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1940년대 소설1. 해방 전- 해방 전 5년은 우리 문학의 공백기 : 1939년부터 민족말살정책 실시(언론지-조선일보, 동아일보-의 폐간, 일본식 성명 강요, 황국 신민화 등)- 부일 문화(附日文學)의 길로 나서는 부류, 붓을 아예 꺾거나 옥에서 생을 마감하는 문인들로 나뉨, 그 외에 살아남음과 소멸의 기로에서 고통 받음.1) 해방 전 소설의 두 가지 양상(1) 어용소설)어용소설은 일제의 정책에 공명하고 그것을 찬양한 소설. 어용소설은 일제말기의 실상을 비쳐주는 겨울이기도 하다. 어용작가들에 의해 창작된 그 소설들은 우리의 부끄러운 유산이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바람직한 민족문학의 수립을 위한 반성의 자료가 되기도 한다.* 주요 작품① 내선일체)- 이효석 「아자미의 장」(1941): 한?일간의 통혼과 문화종합이 내선일체의 중요사안으로 생각하여 통속연애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 표출한 작품.- 이광수 「그들의 사랑」(1941): 일본인의 생활 태도는 좋고 한국인의 생활태도는 나쁘다는 식의 흑백논리를 통하여 일본인화(황민화)를 직설적으로 토로.② 징병 독려- 정인택 「뒤돌아보지 않으리」(1943): 한국인 청소년을 일제가 벌이고 있는 전쟁의 마당으로 내몰기 위한 의도로 창작됨.③ 전시하의 모범적 생활양식 제공- 이광수 「봄의 노래」(1941): 이광수가 향산광랑이란 창씨명으로 1941년 9월부터 《신시대》에 연재한 소설. 전쟁물자의 충당을 위해 전선의 후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자의 절약이나 근로, 그리고 생산 증가와 관련된 활동이 요구. 결혼식 장면을 통하여 당시의 군국주적 생활양식의 한 단면을 보여줌.(이 결혼식 장면에는 신사참배와 '국기' 존중, 그리고 궁성요배와 순국자 영령에 대한 묵념 등 시국적인 행사들이 집약되어 있는데 작가는 이 행사들을 적극 장려하려는 의도를 가졌던 것으로 보임.)(2) 순수지향 소설어용소설과 대립되는 순수지향) 소설은 어려운 창작적 정황 가운데에서도 꾸준히 발표되었다. 이 시기의 순수지향 소설은 지식인 상대의 《국민문학》보따른 회의감(채만식,「근일」,1941), 비원감(김남천, 「등불」,1942) 등의 작가적 심경을 나타냄.- 이 시기 신변소설은 모두 30년대에 활발한 문학 활동을 했던 작가들에 의해 씌어졌음.② 세태소설: 세태와 인정과 풍속을 주로 하는 소설. 외부적 세계의 묘사에 주력.- 채만식 「어머니」(1943): 과거로 눈을 돌려 개화기의 풍경을 흥미 있게 그려냄.- 한설야 「세로」(1941): 서울 한복판의, 신문사 내의 복잡한 분쟁을 세밀하게 그려내면서 시국에 대해 비판하려 함.- 이근영 「소년」(1942): 도시의 풍경을 보여주기도 한 이 소설은 어떤 악 조건하에서도 재능을 살려, 예술에의 꿈과 희망을 잃지 않고 부단한 수련의 과정을 통해 그것을 성취해 나가는 소년주인공의 패기 있는 의지를 보여줌.③ 흙과 자연에의 자성을 다룬 소설- 이무영 「원줏댁」(1941): 지주의 소작인에 대한 횡포를 풍자함.- 일제말기 농촌소설은 1930년대 농촌소설에서 볼 수 있었던 프로문학적 농촌소설의 퇴조가 가장 큰 변모라고 할 수 있음. 즉, 집단보다는 개인으로서의 농민이 다루어지되 그 개인의 의식이나 심성 같은 것이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순수지향 소설의 공통적 특징: 정치성이나 사회성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2) 기타 해방 전 소설의 특징(1) 민속적, 토속적 세계를 구축한 소설-김동리는「황토기」(1939),「완미설」(1939)등의 작품을 통해 가장 민속적이며 토속적인 작품세계를 독자적으로 구축.삶의 의미에 대한 부정을 삶의 숙명적인 비극으로 승화시키고 더 나아가 원시적인 무속의 세계로 이끌었던 김동리의 작품세계는 매우 독특하다 할 것이다.(2) 시적인 감수성을 바탕으로 한 서정적 소설- 황순원은 시의 언어와 소설적 서술을 결합시킨 소설을 쓴 작가.「별」(1941),「기러기」(1942),「그늘」(1942) 등의 작품에서 소년과 소녀들이 겪어야 하는 통과제의의 세계를 펼쳐 보이면서 그들이 겪는 시련과 아픔에의 과정을 당대의 전이된 역사의 무게와 그를 극복해 내기 위한행위의 제어수단으로 보며, 그 수단을 사회적 이념의 지표에 연결시켜 보고자 하는 작가.② 문학과 인생에 대한 폭 넒은 조망을 통해 인간의 삶의 모습과 그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작가.⇒ 이 두 가지 부류의 소설적 경향은 당시 문단의 좌우대립 양상과 직결 됨.2) 해방 직후 발표된 소설들의 예술적 성취도의 문제)- 해방 이후 발표된 소설들이 해방 이전보다 자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예술적 성취에 있어서 해방 이전보다 진전하지 못한 것이 많음.* 이유(1) 해방 직후의 정치 ? 사회상이 소설보다 더 극적으로 전개되고 있었음(2) 소재에 대하여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기 어려움(3) 수시로 변하는 정치적 ? 