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이다. 디지털은 하루하루 발전해 가고 있고 그에 따라 아날로그는 점차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디지털이 아날로그적 감성을 잠식하고 있다. 이제 수동 필름 카메라는 마니아들에 의해 중고 매장에서나 사고 팔린다. 흑백 필름은 단종 되고 있다. 지하철을 타고 주위를 둘러보면 핸드폰, PMP, 닌텐도DS, PSP등 모두들 손에 디지털 매체들을 하나씩 들고 있다. 이런 세상 속에서 과연 아날로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특히 아날로그적 미디어를 대표하는 신문은 설 자리를 잃지 않고, 현재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생존할 수 있을까? 결과적으로 나의 생각부터 말하자면, 신문은 살아남을 수 있고 또한 살아남아야 한다.디지털 산업, 특히 인터넷의 발전으로 이제 우리는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원하는 기사를 클릭하여 찾아볼 수 있고 그와 관련된 기사, 사진, 동영상까지 손가락 하나로 뭐든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신문으로는 그러한 일들을 할 수 없다. 매일 아침 집으로 배달되는, 혹은 전철역 앞에서 배부된 신문에는 내가 원하는 기사만이 선별되어 실려있지도 않고 관련된 자료를 검색할 수도 없으며 관심 없는 내용의 기사들도 수두룩하다. 인터넷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종이신문은 신문 그 자체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첫 번째, 신문은 개인적이지 않다. 사람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동안 핸드폰, 닌텐도, PSP등으로 게임을 하거나, PMP나 핸드폰 DMB로 실시간 TV, 영화를 보는 등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동이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의 핸드폰 등을 쳐다보면 그 사람은 나를 의식한다. 마치 자신의 비밀을 누가 들여다보기라도 하는 것처럼 불쾌감을 보이고 눈치를 준다. 그러나 펼쳐보는 신문은 다르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종이신문을 펼쳐보면 자칫 옆 사람에게 피해가 될 수도 있겠지만 즐거움이 될 수도 있다. 옆 사람이 들고 있는 커다란 종이신문을 어깨너머로 함께 들여다봐도 그는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 신문을 경계로 마주보고 서있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이 보고 있는 신문의 반대편 페이지를 얼마든지 읽을 수 있다. 거기에다 신문은 시끄럽지 않으니 더욱 매력적이다.두 번째, 신문은 여러 가지 볼거리를 제공한다. 신문을 즐겨 본다고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문은 직접적으로는 우리에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며 간접적으로는 비판의식을 키워줄 수 있고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유익한 신문에도 오락적인 요소가 있다. 내가 아침마다 신문에서 찾아 즐겨 하는 게임인 스도쿠(단순히 오락적이지 않고 머리를 써야 하는 게임)를 포함해 가로세로 퍼즐, 미로 게임, 숨은 그림 찾기 등 다양한 오락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 밖에도 재미로 보는 운세, 만화나 만평 등 수많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물론 오락적 기능에 있어서라면 인터넷이나 각종 디지털 전자기기들이 단연 앞선다. 그러나 그들은 오락적 기능만을 제공할 뿐이다. 설사 아침마다 단순한 오락, 연예적 목적만으로 무가지 신문을 잡아들었다 하더라도 최소한 그 신문 1면의 헤드라인 기사 정도는 스쳐 지나가며 읽어보게 되기 마련이다. 신문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그보다 더 큰 유익함 또한 가지고 있다.DVD, 비디오, P2P 공유가 일반화 된 요즘, 우리는 많은 영화를 점점 더 빠르고 쉽게 접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화관에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러한 것이 영화 관객의 수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확실한 사실은 영화산업은 결코 망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화는 친구, 혹은 연인과 함께 어두운 영화관 속에서 빵빵한 사운드와 커다란 스크린을 통해 봐야 제 맛이다. 신문도 마찬가지이다.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새로운 기사가 업데이트 되고 이를 접할 수 있는 기회 또한 매우 쉽지만 그것은 매력이 없다. 아침마다 배달된, 혹은 무료로 배부된 따끈따끈한 신문지를 직접 손으로 넘겨가며 하나하나 새로운 소식을 확인하는 과정 자체가 신문이 가진 또 하나의 매력이다. 아무리 디지털 전자기기가 보편화 되었다 하더라도 가격의 경쟁력 면에서는 신문을 따라올 수 없다. 요즘에는 다양한 무가지 신문까지 있으니 더욱 그렇다.