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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안마애삼존불 연구
    태안 마애삼존불백제 7세기 초반, 좌우 여래상 높이 2.1미터, 보살상 1.3미터. 보물 제 432호태안 마애불은 충남 태안의 백화산 정상에 못미처 동쪽을 향해 있는 큰 화강암 바위 면에 고부조로 조각된 마애불이다. 이 삼존불은 그 배치방법이 파격적이다. 중앙에 작은 보살상이 있고, 그 좌우에는 우람한 체격의 여래상이 있다. 가운데 보살상은 머리에 산 모양의 높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아래위로 마주하여 보배구슬을 받들고 있는데, 이처럼 두 손으로 보배구슬을 받든 보살은 관음보살의 표식이 정해지기 전에 백제인들이 창안했던 이상적인 관음보살의 모습이다.보주란 모든 것을 이루어 주는 신비의 구슬이므로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의 성격에 가장 잘 어울리는 상지물이다. 이러한 관음보살상은 중국에서는 찾기 어려운 한국적인 것이며, 그 가운데서도 백제에서만 나타난다. 신체 조형성을 획득한 백제의 반가사유상과 백제에서 창안한 보주관음보살상은 일본의 아스카시대 불상에 큰 영향을 미쳐 일본 고대조각의 기초가 되었다.일반적으로 삼존불이란 가운데 여래상이 있고 그 좌우에 마치 호위하듯이 보살이 배치되는 형식을 말한다. 태안 마애삼존불은 보살을 여래보다 크게 나타낼 수 없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여래상의 중앙에 관음보살을 배치하였는데, 이는 관음신앙을 강조한 매우 대담한 배치방법이다. 이처럼 관음보살을 본존으로 삼고 좌우에 여래상이 협시한 삼존형식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백제 특유의 것이다. 불교에는 어떤 고정관념도 없다. 도상은 곧 민중의 신앙형태를 반영한 것이므로 이 삼존불을 통해 백제의 독자적인 관음신앙을 엿볼 수 있다.보살상 좌우의 여래입상은 체격이 우람하고 얼굴과 신체의 양감이 매우 풍부하다. 불상의 신체가 장대한 것은 중국 수나라의 불상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다. 민머리의 머리위에 팽이 모양으로 볼록하게 솟아 있는 아주 작은 살상투(육계)가 특이하다.옷깃은 U자형으로 넓게 트였으며, 하단 옷깃 사이로 고리 모양의 띠 매듭이 삐죽이 솟아 있다. 속옷을 맨 이 띠 매듭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등장하는 것인데, 그 끝을 길게 드리운 중국 불상과는 달리 짧게 매듭지어진 점이 특징이다.
    인문/어학| 2009.06.27| 1페이지| 1,000원| 조회(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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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호관 이인상 (凌壺觀 李麟祥) 연구
    凌壺觀 李麟祥- 이인상의 생애이인상의 본관은 전주 이씨 밀성군파로 이 집안은 당대의 명문 중에 명문으로 그 문벌을 앞세우기 위하여 다른 전주 이씨와 구별하여 완산 이씨라는 별칭을 사용할 정도였다. 특히 이인상의 고부조인 백강 이경여 이후 이 집안은 크게 번성하였다. 백강은 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인물로 친명배청을 주장하여 한때는 심양에 억류된 적이 있는데, 그의 이러한 지조와 정치적 입장은 훗날 노론사회에서 크게 존중받는 바가 되었다. 그리고 백강의 자손들은 크게 번성하여 5명의 정승과 3대에 걸친 대제학을 배출할 정도였으며, 그 종가의 권세에 힘입어 음보가 방계인 이인상 집안까지 내려지게 된다.필자미상, 이인상초상화(李麟祥肖像畵)이인상의 집안은 이처럼 당대의 명문이었지만, 불행하게도 서출이었다. 그의 증조부인 민계가 백강의 서자였기 때문에 이인상은 이른바 원대서족인 셈이었다. 그러나 이인상이 서출이라고 해서 곧 그의 예술이 곧 서얼신분의 무엇을 대변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그의 예술세계에는 서출의식이란 털끝만큼도 보이지 않고 오히려 어떤 사대부도 보여주지 못했던 심오한 문인화의 세계에 도달한 것이었다. 