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경제학의 변천에서 본 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제1절 서설주류경제학과 비주류경제학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를 정립하기 이전에 무엇이 주류경제학이고 무엇을 비주류경제학이라 하는지에 대해서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겠다. 이하에서는 위에서 살펴보았던 경제사상의 흐름을 다시 한 번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주류와 비주류의 경제학의 문제점과 현대 경제학의 과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이상적인 경제학은 어떠한 경제학인지에 대하여 나름대로의 의견을 피력하고자 한다.제2절 주류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의 의의주류와 비주류를 사전적으로 정의하자면, 주류(主流)는 사상이나 학술 따위의 주된 경향이나 갈래 내지 조직이나 단체 따위의 내부에서 다수파를 이르는 말이고 비(非)주류(主流) 내지 반(反)주류(主流)는 사상이나 학술 따위의 중심에서 벗어난 갈래 내지 사상이나 학술 따위의 중심에서 벗어난 갈래라고 정의된다. 이와 같은 사전적 정의를 경제학에 적용하자면, 당시의 강대국에서 어떠한 경제학이 주창되었고 그것이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으며 실제로 시대 상황에 반영되어 많은 국가들에 의하여 수긍되었다면 그것을 곧 주류경제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와 상반되는 경제학을 비주류 경제학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전제하에서 현대 경제사상은 크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두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는 주류경제학, 사회주의는 비주류경제학이라 할 수 있겠다.제3절 경제사상사의 흐름 정리지금까지 살펴보았던 시대적 흐름에 따른 경제사상의 변천을 요약해보자면, 본격적으로 경제사상적으로 의미가 있는 시기인 ① 초기자본주의의 형성기로서 상업자본주의 또는 경찰국가, 무역차액주의를 명제로 하는 “중상주의”② 자연적인 질서에 기초하여 농업중심의 이념을 추구한 “중농주의” → ③ 자연법사상과 자유방임주의를 이념으로 한 “자유방임주의 또는 자본주의의 고전학파 경제사상” → ④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가치를 주는 이념으로 기존의 자유주의, 개인주의에 반대하고 사회이나 학술 따위의 중심에서 벗어난 갈래라고 정의된다. 이와 같은 사전적 정의를 경제학에 적용하자면, 당시의 강대국에서 어떠한 경제학이 주창되었고 그것이 많은 경제학자들에 의해서 받아들여졌으며 실제로 시대 상황에 반영되어 많은 국가들에 의하여 수긍되었다면 그것을 곧 주류경제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이와 상반되는 경제학을 비주류 경제학이라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전제하에서 현대 경제사상은 크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두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는 주류경제학, 사회주의는 비주류경제학이라 할 수 있겠다.제4절 주류경제학의 변천고전학파는 아담 스미스, 리카도, 밀 등이 중심이 되어 자유방임주의 원칙하에 사유재산, 자유 시장, 기업의 자유, 자유경쟁원리, 최소한의 정부 등을 주창한 경제사상이다. 이와 같은 고전학파의 사고는 자본주의로 명명되고 있고 자본주의는 주류경제학으로 생성되었다. 고전학파 경제학은 수없이 많은 학자들을 통하여 새로운 이론의 생성, 기존 이론의 발전 및 퇴출, 진보하는 과정을 겪어 왔고 하나의 확고한 경제사상으로 정립되었다. 자본주의는 오늘날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경제사상이고 오늘날까지 발전되어 오면서 경제성장과 사상발전을 선도하고 있다.