그러나 나는 이 모든 것 중 신문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이자 마력은 바로 뜻하지 않은 관심과 그곳에서 오는 깨달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미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익숙해져 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실행한 후 각종 검색 포털 사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기사나 이야기가 있다. 우리는 그 중 나의 관심사와 맞아 떨어지는 것, 나의 궁금증을 하는 불러일으키는 것, 혹은 좀 더 자극적이고 좀 더 선정적인 것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선택은 나의 자유다. 보고 싶은 것을 클릭해서 보면 되고 보고 싶지 않은 것, 관심이 없는 것은 무시하고 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러나 신문은 다르다. 물론 보고 싶은 기사만을 골라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서처럼 그 기사만을 클릭해 전체화면으로 볼 수는 없다. 전면 광고가 아닌 이상 한 페이지에는 수많은 기사들이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때문에 의도치 않게 옆의 기사들에도 눈이 가게 마련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향일지도 모르겠지만 인터넷을 사용할 때에는 신문을 볼 때보다 더욱 자극적인 것을 찾게 되며 그러한 제목에 눈이 간다. 평범한 제목의 기사나 나와 전혀 관련 없는 이야기를 볼 때에는 재빨리 눈이 돌아간다. 클릭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문을 보면 그러한 기사에 눈이 간다. 어떨 때에는 1면의 헤드라인 기사보다 신문지 한편에 작게 실린 기사에 더욱 눈이 갈 때도 있다. 의도치 않게 나와 관련 없는 세상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으며 그로 인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기도 한다. 늘 자극적인 것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신문을 볼 때만큼은 자극적인 세상의 압박으로부터 한발자국 물러서서 편안해 지는 기분이다.이렇게 나처럼 신문이라는 매체에 각자 나름의 가치와 매력을 부여하고 구독해오는 사람이 여전히 많이 남아 있기에 신문이 수많은 세기를 거쳐서도 살아남아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앞으로의 일이다. 나를 비롯한 세대와 그 아래 세대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신문이라는 매체에 덜 익숙하다(우리 또래의 젊은이들이 그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보다 더 어린 세대의 아이들은 신문보단 디지털 전자기기에 더욱 편안함과 익숙함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가다 보면 신문은 어느 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손쉽고 빠른 인터넷의 자극성에만 노출되어 신문의 아날로그적 감성은 아예 배우지도 못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따라서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신문에 익숙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내가 초, 중학교에 다닐 때 까지만 해도 매 년마다 학급신문을 제작하였고 학교 내에서 발간되는 신문이 있었으며 신문을 이용한 수업도 꽤 있었다. NIE 수업도 받아본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나 장치, 수업들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이미 학교 신문은 인터넷 홈페이지로 대체되었다. 이러한 경향이 계속된다면 아이들이 신문이라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시대가 올 수도 있는 노릇이다. 아이들이 신문에 익숙해 질 수 있도록 학급신문과 교내신문을 적극적으로 발간시키고 신문을 이용한 교육들이 늘어난다면 아이들이 신문에 대해 가지는 거부감이 줄어들 것이며 신문을 일상 속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그리고 신문에 익숙해진 그 아이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연스레 신문을 찾을 것이며 나와 같이 신문 존재의 당위성을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이 계속 존재한다면 신문은 사라질 수 없을 것이다.이러한 견해를 가진 사람은 우리 사회 내에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과는 관계없이 신문의 구독자 수는 매해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신문사는 신문지뿐만 아니라 다른 뉴스매체의 개발 또한 불가피하며 이러한 추세에 맞춰 각각의 신문사가 인터넷 신문을 함께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앞서 신문紙만이 가지는 고유의 특성을 더욱 개발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앞에서 언급했던 것을 비롯한 각자 나름의 가치를 신문에 부여할 것이다. 신문사는 이러한 대중들의 생각을 조사하고 수렴하여 신문지만이 가지는 장점을 최대한 부각시켜야 한다. 떨어지는 구독자 수를 보며 한탄만 하고 있어서는 아무 것도 변할 것이 없다.
