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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의 시대 감상문 평가A+최고예요
    혁명의 시대 A+ 감상문1.《혁명의 시대》의 저자 홉스 봄《혁명의 시대》의 저자이자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홉스봄은 1917년 6월 9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오스트리아계 어머니와 유태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런던의 성메리르본 고전문법학교와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킹스 칼리지를 졸업했다. 킹스 칼리지에서 홉스봄은 역사학을 전공했으며, 버크벡 칼리지의 사학과 강사로 교직 생활을 시작했다. 홉스봄은 1931년에 사회주의 학생단에 가입했고, 1936년에는 영국 공산당에 입당했다. 1946년부터 1956년까지는 공산당 역사가 그룹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공산주의자/마르크스주의자였지만,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에 대해서는 비판 연설을 하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현대 마르크스주의〉(Marxism Today)라는 잡지사에서 일하기도 했고, 닐 키녹의 영국 노동당의 현대화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는〈페이비언주의와 페이비언들, 1884 ~ 1914〉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버크벡 칼리지에서 1970년에 경제사 및 사회사 전임 교수가 되었고, 1982년 은퇴했다. 그러나, 고령에도 불구하고 홉스봄은 연구 및 저작활동을 쉬지 않았다. 여전히 영국 아카데미와 미국 아카데미의 특별 회원, 뉴욕신사회연구원 교수, 버크벡 칼리지 명예 교수 등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한편, 홉스봄은 현존하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가 중 최고봉으로 손꼽힌다. 당대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이 영국사에 치중한 반면, 연구 범위가 광범위하다. 영국 외에 유럽 및 아메리카 대륙도 그의 연구 대상이었고, 시기적으로도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를 포괄한다. 그의 이러한 특징이 시대 시리즈를 가능하게 했던 것이다. 또, 홉스봄은 폭넓은 시각과 광범위한 사료 분석으로 "아래로부터 위로의 역사적 시각에서 전체사로서의 역사구도를 일관되게 견지하여 당대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예술 및 문화비평을 포괄하는 박식한 역사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혁명의 시대》를 번역한 박현채는 번역본의 역자의간 역사상 최초로 인간사회의 생산력을 속박하던 굴레가 벗겨져서 그 후로 인간과 재화 및 용역을 끊임없이 신속하게 현재까지 무한하게 증식시킬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하며, 이는 자립적 성장으로의 도약으로 함축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이 어떻게 영국에서 먼저 그 시발점을 찾아야 되는가 라는 문제를 홉스봄은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18세기 당시 유럽의 계몽군주국들에서도 공업화가 진행되었지만, 영국은 산업혁명이전에 있어서도―총생산과 총교역량은 제쳐두고서라도―1인당 생산과 교역에 있어서는 잠재적 경쟁국들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영국정부 정책의 최고 목적은 사적 이윤과 경제발전이었으며, 이미 오래전에 공장제 수공업(Manufacture)이 널리 퍼져 있었다. 영국의 농업경영 또한 혁신적이었다. 그것은 토지가 없는 농민이나 영세한 농민들을 고용하는 차지기업농에 의해 경작되는 시장을 목적으로 한 농업경영형태였고, 이것은 어느 다른 나라의 농노에 의한 농업경영과는 차원이 달랐으며 이로써, 공업화로 가는 길목에 영국의 농업은 자본의 축적이라는 근대적인 경제의 메카니즘을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할 여건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또한 영국은 산업혁명을 선도하기에 적합한 공업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면공업 발전―영국의 면공업은 영국정부의 적극적인 후원, 해외식민지에서의 원료공급과 방직기의 발명으로 영국의 전체 경제의 움직임을 좌우할 정도로 급속히 발전했다―과 영국의 식민지 팽창을 가능케 한 경제적 상황을 가지고 있었다. 기초자본재산업의 건설에 있어서―산업적 잠재력에 대한 지표인 철강생산량에 있어서―영국의 철강생산량은 대륙 총생산량의 반에도 못미치지만, 광업의 경우에 영국은 막대한 석탄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었다.(세계 생산량의 약 90퍼센트, 약 1천만 톤의 석탄생산 1800년 당시) 이것은 철도 탄생이후 기업가들과 투자가들의 철도 건설에 대한 자본 투자욕과 맞물리면서 철도가 산업혁명의 진행에 견인차 역할을 하게되었다. 농업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비농업인구의 급격한 증가 그리고 농업, 공화국(1848~51), 제정(1852~70)―속에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 on Bonaparte)가 결국 민간정부(총재정부)를 제거하고, 그 자신이 통령정부의 실권자가 되었다. 나폴레옹이 집권한 후의 프랑스 사회가 오히려 영국의 형편―경제적·정치적·사회적인 형편―보다 더 나아졌다고 설명하고 있다.(1800년보다 1815년 전후의 영국과 프랑스사회를 비교해 볼때) 이렇듯 나폴레옹 몰락이후에도 나폴레옹은 프랑스사회 전반에 걸쳐 프랑스인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하나의 영웅적인 신화를 깊게 새겨 놓은 것이었다.제4,5장은 전쟁과 평화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1792년부터 1815년 사이에 유럽에서의 전쟁들로 인한 결과들, 그리고 군사적 동원과 군사작전으로 취해진 정치적·경제적인 여러 조치들에 대해서 홉스봄은 국가 간의 대결이자 사회제도간의 대결이라는 전쟁의 이중성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혁명과 그에 따른 20여 년에 걸친 전쟁은 정치지리적으로 유럽에 있어서 중세에 종지부를 찍었고, 근대국가의 특성―영토적 통일, 단일 주권당국에 의한 단일의 행정적·법률적 제도 등―이 나타나고 있었다. 국경의 변화뿐만 아니라 법률과 통치제도에 있어서의 변화도 이루어 졌으며, 더 이상 유럽의 어느 곳에서도 봉건제도는 폐지되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전쟁과 혁명이후 구체제는 강화와 평화 유지의 문제에 직면했으며 1818년에는 유럽협력체제 (concert of Europe)가 성립되었다. 그러나, 1830년에 일어난 일련의 혁명들은 협약체제를 완전히 파괴하게 됨으로써 1815년 협약의 항구성과 국제회의제, 그리고 모든 혁명은 억압되어야 한다고 하는 원칙은 깨어졌고, 나폴레옹 전쟁 후의 국제정세에 있어서 가장 폭발적인 문제는 동방문제 ―터키의 불가피한 해체에 어떻게 대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1854~56년에 전면전쟁을 발생시켰다. 그렇지만 이 시기의 국제적 분쟁의 과정을 살펴 볼 때, 전쟁의 연쇄적 폭발성을 야기시키지는 못했다. 