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미의 종류로서의 선어말어미(1)어미어미란 용언과 서술격조사, 곧 활용어의 어간에 붙는 가변 요소를 통칭한다. 용언은 어간과 어미로 되어 있는데 어간에는 하나의 어미만이 붙어 쓰이는 것은 아니고 둘 이상의 어미가 결합되기도 한다.날씨가 좋겠다.위에서 보면 -겠-, -다 의 둘이 어간 뒤에 결합되었다. 이처럼 한 어간에 여럿의 어미들이 붙기도 하는데, 어미들은 그 분포에서 차이를 보여 단어의 끝자리에 쓰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어미는 어간과 단어의 끝자리에 오는 어미 사이에 쓰이는 것, 단어의 끝자리에 오는 것의 두 가지로 나뉘는데, 전자를 선어말어미, 후자를 어말어미라 한다.(2)선어말(비어말)어미예) 선생님은 빨간 넥타이를 매셨다.동생이 바지를 입는다.위에서 살펴본 두 문장에서 「매시었다」에서 -시-, -었- 이나 -는- 과 같이 그 자체만으로 단어를 완성하지 못하고 반드시 -다. 와 같은 어미를 요구하는 것을 개방형태소, 즉 선어말어미 또는 비어말어미라고 한다.선어말어미의 앞뒤에 붙임표를 그은 것은, 앞에는 어간 또는 다른 선어말어미가 옴을 뜻하고 뒤에는 다른 선어말어미 또는 어말어미가 옴을, 즉 개방형태소임을 가리킨다.)2.선어말어미의 분류(1)분포에 따른 분류)1)분포가 넓은 선어말어미㉠ -시-㉡ -는-, -었-, -겠-㉢ -옵-㉠ -시-주체 높임법의 문법 범주 형성하며, 어미와의 결합 비율이 가장 높은 선어말어미이다.예) 할머니께서 내 손을 잡으셨다.또한 위의 예문에서 볼 수 있듯이 ‘ㄹ’이외의 자음으로 끝나는 어간 뒤에 쓰일 경우 매개모음 ‘으’를 요구한다.-시-는 동사, 형용사의 어간 바로 다음에, 시간을 나타내는 -았-이나 -겠- 등보다 앞에 붙는다.cf] -시-에 관한 다른 관점)ⓐ존대설: 주체 즉 문장의 주어로 등장하는 인물을 존대한다고 봄ⓑ호응설: -시-가 존귀한 인물이 주어의 위치에 나타났을때 이에 호응하여 그 용언의 어간에 -시-가 나타난다고 봄그러나 -시-가 나타나는 경우를 면밀히 살펴보면 -시-가 정확하게 이 어떤 인물에게 있음이 그 원초적인 구조인 것이다. 그것은 -시-가 1차적으로 존대 절차와 무관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은 존대 절차가 되는 것은 사회적 관습과 결부된 제 2차적인 기능인 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 “눈이 오신다”, “비가 오신다” 같은 예의 불가해성도 해결된다고 할 수 있다.㉡ -는-, -었-, -겠- : 시제범주를 나타낸다.① -는- : 현재시제 선어말어미예) 먹는다 - 자음 어간과 평서형의 어미 ‘-다’사이에 쓰인다.-ㄴ-: ‘-는-’의 이형태 . 모음 어간 아래에 쓰이는 현재시제 선어말어미예) 간다*감탄형 어미 ‘-구’계열에서 -는-을 사용한다.예) 먹는구나, 먹는구먼, 먹는구려 / 가는구나, 가는구먼, 가는구려‘-는/ㄴ’과 ‘-는-’은 평서형과 감탄형에만 나타난다는 분포상의 제약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시제 형태소들과 자유롭게 대치되기 때문에 시제표시 선어말 어미로 간주하였다.② -었- : 과거 시제의 선어말어미음성 모음으로 된 어간 아래 쓰이며 양성모음 아래에서는 ‘-았-’이 선택된다. -었-은 대부분의 어미와 결합이 가능하다.예) 내가 그 떡을 먹었다.백만 대군을 막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또한 ‘하’나 ‘하’가 붙은 어간에 선택되는 ‘-었-’은 ‘-였-’으로 실현이 되는 양상을 보인다.cf]양성모음 뒤에 ‘-았-’이, 음성 모음 뒤에 ‘-었-’이 쓰이는데 왜 “하”뒤에서는 ‘-였-’이 쓰일까?국어의 형태론적 변이형태로 대표적인 것은 ‘하’다음에 오는 ‘여, 였’이다. 이는 어미의 불규칙활용으로 다루어지는데, 어미 불규칙활용에는 이 외에도 ‘거라, 너라’가 있다. ‘여’를 형태론적 이형태로 설명하는 것은 공시적 설명으로는 더 이상 설명이 불가능함을 뜻한다. 그러나 역사적인 근거에 의한 설명은 가능하다?의 소급형을 ‘?l’로 해석하는 것이다. ‘병잠개예 해 ?l이?니 (소학언해)’ ‘사도? ?l이샤’에서 볼수 있는 바와 같이 ‘?l’의 형태가 발견된다. 이 ?l에 사동의 의미 ‘이’가 붙으면 ?l이어 가 되어 ‘?l이여’가 된다.③?’의 직접적 계승형이기 때문이다.-자음어미 앞에서 -옵--모음어미 앞에서 -오-예) 가옵고, 가옵더니 (자음어미)가오니, 가오며, 가와 (모음어미)위에서 살펴본 세 종류의 선어말어미는 대부분 다른 어미와의 결합에 있어 큰 제약이 없다. 이런 선어말어미를 분리적 선어말어미라고 한다. 사전에 ‘-시고’가 아닌 ‘-시-’를 분리하여 싣고 있는 것도 이런 분리적 성격을 고려했기 때문이다.2)분포가 좁은 선어말어미㉠ -ㅂ-㉡ -느-, -더-, -리-㉢ -니-, -것-㉠ -ㅂ- : 상대높임법의 합쇼체의 표지이다. 이를 공손의 ‘-옵-’과 동일시하기도 하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실제로 ‘합니다’와 ‘하옵니다’를 비교해 보면 ‘-오-’는 공손의 ‘-옵-’의 이형태이고 ‘-ㅂ-’은 합쇼체의 표지라는 점이 분명해진다.예) 철수가 농구를 잘 합니다.그는 허겁지겁 밥을 먹었습니다.위에서 볼 수 있듯이, -ㅂ-은 자음으로 끝나는 어간 뒤에서는 -습-으로 실현된다. 이 선어말어미는 평서형, 의문형, 감탄형, 명령형, 청유형 등의 5가지 문장 종결법에만 쓰인다.