침투사건과 남한 후방지역의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전복활동, 제주 4.3사태와 여순반란 사건 등으로 남한의 치안은 극히 불안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런 남한 교란전술이 수포로 돌아감에 있어 북한의 김일성은 전면적인 남침으로써 무력에 의한 남북통일을 성취하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인문/어학| 2008.10.21| 4페이지| 1,000원| 조회(3,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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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R/E/P/O/R/T‘착한 사마리아인의 법’과목교수학과학번이 름제출일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그렇게 깊이 있게 알고 있지 않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이번 보고서를 통해 더 심층적으로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는 흔히 이런 예를 들곤 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에 술에 잔뜩 취해서 어느 집 앞에 쓰러져 자고 있는 '김모씨' 라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박모씨' 라는 사람이 퇴근길에 자기 집 앞에 쓰러져 있는 ‘김모씨’를 발견하게 되었고 ‘박모씨’는 추운 겨울날 ‘김모씨’가 분명 다음 날 얼어 죽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 하고 그냥 지나치게 되었다. 예상대로 다음 날 ‘김모씨’는 동사하게 되었다. 이 때 ‘박모씨’를 처벌할 것인가? 처벌이 안 할 것인가? 의 문제가 야기하게 된다.그럼 가장먼저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의 정의를 알아보자. 그럼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알기 전에 사마리아인은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사마리아인은 팔레스타인의 옛 수도 사마리아의 주민이다.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이 아시리아 제국 군대에게 멸망당한 뒤,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인 대신 사마리아에는 각지에서 몰려온 이민족이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사마리아는 아시리아 제국의 행정현 사메리나의 중심지가 되어, 그 지위는 페르시아 시대가 되어도 달라지지 않았다. 바빌로니아에서 귀환한 유태인이 예루살렘 신전을 재건하던 무렵부터 사마리아인과의 반목·대립이 시작되었으나, 나중에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생겨났다. 사마리아인의 자손임을 자칭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소수이긴 하나 텔아비브 근교의 호른과 시켐에 모여 살며 예로부터의 관습을 지키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사마리아인은 팔레스타인 사마리아 지방에 살았던 이스라엘 민족의 한 분파이다. 이들은 참된 율법의 수호자로 자처하면서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을 방해하는 등 유대인들과 오랜 적대 관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그럼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The Good Samaritan Law)’이란, 무엇인가? 자신에게 특별한 위험을 볼 수 있듯 자신은 아무런 죄도 없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이것은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위반하는 게 되는 것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이란 어려움에 빠진 자를 구한 이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우화로써 "네 이웃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야기 끝에 되물었다. 이 세 사람 중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은 누구인가? 그러자 율법학자가 대답했다. "그에게 자비를 보여준 사람입니다. " 예수님께서 다시 말했다. "가서 그렇게 하시오" 이는 진정한 이웃의 의미를 깨우치는 사례라 할 수 있다.이렇듯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도록 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채택하여 법적 효력을 발휘하게 하는 나라는 프랑스를 비롯하여 유럽, 아시아등 다수가 있다. 먼저 프랑스의 경우를 알아보자. 프랑스는 형법 제63조에는 "위험에 처해있는 사람을 구조해 주어도 자기가 위험에 빠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자의로 구조하지 않는 자는3개월 이상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360 프랑 이상 15,000 프랑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되어 있어서 프랑스에서 위와 같은 일이 있다면 처벌의 대상의 된다. 독일 형법에도 제 330조 C항에 "도움이 필수적이고 상당히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특히 현저한 단 하나의 위협도 없이 그리고 다른 더욱 중요한 의무를 위배하지 않을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 사고나 공공의 위험 혹은 위기에 처해 있는 자에게 도움을 주지 않은 자는 징역 1 년 이하 또는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 독일 외에도 포루투갈, 스위스, 네덜란드, 이탈리아, 노르웨이, 덴마크, 벨기에 등 자유 진영 국가들의 대부분이 이런 조항을 채택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러시아, 루마니아, 헝가리,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사회주의 국가의 형법(1960) 제 127조는 "만약 도움이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심각한 위험이 없는데도, 죽음의 위험에 처해 있는 사람에게 필요하거나 을 피하기 위해서는 필요 불가결하고 위험에 의해 야기될 수 있는 손해의 한계를 초과하지 않는다면, 그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신체, 자유, 혹은 재산에 위험이 되는 임박한 위험을 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행동한 사람은 손해 배상의 의무가 없다. 