COM3 EssayReport on Effective Communication Campaigns:Coca-Cola launched successful communication campaigns in China and KoreaName:Student number:Class:ProfessorDate:Report on effective communication campaigns:Coca-Cola launched successful communication campaigns in China and KoreaIntroductionThe purpose of this paper is going to argue Coca-Cola launched two effective communication campaigns in China and Korea in different ways, and then an evaluation and comparison on both campaigns will be followed.The communication campaign is a social marketing approach that helps to support the interest and energy of the project team or organization. Besides, Edwards(2008) states that communication campaign is the process of organizing and planning activities that are designed to address accurate information to the audiences through utilizing techniques such as communication timing, various media sources and participant feedback tools. Moreover, the Northern Family (2003) believes that a good commng water-saving tools and equipment like designing water-saving sewage line which can be used to collect possible reutilization water to reused to mop the floor and flush the toilet and so on. Therefore, this water-saving scheme can not only reduce the domestic wastewater but also decrease amount of family costs.As a consequence, these schemes were visually different from each other and in general can be divided into six areas, such as domestic water reutilization, water-saving publicity in urban community and green space irrigation technology management and so on. In addition, after four months, there were 63 possible schemes for saving water were selected by campaign committee and those schemes gained funds of “Save a Barrel of Water” from Coca-Cola in order to be implemented and promoted in community and public. Furthermore, there were two typical schemes were completed successfully by students among those 63 schemes for saving water. The first one was called “Water-saving Plan in Ch Korea are produced and distributed by ‘Coca-Cola Korea’. Coca-Cola promotes their products by glocalized marketing campaign.Coca-Cola has had success in glocalization making considerable market share in South Korea. However, they have been losing their main established customers who are in their twenties. Rival company, Lotte Chilsung held 38% of market share in 2007 and it was 8% more than that of Coca-Cola. Comparing to US market which is dominated by Coca-Cola, the situation in South Korea is not good for Coca-Cola. Because of the ‘well-being’ craze in Korea, the customers have been less interested in carbonated drinks and relatively more interested in healthy drinks such as green tea, mineral water, vitamin water, and fruit juice. These market changes resulted in rapid decreasing of the sales volume of Coca-Cola. Therefore Coca-Cola campaign of South Korea is focused on the aspect of marketing.They have used the Internet as their marketing tool in South Korea. Looking into presennd Murray Johnson (2001) stated that when defining effectiveness of campaign in contextual aspect, the important thing is ‘why the decision to use communication was made in the first place and whether or not that decision was an appropriate