즉, 강대국들-영국을 중심으로 프랑스, 러은 현명치 못하다고 보는데, 홉스봄은 그 예로 1803~18년 및 1845~49년의 마라타족이나 시크교도의 영국인에 대한 저항들은 그 어느 것도 뒷날의 인도의 민족주의운동과 거의 아무런 관계가 없었고, 독자적인 민족주의를 낳은 바도 없다는 사실을 제시해 주고 있으며 민족주의도 이중혁명(二重革命)의 결과로서 발생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대체로 1789~1848년까지의 시기의 주된 발전적 모습을 다루었고, 다음으로 설명할 둘째 부분은 이중혁명의 결과로서 생겨난 사회상을 묘사하고 있다.제8장은 이중혁명의 결과 토지에 발생된 여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중혁명이 토지의 소유 및 보유와 농업에 대하여 미친 충격은 가장 파국적인 현상이었고, 토지문제의 혁명적 변혁이 부르즈와 사회의 필연적인 전제조건이 되었다. 토지가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私企業)에 의해 경작되게 하기 위해서는 세계의 전통적 농지제도와 농촌의 사회관계라고 하는 장애물이 제거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세 가지의 변화가 선행되야 한다고 홉스봄은 보고 있다. 첫째, 토지가 사적(私的)소유자에 의한 소유와 자유로운 매매가 가능한 일종의 상품으로 변해야 한다. 둘째, 토지는 시장을 위해 그 생산적 자원을 개발하려고 하는 즉, 이윤을 추구하는 계급의 사람들의 소유로 전환되어야 한다. 셋째로는 농촌인구의 자유로운 이동임금노동자로 전환되어야 한다라고 전제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1789~1848년에 있어서의 서유럽의 대부분과 그 식민지의 농업관계의 역사는 영주들과 전통적 농민들의 토지에 대한 부르즈와-개인주의적 합리주의의 몰이해를 분쇄할 정치적·법률적 혁명의 역사라고 볼 수 있다.제9장은 산업세계를 향하여 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국과 유럽대륙의 산업화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789년에서 1848년까지의 시기에서 중요한 점은 경제적 변화에 있어서 기본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고 보는데, 그것은 인구통계적인 변화와 교통·통신의 변화, 그리고 상업과 인구이동의 양적 변화였다. 또한 1830년경 보고 있는 것이다. 노동빈민의 운동에 있어서 1834~35년의 총노동조합(general union)의 분쇄와 1848년경 노동빈민운동의 실패를 홉스봄은 기존 사회질서에 대한 개혁을 전개, 유지시켜 나가기에는 그러한 운동의 조직성의 미숙함을 들면서, 1848년경 노동빈민운동은 1789~94년의 혁명적인 중류계급의 자코뱅주의에 상당하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고 말하고 있다.제12,13장은 종교와 현세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모든 이데올로기적 변화란 대중적 세속화를 말하는 것이다. 18세기 말엽 엘리트들 사이에 성행한 종교는 합리주의적·계몽주의적·반교권주의적인 프리메이슨주의 바로 그것이었고, 도시의 잡다한 미숙련 빈민대중들 사이에는 신앙과 미신이 뿌리깊이 남아 있었다. 상승일로에 있는 중류계급은 도덕적 규율과 조직을 필요로 하고 있었는데, 이론적으로 볼 때 불가지론 혹은 무신론은 그것과 완전하게 양립할 수 있었지만, 기독교는 명백히 불필요했다고 말하고 있다. 아메리카혁명 및 프랑스혁명으로 주요한 정치적·사회적 변화들이 비종교화되었고, 이데올로기의 면에서 기독교와는 무관하였다. 혁명의 이같은 비(非)교회주의는 자유주의적인 중류계급이 행사한 괄목할 만한 정치적 주도권을 입증해 준다. 19세기의 새로운 노동계급과 사회주의 운동의 이데올로기는 출발부터가 현세주의적이었다. 즉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사상은 독립생산적 소상인이나 가난해진 숙련장인들의 급진적·민주주의적 열망을 대변한 것이었다. 이와 같이 종교와 거리가 멀어진 것은 전통적인 기성교회가 인구의 거대한 집결현상―대도시와 새로운 공업주거지―그리고 사회계급―프롤레타리아―에 대치하는 데 전적으로 실패한 것에 그 원인을 찾아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1789년에서 1848년에 이르는 기간의 추세는 두드러진 비종교화 경향이었다.제14,15장은 예술과 과학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중혁명시대의 예술적 발전의 양상을 살펴보면 첫째로는 예술적 업적이 여러 국민들 사이에 놀랍도록 널리 분포되어 있다는 사실이고, 둘째는것이다.
    독후감/창작| 2009.03.16| 11페이지| 2,000원| 조회(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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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의 시대 감상문
    극단의 시대 감상문1. 《극단의 시대》의 저자 홉스 봄《극단의 시대》의 작가 홉스 봄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오스트리아계 어머니와 유태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런던의 성 메리르본 고전문법학교에 다녔고 케임브리지의 킹스칼리지에 들어가 역사학을 전공하였다. 그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 스스로를 마르크스주의자로 생각했고 케임브리지 대학 시절에는 학생 마르크스주의자들과 교류하여 교수들보다도 이들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언젠가 말했으며, 아울러 공산당원으로 활동하였다.1947년 런던 대학 버크벡 칼리지의 사학과 강사로 부임했다가 1959년 전임, 1970년에는 경제사 및 사회사 정교수를 지냈으며 1982년 은퇴하였다. 또한 1949년부터 1955년까지 케임브리지 킹스칼리지의 특별연구원으로 재직한 바 있으며, 1984년부터는 영국아카데미 및 미국아카데미 특별회원, 뉴욕신사회연구원 교수, 버크벡 칼리지 명예교수로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연구활동을 보이고 있다. 홉스봄은 오늘날 활동하고 있는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로 손꼽히고 있다. 동시대 역사가로서 로드니 힐튼과 크리스토퍼 힐, 그리고 에드워드 톰슨이 영국사 연구에 치중한 반면, 홉스봄의 저작들은 영국 및 유럽에서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한 영역에 걸쳐 있으며, 그 시기도 17세기부터 20세기 현대사까지 통괄하고 있다. 특히 ‘아래로부터 위로의 역사’적 시각에서 전체사로서의 역사구도를 일관되게 견지하여 당대의 정치와 경제, 사회와 문화, 예술 및 문화비평을 포괄하는 박식한 역사가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역사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프랑스 대혁명과 산업혁명으로 인류사회가 어떻게 변화·발전해왔는가를, 근대세계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방대한 자료를 통해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내고 있다. 1948년에 첫 저서 『노동의 전환점』(Labour’s Turning Point, 1880∼1900)을 출간했으며, 1950년에는 『페이비언주의와 페이비언들,가되는 저자 에릭 홉스봄의 3부작 《혁명의 시대》(1962) 《자본의 시대》(1975) 《제국의 시대》(1987)에 이은 작품으로 인류의 근현대사를 사회경제적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각 세대의 문명과 역사를 해설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이 책에서 저자는 자본주의, 공산주의, 파시즘을 역사해석의 기본요소로 활용하였다. 