자본주의 즉, 주류경제학은 합리적 경제주체의 개인적 이익추구가 시장 가격에 의해서 자동 조절된다는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의 원리에 기초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고전학파 경제학, 신고전학파 경제학, 신고전학파종합으로 이어져 온 주류경제학의 기조는 합리적 경제주체의 개별적인 이익 추구가 시장의 가격기구에 의해서 잘 조정되어 조화로운 사회를 가져올 것이라는 신뢰에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신뢰의 밑바탕에는, 사회는 의사표시가 자유로운 각 개인이 기능적으로 얽혀져 있으므로 각 개인의 행동을 관찰한 결과를 산술적으로 합하면 경제의 운영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한편, 주류경제학의 전개과정은 주요 분석대상인 자본주의 변화과정과 그 맥을 같이 하면서 전개되었다다. 제도학파는 급진파, 제도주의파, 종속학자 등에게 사상적 영향을 미쳤다. 이것은 현재까지 비주류경제학이라고 명명하고 있다.비주류경제학은 경제주체의 개인적 이익추구가 시장의 가격기구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조정되어 조화로운 사회를 가져오게 된다는 주류경제학의 기초적인 확신을 비판한다. 비주류경제학은 주류경제학에 대하여 그 기본전제 및 현실적합성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반론을 계속하여 왔으며 그 반론은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다. 비주류경제학은 현대 마르크스주의,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급진주의, 중도좌파주의, 신제도주의, 종속주의, 제3의 길, 진보주의, 개혁주의, 뉴 레프트 운동 등 다양한 경제사상으로 발전?계승되고 있다.제6절 사견 - 조화와 중용(中庸)의 살아있는 경제학주류경제학과 비주류경제학, 두 경제사상의 이념과 사상논쟁은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등 그 체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의 현실 경제를 비교해 볼 때, 주류경제학의 분명한 승리임은 여러 가지 제반사실을 통하여 명확하게 확인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두 경제사상이 차이를 드러낸 사건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탈냉전과 탈냉전 이후의 시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단적인 예로 멀리 볼 것도 없이 동족간의 전쟁이었던 6?25 전쟁 이전에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었던 북한과 현재의 북한의 경제 실정을 살펴보면 단숨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에 대한 이념 논쟁은 계속 되고 있고, 이러한 논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예측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수백 년간 이어져온 이념논쟁에서 승리하였음은 분명하고 우리는 이를 주류경제학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필자 역시 주류경제학인 자본주의 경제사상의 우월성은 당연히 알고 있고, 기본적으로 주류경제학의 이념이 타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의 내용을 감안하였을 때 과연 자본주의 즉, 주류경제학은 언제까지 주류경제학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나아가 이러한 의미에서 현대의 경제사상에서는 양자의 구분이 필요할 지가 의문 이들 또한 비주류 경제학으로 정착하게 될지도 모른다.첫 번째, 어떠한 학문이든 어떠한 경제사상이든 간에 절대불변의 완벽한 경제이론 및 사상은 없었다.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존재하였고 그들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이었으며, 당대에는 완벽해 보이는 이론(異論)이 없어 보이던 최고의 경제학 이론들을 창설하였다. 그러나 그들의 이론 역시 많은 맹점들을 표출하였고, 그에 대한 비판과 반성으로 또 다른 경제이론이 등장하는 과정이 경제학의 역사에서는 끊임없이 계속되어 왔다. 