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칭의 어제 그리고 오늘< 충칭의 야경 >작년 18일 중국 충칭(重慶)시. 밤 8시 30분부터 도시 전역에서는 직할시 승격 10주년을 기념하는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다. 도심지 9곳을 비롯하여 완저우(萬州), 푸링(?陵), 용촨(永川) 등 외곽 농촌지역에서도 30분 동안 20만여 발, 1000여종의 폭죽이 어두운 밤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지역 주민인 양쿤밍(44)은 "충칭이 쓰촨(四川)성에서 떨어져 나와 직할시로 승격된 뒤 해마다 도시의 면모가 일신하고 있다."면서 "충칭은 중국 내륙지역에서 고층건물이 가장 많은 도시일 것."이라고 말했다. 천제(38)는 "직할시로 떨어져 나오기 이전 충칭에서 벌어들인 세수입은 대부분 쓰촨성의 수도인 청두로 보내져 그곳에 투자해 그곳을 발전시키기 바빴다."면서 "이제는 중앙정부의 지원에다 탄탄한 중공업 산업 기반에서 얻어지는 발전 동력으로 충칭이 서부지역의 선두 도시로 발돋움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위셩인(33·여)도 "직할시 10년은 도약의 10년이었다"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도 안고 있지만 중국을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1997년 초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서부지역 개발을 위해 '서향개발정책'을 발표했다. 충칭·쓰촨·윈난·산시·간쑤 등 12개 성·시로 이뤄진 중국 서부지역은 전 국토의 56%, 주요 광물자원의 50% 이상이 매장된 미개발 개척지다.넓고 척박한 대지에 약 2억9000만 명이 사는 서부지역의 빈곤과 낙후는 오랫동안 중국정부의 골칫거리였다. 1978년 개혁개방정책 이래 연해지역은 해마다 10% 이상의 고속 경제성장을 하고 막대한 외국인투자를 빨아들이고 있지만 서부지역은 경제발전에서 철저히 소외되었다.중국은 1997년 6월 18일 충칭시를 중앙정부 관할 직할시로 승격시켰다. 서부지역으로 가는 관문이자 양쯔강 상류에 있는 충칭을 서부지역 개발의 전초기지로 삼은 것이다. 현재 중국에서 직할시는 충칭과 더불어 베이징·상하이·톈진 네 곳뿐이다.도심지와 주변 성시, 농촌을 포괄하여 탄생한 충칭직할시시설을 2선인 중부지역보다 휠씬 깊숙이 자리한 3선의 내륙지역으로 옮긴 정책)에 따라 연해지역에서 이전해온 국영기업들을 중심으로 군수, 기계, 철강 등 중공업이 발전하기 전까지 경제 성장률은 연 5%에도 못 미쳤다.3선 정책으로 1970년대 8% 이상의 탄탄한 경제 성장률을 구가하던 충칭은 1978년 이후 중국정부가 연해지역을 위주로 한 개혁개방정책에 매진하면서 또다시 개발의 흐름에서 탈락했다.1997년 7월 직할시로 갓 승격된 충칭은 처음에 여타 직할시에 비해 실망스러울 정도로 낙후한 도시였다. 변변한 고층건물도 없는 도심지, 좁고 질 낮은 도로 변에 산비탈을 배경으로 빽빽이 들어선 낡은 아파트와 가옥, 초라한 옷차림과 행색의 사람들, 무질서하고 지저분한 충칭항의 번잡함 등이 그것을 말해주었다.싼샤(三峽)에 가기 위해 들렀던 충칭은 가난과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날 놀랍도록 발전한 충칭의 면모는 상전벽해(桑田碧海)를 연상케 한다.18일 직할시 승격 10주년 경축석상에서 왕양(汪洋) 충칭시 공산당 서기는 "충칭은 중국 서남부와 양쯔강 상류지역의 경제사회발전을 이끄는 중요한 원동력으로 성장했다"고 선언했다.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출신으로 후진타오 공산당 총서기의 직계인 왕 당서기는 중국 차세대 정치지도자 중 하나다. 왕 당서기는 "직할시 승격 이래 연평균 10.2%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재정수입도 9배나 증가했다"면서 "가속과 솔선을 앞세워 총생산량 증대, 인민생활 향상, 농촌지역의 균형 발전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경축석상에서는 충칭의 '전국통일도농종합개혁실험구' 지정을 공식 선포했다. 2007년 5월 9일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국무원의 동의를 거쳐 충칭과 쓰촨성 청두를 경제특구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국가급 특구로 지정된 것은 선전(深?), 상하이 푸둥(浦東), 톈진 빈하이(濱海)에 이은 4번째다.덩샤오핑은 선부론에 따라 연해지역에 경제특구를 만들어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이식했다. 그 여파로 갈수록 커져가는 동·에서 새로운 길"이라고 말했다. 런양칭(任楊慶) 충칭시 발전개발위원회 주임은 "특구 지정을 계기로 충칭은 202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 6500달러, 도시화 비율 70%를 초과하며 도농 수입 차이는 2.5대 1로 줄어들 것"이라면서 "특구계획에 따라 도시와 농촌의 구분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마이클 인라이트 홍콩대학 교수는 "충칭은 국제도시로서 자질은 떨어지나 내륙지역 물류와 제조 분야의 중심지로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기계, 자동차, 오토바이, 석유화학 등 중공업 산업과 연관된 투자 진출을 도모해야 한다"고 말했다.