즉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는 '파국의 시대'를 사회주의 혁명과 파시즘이 맹위를 떨친 시기로 규정하고, 1945년 이후 1973년 석유파동 이전까지의 '황금의 시대'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양 진영이 이념을 전개하는 시기로 결정지었으며, 1970년대 중반 이후 '산사태의 시기'를 양 진영간 균형이 깨져 공산주의가 붕괴하고 전세계의 사회경제가 구조적으로 경제불황에 치닫는 시기로 규정함으로써 20세기의 역사를 기존의 가치와 제도가 무너지고 파국과 번영이 함께 한 '극단의 시대'로 정의한 것이다. 이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1) 파국의 시대(1914~1945)파국의 시대는 바로 총력전의 시대였다. 이 시대에 있었던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은 역사상 가장 살인적이고 잔인한 전쟁으로 자리 매김 했다. 홉스 봄의 말을 빌리자면, “이 전쟁이 끝난 뒤에는 살아남은 생명체들보다 건물들이 더 쉽게 재건될 수 있을”정도였다. 또한 파국의 시대는 세계를 뒤흔든, 1917년의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을 낳았다. 이 10월 혁명은 전 유럽과 아시아, 남미의 공산주의 혁명을 주도하였고, 자본주의로 하여금 스스로를 개혁하도록 고무하는 등 실로 엄청난 파급효과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1차 세계대전 후의 대공황에 대한 소련의 명백한 면역은 자유시장이라는 정통교리에 대한 믿음을 버리도록 고무함으로서,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새로운 구세주로서 여겨졌으며, 이러한 믿음은 1970-80년대 현존사회주의'의 종식이 시작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홉스 봄은 단기 20세기 전의 역사, 즉 1870~1924년까지의 시대를 '제국의 시대'라 규정 한 바 있는데, 파국의 시대기(1973~1991)이렇게 등장한 새로운 파국의 시대, 즉 위기의 몇 십 년은 자본주의의 작동이 통제불능 상태가 됨으로서 국민국가가 경제적 힘을 잃은 시대였다. 이 시대에 있었던 케인스 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자들의 싸움은 바로 그러한 점을 잘 말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의 몇 십 년의 역사적 비극은 무엇보다도, 이제는 생산에서 인간들이 기계에 밀려나는 속도가 시장경제가 그들을 위해서 새로운 일자리를 낳는 속도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는 데에 있었다. 한 편, 1968년 ‘프라하의 봄’은 자본주의에 맞선 구세주로서의 사회주의의 종식을 예고하는 사건이 되었다. 실제로 체코 사태 이후, 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 개혁 시도는 자포자기되었으며, 소련은 더욱 더 ‘정체의 시대’로 돌입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련은 1985년에 열정적인 개혁가 고르바초프가 소련 공산당 서기장으로 정권을 잡게되었고, 고르바초프가 이끄는 소련은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 사이의 갈수록 넓어지는 구렁 속으로 빠져들며, 결국 1991년 소비에트시대의 종식을 선언하게 되었다.3. 삶의 경험을 통한 역사서술에릭 홉스 봄은 일찍이 근대이후의 역사를 혁명의 시대, 제국의 시대, 자본의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극단의 시대로 분류한 바 있다. 이 저작은 바로 그의 역저들의 종착역이라 할 수 있는 20세기의 역사 즉 '극단의 시대'에 대한 서술이다.이 저작 《극단의 시대》가 홉스 봄의 다른 시리즈물과 대비되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자신이 살아온 시대의 기록이라는 점이다. 역사가는 모름지기 멀리 떨어진 숲을 바라보며 거시적인 윤곽을 스케치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홉스 봄에게 있어 《극단의 시대》 이전의 작품들이 모두 거기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거시적인 숲의 윤곽이라기보다는, 직접 숲 속에 들어가 나무의 자세한 모습까지도 구체적으로 생동감있게 묘사하고 있다. 홉스 봄은 《극단의 시대》를 통해 자신이 살아온 흔적뿐만 아니라, 20세기의 다이내믹한 내부세계를 현실감있게 재현하고 평가하는데 또한 이 책은 서구를 중심으로 하되 서구의 영향을 받은 제 3세계의 현상도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다.4. 20세기 역사에 대한 연결의 장《극단의 시대》는 단기 20세기(1914~1991)의 역사서로서, 이 책의 저자인 홉스 봄은, 자신은 참여 관찰자로서(홉스 봄은 1917년 생이다) 단기 20세기의 역사에 접근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리고 나와 비슷한 연배의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단기 20세기의 역사가 대부분 공백상태이거나 단절된 세기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나의 세대는 홉스 봄이 규정한 단기 20세기의 거의 끝 부분에서 태어났으며, 또한 이러한 현대사는 교과서 맨 끝에서, 항상 수업과 시험에 쫓기느라 부득이하게도 언제나 깨끗한 상태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들은 홉스 봄의 말처럼 “우리가 사는 시대의 공적인 과거와 어떠한 유기적 관계도 가지지 않은 일종의 영구적인 현재 속"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단기 20세기의 역사를 비워둔 채, 그 어떠한 현재나 혹은 미래의 문제에 대해 얘기 할 수 없다. 바로 여기에 홉스 봄의 《극단의 시대》는 우리와 단절된 세기인 단기 20세기와의 대화의 장(場)을 훌륭하게 열어주고 있다.“등잔 밑이 어둡다.”라는 말이 있다. 실제로 우리들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해서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1989년의 이란혁명이라든가 1968년의 파리사태 같은 것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다. 홉스 봄의 《극단의 시대》는 바로 이러한 우리들의 문제를 꼬집어 주며, 비로소 단절되었던 과거와 현재와의 거대한 흐름을 연결시켜 준다. 때문에 이 책을 끝까지 정독한 사람이라면, ‘우물 밖 개구리’가 되어 현재의 한국을 되돌아보는 작업이 퍽 유익할 것이라 생각한다. 아마도 그러한 작업은 일제식민시대, 해방과 전쟁, 이데올로기와 분단을 거치며 오늘날에 이른, 소위 ‘한(恨)’ 맺힌 우리 역사를 바라보는 데 있어, 한층 더 건전하고, 덜 맹목적이고, 탈 민족적인 수정을 요하게 다는 것이다. 과거 경제적 불황 속에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우경화했고, 특히 파시즘의 길로 나아간 국가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파시즘 국가의 성립에는 중산층의 지지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으며, 이들을 끌어들인 유인은 경제적 이권을 보장한다는 것이었다. 