주류경제학의 시조인 고전학파 역시 비주류경제학의 끊임없는 비판과 동시에 그들의 기본 이념을 인정하는 다른 주류경제학자들로부터도 공격을 받았다는 점을 본다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다시 말해 수많은 경제학적 변수들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설명할 수 있는 경제사상은 존재할 수 없으며 새로운 변수가 생길 경우에는 또 다시 수정과 변천의 과정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는 나아가 비록 현재에는 주류경제학의 지위를 점하고 있지만 가까운 미래에는 비주류경제학이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로 지금의 비주류경제학이 주류경제학의 이름으로 명명될 지도 모르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두 번째, 주류경제학과 비주류경제학은 스스로 내포하고 있는 문제점으로 인하여 그것이 태동했던 시기의 고유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는 현대 경제사회에서는 순수한 의미로 적용될 수 없다.주류경제학에서는 무엇보다도 실업, 물가, 성장, 분배, 차등인정, 사회복지 등 다양한 측면에서 불안요인, 위기상황과 공황, 오일쇼크, 자원부족, 남북문제 등의 심각한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자유기업과 경제성장을 우선하는 정책으로 인한 독점발생과 독점이익, 빈부격차에 대한 비판적 논란이 항상 제기되고 있다.비주류경제학 역시 모든 경제인구의 절대적 빈곤화, 동기 부여 상실 등으로 인하여 국가 통제경제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의 생산물에 대한 가치계산의 어려움으로 인하여 그 한계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이처나 성장이론은 기업성장이론으로 압축되어 노동의 대가는 억제되며 자본장비의 자동화, 기계화는 노동을 기계로 대체함으로써 실업을 증가시키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상기한 바와 같이 경제성장 지상주의정책이 자원의 남용, 환경파괴에 의한 지구 온난화 현상의 심화, 생태계 파괴 등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④ 경제현상의 합리적인 측면과 비합리적인 측면을 조화시켜야 할 것이다. 경제학은 원래 합리적 가치기준에서 출발하지만 사상적 가치기존, 사회적 규범을 무시한 경제학은 누구를 위한, 무엇 때문에 연구하고 발전시켜야 하는가의 의문을 제기한다. 경제학은 경제학만으로 자기완결은 불가능하다. 계량적 모형만으로 쉽게 구성할 수 없는 가치기준, 심리적 요인, 사회적 집합으로서의 인간의 욕구 등 다양한 비합리적 요인이 결합되지 않은 경제학은 이론은 완벽하더라도 생명은 상실하게 된다.)⑤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는 그것이 발전하면 할수록 시장실패와 정부의 실패, 나아가 정부의 실패를 낳을 위험을 안고 있다.⑥ 지금까지 자본주의 경제사회는 산업혁명의 결과로 오랫동안 산업사회를 이루어 발전해 왔다. 그러나 정보통신산업 등의 급속한 발전은 산업사회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혁시키고 있는 것이다. 산업사회에서는 자본과 노동이 가치와 부를 창출하는 원천이었으나 후기 산업사회 즉 정보화 사회에 접어든 이 시점에서는 자본과 노동보다도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정보, 지식, 문화 등의 요소이다. 이러한 경제생활양식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이를 규명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새로운 경제학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21세기를 맞아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응해 나갈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을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네 번째, 위에서 언급한 문제를 감안한 현실 사회에서는 실제로 주류경제학과 비주류경제학은 과거의 이념과 사상 논쟁에서 벗어나 상호간의 대립적인 양상보다는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현대의 경제사상은 모든 문제를 주류경제학의 자유방임식의 시장경제논리에 의해서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 목 차 ★제1장 원시시대와 고대의 경제사상 - 2 -제2장 중세의 경제사상 - 4 -제3장 중상주의의 경제사상 - 5 -제4장 중농주의의 경제사상 - 8 -제5장 근대경제학 이전의 변천 - 10 -제6장 