one’. Therefore it was appropriate that Coca-Cola chose Internet media as their marketing tool. The main marketing tool is TV commercial advertisement and it covers a majority of Korean people who like American culture. And the minor and glocalized marketing tool, Internet media such as blog attract Korean young people including anti-American.Finally, the marketing campaign which uses Internet media in Korea is effective in aspect of cost as well. According to Salmon and Murray Johnson (2001), ‘reaching right individuals and motivate them to seek appropriate testing and treatment’ means ‘cost effectiveness’. The users who actively access Internet media are usually in their twenties and the target customer of Coca-Cola is also twenties. Also the costy-Johnson, L. (2001). Because each campaign has different goals, target group and tool, they should be assessed by different criteria and both are turned out to be effective.From this paper it is proved that effective communication campaign should set its objectives and target group properly according to the culture or situation. In addition it should be evaluated by proper point of view. For further research, the case of effective and non-effective communication campaign of other countries would be considered.ReferencesNorthern Family (2001), Communication Campaign – A Major Tool of Social Marketing Prince George CampaignsJD Edwards (2008), Oracle Change Management Communication CampaignWenya, shao. (2009). Coca-Cola Water-saving Practice: Save a Barrel of Water. World Environment, 1994-2010 China Academic Journal Electronic Publishing House.Salmon, C.T., & Murray-Johnson, L. (2001). Communication campaign effectiveness: Critical distinctions. R.E. Rice& C.K. Atkin, Public communicatiy
Intro“내가 아줌마를 왜 싫어하는지 아세요? 아줌마한테는 1순위가 일이 아니라 애라서 그래요.2순위는 남편, 3순위는 시댁! 4순위가 일.이럴 거면 그냥 집에서 애나 보세요. 도대체 이럴 거면서 꾸역꾸역 회사에 나오는 이유가 뭡니까?!”“저 6년 전에 일이랑 연애했었어요 미친 듯이요.한참 불타고 뜨거울 때 애들 때문에 억지로 헤어진 거에요.지금 나대신 그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보면 질투 나고 미치겠어요. 저도 다시 하고 싶다구요”.드라마 「워킹맘」에 나온 대사이다. 샘플을 정리해야 하는 업무가 남았지만 아이를 맡길 데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아이들과 함께 회사의 창고에서 일을 하던 중 직장 상사가 들어와 이를 꾸짖는 장면이었다. 이 장면을 통해 회사에서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일은 하나의 예일 뿐이다. 여성들은 직장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수많은 차별을 받아왔다. 똑같이, 혹은 더 많은 양의 일을 해도 더 적은 임금을 받아야 했고 부당한 대우에 속 시원히 대응 한번 못하고 현실을 수용해왔다. 그러나 일하는 여성들의 스트레스는 여기서 끝이 나지 않는다. 그녀들은 직장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집에 돌아와 휴식을 만끽하기는커녕 또 다른 일을 해야 한다. 저 대화가 현실에서 일어났다면, 대화 속 남녀가 각자의 가정을 가지고 있다면, 그 후의 일은 안 봐도 뻔하다. ‘그’는 퇴근 후, 언성을 높인 일을 떠올리며 아내에게 스트레스를 표현할 것이고 이러한 이유로 가사일을 고려 대상에서 제외시키곤 휴식을 취할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샘플 정리를 마친 후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서는 휴식을 취하는 남편의 히스테리를 받아주며 저녁식사를 준비 할 것이다.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각각의 방법으로 해소하는 남편들을 받아주며 그녀들은 가사노동이라는 또 한가지 직업, 즉 이중노동을 해야 했다. 그녀들은 1년에 13개월 일을 하고 있다.