이 시대처럼 우리가 지지하고 있는 개혁된 자본주의의 모순이나 문제점이 다시 드러난다면 이런 문제는 다시 생길 수 있다고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저자의 문제인식 중 하나는 왜 20세기가 그렇게 잔인하고 야만적인 세기 나아가서는 19세기까지 진보되어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인류가 퇴화했다는 것이냐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19세기까지 인류가 진보되어왔다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19세기에 중반이전의 인류가 보여줬던 전쟁의 잔혹함, 나아가서는 서구의 식민지 정책들도 2차 세계대전의 잔인함에 뒤지지 않았다. 국제적인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일 뿐, 전쟁은 계속해서 19세기 말의 평화시기에 존재해왔다. 진보의 시대라는 미명아래, 어느 한 시대를 특화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인류 역사상 전쟁과 인간의 야만성 잔혹성은 항상 존재해왔고, 그것이 20세기 전쟁을 통해 발산된 방법이건 식민주의적 경제체제로 오늘날에는 세계경제 속에서 자유라는 이름으로 후진국을 종속시키는 방법이든 어느 쪽이 덜 잔인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간 개개인 나아가서 사회 속에서 전체의 인류를 놓고 본다면 인간의 본성이 진보되었다고는 볼 수 없을 수도 있다. 인류가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늘어나고 있는 전쟁 억지력(오늘날에는 의문이 가지만)과 세계적으로 통합되고 있는 단일한 경제체제 덕분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들도 이런 혜택을 받는 절대적인 수를 증가시켰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진다.20세기의 극도로 고도화되고, 민간인까지 피해대상에 포함된 전쟁 속에서 우리는 절망을 맛보게 되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지만, 인간의 이성이 이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못했고, 나아가서 우리가 믿고 있는 인류의 진보도 의심이 가게 된다. 하지만 진보라는 인
    독후감/창작| 2009.03.16| 6페이지| 2,000원| 조회(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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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와벌, 죄와 벌] 죄와 벌 서평 평가A좋아요
    죄와 벌 서평1. 《죄와 벌》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죄와 벌》의 저자 도스토예프스키는 톨스토이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호로 넋의 리얼리즘 이라 불리는 독자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내면을 추구하여 근대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농노제적 구질서가 무너지고 자본주의적 제관계가 대신 들어서려는 과도기의 러시아에서 시대의 모순에 고민하면서, 그 고민하는 자신의 모습을 전적으로 작품세계에 투영한 그의 문학세계는 현대성을 두드러지게 지니고 있으며, 20세기의 사상과 문학에 깊은 영향을 끼쳤다. 그는 빈민구제병원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도시적인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 이 점이 바로 러시아 도시문학의 선구자로서의 그의 위치를 굳히게 하는 한편, 훗날의 토양주의의 주장에서 엿보이는 바와 같은 농민이상화의 경향마저 그에게서 싹트게 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문학을 좋아하여, 특히 W.스콧의 환상적이며 낭만적인 전기와 역사소설에 흥미를 느꼈다. 16세 때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병사관학교에 입학했고 졸업한 다음에는 공병국에 근무했으나, 싫증을 느껴 1년 남짓 있다가 퇴직했는데, 때마침 번역 출간된 발자크의 《외제니 그랑데》가 호평을 받은 데 힘을 얻어, 직업작가에 뜻을 두게 되었다. 그의 처녀작 《가난한 사람들》(1846)은 도시의 뒷골목에 사는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적 비극과, 그들의 심리적 갈등을 그려낸 중편으로서, 사실주의적 휴머니즘을 기치로 하였던 당시 비평계의 거물인 V.G.벨린스키에게 인정되어, 24세의 무명작가는 일약 ‘새로운 고골리’라는 문명을 떨치게 되었다. 곧 이어 발표한《분신(分身)》(1846)과 《주부》(1847) 등은 벨린스키로부터 심리주의로의 병적인 경향이 있다고 지적되어 호평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이 무렵부터 공상적 사회주의 사상에 관심을 나타내기 시작하여, 《백야(白夜)》(1848) 《네트치카 네즈바노바》(1849) 등의 가작을 씀으로써, 인간의 정열의 여러 모습을 탐구하는 한편, F.M.C.푸리에의 공상적 사학상의 전기(轉機)가 되었으며, 후기의 대작들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일반에게 인정되는 중편 《지하생활자의 수기》(1864)가 이 시기에 씌어진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다. 1864년 잡지 《에포하》를 발행했으나 완전히 실패하여 그는 거액의 빚만 짊어지게 되어 생활이 좀처럼 안정되지 않았다. 1867년 중편 《노름꾼》(1866)의 구술(口述)이 계기가 되어 사귀게 된 속기사 안나 스니트키나와 재혼한 뒤로는, 빚쟁이의 추궁을 피해 4년이나 해외생활을 보내야만 했다. 이 궁핍한 생활 속에서 그의 명성을 불후의 것으로 남기게 되는 《죄와 벌》(1866) 《백치》(1868) 《악령(惡靈)》(1871∼1872) 그리고 중편 《영원한 남편》(1870) 등을 발표했다. 외유에서 돌아와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된 그의 만년의 10년간은 장편 《미성년》(1875)과 그의 생애를 통한 사색의 집대성이라고 할 만한 《카라마조프의 형제들》(1879∼1880) 이외에도, 1873년 이후 시사적 수상(隨想)과 문예평론 ·단편 등을 포함한 자유형식의 문집 《작가의 일기》를 썼다. 그가 죽기 반 년쯤 전 푸슈킨의 동상제막식에서 행한 기념강연은, 열광적인 환영을 받아 불우했던 그의 만년을 장식해 주었다.《죄와 벌》로 시작되는 그의 후기의 대작은 시대의 첨단적인 사회적 ·사상적 ·정치적 문제를 예민하게 반영시킴과 동시에, 인간존재의 근본문제를 제기할 수 있었던 점에 그의 특색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이론적 살인자 라스콜리니코프에 있어서의 인간을 추구한 《죄와 벌》, 조화와 화해를 초래할 아름다운 인간 미슈킨 공작(公爵)의 패배를 묘사한 《백치》, 네차예프 사건에서 소재를 얻어 혁명의 조직과 사상의 병리를 묘사한 《악령》, 청년의 야심적 생태를 다룬 《미성년》, 존속살해범을 주제로 신과 인간의 문제를 정면으로 대결시킨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등, 각 작품에서 다룬 소재가 다르면서도 총체적으로는 내면적인 통일성으로 굳게 연결되어 있는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세계’라고졌다. 바로 알료나 이바노브나 와 소피아(소냐) 이다. 알료나 이바노브나의 고리대금업은 매우 가혹하다. 당시의 사회가 매우 어려웠음을 감안한다면 그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긴 하지만, 그것은 뭇 사람들의 비난과 반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다른 한 사람, 마르멜라도프 의 딸 소피아 세묘노브나 는, 알료나와는 대조적으로 남들의 동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아버지인 마르멜라도프는 역시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에는 어이없이 비극적 결말을 맞는 가련한 인물이지만, 그의 딸인 소피야는 자신을 희생시켜 가족을 수양하는, 불쌍하지만 정말로 장한 인물이다. 