마이클 인라이트 교수는 "충칭은 미국 서부로 가는 관문 자리를 두고 다른 도시와 경합한 시카고와 비슷하다"면서 "시카고를 뉴욕에 견줄 수 없듯이 충칭도 상하이와 비교 대상이 못되지만 특별한 도시가 충분히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충칭의 춘탄 컨테이너 터미널 >이를 증명하듯 충칭(重慶)의 주룽포(九龍坡) 화물터미널은 분주하다. 고가이동기중기가 쉴 새 없이 하역작업을 하는 가운데 8000여 개의 컨테이너가 빼곡히 들어찬 3만여 평의 야적장에선 짐을 실은 대형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빠져나가고 있다. 서부대개발 5년 만에 창장(長江)강 상류의 하운(河運)중심기지로 떠오른 활기찬 충칭의 모습이다. 화물전용 부두인 주룽포에서 2004년에 처리한 컨테이너 화물은 13만8000TEU(1TEU는 20피트 규격 컨테이너 1대분). 1999년 1만 TEU에 비해 14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올해 예상 물동량은 18만 TEU다.또 매년 30∼40%씩 늘어나는 물동량을 처리하기 위해 올해 말 완공을 목표로 연간 처리능력 70만 TEU의 춘탄(寸灘) 터미널 공사도 한창이다. 서부대개발로 길이 나고 물길이 트이면서 중국 서부가 세계와 하나로 묶이고 있다. 서부 오지 구석구석까지 세계의 유명 브랜드가 밀려들고 있다. 거꾸로 서부의 자원이나 상품도 이제는 손쉽게 세계 각지로 팔려 나간다.방방(棒棒)맨도 아직 건재하다. 서부의 관문인 충칭 시 중심가를 길이목을 잡는 요소 또한 적잖이 존재한다. 부족한 전기와 물 사정으로 단전, 단수가 수시로 발생하는 등 기본 인프라가 취약하다. 최근 들어서야 8시간 내에 충칭 어느 지역이든 도달할 수 있는 '8시간 충칭', '1시간 도시' 도로망 계획을 달성할 정도로 물류 사정도 열악하다. 여기에 주민 이주사업과 신도시 건설, 환경기후문제 등을 포괄하는 싼샤댐 문제는 충칭에 큰 어려움을 안겨주고 있다.기반이 탄탄한 중공업을 바탕으로 중국의 시카고가 될지, 낙후한 내륙 직할시의 굴레에서 못 벗어날지 충칭의 미래가 주목된다.중국 진출 기업들의 전환"해마다 10∼20% 올라가는 인건비를 더 이상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중국 당국이 꼬투리를 잡는 오염물질 배출 시비도 골칫거리입니다. 이젠 중국 중서부 내륙으로 이전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가 된 것 같습니다."5년 전 중국 칭다오에 진출한 중소 방직업체 임원 L씨(48)는 갈수록 열악해지는 경영상황을 토로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싸고 아직까지는 환경문제에 덜 민감한 중국 중서부 청두 인근으로 이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중서부는 저렴한 인건비 외에도 중국 정부의 개발 의지에 따른 세금 혜택 등 정책적 지원을 받을 수 있어 상당한 비용 절감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비단 한국 기업뿐 아니라 중국 동부 연안에 위치한 다른 외국 기업들과 중국 국내 기업들도 중서부 이전에 나서고 있다.중국 방직업계 선두 기업인 `상하이싼마오팡지` 그룹은 70여 년 동안 자리 잡았던 상하이를 떠나 2005년 중서부 대표도시 충칭에 새 터를 마련했다. 역시 인건비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었다.이원봉 KOTRA 청두무역관 차장은 "주로 의류ㆍ방직 등 노동집약적 기업 중심으로 중서부 이전이 이뤄지고 있다"며 "관련 통계에 따르면 2006년 이후 동부 지역 기업 가운데 중서부에 투자한 곳이 10만여 개, 총투자액은 7000억위안 수준에 달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수치는 이전 5년 합계와 맞먹는 것으로 최근 들어 중서부 이전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음면 상하이에서 충칭까지는 14일, 충칭에서 상하이까지는 7일이 걸렸다. 도로를 이용해도 연해 도시까지는 최소한 5, 6일 정도가 소요된다는 것. 그러나 지난해 7월 세계 최고도 칭하이(靑海)성 거얼무(格爾木)와 티베트를 연결하는 총연장 1142km의 칭짱(靑臧)철도 개통에 이어 내년 청두∼상하이 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서부 내륙 지역의 물류 시간과 비용도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 지역 물류의 중심인 청두는 2004년 말 이미 300여 개 물류기업이 423개 물류 창고를 운영하고 있으며, 일정 규모를 갖춘 운송기업만 1000여 개에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그러나 이 지역 기업들이 외국에서 수입된 제품을 연해지역에서 2차 구매를 하는 형태를 고집하는 데다 한국 기업들도 물류 문제 등 때문에 이 지역 진출을 꺼리고 있는 형편.