도시의 소작농 (본문 요약)알리 러셀 혹실드의 「돈 잘 버는 여자 밥 잘 하는 남자」는 1년에직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이렇게 여성들이 빠른 변화속도에 발맞추어 적응해 가는 동안에도 남성들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여성들의 이러한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에 혼란을 겪게 되었다. ‘지연된 혁명’이란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나타난 긴장을 나타낸다.끊임없는 긴장 상황 속에서 여성과 남성들은 자신이 가진 성 이데올로기에 따라 각기 다른 성 전략을 만들어냈다. 성 이데올로기는 전통적 가치, 현대적 가치, 과도기적 가치로 나눌 수 있는데, 알리 러셀이 관찰한 10쌍의 부부 또한 개개인이 가진 성 이데올로기에 따라 각기 다른 성 전략을 행사했다. 또한 각각의 부부들은 각기 다른 가족신화family myth를 만들어 그들의 은밀하고도 핵심적인 갈등의 진실을 은폐하고 표면적으로 긴장을 완화시켰다.알리 러셀은 또한 언론의 광고에서 ‘한 손에는 서류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생글생글 웃는 아이의 손을 잡고 머리칼을 휘날리며 성큼성큼 걷고 있는 여자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슈퍼엄마’의 모습이 현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상상적 존재에 가깝다고 지적했다. 일하는 여성들은 일과 육아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고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다. 슈퍼엄마는 적극적으로 가사를 분담하는 남편을 가진 중산층 백인에게나 존재 할 법 한 모델이었다. 요즘 언론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알파걸’이나 ‘골드미스’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 될 수 있다.알리 러셀은 지연된 혁명을 해결하기 위해선 여성과 남성이 새로운 전략을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책을 마무리 짓는다. 특히 남자들의 노력이 중요하다. 여성들은 이미 수년간을 희생하며 이중노동을 책임지고 있다. 여성들은 적극적으로 이에 따른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남편이 가사를 분담할 수 있도록 장려해야 한다. 남성은 전통적, 혹은 과도적 성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희생하는 법을 깨우쳐야 한다. 여성과 남성은 새로운 기준에서 ‘균형잡기’를 해야 한다. 직장문화는 더 이상 무조건적인 가정문화의 희생을 요구해선 안되고 정책적으로도 이를 보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수능이 끝나고 커피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나의 퇴근시간은 11시였고, 커피숍에 술을 드시러 오는 손님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퇴근시간 무렵, 아버지뻘 정도 되어 보이는 아저씨들께서 양주를 드시러 오셨다. 남자 아르바이트생이 두 명이나 있었지만 사장님은 이럴 땐 여자가 가는 거라며 굳이 나에게 서빙을 시키셨다. 난 그러한 상황에서 어떤 대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묵묵히 주어진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우리 가정도 다르지 않았다. 공무원이신 아버지와 전업주부이신 어머니는 두분 다 전통주의에 가까운 과도적 성 이데올로기를 가지셨다. 어머니는 결혼 전에 직장에 다니셨지만 지금은 집에서 일을 하시며 아버지를 뒷바라지 하신다. 내가 보기에 아버지는 꽤 권위적이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권위를 적극 높여주셨다. 굳이 직접적으로 ‘물 떠와’ 라는 말을 하시진 않지만 어머니는 아버지가 필요하신 것을 미리 파악하고 나서서 해결해 주신다. 가끔 그런 ‘무언의 심부름’은 나에게 전가되기 때문에 나는 이런 아버지의 권위적 행동이 조금 불만스럽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집을 비우실 때와 아프실 때(전통주의적 여성의 대표격인 카르멘과 같이 엄마는 자주 앓아 누우셨다)를 제외하곤 집안일을 거의 하시지 않는다(수저를 놓고 밥을 푸는 일). 어머니는 당신께서 집을 비우시면 아버지가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상당히 미안해하시기 때문에 거의 집을 비우시지 않는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퇴근 전, 집에서 밥을 먹을 것인지, 밖에서 해결한 것인지의 여부를 미리 전화나 문자 메시지로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매우 고마워 하신다. 그리고 아버지는 집안일을 잘 돕지 않는 나와 오빠를 엄마 앞에서 자주 지적하고 꾸짖는 행위를 통해 가사분담의 짐을 덜고 합리화 하시는 것 같다(성 전략, 가족신화). 사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오빠와 나의 방학숙제를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 그러나 가사를 분담하셨던 기억은 찾을 수 없다. 어머니는 성당 니 또한 어쩔 수 없이 고정된 성 이데올로기의 지배를 받으셨다. 어머니가 어쩌다 한번 집을 비우실 때에 가사책임은 무조건 여자인 내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이다. ‘너가 여자인데 엄마 없으면 아빠랑 오빠 밥도 챙겨드리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그래야 되는거 아니니?’ 라는 꾸지람을 들을 때 나는 조금 화가 난다. 