㉡ -느-, -더-, -리- : 서법표시의 선어말어미들이다.서법이란?-한 문장을 바라보는 화자의 심리적인 태도를 나타내는 문법범주를 뜻한다.)①-느- : 직설법을 표시하는 기능을 한다.예)그는 어디로 갔느냐?그녀는 일을 굉장히 잘 합니다.②-더- : 회상법을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예) 모두 축제에 가고 기숙사에는 한 사람도 없더라.이젠 만 원으로는 시장을 볼 수도 없습디다.①,②는 평서형, 감탄형, 의문형에서만 나타나고 다른 문장종결법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또한 합쇼체의 표지인 ‘-ㅂ-’ 뒤에서는 각각 ‘-니-’, ‘-디-’로 실현된다.③-리- : 분리적 선어말어미인 ‘-겠-’과 의미가 상당히 비슷하나 그 분포에 있어서 차이 를 보인다.예) 내 그 일을 직접 하오리다.위의 예를 살펴보면 ‘-리-’는 합쇼체 ‘-ㅂ-’ 아래 쓰임이 명백하다. 하지만 ‘-리-’는 보통 평서형과 의문형에서 나타나나 현대국어에서는 이미 생명을 잃어 대단하더라.3. 말하는 이 자신의 일에 대하여 그것을 객관화시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 주는 것을 나타낸다.예) 내가 그래도 꽤 잘 먹더군.나는 그 술집에 자주 가게 되더라.내가 어젯밤 꿈에서 미국에 가더라.4. 다른 사람의 말을 전달함을 나타낸다.예) 그는 하루에 이 책을 다 읽었다더라.그곳은 여기보다도 더 심한 산골이더라.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겠다고 하더라.㉢ -니-, -것- : 강조법의 선어말어미① -니- : 원칙법으로서 화자가 사태를 불변적, 기정적인 것으로 파악하여 알림으로써 청 자의 주의를 그것에 집중되기를 바랄 때 쓴다.예) 어린 아이가 그런 말을 해서는 못쓰느니라.② -것- : 확인법으로서 ‘-리-’뒤에서는 ‘-엇-’으로 교체되기도 한다. ‘하렷다’에 나타나는 ‘-렷(리엇)-’이 그것이다.예) 니 죄를 네가 알렷(리엇)다!이렇게 어미와 결합되는 비율이 제한적인 것들을 교착적 선어말어미라고 한다. 이런 점 때문에 사전에서는 개별 항목을 분석하지 않고 활용형을 그대로 싣고 있다.3. 중세시대의 선어말어미)(1) 중세국어의 선어말 어미 -시-존경법의 지표는 ‘-시-’이고 이는 중세국어나 현대국어를 막론하고 변함이 없다. 존경법의 실현은 화자와 청자의 대화에 나타난 종결어미 또는 연결어미에 사용된 ‘-시-’의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존경법에 실존하는 화자 청자와 대화 중에 주어에 대한 경의로 표현되는데 그 주어가 대화의 장에 있거나 없거나 그것은 존경법을 사용하는데 관건이 되지 못한다. 또한 화자청자의 위상도 존경법을 사용하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는다. 화자 청자의 게급적 관계보다는 화자주어일지라도 화자>청자의 계급적 관계일 때는 화자는 주어에 대해 존경법을 사용하고 청자에 대해서는 공손법 중에서 해라체의 반말을 사용할 것이다. 단 이때 주어>청자이어야 한다.존경법의 선어말어미에는 ‘-시-’이외에 ‘-샤-’도 있다. ‘-시-’와 ‘-샤-’는 음운론적으로 제약되어 있다.㉮ 가. 가시고, 가시며, 미드시니나. 가샤, 가샴, 가샤?, 미드샷다, 펴샤?,‘믿으샤옷다’에서 감동법의 선어말어미 ‘-옷-’의 일부분인 ‘오’가 떨어진 것이다. ‘펴샤?’은 ‘펴샤아?’에서 어미의 일부분인 타동사표지 ‘아’가 떨어졌다. ‘定?샨’은 ‘定?샤온’에서 선어말어미 ‘-오-’가 탈락된 것이다. 이렇게 (나)의 어형을 분석하면 ‘-샤-’는 ‘-시-’가 ‘아,오’로 된 어미나 선어말어미 ‘-오-’등의 모음어미 앞에서 실현된다고 할 수 있다.‘-시-’는 ‘-?-’에 비하여 어미와 결합되는 비율이 약간 낮다. ‘-?-’은 ‘보??라’와 같이 ?라체의 명령형과 결합될 수 있지만 ‘-시-’는 그런 예가 없다는 데서도 분포상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시다, ?신고, ?시니, ?실?, ?신?, ?시곤, ?신...이렇게 ‘-시-’는 ‘-?-’에 후행함은 물론 ‘거, 더’의 뒤에 나타나는 일도 많다.(㉰) ???시고, ?거시니, ?더시고(2)중세국어 현재시상의 ?눈 앞에 전개되는 사실을 나타내는 선어말어미 ‘-?-’는 다른 시상 선어말어미들과 배타적 분포를 가지고 있다. 다만 겸양법이나 존경법어미에 후행하고 공손법어미나 의도법 어미에는 선행한다. 그런데 이 선어말어미는 현대국어에서 설명법의 종결어미 ‘-다’ 앞에서는 ‘-는-, -ㄴ-’으로, 감탄법 종결어미 ‘-구나’ 앞에서는 ‘-는-’으로, 관형사형 어미 등의 앞에서는 ‘-느-’로 교체된다. 실제로 현대국어의 어미 ‘-느-’는 중세국어에서도 사용되었다. 물론 어간의 모음이 ‘ㅡ, ㅜ’등일 경우이며 극히 예외적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설명법 어미 앞의 ‘-?-’는 중세국어 어말 위치에서 어간말음이 모음일 때 먼저 ‘-ㄴ-’으로축약되고 근대국어에서는 다시 자음일 때 ‘-?-’이 생기고 다시 ‘-는-’으로 변한 것이다.㉮ 가. ‘-?-’ : 곶됴코 여름 하?니부텻긔 받?바 므슴 호려 ?시?니나. ‘-ㄴ-’ : 청렴?며 조심?다 호?로부모의 은혜를 안다 ??니라다. ‘-?-’ : 애 다아? 고나이 ?이 ?거름 ?티 즈늑즈늑 것?다(3)중세 국어의 -?-으로부터 현대의 -오-에 이르는 과정 -최명옥.