그러한 두 인물에 대해 알게 되며 그 자신 역시 하루 하루를 겨우 살아가던 라스콜리니코프가 점점 더 우울해졌음은 당연하다. 동시에 알료나 이바노브나에 대한 미움은 극에 달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생충과 같았던, 알료나 이바노브나를 죽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도 별다른 목적성 없이 말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돈 역시 하나의 목표 내지는 제 2의 목표가 되었을 것이다. 비록 알료나의 돈은 액수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묻어버렸지만 말이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그 자신이 그리 큰 죄를 지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그의 살인 동기에는 우연히 듣게 된 알료나의 나쁜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라스콜리니코프가 극도의 불안감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큰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을 보면, 그의 내면 깊은 곳에는 커다란 죄의식이 있었을 것이다. 그의 불안은 남들로부터 그 자신의 죄를 은폐하려는 데서 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그는 사회의 모습과 그 부조리에 크게 분노를 느꼈지만, 살인을 저지르고서도 불안해하지 않을 만한 배짱 있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 이후에 그는 가족들, 즉 어머니 뿔리헤리야 와 여동생 두냐 와 다시 만나게 되며, 그들과 관련하여 뾰뜨르 뻬뜨로비치(루진) 와 스비드리가일로프 는 두 사람 모두 당시 러시아 사회의 혼란, 부조리를 보여주는 인물들이다. 루진은 돈과 권력이라면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살인자라는 말은 하지 못하는데, 이는 군중의 조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에게 명백한 죄의식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분명히 사람을 죽인 것은 죄이지만, 그의 생각에 의하면,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도 잘 사는 사람은 없어져도 무방하다. 그리고 그 자신은 그런 짓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게 비뚤어져 있던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 앞에 눈물 흘리며 소냐의 참사랑을 느낀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소냐의 헌신적인 사랑 때문이다. 소냐는 사랑과 헌신으로 그를 대했으며, 다른 죄수들 모두가 소냐를 어머니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소냐의 과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한 소냐의 헌신적인 사랑이 있었기에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행동을 진심으로 반성하고 더 나은 인간으로 새로이 부활할 수 있었던 것이다.3. 부조리한 현실과 삶 속의 영혼 구원의식고전이란 많은 시간,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은 책이며 그 깊이와 영향력에 있어서 타에 추종을 받는 수준있는 글을 말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고전은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지는 못하지만 많은 사람이 소장하고 있으며 또한 많은 사람이 읽고자 노력하거나 적어도 한번씩은 시도를 해보았을 것이다. 우리집에도 먼지는 뽀얗게 앉았지만 한 번도 들쳐보지 않은 수많은 고전이 있다. 그 존재만으로 맘이 뿌듯하지만 정작 손은 가지 않는 책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만은 특별하다. 그는 우리나라 소설가들이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는 작가라고 들었다. 그의 심리묘사는 거의 신의 경지에 올랐으며 인간의 숨은 욕망과 신에 대한 탐구의 표현은 참으로 신선하고 놀랍다는 말로 밖에는 표현할 수 없을 듯하다. 죄에 대한 탐구, 인간의 심리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과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관습에서 벗어나고자 한 천재의 갈구를 모조리 느낄 수 있는 글이었다.특히, 라스콜리니코프가 소냐 앞에서 복음서를 읽어주는 장면은 (아마도)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숨막히는 장면 중에 하나일 것이다. 살인자와 매춘부의 만남이라는프스키에 있어서 이 부조리와 불합리는 계몽에 대한 배반이나 도덕적 허무주의로 인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에 대한 더 강력한 믿음을 가리킨다.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을 읽어준다. 라자로의 부활은 곧 소냐의 신앙고백이고, 그녀가 자신의 알몸보다도 더 깊숙이 간직하고 있던 비밀이다. 그녀는 , , 그에게 이 전대미문의 기적을 읽어주면서, 그도 라자로처럼 다시 살아날 것을 증거한다. 그렇다. 라자로가 나흘만에 다시 살아나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지 사흘만에 부활했다는 걸 알게된 이상 다른 선택은 존재하지 않는다. 믿느냐 믿지 않느냐, 둘 중의 하나만 있을 뿐이다. 영혼의 구원이 달린 문제인 것이다. 과연 그녀는 그의 부활을 온 몸으로 믿으며 리자베따를 죽인 이 원수를 더욱 사랑한다. 결국 이 부조리한 사랑은 모든 것을 잃고 가장 비참한 나락에 떨어진 그들을 구원한다. 셰익스피어의 성격비극이 도스토예프스키에게서는 영혼 구원의 드라마가 된다. 햄릿의 죽음은 관객에게는 담담한 카타르시스 효과만을 안겨주지만, 라스콜리니코프의 패배는 새로운 삶에의 희망, 또는 그 이상의 것을 예감하게 한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이론의 상아탑으로부터, 같은 자신의 방으로부터, 얼어붙은 정신의 껍질로부터 부활하여 사람들 곁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이데거의 말마따나 이 생생한 생활세계로 귀환하는 순간이다. 도래한 것이다, 그것도 영혼의 구원을 통해서.4. 인간내면에의 천착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 마땅하다"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죄와 벌'의 기조가 되는 사상이다. 이것은 비록 이 작품을 통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생각이다. 그러나 작가는 가장 보편적이고 당연한 생각에서부터, 인간존재의 가장 변할 수 없는 진리를 추구하고 있다. 이 작품은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인물이 소냐에게 정신적으로 감화되면서, 그리스도적인 사랑과 인종의 사상을 갖게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 당시 널리 퍼져있던 서구적 합리주의에 대한 단죄는 물론, 인간성 회복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호소하는듯하다.