근대경제학의 변천 - 28 -제7장 현대경제학의 변천 - 42 -제8장 자본주의 이후의 체제 - 52 -제9장 지식 및 정보화시대 이후의 사회 - 53 -제10장 제1차, 2차 세계대전의 요인과세계대전 후의 경제학의 변화 - 54 -제11장 제1차, 2차 오일쇼크의 요인과 경제학의 변화- 56 -제12장 경제학의 변천에서 본주류와 비주류에 대한 주관적인 견해 - 57 -제13장 마치며 - 작성소감 - 63 -참 고 문 헌 - 64 -제1장 원시시대와 고대의 경제사상제1절 원시시대의 경제와 사회원시인의 생활상은 인류학 또는 고고학 등의 연구 성과에 의해서 대략적으로 추론되고 있으나 여전히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이처럼 원시 사회에 관한 연구의 부재로 인하여 시대적 변천에 따른 경제학의 흐름을 고찰하는 측면에서는 원시 사회의 경제생활은 큰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원시 사회에서도 엄연히 경제생활이 존재하다는 점에서 이하에서는 경제사상적인 측면보다는 원시 사회의 경제생활을 위주로 개괄적으로만 서술하고자 한다.원시 사회를 정의하자면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하여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고대계급사회에 의하여 대체되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연대적으로 말한다면, 대략 기원전 4000년 이전의 시기를 말하며, 경제적 구조를 기준으로 한다면 무계급사회가 사유재산의 발생, 노예의 사용, 씨족적인 귀족의 발생 등에 의해 계급사회로 이행되기 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원시시대의 인간들은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이동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주로 사냥과 열매 채집을 통하여 먹을 것을 얻었기 때문에 끊임없이 옮겨 다니며 살 수밖에 없었다. 인류의 긴 역사에서 요즈음처럼 한 곳에 정착해 경제활동을 하는 생활방식이 시작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었다. 즉 신석기 시대에화폐적 시장경제의 발전에 기인한 것이다.4) 이상의 바탕 위에서 영국경제는 1760년부터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 시작된다. 이것은 많은 경제적 기초 조건의 발전과 함께 면방직, 면방적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증가한 데에 기인하고 있다.면방직과 방적에 관련된 최초의 발명은 1738년 케이의 직조기이며, 그 후 실의 수요가 급증하자 하그리브스가 제니 방적기를 만들고 이어 아크라이트가 이를 개량하였으며,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것을 계기로 이것이 방적, 방직기에 응용되어 동력화됨으로써 영국의 면직 공업은 급속하게 발전하였다.이러한 발전은 다시 전산업에 동력화가 진행되면서 산업혁명은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공장제공업이 광범하게 도입되면서 생산이 급격하게 증가했으며 그것은 식민지 시장 확대와 더불어 영국 경제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5)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계층분화가 심화되었다. 산업자본주의체제의 중심에서 자본을 축적한 자본가들은 귀족, 농장 지주, 상인을 압도하였으며 이것은 새로운 지배계급으로 등장하였다.한편 산업혁명과정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도시의 자영업자들은 노동자로 전락했으며 제2차 인크로저 운동의 여파로 농업에서 밀려난 사람들도 도시로 유입되어 공장노동자로 전락했다. 그러나 자본가들은 이윤추구에 치중한 나머지 공장노동자들을 빈궁한 상태에 빠지게 했다. 결국 경제발전은 산업혁명이 지속된 70여 년간 비약적으로 성취되었음에도 빈부격차가 더욱 확대되어 계급간의 갈등은 심화되었다.물론 이러한 계급간의 갈등은 스미스가 죽은 후 산업혁명이 완성되던 1830년대에 인식되기 시작한 현상으로, 그 이전에는 자본주의 제도의 운동법칙과 각 변수 간의 상관관계를 체계적으로 분석한 것이 고전경제학의 골자였다. 계급간의 갈등과 주기적으로 나타난 1820년대 이후의 공황은 리카도조차 우울하게 만들었으며 밀에 이르러서는 전통적인 고전경제학 이론으로서는 도저히 대응할 수 없게 되었다. 