나의 인생설계목차들어가기파란만장 인생설계도를 쓰기 시작하면서……이야기하기1)20대 초반의 대학생2)20대 후반3)30대의 사회인4)40대의 새로운 도전자5)50대의 좋은 아버지6)60대의 여유마무리하기인생설계도를 마무리하며……▶ 파란만장 인생설계도를 쓰기 시작하면서...저는 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그저 나이가 어려서 하고 싶은 것이 많다고 생각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당당하게 나이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꿈꿔왔던 것과 성인이 되어서 꿈꾸게 된 것 두 가지를 합치면 정말 나에겐 평생 동안의 시간도 모자라기 때문이다. 어릴 땐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이 많았고, 지금은 세상 속에서 좀 더 큰 사람이 되고 싶은 열혈 청년이라서 그럴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을 걸 만한 야망의 도전과 목숨을 걸 만한 사랑처럼 정열적인 인생과 한없이 따뜻하고 행복한 가족을 이루는 것같이 부드러운 인생이 함께 하는 인생을 살고 싶다.▶ 20대 초반의 대학생나는 대학교를 재수를 해서 들어 왔기 때문에 노력을 해야 할 때 하지 않으면 그것은 나중에 엄청난 후회로 돌아온다는 것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느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느낀 것은 모든 것에 낭비란 없다! 라는 것이다. 나는 재수생활과 군 생활을 겪으면서 정말 경험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재수라는 생활을 통해서 자율적으로 나를 위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 이외의 세상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군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경험으로 인해 나는 평소엔 잘 배워보지 못했던 과목들을 위주고 공부해보았고, 결과 본래의 과가 아닌 정치외교학을 복수전공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 약 2년이 조금 남은 앞으로의 대학생활의 1차적인 목표는 역시 두 가지의 전공을 소화해내는 것이다. 아직은 조금 버겁기도 하지만, 평소에 관심을 두었던 정치학과 외교학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정말 감사하게 여긴다. 복수전공이라 생각하지 않고, 내 본래의 공부라고 생각하며 기초부터 하나하나씩 배우고 있는 중이며 앞으로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물론 학과 공부도 중요하지만, 학과 공부만큼 중요한 것은 대외 경험을 쌓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서 틈틈이 모은 돈으로 평소에 사진으로만 보던 해외여행을 몇 번 다녀온 적이 있다. 완전한 타국에서 혼자만 덩그러니 남겨지고 혼자 며칠 동안 여러 곳을 돌아다녔던 기억은 아직도 나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경험이다. 이번 학기에는 놓쳤지만, 이번 방학부터 학교 내에서 혹은 외에서 모집하고 있는 해외봉사 같은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마음에 맞는 사람과 혹은 혼자 가볼 예정이다.▶ 20대 후반먼저 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많은 것을 정리하기 위해서 홀로 배낭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어떻게 보면 전국의 대학생들의 고민인 취업과 상당히 멀어 보이지만 나 자신을 세상에 직접적으로 부딪혀보는 경험은 나에게 정말 소중한 자신이 될 것이다. 이 때 얻은 경험들이 내가 앞으로 사회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강인한 토대가 되어 줄 것으로 믿는다.이제 본격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야 할 때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직업은 보수에 만족하는 직업이 아닌, 그 일과 과정 자체에 내가 만족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대단히 가치 있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재수생활을 통해서, 아르바이트 생활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에 목표를 위해 어떠한 노력도 아끼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교육과 외교 쪽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 나는 대학생들이나 기업들의 교육에 관련된 직종에서 일하고 싶다. 