내가 ‘막내’이기 때문이 아니라 ‘여자’이기 때문에 엄마의 빈자리를 당연히 내가 채워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명절에 오빠와 함께 좋아하는 TV프로그램을 본다는 이유로 제사음식 만드는 일을 돕지 못했을 때도 어머니는 나에게만 꾸지람을 하셨다. 같이 TV를 본 오빠는 별다른 죄의식이 없어 보였다. 큰아버지와 목욕탕을 다녀오신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 가정의 모습은 책에서 나오는 맞벌이 부부와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맞벌이 가정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변의 맞벌이 부부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보고자 했다.해결의 가능성주변의 맞벌이 가정을 찾아보고자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일하는 여성들은 어렸을 적 나의 선생님들이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렸을 때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며 학원을 많이 보내셨는데 그 중 피아노, 서예, 미술 선생님들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녀들은 모두 한 가정의 어머니이자 일하는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그녀들은 다른 일하는 여성과는 조금 달랐다. 학원이 아닌 가정집에서 수업을 했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은 그들의 집 거실, 혹은 방을 할애하여 아이들을 가르치셨다. 그녀들은 아이들을 가르치며 틈틈이 집안일을 하시고 아이를 돌보셨다.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정신이 없었다. 이런 근무 형태는 출퇴근의 불편함이 없는 장점을 가지지만 바깥일과 집안일의 구분이 모호해지며 어느 쪽에도 온전한 관심을 쏟지 못하는 단점을 가졌다. 그래서 나는 다른 맞벌이 부부의 예를 찾던 중 고3때 서로의 가족사까지 털어놓으며 힘든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를 떠올렸다. 그녀는 가족은 가사분담을 이유로 갈등을 빚을 일이 적었을 것이다.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우리가 무조건적으로 개인주의를 받아들여 철저히 개인적인 생활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 개인주의적 사고방식은 주부들의 이중노동에 대한 전망을 밝혀줄 가능성이 충분하다. 개인주의는 사람을 남∙여의 기준이 아니라 각각의 개인으로 구분한다는 데에서 의미가 있다. 아마 친구의 남동생이 성장하여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을 때 그는 자연스럽게 가사분담을 할 것이며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받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책에서 언급된 스웨덴의 사례와 같이 국가 차원의 정책적 지원 또한 매우 중요하고 또 필요하다. 그러나 문화지체현상은 어김없이 나타날 것이다. 국가는 정책적 지원과 더불어, 언론에서 이러한 개인주의 정신을 홍보할 수 있도록 조장해야 한다. 모 학습지의 모토인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자’라는 문구와 ‘혼자서도 잘해요’라는 유아프로그램의 제목이 새삼 다르게 느껴진다.Outro이 레포트를 위해 머릿속으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던 중 옆에 계시던 남자 선배님께 넌지시 질문을 했다.“오빤 나중에 결혼해서 맞벌이 할거에요?” “응, 필요하다거나 여자가 원한다면 해야지!”나는 정말로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다.“그럼 가사분담도 할거에요?” ”당연하지”예상외의 대답이었다. 물론 마지막에 “신부가 이쁘면 뭔들 못하겠어” 라는 장난기 어린 말이 붙었지만, 몇 초의 망설임도 없이 가사분담을 하겠다고 한 선배의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이렇게 성 이데올로기는 아주 조금씩 변하고 있다. 자취를 하는 친구는 남자친구가 가끔 자취방에 들러 쓰레기통을 비워주고 라면도 끓여준다고 했다. 가사일을 거의 하지 않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친오빠와 나는 어머니가 집을 비우셨을 때 가사분담을 한다. ‘청소기 밀래, 설거지할래?’ 내가 둘 중 하나를 고르면 오빠는 나머지 하나를 하는 식이다. 적어도 우리 오빠는, 집안일은 여자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듯하다.이미