노동운동의 격화와 1848년의 공산당 선언은 경제이론 그리하여 경제학은 한 민족에게 고유한 경제생활의 법칙을 말하는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다.(2) 경제 발전단계설경제학이란 제민족의 경제적 발전법칙의 학문이라는 그의 견해가 경제발전단계설의 기초를 이룩하였으며, 그는 교환형태를 기초로 하여 자연경제, 화폐경제 및 신용경제단계로 분류하였다. 자연경제는 경제생활에 있어서 미개?야만과 궁핍을 의미하고 있다고 하였다. 또한 그는 화폐경제의 시대는 경제생활에 있어서 자유와 소유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자연경제에 비하여 경제생활에 있어서 인류의 전진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동시에 거기에서는 자본과 노동자의 대립이자 노동계급의 빈곤이 발생한다고 하였으며 그리하여 이 대립과 모순을 지양하는 것이 신용경제라고 주장하였다.3) 크니이스(Karl Gustav Adolf Knies, 1812~1898)(1) 역사적 방법의 입장)크이니스에 따르면 경제학의 연구범위 또는 영역은 민족생활에서 뚜렷이, 그리고 주요하게 나타난 국민경제이다. 국민경제학의 대상으로서의 국민경제란 하나의 국민생활의 경제적 측면이다. 이 때 먼저 국민이란 국민성과 역사적 체험에 의하여 항상 특유의 유전을 받고 또한 국민적으로 일체된 전체이다. 롯셔가 국민경제학의 방법을 철학적 방법과 역사적 방법으로 구별했는데 크이니스는 이 구별을 적당하지 않다고 생각하였다. 철학적 방법은 철학자에 따라 현저히 상이하며, 역사적 방법은 국민경제학의 방법 개념으로서는 지나치게 넓다고 주장했다. 크이니스는 과거 및 현대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국민경제학자는 역사적인 국민생활의 포괄적인 연구에 의해서만 틀린 원인을 현상에 돌리거나 개개의 끝없이 협력하는 힘을 과대평가하고 다른 힘을 그것의 가치 이하로 평가하거나, 또 개개 원인의 일정한 결합의 결과를 간과하거나 하는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할 수 있다고 서술했다.(2) 금속주의)크이니스는 화폐학설에 있어서는 금속주의를 주장했다. 화폐의 소재가 왜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재화가 아니면 안 되는가 라는 이유로서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여러 가지 지므로 실업가들은 자원을 잘못 관리하고, 이윤을 높이기 위해 기술적?생산적 과정을 방해하기까지 한다. 반면에 기술적 과정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노동자?기술자의 목적은 실질생산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단과 기계를 발명하고 장려하였다. 그들은 실업가-자본가를 위해 일을 하지만 결국 그들은 기업의 절대적 낭비를 알게 된다고 베블렌은 주장하였다.그의 순환론에 의하면, 불황의 요인들은 위기를 피하려는 실업가의 의도에 있다. 산업의 합병은 총자본화의 감소를 회피할 목적 때문에 이루어진다. 그에 의하면 실업가들은 정부의 규제적 장치를 획득하려고 한다. 그는 이러한 반대중적 조직화된 “사보타지”를 비난하였다. 이러한 사보타지는 기업에 의한 효율의 양심적 감퇴를 초래한다. 기업과 조직화 된 노동은 생산적 과정을 전복시키기 위해서 공동보조를 취한다. 그러면 기술적 이해관계의 우세에 의한 변화가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 기술자와 산업경영자가 그 핵심이 되었다. 베블렌은 이러한 형태의 사람들이 인구의 1% 미만을 대표할지라도 그들은 금융자본주의의 산업질서를 변경시킨다고 믿었다.2) 콤먼즈콤먼즈(John Rogers Commons, 1862~1945)는 노동자를 후원하고, 반트러스트 및 공공사업법규를 제정하였는데 이 법률들은 연방정부법률의 모델이 되었다. 그는 인위적 제도의 운영에 초점을 둔 제도주의자였는데, 제도들이 사유재산, 법률 그리고 법원의 판결에 의해서 어떠한 영향을 받는가에 집중하였는데, 『자본주의의 법규적 기초』(The Legal Foundation of Capitalism, 1924)에서 콤먼즈는 법률과 재판을 경제체제의 제약요소로 보았다.)3) 미첼미첼(Wesley Clair Mitchell, 1874~1948)은 화폐, 가격 및 소득과 같은 단순한 경제적 개념들을 계량화하여 제본스의 선구자적 가격지수의 구조와 물가의 연속성의 통계적 연구를 소생시켰다. 그는 『경기순환』(Business Cycles, 1913)에서 채권가격과 수익, 임금, 상품가격, 통화량 및 통화의윤의 설명에 의하여 이룩되었다. 