더 좋은, 더 유익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개발하고 우리가 아직 알고 있지 못하는 명사들의 가치관, 철학 등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도록 하는 일을 하고 싶다. 다른 일로는 신문사에서 일을 해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정치외교학과의 수업의 장점은 비판력을 길러준다는 것이다. 부끄럽게도 군대에 다녀오기 전까지는 국내 정세나 국외 정세에는 잘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내 주위의 세상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철부지였다. 하지만, 정외과의 수업은 내 인식의 지평을 몇 단계나 넓혀주었다. 정외과에서 들은 전문지식은 기자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리라 확신한다.▶ 30대의 사회인이제부터가 진정한 시작이다. 진짜로 사회에 뛰어드는 시기라고 할 수도 있다. 이때쯤엔 내가 하고 싶은, 만족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여기서 안주하기에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때의 직업이 나에게 평생동안 만족을 줄 수 있다고 확신이 든다면, 주저하지 않고 나의 일에 전문가가 될 것이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것은 매우 가치 있고 도전해볼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조금 더 나아가고 싶다면, 나는 공부하는 것을 택할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학원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지만, 요즘 많은 기업들은 직원들의 대학원 진학을 보조하고 있다. 이런 제도의 도움을 받으며 대학원 공부를 하고 싶다.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 풍부한 경험과 실무능력을 쌓을 것이다.물론 인생의 중요한 것은 내가 하고 싶은 일만을 하며 사는 것은 아니다. 나와 함께 웃고, 울어 줄 수 있는 좋은 반려를 만나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나는 나의 반려가 될 사람이 나와 가치관이 맞고, 상냥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사람은 서로 다름에 끌린다고 하지만, 사람의 행복은 결국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같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 피어오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가 결혼을 해서도 이어갈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맞벌이를 해서 더 풍족하게 살려는 것이 아니라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 뒤에도 자신감을 가지고 생활 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집에서 집안일만하다보면 아무래도 자기의 삶은 별로 재미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결혼 후라도 직업을 가지고 일하며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면서 재미있게 사는 것이 너무 사랑스러울 것 같다. 아무튼 그저 난 그 사람의 마음만 아름답다면 다른 객관적으로 그녀를 나타내주는 지표들은 필요가 없다. 이렇게 결혼을 한 뒤에 아이를 가지기 전 짧은 시간 동안에 여행을 많이 다니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과 따로 정해진 신혼여행이 아니라 생활 자체가 신혼여행이 된다는 생각으로 항상 좋은 장소에서 함께하고 싶다. 내가 회사에서 돌아와서 밥 먹고 텔레비전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다못해 가까운 공원에서 같이 운동을 하고, 집 앞 커피점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얘기도 하다가 집에 돌아오는 식으로 말이다. 항상 따뜻하게 서로를 위하는 삶을 살고 싶다.▶40대의 새로운 도전자40대라면 새로운 도전을 하기 힘들 것이다. 내가 미래의 40대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부디 열정을 잃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나이는 상관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의 열정이 아직도 뜨겁다면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40대에는 대학원에서 배운 전문지식과 그동안 직장에서 쌓아온 실무경험 등이 나를 표현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멀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전문지식과 실무경험을 바탕으로 UN산하 기관에서 일하는 것이 내 최종 종착지가 됐으면 좋겠다. UN은 관련 학부나 학벌보다는 전문지식을 요구한다. 약 10년 정도의 기자 생활이나 교육관련 실무의 경험은 UN에서 일하도록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주하기 쉬운 나이에 나는 다시 한 번 도전해보려고 한다.