그러나 만약 그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 것이 위험의 발생에 대해 책임이 있다면 그는 손해 배상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일본 형법에서는 이것을 유기죄로 취급하여 구조 의무가 있는 자가 구조를 유기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구조 의무가 없는 자가 유기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위난에 처해 있는 자에 대한 구조와 유기가 성질상 같은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어쨌든 일본 형법도 이 문제에 대하여 입법적으로 대비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세계의 수많은 나라에서 착한 사마리아인 조항을 설치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인간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본분을 저버리는 사람에 대하여 윤리적으로만 아무리 비난해 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에 대한 반성이요, 따라서 그러한 비인간적인 사람들이 팽배하여 현대 사회가 점점 냉혹하게 되고 흉폭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이다. 현대 문명 사회라는 이름의 뒷면에는 대낮에 행길에서 강도를 당해도 수십 명의 사람들이 구경만 하지 구조해 주지도 않고 증인으로 소환당하기가 귀찮다고 하여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이런 면에서 본다면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비인간화, 비윤리화 된 사회와 법에 대한 ‘새로운 윤리화’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자유 진영이나 사회주의 진영이나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다만 법문화의 전통상 개인주의적 성격을 자랑하는 영미법 계통의 영국과 미국에서는 ‘네 할 일이나 상관하라(Mind your own business).’라는 전통 때문에 이런 사회 연대적 발상에 대하여 다소 거부감을 느끼고 있는데, 그렇지만 근년에 이를수록 영미에서 해야 할 의무를 다하지 않는 행위에 대하여 형벌이 각각 다르거나, 처벌하는 나라와 처벌하지 않는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은 적어도 법학적 관점에서는 흥미 있는 연구 테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1965년에 일찍이 미국의 시카고 법대에서 ‘착한 사마리아인 법 심포지엄’을 개최한 바 있다. 이 심포지엄에서는 ‘이 법을 시행하려면 간단치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지만 현대 사회에서 점점 중요시되고 있고, 시행 과정에서 점점 세련된 방법을 찾아 나갈 수 있을 것’ 이라고 대체로 긍정적인 방향의 주장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흔히들 법에는 눈물도 사랑도 없다고 하는데, 그것은 피상적인 관찰이다. 착한 사마리아인 조항은 독일에서는 ‘사랑 조항’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법이 사랑과 윤리를 외면하고 엉뚱한 규범으로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는 것이다.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이런 것이 규정에 명시된 것이 없기 때문에 처벌을 받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유기죄가 있는데 이 유기죄는 아무런 의무가 없는 자가 행하는 것이 아니라 의무가 있는 자가 그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이다. 이 법의 규정으로는 제1항 노유, 질병 기타 사정으로 인하여 부조를 요하는 자를 보호할 법률상 또는 계약상 의무있는 자가 유기한 때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항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하여 제1항의 죄를 범한 때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1항의 죄를 범하여 사람의 생명에 대한 위험을 발생하게 한 때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제2항의 죄를 범하여 사람의 생명에 대하여 위험을 발생한 때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유기라고 하는 것은 돌보지 않고 내버려두는 것을 말한다. 유기죄는 위와 같이 법률상 또는 계약상의 의무가 있는 자가 그 의무를 행하지 않은 때에 성립하는 것이라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이 의무가 없는 경우도 행하지 않으면 처벌되는 것과는 다르다.그럼 현재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적용해야 할만한노부부가 사망한지 며칠이 지나서야 발견 된다거나 겨울에 술에 만취한 사람을 도와주지 않아 길에서 얼어 죽는 일등이 여기에 해당한다.‘착한 사마리안 법’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해 주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착한 사마리안 법은 양심의 문제를 법적으로 규정해 놓은 입법례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타인의 위험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할 의무가 있는 가?’, ‘타인을 돕는 것은 양심에 따르는 것인가?’ 라는 문제이다. 그러나 착한 사마리안 법은 사회가 핵가족화 , 개인주의화가 가속화 되어가고 있는 요즘 타인 혹은 자신의 법익을 보호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보호하기 위해서 필요하다. 그것은 착한 사마리안 법이 부작위의 개념으로써 타인 혹은 자신의 법익과 인간 존엄성의 보호를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착한 사마리안 법은 개인의 양심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법으로 규정되어야할 최소한의 도덕이기도 하다. 법학자 옐리네크는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했다. 법은 도덕을 내용으로 하는 때가 많지만, 모든 도덕이 법으로 규정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법은 강제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굳이 처벌하지 않더라도 자율적으로 양심에 따라 도덕을 지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매우 중요하고 필요한 일부 내용만을 법으로 규정해야한가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독일의 경제학자 슈몰러는 법은 최대한의 도덕이라고 주장했다. 도덕규범 중 꼭 필요한 내용을 법으로 제정하여 강제성을 띠게 되므로 도덕은 법을 통해 최대한도의 유효성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이를 좀더 풀어보면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 제정에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나뉜다.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인간의 본분을 저버리는 사람에 대하여 도덕적·윤리적으로만 비난해 봐야 아무 의미가 없으며, 이러한 비인간적 행태가 팽배하여 현대 사회가 점점 냉혹하고 흉포해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즉, 서로 돕고 사는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하여 이러한 법 제정이 꼭 필요하고 주장한다. 또 이 법을 시행했을 시 아파트 옆
    인문/어학| 2008.10.21| 7페이지| 1,000원| 조회(1,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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