그는 한계생산력설을 비판하면서 이것이 재화의 희소성에 입각하지 않고 보충원리의 하나인 대용의 원리에만 근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희소성의 원리에 의한 수요공급관계의 고철에 기초를 둔 분배이론을 구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3) 경기변동에 관한 이론캇셀은 경기변동을 발전적인 경제에 필연적인 현상으로서 파악하고, 경제의 확장은 새로운 발명의 보급이나 후진국의 개발을 동반하고 방대한 고정자본설비의 확대로 나타났으며 이것이 그의 경기이론에 있어서는 변동의 원동력으로 된다는 것이다. 이자율의 등락으로 고정자본설비의 원료가격의 등락, 그리고 임금의 등락 등을 경기변동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보고 공황은 생산과잉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생산되어진 실물자본의 인수에서 융통할 수가 있는 절약자본량의 과대평가를 의미한다고 설명하였다. 붐(Boom)기는 고정설비생산이 특별히 증가되는 때를 말하며, 불경기 시기란 이 생산수준이 종전보다 못할 때를 말하는 것이다.4. 린다알1) 균형이론)린다알(Erik Robert Lindahl, 1891~1960)은 다시 왈라스의 일반적 균형방정식에 “예상”의 요소를 도입함으로써 동학적인 일반적 균형방정식을 수립하려 시도하였다. 그는 빅셀의 이론을 현실에 더욱 접근한 형태로 재구성하려 함과 동시에 경제이론의 가장 강고한 출발점으로 일반균형이론을 왈라스적인 형식적 완전성에 있어서 그는 물가를 소비재물가로 해석하고 물가의 변동을 하는 데 E(T-S) = PQ 라는 기본방정식을 사용하고 있다.2) 금리저하의 효과)금리저하의 즉시적 효과에 대하여 첫째, 금리의 저하는 모든 자본재가격을 등귀시키며 특히 그 존재기간이 장기인 자본재가격의 등귀율은 고율이다. 이는 투자에 자극을 주고 총명목소득의 증가를 가져온다. 둘째, 금리의 저하는 재고품의 증가를 용이하게 하고 소비재량의 감소에 작용한다. 그리고 셋째는, 가계에 있어서 저축률은 금리의 저하에 의하여 저축률의 저하에 작용한다고 주장하였다.5. 뮈르달(Kari Gunnar )
Ⅰ. 볼링의 의의와 발전 - 2 -1. 볼링이란 무엇인가2. 볼링의 역사1) 케겔(Kegel)넘어뜨리기2) 현대 볼링의 모체 - 나인 핀 볼링의 발명3) 텐 핀 볼링4) 위대한 혁신 - 세트의 자동화5) 볼링의 국제화Ⅱ. 볼링 용구 및 용어의 정리 - 4 -1. 볼링공1) 재질 및 규격2) 볼의 밸런스3) 구 조4) 볼의 선택2. 볼링화3. 볼링 핀(Pin)1) 핀의 재질2) 핀의 규격3) 핀의 배열Ⅲ. 볼링경기의 에티켓 - 8 -1. 경기 전의 예절2. 경기 중의 예절3. 경기 후의 예절4. 관중과 응원에 관한 예절Ⅳ. 볼링 경기의 규정 - 10 -Ⅴ. 스코어 계산법 - 10 -1. 스코어 부호2. 스코어 계산법3. 계산법의 실제4. 계산법의 예시Ⅰ. 볼링의 의의와 발전1. 볼링이란 무엇인가볼링은 단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규정된 길이와 너비를 가진 마루(레인:lane) 끝에 세워진 술병 모양의 10개의 핀을 비금속성 공을 굴려서 쓰러뜨리는 실내경기라 할 수 있다. 자세히 말하면, 진자운동의 원리를 응용하여 볼을 굴림으로써 목표지점에 놓여 있는 핀을 쓰러뜨리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운동으로, 어깨를 축으로 하는 팔과, 볼의 진자운동, 리듬있는 동작과 스피드, 그리고 그에 따른 역학적인 원리가 복합된 스포츠이다.)2. 볼링의 역사볼링은 매우 현대적인 경기여서 그 역사가 짧을 것으로 생각되기 쉬우나 사실은 현존하는 스포츠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볼링의 기원은 명확하지 않으나, 공을 굴려서 물건을 쓰러뜨린다고 하는 인간의 파괴본능에 의한 오락은 옛날부터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볼링의 기원은 태초로 더듬어 올라가면 아담과 이브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도 볼 수 있다. 원시시대의 인류는 돌을 무기로 해서 던지는 동작으로 수렵을 했다. 