소통의 연결고리( - 소박한 SF영화 )- 시간의 판타지를 꿈꾸다우리는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다. 1분 1초를 섬세하게 느끼면서 사는 사람이 있을까. 세상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사람들은 그 변화의 바람에 순응하며 산다. 그것은 지금, 21세기가 되어서도 변하지 않는 진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은 시간의 판타지를 원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이 과거에는 어떤 모습이었는가, 미래에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누구나 마음속에 품고 있는 보편적인 판타지. 우리의 상상은 현실이 되었다. 텍스트와 영화 등으로, 우리는 간접적으로 동감할 수 있다.- 한국 SF영화의 침체기한국 SF영화는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 헐리우드에 진출한 심형래 감독의 는 흥행에 성공을 했다는 평을 받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아직 차가운 눈빛이 많은 추세다. 한국에서 흥행한 SF영화로 꼽을 수 있는 작품은 드물다.SF의 정의는 무엇인가. 공상 과학 소설(science fiction)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작품들은 대부분이 SF영화다. 외계인이 나오거나,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을 여행한다던가,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이 온다든가. 한마디로 말하면, 현실감이 없는 영화라고 하면 되겠는데, 한국에서는 SF영화의 흥행은 거의 없었다. 물론, 완벽한 SF영화의 조건을 가지고 있던 , , 등과 같은 영화들이 많이 있었으나, 흥행에는 참패했고 좋은 평을 받지도 못했다. 다만 SF적 성격을 가진 영화들이 종종 개봉을 했었고,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현실감이 없는 스토리, 그러나 설득력이 있었던 작품들. 소박한 SF적 요소를 지닌 영화를 찾고 싶었다.- 판타지적 멜로물, 포스터만으로 느낌이 오는 영화가 있다. 동감은 그런 영화들 중 가장 색깔이 강한 편에 속했다. 배우들이 교차되어있는 사진 한쪽에 1979와 2000의 숫자가 있다. 그 사이에 ‘우리는 지금 같은 사랑을 꿈꾸고 있다.’라는 글귀는 멜로물의 전형적임을 보여주지만 사람들의 묵혀 있던 감성을 끄집어낼 만한 요소로 자리매김 했다고도 볼 수 있다. 포스터만으로 우리는 영화의 구조를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당시, 신인이었던 김정권 감독은 이 작품으로 신인 감독상까지 받는 쾌거를 이루지만, 그 이후의 작품들은 첫 작품을 뛰어넘지 못하고 흥행에 실패했다. 동감은 많은 이들이 가장 많이 손에 꼽는 작품이다. 판타지물과 멜로물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한국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로, 사람들은 평을 내렸다. 2000년 작이며 주연 배우인 유지태와 김하늘은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리고 120만의 관객을 동원했다. 당시 2000년대의 120만 관객은 엄청난 흥행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멜로물이나 영화 자체에 관심이 없었으나, 누나가 벽에 걸어놓은 동감 포스터 액자를 아직도 기억한다.로모 카메라는 색감이 좋게 나오기로 유명하다. 편집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분위기가 있는 사진을 연출할 수 있다. 동감을 보면서 생각한 것은, ‘로모 카메라로 영화를 찍는 다면 바로 이거구나’ 싶었다. 깊은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크게 한몫했다. 주연 배우들의 열연도 영화의 완성도에 크게 기여했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요소들은 궁합이 잘 맞았다. 영화의 기둥이라고 볼 수 있는 스토리도 매우 탄탄했다. 각본은 현재 영화감독으로 종횡무진 중인 장진이 참여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가 시기적으로 시대와 잘 만났다는 것이다. 2000년, 그 당시에 앞의 자리 수가 1에서 2로 바뀐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은 사람들에게 크게 심어져 있었고, 현대 사회를 각박하게 사는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판타지아를 줄 수 있었다.