서출인 이인상이 신분의 제약을 어느 정도 벗어난 것은 아마도 두 가지 점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해석되는 데, 하나는 그가 명문출신으로 당시 노론의 권세 하에서 높이 추앙받던 백강 이경여의 후손이라는 집안배경이 크게 작용했던 것이고, 또 하나는 서얼허통에 점점 관대해지는 당시의 추세라는 점이다.그렇다고 이것이 이인상의 신분적 해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서출일 수밖에 없는 제약이 평생 따라다녀, 결국은 문과에 응시할 수도 없었고, 종6품의 말단을 면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이런 신분적 제약의 불합리성을 사회적 차원에서 찾아보며 그것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져본 일도 없었고, 아직 사회가 그만큼 성숙해 있지도 못했다. 반대로 그는 사대부적 윤리와 기강을 여느 사대부보다도 철저히 지킴으로써 자신의 신분적 열등을 벗어나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다. 사대부 그 누구보다도 더 사대부적 학식과 교양을 갖고 있음을 과시하면서 그 설움의 피해를 보상받으며 살아간다. 때문에 그는 사대부적 자세라는 규범을 원리 원칙대로 지키며 완고한 성격을 고수하면서, 양빈의 신분이면서도 그 체통과 위신을 지키지 못하는 자는 백안시해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은사의 풍모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서출이라는 열등감을 보상받기 위한 역작용일 수도 있는 것이다.이러한 성격과 인품은 곧 그의 작품 속에 여지없이 반영되었던 것이다.이인상은 26세에 진사에 합격한다. 그리고 그는 백강의 선음으로 북부의 참봉에 보직됐다. 이후 만 12년 동안 중앙의 관리생활을 하였다. 중앙의 말단직을 전전하다 38세에 경상도 사근도 찰방에 부임하게 된다. 40세가 되던 1749년에 찰방직에 해임된 후 공직생활에 1년간 공백이 생기며 1750년에 음죽현감으로 부임했다. 서출인 그로서는 고을의 원님으로 부임한 것이 출세의 끝에 와 있는 셈이었다. 그러나 이인상은 지방관 신세에는 싫증이 나 있었기에 만사를 제쳐버리고 어디에 은거할 궁리만 하고 있었다. 결국 관찰사와 다투고 현감벼슬을 그만둔 다음에 음죽의 설성에 칩거하며 지냈다. 설성에서의 은거생활은 우울하고 쓸쓸한 나날이었다. 지병이 여전하고 처의 병도 더해 가는데다 딸도 1년이 넘도록 위독한 상태라며 집안의 우환이 그치지 않은 탓에 더했다. 그러다 1760년 8월 15일 향년 51세로 생을 마치게 된다.- 설송도능호관 이인상의 최고의 걸작은 역시 설송도라 할 수 있다. 지금은 물론 당시 문인들 사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던 이인상, 그는 무엇 때문에 이러한 찬사를 받는 것일까?그것은 조선시대 문인화가들이 지고의 가치로 내세웠던 사의 정신을 통해 알 수 있다. 문인화가들은 언제나 대상을 그럴 듯하게 옮겨놓는 것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대상을 통하여 자신의 마음을 쏟아 놓을 수 있을 때라야 비로소 기술자로서 직업화가와는 전연 다른 차원에서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천릿길을 여행하고 만 권의 책을 읽는 교양, 그리고 끊임없는 인격수양과 긴밀하게 연관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붓 끝에 가탁하여 나올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고 그럴 수 있을 때만이 문인화가의 가장 바람직한 이상형이 구현된다고 믿어왔다.이인상 (李麟祥), 설송도 (雪松圖)설송도는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눈 덮인 노송의 꿋꿋한 자태, 그것이 이 그림의 주제일진대, 그 주제가 살아나는 조형효과는 노송의 사실적 표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엷은 먹을 담담하면서 은은하게 사용하면서 얻어낸 하나의 분위기가 결정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간결하면서 담담한 가운데 풍기는 삼엄한 기상, 바로 그것이 설송도의 조형적 비밀인 것이다.