그래도 가장 최근엔 충칭(重慶) 시내를 벗어나 인근 지역인 쓰촨(四川)성 청두(成都)를 잇는 위청 고속도로에 오르면 현대자동차의 엘란트라와 투싼과 길가에 설치된 기아자동차 리오와 두산기계의 대형 입간판 광고를 볼 수가 있다. 현지 진출 기업들의 발자취가 물씬 풍겨온다. 오랫동안 외자기업 진출의 사각지대와 같았던 중국 중서부에 한국 기업들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얼마 전에는 애경의 부회장급 고위 간부가 투자환경을 살펴보기 위해 충칭 시를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간부가 돌아간 뒤 현지 한인사회에서는 애경이 충칭에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부지를 물색하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고 있다.한인회 관계자는 “충칭의 투자환경이 아직 낙후됐다는 점이 오히려 블루오션이라는 시각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내수와 물류 서비스, 일부 제조 부문을 중심으로 시장잠재력이 크다며 선점 차원에서 충칭 진출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고 설명했다.한국 기업들은 최근 충칭을 인근 청두와 묶어 서부 진출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려는 구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이미 포스코가 자동차용 강재공장 건립에 들어간 데 이어 GS홈쇼핑이 내수판매에서다.
한국 기업지배구조사례◇기업 권위주의, 그 신화의 몰락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몰락하였다. 초대마불사의 신화마저 무너졌다. 재벌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는 불패의 신화가 깨진 것이다. 초대형 기업들이 무너지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많은 것들이 드러났다. 분식회계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비합리적 기업 관행이 밝혀진 것이다. 그 완결판이 1999년 대우의 몰락이다. 이전에도 재벌의 몰락이 있었지만, 대우의 몰락은 여러 가지의 다른 의미를 담고 있다. 대우는 단순히 재벌 순위의 최상위라는 서열뿐만 아니라 한국형 발전모델인 압축성장의 한국판 상징으로 간주된 기업이었다. 분식규모가 41조 원으로 최종 집계되었다. 41조 원이란 대우가 지난 20년간 매년 2조 원씩 깎아먹은 셈이다. 부가가치의 창출이 아니라 부가가치를 파괴한 셈이다.대마불사의 신화 못지않게 한국사회가 받아들이기 좀처럼 쉽지 않았던 충격은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은행 불패의 신화도 깨졌다. 개발경제 시대 금융의 상징이었던 기존 초대형 5대 은행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망해버렸다.)성역으로만 알고 있던 은행이 파산한 것은 개발경제 시대에 유효했던 대기업 중심의 금융시장과 정부주도의 관치금융정책의 효율성과 합리성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를 하는 계기가 되었다.권위주의 시대의 기업 이미지는 단순하지만 매우 강력했다. 총수의 이미지가 곧 기업의 이미지였으며, 총수의 권위가 기업의 귄위였다. 전제적 권력을 가진 총수의 경영방식이 기업의 존망을 결정하였다. 실제로 기업과 관련된 대부분의 신화는 총수와 관련된 것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니다. 외국의 경우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전문경영인의 신화가 우리에게는 그리 많지 않다. 정작 기업의 조직양식이나 브랜드에 관한 신화는 매우 드물다. 시쳇말로 대우에는 김우중만 존재했으며, 현대에는 정주영만 존재하는 형상이다. 가부장적인 카리스마적 권위체로서 총수체제는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를 상징하는 대명사였다. 한국의 기업사에서 총수체제의 형성은 1970년대 구한 셈이다. 경제위기 이후 지금까지의 이른바 잃어버린 역사 속에서 진행된 한국사회의 형상은 경제위기를 상황조건의 함수로 설정하고 있다.그리고 기업지배구조의 변화에 시민단체가 중요한 행위자로 등장하였다. 1998년 7월 24일, 기존의 관행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소액주주가 제일은행 임원들을 상대로 승소한 것이다. 참여연대가 조직한 52명의 소액주주들이 전ㆍ현직 제일은행 임직원을 상대로 우리나라 최초의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였고, 재판부는 400억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다음날 승소 판결은 모든 일간지의 헤드라인으로 기사화했다. 