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은 우리에게 신선한 감성을 선물해주었다. 우리도 1과 2의 기로에서, 과장되게 말하자면 천년의 시간을 새롭게 적게 되는 역사적 현장에 서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감은 없지만 믿고 싶은 영화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시간의 메시지 그리고 연결고리개기월식으로 인해 작동조차 하지 않았던 무전기가 작동을 하게 됐다. 이것이 의 판타지적 배경이다. 개기월식은 달이 지구의 본그림자에 전부 가려지는 현상이다. 개기월식을 볼 수 있는 날이 살면서 얼마나 될 것인가.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우리에게는 낯설기만 하다. 이런 과학적이고 사실적인 현상에 우리는 감성을 부여한다. 낭만적인 감성을 깨우는 판타지적 요소가 되는 것이다. 개기월식이라는 시간의 메시지로 우리에게 기대감을 장전시킨다.소은과 지인이 처음 만나기로 한 장소는 대학교의 시계탑이다. 이 시계탑 역시 시간이 주는 메시지다. 둘은 같은 시각에 시계탑이 있는 장소로 나와 서로를 기다린다. 소은의 시대에는 시계탑을 만들고 있고, 지인의 시대에는 예쁜 시계탑이 존재하고 있다. 대학교의 수많은 장소 중에 왜 하필 시계탑을 골랐을까. 영화에서 일관적으로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가 바로 시간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작정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서로를 기다리지만, 절대 만날 수 없는 가슴 시린 장면을 연출한다. 그들은 다른 시대에 살고 있어도, 그들이 느끼는 현재의 시간은 잔인하게도 흘러가버린다. 여기에 부가적으로 재밌는 말이 덧붙여진다. 영화에서 수위아저씨가 등장을 하는데, 영화에서 해주고 싶은 말을 그가 해준다.“세월은 그렇게 흘러가더라고…….”자칫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될 관객들을 위한 배려일까.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다. 돌담길을 걷는 장면도 나온다. 소은이 돌담길을 손가락 끝으로 스치며 걸어가면, 장면이 바뀌어 지인이 걷는 장면이 나온다. 이 역시, 둘은 절대로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주고 있다. 그러나 소은은 이런 말을 남긴다.
Ⅰ. 서론포퓰리즘, 그 논쟁의 중심에서 외치다.얼마 전 무상급식 등의 복지문제로 온 나라가 ‘포퓰리즘 논쟁’으로 뜨거웠다. ‘포퓰리즘’이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형태로 대중영합주의라고도 한다. 미국에서 대통령 연임에 성공하려면 많은 것들이 뒷받침 되어야 하겠지만 특히 선거 1년 전부터는 휘발유 가격이 갤런 당 3달러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우스갯소리로 들릴지 모르는 이 이야기는 포퓰리즘이 정치활동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 단편적으로 얘기해주고 있다.최근 대학가의 가장 큰 이슈는 ‘반값 등록금’이야기일 것이다. 황우여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이 이야기를 언급하고 나섰을 때, 많은 대학생들이 우리들의 이야기가 반영되는 것인가 하며 반색했을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반값 등록금’이라는 자극적인 구호로 민중을 선동하려 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정치와 사회, 정책을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기위해 포퓰리즘에 대한 논의와 연구는 계속 되어야 한다.Ⅱ. 본론포퓰리즘, 그 기원과 실체1. 포퓰리즘의 기원과 변화)포퓰리즘 현상은 인간의 정치 활동이 펼쳐지는 곳에서 으레 목격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1870년대 러시아에서 전개된 ‘인민 속으로’운동을 포퓰리즘의 기원으로 꼽는다. 하지만 보다 본격적인 의미의 포퓰리즘은 미국의 인민당에서 비롯되며, 인민당은 소외된 농민들의 권익을 대변하면서 기성 정치 체제에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고전적 포퓰리즘이 전통적 농촌 사회의 복구를 꿈꾸며 농민들의 삶을 예찬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면, 이후의 포퓰리즘은 도회지를 터전으로 하여 특정 지도자의 카리스마적 리더십 또는 선동 정치에 기대는 경향이 있다.러시아 포퓰리즘에서는 농민과 농민의 삶을 낭만적으로 미화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미국 포퓰리즘은 농업 급진주의라는 성격이 더 강한다. 이에 비해 라틴 아메리카 포퓰리즘은 처음부터 도회지를 근거지로 했다. 