    독후감/창작| 2009.02.14| 7페이지| 1,500원| 조회(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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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운수좋은 날]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1. 현진건의 생애와 문학세계《운수좋은 날》의 저자 현진건은 1920년 단편 '희생화(犧牲花)'를 지에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1921년 '빈처', '술 권하는 사회'로 문명(文名)을 얻고, 1922년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이후 프로 문학의 전성기에 들어서 있던 1927년경부터는 창작 생활을 거의 중단하고 기자 생활에만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1936년에 일장기 말살 사건으로 일본 경찰에 구속되어 약 1년간 옥고를 겪었다. 동아일보 사회부장으로 있던 그는 베를린의 세계 올림픽 경기에서 월계관을 쓴 손기정의 사진을 게재하게 되었을 때 사진부 기자와 함께 투옥되었던 것이다. 관제엽서 2배쯤 크기의 손기정 사진을 게재하면서 사진부에선 가슴의 일장기를 문질러 태극기인지 일장기인지 분간 못하게 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1939년에는 를 신문에 연재하다가 내용이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는 이유로 중간되고 1943년에 병사했다. 해방되기 2년 전 애석하게 작고해 버린 것이다. 18세 때 결혼하여 단 하나 얻은 딸은 백조파의 시인이요, 소설가인 박종화씨 댁 맏며느리가 되었다.그의 문학적 특징은 사실주의의 확립에 있다. 즉, 치밀하고 섬세한 사실주의적 묘사, 짜임새 있는 구성과 반전의 수법, '나'라는 고백적 시점의 사용, 현실에 대한 객관적 묘사 등을 통해 현대 한국 단편 소설의 특징은 단적으로 아이러니의 틀 속에 1920년대의 한국 사회의 한 전형을 창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는 그에게 있어서 현실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미학적 구성 원리이며, 그의 언어는 현실과 사회에 밀착된 현장의 소리이다. 이러한 작품으로는 '빈처', '운수 좋은 날', 'B 사감과 러브레터' 등이 있다. 명(明)과 암(暗), 정신 대 물질, 빈부의 대립 등 이원적 구성을 미적으로 소화하는 데 능하다. 그는 김동인, 염상섭과 함께 우리나라 근대 단편 소설의 모형을 확립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으며, 사실주의 문학의 개척자이다. 전기의 작품 세계는 1920년대 우리나라 사회와 기본환되었다.한편 현진건의 작품 세계는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봉건 사회에서 자본 주의 사회로 이행하는 과도기 지식층의 사회에 대한 갈등을 주로 다루고 있다. 전환기를 살아가면서 과거의 전통적 요소와 새로운 근대적 요소의 부조화를 겪으며 비로소 자아에 눈을 뜨고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신을 발견, 시대 의식을 각성하는 과정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작품으로는 '빈처', '술 권하는 사회' 등이 있다. 제2기는 식민지 정책이 심화되는 상황 속에서 사회와 민족에 대한 이데올로기 의식을 바탕으로 전반적인 모순을 파악해 낸다. 특히 사회계층의 양극화 현상과 하층계급의 불행을 주시했고 민족주의 이데올로기가 심화, 확산되어 식민지 사회의 허위를 파악하는데 주력하였다. 도그마에 의해 훼손되는 진실과 사회적 허구성을 비판하고 있다. 작품으로는 '피아노', ' 할머니의 죽음', '운수 좋은 날' 둥이 이 시기 작품에 속한다. 제3기는 1930년대 군국주의시기에 이르러서는 표면적으로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나타낼 수 없을 정도로 탄압이 강화되자 새로운 세계를 지향하는 유토피아 의식으로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와 맞서 나갔다. 이러한 의식이 현실도피라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려우나 타협의 가능성을 상실한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서의 대응양식을 창출했다는 긍정적 측면도 없지 않다. 작품으로는 '서투른 도적', '무영탑' 등을 들 수 있다.2. 1920년대 민족의 각성, 그리고 리얼리즘 문학1920년의 한국사회는 3·1운동으로 큰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다. 3·1운동은 비록 그 자체가 문화운동은 아니었지만 문화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3·1운동 이후의 사회적인 중요한 변화는 민족의 각성이었고, 독립을 달성하는 길은 실력향상 밖에 없다는 깨우침으로 교육양성과, 물산운동, 농촌의 협동조합운동 등이 일어났고, 동아일보, 조선일보가 창간되며 수많은 잡지들의 출간이 활발해졌다. 1930년대에 들어와서 만주사변(1931년), 중일전쟁(1937년)이 잇달아 일어나게 되어 파시즘이 강화되고 그에 따라 한920년대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이 시기는 먼저 『창조』의 간행에서 비롯된다.『창조』는 그들 문학의 출발을 개화·계몽기의 공리적 문학에 대한 거부에서 찾았다. 餘技의 문학이 아닌 삶의 표현으로서 문학을 중시함을 알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리얼리즘에 바탕을 둔 문학의 창조가 그들의 지향점이었음 말해준다.한편 이 시기는 日本의 식민정책으로 경제적 궁핍화현상이 심화되어 당대의 작가들로 하여금 현실인식을 촉구했다. 그 결과 당대의 작가들은 어두운 현실과 정치적 질곡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으니 이 시대 우리 소설은 한 마디로 하여 식민지 가난한 민중의 삶의 현장 을 중점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또한 이 시기는 서구문학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서구문학의 수용이 활발했다. 그 결과 우리 문학사는 문예사조의 혼류 로 20년대 문학의 성격을 규정하고 있지만, 소설의 경우에는 역시 리얼리즘이 주조를 이루었다. 우리의 리얼리즘은 서구와 일본의 그것을 동시에 받아들임으로 서구와는 달리 과학적 방법보다 주관적 요소가 강한 1인칭시점이나, 자전적 요소가 강화며, 동시에 식민지하 현실에 대한 관심의 증대로 나타나게 되었다. 또 하나 이 시대는 프로문학이 대두하여 계급주의 문학을 주장하는 일군의 작가 있었음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그들의 주장과 이론에 비해 작품적 성과는 미미한 것이었지만 20년대 우리 소설은 서구의 리얼리즘의 수용에 힘입어 당대 현실에 대한 비판에 작가적 역량을 집중시켰다. 그리고 현진건은 바로 이 시대의 대표적 작가였다. 그러면 현진건의 「운수좋은 날」을 중심으로 그의 문학세계와 작품분석을 토대로 소설에 투영된 작가의식을 살펴보며 가난에 대한 그의 견해를 살펴보도록 하겠다.3. 작품 줄거리이 소설의 주인공은 김첨지라는 인력거꾼이다. 비록 가진 것은 없지만 투박하고 순수하게 사는 김첨지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워 보였다. 그의 아내는 심한 중병을 앓고 있다. 어느 날, 김첨지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력거를 끌어 돈을 벌기 위해 나간다. 그러 마음에 걸린다. 결말 부분에 아내에게 불행한 일이 오는 것을 예감하는 듯 말이다. 그렇게 일을 나간 그에게 유난히도 그날따라 돈이 잘 벌리게 되는 행운이 따른다. 그는 이게 '웬 횡재냐?'하며 열심히 돈을 번다. 일을 끝마친 뒤에 그는 술집에 들러 술을 마신 뒤 아픈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가게 된다. 김첨지의 아내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겉으론 아내에게 거칠게 대하지만 김첨지는 정말로 아내를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설렁탕을 사서 집에 간 김첨지는 싸늘하게 식어있는 아내를 보고 바로 주저앉아 버리고 만다. 