이 판결이 왜 중요하느냐 하면 기업지배구조의 대변혁을 전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액주주들이 불법적인 경영에 대한 경영진의 책임을 묻는 우리나라 최초의 판례가 탄생한 것이었다. 얘기는 외환위기 이전인 1997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여연대는 한보철강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불법적인 대출과 경영진의 범죄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기 위하여 소액주주들을 모집, 2월 주주총회에 참석하여 경영진의 책임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다. 그리고 1997년 6월 소송으로 이어진다.참여연대는 제일은행 주주대표소송에 이어서 1997년 6월에 삼성전자를 상대로 전환사채 무효소송을 제기하고 이사회 회의록 위조혐의로 삼성전자 임원들을 검찰에 고발한다.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건희 회장의 아들인 이재용 씨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건으로 발행된 전환사채가 회사와 소액주주들에게 손해를 입혔다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전환사채를 발행하기로 한 이사회의 결의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이사회 결의를 허위로 작성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참여연대는 이어서 1998년 10월에 불법정치자금 제공과 계열사에 대한 부당지원으로 인한 손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건희 회장과 10여 명의 임원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였다.)그러나 기업지배구조 변화를 향한 참여연대의 행보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1997년 6월 또 하나의 대형사고가 터진다. 기아자동책임을 지기 때문에 이사회가 일방적으로 총수들에게 유리한 극단적으로 부당한 결정을 하는 것을 제한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비서실이라는 임의의 경영지배조직이 구조조정본부라는 반공식적 조직으로 대체되었다. 총수가 이전에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위하여 이사회의 구성원으로 등재하지 않았지만 김대중 정부 초기에 법적 지위를 갖는 공식적인 이사로 등재할 것을 요구하였다.◇ 구체적 사례재벌을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다양하게 진화하는 양상을 보였다. 각 재벌별로 각기 다른 양상의 지배구조를 보이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기업지배구조의 변화는 크게 5가지 유형 정도로 다양화되는 양상을 보인다. 기존의 기업집단체를 유지하는 유형,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는 유형, 소그룹체제로의 전환유형, 독립기업체제(민영화된 공기업) 유형, 전계열사 독립체제로의 유형으로 다양화된 형태를 보인다.여기서부터는 좀 더 체계적으로 언급하겠다. 우선 기존의 그룹체제를 유지하는 기업은 삼성이 있다.1. 순환출자신문을 읽다보면 '순환출자'라는 말을 많이 보게 된다. 그리고 그 기사의 내용은 대기업 정책을 주무르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순환출자를 금지하겠다'고 단단히 벼르고 있고, 대기업들은 '경영권을 위협받는다'며 크게 반발하는 식이다. 도대체 순환출자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시끄러울까?1)순환출자란'순환출자(循環出資)'는 말 그대로 출자가 서로 꼬리를 물고 빙글빙글 돈다는 뜻이다. 그럼 출자는 또 뭘까. 쉽게 말해 돈을 내고 어떤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게 출자이다. 만약 A기업이 B기업에 출자해 계열사로 만들었다고 하자. 이어 B기업은 C기업에 출자해 주인이 되고 끝으로 C기업이 A기업의 주식을 사들이면 이제 회사의 출자는 'A기업→B기업→C기업→A기업'처럼 꼬리를 물고 이어지게 된다. 바로 이를 순환출자라고 하며, 출자의 흐름이 고리처럼 동그랗게 이어졌다고 해서 '환상형(環狀形) 순환출자'라고도 부른다.또 원을 그리지는 않지만 계열사들이 피라미드 형태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출자구조는 비환상형 순환상당한 경영 간섭도 예상된다”고 토로했다.당장 삼성이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크게 세 가지 정도였다. 자사주 매입이나, 국내 기업과의 제휴를 통한 상호 ‘백기사’, 이 회장 일가의 삼성 전자 지분 추가 매입 등이다. 하지만 삼성전자 지분 1%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1조원의 비용이 들어, 이 회장 일가의 추가 지분 매입이 녹록치 않았다. 상호 백기사도 비용이 발생하기는 마찬가지였다.