따라서 우리가 세속적인 삶 속에서 갖고 있을 욕망을 바탕으로 형성된 아름다움, 즉 화려하고 맵시 있고 우아하고 윤기 있고 잘생긴 외모에서 풍기는 멋은 이인상이 추구하는 미의 세계와는 아주 먼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의 세계에서 그는 아름다움을 찾는다.겉으로 드러난 아름다움이 아니라 내면의 아름다움 내지는 진실에 아름다움을 두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문인화가들이 갖고 있던 사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으로 은사적 기질을 갖고 있던 이인상이 보여주는 최고의 미적 가치이다.- 수석도수석도는 1738년에 그려진 것으로 기년이 분명한 초년 작이지만 그 크기가 비교적 크다. 우선 그 크기에서 많은 학습과 연습을 통한 자신감 등을 먼저 불 수 있다. 그리고 그의 다른 작품과 대조하면 수지법이나 비위의 묘사가 화보를 통해 학습한 기법에 근간을 두고 있음을 찾을 수 있다.이인상은 이 작품의 주경물인 바위를 묘사하면서 농담조절과 측필의 필법으로 괴량감과 함께 날카로운 바위의 성격을 드러냈다. 그런데 이 바위는 후경의 산을 부드럽게 겹쳐지며 흐릿하게 묘사한 것 보다는 진하지만, 전면의 수목에서 비교적 짙은 먹을 사용하여 도드라지게 처리한 것에 비해서는 흐릿하다. 이는 공간감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부린 묵법의 결과로 보이며, 이 시기의 이인상이 용묵을 잘 이해하고 의도대로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문/어학| 2009.06.26| 5페이지| 1,000원| 조회(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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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를 읽고 - 인문학을 통해 본 경영학.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감상문'인문' 과 '경영'나는 이 책의 제목을 보고서 한참을 생각을 했다. 인문학을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으면서 최근 경영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있는 나였지만, '인문학과 경영학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라는 고민은 쉽게 해결되지 못하였다. 대학교 내 에서도 '인문대학' 과 '경영대학' 은 별개의 대학으로 분리 되어 있을 만큼 두 학문의 연관성은 적다고 생각 하였다. 그러나 그 해답을 작가의 서문에서 찾을 수 있었다.- 우리는 왜 인문학에 새삼 주목하는가? 다름 아닌 '통찰의 힘'을 키우기 위해서다. 여기서 말하는 통찰은 '통찰(洞察)'이면서 동시에 '통찰(通察)'이다. '통찰(洞察)'은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한다. 인사이트(insight)이다. 아울러 '통찰(通察)'은 곧 '통람(通覽)' 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훑어 두루 살펴보는 것이다. 오버뷰(overview)이다. 결국 통찰의 힘은 바로 통찰과 통람의 융합이며 인사이트와 오버뷰의 시너지다.저자가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은 인문학과 경영학의 직접적인 관련이 아니었다. 인문학을 경영학을 재고해보는 대상으로 생각을 하고 통찰하는 힘을 키우자는 의미였다. 즉, 인문학을 통해 어떠한 리더십을 가져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주제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통찰의 힘’을 얻기 위해서 라 할 수 있다.현대시대는 분석의 힘은 커졌지만 통찰의 힘을 잃어버린 '분석과잉, 통찰결핍'의 시대라고 말했다. 인문학을 통해 경영학을 통찰하려는 이유는 실용서가 '어떻게', 'how' 를 묻는다면 인문학은 그야말로 '왜', 'why' 에 대한 질문을 하고 해답을 얻을 수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이 책에서 인문학을 통한 경영학적 통찰을 얻기 위해 경영적 차원에서는 물론 일상의 현장에서도 동일하게 중요한 키워드 10가지에 대해서 인문학적 해석을 하고 있다. 