바로 아내가 자신이 없는 사이에 죽은 것이다. 김첨지는 흐느끼면서 그동안 아내에게 막대한 것과 잘 대해 주지 못한 것들을 후회하며 아내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다. 이 작품의 내용대로라면 작품의 제목을 '운수 나쁜 날'이라 해야 맞을 것이다. 돈은 많이 벌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자신의 아내를 잃은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운수 좋은날'이라는 제목이 훨씬 나에게는 와 닿는다. 그 시대의 생명보다는 돈이 귀중했던 잔인한 시대상을 잘 말해주기 때문이다.4. 운수좋은 날을 통해 본 현진건의 현실인식「희생화」를 에 발표한 1920년 이후 20여 편의 단편과 3편의 장편을 남긴 빙허 현진건은 생활과 사회의식을 기조로 한국의 단편문학을 정착시키고 리얼리즘 문학의 기틀을 마련한 뛰어난 단편소설가로 평가받는다.식민지 상황의 울분을 술로 달래면서 방황하던 현진건은 조화의 극치, 묘사의 절미, 완미한 기법으로 작품을 쓰면서 일장기말살 등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살아간다. 차근차근하게 제 주위를 관조하고 고요하게 심장의 고동 하는 소리를 들을 제 이것이야말로 우리 문학의 운명인줄 안다 고 그는 당시의 시대적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조선과 조선혼 을 찾으려고 했다. 우리 단편소설사의 전개 속에서 「운수 좋은 날」과 「고향」을 비롯한 현진건의 단편이 거둔 문학적 성공은 리얼리즘의 새로운 전진을 이룩한 20년대 신문학운동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되는 것 태어난 현진건은 애국지사로 옥사한 형 정건씨의 항일사상의 영향아래 성장했다. 16세의 현진건은 향리에서 결혼하고 동경의 성성중학교에 잠시 적을 두었다가 다시 형님을 찾아 상해로 건너가 호강대학 독일어 전문부를 중퇴했다. 동인에 참가한 것이 그의 문단 적인 첫출발이 되었으며, 처녀작은 「희생화(1920)」였으나, 그것은 감상문 적인 습작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고, 제2작인 「빈처(1921)」로서 문단 적인 명성을 얻었다. 염상섭과 함께 시대일보, 매일신보 등의 기자생활을 거쳐 한 때 동아일보의 사회부장직에도 있었으나, 소위 1936년 일장기 말살사건에 연좌되어 일제에 의하여 1년 언도로 투옥되었다가 이듬해 신문사도 그만 두었다. 일제 말기에는 작품활동도 중지하고 창의문 밖 부암동에서 양계를 하며 침묵 속에서 세월을 보내다가, 조국의 광복이 바로 눈앞에 와 닿은 8·15해방 2년 전인 43년 음력 3월 21일에 서거했다. 현진건의 문학세계는 대체로 세 갈래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로는 빈처 , 술 권하는 사회(1921) , 타락자(1921) 등과 같이 작가 자신의 신변 체험적인 색채가 짙게 나타나는 작품들, 둘째는 운수좋은날(1924) , 불(1925) , B사감과 러브레터(1925) 등과 같이 당대 현실 및 인간성에 대한 비판적 색채가 짙게 나타나는 작품들, 셋째는 적도(1933) , 무영탑(1938) 등과 같은 신문연재 장편소설들의 세 가지가 그것이다.첫 번째 계열에 있어서의 일관된 문학적 특성은 빈곤과 역경 속에서도 자기 뜻을 세워 보려고 안간 힘 쓰는 작가 지망생의 방황과 좌절감을 부각시키는 것이며, 두 번째의 계열에 속하는 일련의 작품들에 있어서는 신문 연재소설이라는 특성에서 비롯되는 대중소설 내지 통속 소설적 성격이 상당히 보이기는 하지만, 민족주의적 색채가 짙게 나타나는 것이 그 특색이라 하겠다. 그의 작가적 생애와 관련시켜 볼 때에 첫 번째 계열은 초기의 작품들이고, 두 번째의 계열은 그 다음의 것들이며, 세 번째의 계열은 대체로 일제 말기에 접있다.
    인문/어학| 2009.02.02| 5페이지| 1,000원| 조회(1,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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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플라톤 사상] 플라톤의 사상과 정치철학 평가A좋아요
    플라톤의 사상과 정치철학(이데아론, 인간론, 우주론, 이상국가론)1. 플라톤의 삶과 철학플라톤의 사상플라톤에게 필로소피아란 소크라테스의 필로소피아이며 소크라테스야말로 진정한 철학자 였다. 전기에서 중기에 걸친 대화편의 대부분이 소크라테스의 추억을 간직하고, 소크라테스 속에 구현되는 철학자 를 변호, 찬양하려 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의 재판 장면을 적은 《소크라테스의 변명》, 죽음에 직면한 철학자의 태도를 묘사한 《파이돈》은 말할 나위도 없고, 《향연》이나 《국가론》도 또한 그와 같은 뜻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의 하나이다. 소크라테스에게 필로소피아란, 가장 중요한 것을 모른다는 자신의 무지(無知)를 깨닫는 데 있었다. 이 무지를 깨닫는 일 속에 머물며 아포리아 속에 있으면서 근원으로부터의 물음에 스스로를 맡기는 일이 바로 필로소피아이다. 전기 대화론에서, 대화가 항시 아포리아에 수렴되고 무지의 고백으로 끝나는 것은 이와 같은 사실을 말해 준다. 아포리아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포리아에 머물기 위한 필로소피아의 술책이 미토스와 디알렉티케이다. 시간과 더불어 변하는 일 없이 동일한 것으로서 머무는 영원불변한 것을 플라톤은 이데아라 불렀다. 이데아는 생성에 대한 존재, 다(多)에 대한 하나, 타(他)에 대한 동(同)이며, 육체의 감각으로 파악할 수 없고, 영혼의 눈인 이성에 의해서만 관찰할 수 있다. 생성의 세계 가시계는 존재의 세계(불가시계)를 분유하며, 모방하는 데에서만 이에 입각하여 존재하고, 두 세계 사이에는 실물과 그림자, 실물과 모상의 비례가 있다(《국가론》의 선분(線分) ·동굴 ·태양의 비유, 《티마이오스》의 우주창성론 등).인간이 탄생과 죽음에 의해서 한계지어진‘이 세상(여기)’과‘저 세상(저기)’의 구별을 플라톤은 이 두 세계를 따로 상대하는 것으로 구상하였고(파이돈, 파이드로스 등), 이 양계를 편력하는 불멸의 영혼에 관한 광채육리한 미토스로써 이를 장식하였다. 영혼은 원래 천상에 있으면서 참 실재의 관조를 즐겼으나 사악한 사물은 오로지 그것들이 어느 정도 형상의 영원한 실재성과 진리를 모사 하고, 분유 하고 체현하는가에 따라서 실재적일 수 있다. 이데아계는 선의 이데아를 정점으로 상하체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어떤 이데아도 선의 이데아와의 관련 없이는 정당하게 인식될 수 없다. 플라톤은 최고선의 이데아를 태양에 비유하여 형상의 존재의 원천이며 동시에 진리의 원천이라고 한다. 최고선의 이데아는 그리스도교적 신의 플라톤적 형태로 볼 수 있으며 이것이 플라톤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영향력의 기본적 측면이다.플라톤은 사물들을 이해함에 있어서 이제까지의 희랍 철학자들과는 달리 한 가지 측면에서만 사물들에 접근하지 않고, 우리의 오관과 지성을 이용하여 감각 및 사유의 두 측면에서 접근하는 최초의 거창한 철학세계를 구축한다. 있는 것들 은 눈에 보이는 감각되는 것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지적인 것들로 나뉘는데, 그가 중점을 둔 이데아의 인식은 후자의 방법에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후자적 방법과 그 목적에 중점을 둔 것은 당시의 만연된 풍조가 감각적 측면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인 데 대한 안티테제로서이지, 사물을 모두 그런 식으로만 본 것은 아니다. 그는 그 두 측면 모두가 우리 자신의 풍부한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이데아 인식을 설명하기 위한 전제로서 영혼이 육체와 결합하기 전 이미 이데아계에 존재했으며, 이데아의 지식을 갖고 있었다고 상정한다. 따라서 인식이란 망각된 지식을 상기 하는 과정이다. 이데아를 상기하는 과정은 수학적 사유와 변증법적 사유로 대별되는데 수학적 사유는 감각적 대상의 도움을 요구하기에 완전한 학적 인식이라 볼 수 없다. 감각적 지각은 참된 인식은 아니지만 이데아 인식을 위한 상기적 재료의 역할을 한다. 