이것은 목표를 향해서 돌을 던진다는 경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것이 바로 볼링의 태초의 원조라 할 수 있다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런던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대리석의 핀과 석재로 된 공이 볼링의 근원으 유럽에서는 그리스도교들이 카톨릭 교도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교도들은 자유로운 신천지를 찾아서 콜롬부스가 방문한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 이 때 나인 핀 볼링도 함께 미국으로 이주하게 되었다.3) 텐 핀 볼링이때부터 볼링은 미국 전 지역으로 퍼져 점점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지만 1800년대에 들어와 게임에 도박성이 성행하여지면서 청교도인들의 맹렬한 반대에 부딪혀서, 1841년 뉴욕 주를 시초로 코네티컷주 등 한때 몇몇 주에서는 전면적으로 금지를 당하게 된 때도 있었다.)이어서 미국 전 연방이 9핀 경기 금지령을 선포함으로서 미국에서 9핀 게임은 한동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그러나 볼링에 관심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개혁의 결과로 핀 수를 9개에서 10개로 늘리고 세트하는 방법도 정삼각형으로 바뀌면서 볼링붐을 일으켜 법의 제한을 받지 않고 순수 스포츠로 다시 성행하게 되었다.1841년에는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의 지하실에 최초의 볼링센터가 개설되기에 이르렀다. 다음해에는 NBA(National Bowling Association)가 설립되어, 레인의 길이와 볼의 크기 등 여러 가지 경기규칙을 통일하였다. 그 후 1890년에는 아메리카 아마추어 볼링연맹이 발족하여, NBA의 업무를 이관하였고, 1895년 9월9일 뉴욕에서 처음으로 미국 볼링 협회(ABC, America Bowling Congress)가 설립되어 볼링의 저변 확대가 모색되었다.) 볼링 경기 규칙이 통일 되고 볼과 핀, 레인 그 밖의 용구에 관한 세칙이 제정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서도 많은 군인들이 볼링을 배웠고, 공장 노동자들도 가까이에 있는 볼링장에 모여들게 되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볼링장에 간다 하여서 볼링을 즐기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 시절엔 단지 ' 핀 보이' 라고 불리는 사람들만이 핀을 세팅했었기 때문이다.4) 위대한 혁신 - 세트의 자동화볼링의 그러한 맹점은 1951년 그간 많은 노력과 연구의 결과 핀을 세트하고 볼을 되돌려 보내는 기계의. 1970년대에 폴리에스테르(polyester), 1980년대에 우레탄(urethane)이 개발되어 쓰이다가, 최근에는 볼의 내부는 중심부에 볼의 무게를 조정할 수 있는 물질(합성고무와 코르크 또는 비소)을 넣고 무게덩이 중심부인 웨이트 블록은 비교적 밀도가 높은 물질을 넣어) 지공을 했을 때 생기는 무게 손실의 보충하고, 볼의 외부는 탄력있는 견고한 비금속성 합성물인 우레탄, 에폭시, 리-액티브,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어진다.)볼링공의 무게는 16파운드(약 7.2kg)를 초과할 수 없고, 그 이하는 어느 것을 사용해도 무방하다. 원둘레는 27인치(약 68.58cm)로 직경이 일정해야 하고 공의 표면에는 어떠한 이물질도 부착할 수 없으며, 볼의 경도는 72듀로미터(durometer) 이상의 강도를 가져야 한다. 공인 볼의 크기는 어느 곳을 재 보아도 직경 21.5cm,둘레 68.58cm인 완전한 구형체이어야 한다.2) 볼의 밸런스볼의 무게의 밸런스는 구질에 크게 영향을 주게 되므로 규격은 일정하게 정해져 있으며, 공인 경기에서는 투구하기 전 엄격하게 확인한다. 볼에는 3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여기에 엄지, 중지, 약지를 집어넣어 잡는다. 지공이 있는 쪽에 보통 메이커와 마크가 새겨져 있으며, 이 부분을 볼의 머리 부분이라고 하고, 반대쪽의 아래 부분보다는 약간 무겁게 되어 있다. 이 무게의 차를 톱 웨이트라고 하는데 톱 웨이트가 크면 클수록 볼이 한층 회전과 스피드가 더해져 핀을 맞히고 강한 핀 액션을 일으키는, 날카롭게 파고드는 볼이 된다. 이러한 이유에서 톱 웨이트를 마음대로 크게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지공을 한 후, 톱 웨이트는 3온스(85.05g)이내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3) 구 조70년대까지의 볼링공은 외피(cover stock), 코어(core), 웨이트 블록(weight block)의 세 층을 가지는 3피스(piece)볼이 전부였으나, 80년대에 들어서 볼의 파괴력을 높이기 위한 연구가 계속됨에 따라 소재가 다양해지고 구조도 복잡해 졌다. 