「싸이보그지만 괜찮아」분석하기1. 스타팅 크레딧영화「싸이보그지만 괜찮아」는 스타팅 크레딧부터 다른 영화와의 차별성을 가진다. 기계의 톱니가 돌아가는 영상으로 영화가 시작되어 약 7분 13초경 까지 스타팅 크레딧이 지속되는데 감독과 배우, 스탭의 이름 등이 평범하게 자막으로 나열되는 것이 아니라 영화 장면 속 소품과 맞물려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이를 표현하는 데에는 주로 클로즈업 기법이 쓰였다. 크레딧의 내용이 마치 처음부터 영화 속 소품들에 적혀 있었던 것처럼 설정되었기 때문에 그러한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클로즈업을 사용한 것 같다. 이 장면들을 보면서 (물론 처음 장면은 CG를 사용했겠지만) 처음 촬영을 할 때부터 스타팅 크레딧을 위해 이러한 의도를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영화를 더 보고 난 후 처음에 나온 기계들은 싸이보그의 몸속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2. 사운드2-1. 여자 아나운서의 음성영화의 곳곳에는 여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나온다. 영화 속 어디에도 그 음성의 얼굴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아나운서의 음성은 매우 또박또박하고 차분하여 큰 신뢰감을 형성해 주었다. 그런 동시에 울림이 있는 에코는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그런데 이 음성이 내재 음향인지 외재음향인지, 혹은 외화면 소리인지를 구분하는 것은 참 어렵다. 영군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 이 음성은 틀림없이 라디오에서 나오고 있는 내재 음향이라고 볼 수 있지만 이는 영군의 환상 속에서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 음성이 어떻게 분류되는지 확정 짓기는 매우 어렵다.2-2. 등장인물들의 음성영화 초반부의 장면들은 두 공간이 병렬적으로 나열되는 형식이다. 두 공간의 장면들은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이 장면들이 나열되는 동안 의사와 영군의 엄마와의 대화가 계속 이어지면서 그 둘이 나누던 대화의 주인공 ‘영군’이 다른 화면에서 계속 등장하는 임수정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이렇게 소리는 연결되지만 공간과 시간은 연결되 발사되는 소리와 의사, 간호사들의 비명소리, 물건이 부숴 지는 소리 등 잔인함과 폭력성을 자아내는 소리가 경쾌한 행진곡과 절묘하게 어울리고 있었다. 이는 「싸이보그지만 괜찮아」가 12세 관람가가 된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화면 자체는 아이들이 보기에 꽤 잔인한 장면들로 이어지지만 배경음악으로 인해 그러한 잔인함이 덜어지는 효과가 생긴 것 같다. 한편으로 이 장면은 영군의 상상 속에서 그녀가 오래전부터 꿈꿔왔던 일을 해내는, 그녀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매우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그런 영군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행진곡을 배경음악으로 사용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이 장면 외에도 배경음악은 항상 평화롭거나 밝고 경쾌한 느낌의 음악들만 사용된다. 영군이 과거를 회상하는 다소 공포스러운 느낌의 장면에서도, 일순이 자신의 슬픈 과거를 얘기해주는 장면에서도, 설미와 영군이 전기충격 치료를 받는 장면에서도, 일순이 눈물을 흘리며 영군의 등에 라이스 메가트론을 설치해주는 장면에서도 삼박자의 왈츠가 조용하지만 경쾌하게 흐른다. 슬픈 음악이 필요할 것 같은 장면에서는 아예 배경음악이 쓰이지 않았다. 조용한 가운데에 등장인물의 대사만이 들려와 오히려 슬픈 느낌을 배가시키는 효과를 준다. 그러나 충분히 슬픈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밝은 느낌의 배경음악이 들려올 때에는 그 슬픔마저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다.또 하나의 사운드 효과는 화면속의 움직임과 배경음악의 일치감이다. 시종일관 밝고 경쾌한 느낌의 배경음악은 중간 중간 끊기곤 하는데 이때마다 그에 걸 맞는 상황이 연출된다. (상황에 맞게 음악을 연출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러한 예 중 하나가 영군의 과거 회상 모습 중 영군이 엄마가 먹여준 순대를 뱉어내는 장면이다. 분위기와 맞지 않게 밝게 진행되던 음악이 순대를 뱉어냄과 동시에 피아노 건반을 한꺼번에 내려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끝이 난다. 또한 행진곡과 함께 의사와 간호사들을 죽이는 장면에서도 음악 중 한 테마가 끝나고 다이 동시에 같은 동작을 반복적으로 행하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하이앵글(부감)로 촬영 되었는데 이는 단순노동을 하고 있는 공장의 여직원들을 권위적인 시선으로 내려다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 외에도 어떤 한 공간의 전체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 하이앵글을 사용하였는데 특히 실외에서 촬영된 장면에서 쓰인 하이앵글은 대부분 버즈아이뷰를 이용한 익스트림롱샷이 주로 연출되었다.(특히 영화의 마지막 장면)반대로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로우앵글(앙각)로 촬영된 부분은 보통 주인공의 권위적인 면을 나타나기 위해서 쓰였다. 대표적인 예로 일순에게 점으로 소멸될 것이라는 판정을 내린 판사가 나오는 장면이다. 일순은 그의 말 한마디로 인해 자신이 언젠가 소멸될 것이라는 공포감을 갖게 된다. 따라서 그 계기를 마련해 준 판사의 권위적인 면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한 영군과 일순이 상상 속 풀밭 언덕에서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이러한 앵글이 쓰였다. 이 때 일순은 영군에게 밥을 먹지 않는다고 나무란다.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훈계를 하듯 일순은 영군이 밥을 먹지 않는 것을 속상해하며 나무라는데, 이때에도 로우 앵글이 사용되어 비의 약간은 권위적인 모습이 강조된다. 