그러나 참된 인식을 방해하여 억견을 낳는 역할 또한 수행하므로 감각적 지각은 인식을 위한 이중적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변증법에 의하여 궁극적으로 알게 되는 최고의 지식은 바로 선의 이데아 , 또는 선 그 자체 이다. 선의 이데아는 인식되는 것들라서 이와 같은 예에서, 우리는 물질적인 대상들이 불완전하게 모방하는 초시간적 대상, 곧 형상이 있음은 분명히 알 수 있다.플라톤의 인간의 본질과 사회에 대한 이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형상론의 도덕적 측면이다. 가령 용기 와 정의 같은 도덕적인 낱말들을 생각해 봐라. 일반적인 모든 용어에서 그랬듯이 플라톤은, 용감한 행동, 의로운 행동, 용감한 사람, 의로운 사람이라 되어 있는 여러 개별적인 행동과 사람들을, 그 형상인 용기, 정의와는 구별하였다. 일반적인 낱말은 어느 면으로 그 대응되는 형상을 귀감으로 모방하는 그 행동들과 사람들에게도 바로 적용된다. 그러나 오히려 유클리드 기하학의 예들에서처럼, 어떠한 행동이나 사람도 절대적으로 용기나 정의의 완전한 모델이 못 된다.왜냐하면 누구도 도덕적으로 완전하지 못하다는 자명한 이치 때문이다. 그래서 도덕적 형상들은 객관적인 도덕 기준들을 설정하여 그 기준들에 의하여 인간 행위와 성격을 판단한다. 선 이라는 낱말은 도덕에 관계되는 낱말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낱말이기 때문에, 선이라는 형상은 형상들 중에서 가장 돋보이며, 거의 신과 같은 역할을 하며 모든 실재와 진리와 선함의 근원이 된다. 형상이 우리에게 설정해 준 절대적 기준들은 단지 개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정치 생활의 전반을 위한 것이므로, 그들은 이상적 형태의 인간 사회가 어떤 것인가를 규정해 준다. 따라서 형상론은 플라톤 시대에 만연되었던 지적-도덕적 회의주의에 대해 이 철학자가 제시한 하나의 해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이론은 우주에 대한, 그리고 인간의 삶의 목표와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의 목표에 대한 참다운 지식을 얻기 위하여 지성의 힘을 발휘한 가장 설득력 있는 진술 가운데 하나이다. 또 그것은 지성에 대한, 그리고 윤리학에 대한 소크라테스적인 관심에 대한 그리스적인 신뢰의 정점으로 여겨질 수 있다.4. 플라톤의 이상국가론플라톤은 훌륭한 상태의 영혼이란 영혼의 조화로운 질서로 보았다. 영혼의 네 가지 기본 덕목은 지혜, 이원론에 의하면, 인간의 영원이나 정신은 육체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비물질적인 실체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이 파괴될 수 없다, 즉 영혼은 인간이 탄생하기 전에도 계속 존재해 있었고, 그가 죽은 후에도 영원히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론들이 에서 언급되고 있지만(608-11),이들에 대한 그의 주요한 논의는 다른 대화들, 특히와 에서 나타나고 있다. 영혼의 비물질론과 불멸론은 에서 중심적인 주제로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형상의 세계와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물질의 세계라는 플라톤의 대비와 자연히 관련되는 이론이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에게 있어서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 형상들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도덕의 관심이 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에서 보다 중점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영혼을 세 부분으로 나눈 이론이다. 가령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끼나, 물에 독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손에 넣을 수 있는 물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에 일어날 수 있는 정신적 갈등을 생각해 보라. 플라톤은 그 사람의 마음에 그물을 마시도록 유혹하는 첫 번째 요소와 그것을 금하는 두 번째 요소가 있다고 논한다. 그 첫 번째 요소를 욕망 혹은 정욕(배고픔, 갈증 혹은 성욕 같은 모든 육체적 욕망을 뜻함)이라고 부르고, 두 번째 요소를 이성이라고 부른다. 플라톤은 인간의 마음에는 이 외에도 세 번째 요소가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 바, 즉 시체더미를 보고자 하는 불같은 욕망을 느끼나, 그것을 보고자 하는 자신에게 혐오를 느끼는 사람의 이야기에서 예를 들고 있듯이, 스스로에 대한 화나 분개의 감정이 느껴질 때 생기는 정신적 갈등의 경우가 그것이다. 그는 여기서 욕망과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분개나 화 또는 혈기(spirit)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부를 수 있는 세 번째 요소라고 주장한다. 플라토는 어린아이들이 이성을 갖추기 훨씬 전에 혈기를 보여 준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혈기는 일종의 자기 주장 혹은 이기심 같은 것으로서 내면적 갈등이 라톤은 틀림없이 아테네 정치에서 얻은 자신의 경험으로 인해서, 민주주의에 대한 대단한 편견을 가지게 되었다. 모든 개인이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 무엇인가를 다 똑같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모든 이에게 동등한 발언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플라톤은 생각했다. 그는 민주 사회의 전형적 개인은 훈련이 부족하며, 오직 순간의 쾌락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존재라고 비난했다. 또 전제 정치로 말한다면, 민주주의 자유 방임이 낳는 바로 그 무정부 상태와 무질서를 초래하는 전형적인 정치 체계라고 플라톤은 생각하고 있다. 한 지도자가 절대 권력을 얻게 되면,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파렴치한 온갖 수단 방법을 동원하게 되므로, 그렇게 되면 인간의 본성에 있는 가장 범죄적인 요소들이 사회에 나타나 그 사회를 폭력 사회로 만들게 되는 것이다. 플라톤은 각각 이런 유형의 개인과 사회는 이상으로부터 한층 유리되어 더욱더 불행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고 결론짓고 있다.플라톤이 진단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에 나타나는 결함들은 그가 인간 사회에서 발견하고 있는 결함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누구도 이 철학자에게 인간의 잘못이 개인의 책임이냐 혹은 사회의 책임이냐 하는 단순한 의문을 제기할 수 없다. 그는 오히려 이 두 요소가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불완전한 사회는 불완전한 개인을 낳고, 이 불완전한 개인은 불완전한 사회를 낳는 데 이바지하는 것이다. 각 개인에게 정의가 없는 한 국가에도 정의가 있을 수 없고, 국가에 정의가 없는 한 각 개인에게도 정의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정의는 이 양 경우에 있어서 동일한 것으로, 각자가 각자의 직분을 행하는 자연적인 구성 요소 사이의 조화이며, 그 반대인 불의는 부조화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과 국가 사이에 어떻게 조화를 확립시키는가가 문제되는 것이다.7. 철인에 의한 통치와 사회의 계급화철학자들이 이 세상의 왕이 되거나 혹은 왕과 통치자들로 불리는 사람들이 실제로 철학자들이 되어, 정치
    인문/어학| 2009.02.02| 12페이지| 2,000원| 조회(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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