저자는 역사와 심리학, 그리고 사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삼아, 각 주제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끌어내고 있다. 생각건대, '인문학' 이라는 큰 범주보다는 '역사를 바탕으로 한 철학' 이라는 작은 범주가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이 책에서는 '역사', '창의성', '디지털', '스토리', '욕망', '유혹', '매너', '전쟁', '모험' 9가지의 인문학적 현상을 통해 경영학을 통찰하고 있다. 특히, 10개의 키워드중 '역사'를 두 번 언급하는 것이 특이한데, 이는 역사를 배우고 옛 것을 배움에 있어, 옛 것이나 새 것 어느 한 쪽에만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온고지신'의 정신을 보여준다.이 책에서도 두 번이나 강조하듯,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청대 최전성기인 강희-옹정-건륭 3대의 역사와 로마제국의 쇠망사를 통해 역사 속 흥망의 이야기가 주는 통찰을 끌어낸다.그중, 건륭제의 일생이 흥미 있게 느껴졌다. 건륭제는 어려서부터 역사서를 즐겨 읽었고, 특히 이 "정관정요"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는 것으로도 모자라 항상 지니고 다니면서 치세와 치리의 거울로 삼았다. 특히 "편안할 때 오히려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는 거안사위(居安思危)는 그가 언제나 가슴속 깊이 새겨놓는 경구가 되었다. 여기서 위태할 '위(危)'자를 위대할 '위(偉)'자로 바꾸어 보자. 편안할 때 오히려 더 위대해질 생각을 하라는 것이다.사실 '좋은 것'은 '위대한 것'과는 정반대에 서 있다. 또한 한 곳에 안주하는 것은 안락사와 마찬가지다. 즉 좋은 것에만 머물지 말고 위대한 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건륭제가 늘 마음에 새겼던 이 거안사위는 오늘날의 우리 모두가 마음 깊이 간직해야 할 덕목이다.10개의 테마중 9번째인 '모험' 의 챕터가 매우 나에게 감명을 주었다. '사람은 항상 나아가야 한다. 현재는 후퇴다.' 라는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감독 김성근 감독의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왔던 나였기에 이 책의 내용이 나에게 자극이 되었다.새클턴이 남긴 진정한 의미는 그가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오고도 다시금 그 죽음의 한계선을 향해 도전했다는 점이다. 그는 끝까지 죽도록 도전했던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꾸준히 절망을 몰아내고 낙관을 심었다. 희망의 끈만 놓지 않으면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었다.또한, 아문센과 스콧의 경쟁에서 도전속에서도 유연한 발상과 현실적 대처의 중요성을 볼 수 있다. 같은 악조건에서 얼마나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펼쳤는가. 현실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대처했는가. 불확실성을 최소화 하려고 했는가. 경량화, 슬림화 전략을 택했는가. 결국 스콧은 괴혈병으로 죽었으며 죽음으로 몰아넣은 진짜 원인은 다름 아닌 '절망' 이다.아무리 어려운 일도 스스로 해쳐 나가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의 내면에서 꾸준히 절망을 몰아내고 낙관을 심었다. 새클턴과 스콧은 남극에 억류되었다는 같은 조건이었지만 스콧과 달리 새클턴의 부하들은 희망의 끈만 놓지 않으면 살 수 있으리라는 것을 믿었다. 절망은 곧 죽음이라는 것을 잘 알았던 것이다. 포기하지 않는, 그들의 몸부림 앞에 결국 길은 열렸다. 새클턴의 도전은 실패하였지만 새클턴의 '인간중심적 리더십'은 도전과 모험속에서 믿음과 희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독후감/창작| 2009.06.18| 4페이지| 1,000원| 조회(6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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