이러한 의도 말고도 위로 뻗어나가는 긴 안테나를 강조해서 표현하기 위해서도 로우 앵글이 사용되었다.같은 장소에서 여러 가지 앵글이 번갈아가며 쓰이는 장면도 있었다. 지하실에서 일순이 영군의 동정심을 훔쳐가는 부분인데 이때 카메라는 이 둘의 가까이에서 클로즈업을 하는 부분이 거의 없고 대부분이 멀리서, 그리고 고정된 위치에서 그들을 지켜보는 듯한 롱샷이다. 이러한 롱샷 화면은 아이레벨으로 촬영한 부분도 있지만 마치 CCTV를 설치한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하이앵글로 촬영된 장면도 있다. 또한 비교적 가까운데서 찍은 장면은 로우앵글로 촬영되어 마치 이 둘만의 공간을 몰래 훔쳐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이 밖에도 영군과 일순의 입, 할머니의 틀니 등이 번갈아가면서 익스트림클로즈업 되어 나타나는 장면 등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온 장면은 환자들과 의사들이 야외에서 치료의 일환으로 회의를 하는 부분이다. 이때 환자들은 가운데를 비워두고 빙 둘러 앉아 있었는데 각자의 의견을 얘기할 때 카메라는 가운데에서 환자들의 얼굴을 차례로 돌아가며 비추거나 원의 바깥에서 환자들의 뒷모습을 돌아가며 찍고 있다. 이 장면이 트레킹 쇼트 혹은 달리쇼트인지 혹은 스태디캠을 활용한 쇼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의 대부분이 병원 실내와 그 주변의 환자들을 중심으로 촬영되었기 때문인지 주로 스태디캠이 많이 사용된 것 같다.기억에 남는 장면은 또 있다. 덕천씨의 겸손함을 훔친 일순이가 뒤로 걸어가면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이 때 카메라 렌즈는 일순의 얼굴을 향한 채로 몸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쇼 프로그램에서 놀이기구를 타는 등 카메라맨이 함께 촬영을 하기 어려운 상황일 때 게스트들의 표정 등을 찍기 위해 카메라가 장착된 모자를 쓰고 촬영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경우와 비슷한 것처럼 보인다. 이 화면에서는 일순의 얼굴이 항상 중앙에 배치되어 있고 배경은 빠르게 바뀐다. 배경의 진행방향을 통해서 일순이가 뒤로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이 장면 말고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일순이, 영군이 자신을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쫓아가는 시퀀스이다. 이 장면은 일순이 카메라가 있는 곳까지 미소를 띠고 달려오면서 시작된다. 그리고 천천히 걷다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는지 시무룩한 표정을 짓곤 화면에서 사라진다. 쭈그려 앉은 것이다. 그러나 카메라 렌즈는 일순을 향하지 않고 고정된 그대로 유지된다. 이윽고 토끼뜀을 뛰고 앞구르기를 하며 영군에게 다가가는 일순이 다시 화면에 나타난다. 이때의 카메라의 움직임이 매우 재미있었다. 보통 이러한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주인공을 향해 따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예상과 반대로 카메라는 일순과 반대로 뒤로 빠지며 멀어진다.3-3. 등장인물의 시선영화 속에는 등장인물의 시선에서 보이는 모습을 묘사한 장면이 많이 나온 점은 보통의 오버 더 쇼더 쇼트는 말을 하고 있는 등장인물의 얼굴이 중심을 이루고 뒤쪽에 보이는 상대방의 몸은 포커스 아웃 되어서 머리나 어깨만 약간 나올 뿐인데 이 영화에서는 뒤통수가 화면의 반을 차지한다. 특히 영군의 엄마와 영군과의 대화 장면에서 이러한 점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영군 엄마의 권위적인 모습과 나약한 영군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한 것 같다.4. 미장센4-1. 색이 영화에서는 원색적인 색체대비가 많이 보인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이 앞에서도 언급한 처음의 공장 장면이다. 공장에서 반복적인 일을 하고 있는 여 직공들은 모두 빨간색 머릿수건에 빨간색 상의와 파란색 하의를 입고 파란색 의자에 앉아 파란색 작업대 위에서 작업을 한다. 또한 공장의 바닥은 초록색이며 그 가운데에는 노란색 선이 그어져 있다. 영군이 자신의 손목을 긋고 전선을 꽂는 장면에서도 영군의 손목에 흐르는 빨간색 피와 전선을 연결하기 위해 감는 파란색 테이프가 극명한 색체의 대비를 보여준다. 또한 영군이 의사들을 총살하는 장면에서도 의사와 간호사의 하얀 유니폼 위에 번진 빨간 피가 색체 대비를 나타낸다.색체 대비가 아니더라도 원색적인 색감의 활용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영군의 어렸을 적 장면 중 엄마에게 자신이 싸이보그라고 말하는 장면에서의 빨간색 조명이 그러하고, 일순이 덕천의 겸손함을 훔칠 때에 얼굴에 묻힌 빨간색 물감도 그러하다. 또한 지하실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의 분홍빛 조명, 초록빛 조명, 노란색 조명. 그리고 빨간, 파란, 초록, 노란색의 배기관들이 그러하다. (일순이 영군의 동정심을 훔쳐가는 장면에서 뒤쪽에 보이는 분홍색 배기관과 영군의 얼굴에 두른 분홍색 색지는 둘의 사랑이 시작될 것이라는 암시일지도 모른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도 해본다.) 마지막으로 영군의 충전도를 알려주는 발가락의 색 또한 원색적이다.4-2. 세팅, 의상, 분장영화 속에는 다양한 특성의 환자들이 나온다. 정신병원이라는 설정이기 때문에 다른 일반적이고 평범한 공간보다 특이한 성격의 인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