사회적 현실 때문에 가치관을 확립하기 어려움(4) 작가 자신이 차분히 앉아 소설적인 형상화에 투자할 여유가 없었음(5) 일제 식민지하에서 겪었던 지난날의 상처가 알게 모르게 그들의 창작에 관여하고 있었기 때문( 모국어를 버리고 일본어로 글을 써야 했던 일, 자의든 타의든 일본에 협력해야 했던 일, 창씨개명까지 하면서 황민화되고 있는 시늉을 하고 있었던 일, 일본이 이길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했던 일)3) 해방 이후 소설의 경향(1) 조국 현실을 소설로 형상화하여 그 실상을 보여주려는 소설-김동리 「혈거부족」(1947)해방 공간의 현실 인식을 문제삼은 작품. 이 작가가 「무녀도」, 「황토기」 등을 통해 꾸준히 천착해온 토속적인 세계, 신화적 공간과는 상당한 간격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해방공간의 귀향의 고통스러운 역정뿐 아니라, 미완결의 귀향과정에서 비롯되는 현실의 경제 궁핍상을 문제 삼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작가는 현실의 측면보다도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보여주며, 인간 본연의 심성에 자리 잡고 있는 고향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면서 또한 귀환 유이민들에게 심각한 문제를 제기시켰던 주거 공간의 난세를 궁핍한 경제적 현실과 결부시켜 이야기하면서, 이 같은 현실의 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을 암시해 주고 있다.- 염상섭의 「그 초기」(194 그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2) 친일 행위를 회오하고 속죄하는 관점에서 쓴 소설-김동인 「반역자」(1946)소설의 주인공은 오이배라는 인물인데, 실상 주인공 오의 모든 행적은 소설가 이광수의 경우를 모델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오이배라는 인물을 통해 식민지 시대 한 지식인의 정신적 몰락과정을 추적하고 있는 셈인데, 그 속에는 다분히 자기모럴의 배타적인 암시가 깔려 있다.- 채만식 「민족의 죄인」(1948)(3) 해방된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풍자적 관점에서 쓴 소설- 채만식 「논이야기」(1946)- 이무영 (1946)시대의 조류에 편승하는 주인공의 인물이 풍자적으로 그려져 있다. 버젓한 성명을 가졌지만 주인공은 '굉장'이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일제시대에는 일본인들의 비위나 맞추며 살았고, 해방이 되자 역시 주견없이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굉장하군'을 연거푸 말하는 기회주의자로서 주인공 박굉장씨는 변신한다. 작가는 이러한 인물을 그려내기 위해 그가 지니고 있는 정신적인 특질-허황한 자기 과시와 주견없음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그가 생각하고 의도하는 일들은 실상 아무런 가치없는 일들에 불과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는 자기성찰이 없는 바보에 지나지 않으며, 시대상황의 변화에 급급하게 따르려던 해방 직후의 기회주의자들을 대변하고 있는 셈이다.(4)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소설-김동리 「역마」(1948)역마살이라는 당사주의 점괘가 가리킨 운명에 매여 살아가고 있는 한 젊은이의 삶을 그린 소설이다. 작가는 시대적 상황과 별로 무관한 역마살이라는 소재를 통해 소설의 예술성을 추구하려고 하였다.-황순원 「목넘이마을의 개」(1947)목넘이마을로 흘러들어온 신둥이라는 개에 관한 이야기이다. 목넘이마을은 우리 동포들이 살길을 찾아 북으로 떠나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다. 이 마을에 굶주린 개 한 마리가 들어온다. 그 개를 동네에서는 미친개로 보고 몽둥이로 때려죽이려한다. 그러나 신둥이는 동네사람들을 피해 생명을 부지하고 새끼까지 낳아 륭한 농민이 된 억쇠의 이야기이다. 농민이 되는 과정에서 억쇠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성필의 도움으로 각성이 되고, 토지개혁으로 당당한 자작농이 되어간다. 이 작품의 마지막에는 지주계급은 아무리 선해도 소용이 없으며 그 계급의 적은 철저한 적의를 가지고 투쟁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이는 사회주의 사상성이 짙게 드러난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문제점: 이태준의 「농토」는 뒷부분의 짙은 사상성 때문에 초반의 서정적인 아름다움이 파괴되었다.☆깊게 살펴보기* 채만식 「민족의 죄인」과 「논 이야기」※「민족의 죄인」나와 김, 그리고 윤이라는 세 인물이 등장하여 일제치하에서 지식인이 겪은 세 가지 삶의 다른 방식에 대하여 물음을 던져놓고 있다. 