도시 중심적이라는 점에서는 오늘날 유럽에서 목격되는 포퓰리즘과 같지만, 유럽 타이밍, 효과적인 사진 등 뇌리에 강하게 스치는 방식으로 민중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온갖 수단이 동원된다.또한 대내외적 ‘적(enemy)을 만든다. 적을 만든다는 것은 통하여 단합에 대한 감정을 격렬하게 만들고 민중들의 열렬한 동조를 받을 수 있는 최적의 수단이기 때문이다.(2) 엘리트에 대한 적개심 고취포퓰리스트들은 엘리트와 대중간의 사회적 구조의 불평등과 갈등을 내세운다. 대중은 엘리트에 의해 사회적으로 항상 소외받으며 사회적 재분배에 대한 불평등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정치인과 교만한 지식인들에게 의해 무산되고 있는 보통사람들의 이익과 입장을 대변하는 대리인임을 자처하고 나선다. 대중들을 옹호한다는 포퓰리즘의 핵심은 바로 이런 이분법적 대립 구도 위에 있다.(3) 정치 개혁 주장현실에 대한 불만족과 불만을 계속적으로 대중에게 투여하는 것이 포퓰리즘의 또 다른 성격이다. 보통사람들이 부패하고 타락한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 억눌리고 있다면, 포퓰리스트들이 그런 기득권 체제에 전면 개혁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들은 인민의 이름을 내세워 기성권력 구조에 도전한다. 즉, 혁명의 당위성을 강조한다. 현실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은 포퓰리스트들의 약속에 귀가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이유에서 딕스(Robert Dix)는 기성체제에 대한 저항을 인민에 대한 호소와 더불어 포퓰리즘의 2대 본질로 규정했다.(4) 대의민주주의의 거부대의제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엘리트의 지배 도구’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이러한 이유로 포퓰리스트들은 현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대의정치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보인다. 그들은 보다 투명한, 또 직접적인 방식을 선호한다. 따라서 복잡한 정치구조대신 인민이 직접 참여하는 단순한 정치제도를 선호한다. 기득권의 대변자에 불과한 전문정치인을 배제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인민들 자신이 직접 참여하는 새로운 조직 형태도 추구한다.이러한 특징으로 미루어 볼 때 포퓰리스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민주개혁주의자가 아닐 수간 안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 운동의 주도 세력은 대부분 도시 지식인 출신이었고 정치 경험이 부족했으며, 러시아 전통 농촌 사회의 삶과 거리가 먼 사람들이어서 인민들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인민들의 입장이나 관점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노력도 모자랐다. 농민들은 사소한 물질적 이해관계에 대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등 혁명 의지가 박약했다. 또한 농민들은 근본적으로 보수적이고, 운동가들의 진의에 대해 의심을 가졌으며 차르에 대해 호의적이었다.결국 실망한 운동가들은 체제 붕괴를 위해서 선전선동에서 테러로 전환하였지만 소수 지식인 중심의 운동에서 대중 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하였다.(2) 미국 포퓰리즘의 전통수많은 미국인들은 정치인부터 서점 바겐세일, 옷 등의 광고문에 무엇인가 ‘남다르고, 꾸미지 않아 수수한 것, 그래서 일반 서민의 감각과 건실한 노동자 대중의 정서’를 담고 있다 싶은 것에 곧잘 ‘포퓰리즘’을 갖다 붙이고 있다. 포퓰리즘이 모든 영역에서 발견되다보니 미국의 경우 포퓰리즘의 의미를 꼭 집어 설명하기가 더욱 어렵다.① 인민당people's party : 포퓰리스트당이라 불린다. 19세기 말에 기업가, 은행가, 대지주의 지배에 맞서 소농 지주와 숙련 노동자 등이 평등한 대접을 요구하면서 출범한 인민당은 밑으로부터의 대중 운동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도 없었고, 엘리트 이론가가 그 출범을 주도한 것도 아니어서 진정한 의미의 인민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짧은 기간 생존하다 사라졌지만 인민당은 미국 정치사에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기게 된다. 인민당에 의해 전개된 미국 포퓰리스트 운동은 말 그대로 농민 중심이었으며 운동의 주도적 이데올로그 역시 농촌 출신이었다. 인민당 사람들은 독점 자본에 강렬한 거부감을 보였고 독점 기업 때문에 자유 경쟁 원칙이 훼손된다면서 이런 현상을 타파하기 위해 국가의 개입을 요청하기도 했다. 인민당은 거의 독립 세력을 구축하다시피 했고 기존 정당들에게 충격을 주어 기성 정당들도 나름대로 변화를 도모하지만 계급 자체가 모든 문제의 구조적 원인이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급진적인 변화를 원치 않는다. 