따라서 삼성은 지배구조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으로 보였다. 단기적으로는 계열사를 통한 삼성생명 지분 승계, 전략적 파트너와 지분 맞교환(스와핑) 등의 대응책을 고려했다. 또 삼성생명 주식이 상장된다면 그룹 지배구조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었다. 삼성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주식의 가치가 뛰어 삼성에버랜드가 금융지주회사로 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삼성에버랜드 자산 가운데 금융회사 지분이 50%를 웃돌면 금융지주회사로 분류돼 비금융 자회사와 손자회사를 거느릴 수 없는 만큼 에버랜드가 삼성생명 주식을 파는 대신 삼성전자 지분을 사들이는 시나리오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정치권 일각에선 새 금산법이 시장원리에 반한다는 이유로 재개정 논란도 생겼다. 한나라당 박세환 의원은 “시장경제에 위배되는 법안이므로, 국민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재개정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시민단체 등에선 삼성전자의 주가가 당시 60만원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적대적 M&A를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금액이 필요해 사실상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출처: 의 2006년 12월 22일 기사, 의 2007년 01월 기사4)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발행 사건 항소심서울고법 형사 5부는 2007년 5월 29일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발행 사건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전ㆍ현직 대표이사의 유죄를 선고했다. 삼성측은 상고 의사를 밝혀 최종판결은 정권교체 이후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이루어질 전망이다.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불법발행 사건은 96년 10월 에버랜드 이사회에서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하고 전환사채 125S칼텍스에 50%를 투자했고, GS홈쇼핑(30.0%)과 GS리테일(65.75%)의 대주주이기도 하다. GS칼텍스는 다시 GS파워, 서라벌도시가스, GS퓨얼셀 등에 투자해 경영권을 확보했다. GS홈쇼핑은 한국케이블TV울산방송, 강남케이블TV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그룹 2대 핵심기업인 GS건설은 GS홀딩스 자회사가 아닌 별도 기업으로 존재한다. GS건설은 허창수 회장 일가만이 최대주주 대열에 합류했다. 허창수 그룹 회장(12.45%), 허정수 GS네오텍 회장(4.44%), 허진수 GS칼텍스 부사장(5.8%) 등이 대주주일 뿐 허동수 회장 일가는지분을 갖고 있지 않다.GS건설은 의정부경전철, 한무개발(인터컨티넨탈호텔), 이지빌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일부에선 제2의 분리 독립이 있지 않겠느냐는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지만, 지분구조를 봤을 때 분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의 역할에 대해서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점치지만, 허창수 회장 부친이 GS그룹을 직접 일궈냈다는 점에서 허동수 회장 입지가 좁을 수밖에 없다.허창수 회장은 누차 한국의 대표적인 지주회사를 만들겠다고 약속한 만큼 혹시 형제간 갈등이 생기더라도 불협화음을 충분히 조율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출처: 의 2006년 11월 17일 기사3) 한국투자금융지주김남구 사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한국투자금융지주 1대 주주다. 지분율은 17.98%. 한국투자금융지주는 주력 계열사인 한국투자증권을 100% 소유한다.한국투자증권은 다시 한국투자신탁운용(99.46%)과 한국밸류자산운용(100.0%)을 각각 지배한다. 한국투자금융지주는 한국투자증권 이외에 한국투자파트너스(100.0%)와 한국투자상호저축은행(98.13%)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 작년 3월에 세워진 사모전문 투자회사인 코너스톤에퀴티파트너스에도 지분 100%를 투자했다.한국투자금융그룹은 동원그룹에서 독립한 금융 전문그룹이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장남인 김남구 사장은 식품 위주의 동원그룹을 포기하고 금융그룹을 택했다. 일본 게이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