작가인 나는 일제의 강압이 몸 가까이 다가오자 붓을 꺾고 낙향해버린다. 그러나 일제는 그를 그냥 놔 두지 않는다. 시골에까지 쫓아와서 일제치하에 협력하도록 강권한다. 어쩔 수 없이 문인보국회에 나가 협력하게 된다. 한편, 김은 식구들의 상계 때문에 신문사를 그만두지 못하고 일제의 지시에 따라 친일적인 신문제작에 협력한다. 이 양인의 삶의 방식과는 달리 윤은 신문사를 사직했을 뿐 아니라, 낙향하여 일제의 문필활동을 중지하고 은둔생활을 한다. 해방이 되자 세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 나와 김은 당연히 신랄한 비판을 받게 된다. 치사하게 산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대해서 심한 혐오감을 갖는다.⇒이 작품은 지난날 자신의 대일협력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다. 대일협력을 했던 작가들이 작품을 통해 자신의 문제를 다룬 것은 이 작품이 가장 깊이 있고 진지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채만식은 1938년말 이광수를 비롯한 작가들이 내선일체 론을 주장할 때 굴하지 않았았으나 1940년 중국에 친일 정권인 신남경정부가 들어서자 일본을 정점으로 하는 새로운 동아시아 질서의 도래를 확신하게 된다. 이후 새로운 질서의 창출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결심하여 '나의 꽃과 병정' '혈전' '위대한 아버지의 감화' '여인전기' 등 군국주의있다.
참된 지성의 강단-「끝내 세상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를 읽고....한국시가론 국어국문학과 2004010058 양석원Ⅰ. 서 론『끝내 세상에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는 17세기의 조선의 명가 4가문 즉, 안동 청음 김상헌 가문,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가문, 한산 이씨 아계 이산해 가문, 연안 이씨 월사 이정구 가문이 어떤 과정을 거쳐 명가로서 자리잡게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명가가 된 이후의 모습은 어떠하였는지에 대하여 다룬 책이다. 수업시간, 송강 정철을 통해 조선 양반의 모습과 그들의 사상, 그리고 그들의 혼맥과 경제적인 바탕에 대해 배운 터라 이 책은 나에게 있어 그 내용을 좀 더 심화하여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이 책의 구성과 대략적인 내용을 살펴보자면 다음과 같다.「제1부, 충절과 학문으로 이룬 명가의 전통」은 ‘안동 청음 김상헌 가문’의 내용으로 안동 김씨가 고려시대부터 시작해서 점차 조선시대 명가로 되어가는 과정과 가문의 대표자 격인 선원 김상용 · 청음 김상헌의 삶의 모습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 가문이 맺은 화려한 혼맥과 김수항의 6아들(6창)에 대해 서술하고 있으며, 안동김씨의 중요한 거점인 석실에 대해서도 살펴보고 있다.「제2부, 타협하지 않는 지성의 강단」은 ‘반남 박씨 서계 박세당 가문’에 대한 내용으로 향인이었던 박씨가 사림의 주역으로 등장하기까지의 과정과 ‘서계 박세당’의 모습, 그리고 그의 수락산 은거와 그의 자녀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제3부, 출사와 은거의 조화로 이룬 명가의 전통」에서는 ‘한산 이씨 아계 이산해 가문’에 대한 내용으로 한산 이씨의 연원과 아계 이산해의 터전을 마련해준 성암 이지번 · 토정 이지함의 이야기, 아계 이산해의 모습과 자녀, 그리고 한산 이씨 가문의 예산 이거등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제4부, 3대 문형의 문한 명가」는 ‘연안 이씨 월사 이정구 가문’의 이야기로 북방민족의 시조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생원 ? 진사시 ? 문과에 3장원을 한 이석형과 글로써 나라를 구한 ‘월사 이정구’의 모습, 그리고 그의 두 아들 이명한과 이소한에 대해 살펴보고 있으며 8상이라 불리는 그의 여덟 손자들에 대해서도 서술하고 있다.나는 위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이들이 17세기 대표적인 명가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공통적 배경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또한 자신의 가문을 명가로 자리 잡게 만든 인물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우리들이 반성해 볼 점은 없는지, 본받을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 론1. 