둥게차이는 112g이내 이어야 한다.)3) 핀의 배열[그림 1]은 "10 PIN GAME"에서 볼링핀을 레인 상에 배치시키는 방식을 나타낸 것으로, 아랫부분은 레인시작부의 목표점(Aim Spot)이고, 윗부분은 레인 끝 부분에 볼링핀이 배열되어 있는 모습이다.레인 끝에 핀을 새워 놓는 부분을 핀 덱(pin deck)이라 하며 어프로치를 기준으로 할 때 역삼각형의 형태로 핀들이 배열된다. 맨 앞에 있는 핀을 헤드 핀이라고 하며 1번이고, 다음 줄의 왼쪽부터 차례로 각 핀에 번호가 붙여지게 되며 10번 핀은 제일 오른쪽 끝에 위치하게 된다.이웃한 핀끼리의 거리는 핀의 중심에서 중심까지 30.48cm이고, 핀의 표면 중 볼록한 부분에서 볼록한 부분까지는 18.38cm이다. 따라서 볼의 지름이 21.5cm 이므로 평행으로 서있는 두 개의 핀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양 핀을 3.5cm 이내로 맞혀야 할 만큼 정확한 각도가 요구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림 2,3 참조])스트라이크 코스는 오른손 볼러라면 1번 핀과 3번 핀의 사이, 왼손 볼러의 경우에는 1번 핀과 2번 핀의 사이에 볼이 진입하도록 컨트롤 하여 이루어진 스트라이크를 ‘포켓 스트라이크’ 라 하고, 반대의 경우는 ‘블루크린 스트라이크’ 라고 한다.)[그림 1][그림 2])핀30.48cm핀볼21.5cm[그림 3]4. 레인(lane)의 구조와 명칭)단위 : 미터[그림 4]1) 레인(Lane) : 볼이 굴러가는 마루를 레인이라고 하는데 폭은 106cm, 39쪽의 나무판자가 세로로 깔려 있다. 레인의 길이는 파울라인에서 1번 핀까지가 18m 28cm 인데, 볼을 효과적으로 굴리기 위하여 스폿이 있다. 레인 표면에는 레인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하여 파울라인에서부터 약 25~45피트까지는 오일이 칠해져 있고, 전후좌우를 모두 수평으로 깎아서 울퉁불퉁한 곳이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2) 어프로치(Approach) : 레인과 연결된 마루로서 경기자가 볼을 들고 스텝을 밟는 동작을 하는 장소이다. 길이는 4m 57cm 이상이면 되며,해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한다.2) 투구는 핀이 완전히 세팅된 다음에 하여야 한다.3) 레인에서 볼을 투구할 때에는 좌우측 레인에 투구하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한다.좌우 옆 레인에 사람이 올라가 있을 때에는 투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레인에 올라가야 한다. 처음 볼링을 접하는 사람들이 가장 범하기 쉬운 실수이다.(1) 자기보다 먼저 투구 자세를 취한 사람에게 양보한다.(2) 동시 투구 동작에 들어간 경우는 오른쪽 사람이 우선한다. 만약에 동시에 어프로치에 올라섰을 때는 가볍게 목례 후 우측 볼러에게 양보한다.4) 어프로치와 볼링화에 물기 등 이물질이 묻지 않도록 조심한다.어프로치와 볼링화에 이물질이 묻을 경우 어프로치에서 슬라이딩이 안 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브레이크가 걸려 무릎 등 관절에 무리를 줄 뿐만 아니라 중심을 잃게 되어 큰 부상을 초래할 수 있다. 그래서 항상 어프로치와 신발 바닥에 물기 등 이물질이 묻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하고, 이물질이 묻은 경우에는 즉시 닦아내고 파우더 등으로 정비한 후에 경기에 임하여야 한다.5) 함부로 어프로치에 들어가거나 옆 어프로치에 들어가지 않는다.6) 좌우측 레인 볼러들의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하여 볼을 쥔 채 어프로치 위에서 오래 서 있거나 볼을 던진 후 너무 오래 어프로치에 서 있지 않는다.7) 투구 중에 파울을 범해서는 안 된다.레인의 앞에 보면 까만 줄로 파울라인이 그어져 있는데, 파울이 될 경우에는 그 프레임이 영점 처리 될 뿐만 아니라 파울라인 안쪽에 칠해져 있는 오일이 슈즈에 묻을 경우에는 큰 부상을 입을 수도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8) 로프트 볼링(Loft Bowling)을 하지 않는다.릴리스시 볼이 자연스럽게 손에서 빠져나가서 굴러가야 정상인 반면, 로프트 볼링이란 볼이 던져지듯이 또는 공중으로 치솟다가 떨어져서 큰 소리를 내는 경우이다.이러한 경우 레인이 상하게 되고 손을 다치는 경우도 있으며, 다른 볼러의 게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공식 시합에서을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