미국은 이미 혁명에 성공했기 때문에 그 틀을 흔드는 것은 불필요하고 위함하므로 그저 미국 혁명의 뿌리를 재발견해서 못된 인간들을 일소하고 보통 사람들에게 권력을 되돌려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3) 라틴 아메리카의 포퓰리즘카리스마를 무기로 대중을 휘어잡는 지도자, 전통적 지배 엘리트에 대한 도전, 국제 사회에서 민족적 자존심 고취 등 포퓰리즘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로 골고루 무장한 정치 세력이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 곳곳에서 발견된다.① 아르헨티나의 페론과 에바에바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투쟁한 전설적인 사회 운동가라는 찬사와 지나친 사치와 인기 영합으로 아르헨티나를 망친 인물이라는 악평을 동시에 듣고 있다. 가지지 못한 자, 뒤처진 자들을 위해 헌신했지만 방식이 즉흥적이었다. 인기만큼 어두운 면도 발생하기 시작했다.페론은 집권 후 5개년 계획을 수립하여 공공사업을 확대하면서 교육 개혁과 사회 개혁을 추진하였고 농업과 축산업에 의존하던 경제의 체질을 바꿔 공업화의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외국인 소유의 철도 전화 회사들을 국유화하고 모든 외채를 청산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와 여성의 권익 신장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당시 도시 노동자 등 빈민계층은 혁명보다는 구체적 실리 (높은 임금이나 싼 값의 쇠고기)에 더 관심이 있었는데 페론은 그들이 원하는 바를 만족시켜 주면서 그것을 자신의 정치적 야망에 이용하고자 했다. 그는 고위 공직자에 어울리지 않는 과격한 언어를 즐겨 썼다. 또한 그는 지도자가 앞장서고 대중은 그 뒤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대중에 대한 자신의 일방적 영향력 행사에 방해가 되는 정치제도나 정당에 대해 적대감을 품었다.페론 정권에 대한 평가는 사람에 따라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페론 정권을 선심성 정책과 위기를 호도하는 사탕발림이 페론주의의 본질이라며 아르헨티나 몰락의 원흉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페론의 집권 시기를 아르헨티나 역사상 소득 분스트는 주로 사회 상류층, 특히 대기업 같은 강력한 집단을 표적으로 삼는다.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에 관심을 기울였던 1970~1980년대와 달리 2000년대의 유럽 포퓰리스트들은 세금, 이민, 민족주의 또는 지역주의 등 보다 미시적인 현안에 집중한다.유럽 포퓰리즘의 정치적 스타일은 특정 지도자 대신에 ‘대변인’을 부각시킨다거나 집단 지도 체제를 도입하거나 지배 정당과의 차별화를 강조하면서 당원의 직접 참여 등 새로운 조직형태를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포퓰리즘 특유의 개인 중심의 리더십 때문에 이러한 변화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5) 대한민국)① 김대중 정부●김대중 정부와 포퓰리즘김대중 정부는 IMF 금융지원을 받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등장했다. 분배 지향적이었던 김대중 정부는 자유주의를 받아들여 노동, 금융, 공공분야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그러나 2000년 4.13 총선에 앞서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기 위해 서민층을 공략한 생산적 복지 정책을 실시하기 시작했음② 노무현 정부●노무현 정부와 포퓰리즘노무현 정부는 매우 열성적이고 참여적인 지지층을 기반으로 등장했는데, 이들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임에서 조직적인 모습을 보였다.노무현 정부는 ‘국민 참여’를 강조했으나, 전체 국민에게 의견을 구하기보다 친 노무현 성향 네티즌의 의견을 내세우며, 자신의 사상적 편향성에 맞추어 제도와 사회적 근본원리를 무력화시키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자신의 리더십과 개인적 캐릭터에 의존해 대중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포퓰리즘의 대표적 모습이다.③ 이명박 정부●이명박 정부와 포퓰리즘 그리고 중도실용이명박 정부는 시장친화적인 환경을 조성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을 약속하며 앞선 두 정부와 차별적인 정책을 강조하며 등장했다. 초반에는 세금인하, 규제완화 등을 통해 기업 투자를 촉진시키는 정책을 주로 펼쳤다.2008년 5월 촛불집회 사태 이후부터 지지율 하락을 위한 대책으로 ‘중도실용’을 내세우며 친서민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연일 재매