학문적 소양조선시대의 수많은 명가중 이들 4가문의 공통점은 바로 기본적으로 학문적 소양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그 가문들의 대표자들(김상헌, 박세당, 이산해, 이정구)등의 학문적인 소양은 그들의 후손들이 학문에 더욱 정진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었다. 나에게 가장 감탄이 되었던 사람은 바로 ‘월사 이정구’였다. 명나라 사신 정웅태의 잘못된 보고로 인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을 때, 나라의 대표 사신으로 명나라에 가서 하룻밤에 39통의 변정문을 지어 올리고 이를 통해 신종황제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한다. 자신의 글을 통해 한 나라의 왕의 마음을 변화시켰다는 것은 그가 쓴 글의 문장력과 호소력이 정말 대단 했을 것을 알 수 있다. 타인을 문장으로서 설득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알기에 그의 집념과 의지 그리고 학문적 소양은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비단 ‘월사 이정구’ 뿐만 아니라 석실에서 학문에 정진하며 「설교집」, 「길광영우」, 「호천백」등을 지어내며 후사 송시열 ? 박세채 등을 키워낸 ‘청음 김상헌’ 과 식년 사마시와 증광 별시에 합격하며, 관계에 입문한 이후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고 후일 석천에 은거하며 수많은 문생들을 배출한 ‘서계 박세당’도 그 학문적 위상에서는 결코 위시할 수 없는 인물들 일 것이다.2. 화려한 혼맥과 풍부한 경재력이들의 학문적 성취는 자연스레 이들 가문의 자손들이 정계로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었고 이는 명가의 가문으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점점 굳혀져 간 이들의 입지는 이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형성할 수 있게 하였다. 이후 이들은 이러한 기반을 통해 서울 근경에 토지를 사들여 경작하면서 그들의 제반 영역을 넓혀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들이 풍부한 경제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재산의 대물림과 화려한 혼맥 때문이었다.우선 안동 김씨 김상헌의 선대인 김번 ? 김생해 부자는 대단한 재력가로, 이들은 재산의 대물림을 통해 풍부한 경제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김번이 세조조에 국사를 지낸 학조의 양자가 되면서 학조의 재산을 물려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안동 김씨 가문이 큰 경재력을 지니게 된 것이다. 한산 이씨 또한 이산해의 손자인 이구의 아내 전주 이씨의 예산 복거와 예산에서의 가정경영을 통해 경재적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게 되었다.다음으로 명가의 가문들은 화려한 혼맥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혼맥을 통해 명가로 발돋움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명가의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청음 김상헌’의 가문을 보면 청음의 5대조 김계권은 대제학 권맹손의 사위가 되어 자손들에게 출세의 길을 터 주었다. 현직 당상관(堂上官)의 자손은 과거를 보지 않아도 관리가 될 수 있는 문음(門蔭)의 혜택이 아들 손자는 물론 사위 외손에까지 미쳤기 때문이다. 김계권의 손자 김생해는 성종의 아들인 경명군 이침의 사위가 돼 훗날 안동 김씨 집안이 잇달아 왕실혼을 하게 되는 길을 열었다. 청음의 아버지 김극효는 좌의정 정유길의 사위가 되어 집안을 사림의 주류로 이끌었다.‘아계 이산해’의 가문의 큰 역할을 했던 전주 이씨 역시 성종의 아들 이성군이 그녀의 고조부였고, 아버지 순녕군 이경검은 선조의 몽진길에 시종하여 호성공신에 올라간 명문있는 가문의 딸이었다.3. 청렴과 효명가의 사람들은 정계에서의 높은 지위와, 경재적인 부, 그리고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청렴하였으며 자신의 집안의 어른들을 성실히 모시었다.‘월산 이정구’의 아들 이명한이 2년동안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아버지의 이장지를 찾아 다닌 것이나, 이단상이 자신의 서모를 지극정성으로 모시어 서모가 비록 좋지 못한 행동을 하여 가족들을 괴롭혔고, 죽을 때도 전염병으로 죽어 장지에 가길 꺼려했을 때도 장례에 최선을 다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영향으로 그의 아들 희조는 부임지에 반드시 자신의 서조모를 모시고 다니며 섬겼다고 한다. 이를 통해 이시대 명가의 자제 들이 얼마나 효를 다해 부모를 대했는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